천주교 수원교구 청소년국(국장 이건복 바오로 신부)은 지난 8월 16일 시복된 한국 순교자 124위를 기념하기 위해 주최한 독후감 공모전 수상자를 발표했다. 초등부 최우수상은 동백성마리아본당 정유진(예비신자) 양에게, 중등부 최우수상은 모현본당 이솔(헬레나), 고등부 최우수상은 비전동본당 최다경(리디아) 양에게 돌아갔다. 우수 본당상은 당수성령본당, 죽전본당, 본오동성요한세례자본당이 차지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교구 소속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 총 216여 명이 참가했으며,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총 1천200만 원의 상금이 전달된다. 시상식은 오는 21일 오후 2시 천주교 수원교구청 지하강당에서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가 시상자로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수상자 발표 내용은 수원교구 청소년국 홈페이지(http://youth.casuwon.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 경축기념 청소년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이 오는 21일 오후 2시 천주교 수원교구청에서 열린다. 천주교 수원교구 청소년국(국장 이건복 바오로 신부)이 지난 8월 16일 시복된 한국 순교자 124위를 기념하기 위해 주최한 독후감 공모전에는 교구 소속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 총 216여 명이 참가해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이번 시상식에서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응모된 총 216점의 작품 중 선정된 42점에 대해 총상금 1천200만 원을 수여한다. 시상은 개인상과 단체상 두 부문으로 나뉘며, 개인상에는 최우수상(초ㆍ중ㆍ고), 우수상(초ㆍ중ㆍ고), 장려상(초ㆍ중,ㆍ고)이, 단체상에는 우수 본당상이 수여된다. 수상자 발표는 4일 개별 통지하며, 천주교 수원교구 청소년국 홈페이지(http:youth.casuwon.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31)268-5313 강현숙기자
걷기는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 불릴 정도로 인간에겐 큰 의미를 지닌 행동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발을 철학 스승으로 생각하고 걷기와 생각하기를 통해 커다른 철학적 업적을 남겼다. 철학자 칸트는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산책을 했다. 산책을 나서는 시간이 얼마나 규칙적이었던지 동네 주부들이 칸트 교수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프랑스 계몽기의 천재적 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는 나는 걸어 다녀야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걷기를 멈추면 생각도 함께 중단된다. 내 정신은 반드시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고 말할 정도로 걷기애찬론가였다. 걷기로 점철된 10년 동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 학문 등의 대표작들을 집필한 철학자 니체는 걸으면서 구상하는 사람은 얽매인 데가 없어 자유롭다. 그의 사유는 다른 책의 노예가 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사유에 의해 무거워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걷기는 세상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본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방식이며 생각하고 사색하는 훈련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순간이다. 걷다 보면 길이 열리고 생각이 트이며 마음도 새로워진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이 한창이다. 걷기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이끈 제주 올레길를 비롯해 지리산 둘레길과 강화도 올레길, 정선아리랑 옛길, 서울 성곽길 등 저마다의 특징을 지닌 도보여행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길은 역사와 자연, 문학이 숨 쉬는 곳이다. 남한산성 길은 △제1코스-역사와 함께 소요하는 생명의 길 △제2코스-행궁과 함께하는 법도의 길 △제3코스-기억과 함께하는 반추의 길 △제4코스-성곽과 함께하는 의지의 길 △제5코스-산성을 따라가는 옹성 미학의 길 총 5개 코스가 있다. 남한산성 길에는 성곽과 행궁 외에도 수어장대, 연무관, 숭열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등 6개의 경기도 지정문화재가 있으며 망월사지와 개원사지 등 경기도 기념물도 2개가 있다. 그야말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남한산성의 단연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이 매력적이다. 400여 년의 역사를 오롯이 담겨 있는 성벽을 따라 걸으면 그게 바로 힐링이다.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길은 역사와 자연, 문학이 숨 쉬는 곳이며, 단연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이 매력적이다. 산성종로~침괘정~영월정~수어장대 보름달과 야경을 동시에 ■ 제1코스-역사와 함께 소요하는 생명의 길 제1코스 역사와 함께 소요하는 생명의 길은 숲이 가진 생명력과 산성 곳곳에 전하는 역사를 배우고 느끼는 코스로 산성종로를 출발해 침괘정, 영월정을 거쳐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이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 피톤치드 가득한 산길을 걸으며 숲의 충만함과 곳곳에 숨어 있는 역사이야기를 만나는 길이며 생명이 함께 하는 길이다. 침괘정(枕戈亭)은 산성 내 마을 동쪽 언덕 위에 있는 정각으로, 이서가 축성에 착수했을 때 수풀 속에서 이 건물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축조의 시기는 확실치 않다. 현재 건물은 조선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중수하고 침과정(枕戈亭)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침과정을 침괘정이라 부르는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제1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수어장대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라도록 높은 곳에 지은 건축물이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장대로서, 남한산성에 세워졌던 5개의 장대 중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참고로 수어장대는 달맞이 명소로도 이름난 곳으로 산성 위로 고즈넉이 떠오르는 보름달과 한강을 따라 펼쳐지는 화려한 야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행궁~숭렬전~영월정~산성종로 종묘사직 등 유적지 밀집 ■ 제2코스-행궁과 함께하는 법도의 길 제2코스는 제16대 인조 임금의 고뇌와 숙종의 자신감, 영조 정조의 문화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행궁이야기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한 구절을 되새기며 걷는 길이자, 백제의 시조 온조대왕의 꿈이 함께하는 길이다. 남한행궁을 둘러보고 숭렬전을 올랐다가 영월정을 지나 산성종로로 돌아오는 길이다. 특히, 남한산성은 임금이 도성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이나 피난처가 아니었다. 국가적 위기가 발생하면 언제든 임시수도로 탈바꿈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왕이 집무를 보고 생활하는 외행전과 내행전까지는 화성행궁 등 여타 행궁과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행궁에는 다른 어떠한 행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의 신하가 항상 언급하는 종묘사직. 남한산성에는 조선의 임금들이 가장 중요시 했던 종묘사직이 있다. 행궁은 일제강점기에 허물어졌다가 10년간의 작업 끝에 지난 2012년 복원됐다. 소설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걸으며 더 특별한 코스다. 또 제2코스에선 백제 시조 온조왕과 이서의 위패를 모신 사당, 숭렬전도 꼭 챙겨서 둘러보자. 병자년 전쟁의 기억을 반추하며 새로운 미래를 걷는 길 ■제3코스-기억과 함께하는 반추의 길 제3코스는 병자년(1636) 전쟁의 기억을 반추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길이다. 기억과 함께하는 반추의 길에는 비상시를 대비해 군사훈련과 무술연마를 하던 연무관, 조선 선비의 절개를 돌아보게 하는 현절사, 터만 남은 동쪽 지휘소 동장대지, 성안을 꿰뚫을 수 있는 곳 벌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특히 현절사는 불자가 아니어도 꼭 둘러봐야 하는 곳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심양으로 끌려가 처형당한 삼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 선생의 넋을 위로하고 의절을 널리 현양하기 위한 사우다. 낮게 쌓은 여장 너머로 열리는 풍광 산성의 아름다움 만끽 ■제4코스-성곽과 함께하는 의지의 길 남한산성의 절반 거리를 성곽을 따라 걷게 되는 길로 산성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길이다. 성곽 둘레를 수놓는 여장과 울창한 나무들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남문을 시작으로 천주사지, 수어장대, 병암을 거쳐 서문에 이르는 길은 탐방로의 전반부에 해당하고, 서문에서 연주봉 옹성을 지나 북문으로 내려오는 길은 탐방로의 후반부다. 특히 적의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낮게 쌓은 담장인 여장(女墻) 사이사이 보이는 남한산성의 풍광은 한폭을 그림을 연상케 한다. 또 남한산성 서문은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서쪽 경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물자를 이송하기는 힘들지만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2중으로 돌린 옹성 미학을 따라 예술적 생동감이 넘쳐나고 ■제5코스-산성을 따라가는 옹성 미학의 길 옹성이 몰려 있는 성곽의 남동쪽 길을 따라 펼쳐진다.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외부에서 2중으로 돌린 성벽을 말한다. 남문에서 시작해 3개의 옹성을 차례로 지나 동문을 거쳐 지수당을 들렸다 출발점 산성종로로 가는 구간이다. 옹성의 생동감 넘치는 형태와 옹성이 자아내는 예술적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다. 옹성 미학을 따라 가는 길은 다른 산성이 가지지 못한 남한산성만의 매력이 넘치는 길이다. 이처럼 남한산성 길은 남한산성의 이야기와 생명, 법도, 반추, 의지, 미학이 함께하는 길을 만날 수 있다. 깊고 아픈 역사를 품고 지켜 온 남한산성 길을 오늘도 많이 사람들이 걷는다. 길 위에 이야기가 있고, 삶이 있기 때문이다. 강현숙기자 사진=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28일 남한산성 숭렬전에서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알리는 인증서 전달 행사가 열렸다. 인증서는 기쇼 라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소장이 남한산성을 직접 방문해 전달했으며 조선시대부터 산성 내 대소사를 고했던 숭렬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에서 전통제례를 올리며 봉헌했다. 이날 전달식에는 남경필 경기지사를 비롯해 나선화 문화재청장, 조억동 광주시장, 이혜은 한국ICOMOS 위원장, 원용기 해외문화홍보원장과 관계자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제례 제향은 경기도관찰사 격인 남경필 지사가 초헌관, 조억동 광주시장이 아헌관, 기쇼 라오 소장이 종헌관으로 참여했다. 초헌관은 제례 시 처음 술잔을 신위(神位)에 올리는 제관이며 조선시대 숭렬전 제향 시 경기도관찰사가 초헌관을 맡았다. 아헌관과 종헌관은 각각 두 번째,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제관을 일컫는다. 이날 기쇼 라오 소장은 한국에서 처음 이뤄진 세계유산 인증서 전달을 통해 한국의 전통을 체험하고, 그 가치를 직접 느낄 수 있어 큰 감동을 받았다며 앞으로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적 가치가 지역주민의 소중한 유산이자 전 세계인의 유산으로서 미래세대까지 잘 지켜나갈 것을 요청했다. 강현숙 기자
우리는 하느님께 평화와 화해의 은총을 간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제시한 마지막 메시지는 용서였다.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교황은 한반도 평화 구축의 첫 시도로서 용서와 화해의 화두를 던졌다. 교황은 성경 마태복음 18장 21, 22절에서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줘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라는 베드로의 물음에 예수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 구절을 인용해 용서의 의미를 역설했다. 이어 그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함에 있어 관대함이 지속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이 처한 경제적 상황을 빗대, 이념과 정치적 이해가 아닌 민족과 생명의 가치를 기본에 두고 진심어린 행동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와 함께 교황은 재난과 계급, 경쟁과 자본에 의해 분열된 한국사회의 내부적 연대도 요구했다.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한국인으로서 이제 의심과 대립, 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그 대신 복음의 가르침과 한민족의 고귀한 전통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외된 이들을 향한 교황의 위로는 마지막 날에도 이어졌다. 이날 미사에는 김복동, 강일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 7명과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등도 참석해 교황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교황은 맨 앞줄에 앉아있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손을 꼭 잡으며 축복했으며 위안부 할머니가 직접 건넨 배지를 달고 미사를 집전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또 교황은 미사에 앞서 오전 9시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 원불교 교정원장 남궁성 교무 등 12개 종단 종교지도자를 만나 삶이란 혼자서 갈수 없는 길이라며 종교간 화합을 촉구했다. 미사를 끝낸 교황은 이날 오후 1시 대한항공 전세기 편으로 교황청이 있는 로마 바티칸으로 향했다. 교황이 머문 4박5일 프란치스코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그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크다. 그는 세상 가장 높은 존재였으나 가장 낮은 자세로 우리 사회 소외계층과 만났다. 분(分) 단위의 미세한 일정 속에서도 지친 기색 없이 일관된 몸짓으로 한국민에게 평화와 희망, 용서 그리고 책임 등의 가르침을 남겼다. 그 메시지를 어떻게 수용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것은 우리 사회에 남겨진 몫이다. 박광수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의 일정을 마치고 18일 출국했다. 그가 한국에 있던 96시간 동안 프란치스코 신드롬이라는 말이 통용될 만큼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열광이 아닌 하나의 현상이었다. 12억 가톨릭 교인의 수장으로 신과 인간 사이 가장 높은 존재였으나, 그가 보인 실제 행보는 가장 낮음이었다. 겸허와 소탈, 위로의 96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종교의 세속과 자본의 야수성을 비판하며 그 어떤 지도자도 보여주지 못한 공감과 위로를 우리에게 전했다. 이 같은 지지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기반했던 정신적 토대의 부실함과 척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지난 5일 동안 교황이 우리 사회 남긴 메시지는 무엇이고, 그 과제를 정치, 경제, 사회분야로 풀어봤다. ■ 정치:한국사회 갈등과 반목, 진심어린 소통과 대화가 해법 5일간의 방한에서 교황은 많은 메시지를 남겼다. 작게는 소통이었고, 크게는 진심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입국 직후 청와대에서 가진 연설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메시지는 정치권에도 고스란히 통용된다. 극렬하게 분리된 지역주의와 여야의 대립, 남북한 갈등을 해소할 대화의 조건으로 교황은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상대를 공감할 수 있는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공감을 갖추지 못한 대화는 독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교황은 16일 진행된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에서도 이 같은 강론을 펼쳤다. 교황은 생각과 함께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진정한 대화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분명한 정체성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또 교황은 남북 문제에 관해서도 메시지를 남겼다. 특히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교황은 강론을 통해 죄 지은 형제들을 남김없이 용서하라며 의심대립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한민족의 고귀한 전통 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 경제:가치와 문화 짓누르는 물질주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자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언급했던 역대 교황은 없었다. 그 만큼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워왔던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월가에서 그의 성향을 두고 Red Papa 즉, 붉은 교황이라고 부를 정도다. 지난 15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빈다며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2012년 기준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지니계수)가 OECD국가 중 6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따라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를 위한 경제 주체들의 분발과 함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일자리 창출, 복지 확대를 위한 경제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사회: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교황은 방한 내내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 상처 입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위로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방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교황과 끝까지 함께한 사람들도 바로 이들이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서 하나가 됐으며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길 바란다고 기도했다. 이 같은 교황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는 아픔을 넘어 전진할 새로운 힘을 얻기도 했다. 빈자의 아버지라는 별명답게 교황은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을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교황은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서는 이주노동자새터민 등 소외계층을 초대하기도 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부유함 속에서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의 울부짖음이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 안에 살고 있다며 소외계층에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박광수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마지막날인 18일 이웃 종교 지도자들에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 상생의 길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교황은 이날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한국의 종교 지도자 12명과 만난 자리에서 다른 형제들과 함께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걸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오전 9시께 서울대교구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 등과 인사를 나눈 뒤 종교 지도자들이 기다리는 문화관 내 1층 중앙홀로 들어갔다. 교황은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장인 김희중 대주교의 안내에 따라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과 인사를 나눴다. 자승 스님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하자 교황도 두 손을 모아 기도했고, 크게 환영합니다라는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의 인사에 환하게 웃음짓기도 했다. 이어 서정기 성균관장이 금색 보자기에 싼 선물을 건네자 감사 인사를 전했고, 대한성공회 의장 김근상 주교가 건네는 십자가 선물을 받고는 웃음 지으며 십자가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 박남수 천도교 교령,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 구세군대한본영 박종덕 사령관,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대주교,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장 김철환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김동엽 목사 등이 함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일이 다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서서 정제천 신부의 통역을 통해 여기에 함께 와주신 친절함에 대단히 깊이 감사드린다고 깊은 사의를 표했다. 교황은 이어 삶이라는 것은 길이라며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며 이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향했던 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15분간의 짧은 만남에서 종교간 이해와 대화를 강조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한 뒤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김규태기자
강우일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위원장 겸 한국천주교 주교회 주교는 우리 사회가 프란치스코 교종(교황)의 마음을 본받아 계층 간 반목과 대립을 극복하고, 연민과 존중의 사회로 나가길 희망한다고 18일 밝혔다. 강 주교는 이날 서울 롯데호텔 프레스센터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불과 며칠밖에 안 계셨지만 많은 이들이 필요로 하는 위로와 연민과 희망을 가득히 불어넣어 주고 가셨다. 한반도의 평화, 동북아의 평화를 간절히 소망하시며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못 박아 주셨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한반도 평화는 우리 안에서 고귀한 하느님의 닮은 모상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형제적 시선을 펼치는 데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면서 우리 안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때, 그 강물은 동서남북으로 흘러 평화의 바다로 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주교는 교종은 한국이 이룬 경제성장과 부를 경배하며 그 부가 제공하는 일시적인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어 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더 높은 가치를 찾아 나서라고 촉구하셨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프란치스코 교종은 당신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온몸으로 증명하기 위해 4박5일을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리셨고, 당신께서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지 보여주셨다고 전했다. 강 주교는 교종은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는 단순히 물질을 좀 보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우리와 같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형제로 받아들이고, 우리와 같은 품위를 지닌 인간으로 동등하게 존중받으며 살아가도록 일으켜 세우는 데 있다고 하셨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교종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 모두 한마음으로 환영해주고 따뜻이 맞아주셨음에 깊이 감사하고 떠나셨다면서 방한기간에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린 점 송구하게 생각하고 협조에 감사드리며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에도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김규태기자
4박5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18일 출국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전달했다. 교황은 17일 세월호 희생자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 세례식에 배석한 천주교 수원교구 안산대리구장 김건태 신부에게 실종자 가족에게 전해달라며 프란치스코라는 자필 서명이 담긴 한글 편지와 묵주 10개를 전달했다. 이 편지에는 직접 찾아뵙고 위로의 마음 전하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이번 한국 방문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실종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다고 쓰여져 있다. 이어 다만 아직도 희생자들을 품에 안지 못해 크나큰 고통 속에 계신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위로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여 있다. 특히 편지 끝에는 실종자 10명의 이름을 모두 나열한 뒤 주님, 하루빨리 부모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보살펴주옵소서라는 간절한 기도가 적혀 있다. 김 신부는 편지와 묵주를 19일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와 함께 팽목항을 방문해 실종자 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그는 교황께서는 제 두 손을 꼭 잡으시면서 프랑스어로 실종자 가족 손잡고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며 서신은 전달하면 되는데 교황의 따뜻한 마음까지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이어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뜨겁고, 감사하다. 이런 치유를 누가 해주겠느냐고 덧붙였다. 김규태기자
한국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교황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공항을 찾은 시민들은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떠나는 교황을 향해 손을 흔들며 출국길을 배웅했다. 18일 낮 12시32분 성남시 서울공항 청사 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교황의 모습이 보였다. 정홍원 국무총리, 방한 기간 통역을 맡은 예수회 차기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가 함께했다. 흰색 수단과 목에 걸린 은색 십자가, 아무런 장식이 들어가지 않은 검은색 구두와 왼손에 들린 낡은 가죽가방 등 교황의 모습은 방한 기간 내내 보였던 소박함 그대로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교황은 자신을 기다리던 주교단과 취재진 등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 정부 관계자 등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프란치스코 교황은 외부로 나가지 않고 바로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트랩으로 이어지는 복도 앞에 일렬로 늘어선 주교단으로 향했다. 교황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 등 10여명의 주교단과 일일이 악수를 했고, 일부 주교와는 포옹하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주교단과 짧은 인사를 마친 교황은 전통복장을 한 의장대를 사열하고, 복도 입구에 서서 정 총리, 정제천 신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 교황은 취재진이 파파를 외치자 발길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교황이 한국에서 남긴 마지막 모습이었다. 교황은 입국 때와 마찬가지로 의전차량으로 선택한 국산소형차 쏘울을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특별한 환송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공항 정문 맞은편 인도에는 이날 오전 8시께부터 천주교 신자와 인근 주민 등 250여명(경찰 추산)이 모여 교황의 출국길을 배웅했다. 이들은 교황이 탄 차량이 공항에 도착하자 교황님 사랑해요, I pray for papa라고 적힌 피켓과 손을 흔들며 비바 파파!(Viva Papa, 교황 만세)를 연호했다. 일부는 오후 1시께 교황을 태운 대한항공 전세기가 바티칸을 향해 이륙,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아쉬움을 달래듯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아들과 함께 공항을 찾은 김모씨(32여)는 항상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돌보라는 교황님의 가르침을 직접 느끼고자 이곳에 왔다면서 짧은 일정이었지만 교황님이 우리나라에 머무는 동안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규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