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묘는 민법 제1008조의3에 따라 그 분묘에 안장된 망인의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이 승계하는 것이다. 구 관습법에 따르면 선조의 분묘를 수호·관리하는 권리는 제사주재자인 그 종손에게 있었다. 그 후 대법원은 위 입장을 변경하면서 제사주재자는 먼저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로 정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망인의 장남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했다. 이어 대법원은 2023년 5월11일 선고 2018다248626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다시 종전 견해를 변경해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하고, 이 법리는 위 판결 선고 이후에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뤄지는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한편, 대법원은 종중이 공동 선조의 분묘를 수호 관리해 온 경우 해당 분묘의 수호 관리권 내지 분묘기지권은 종중에 귀속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제사주재자가 아닌 후손이 망인의 분묘 발굴 등의 행위를 한 사람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있을까. 분묘를 파헤치고 그 안에 안치된 망인들의 유골 4구를 꺼내 양철통에 담은 후 불에 태운 다음 분묘 입구 쪽 땅에 묻어버린 행위에 대해 망인들의 손자 또는 아들이 가해자에게 위자료를 청구한 사안에서, 하급심은, 위 아들은 위 분묘에 관한 관리처분권을 갖는 제사주재자가 아니므로 위자료 상당의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2025년 4월23일 선고 2023다283401 판결)은 원심을 파기하면서, 분묘를 발굴하거나 유체·유골을 훼손하는 행위가 있었고 그러한 행위가 어떤 사람의 추모 감정 등 인격적 법익을 침해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초래했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 사람은 해당 분묘의 관리 처분권자인 제사주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해자를 상대로 그 정신적 고통에 대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위 판결에 따르면 이 경우 분묘발굴, 유체·유골 훼손 행위가 추모 감정 등 인격적 법익을 침해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초래했는지는 개별 사안에서 그 행위자가 분묘발굴 또는 유체·유골의 처리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분묘발굴 또는 유체·유골의 처리가 사회 통념상 받아들일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 피해자와 망인 사이의 친족관계 또는 생전 생활 관계, 평소 분묘 등의 관리 상황, 분묘나 유체·유골의 손상 상태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문화
경기일보
2025-04-23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