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본 십주비바사론 권17(初雕本 十住毗婆沙論 卷十七)은 인천시 연수구 가천박물관에 있는 기록유산으로, 보물 제1206호이다. 십주비바사론은 보살이 수행하는 데 있어 계율을 지키는 방법과 보살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화엄경에 포함돼 있다.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십주비바사론 17권 가운데 마지막권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세로 30㎝ 가로 47.3㎝의 종이를 28장 이어 붙인 것이다. 인쇄상태와 종이질 등을 고려해 볼 때 11세기에 찍어낸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제공
건륭59년5월3일군호재가문서는 조선 정조 18년(1794) 5월3일 병조에서 야간경비를 볼 때 사용한 군호문서(군중에서 사용하는 암호를 전달하는 문서)다. 문서는 당시 병조시랑이던 윤장렬이 정조에게 군호를 재가받고자 두 글자를 써서 올리자 왕자였던 순조가 두 글자와 함께 군호 밑에 가(可)자를 쓰고 서명을 놔 재가했다. 문서에는 병조의 도장 7개가 찍혀있다. 이 문서는 당시 병조의 야간경비 때 사용하던 군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현재는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386번지에서 소장 중이며 지난 1994년 10월29일 도 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
향약제생집성방 권6(鄕藥濟生集成方 卷六)은 인천 연수구 가천박물관에 있는 기록유산으로, 보물 제1178호이다. 향액제생집성방은 고려시대 김희선 등이 모은 『삼화자향약방』과 조선시대 권중화가 펴낸 『향약간역방』을 중심으로, 당시의 의료경험과 의학서적을 참고, 보충해 태조 7년(1398)에 펴내고, 이듬해 김희선이 강원감영에서 간행한 의학과 약학에 관한 서적이다. 『향약제생집성방』총 30권 가운데 제6권으로 완질이 아니며, 간행경위와 약방문 수록 범위 등을 대략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이『향약제생집성방』은 세종 15년(1433)에 간행된 『향약집성방』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자생하는 약초로 우리나라의 풍토와 체질에 맞는 향약을 개발, 적용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문화재청 제공
신립장군묘는 광주 곤지암읍 신대리 산 1-1번지에 위치한 문화유산으로 조선 중기의 무신인 충장공 신립 장군의 묘다. 신립 장군은 선조 즉위년(1567)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전라경상의 3도 순변사로 임명됐다. 아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대결했으며 싸움에서 크게 패하자 남한강에 투신 자결했다. 죽은 후에는 벼슬이 영의정으로 높여졌다. 묘는 부인 전주 최씨와의 합장묘로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다. 그 앞에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으며 좌우로 동자석망주석문인석이 각 1쌍씩 배열돼 있다. 묘비는 묘의 왼쪽에 있는데 비문은 송시열이 지었다. 문화재청 제공
재조본 경률이상 권1(再雕本 經律異相 卷一)은 인천 연수구 가천박물관에 있는 기록유산으로, 보물 제1155호이다. 경률이상은 경(經)과 율(律)에서 요점을 주제별로 뽑아 출전을 표시하여 학습하는데 편리하게 엮은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남해의 분사대장도감에서 목판을 새기고 제본한 것으로 짐작하여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전체 50권 중 제1권에 해당된다. 또한 새긴 사람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는데, 새긴 사람의 솜씨에 따라 정교하고 조밀함의 차이를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양주 소놀이굿은 설과 입춘을 맞아 가족의 번창과 풍년을 기원하는 굿으로, 소굿쇠굿소놀음굿마부타령굿이라고도 한다. 양주소놀이굿의 유래는 양주지방에서 산신으로 여기는 감악사에서 나왔다는 설과 농경의례의 하나로 풍년을 비는 데서 나왔다는 설, 소장수가 잘 되기를 바라는 데서 나왔다는 설, 궁중의례에서 나왔다는 설, 굿의 여흥으로 이뤄졌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소와 말, 하늘을 숭배하는 소멕놀이에 기원을 두고 무속의 제석거리와 마마배송굿 등에서 자극을 받아 형성된 놀이로 보고 있으며, 양주지역에서만이 아니라 서울과 경기강원충청황해평안남도에서도 행해져 왔다. 소놀이굿은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석거리에 이어서 놀이를 시작한다. 소를 위하고 자손번창과 장수를 비는 농경의례적인 성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굿의 가사가 세련된 평민 가사체로 돼 있고 다른 굿에 딸려 노는 굿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놀이이다. 지난 1980년 11월17일 국가무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
전등사 대웅보전 후불탱(傳燈寺 大雄寶殿 後佛幀)은 인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에 있는 유물로, 인천시 문화재자료 제21호이다. 전등사 대웅보전 목조삼존불좌상의 후불탱으로,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를 말한다. 1916년에 제작된 그림으로 한 폭에 석가와 약사, 아미타를 그린 일폭삼세불화(一幅三世佛畵)이다. 전체적으로 황토색과 진한 녹색, 밝은 벽돌색의 색 배합을 보이고 있으며, 얼굴이나 의습에는 20세기 초기에 경기도 일대에서 유행했던 서양화식 음영법이 가해진 그림이다. 문화재청 제공
평택 팽성읍 동서촌로 101-3(객사리)에 위치한 팽성객사는 조선 성종 19년(1488)에 지어졌으며 그 후로 2번의 수리를 거쳤다. 일제시대에는 양조장과 주택으로 사용되다 1994년 해체수리하면서 옛 모습을 되찾게 됐다. 현재는 대문간채와 본채가 남아 있다. 본채는 전체 9칸으로 가운데 3칸은 중대청이고 양 옆에 동ㆍ서헌이 각각 3칸씩 있다. 중대청은 안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관리들이 한달에 두번 절을 하던 곳이다. 이곳은 지붕도 동ㆍ서헌보다 높여 건물의 격식을 높였다. 동ㆍ서헌은 다른 지방에서 온 관리들이 머물던 숙소로 사용됐다. 중대청과 대문의 지붕 꼭대기 양끝에는 용머리조각을 놓아 관리청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객사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지난 1989년 6월1일 도 유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仁川 舊 大和組 事務所)는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27번길 96-2에 있는 109.9㎡ 규모의 건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567호이다. 대화조(大和組) 사무소는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 동안 인천항에서 조운업(하역업)을 하던 하역회사 사무소 건물로 근대 일본 점포겸용주택의 하나인 정가(町家, 마찌야) 유형의 건물이다. 인천 일본조계지에 현존하는 유일한 정가 양식 건물로써 건축사적인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하역노동자의 노동력착취의 현장으로써 역사적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 제공
1927년 일본에서 제작하고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성공장에서 조립한 승객용 객차로 1955년 대통령 전용으로 개조됐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대통령까지 이용했다. 객차 안에 각종 시설과 설비가 갖춰져 있다. 화려한 의장이 돋보이기도 해 전직 대통령 관련 유물로 상징적 가치가 높다. 길이는 24.5m, 너비는 3m, 높이는 3.4m 규모다. 현재 소재지는 의왕시 철도박물관로 142에 위치한 철도박물관으로 한국철도공사가 소유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0월17일 국가등록문화재 제 419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은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국가등록문화재 제800-1호이다. 이 유물은 송암 박두성이 1926년 11월 4일에 반포한 6점식 점자 훈맹정음과 관련된 유물 8건으로 총 48점이다. 훈맹정음은 일제강점기 시각장애인을 위한 고유언어 문자라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가 큰데, 본 유물은 훈맹정음 사용법에 대한 원고, 제작과정을 기록한 일지를 비롯해 제판기, 점자인쇄기(로울러), 점자타자기 등 한글점자의 제작보급을 위한 기록, 기구 등과 관련되어 있어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상황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근대 시각장애인사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문화재 등록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 제공
서희장군묘는 여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고려 초기의 외교가이자 문신인 장위공 서희(942998)의 묘소다. 서희는 광종 11년(960)에 과거에 급제해 외교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 성종 12년(973)에 거란이 침입하여 압록강을 건너오자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해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내세워 거란군을 물러가게 했다. 그후 청천강 이북에 있던 여진족을 토벌하고 강동 6주를 설치해 평안북도 일대의 땅을 확보했다. 현재 여주 산북면 후리 산53-1번지에 위치한 그의 묘는 지난 1977년 10월13일에 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
옹진 백령도 두무진(甕津 白翎島 頭武津)은 인천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에 있는 자연유산으로, 명승 제8호이다. 백령도는 남한의 서북단에 있으며 14번째로 큰 섬이다. 이 섬 북서쪽 포구가 두무진이다. 두무진에는 수억년동안 파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병풍같이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다. 3040m 높이 암벽에는 해국(海菊)이 자라고, 해안에는 염색식물인 도깨비고비갯방풍땅채송화갯질경이가 있으며, 큰 바위 틈에서 범부채가 자란다. 전남 홍도의 기암과 부산 태종대를 합쳐 놓은 듯하다. 문화재청 제공
망월사 범종각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조선시대 승려인 천봉당 태흘(17101793)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탑은 넓은 바닥돌 위로 기단을 두고,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바닥돌을 제외한 각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기단은 각 모서리마다 다섯 개의 구슬무늬를 세로로 두어 장식했다. 탑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조선 정조 18년(1794)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소재지는 의정부 호원1동 산91번지로 지난 1985년 9월20일에 도 문화재자료 66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제공
강화 참성단 소사나무(江華 塹星壇 소사나무)는 인천 강화군 화도문 문산리 참성단 내에 있는 자연유산으로, 천연기념물 제502호다. 이 나무는 전형적인 관목 모습에 나무갓이 단정하고 균형 잡혀 있으며 사적 제136호인 참성단(塹星壇,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낸 곳)의 돌단 위에 단독으로 서 있기 때문에 한층 돋보이는데, 규모와 아름다움에서 우리나라 소사나무를 대표한다. 소사나무는 잎이 작고 줄기가 고목의 모습을 가져 예부터 분재 소재로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전통나무다. 문화재청 제공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은 지금은 주변이 경작지로 변한 봉업사의 옛터에 위치하고 있는 탑이다. 전반적인 구조는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다. 기단은 하나로 짠 두툼한 널돌 위에 올려 완성하였는데, 이 때의 석재가 두툼한 탓인지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기단 위의 탑신은 1층 몸돌만 4장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는 한 돌로 구성했다. 각 층의 네 모서리에는 폭이 좁은 기둥을 새겼다. 탑의 전체적인 체감도 적당하지 못하고, 각 부의 조각도 형식에 그치고 있다.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석재의 조합 방식은 우수하나, 기단에 새긴 조각이 형식화 되는 점 등에서 약화되고 둔중해진 고려석탑 특유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현재 소재지는 안성 죽산면 죽산리 148-5번지로 1966년 2월28일에 보물 제435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제공
선문염송설화 권1-30(禪門拈頌說話 券一-三十)은 인천시 서구 법명사에 있는 기록유산으로,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70호이다. 고려후기의 승려 각운이 스승인 혜심이 저술한 선문염송집에 대해 화제에 대한 출처와 특수한 선문용어 해설, 격외의 법문 등을 해설한 책이다. 그래서 선문에서 필독의 책으로 이용되었다. 설화는 선문염송의 고화, 즉 옛화두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는 뜻으로 선문염송의 권수와 고칙에 따라 자세히 설명했다. 이 판본은 숙종 33년(1707) 7월에 전라도 흥양의 팔영산 능가사에서 간행한 것이다. 현재는 법명사 명상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문화재청 제공
남향집은 과천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는 뒤로 문을 나서는 소녀와 뜰 아래 누워 있는 개 한 마리가 평화롭게 그려진 집안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모후산인(母后山人) 오지호(1905~1982) 작가의 작품으로 그는 동경미술학교 유학시절부터 일본화풍과 차별화한 조선풍의 화면 설계에 주력했다. 인상주의 화풍으로 식민지 현실을 표현한 작가이다. 서구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양식인 인상파 양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토착화, 자기화를 성취한 작품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소장돼 있다. 지난 2013년 2월2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536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제공
묘법연화경 권3(妙法蓮華經 卷三)은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흥륜사에 있는 기록유산으로,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71호이다. 1245년(고려 고종 32년)에 대장도감에서 간행한 재조 본 고려대장경 판본의 전 7권 가운데 권3의 하나로 제5 약초유품(藥草喩品) 제6 수기품(授記品)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 등에서 3승의 가르침이 방편에 불과한 것임을 화성(化城)의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두루마리 형태로 얇은 닥종이에 인쇄되어 불상의 복장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질과 인쇄물로 보아 조선전기의 간행본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연천 소재 심원사는 중부 내륙의 명산인 보개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대암, 남암, 지장암, 성주암 등 여러 암자를 관장하던 지장도량의 본산이다. 유점사 본말사지에 따르면 심원사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 영원조사에 의해 최초로 창건됐다 전해진다. 이 절에서는 조선 후기 많은 고승대덕이 머무르며 생활하였던 사찰로 위와 같은 많은 암자를 거느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말 의병활동의 본거지로서 건물이 전소되어 재건됐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전소됐다. 2003년 발굴조사를 거쳐 극락보전이 복원됐다. 지난 2006년 8월28일 경기도 기념물 제213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