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길 한 걸음 두 걸음 또 한 걸음 세월 따라 걷는다 본분 지키며 사노라면 즐겁고 기쁜 날 오고 자식들이 잘 자라 일가를 이루어 그리움은 추억이 된다 나이 들어 찾은 詩의 세계에서 스스로 만족하고 이웃에게는 기쁨을 준다 시인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 詩를 읽고 함께 박수치면 향기로운 웃음꽃이 만발한다 어제보다 밝고 맑게 아침이 열리고 겨울에도 피는 꽃 봄의 노래 소리 들린다 신영희 시인 ‘수원문학’ 신인상 시 부문 당선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새해엔 산이 마을로 내려와 어슬렁어슬렁 다녔으면 좋겠다 산을 빤히 바라보고도 허리 아픈 이들이 많아서. 새해엔 산이 짐승들을 데리고 와 마을 사람들과 춤을 추면 좋겠다 신명 잃은 어깨쭉지들 어라, 덩더쿵 덩더쿵. 새해엔 산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 꽃이 됐으면 좋겠다 한 세상 살아내느라 지친 숨결들이 보기에도 딱해서. 새해엔 산이 하늘을 데리고 와 파도를 일으키면 좋겠다 다툼 없는 한 세상 새로운 노래로 일어서는. 윤수천 시인 197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늙은 봄날’, ‘쓸쓸할수록 화려하게’ 등 동화집 ‘꺼벙이 억수’, ‘고래를 그리는 아이’ 등 초등 4-1 국어활동교과서에 동화 ‘할아버지와 보청기’ 수록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 통화에서 송강하 가는 서간도 길 자신의 이력을 말하는 백두산 가이드 주 씨 눈 한번 껌뻑일 때마다 하나의 세상이 열렸다 닫힌다 화교라는 그는 북한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다녔단다 군인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군에 입대하겠다고 했더니 -너는 화교잖아, 안 돼 화교이니 중국에서는 받아주겠지 중국으로 가 군에 입대하겠다고 했더니 -너는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잖아 이번에도 안 된다고 했단다 희미해진 꿈이 이따금 나타나 -너는 누구지 묻는단다 그의 눈이 물빛으로 물든다 조영실 시인 2016년 ‘한국시학’으로 등단 제3회 DMZ문학상 운문 장원 제4회 문경새재문학상 대상 제14회 대한민국 독도대전 특별상 수상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화환이 줄줄이 낯선 길을 안내한다 웃는 사람은 있어도 우는 사람은 없는 장례식장 얼싸 안고 안부 묻기에 바빠 국화 꽃 속 영정은 덩그러니 외롭다 이승과 저승 그 거리가 얼마 길래 검은 레이스 드레스 양복 주머니에 달랑 삼베 코사지 식어버린 체온위로 바람이 운다 무아의 경지에서 풍경이 운다 임종순 시인 ‘문파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동남문학상 수상 시집 ‘풍경이 앉은 찻집’
손끝에서 묻어나는 세월 깊어가는 시간 덤으로 의지하며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습관이 되어 닮아간다 가던 길 멈춰 서서 뒤돌아보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애틋한 마음 황혼녘을 바라본다 지나온 시간 얹어진 힘겨웠던 삶, 변해버린 퇴색함마저 지는 해 바라보며 서로를 위로하고 차 한잔 마주하며 가슴 따뜻해진다 정의숙 시인 ‘한국시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사무차장
눈꽃 사븟사븟 산등선을 날고 지난해도 올해도 찾아온 여기 저 발자국, 누가 먼저 다녀갔을까 내일 기일인데 해외여행 갔다고 마중 나온 산까치 날개 치며 일러주네 안산 능선 너머 뭇별들 기웃거리면 군불 연기 속으로 아른거린 쪽 비녀 바람 끝 달래며 먼 길 떠나시던 날 그 모습 아련히 보일듯한데 상석에 새겨놓은 그리움 하나 가슴에 피어있는 시들지 않는 꽃 포 한 접시 술 한잔 허리 굽혀 올리고 속 이야기 나누며 내려오는 길 언 볼 만져주는 바람결에 홀로 생각 고인다 조병하 시인 ‘국보문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나의 생각을 박박 긁어도 들키지 않으니 나는 혼자가 좋다 사랑 한 줄 미움 한 줄 원망 한줄을 밑줄 치며 진저리쳐도 들키지 않으니 나는 혼자가 좋다 멀어져 가는 시간 속에 달려오는 이야기들 망망한 허공이라도 참새 떼처럼 수많은 사건들 그중에 한 이름 불러도 들키지 않으니 나는 혼자가 좋다 황혜란 시인 2002 문학과 세상, 문파 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원 경기여류문학회원 시집 ‘알 듯 모를 듯’, 공저 ‘삼인칭과 일인칭의 대면’ 外
소나무 곁가지에 삿갓등 내어걸고 아치형 터널 따라 미리내 수많은 별 땀땀이 사람들 가슴에 수를 놓는 시화전 신풍루 문을 열면 화성행궁 달이 뜬다 청사초롱 불을 밝혀 밤길을 열어두면 바람도 가던 길 멈추고 적막 속에 잠긴다 어둠의 옷을 벗어 저편에 걸어 두면 고즈넉한 풍경 따라 시월의 밤 깊어 가고 마음은 고요의 바다 화성의 달이 뜬다 서기석 시인 ‘문예춘추’ 시 등단 ‘시조시학’ 시조 등단 ‘수원문학 젊은 작가상’ 수상 수원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작가들의 숨 회원 시조집 ‘희망머리’
정원 잔디밭 잡초가 봄보다 먼저 온다 뽑아도 뽑아내도 좀비처럼 죽지 않고 번져나간다 보랏빛 까치꽃 좁쌀만 한 웃음 봉오리가 맺히고 꽃다지는 노란 리본을 머리에 얹었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 너희들 오늘 다 솎아내리라! 챙 넓은 햇볕가리개 모자 쓰고 한나절 뽑은 잡초가 바구니 가득하다 잠시 쉬며 하늘을 보다가 문득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 창조주께서 세상이라는 정원을 내려다 보신다면 개미만 한 우리의 삶을 솎아낼 듯 꼼꼼히 살펴보신다면 얼마나 많은 잡초가 자라고 있을까 그럴 때마다 하나씩 뽑혀 나갔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살아남아 있을까 호미를 쥔 채 가만히 잡초를 들여다본다 오늘 완전히 솎아 내려던 모진 마음을 접어두기로 했다 초대받은 자만이 손님이 아닌 까닭이다 한해경 시인 이화여대 음악대학 졸업 ‘창조문예’로 등단 경기시인협회원 시집 ‘꽃이 진 자리마다’, ‘나무 마네킹’, ‘강물처럼 흐르다’
밤은 검은 점으로 직조된 부드러운 색이라 내 영혼은 밤을 다스리는 권력을 지향한다. 갯벌의 염생식물 자줏빛 향연의 칠면초처럼 밤은 피곤과 스트레스를 부드럽게 풀어준다. 아침에 눈을 떠서 점하나 찍으며 시작하는 일상이 일상을 부드러움이 부드러움 만들고 밤이 부드러워 술 마시는 분위기의 사람은 형이상학적인 과녁을 맞추는 양궁선수처럼 사랑이란 가벼워서 무게가 나가지 않지만 부드러운 밤은 발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밤은 부드러워 얼굴에서 돌출된 입술에 댄 술이 발언권 행사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김어진 시인 2017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아라작품상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막비시동인.
원효대사는 당나라로 유학가기 위해 화성당성(華城唐城)으로 가는 도중 화성시 마도면 해문리에서 해골물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달았다 당성을 오른다 새소리 바람소리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햇살 가득하다 씀바귀꽃 노랗게 피었다 한 잎 따서 입에 넣어 본다 쓰다 조금 더 오르니 산딸기 붉게 익었다 한 알 따서 먹었다 달콤하다 당성을 오르며 쓴맛 단 맛 다 맛보았다 망해루터에 걸터앉아 서쪽 바다 바라본다 잘 익은 햇덩이 붉은 여운 남기며 몸 담그고 있다 윤슬 속 아른거리는 일체유심조 황홀하다 정겸 시인 2003년 ‘시사사’ 등단 경기시인상 수상 시집 ‘푸른 경전’, ‘공무원’, ‘궁평항’, ‘악어의 눈’
이름 모른 누군가, 이목동에 옹달샘 만들고 황토 토담집 지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쉬어가는 쉼터 정자에 자리 깔고 누워 풀 내음 마시며 하늘을 본다 나무 위 다람쥐들 폴짝폴짝 오르내리고 나뭇가지에서 새들이 노래한다 저쪽 산모퉁이 수컷 꿩이 비단옷 입고 꿩꿩 목이 터지라고 짝 부르는데 봄엔 먹거리 나물. 여름엔 시원한 골짜기 물, 가을엔 오색단풍, 겨울에는 나뭇가지마다 백설 옷 옹달샘 부근은 사계절 마음의 휴식처다 최보이 시인•수필가 수필집 ‘끝까지 꽃을 피우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아침 햇살이 떠 오르면 수줍어 눈 감고 꿈을 키우는 분꽃 저녁 다섯시가 되면 배시시 웃으며 피어나는 시계꽃 만개된 분꽃 보며 마실 나온 아낙네들 저녁상 차린다고 집으로 돌아 가면 달빛 먹고 까만 씨앗 키우며 분신을 만들기 위해 밤을 불태우는 분꽃 진숙자 시인 ‘수원문학 신인상’ 당선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누나 시집 가던 날 뒤란의 석류 하나 따서 살며시 누나 봇짐 속에 넣어보냈네 누나가 석류 보고 우리 집 생각 잊지 말라고 나랑 뛰놀던 생각 잊지 말라고 가을이 올 때마다 우리 집 생각 잊지 말라고 나랑 같이 뛰놀던 생각 잊지 말라고. 윤수천 시인 아동문학가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수상. 1976년 동시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하늘에 구름 걸어 은사 빛 반짝이며 군락을 이룬 새하얀 가슴으로 숲을 밝힌다 호젓한 산길에 외로운 등 하나 오가는 발걸음 지팡이 되고 뼛속까지 빚어내는 하얀 마음 천년을 살아도 그 모습 그대로 깃털처럼 하얀 몸매에 심신을 달래주는 갸륵한 가슴이여 산허리 돌아 숲길 걷다 보면 재충전 쉼을 얻는 평안의 숲, 자작자작 진묘한 반주에 꿩 한 마리 푸드득 날아간다. 허정예 시인 ‘문파문학’ 등단. PEN한국본부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수원문학아카데미‘시인마을’ 회장 2021년 경기시인상 수상 시집 ‘詩의 온도’
가을이 오면 그대와 함께 해 저문 강변 뚝 억새 풀 서걱이는 소리 듣고 싶습니다 가을이 오면 뭉게구름 물구나무서는 맑은 호숫가를 거닐고 싶습니다 가을이 오면 새초롬한 보름달과 그리움의 긴 그림자 동행하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가을이 오면 귀뚜라미 청량한 울음에 목젖까지 아픈 밤이고 싶습니다 가을이 오면 텅 빈 들판 홀로 선 허수 아버지 빈 가슴에 부는 갈바람이고 싶습니다 구자육 시인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회원 2022 수원문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축축한 동네다 민초들 소박하게 옹기 종기 모여 사는 잘난 사람도 못난 이도 없는 가난한 마을 한 해만 살고 떠나야 하는 아쉬운 운명을 안고 혼자일 때는 눈에 띄지도 않는 가냘픈 몸매 부드러운 바람 능숙한 지휘봉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흔드는 팔 따라서 분홍색 꽃 치마 일제히 갈아 입고 화사한 핑크 물결로 넘실넘실 넘쳐 흐른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내는 큰 목소리 섬뜩한 문구를 들고 마구 흐른다 사람은 모이면 폭탄이 될 때도 있다 숭고한 하얀 옷 던져 버리고 거리로 나온 성난 목소리 커다란 바위덩어리 되어 힘없고 아픈 사람들을 짓누른다 여뀌꽃처럼 모이면 더욱 아름다워질 수는 없을까 황영이 시인 ‘국보문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떠나가는 것은 때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 모두 두고 떠나가는 운명 앞에서 가슴에 얹은 슬픔은 남겨진 사람의 몫이다 빈 자리 허전해 익숙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옅어진다 우리는 다시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마음 속 한 곳에서 지표가 되어 주시며 어떻게 살아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근엄한 모습으로 지금도 지켜 보시는 나의 아버지 이성란 시인 수원문학 신인상 당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젊음이 있을 땐 당신 그늘 의지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당신이 나를 의지하는구려 늙으면 아프고 몸도 마비되어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밉기도 하고 불쌍해 가슴이 저립니다 육신의 변화가 온다는 것 젊었을 땐 몰랐는데 석양을 바라보는 당신과 나는 해바라기꽃 같아요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눈물은 억울한 것이 아니고 세월이 주는 선물 같습니다. 장경옥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집 ‘파꽃’ ‘구름 같은 세월’ 2021년 ‘시인마을 문학상’ 수상.
도리깨 매질에 구르는 백태 씨 톨 고집불통 건드리면 동글동글 튀는 너 불볕 타작에 나뒹굴며 가을을 주워 담네 땅거미 어둠 속으로 숨어들고 솔바람이 돌려가는 맷돌 소리 간수 물에 도란도란 내려앉는 별꽃 무늬들 찬 이슬 덮어가는 달빛도 환하게 물들이네 졸고 있는 국화 송이 우물가로 빠져들고 몽올몽올 피어오른 순두부 꽃 객지 나간 자식들 영상으로 불러내어 한 그릇씩 퍼담아 전송하는 어미 마음 조병하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