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들의 편지를 읽다 ‘삼현수간’

한 시대의 지성으로 이름을 날렸던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 이들이 나눈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세 선비가 주고받은 서찰을 담은 서간첩을 쉽게 풀어쓴 삼현수간:율곡 우계 구봉의 산촌 편지(한국고전번역원 刊)다. 율곡은 과거에서 9번이나 장원을 할 정도로 천재로 명성이 자자했고, 우계 역시 학문으로 당대에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구봉 역시 아버지의 죄업으로 세상에서 그 뜻을 펼칠 수 없는 불운아였음에도 학문이 대단해 양반가에서 자제들을 맡길 정도였다고. 이 세 선비는 서찰을 주고 받으며 우정을 키웠다. 특히 이들의 편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당대 현안, 학문전 논변 등 개인적인 것부터 사회적인 분야까지 그 주제가 다양해 혼란스러웠던 16세기 조선시대의 역사 기록을 보는 것과 같다. 서간첩인 삼현수간에만 남아있는 16편은 세 사람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2004년 보물로 지정됐다.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을 졸업하고 여주에서 동서양 고전 재해석에 빠져 있는 저자 장주식은 이번 책을 출간하기 위해 삼현수간을 뼈대로 세 사람의 문집을 뒤져 빠진 이야기를 채웠다. 편지로 안부를 묻고 근심을 나누며 엄정한 충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참된 사귐의 방법론과 가치를 알려준다. 또 편지글이라는 특성이 당초 유연한데다 주고 받은 서찰을 지금 이곳에서 나누는 대화로 구성해 정치와 처세 등 다소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세 지성이 조선시대에 나눈 대화임에도 지방분권 시대를 만들어가는 현대에 참고할 만한 글도 있다. 임금은 멀리 있지만 고을 수령은 가까이 있으니, 백성의 삶은 수령에게 매여 있습니다. 수령에게도 역시 임금은 멀고 관찰사는 가까이 있습니다. 관찰사가 수령들을 다스려 주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개혁을 하자면 수령들이 꺼리는 건 당연한데도, 수령들이 꺼린다고 자리를 내놓아서야 어디 힘 있는 관찰사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폭넓은 주제의 깊이 있는 글 뿐만 아니라 세 선비가 쓴 글씨 역시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저자는 논어의 발견과 제2회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한 그리운 매화향기, 제29회 한국어린이도서상을 받은 오줌에 잠긴 산 등을 펴냈다. 값 1만원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와다 하루키 著 ‘동북아시아 영토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한국에 영유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이 조선의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한다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 같은 도의(道義)가 없는 행동을 당장 그만둬라. 일본을 대표하는 석학이자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알려진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 교수의 충고다. 그는 신간 동북아시아 영토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사계절 刊)를 통해 일본이 주장하는 영토 문제의 모순을 파헤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 등 인접 국가와 갈등을 빚는 영토문제의 원인을 외교 문서와 고문서, 일본 외무성 발간 자료 등 각종 역사적 사료에 근거해 찾고 해법을 찾는다. 특히 일본이 북방 4도, 독도, 센카쿠=댜오위 제도에 대해 고유영토라는 주장의 위험성과 모순점을 끄집어낸다. 일본이 이야기하는 고유영토는 단 한번도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은 영토라는 의미로, 역사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또 일본이 고유영토를 계속 주장하는 것은 상대방과 대화로 문제를 풀기보다는 상대국을 인정하지 않고 대립하게 만드는,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값 1만6천800원.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수원 춘추8경 제작' 사업 1년여 째 답보

수원8경에 대해 역사왜곡 논란이 빚어지면서 수원시가 추진하는 수원 춘추8경 제작사업이 1년이 넘도록 답보상태에 빠지는 등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시는 이번 사업을 위해 지난해 3월 시민공모까지하고도 수원8경 제작에 반영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시민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20일 수원시에 따르면 1986년 기노철 화백이 그린 수원8경 사용이 저작권 문제로 논란이 되자 3억원의 예산을 들여 새로운 수원8경을 제작키로 했다.이를 위해 시는 지난해 1월27일 문화예술 및 역사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수원춘추8경 제작을 위한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용국(사)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장은 1927년 일본인 나이또오(內藤倫政)가 쓴 고적과 풍속의 수원8경 내용을 수원시사(1986년)가 그대로 전재했다며 수원8경이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선정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처럼 수원8경에 대해 역사왜곡 논란이 일자 시는 지난해 3월 기존 수원8경을 폐지키로 하고, 새로운 수원 8경 선정을 위한 시민 공모에 들어갔다. 이 과정을 통해 공모된 177곳 중 용연에 비치는 방화수류정, 수원화성 둘레길, 석양에 비친 서북공심돈 등 8곳이 심사를 거쳐 내부적으로 최종 결정됐다. 그러나 새롭게 결정된 수원8경 제작사업은 또다시 고착상태에 빠졌다. 시민공모작 선정 이후 한동민 수원박물관 학예팀장 등이 기존 수원8경이 일본인에 의해 선정된 게 아닌 우리 조상이 만들었다는 증거 자료로 고종 때 제작된 화성8경 시 병풍과 1912년 매일신보에 실린 수원8경가를 제시하며 기존 수원8경을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재 수원8경선정위원회는 우리 조상이 만든 사실이 분명해졌으니 기존 8경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구전된 내용을 기록한 자료는 인정할 수 없다. 새로운 수원8경을 정해야 한다 입장으로 대립하며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사업추진 주체인 시도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어 새로운 수원8경 화보제작은 물론 수원8경 자체를 지정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직장인 함모씨(33ㆍ매탄동ㆍ여)는 시민 공모가 수원8경 제작사업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수원8경에 관심을 두고 공모에 참여한 시민들은 많이 허탈해 할 것이라며 시가 정확하게 알아보지 않고 섣부르게 사업을 추진해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기존 수원8경에 대한 입장을 두고 계속 다수와 소수 의견으로 나뉘어 사실상 보류 상태다. 시간을 두고 이들의 의견을 좀 더 수렴하도록 하겠다며 시민 공모작에 대해서는 관광20경 등 다른 방법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임신행 장편동화 ‘우포늪 그 아이들’

동화작가 임신행은 최근 어린이와 우포늪과의 관계를 그린 자연 생태 장편 동화 우포늪 그 아이들을 출간했다. 월간 창조문예에 14회에 걸쳐 연재했던 작품이다. 임신행은 현재 우포늪 홍보대사로 오월신인예술상 수석상, 계몽아동문학상, 제1회 황금도깨비상 대상, 방정환아동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동화작가다. 저자는 70년대 우포늪 주변 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맺은 인연을 계기로 장편동화 갈대숲속 작은 집의 비밀(3권), 산문시집 우포늪에서 보내는 편지, 수필집 이제 우리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을 펴냈었다. 그의 문학세계의 기반이 되는 우포늪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자연늪이다. 습지보전국제협약(람사협약)에 등록된 세계적인 습지로 약 1천여종의 생명체가 어울려 살고 있다. 임 작가는 이 같은 우포늪을 지구촌에 단 곳 있는자연 학교라며 어른과 어린이가 모두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동화책은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우포늪의 가치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저술한 셈이다. 자연을 통해 상생과 발전을 배우는 어린이들의 따뜻한 이야기에 우포늪에 살고 있는 동식물과 현재 풍경을 보여주는 사진을 수록했다. 값 1만3천원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2년 만의 신작 ‘소금’ 4월 출간 예정

변덕이 심한 사람을 가리켜 변덕이 죽 끓듯 하다고 말한다. 작가 박범신(67)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별명이 좌질투 우변덕일까. 그는 편안함을 싫어한다. 그래서 환경을 극단적으로 바꿔버리는 나쁜 습관이 있다. 24년 동안 산 서울 평창동 집을 떠나 2011년 고향 논산시 가야곡면 외딴집으로 내려올 때도 그랬다. 아내가 해주는 뜨끈뜨끈한 밥을 마다하고 짐을 꾸렸다. 67세의 노(老) 작가는 안주하고 편안해지면 늙는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5일은 논산에서, 2일은 서울에서 지내는 5촌2도의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2012년 작가는 무척 바쁜 한해를 보냈다. 다 은교 때문. 70세 노인 이적요와 17세 소녀 은교를 주인공으로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장편소설 은교(문학동네, 2010)가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13년 봄날, 작가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작가는 2년만의 신작 소금 출간을 앞두고 막바지 퇴고 작업이 한창이다. 소금은 오는 4월 출간을 앞두고 현재 EBS FM(104.5Mhz) EBS 라디오연재소설에서 방송 중이다. 소금은 현대사회의 경제 논리에 의해 상처받은 한 아버지의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순수로의 회귀, 인간성의 회복 등을 다룬 작품이다. 그의 소설에는 사우디에 가서 돈 버는 아버지, 월남전에 파병 가서 다리가 잘린 아버지, 부정부패한 아버지 등 다양한 우리의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시대를 닮은 아버지상을 그리면서 치열했던 지난 50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지들은 절대 가부장적인 시대의 권력자였다. 50대 이상의 아버지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야수처럼 일하면서 5천년 가난의 사슬을 끊은 세대다. 그런 아버지들이 90년대 지나면서 권력은 해체되고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매우 쓸쓸하게 늙어가고 있다. 솔직히 소금은 20~30대 젊은이들이 읽기를 바라고 작정하고 쓴 소설이다. 늙어가는 아버지를 우리 마음의 중심으로 모셔 와야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작가는 요즘 아프다고 엄살 피는 청춘들에게 따끔하게 충고했다. 아프니깐 청춘이 아니고 이겨내야 청춘이다라는 것. 우리 아버지들은 절대빈곤의 시대에 굶주린 청춘을 보냈다. 청춘의 특권은 아프기 때문이 아니다.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청춘이다. 가혹하게 이겨내는 것이 청춘인데 요즘 청춘들은 너무 빨리 안주하려 하고 편안한 것을 찾는다. 스무 살이라도 현실이 주는 안락함에 기대 산다면 그는 이미 늙은인데 말이다. 작가는 소금을 통해 권력은 해체되고 권리와 의무만 남은 늙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고 우리 사회가 압축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긴 그늘을 젊은이들이 같이 짊어지고 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이번주 신간]애니멀 티칭 外

■애니멀 티칭(돈 브런 著/머스트비 刊) 잠들어 있던 영혼을 일깨우는 환상적인 일러스트와 동물 선생님이 전하는 인생의 지헤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있다. 저자 돈 브런은 메뚜기, 박쥐, 바다표범 등 60종의 동물을 특별한 스승으로 초대하고 인생의 12가지 주제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전한다. 동물 선생님의 격려와 제안, 보호의 가르침은 독자를 더 의식적이고 온전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값 1만3천원 ■당신 안의 장수유전자를 단련하라(쓰보타 가즈오 著/전나무숲 刊) 노화를 늦추고 질병을 예방하는 장수유전자 시르투인 활성법을 담았다. 저자는 먹는 횟수를 제한하고 먹는 양을 무조건 줄이기보다는 인체에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적절히 섭취하는 저열량식과 운동이 장수유전자 시르투인의 발현을 돕는다고 이야기한다. 또 다양한 노화 관련 가설들을 비롯하여 장수유전자의 발견과 연구에 얽힌 일화들을 들려준다. 노화 현상이 무엇이고, 항노화 의학의 본질은 무엇인지, 최근의 항노화 연구의 경향은 어떠한지 정리한다. 값 1만3천원 ■머니 콘서트(한동철 著/일리 刊) 돈은 어떤 속성을 지녔나? 돈을 벌고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물음에 국내 최고의 부자전문가인 한동철 서울여대 교수가 답한 책이다. 독창적인 이론적 틀을 통해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분석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부자가 되고픈 사람들이 읽고 마음가짐을 다지기에 좋다. 마음이 제대로 서면 재테크의 성공확률도 그만큼 높아지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값 1만5천원 <이번주 베스트셀러> 19일 기준 교보문고 제공 1. 꾸뻬씨의 행복여행/프랑수아 를로르/오래된미래 2.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스님/쌤앤파커스 3. 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아포리아 4. 김미경의 드림 온/김미경/쌤앤파커스 5.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현대문학 6. 그래도 사랑하라/전대식/공감 7. 해커스 토익 보카/David Cho/해커스어학연구소 8.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샘 혼/갈매나무 9. 습관의 힘/찰스 두히그/갤리온 10. 갈림길/윌리엄 폴 영/세계사

최재천 著 ‘통섭적 인생의 권유’

별난 남자 최재천 교수가 책을 냈다. 최 교수는 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이면서 사회참여형 학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이 시대의 특별한 지식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1999년 동강댐 건설을 막기 위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호소글을 보내 댐 건설 전면 백지화를 이끌어냈다. 헌법재판소에서 자연계에 호주제가 있다면 암컷이라는 전문가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호주제 폐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남성 최초로 2004년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 교수의 신간 통섭적 인생의 권유(명진출판 刊)는 별난 남자의 특별함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미국에서의 교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지난 15년간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변화를 촉발시킨 말과 생각 등을 정리해 담았다. 인간의 이해, 21세기 교육, 여성 시대 등 다채로운 12개 어젠다로 분류해 제시하고 있다. 최 교수가 앞서 출간한 과학자의 서재와 통섭의 식탁의 완결판인 셈이다. 특히 그는 국내에 통섭이라는 개념을 유통시킨 주인공인만큼 다양한 주장을 통해 통섭적 인생을 권유하고 있다. 여기서 통섭적 인생은 자연의 일부가 돼 더불어 사는 삶, 사물을 달리 볼 줄 아는 능력, 깨어 있는 마음으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통합적 인생을 살기 위해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엄청난 다작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했던 화가 피카소와 같은 태도를 권한다. 값 1만3천원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전방하의 냠냠독서]독서 통해 세상의 문제 고민해보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2011년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도가니의 원작자인 공지영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2005년 발표됐다. 그런데 뜻밖에도 책 주인공은 사형수와 수녀님, 그리고 가족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던 15세에 정체된 설흔살이 넘은 노처녀 얘기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나(유정)의 세 번째 자살 시도가 미수로 끝나자 고모가 날 방문한다. 그리고 자신과 몇 달간 동행을 할 것을 간곡하게 요청한다. 그리고 사형수인 정윤수를 만나기 시작한다. 그 만남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유정이 열 다섯의 나이에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그것도 매우 가까운 친척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맨 처음 털어 놓은 것이 사형수 정윤수라는 사실이다. 엄마께 얘기를 꺼냈을 때 무시해 버렸던 그 기억. 어쩌면 이 책은 딸과 엄마의 대화가 메마른 오늘날 사회를 대변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빠도 몰랐던 깊은 내면을 아주 어렵게 꺼낸 그런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진심어린 얘기를 들어 줄 수 있는 것, 바로 그런 것이 가족인데 오늘날의 가족은 과연 서로 소통하며 살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로 읽혀졌다. 또한 자의나 자연사가 아닌 타의에 의한 사형의 공포를 안다면 이 땅에 기초수급을 해결하지 못하는 생계형 범죄에 대한 국가적인 책임을 우리는 외면해서는 안된다. 소설은 타인의 감성을 어루만져 새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슬픔을 공감케 하거나, 내가 느끼지 못했던 시대의 아픔을 보여준다. 그 시대의 아픔은 당사자들에게는 고통이지만 현실에 힘든 일을 겪는 우리에겐 위로가 되기도 한다. 공지영 작가의 특징은 극한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를 통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신 지금 힘들어, 이 이야길 봐. 더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아주 많아! 조금 견디다 보면 좋은 시간이 올 거야. 밝은 마음이 찾아 와. 암 오지, 오지 말고. 문의(031)257-5067 전방하 /동화작가독서특훈하나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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