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고려말 공민왕의 ‘애절한 연가’

고려의 여걸(女傑)을 뽑으라면 고려말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대장공주 인덕왕후일 것이다. 원나라 세조의 딸로 태어나 1351년 원나라에 입조한 공민왕에게 시집와 그해 10월 공민왕이 왕위에 오르자 12월 함께 개경으로 온 노국공주. 공민왕의 사랑을 받았고 난산끝에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원나라 공주. 노국공주의 죽음은 공민왕에게 크나큰 슬픔을 안겼고 이후 총명하고 의젓했던 공민왕은 방황하다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인천시립극단이 봄을 여는 정기공연으로 오는 11일부터 20일까지 공민왕이 먼저 떠나버린 왕비에게 바치는 애절한 연가 ‘불멸의 처(이원경 작·이종훈 연출)’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무대에 올린다. 극작가 이원경의 원작을 이종훈 시립극단 예술감독이 연출한다. 얼개는 복잡한 시대상황을 설명하기 보다는 간단하게 풀어간다. 고려 31대 왕위에 오른 공민왕은 왕비 노국공주가 난산 끝에 숨을 거두자 비통함에 빠지고, 공주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에 정사를 살피지 않는다. 노국공주를 위한 영전을 새로 짓고 신돈을 불러 불공과 치성에만 전념한다. 후궁인 익비와 재상들이 후사를 걱정하나 젊은 동자를 익비 침실로 보내며 절개를 지키려 하고 신돈은 왕비가 환생했다며 왕의 눈과 귀를 현혹한다. 자괴감에 빠져 태후와 재상들의 충언을 따르지 않다 결국 환관 최만생의 칼에 최후를 맞은 공명왕은 노국공주 영전 가까이 가려고 몸부림치다 그의 영정 앞에서 숨을 거두고…. ‘불멸의 처’는 여느 역사극처럼 고려말 복잡한 정치상황에 무게를 두고 있지는 않는다. 고려말 시대배경을 바탕으로 시공을 초월해 가장 보편적인 주제인 ‘사랑’을 이야기 한다. 영원히 내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님, 사랑 때문에 국사를 소홀히 하는 왕이기 보다는 왕위를 노리는 세력들의 위협 속에서, 심지어 심복의 칼에 의해 최후를 맞는 상황에서도 그가 간직하려 했던 사랑의 원형을 애잔하게 그릴 뿐이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와의 사랑은 애잔한 아름다움으로 그려지고, 범패의식과 바라, 승무 등이 절제된 화려함을 보여준다. 특히 노국공주의 심정을 무용으로 표현해 대사 형식을 벗어나 행위만으로 무대와 관객이 숨죽이며 소통하는 백미를 선사한다. 차광영(공민왕), 정순미(노국공주), 임흥식(신돈), 송정화(익비), 정남철(최만생) 등이 주요 배역으로 등장한다. 평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오후 4시와 7시30분, 일요일 오후 4시. 일반 1만5천원, 청소년 1만원. 문의(032)420-2790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공연>객원지휘 에발트 & 바이올린 권혁주

가녀린 음성으로 봄을 부르는 바이올린 소리와 어우러진 교향악단의 공연이 찾아왔다. 오는 8일 저녁 7시30분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수원시립교향악단은 객원지휘자 크리스티안 에발트 한국음악예술학교 교수와 권혁주 바이올리니스트 협연으로 제182회 정기연주회를 연다. 레퍼토리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작품 35와 브람스 교향곡 1 다단조 작품 68. 크리스티안 에발트 지휘자는 현재 중국 심천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독일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학과장을 역임하고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 바바리안 라디오 오케스트라, 서독일 라디오 오케스트라, 페테스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을 객원 지휘했다. 권혁주 바이올리니스트는 바이올린의 거장 슐로모 민츠, 이다 헨델, 빅토르 단첸코, 김남윤 등에게 사사받으면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06년 제2회 금호음악인상을 수상했고 지난 1998년부터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 악기를 지원받고 있으며 지난 1999년부터 현재까지 해외유학 음악인 장학금을 받고 있다. R석 2만원, S석 1만원, A석 5천원. 문의(031)228-2814 /김효희기자 hhkim@kgib.co.kr

‘사계’ 연주의 대명사

“비발디는 사계를 작곡했고 이무지치는 사계를 알렸습니다.” 비발디 연주의 대표주자 이무지치 실내악단이 다음달 3일 오후 7시30분 안양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90분 동안 정통 클래식의 진수를 펼친다. 이번 공연은 안양문예회관(관장 이원철)이 마련한 ‘2008 시즌공연’ 중 하나. 지난 1952년 창단한 이래 전세계 클래식계를 대표하는 이무지치의 생생한 원음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이번에 내한한 이무지치는 이탈리아어로 ‘음악가’를 의미한다. 산타체칠리아 음악원 출신 12명의 촉망받는 멤버들로 구성된 이무지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아름답고 경쾌한 연주를 선보였다. 이무지치는 지휘자 없이 펠릭스 아요를 리더(콘서트마스터)로 낭만성에 치우쳤던 바로크 음악을 재정립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1980년대부터는 바로크 음악은 물론 고전과 낭만, 현대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구사했고, 단원을 교체하며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연주에는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13번 G장조 KV525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를 비롯, 롯시니의 ‘현악 사중주 1번 G장조’, 파가니니의 베네치아의 축제 op.10 ‘바이올린과 현을 위한 주제와 변주’를 연주한다. 안토니오 안셀미가 바이올린 솔로로 참여한다. 마지막 대미는 이무지치의 특허인 비발디 작품으로 장식한다. 안토니오 살바토레가 바이올린 솔로로 참여한 가운데 우리 귀에 익숙한 ‘사계’ 전 악장을 들려준다. R석 4만원, S석 3만원, A석 2만원. 문의 (031)389-5200 /이형복기자 bok@kgib.co.kr

금난새-피아니스트 강충모의 만남

싱그러운 초록이 충만한 봄, 언 땅을 녹이고 새싹이 움트는 것처럼 역동적이면서도 에너지가 가득 넘치는 연주와 지저귀는 새소리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할 수 있는 연주회….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경기필)의 마에스트로 금난새와 국내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손꼽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충모 교수가 선사하는 환상의 하모니가 28일 관객들을 찾아간다. 경기필은 오는 28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새봄을 맞아 ‘봄의 향기’를 타이틀로 제93회 정기연주회를 연다. 연주곡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서곡과 ‘피아노협주곡 9번 내림마단조 K.271’,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영웅’. 차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도 능수능란함을 두루 지닌 강충모 교수가 협연자로 나서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클래식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금난새 예술감독이 곡마다 해설을 곁들여 보다 친숙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피아니스트 강충모는 지난 5년 동안 고행 끝에 국내에선 유일하게,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드문 바흐 전곡시리즈를 통해 ‘구도자의 모습’으로 한국 피아노 연주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한국종합예술학교 개교와 동시에 교수로 초빙돼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특히 이번 금난새 경기필 지휘자와 강충모 교수의 만남은 국내 최고의 지휘자와 피아니스트의 만남이라는 의미에서 주목받고 있다. 1만~5만원. 문의(031)230-3246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인천시향, 도널드 슐라이커 초청연주

섬세하면서도 정교한, 화려한 선율의 봄의 소리와 함께하는 음악회…. 최근 악장을 새로 영입하고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 재능 있는 인재들을 충원하고 국제적인 교향악단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인천시립 교향악단이 다음달 3일 오후 7시30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미국 쿼드시티심포니 상임지휘자 도널드 슐라이커를 초청, 교향악의 진수를 선보이는 무대를 준비했다. 인천과 서울에서 가졌던 베를린필 수석 연주자들과 함께 한 특별연주회 등 국내 클래식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인천시향의 이번 콘서트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미국 모든 주의 오케스트라와 페스티벌과 모든 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실력자인 도널드 슐라이커가 있다. 그가 지휘수업을 하고 있는 일리노이대학에는 전 세계의 재능 있는 젊은 지휘자들이 모이고 있으며 그에게 사사받은 많은 학생들이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와 리치몬드 필하모닉, 시애틀 심포니 등 명성이 높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롯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으로 이번 무대를 연다. 이어 ‘천사의 음성이 들린다’고 슈베르트가 표현했을 만큼 아름다운 선율과 낭만적인 색채감으로 인간의 슬픔을 표현한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40번 사단조 K.550’을 들려준다. 인터미션 후 마지막 곡으로 곡의 첫머리에 ‘레닌의 회상에 바친다’라는 글귀로도 유명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2번 ‘1917년’ 라단조 작품 112을 연주한다. R석 1만원, S석 7천원, A석 5천원. 문의(032)438-7772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공연리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성남 공연

웅장하면서도 독특한 무대는 관객들을 압도했고, 배우들의 뮤지컬 넘버는 아직도 관객들의 귓가를 맴돌며 쟁쟁하게 울린다. 또 배우들의 파워 넘치는 역동적인 몸짓과 특수 효과는 공연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지난 15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는 거대한 벽을 배경으로 은유시인 그랭구아르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서곡에 이어 ‘대성당들의 시대(Le Temps des Cathedrales)’를 부르며 극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공연은 그동안 익숙하게 접해온 웨스트앤드나 브로드웨이의 작품들과 다른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무대미술이 빛나는 프랑스식 뮤지컬과 접하는 좋은 기회였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들이 다이내믹한 무대 전환과 화려한 볼거리로 감미로운 넘버들 위주로 꾸며져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반면 프랑스식 뮤지컬은 상징적인 무대와 조명으로 감성을 자극하며 대사없이 배우들의 뮤지컬 넘버로만 이뤄져 색다른 경험을 안겨주었다. 이 작품은 기형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한 여인에게 진실한 사랑을 호소하는 콰지모도, 신의 사제지만 에스메랄다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뺏겨버린 프롤로, 그리고 젊고 유능한 근위 대장 페뷔스. 이들의 욕망과 사랑을 노래한 세계적 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 1998년 프랑스 파리 초연된 이후 전세계 1천만명 이상이 관람했고 지난 2005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이날 공연은 역동적인 음악과 예술적이면서도 화려한 무대미술, 현대무용과 브레이크 댄스, 아크로바트와 비보이까지 화려한 안무가 더해져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각인시켰다. 특히 샹송풍의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들은 우리 정서와도 잘 어울려 좋았다. 사실 처음 도입부분에서 극의 이미지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연극적인 요소에 현대무용을 접목시켰고, 강렬한 노래로 서두를 장식해 웅장한 맛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우리에게 전달하려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노래는 그렇다 치더라도 무용수들의 움직임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줄거리도 배우들의 노래로만 전개됐기에 특히 그러했다. 극에 대한 감동보다는 혼란스러움과 고급문화를 이해 못하는 저급 관객으로 치부될까 걱정까지 들었다. 1부가 끝나고 휴게실에서 관객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류도 그러했으니까. 1부에서의 어색함이 2부로 이어지면서 점차 해소된 것은 다행이었다. 앤딩부분으로 갈수록 극의 전체 그림이 머리 속에 그려졌고, 앤딩부분에서 교수형을 당한 에스메랄다를 끌어안고 부르는 콰지모도의 노래에서 극의 완성을 느낄 수 있었다.(유럽의 극단들이 원작을 해체하는 수준이 고도의 이해력을 필요로 하지만 말이다) 우선 배우들의 가창력 등 노래 실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여기에다 코러스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까지 더해져 박진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앤딩에서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이어질 때 그랭구아르가 부르는 ‘대성당들의 시대’를 앵콜곡으로 다시 선사한 것은 관객들에게 작품의 의미를 다시한번 각인시키는 배려까지 있어 좋았다. 하지만 단점이 보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음향이 간혹 웅웅거리기도 했고, 배우들의 노래도 관객들의 고막을 찌를듯한 고음처리 등 약간 거슬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요즘 비보이가 현대무용에서 추세이기는 하지만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고, 생뚱맞다는 것과 의미없는 눈요기감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치매 어르신-작가들 한마음 나눈다

“어르신들은 햄버거를 싫어할 것이다.” “그들은 직접 그림을 그리기 싫어할 것이다.” 어르신들에게 흔히 갖는 편견을 버려라. 비록 나이가 많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채 세상과 소통하기 원한다. 수원시 세류동에 위치한 치매미술치료협회 부설 영실버아트센터는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이다. 영실버아트센터는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치유프로그램 운영과 작품 전시를 병행하고 있다. 여기다 실버페이스페인팅이나 실버메이크업, 실버웰빙요리, 그림그리기 등이 진행된다. 이유는 단 한가지. 어르신들과 함께 호흡하며 문화적 혜택을 나누기 위해서다. 김은경 소장은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젊을 때는 자신도 나이든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며 “그림을 통한 어르신들과의 만남은 우리 사회를 좀 더 밝게 만든다”고 말했다. 영실버아트센터는 올해 대대적인 전시를 마련했다. 기성 작가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하는 ‘어울림 초대전’. 먼저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세류의 봄향기 초대전’은 20~30대 작가들과 영실버여류작가회에서 활동중인 60~90대 어르신들이 함께 한다. 이어 ‘가우디와 화성의 만남전’(다음달 21~28일)은 스페인의 세계적 건축가 가우디의 자연친화적인 철학과 수원 화성을 접목시켰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아트타일’. 아트타일은 서양의 타일에다 어르신들의 작품을 그대로 복사한 장르다. ‘스승과 제자의 하모니전’(5월19~26일)은 노재순·박충호·장순업·조국현·강양순·권숙자 전업작가들과 건강미술요법사, 경기여류화가회 등이 참여한다. 치매미술치료협회는 20여년 동안 노인복지시설과 경로당 등 노인밀집지역에서 치매(예방) 미술치료를 펼쳤고 지난 2000년부터는 ‘어른마음 아이마음전’을 열고 있다. 지난해 어르신들과 공동으로 세류2동사무소 외벽에 대형 타일작품을 설치하기도 했다. 문의(031)236-1533 /이형복기자 bok@kgib.co.kr

<공연리뷰> 뮤지컬 ‘그리스’

“활기 넘치고 즐거움을 선사한 폭발적인 뮤지컬이었지만 어딘지 부족함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지난 25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에서 막이 오른 뮤지컬 ‘그리스’. 이날을 시작으로 다음달 6일까지 이어질 이 공연은 청춘 남녀 관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이성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벤트까지 마련돼 주목을 받았다. 1972년 초연된 이후 서른여설 살이 된 뮤지컬 그리스가 경기도에 상륙해 관객들과의 교감을 이뤘다. 이날 공연은 40대에겐 향수가 느껴지는 제임스 딘, 잉그리드 버그먼 등을 무대장치로 활용해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흥겨운 음악과 노래로 무대를 들썩이게 했다. 하지만 투어의 첫 날 공연이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서울 공연에서 볼 때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도문화의전당이 새롭게 시도한 이번 이벤트에 비해 사실 공연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었다. 국내에서만 공연된 지 5년이 지났고, 세계적으로 따지자면 이미 서른여섯 살이나 먹은 뮤지컬 ‘그리스’가 촌스럽거나 너무 오래 되지 않았느냐는 느낌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 이처럼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까닭은 이날 공연이 그동안 이 작품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뒤엎었기 때문이다. 대사 하나까지 2008년식 뮤지컬 ‘그리스’로 거듭 나 있었다. 빠른 스토리 전개 속에 현재 대한민국 10대들이 사용하는 유행어와 은어, 비속어 등까지 생생한 어투들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대사, 동작, 배우들 혼잣말 등도 실제 10대들의 용어를 사용했고 심지어는 댄스파티에서 현재 유행하고 있는 그룹 쥬얼리의 ET춤까지 볼 수 있었다. 다들 TV를 열심히 모니터한 모양이다. 볼거리는 또 있었다. 뮤지컬 ‘그리스’를 장수 레퍼토리로 이끌어 온 이유, 즉 노래였다. 노래를 즐기면서 듣기는 처음인 것 같다. “Tell me more~” 어디서 많이 들은 노래들이 하나 둘씩 튀어나왔다. 제대로 노래를 번역하지 못해 원곡의 느낌이 손상된 경우에 비해 배우의 목소리까지 원곡과 비슷해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노래말도 꼭 필요한 부분만 한국어로 번역해 귀에 익숙한 선율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노래를 먼저 다른 매체를 통해 익숙하게 듣고 뮤지컬을 보니 “이 노래가 여기서 나왔구나” 싶어 뭔가를 알아낸 듯 뿌듯했다. 귀에 익숙한 곡들을 한 곡씩 들으면서 정성 들여 만들어진 공연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귀에 거슬리는 부분도 있었다. 노래가 흥겨운 뮤지컬인만큼 음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쩌렁쩌렁 울리는 마이크 소리가 흥겨운 분위기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 가끔 너무 심하게 울려 배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특히 터프한 여학생 리지 역을 맡은 홍미옥의 경우 목소리 특성상 고음인 것은 인정하겠지만 너무 크게 울려 귀가 아플 정도였다. 특히 주연배우의 경우 극의 감동을 클라이막스까지 이끌어 가는 노래실력이 요구되나 그러기에는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나 지적하고 싶다. 또 뮤지컬 전체 분위기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다 보니 대사에 은어나 비속어, 성적인 표현 등도 자주 등장해 어린이들과 함께 보는 가족극으로는 부적합했다. 심지어 남자 배우가 무대 한가운데 서서 바지를 내리고 진짜 엉덩이를 보여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같은 작은 부족함(?)에도 모처럼 경기도에서 본고장의 뮤지컬을 접할 수 있어 좋은 하루였다. 공연 마지막 배우들이 인사하며 부르는 휘날레 부분에서는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함께 노래하는 분위기를 이끌어 성공적이었다. 다음달까지 계속될 이번 공연이 도민들에게 재미와 함께 깊은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공연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당부하고 싶다. /김효희기자 hhkim@kgib.co.kr

압구정엔 365일 오페라가 있다

오페라 하면 으레 큰 무대에 화려한 의상을 입은 베테랑 배우들, 웅장한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멋진 의상들, 화려한 무대미술은 없어도 조명과 좋은 배우들이 있으면 그만인 작지만 큰 오페라 무대가 있다면, 그것도 단 몇차례의 공연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공연하는 오페라 무대가 있다면. 이같은 실험적인 공연이 서울 압구정동의 작은 무대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8시만 되면 펼쳐지고 있다. ㈜서울종합예술 SA오페라단(단장 이영조 국립한국예술 영재교육원장)이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코믹 멜로 오페라로 탈바꿈시킨 ‘Hello, Mr. 둘까마라(예술감독 박원돈)’. 코믹 멜로 오페라 ‘Hello, Mr. 둘까마라’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현대판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극중 사이비 약장수 둘까마라의 이름을 따 붙였다. 지난해 12월 27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오후 8시만 되면 압구정동 예(藝)홀에선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공연기간도 1년간 장기공연으로 기획됐다. 시대적 배경도 18세기 이탈리아가 아니라 관객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서울 압구정동으로 무대를 옮겼고, 남녀 주인공도 주인과 카페 종업원으로, 대사도 현실과 일치될 수 있도록 이탈리아 원어가 아닌 우리말로 번안해 만들었다. 또한 3시간에 가까운 공연시간을 1시간 정도로 극 의미를 전달하는데 불필요한 요소들은 대폭 축소하고 주옥같은 아리아들을 배치함으로써 관객들이 느낄 지루함을 상당 부분 없앴다. 소극장 무대에 올리는 공연인만큼 배우들의 섬세한 움직임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을 준다. 극중 주인공인 네모리노가 객석 사이에 마련된 카페 계단에서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 같은 명곡들은 운치를 더해주며, 배우들도 객석 옆과 뒤쪽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등 공연장 전체가 무대로 탈바꿈한다.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물론 그들의 표정과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어 마치 자신이 오페라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할 정도이며 극중에 판토마임은 물론 깜작 마술공연도 보여줘 더욱 현장감 있는 공연이 되고 있다. 여기에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사랑의 묘약(박카스이지만)’을 팔고 그중 3명을 골라 와인과 식사권을 증정하는 깜짝 이벤트 재미를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특히 이 공연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오페라 공연들은 대형 공연이면서도 최대 7~8차례 공연이 전부이지만 1년간 장기공연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오페라라는 장르를 대중화 해 더 많은 관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고급음악과 고급공연을 보급한다는 취지에서 제작자 함종희 서울종합예술 대표의 의중이 적극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다른 공연이 하지 못하는 원어를 한국어로 완벽히 소화한 공연이라는 점이다. 극중 욕(?)도 자연스레 나오고 비아냥 거리는 말, 속어들도 심심찮게 나오는등 우리말을 맛깔나게 소화해냈고 우리말로 하면서도 자막처리를 해 테너, 소프라노, 바리톤 등 배우들의 목소리에 묻혀버리기 십상인 극중 대사의 흐름을 짚어내는 것까지 관객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엿보인다./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겸재 정선, 현대 산수화 나들이

고양 아람미술관은 올봄 겸재 정선에서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풍경 속에서 찾은 멋을 보여 줄 ‘오늘로 걸어나온 겸재전’을 다음달 4일부터 6월15일까지 연다. 조선 후기 산수화와 근·현대 회화 및 설치 등 80여점이 등장한다. 참여작가는 1부 겸재와 진경산수에서 겸재 정선와 더불어 조선후기 진경산수화가들이 참여하고 2부 진경에서 풍경으로 변관식·이상범·오지호·이응로·김서봉·박고석·이재극·홍병학·윤애근, 3부 오늘로 걸어나온 겸재는 김억·김호득·박병춘·원성원·이정렬·이호신·진현미 등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서 시작해 근·현대를 거치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아온 풍경화가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한국 산수화는 물론 시각예술 전반에 걸쳐 우리 미술이 주체적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한 위대한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작품세계와 당대 진경산수화를 재조명하고 그 시사점을 반향한 근대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연결해 우리 미술의 우수한 정신성을 되볼아 볼 수 있다, 아람어린이미술관은 다음달초 ‘풍경속으로 풍덩’도 준비한다. ‘풍경속으로 풍덩’은 산수화를 주제로 한 어린이 체험전으로 어린이들은 본 전시를 통해 겸재에서 시작한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전통을 이해할 수 있다. 수묵화 기법과 재료들도 체험하고 현대의 젊은 한국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상상력을 발휘하며 즐겁게 그들만의 작품을 완성한다. ‘풍경속으로 풍덩’은 4개의 방으로 구성된 워크숍 형태의 체험 프로그램으로 회당 15명의 어린이들이 미술관 선생님과 함께 1시간 동안 체험과 함께 작품들을 감상한다. 한국 산수화는 물론 시각예술 전반에 걸쳐 우리 미술이 주체적으로 나아가야할 지향점을 제시한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작품세계와 당대 진경산수화를 재조명하고 그 시사점을 반향한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연결해 한국 미술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의 진정한 풍경화를 완성한 겸재의 진경산수가 내포한 대중 친화성과 주체성은 현대의 작가들에게 풍토성과 자기표현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조선은 명나라의 멸망 이후 청과의 새로운 관계수립을 위한 사상과 가치관을 형성시키면서 명에 이어 성리학과 예학이 발달한 국가로 ‘조선중화사상’이란 문화적 자신감을 표출했다.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기류는 진경산수화를 탄생시켰고, 겸재는 그만의 독특한 화재(畵材), 화의(畵意), 화법(畵法) 등을 통해 이를 완성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번 전시는 올해 아람미술관 상반기 주제인 ‘풍경을 보다’의 첫번째 편으로 6~8월에는 피사로를 중심으로 한 서구유럽의 풍경화들도 선보인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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