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욕망, 사랑의 노래들 역동적 몸짓, 낭만이 ‘출렁’
웅장하면서도 독특한 무대는 관객들을 압도했고, 배우들의 뮤지컬 넘버는 아직도 관객들의 귓가를 맴돌며 쟁쟁하게 울린다. 또 배우들의 파워 넘치는 역동적인 몸짓과 특수 효과는 공연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지난 15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는 거대한 벽을 배경으로 은유시인 그랭구아르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서곡에 이어 ‘대성당들의 시대(Le Temps des Cathedrales)’를 부르며 극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공연은 그동안 익숙하게 접해온 웨스트앤드나 브로드웨이의 작품들과 다른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무대미술이 빛나는 프랑스식 뮤지컬과 접하는 좋은 기회였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들이 다이내믹한 무대 전환과 화려한 볼거리로 감미로운 넘버들 위주로 꾸며져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반면 프랑스식 뮤지컬은 상징적인 무대와 조명으로 감성을 자극하며 대사없이 배우들의 뮤지컬 넘버로만 이뤄져 색다른 경험을 안겨주었다.
이 작품은 기형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한 여인에게 진실한 사랑을 호소하는 콰지모도, 신의 사제지만 에스메랄다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뺏겨버린 프롤로, 그리고 젊고 유능한 근위 대장 페뷔스. 이들의 욕망과 사랑을 노래한 세계적 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 1998년 프랑스 파리 초연된 이후 전세계 1천만명 이상이 관람했고 지난 2005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이날 공연은 역동적인 음악과 예술적이면서도 화려한 무대미술, 현대무용과 브레이크 댄스, 아크로바트와 비보이까지 화려한 안무가 더해져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각인시켰다. 특히 샹송풍의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들은 우리 정서와도 잘 어울려 좋았다.
사실 처음 도입부분에서 극의 이미지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연극적인 요소에 현대무용을 접목시켰고, 강렬한 노래로 서두를 장식해 웅장한 맛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우리에게 전달하려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노래는 그렇다 치더라도 무용수들의 움직임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줄거리도 배우들의 노래로만 전개됐기에 특히 그러했다. 극에 대한 감동보다는 혼란스러움과 고급문화를 이해 못하는 저급 관객으로 치부될까 걱정까지 들었다. 1부가 끝나고 휴게실에서 관객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류도 그러했으니까.
1부에서의 어색함이 2부로 이어지면서 점차 해소된 것은 다행이었다. 앤딩부분으로 갈수록 극의 전체 그림이 머리 속에 그려졌고, 앤딩부분에서 교수형을 당한 에스메랄다를 끌어안고 부르는 콰지모도의 노래에서 극의 완성을 느낄 수 있었다.(유럽의 극단들이 원작을 해체하는 수준이 고도의 이해력을 필요로 하지만 말이다)
우선 배우들의 가창력 등 노래 실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여기에다 코러스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까지 더해져 박진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앤딩에서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이어질 때 그랭구아르가 부르는 ‘대성당들의 시대’를 앵콜곡으로 다시 선사한 것은 관객들에게 작품의 의미를 다시한번 각인시키는 배려까지 있어 좋았다.
하지만 단점이 보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음향이 간혹 웅웅거리기도 했고, 배우들의 노래도 관객들의 고막을 찌를듯한 고음처리 등 약간 거슬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요즘 비보이가 현대무용에서 추세이기는 하지만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고, 생뚱맞다는 것과 의미없는 눈요기감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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