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세계를 품다] 6. 이야기가 있는 남한산성 길

발 끝에 채이는 돌맹이도 역사요, 자연이며 문학이더라

걷기는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 불릴 정도로 인간에겐 큰 의미를 지닌 행동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발을 철학 스승으로 생각하고 걷기와 생각하기를 통해 커다른 철학적 업적을 남겼다.

철학자 칸트는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산책을 했다. 산책을 나서는 시간이 얼마나 규칙적이었던지 동네 주부들이 칸트 교수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프랑스 계몽기의 천재적 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는 “나는 걸어 다녀야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걷기를 멈추면 생각도 함께 중단된다. 내 정신은 반드시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고 말할 정도로 걷기애찬론가였다.

걷기로 점철된 10년 동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 학문’ 등의 대표작들을 집필한 철학자 니체는 “걸으면서 구상하는 사람은 얽매인 데가 없어 자유롭다. 그의 사유는 다른 책의 노예가 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사유에 의해 무거워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걷기는 세상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본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방식이며 생각하고 사색하는 훈련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순간이다. 걷다 보면 길이 열리고 생각이 트이며 마음도 새로워진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이 한창이다. 걷기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이끈 제주 올레길를 비롯해 지리산 둘레길과 강화도 올레길, 정선아리랑 옛길, 서울 성곽길 등 저마다의 특징을 지닌 도보여행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길’은 역사와 자연, 문학이 숨 쉬는 곳이다.

남한산성 길은 △제1코스-역사와 함께 소요하는 생명의 길 △제2코스-행궁과 함께하는 법도의 길 △제3코스-기억과 함께하는 반추의 길 △제4코스-성곽과 함께하는 의지의 길 △제5코스-산성을 따라가는 옹성 미학의 길 총 5개 코스가 있다.

남한산성 길에는 성곽과 행궁 외에도 수어장대, 연무관, 숭열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등 6개의 경기도 지정문화재가 있으며 망월사지와 개원사지 등 경기도 기념물도 2개가 있다.

그야말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남한산성의 단연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이 매력적이다. 400여 년의 역사를 오롯이 담겨 있는 성벽을 따라 걸으면 그게 바로 ‘힐링’이다.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길’은 역사와 자연, 문학이 숨 쉬는 곳이며, 단연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이 매력적이다.

 

산성종로~침괘정~영월정~수어장대… 보름달과 야경을 동시에

■ 제1코스-역사와 함께 소요하는 생명의 길

제1코스 ‘역사와 함께 소요하는 생명의 길’은 숲이 가진 생명력과 산성 곳곳에 전하는 역사를 배우고 느끼는 코스로 산성종로를 출발해 침괘정, 영월정을 거쳐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이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 피톤치드 가득한 산길을 걸으며 숲의 충만함과 곳곳에 숨어 있는 역사이야기를 만나는 길이며 생명이 함께 하는 길이다.

‘침괘정(枕戈亭)’은 산성 내 마을 동쪽 언덕 위에 있는 정각으로, 이서가 축성에 착수했을 때 수풀 속에서 이 건물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축조의 시기는 확실치 않다. 현재 건물은 조선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중수하고 ‘침과정(枕戈亭)’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침과정’을 ‘침괘정’이라 부르는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제1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수어장대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라도록 높은 곳에 지은 건축물이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장대로서, 남한산성에 세워졌던 5개의 장대 중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참고로 수어장대는 달맞이 명소로도 이름난 곳으로 산성 위로 고즈넉이 떠오르는 보름달과 한강을 따라 펼쳐지는 화려한 야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행궁~숭렬전~영월정~산성종로… 종묘사직 등 유적지 밀집

■ 제2코스-행궁과 함께하는 법도의 길

제2코스는 제16대 인조 임금의 고뇌와 숙종의 자신감, 영조 정조의 문화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행궁이야기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한 구절을 되새기며 걷는 길이자, 백제의 시조 온조대왕의 꿈이 함께하는 길이다. 남한행궁을 둘러보고 숭렬전을 올랐다가 영월정을 지나 산성종로로 돌아오는 길이다.

특히, 남한산성은 임금이 도성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이나 피난처가 아니었다. 국가적 위기가 발생하면 언제든 임시수도로 탈바꿈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왕이 집무를 보고 생활하는 외행전과 내행전까지는 화성행궁 등 여타 행궁과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행궁에는 다른 어떠한 행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의 신하가 항상 언급하는 ‘종묘사직’. 남한산성에는 조선의 임금들이 가장 중요시 했던 종묘사직이 있다. 행궁은 일제강점기에 허물어졌다가 10년간의 작업 끝에 지난 2012년 복원됐다.

소설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걸으며 더 특별한 코스다. 또 제2코스에선 백제 시조 온조왕과 이서의 위패를 모신 사당, 숭렬전도 꼭 챙겨서 둘러보자.

병자년 전쟁의 기억을 반추하며… 새로운 미래를 걷는 길

■제3코스-기억과 함께하는 반추의 길

제3코스는 병자년(1636) 전쟁의 기억을 반추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길이다. 기억과 함께하는 반추의 길에는 비상시를 대비해 군사훈련과 무술연마를 하던 연무관, 조선 선비의 절개를 돌아보게 하는 현절사, 터만 남은 동쪽 지휘소 동장대지, 성안을 꿰뚫을 수 있는 곳 벌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특히 현절사는 불자가 아니어도 꼭 둘러봐야 하는 곳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심양으로 끌려가 처형당한 삼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 선생의 넋을 위로하고 의절을 널리 현양하기 위한 사우다.

 

낮게 쌓은 ‘여장’ 너머로 열리는 풍광… 산성의 아름다움 만끽

■제4코스-성곽과 함께하는 의지의 길

남한산성의 절반 거리를 성곽을 따라 걷게 되는 길로 산성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길이다. 성곽 둘레를 수놓는 여장과 울창한 나무들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남문을 시작으로 천주사지, 수어장대, 병암을 거쳐 서문에 이르는 길은 탐방로의 전반부에 해당하고, 서문에서 연주봉 옹성을 지나 북문으로 내려오는 길은 탐방로의 후반부다.

특히 적의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낮게 쌓은 담장인 ‘여장(女墻)’ 사이사이 보이는 남한산성의 풍광은 한폭을 그림을 연상케 한다.

또 남한산성 서문은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서쪽 경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물자를 이송하기는 힘들지만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2중으로 돌린 옹성 미학을 따라 … 예술적 생동감이 넘쳐나고

■제5코스-산성을 따라가는 옹성 미학의 길

옹성이 몰려 있는 성곽의 남동쪽 길을 따라 펼쳐진다.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외부에서 2중으로 돌린 성벽을 말한다. 남문에서 시작해 3개의 옹성을 차례로 지나 동문을 거쳐 지수당을 들렸다 출발점 산성종로로 가는 구간이다.

옹성의 생동감 넘치는 형태와 옹성이 자아내는 예술적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다. 옹성 미학을 따라 가는 길은 다른 산성이 가지지 못한 남한산성만의 매력이 넘치는 길이다.

이처럼 남한산성 길은 남한산성의 이야기와 생명, 법도, 반추, 의지, 미학이 함께하는 길을 만날 수 있다. 깊고 아픈 역사를 품고 지켜 온 남한산성 길을 오늘도 많이 사람들이 걷는다. 길 위에 이야기가 있고, 삶이 있기 때문이다.

강현숙기자

사진=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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