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책임자는 한찬식 검사장이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라 명명됐다. 전직 장관, 현직 수석이 대상이었다. 압수수색 팀이 청와대까지 갔다. 모든 언론이 그의 입을 지켜봤다. 약속은 수사 전부터 있었다. 취소할 이유가 없었다. 서로 한계는 지켰다. 사건을 말하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관련 발언은 딱 두 개다. 증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나온다. 내 검사 생활이 여기서 스톱(끝날) 할 수도 있다. 하긴, 더 없는 귀띔이었다. 6개월 뒤, 그 불길한 예상은 맞았다. 2019년 7월 말, 그에게 전화가 왔다. 검찰총장이었다. 고검장 자리가 없다. 나가라는 얘기였다. 한 검사장은 즉시 사표를 냈다. 그때도 약속이 있었다. 양복 아닌 간편복 차림이 어색했다. 아쉬울 거 없다고 했다. 다만, 수사팀 얘기를 자꾸 했다. 이제 이것도 오래된 얘기다. 바로 그 판결이 엊그제 나왔다. 전 환경부장관이 법정구속됐다. (수사 검사에게) 감격에 겨운 전화가 왔다. 그가 보낸 톡이다. 도대체 무슨 수사였나. 뭐였길래 수사팀이 풍비박산-검사장 잘리고, 차장 검사 잘리고, 부장검사 잘리고- 난 것일까. 언론은 수사의 외형만 쫓았다. 청와대에 진친 압수수색만 조명했다. 소환되는 장관ㆍ수석만 보도했다. 검찰과 권력의 대결로만 써댔다. 흥미를 끌려니 그랬을 것이다. 그 통에 수사의 본질이 흐려졌다. 30년 검사직을 걸었던 사건의 실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나마 1년 이상 잊혀졌다. 구문(舊聞)이 되어 가는 중이었다. 이런 때 잊고 있던 판결이 나왔다. 그리곤 모든 걸 정리했다. 임기 남은 임원에 대한 사표 요구, 직권남용 범죄라 했다. 사퇴 거부 임원에 대한 표적 감사, 강요 범죄라 했다. 내정자에 대한 과도한 점수 부여, 업무방해 범죄라 했다. 원하는 내정자 탈락하자 전원 불합격 처리, 업무방해 범죄라 했다. 내정자 합격 처리 못 한 담당 공무원 전보 조치, 직권남용 범죄라 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낯이 익다.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본 것들이다. 가까운 기억을 보자. 2018년이었다. 도(道)가 직원 8명 고발 방침을 흘렸다. 취임 6개월도 안 된 李 사장이 사표를 냈다. 도가 대대적인 감사에 들어갔다. 임기 2년 남았던 金 사장이 사임했다. 산하기관 여러 곳에서 그랬다. 감사 으름장이 공공연히 있었다. 압박에 밀린 임원들이 줄줄이 쫓겨났다. 그때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규모나 정도가 차라리 덜한 측면이 있다. 그 4년 전, 또 4년 전은 더 했다. 도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시ㆍ군들도 그랬다. 지방 정부가 겁 없이 저지르던 블랙리스트 범죄다. 임기 남았는데 사표 요구한 죄(직권남용), 거부하면 표적 감사로 압박한 죄(강요)다. 많은 사람이 그래서 나갔다. 지금 보면 나갈 의무 없는 거였다. 많은 공무원이 압박에 동원됐다. 지금 보면 그럴 권리 없는 거였다. 이게 블랙리스트 수사의 본질이다. 환경부라서 죄 된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라서 죄 된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든, 문재인 정부든, 지방정부든 다 처벌받을 범죄인 거였다. 자리는 선거의 논공행상이다. 억대 연봉자가 되고, 권력자가 되는 선물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이걸 기대한다. 그런 이들이 선거 캠프에 진친다. 그러면서 서로를 부른다. 미래 대표님, 미래 원장님, 미래 사장님. 이기면, 그들이 들어간다. 전임자를 가혹히 쫓아낸다. 관행이라고 말한다. 입성하는 게 순리고, 쫓아내는 건 권리라 한다. 그런데 이제 보니 범죄였다. 누군가는 감옥 갈 죄였다. 달라져야 할 적폐였다. 옳은 검찰? 제 할 일 하는 검찰이다. 정의로운 수사? 범죄 처단하는 수사다. 동부지검은 옳았다. 블랙리스트 수사는 정의로웠다. 검찰이 해야 할 일이었고, 적폐를 바로 잡은 수사였다. 법으로 정해진 임기는 보장되어야 한다. 강제로 쫓아내는 모든 행위는 범죄다. 그 수사가 정치권에 던진 경고다. 우리 주변에도 자리는 많다. 도지사가 주는 수십 개, 시장ㆍ군수가 주는 수백 개다. 그 모든 자리의 임기는 판결 이후 정치력보다 위다. 당연히 할 수사였는데. 한찬식 검사장은 왜 그런 예언-검사 생활을 스톱해야 할지도-을 했을까. 문무일 검찰총장은 왜 그런 종용-당신이 갈 고검장 자리는 없다-을 했을까. 블랙리스트 수사 검사들은 왜 블랙리스트가 됐을까. 판결문을 읽을 수록 더해 가는 아이러니다. 主筆
오피니언
김종구 주필
2021-02-17 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