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구장이었다. LG팬들이 잔뜩 모였다. 여기서 삭발식이 있었다. 구경꾼들이 어리둥절했다. 야구장에 안 맞는 모습이다. 성명서를 낭독하자 이해했다. 10구단 창단을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 숨겨진 진짜 이유를 밝혀라. 재벌비호 KBO 각성하라. 수원에서 온 시민 대표였다. 프로야구 10구단 수원 유치를 위한 수원 시민 연대다. 그 속에 장유순 간사도 있었다. 떨어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눈물을 흘렸다. LG 팬들이 힘내라며 격려했다. 그건, 온몸을 던진 투쟁의 전설이었다. 광교산 입구에 시민이 줄을 섰다. 10구단 유치 서명 인파였다. 야구를 모를 법한 시민도 많았다. 그런데도 모두 줄을 섰다. 수원성교회 신도들도 거기 있었다. 성경 대신 서명부를 든 날이었다. 예수님 믿고 천국 가자고 하지 않았다. 서명해서 야구단 가져오자고 외쳤다. 보름이면 충분했다. 목표 30만명이 금방 찼다. 염태영 시장에 준 시민의 위임장이었다. 염 시장은 사방팔방을 뛰었다. 설명하고, 논쟁하고, 읍소하고, 담판했다. 그건, 시민이 야구로 하나 된 전설이었다. 경쟁지도 만만치 않았다. 신청지는 전주ㆍ군산ㆍ익산ㆍ완주였다. 그런데 유치운동은 전북도가 다 했다. 180만 전북도민의 염원이라고 명명했다. 수원엔 버거운 광역 지자체다. 그때 경기도민이 나섰다. 1천300만 경기도민의 염원이라고 선언했다. 화성ㆍ오산ㆍ안양ㆍ의왕ㆍ안성ㆍ평택시장이 지지 선언을 했다. 유치 기원 시민대회에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준비된 수원, 든든한 KT(이천시). 이런 응원을 보낸 지자체가 20여개다. 그건, 야구가 행정을 초월한 전설이었다. 그래도 큰 벽이 있었다. 지긋지긋한 균형발전론이다. 1천300만명의 요구다. 이게 180만명 요구에 밀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야구도 지방 배려 야구에도 국토균형발전론. 이 주장엔 김문수 경기지사가 나섰다. 망국적 논리로 야구까지 망칠 거냐고 따졌다. 심사 현장을 직접 갔다. 전북도를 당사자로 인정할 거면 경기도도 당사자로 인정하라. 수원에 불리한 기준 당장 고쳐라. 그는 정치인이었다. 이 승부수는 정확히 먹혀들었다. 그건, 맏형 경기도가 보인 전설이었다. 경기일보도 일익을 맡았다.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위한 시민 서포터즈를 만들었다. 도민의 뜻을 한 데 모으는 역할이었다. 발대식에 도민 5천명이 참여했다. 창단 소식도 신속히 전했다. 2013년 1월 11일자 신문 한 장이다. 10구단 수원 유치를 알린 호외(號外)다. 수원 KT, 10구단 유치 확정. 본업을 훨씬 넘는 열의였다. 편집국장이 서포터즈를 만들었고, 휴일을 반납하며 호외를 찍었다. 그건, 언론이 시도한 작은 전설이었다. 2020년 가을, 이제 그 야구단이 역사를 썼다. 창단 이후 처음 가을 야구에 갔다. 어쩌면 2위를 할지도 모른다. 텅 빈 경기장을 뛰어서 만든 결과다. 담장 밖 시민에 더 없는 선물이다. 코로나 세상에 준 벼락같은 기쁨이다. 강백호, 소형준, 유한준, 로하스, 그리고 이강철. 모두 다 MVP다. 그리고 이들 덕에 창단의 전설도 떠올려본다. 잠실벌을 떨게 했던 전설, 만장 깃발로 한데 뭉쳤던 전설, 수도권엔 안 준다는 벽을 깼던 전설. 그건, 오늘을 있게 만든 전설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없다. 간사 장유순은 평범한 시민이 됐고, 지사 김문수는 힘없는 야인이 됐고, 국장 정 국장은 언론 아닌 길을 갔다. 가을 전설을 자축하던 자리-포스트 시즌 출정식-를 외롭게 지킨 이는 하나다. 시장 염태영 시장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그 기억은 현재를 사는 자의 몫이다. 현재가 이만하면 됐다. KT가 가을의 전설을 썼고, 창단의 전설까지 추억하게 해줬다. 이제, 시민 모두가 주인 될 전설의 차례다. 우승의 전설 말이다. 主筆
오피니언
김종구 주필
2020-10-28 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