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자춘추/교원의 성 할당제

경기천자춘추/교원의 성 할당제 나진택 우리 사회의 성별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으로 아직은 미흡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각 분야의 여성할당이 적극추진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자료에 의하면 초등학교의 경우 여교사의 비중이 1965년 25.5% (2만207명)이었던 것이 2000년에는 교원의 66.0%(9만 825명)로 증가했다고 한다. 물론 중등교원은 56.8%(5만1407명), 고등교원은 29.7%(3만1030명)로 여교사의 비율이 적정하거나 균형이 유지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교원의 경우 여성할당제를 실시하지 않았음에도 교직이 가지고 있는 업무수행의 특이성 때문에 여교사의 증가가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이다. 할당제를 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관해 일정정도의 제도적 시행으로 균형을 유도하고자 함일 것이다. 지금은 중학생인 필자의 여식이 초등학교의 많은 추억 중에 인상에 남고 기억되는 일로 4학년 때 남자였던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오른 겨울 북한산행, 6학년때 제자들을 눈물로 졸업시킨 교직생활 초년생이던 처녀선생님과의 추억을 꼽는다. 또 초등학교 6년인 아들은 4학년때 남자 담임선생님을 제일 좋아했다. 아직 많은 변화를 겪어야 하는 시기인 아들은 담임선생님을 자신의 모델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학창시절의 기억은 선생님과 친구의 일이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업무특성과 우리의 교육현장의 형편상 어려움으로 교사에 의존해 해결해야하는 학교의 많은 업무중에 남자 교사들에 대한 의존도가 집중됨에 따른 문제를 토로하는 일선학교장의 고충을 들은적이 있다. 이상적인 교육이 아쉬운 현실에서 교원의 적절한 성 균형 유지가 필요함을 느낀다. 고등학교에서의 여교사 증가가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모습도 기대하면서 적정한 교원의 성 할당제를 실시하면 교단의 바른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경기천자춘추/인재(人材) 양성과 교육개혁

경기천자춘추/인재(人材) 양성과 교육개혁 김진춘 (경기도 교육위원) 냉전의 시대에는 군사력(軍事力)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였고, 20세기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는 경제력(經濟力), 즉 돈 있는 나라들이 지구촌을 지배해왔다. 그러다가 21세기 지식기반 사회, 다양성과 자율을 바탕으로 한 정보화 사회에 와서는 인력(人力)을 가지고 경쟁하는 사회가 되었다. 막강한 군사력도 경제력도 인력 개발 없이는 확보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를 창출해낼 수 있는 인력을 얼마만큼 양성해서 확보하고 있느냐를 가지고 국가 경쟁력을 평가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어느 국가나 사회를 막론하고 그 사회 또는 집단을 이끌어가는 5%수준의 엘리트 집단 또는 리더그룹이 있는데, 이들을 창조적인 소수자(Creative minority)라고 한다. 이들의 아이디어에 의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내면, 나머지 사람들은 이들이 창조한 문화를 더불어 먹고 사는 것이다. 이같은 인력 경쟁 사회에 있어서는 인력관리, 인력 개발 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있어야 그 집단이나 국가는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히딩크 축구 감독처럼 뛰어난 인력관리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만이 축구신화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도 기술 중의 가장 고난도 기술이 인간을 다루는 기술이라고 하였다. 사람을 잘 다룬다는 것은 리더십을 가지고 경쟁력 있는 인력을 창출해 낼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교육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할 만큼 시대사조는 변하고 있다. 다양성에 바탕을 둔 평등교육도 중요하지만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수월성 교육을 통하여 경쟁력 있는 인력을 얼마만큼 양성해 낼 수 있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다. 교육개혁도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경쟁력 있는 인재(人材)를 양성해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천자춘추/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들

경기천자춘추/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들 경기관광공사 사장 김종민 요즈음 세상이 어수선하다. 자신에게만 유리하도록 판세를 바꾸어 보려는 욕심 때문이다. 이기적 타산이 도처에서 충돌하고 파열음을 낸다. 한치의 양보가 없는 치열한 싸움 속에서 정의와 질서, 평화와 공존, 이타와 합리, 품위와 겸양은 설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 합종연횡이나 기업간의 합병에서 기선제압을 위한 샅바잡기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술수가 처음부터 난무한다. 공무원조합과 공무원노조, 쉬워 보이는 작명을 놓고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국제적으로 눈을 돌려도 요란하고 어지럽다. 이라크 무기사찰은 전쟁의 예고처럼 들리고, 북한 핵 문제는 민족의 내일을 어둡게 한다. WTO나 OECD 회의장 역시 국익의 대결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우연한 자리에서 혼돈스런 세태가 화두가 되었다. 우리들을 불안하게 하는 이런 저런 일들이 회자 되었다. 세상이 시끄럽고 경제가 불안해도 정치가 잘 되면 마음 붙이고 살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 분이 인간사나 정치가 잘 되기 위해서 없어져야 할 행태를 조목조목 꼽았다. 하나는 침소봉대(針小棒大)이다. 바늘만한 것을 몽둥이만하다고 심하게 과장한다. 둘째는 아전인수(我田引水)이다. 제 논에 물대기처럼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남을 오도한다. 셋째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이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끌어다 대어 억지로 조리에 닿도록 하는 일이다. 마지막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도둑이 되레 매를 드는 것처럼 잘못 해놓고도 상대방을 나무라고 윽박지르는 일이다. 듣고 보니 어떤 설명보다 오늘의 혼란을 알기 쉽게 이해시켜 준다. 요란하게 문제가 된 일들 중에 억지 논리나 궤변이 개입되지 않은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마음이나 편히 지내고 싶은 소시민들을 황당하게 만들지 않는 사회가 건강하고 좋은 사회다. 원칙과 정도는 언제 쯤이면 자리 잡을까.

경기천자춘추/경기도 국악의 전당

경기도에는 유·무형의 전통문화유산이 무척 많다. 무형의 대표적인 유산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인 경기민요다. 경기민요 외에 웃다리(경기·충청지역)의 대표적인 풍물인 평택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이 있고, 소리와 음악과 춤사위가 빼어난 경기도도당굿(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도 있다. 이외에 안성남사당 풍물놀이, 포천 메나리, 김포의 통진두레놀이 등 경기의 소리와 민속은 풍부하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토양을 갖고있는 경기도에 경기국악의 맥을 잇고 이를 발전시킬 ‘경기도 국악의 전당’이 건립되고 있어 국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상당히 뜻깊게 생각한다. 경기도의 국악(樂·歌·舞)은 서울이나 남도에 뒤지지않는 많은 ‘꺼리’를 갖고있다. 그러므로 경기도 국악의 전당 건립은 서울이나 호남 중심의 국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중부지역 국악을 활성화 시키고 경기국악의 우수성을 계승 발전 시키는 역할을 하게될 것이란 기대다. 경기도 국악의 전당은 단지 경기도에 국한된다기 보다는 인천을 포함한 서해안지역, 강원도, 충청도 일부지역 그리고 통일시대를 앞두고 황해도까지를 망라, 중부지역 국악의 메카로서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하는 중요성에 더욱 의미가 크다. 지난 6월 용인시 기흥읍 보라리 한국민속촌 옆에 착공한 경기도 국악의 전당은 183억원의 예산을 들여 2004년 완공 예정이다. 1만760평의 부지에 연면적 1천648평 규모로 575석의 공연장과 전시실, 연습실 등을 갖추게 된다. 바람이 있다면 경기도 국악의 전당이 단순 공연장 수준을 벗어나 명실상부한 경기국악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건축하는 시·군 문화예술회관이 300억∼5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에 비해 경기도 국악의 전당 예산이 너무 적고, 공연장 등 시설이 비좁아 아쉬운 감이 있다. 지금같은 공연장이라면 도립국악단원들이 무대에 서기도 힘든 형편이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경기국악의 메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채주병 (경기도국립국악단 악장.거문고)

경기천자춘추/통계조사와 통계응답

“소장님, 통계조사하기가 너무 너무 힘들어요.” 퇴근이 임박한 시간에 가구를 대상으로 통계조사 협조를 부탁하기 위하여 출장 나갔던 직원이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다. 출장지역이 아파트 밀집지역인데 처음에는 경비실에서부터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것이다. 지난 번 방문했던 가구에서 ‘통계청에서 다음에 또 방문을 하면 절대로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다면서 경비아저씨가 ‘통계청 때문에 귀찮아서 죽겠다’며 출입부터 통제하고 나선다는 것이다. 말도 못시키게 하는 걸 통계의 중요성을 설명하여 겨우 대상가구를 방문하게 되었단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누구세요?” “예, 일전에 왔었던 통계청 직원입니다” “경비실에서 얘기 못 들었나? 통계청에서 오면 절대로 올려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경비아저씨를 바꾸든지 해야지 안되겠네 정말!” 우리는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다. 많은 정보를 이용하여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이용되는 정보 중에서 통계의 비중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통계는 주로 현장 조사를 통해서 작성된다. 현장조사 없이는 아무리 많은 우수한 인력을 투입하더라도 제대로 된 통계를 생산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현장조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응답자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응답자입장에서는 응답부담과 사생활 노출이 무엇보다도 중요시된다. 통계청에서는 응답자의 응답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중복되는 조사항목을 축소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통계조사시 개인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통계법)를 마련하여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통계작성과정에서 수집된 개인의 비밀에 관한 사항은 법으로 보호되고 있고(통계법 제13조), 통계작성에 종사하는 자가 직무상 알게된 사항으로서 개인의 비밀에 속하는 사항을 누설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통계법 제14조).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통계법 제23조). 우리 주위에는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그 중심에 정확하게 작성된 통계자료가 없다면 중요한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제대로 된 통계 생산을 위하여 통계조사에 협조를 부탁드린다. /통계청 경기통계사무소장 정 규 남

천자춘추/ 송무백열(松茂栢悅)

천자춘추/ 송무백열(松茂栢悅) 이천시장 유 승 우 옛날부터 전해오는 우리 속담중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가까운 친척이나 동료 등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앞서나갈 경우 은근히 질투를 느낀다는 뜻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중국 고담(古談) 가운데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말이 있다. 어의적(語意的) 해석으로는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뻐한다’라는 의미이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나무의 종류는 다르지만 사시사철 푸르다는 동질성(同質性)을 갖는다는 차원에서 사촌과 같은 관계에 있기때문에 전자(前者)의 우리 속담과 비교할 때 후자(後者)가 훨씬 더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남의 잘됨을 시샘하기 보다는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는 마음은 바로 칭찬문화의 발로로서 우리 사회를 밝게 하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시기하고 질투하는 분위기가 팽배할 때 우리는 살벌함마저 느끼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지나친 경쟁심리에서 나타나는 결과인 듯 하며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국가 공동체가 상생(相生)보다는 상극(相剋)으로 치달리게 될 때 사회가 불안하며 마침내 불행한 역사를 초래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의 수많은 당쟁이나 피비린내 나는 사화(士禍)로 역사가 얼마나 후퇴를 하였던가. 근대화를 더디게 하고 결국은 망국(亡國)의 한(恨)까지 남기게 되었으니 우리조상 모두가 저지른 자업자득의 결과라 하겠다. 생각컨대 우리는 조직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생존을 위한 경쟁원리는 오늘의 인류문명을 발전시켜온 원동력으로 그 공로가 높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열되어 상대방의 정당한 노력까지 시기하고 질투할 때 그 결과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돌아옴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잘됨을 축하하고 칭찬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충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를 않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버리자. 그것은 불행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송무백열’하는 마음을 길러 우리 공동체를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 영양소가 되게 하자.

<천자춘추>평범한 삶의 어려움과 보람

/유승열(안성문화마을 원장, 도예가) 지역에 잘 알고 지내는 후배가 표정이 다르다. 얼굴 가득 기쁜 기색이 역력하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집사람이 아기를 가졌다고 한다.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다. 이 후배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그래서 은근히 아기소식을 기다리던 중임을 알고 있던 터라 나 역시도 진심으로 기쁜 마음이 들어 함께 즐거워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이제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첫아이를 가졌을 때 느꼈던 기쁨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나와 가장 큰 경사중의 하나가 어쩌면 부모가 된다는 것일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기쁨일 게다. 그 기쁨의 와중에 또한 적잖은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른으로 책임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아 가는게 아닌가 싶다. 우리 부모의 삶이 그러했고 내 삶이 또한 그러하고 내 아이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고 사람들의 삶이란 거의 비슷비슷할 것이다. 부모의 보살핌아래 한편으로 부족한 것이 많은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소박한, 혹은 설레이는 희망을 안고 어린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첫 직장에 들어가거나 대학생활을 하면서 나름의 좌절과 삶에 대한 가치관을 갖게 되고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과 일생을 함께 할 배우자로서 언약하게 되는 시기가 대략 20대에서 30대초반의 나이가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여 그 소중한 결실로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 우리 아이에게는 보다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 애쓰면서 한편으로는 20살 시절의 꿈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나름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가 내 나이 30대 후반과 40대 초의 삶이 아닐까 싶다. 우리 부모의 삶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리하여 자식들이 자리잡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60대 이후의 일상에서 큰 행복을 누리는 것이 삶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로 평범한 삶일 것이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큰 우환없이 자잘한 고통과 기쁨속에 하루 하루 살아 나가는 삶, 평범한 삶, 그런 삶을 욕심내며 살고 싶다.

<천자춘추>시어머니

/여순호(경기도여성회관장) 이 해가 지나면 시어머니께서 90세가 되신다.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것을 뵐 때마다 감사하다는 마음이다. 시어머니는 10남매를 혼자 기르셨다. 40을 갓 넘어 막내 시누이 첫 돌날이 시아버지 삼우제 날이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돌떡을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역시 시어머니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 어머니는 적은 농사를 지으면서 10남매를 2년차로 학교에 보냈으니 보통 어머니 같으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나와의 첫 만남은 1974년 늦은 가을이었다. 결혼 문제로 만나 뵙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를 물으시더니, 결혼을 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그 자리에서 대답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당황하며 “제가 결혼을 하고싶어도 제 마음대로 못합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허락을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가끔 처음 만나자마자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느냐고 하면, 내 아들 결혼 문제인데 내가 하고싶은 말을 왜 못하느냐고 웃으신다. 어머니는 가식이 전혀 없는 분이다. 그래서 건강하신 것 같다. 어머니와 나는 20여년을 함께 살았다. 셋째인 우리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오히려 어머니가 내 일을 많이 도와 주신다. 나는 성당과 목욕탕을 어머니와 함께 가곤 하는데 딸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딸처럼 보인다니 기분이 좋다. 어머니와 나는 벽이 없다. 서로 할 말은 하고 살기 때문에 오해가 없다. 가끔 저녁이면 “어머니 약주 한잔 하시겠어요”라고 말씀드리면, “네가 먹고 싶어서 그러는 구나” 하시면서 식탁에 앉으신다. 어머니도 약주를 하고 싶으면 “얘야 술 한잔 할래”한다. 그러면 나도 “어머니 약주 잡수시고 싶으시군요”하며 한잔씩 나누곤 한다. 그러다가도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으면 단호한 말씀도 하신다. 그럴 때는 “역시 시어머니는 시어머님이세요”라고 하면 “너도 며느리는 며느리더라”하신다. 이때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소리내어 웃는다. 이렇게 살다보니 다정한 모녀 같은 정을 느끼며 산다. 어머니께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 결혼하고 증손을 볼 때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천자춘추>‘독감과 감기’

/손병관(인하대병원 진료부원장) 금년에는 변종 독감인 소위 ‘슈퍼 독감’이 유행할 것이라고 한다. 독감 바이러스는 병을 일으키는 항원이 변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심한 변종은 10년 이상의 주기로 일어나지만 경한 변종은 거의 매년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금년에는 심한 변종이 예상되어 유럽의 바이러스 학자들이 모여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변종 때문에 독감 예방접종은 매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노약자를 포함하여 심장병이 있다거나 천식 등 만성 호흡기질환이 있는 환자는 꼭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첫 해에는 1개월 간격으로 두 번, 그 후는 매년 한 번씩만 접종 받으면 된다. 독감과 감기는 전혀 다른 병이다. 감기가 심한 것을 독감으로 생각하는 환자가 많은데 두 질환은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독감 예방접종을 한다고 하여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라도 점도 지적하고 싶다. 흔히 ‘감기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틀린 것이다. 그러나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많은 심한 질환이 초기에는 감기 증상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독감은 물론이고 폐렴, 천식, 결핵, 간염, 에이즈, 심지어 많은 종류의 암까지도 처음에는 감기라는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의 입장에서는 감기 증상을 잘 구별하여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고, 환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나타난 증상을 그냥 감기겠지 하고 오랫동안 소위 ‘감기약’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 거의 같은 시기에 보도된 의사들이 ‘단순 감기’를 다른 병으로 진단하며 약을 많이 써서 감기에 의한 보험 청구액이 암 치료를 위한 보험 청구액보다 많다는 보도를 보며, 역시 감기는 가장 흔한 병인 것을 확인하며, 감기라고 진단된 환자 중에 적지 않은 수의 중한 병이 포함되어 있을 것도 또한 생각하며, 감기 증상을 정확히 구별해 내기 위해 애쓰는 모든 동료 의사들의 애씀이 정당하게 평가 받기를 기대해본다.

<천자춘추>어느 사법시험 채점평에 대한 소고

/서봉석(경기대 법학과 교수) 나는 언젠가 우리나라 사법시험 케이스문제의 시험답안에 대한 심사위원의 채점평을 읽었다. “문제점의 파악이나 논리전개는 매우 양호하나, 학설이나 판례의 소개와 비교없이 너무 주관적인 논리를 전개하여 점수를 잘 줄 수 없다” 라는 채점평이었다. 아마도 이 답안을 작성한 수험자는 그 채점평의 내용으로 미루어 사법시험에 낙방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번 시험에서는 많은 학설과 판례를 소개하고 비교하기 위해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유학시절 나는 6학기가 될 때까지 단 한번의 학과시험도 붙지 못하였다. 당시 나는 부족한 실력을 만회하기 위해 교과서를 반복하여 읽고, 이를 암기 하기 위해 전전긍긍하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시험에서는 내가 암기했던 모든 학설들을 지면에 옮겨놓기에 급급하였다. 급기야 나는 담당교수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낙방 이유를 따져 물었다. 그의 말인즉슨 “주체적인 논리 전개없이 백화점 식으로 학설을 나열하는 것에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출제된 문제는 담당교수 자신이 변형 창조해 낸 문제이기 때문에 학설이나 법원이 이에 대해 판결을 내린적이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판례란 있을 수 없다” 는 것이었다. 이 두개의 극명하게 상반되는 채점평은 두 학문세계간의 커다란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만일 위의 수험자가 독일에서 그와 같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주체적으로 그럴듯한 논리전개를 했음”이라는 채점평을 받았다면 매우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채점평은 독일에서는 최대의 찬사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학계나 판례가 얼마나 꼭 소개되어져야 할 만큼 정교한 논리의 주체적인 학설을 펴고 있는가? 또 주체적인 체계파악 능력과 논리적 구성능력이 없이 학문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도 학문에 대한, 그리고 법률인들의 대대적인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경기천자춘추/티끌과 들보

경기천자춘추/티끌과 들보 나진택(고양의제 21 운영위원) 들보(beam);지붕을 받치기 위해 두 기둥을 가로질러 걸쳐 놓은 나무. 신약에서 예수는 남의 허물은 보면서도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책망하면서, 작은 티끌은 보나 커다란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말씀 하셨다.(마7:3) 사람이 살아가며 남의 허물을 덮어주기 보다는 허물을 드러내어 보이므로 자신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티끌과 같이 미미한 타인의 허물을 가지고 마치 들보와 같이 커다란 문제인양 말해서 실제는 들보와 같이 커다란 자신의 허물을 감추고자 하는 것이다. 남의 허물을 들보와 같이 드러내어 만천하에 공개하는 시기가 왔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각 당과 후보 진영의 선거대책이 기본적으로 타 후보의 허물을 강조 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나라의 일꾼을 뽑는 일은 개인간의 사사로운 정을 떠나서 냉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과정으로 최대한 후보의 자질을 국민이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문화가 사사로운 정의 문화와 혼재되어 있는 이유로 이제는 들보와 같은 허물도 티끌과 같이 여겨 그냥 넘기기를 바라는 경향도 있다. 지연과 학연으로 인해 올바른 선택 보다는 무조건 적인 선택을 오래전에 결심한 유권자도 있다. ‘나는 무조건 OO당 이다’ ‘나는 무조건 아무개는 싫다’는 식이다. 무조건 이라는 무책임한 감정의 판단으로 인해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고 있음을 있지 말아야 한다. 이제 서서히 무르익어 가는 큰 일꾼(필자는 정치인을 일꾼이라고 생각함)을 뽑는 일에 차분하고 끈기 있게 마지막 한 순간까지라도 티끌만한 허물도 들보와 같이 보면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이웃의 사사로운 허물은 티끌로 여겨 덮어주고 선출직 일꾼의 허물은 들보로 보자.

경기천자춘추/초선 위원의 고민

경기천자춘추/초선 위원의 고민 김진춘(경기도 교육위원) 제4대 경기도 교육위원회 초선위원이 되어 처음으로 교육청에 대한 행정감사와 2003년도 교육비 특별회계 세입·세출 예산안 심의를 하였다. 40여년동안 일선 교육현장에서 교육을 하고 교육행정을 수행해 오면서 교육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했던 교육공급자가 어느날 갑자기 교원, 학부모 학생들 편에 서서 교육 수요자의 눈으로 경기 교육 전반에 대하여 문제점을 진단하고 교육성과를 평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 것이다. 겸허한 열린 마음으로 스스로가 걸어왔던 교직을 반성해 보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경기 교육 발전을 위하여 보탬이 되고 경기 교육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길인가 고민하게 된 것이다. 2003년도에도 8만여 교원들이 2백만 학생을 교육해내기 위하여 4조7천억원이란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나 쾌적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학교신축과 교실 증축 등 교육시설 확충과 질 높은 교육을 해내기 위한 인력자원 확보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이같은 실정을 교육 수요자들이 공감하고 한푼이라도 내 주머니 돈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전기 한등, 물 한 방울이라도 아껴 쓰고 절약해야 하는데 소모성 예산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산뿐만 아니라 인력 자원의 부족은 경기 교육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 지식 기반 사회란 인력 경쟁시대를 의미한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창출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인력을 확보한 집단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경기도의 경우 학급을 담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절대 교원수가 부족하여 퇴직한 고령 교사들을 초빙하여 기간제 교사로 활용해도 절대수가 부족한 실정이다. 교실도 부족하고 선생님도 없는 상황에서 교육의 질을 운운한다는 것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요구가 아닌가 한다. 이같은 교육여건 속에서도 으뜸 경기 교육 실현을 위하여 헌신적 봉사를 아끼지 않고 있는 8만여 교육가족들의 경기 교육사랑이 있기에 경기 교육은 내일을 향해 오늘도 발전하고 있다.

경기천자춘추/제2회 세계도자 비엔날레

경기천자춘추/제2회 세계도자 비엔날레 김종민(경기관광공사 사장) 몰려온 추위와 함께 전국적으로 열리던 각종 문화축제와 행사들이 자취를 감추고 벌써 잊혀진 듯 하다. 문화축제로는 세계적인 기록을 수립한 세계도자기엑스포가 끝난 것은 작년 이맘 때였다. 도자기로 문화행사가 잘 될까 걱정도 많았지만 국내외에서 606만명이 다녀가면서 모든 기우를 씻어 냈다. 96년 일본 사가 도자기 박람회의 250만명 참관 기록을 훌쩍 뛰어 넘으면서 ‘경기도가 세계지도에 도자기를 표시했다’는 국제적인 평판을 받았다. 잘 기억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세계도자기엑스포와 함께 제1회 세계도자비엔날레가 동반 개최되었다. 세계도자공모전과 국제도자학술회의를 주내용으로 하는 격년제 행사를 같이 연 것이다. 당시 공모전은 69개국에서 4천200여점이 출품되어 세계 최대의 경쟁전이자 신진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로손 오예칸이 ‘치유하는 존재’라는 대형 도조로 그랑프리를 타면서 국내외 도예계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 온 기억이 새롭다. 그는 작품당 10∼20만달러를 받는 대형작가이지만 유색 편견 속에서 다른 행사에서는 상복이 없었지만 공정한 심사로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내년 9월 경기도는 제2회 세계도자비엔날레를 개최한다. 엑스포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행사의 성격과 질이다. 요즈음 지식기반산업사회의 조성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작년에 확보한 8천400여장의 도자예술 슬라이드는 바로 오늘 현재 세계 미술가들이 지니고 있는 생각을 집대성한 색채와 형태 그리고 디자인의 보고이다. 억지로 모으려고 해도 잘 안되는 현대 예술지식 데이터베이스가 자연스럽게 경기도에 조성된 것이다. 이를 산업미술에 적극 활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 내년에도 첫 대회를 능가하는 도예지식기반이 쌓이도록 지금부터 많은 투자와 함께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때라고 본다.

경기천자춘추/‘토요상설 국악공연’

경기천자춘추/‘토요상설 국악공연’ 채주병(경기도립국악단 악장.거문고) 경기도립국악단이 마련한 ‘토요상설 국악공연’이 매월 첫째·셋째 토요일 오후 5시 경기도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다. 지난 1999년 처음 시작한 토요상설 국악공연은 경기도문예회관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매회 중고생 및 국악애호가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연 7천∼8천여명이 관람하고 있다. 공연은 보다 다양한 우리 가락과 전통춤을 펼쳐보임으로써 도내 국악공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고있다. 토요상설 국악공연은 도립국악단의 정기·기획공연이 관현악 위주의 창작음악이 대부분이어서 국악의 악·가·무(樂·歌·舞)를 제대로 선보일 기회가 적어 전통부터 창작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또 토요일 오후에 도문예회관에 오면 언제나 우리음악을 접할 수 있게해 국악 대중화에 일조하고, 특히 청소년들이 우리음악을 가까이서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국악이 생소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없애고 재미있고 흥겹고 우리정서에 맞는 우리음악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생활속에 친근하게 자리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는데 생각보다 일찍이 자리를 잡았다. 총 20회의 국악상설무대에선 수제천·종묘제례악·보허자 등의 전통음악부터 각 악기의 멋과 맛을 감상할 수 있는 독주 및 이중창·실내악 연주, 포구락·춘앵전·처용무 등의 전통무용, 가곡·가사·시조 등의 성악, 판소리, 경기민요, 사물놀이 등까지 100여가지의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토요상설은 소극장 특유의 아늑하고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국악의 진미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연주자의 숨결과 표정, 손놀림 등을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으며 민요나 사물놀이 때는 저절로 어깨춤이 나올만큼 흥이 전해진다. 상설공연은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객석이 비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소문이 나고 마니아가 생겨 객석이 꽉 찬다. 학교에서도 국악감상 과제를 내주어 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 가을이 저물어가는 이 계절, 국악공연을 찾아 마음 깊은 곳까지 울림을 주는 우리음악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경기천자춘추/체감물가와 지수물가

지난 달 경기지역의 소비자물가가 1년 전에 비해 평균 3.1% 상승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통계자료를 보면서 일부에서는 개인이 느끼는 물가수준과 차이가 많다고들 한다. 특히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을 토대로 임금이나 연금이 결정되는 직장인들로부터 이와 유사한 내용의 전화를 받곤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물가는 통계청에서 매월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소비자들이 소비생활을 하기 위하여 구입하는 상품 가격을 조사하여 전국 또는 특정지역의 물가변동을 측정하기 위하여 작성된다. 여기에는 쌀, 배추, 달걀, 사과 등 식료품 가격뿐만 아니라, 전·월세 등 주거관련 품목, 전기료, 도시가스료, 수도료, 의복비, 병원비, 학원비, 교통요금, 미용료 등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소비하는 모든 품목들의 가격변동이 포함된다. 이들 품목들의 가격을 매월 조사하여 보면 올랐다가 다시 내리거나 내렸다가 오르는 품목이 있는가 하면, 계속 오르거나 내리기만 하는 품목도 있고, 몇 년 동안 가격변동이 없는 품목도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이러한 모든 품목의 가격변동을 종합하여 작성한다. 이에 반해 개인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주로 가격이 오른 품목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10월 중 경기지역의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1년 전에 비해 평균 3.1% 올랐다. 이를 품목별로 보면 무, 배추, 밤, 한우쇠갈비, 국산담배, 경유, 택시료 등은 10% 이상 올랐으며, 납입금, 입시학원비, 등유가격도 평균이상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품목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물가오름세는 매우 크게 느껴질 것이며, 대부분 사람들은 주로 이들 품목의 가격인상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닭고기, 달걀, 도시가스료, 이동전화료, 전기료 등은 1년 전에 비해 오히려 내렸으며, 또한 1년 동안 가격변동이 거의 없는 많은 품목들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소비자물가지수가 평균 3.1% 상승하였다는 것을 이해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체감물가가 정부에서 발표하는 물가에 비해 높게 느껴지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인 것 같다. 정규남(통계청 경기통계사무소장)

경기천자춘추/ 미군기지 이전 유감(有感)

미군기지 이전 유감(有感) 유승우(이천시장) 지금 이천시에서는 미군기지의 이전 문제로 민심이 크게 동요되고 있다. 지난 3월 춘천에 있는 미군 헬기부대가 이천시 항작사 부근으로 이전 될 것이라는 국방부의 일방적인 발표가 있은 후 부터 여러 가지 억측과 함께 이전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군기지 이천 이전반대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시내 곳곳에 반대 플래카드가 흉물스럽게 게첩되고 있다. 이러한 반대 사유는 단순한 지역적 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몇 가지 결정적인 하자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반대 사유는 국방시설 이전 설치문제는 법령상에도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토록 되어 있는데 이를 생략하고 일방적으로 선정 발표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 사유로는 지역적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첨단 산업인 하이닉스 반도체와 LG 실트론, 위성전파감시센터 등 중요 국가 산업시설이 이전 예정지에 근접하고 있어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천 전 지역은 자연보전 권역이며 팔당상수원대책 지역으로 각종의 규제를 받고 있어 민원이 크게 야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군사시설에만 너그럽다는 데 대해 납득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외에도 몇 가지 예상되는 문제점이 있어 대책위원회에서는 수차례에 걸친 논의와 범시민반대집회 시위를 강행하였다. 그리고 시장과 국회의원, 시의회 의장, 대책위원장, 출향인사 등 대표단이 국방부 장관 항의방문과 2차례의 국회 상임위를 방문하여 지역 주민의 의사를 전달하며 부지선정을 재고토록 촉구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에서는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정 발표한데 대해 정중히 사과를 하면서 문제사안에 대해 재검토를 시사했다. 그러나 국회 통일안보외교통상위원회(통외통위)와 본회의에서는 비준동의안에 ‘지방자치단체의 민원을 해결하여야 한다’는 강제규정의 부대의견을 달도록 결정하여 그동안의 노력이 다소나마 효과를 거두게 되어 위로가 되었다. 지금은 협의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화 시대이며 아울러 지방정부의 자치역량이 크게 강조되는 시대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기능과 역할은 서로 존중되어야 하며 이제라도 이천시민의 진정한 의사가 반영되기를 바란다.

<천자춘추>내가 만들고 싶은 도자기

/유승렬(안성문화마을원장·도예가) ‘안성맞춤’은 안성시장의 발달과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시장의 발달은 당연히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언제나 흥청거리게 마련이고, 시장거리는 온통 축제분위기였을 것이다. 그 속에서 탄생하고 발전한 것이 안성 남사당인데, 그 남사당은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신명나는 놀이로(풍물-농악, 버나-접시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 놀음) 서민들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던 남사당은 민속학자 주강현씨의 말이 아니래도, 오늘날 대중연예의 효시이며, 선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결국 남사당은 서민과, 대중과 함께 울고 웃은 서민 예술로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남사당이 아니라 남사당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고장 안성에서 예술가라 이름하여 도예를 하고있는 입장에서 떠오르는 감회일 것이다. 안성과 인접한 경기도 광주군의 관요에 가려 그 명성이 덜 하기는 하지만 안성에도 조선시대 일반 도자기 생산양상을 보여주는 여러 도요지가 남아있다. 안성시 일죽면 화곡리의 도요지도 그중에 하나인데 17·18세기 지방 철화백자 가마의 중요한 발굴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 화곡리의 도공들이 만들던, 만들려고 했던 도자기는 어떤 도자기일까? 300여년전 안성 화곡리에서 가마에 불을 지피던 도공들의 혼과 정신은 어떤 것일까? 도자기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여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은지도 어언 20년이 흘렀고 안성땅에 자리잡은지도 10년을 바라보는데 난 어떤 도자기를 만들고 싶은 것이고 300년 후에도 있을 이땅의 도공들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은 것일까? 가을을 느낄 사이도 없이 찾아온 겨울을 작업장 한켠 연탄난로를 통해 느끼며 내가 만들고 싶은 도자기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데 뜬금없이 남사당이 떠오른건 아마도 남사당처럼 그렇게 서민과, 대중과 함께 하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 아닐까? 산다는 것은 결국 한길로 통하는 것인가 보다.

<천자춘추>소중한 편지

/여순호 (경기도여성회관 관장) 나는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150여통 간직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받은 것으로 1966년부터 1976년 사이의 편지다. 내가 생각해도 36년 동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사를 여러번 했고 결혼 후까지도 보관하고 있는 편지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 보내온 편지이기 때문에 함부로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편지는 다양하다. 아름답게 그림을 그린 엽서에서부터 선화지, 내 키만큼 긴 160㎝ 두루마리에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 보낸 것 등 다채롭다. 수녀님의 편지는 수녀가 돼라는 내용이었고, 나의 약혼식을 성당에서 해주신 신부님은 ‘금년에는 귀여운 옥동자를 얻으라’는 내용을 보내주셨는데 그 해에 정말로 첫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내준 친구가 있다. 무려 82통이나 된다. 1966년 내가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한 해부터 결혼한 해까지 보낸 편지다. 동갑내기인 그 친구는 기관은 다르지만 업무 내용이 같아서 한달에 한번은 상급기관 회의에서 만나곤 했다. 또 1년에 한번은 1주일간 합숙훈련을 받기도 해 친하게 지냈다. 잠시 못만나면 서로 편지를 쓰곤했는데 항상 아름다운 내용으로 단둘이 만나서 대화하는 것 같이 잘 썼다. 그래서 나는 어느 기회가 오면 이 아름답고 소중한 글을 책으로 엮어야지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이 기회에 한 소절만 소개할까 한다.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보니 추억이 아름답고 모든 편지들이 아주 소중하다고 여겨진다. 역시 보관하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맑은 하루가 간다. 언제 또다시 오늘이 올지… 푸른 하늘에 기약해 볼까? 그간 안녕? 요 깍쟁이, 나 보고 싶지도 내 얘기 듣고 싶지도 않니. 난 얼마나 보고싶고 너의 얘기 듣고 싶은데. 기다리마. 긴긴 얘기 가득 실은 너와 그리고 이야기를…”- 점례가. 또 한해가 아쉽게 저물어가는 이즈음, 추억을 더듬으며 잊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성이 가득담긴 편지를 직접 써서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천자춘추>‘의사는 와 보지도 않고 인턴이...’

/손 병 관(인하대병원 진료부원장) 병원에 불만이 있는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가끔 들리는 말이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아파오는 것이 사실이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전공의의 대명사가 ‘인턴’이고 흔히 병원에서 발생하는 좋지 않은 일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며 어떤 면에서는 전공의를 비하하는데 쓰이고 있는 용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턴’, 병원에서 가장 고생하고 있는 직종이다. 물론 전문의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스스로들 인정하며 감내하고 있지만 그들의 업무는 정말 눈에 띄지 않는 데서 환자의 진료에 꼭 필요한 궂은 일을 하고 있는 의사들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들도 엄연한 의사라는 사실이다. 제목에 나와있는 ‘인턴’이라는 용어 속에는 전공의를 모두 포함하여 하는 말로 생각되는 데 전공의 과정은 인턴과 레지던트로 나뉘며 인턴 과정은 모든 과를 돌아가며 각 과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일을 담당하며 후에 자기들이 전공으로 하여야 할 진료과목을 선택 및 준비하는 과정이며, 레지던트는 한 과목을 정하여 3년 또는 4년간 환자를 직접 보며 그 과의 전문의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는 의사들인 것이다. 필자도 가끔은 ‘교수님이 왜 직접 검사하고 치료해 주지 않느냐’는 항의를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검사나 치료하는 과정에서의 많은 부분은 교수나 전문의보다 전공의가 훨씬 잘한다’고 솔직히 밝힌다. 환자 진료에 있어서 물론 같이 논의하여 최종 결정은 교수가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환자 옆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관찰하는 전공의들의 판단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병원에서 전공의의 역할은 참으로 크다. 그들이 없으면 종합병원의 진료는 불가능해지며 그들은 수련만 받는 의사가 아니기에 이미 ‘수련의’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고 하여 ‘전공의’로 용어를 바꾼지도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것을 느끼며 아쉬울 때가 많다. 요즈음 병원에서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는 4년차 전공의들의 다소 힘들어 하는 표정을 종종 접하며 그들이 사회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위로하며, 모두 합격하라는 응원을 보낸다.

<천자춘추>함부르크의 택시운전사

/서봉석(경기대 법학과 겸임교수) 반평생을 학문에 몸담고 있는 나는 늘 학문의 방법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다. 누구나 학문에 있어서 갖가지 방법론이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나의 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을 얘기하고자 한다. 나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3년동안 모자라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함부르크시의 택시운전사로 일을 했었다. 그런 연유로 홍세화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가장 실감나게 읽은 사람은 아마도 내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택시운전사와는 달리 독일에서의 택시운전사는 승객을 기다리는 시간이 거의 일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한가한 직업이어서 나와 같은 그곳의 택시운전사들은 대부분 많은 독서를 하게 되는데 특히 밤근무때에는 더욱 더 한가로운 자유를 갖게 되므로 나는 늘 밤에만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에는 내가 쓰고있던 박사논문의 구성, 풀리지 않았던 문제점, 무엇보다도 나의 주장에 대한 당위성과 창작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있었는데 이러한 문제들이 실제로 거의 택시안에서 해결되고 결정이 되어짐으로써 오히려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그 일을 나는 기꺼이 해내고 있었다. 개인적인 습성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내게는 두 아이와 아내가 함께 있는 15평 남짓한 기숙사에서나, 수많은 책과 학생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대학의 도서관내에서는 자유로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어두운 도시거리의 택시승강장이나 깜깜한 숲속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달릴때면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들이 잘 떠오르면서 모든 문젯거리들이 쉽게 정리되곤 했었다. 해탈을 위해 불교에서 쓰는 방법처럼 그 때 나는 오랜 시간동안 사색을 필요로 하는 화두를 잡고 있었고 그 택시안은 내 화두풀이의 수련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그러한 버릇이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공부의 방법으로는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책상에 앉아 남의 글을 많이 읽는 것 보다 오랜시간을 투자해서 정말로 깊게 고민하고 사색하여 나름대로의 창의적인 산물을 낳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을 한다. 돌이켜 보면 많은 시름속에서 번쩍하이 혜안의 눈이 떠져 그토록 풀리지 않고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을 해결했을 때의 환희에 들뜬 그 수많은 새벽녘, 그때마다 나는 반가운 택시 승객도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와 그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곤 하던 일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또 작품다운 논문을 쓰려면 다시 함부르크로 돌아가 택시운전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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