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자춘추/독일식 사고방식?

필자가 고국에 돌아와서 근 1년 8개월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너무 독일식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대부분의 경우 필자의 한국생활에 적응을 돕겠다는 조언의 말이었다고 생각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논리적 불합리를 피해보려는 군색한 변명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사고방식은 독일식과 한국식이라는 차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는 환경 또는 문화적 차원과 인간 고유의 논리적·이성적 차원을 구분해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각 사회의 문화양식에는 틀림없이 차이가 있다. 이러한 문화의 차이는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문화가 다른 독일과 한국의 문화적 사고방식에는 차이가 있음이 확실하다. 반면에 학문의 근간이 되는 논리나 이성체계에는 독일식 사고방식과 한국식 사고방식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이는 학문적 사고가 자연법칙이나 인간의 지적 본능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며, 두 국민간의 이성적·지적 능력의 차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사고방식의 기준을 적용할 때에는 어떠한 차원에서의 접근인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수긍할 수 없었던 사고방식 차이의 기준은 주로 학문적·문화적 차원의 혼동에 있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독일에서의 학문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성실하다는 것이다.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 미묘한 차이도 분석해 체계와 부합하는 정교한 논리를 추구하는 태도에서는 경외심 마저 들게된다. 만일 우리가 정교한 분석과 체계적인 논리전개 그리고 합리적인 구성을 추구하는 것이 독일식이라고 몰아가거나, 자신의 비논리적 사고방식을 합리화하려는 것을 한국식이라는 등식으로 적용하려 한다면 이는 마치 한국식은 비합리적이며 비약적인 논리전개를 허용해도 되는 것처럼 되어서 한국식 사고방식을 모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자고로 우리는 학문을 ‘갈고 닦는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는 우리의 조상들이 학문을 지극한 정성으로 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실 학문에 있어서 한국식과 독일식에는 차이가 없다. 우리는 정교함을 소심함으로 핍박하여서는 안될 뿐더러, 대충을 대범함으로 위장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될 것이다. /서봉석 (경기대 법학과 교수)

경기천자춘추/베이컨의 우상

16세기 런던에서 출생한 르네상스후의 근대철학자이며, 영국고전경험론의 창시자인 베이컨의 우상을 생각해본다. 베이컨은 인간지성의 도리의 접근을 방해하는 편견으로서 4종의 이도라 (idora: 우상 또는 환영)를 지적하였는데, 하나는 종족의 우상이고, 또 하나는 동굴의 우상이며, 셋째는 시장의 우상이고, 넷째는 극장의 우상이라고 했다. 인류라는 종족에 대한 보편적인 선입견이 종족의 우상이고, 개인적 편견으로서 마치동굴에 있듯이 자연의 빛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비유한 동굴의 우상, 언어의 부적당한 사용에 기인하여 시장에서 있지도 않은 풍설이 나도는 것과 같은 시장의 우상, 논증의 잘못된 규칙이나 철학의 그릇된 학설과 체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마치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가공의 이야기와 비유되는 것 같은 극장의 우상이 그 내용이다. 편견을 일소하고 실험과 관찰에 기본을 둔 귀납적 방법을 중시한 베이컨은 다수의 사례를 모아서 표나 목록을 만들어 사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주장했다. 올바른 판단과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떠있는 우리가 항상 빠질 수 있는 오류의 바다를 잘 지적해주는 것 같다. 내가 속해있는 집단의 우월성에 빠져있는 모습, 나의 경험이 전부인 것으로 오인되는 현상, 확인되지 않은 사실만으로 얻은 판단의 결론 등으로 우리사회의 혼란이 가속되거나 매도되어 흘러가는 현실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베이컨의 우상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항상 우상과 함께 호흡하며 이런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우상의 궤적 속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의 삶에서 우리는 우상을 발견하지도 못 한 사이에 오늘도 우상의 편견과 판단에 얽매인 채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나라를 위해 중대한 결정을 해야하는 선거철이다. 이 시기에 국운을 제대로 이끌어 갈 대통령을 선택하기위해 눈을 가리는 각종 편견들을 거둬내고,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창문을 닦듯 닦고 싶다. /나진택 (고양의제 21 운영위원)

경기천자춘추/엄부자모(嚴父慈母)

경기천자춘추/엄부자모(嚴父慈母) 김진춘(경기도 교육위원) 초등학교 때 또래들과 함께 들판에 나가 소 풀을 뜯기며 신바람 나게 뛰어 놀다가 참외밭에 들어가 참외서리를 하였다. 한사람이 서너개씩 따 가지고, 도랑에 숨어서 정신없이 먹다가 주인 아주머니한테 발각되었다. 잘못했노라고 용서를 빌었으나 주인 아주머니는 지금까지 도둑맞은 참외값까지 물어 내라며 막무가내였다.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후회를 했지만,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이 사실을 동네에서 엄하기로 소문난 아버지께서 알게 되면 자식에 대한 실망감에 집에서 쫓겨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였다. 집에 소를 끌고 돌아와 소마답에 매어 놓는 순간 집 앞마당에서 참외밭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 아버지한테 댁의 아들이 참외밭을 망쳐 놓았으니 참외값을 물어내라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큰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너무 황당하여 살금살금 도망쳐 친구네 집으로 피신하였다가, 저녁밥도 굶은 채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이 잠든 사이 몰래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께서 “얘 이녀석아! 일어나, 밥먹고 학교 가야지.”하고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식구들이 아침 밥상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젠 죽었구나!’하고 굳은 결심을 하고, 아버지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 허둥지둥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언제쯤 불호령이 떨어질 것인가 긴장하며 기다렸으나, 아버지께서는 아무말 없이 식사를 다 마치시고는 집 밖으로 나가시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네놈 때문에 집안 망신당했다고 창피해서 낯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걱정을 하신다. 이렇게 관용과 사랑으로 한없이 인자하셨던 나의 어머니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나셨고, 그렇게도 엄하셨던 아버지는 지금 졸수(卒壽·90세)가 넘으셨는데도 이순(耳順·60)이 지나 고희(古稀·70)가 되어 가는 자식들에게 가정교육의 부재를 한탄하신다. 예부터 유교권에 있는 우리나라의 가정교육 모델은 엄부자모(嚴父慈母)였다고… 그런데 오늘날 우리 가정은 엄한 아버지로서의 가부장적 권위가 실종되고 모든 것을 관용하고 수용하는 모성의 원리로만 가정교육을 해오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나약하고 버릇없고 질서와 예절을 지킬 줄 모르며 자기 중심적이며,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만연되어 각종 사회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며 말끝을 흐리신다. 그래서 루소는 “가정은 인간교육의 최초의 장”이요, 부모는 “가장 위대한 교육자”라고 하였던가?

경기천자춘추/2005 경기도 방문의 해

경기천자춘추/2005 경기도 방문의 해 김종민(경기관광공사 사장) 지금 세계는 경제적으로 침체에 빠져 있으나, 중국과 한국은 높은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상해와 한국의 경기도는 개발의 활력과 뛰어난 성장세 그리고 풍부한 잠재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새로 취임한 손학규 지사가 설정한 ‘세계 속의 경기도’라는 도정목표는 시의에 걸맞는다. 경기도가 지닌 차별화된 자산을 갈고 닦아 세계에 널리 알린다면 지구촌의 부러움을 사는 일류지역으로 부상하는 전기를 맞게 되리라 본다. DMZ는 분단의 현장이지만 다른 곳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환경과 생태의 복원현장이자, 새롭게 평화와 민족동질성을 회복해가는 살아있는 학습장으로 성가를 지니고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의 모델로 소중히 다루면 타의 전범이 될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천-여주-광주에서 보여준 도자문화의 저력은 높은 상찬을 국제적으로 받고 있다. 수원은 세계 IT산업의 역동적 생산현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인 모두가 호기심과 함께 방문에의 충동을 갖게 되는 대상들이다. 북쪽의 DMZ, 동쪽의 도자기, 남쪽의 IT를 세계가 찾도록 하자. 평화축제와 IT축제를 개발하고, 도자기엑스포를 되살리자. 연계되는 권위있는 국제회의를 다수 발굴하여 세계의 전문가를 경기도로 모으자. 그리하면 국제적 기업인들도 경기도를 찾게 되고, 우리가 땀 흘려 만든 제품들이 보다 쉽게 수출의 활로를 열게 된다. 더불어 고부가가치 관광산업과 컨벤션산업이 일어나 경기도를 살찌우게 할 것이다. 2005년이면 중국방문의 해가 개최되고, 일본 아이치현에서는 만국박람회가 열린다. 우리도 경기도 방문의 해를 함께 개최하여 시너지 특수를 누리자. 2004년 그리스 올림픽, 2006년 독일 올림픽과 겹치지 않게 앞서 말한 3대축제와 관련 국제회의를 연다면 경기도는 세계 속으로, 세계는 경기도 속으로 깊이 들어 올 것이다.

<천자춘추>선거와 여론조사

대통령선거가 19일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냐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언론기관에서는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이러한 관심에 부응하고 있으며, 각 정당에서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선거전략을 짜기에 여념이 없다. 여론조사는 사회구성원을 대상으로 각종 정책이나 쟁점 등에 대해 견해나 의향 등을 파악할 목적으로 행하는 조사를 말한다. 이러한 여론조사는 주로 미국에서 발달하였는데, 대통령선거 결과를 사전에 예상하는 모의투표에 많이 적용되었다. 그 역사는 1824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20세기 초부터 일종의 유행처럼 많은 언론기관이 경쟁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어느덧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여론조사기관이 생겨 수시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번 대통령선거와 관련해서도 지지도 조사를 여러 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각 기관에서 조사된 결과를 비교하면 다소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를 과연 믿을 수 있는가’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여론조사결과에 수반되어 있는 오차에는 표본오차(sampling errors)와 비표본오차(nonsampling errors)가 있다. 표본오차는 대부분 비슷한 표본규모와 추출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조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비표본오차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여 조사결과에 차이가 발생한다. 그 예로서 질문 문장에 두가지 의도를 동시에 포함하게 되면 응답자에게 혼란을 주어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없으며, 여러 명중에서 한 명을 선택하는 경우 누구를 먼저 배열하느냐에 따라 조사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박빙 승부의 경우 이러한 오차에 따라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다. 최근 여론조사가 우리사회에 주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그 결과가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bandwagon effect). 따라서 잘못된 조사결과로 인하여 정책이나 쟁점이 잘못 결정되지 않도록 여론조사기관에서는 통계적 조사기법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토대로 과학적인 조사체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통계청 경기통계사무소장 정 규 남

<천자춘추>낮추는 마음

/유승렬(안성문화마을원장·도예가) 내가 있는 안성은 조선 3대 의적으로 이야기되는 장길산 임꺽정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선배 미술가의 이야기처럼 ‘왼쪽에는 꺽정이 형님 오른쪽에는 길산 형님을 모시고’작품을 하는 경지는 안될지라도, 나름대로 우리 선조들이 남긴 정신과 혼을 배우기 위해 그 임꺽정과 장길산의 이야기가 어려 있는 사찰을 찾곤 한다. 한때는 거찰이었다고는 하나 이제는 은행나무와 잎이 떨어진 감나무가 반겨주는 사찰에는 매번 느끼는 것은 “낮추는 마음”이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우리 선조들이 그랬듯이 그 법당 한켠에는 묵묵히 자신의 소망을, 염원을 담아 불공을 드리는 이웃들이 있다. 자신을 낮추는 일일게다. 자신을 낮추는 속에는 삶을 살아가는 소박한 지혜를 깨달을 분들일 게다. 우리는 낮추는 사람, 겸손한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실제로 사회적 지위나, 성취에 있어 나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낮추어 오는걸 보면 저절로 존경의 마음까지 생긴다. 그렇지만 내가 낮추기란 쉽지 않다. 삶의 지혜란 이런 것이 아닐까? 난 내 직업이자 삶이라 할 수 있는 도자기 작업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도자기를 만들다 보면, 일은 사람이 하지만 그 결과는 하늘이 정한다는 말이 실감날 때가 많다. 확신하고 시작한 작품도 막상 가마에서 꺼낼 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때로 아주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한 작품도 막상 가마에서 꺼낼 때 내 의도를 벗어나 당황케 한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새로운 구상으로 새로운 작품을 시도할 때나 익숙한 작업을 할 때나 항상 가지는 마음은 최선을 다했으니 나머지는 결국 하늘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내 욕심, 내 재주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흙과 불과 공기와 선조들의 얼이 녹아서 그것이 내 손끝을 통해 표현되는 짓이라는 것을 나는 내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그런 마음을 구현한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과 내 직업이 하나가 되는 것, 삶과 분리되지 않은 작품활동은 내 소망이다.

<천자춘추>‘병원의 친절’

/손병관(인하대병원 진료부원장) ‘아무개씨 계십니까?’‘예, 그분의 전화번호는 xxxx인데요 제가 한번 돌려보겠습니다만 혹시 연결이 안되면 그 번호로 다시 하십시오’ ‘예 고맙습니다’로 이어진 전화 대화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려는 데 사무실에 쌓여있는 결재서류 속에서 오늘도 병원에서 마찰이 있었던 보호자의 ‘고객의 소리’ 함에서 나온 내용이 기분을 상하게 한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은 환자 그리고 보호자에게 병원의 모든 직원은 최선을 다하여 봉사하여야 한다. 서비스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대표적인 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환자나 보호자에 의해 지적된 직원에게 어떤 형태로든 시정하도록 지시한다. 직원과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드물게는 오해 속에 그런 부딪침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는 때도 있다. 또한 병원을 찾는 분들이 병원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병원과 000에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말이 나온 것 자체에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갖는다. 최소한 병원에서는 그런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잘 해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게 느끼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병원에 대한 오해에서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없었으면 한다. 순서를 잘 지키며 열심히 환자를 관리하는 외래 직원에게 ‘너희들 직원 아는 사람이 오면 먼저 해 주는 것 다 알고 있어.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거야!’라며 고성을 지르는 보호자의 말 끝에 ‘나도 전에 다른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다 알고 있단 말이다’라는 말을 듣고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혼자 쓴 웃음을 지은 일도 있다. 최선을 다하여 봉사하는 것을 모든 환자들이 느끼는 병원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다짐을 하는데 뒷 장 ‘고객의 소리’의 내용 ‘작은 것까지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 의사선생님이 고마웠어요’ ‘별거 아닌 일에도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 간호사에게 감사 드립니다’라는 칭찬의 소리에 다시 힘을 얻고 진료실로 향한다.

<천자춘추>Lernen 과 Studieren

내가 대학강의를 하면서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것이 바로 학생들의 수동적으로 강의에 임하는 자세이다. 이러한 자세를 개선해보고자 늘 첫 시간에는 학문에 있어서 교수의 역할이 트레이너임을 강조하곤 한다. 즉 주어진 강의시간에는 학생들자신이 능동적으로 학문활동을 하는 것이고, 강사는 학생들의 문제의 접근능력과 해결능력의 향상을 위해 지도한다는 방침을 세운다. 그런데 이러한 낯선 학문방식에 익숙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그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닌 것 처럼 보인다. 결국은 강사인 내가 일방적인 정보전달과 문제의 접근방법등 모든 문제를 직접 강의하게 된다. 이는 우리사회의 형성된 학문에 대한 사고방식의 폐단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의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학문에 대한 우리의 언어습관이 아닌가 한다. 언어는 그 사회 의식구조의 산물이고 또 장차 그 사회의 의식구조를 지배해 나아가는 상호 유기적인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독일과 한국의 언어의 차이와 그에서 비롯되는 학문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독일의 경우에는 그룬트슐레(초등학교에 해당)에서 김나지움(고등학교에 해당)까지는 Lernen(배우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대학에서는 Studieren(연구하다 또는 탐구하다)이라는 용어를 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배운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언어의 차이는 결국 대학의 학문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하겠다. 독일의 대학, 특히 법학과에서의 강의는 학생들이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듣는 것이고, 사건풀이와 세미나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사건풀이는 체계적 논리구성능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이 과정이 법학과의 중심 커리큘럼을 차지하고 있다. 이 문제풀이방식의 학사운영은 “탐구하다”라는 의미에 걸맞게 학생들의 능동적인 학문활동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반면에 “배운다”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학사제도는 강의중심의 학문활동의 반영이 아닌가 한다. 이 “배운다”라는 학문자세는 은연중에 대학에서 학문의 방법론을 지배하여 결국 피동적인 이해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피동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사회에서 학생들은 필연적으로 강사로부터 학문의 모든 정보를 제공해주고, 분석해주고, 결론과 심지어 모범답안까지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배우러” 왔기때문인 것이다. 이제는 대학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이 변화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기천자춘추/교원의 성 할당제

경기천자춘추/교원의 성 할당제 나진택 우리 사회의 성별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으로 아직은 미흡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각 분야의 여성할당이 적극추진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자료에 의하면 초등학교의 경우 여교사의 비중이 1965년 25.5% (2만207명)이었던 것이 2000년에는 교원의 66.0%(9만 825명)로 증가했다고 한다. 물론 중등교원은 56.8%(5만1407명), 고등교원은 29.7%(3만1030명)로 여교사의 비율이 적정하거나 균형이 유지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교원의 경우 여성할당제를 실시하지 않았음에도 교직이 가지고 있는 업무수행의 특이성 때문에 여교사의 증가가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이다. 할당제를 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관해 일정정도의 제도적 시행으로 균형을 유도하고자 함일 것이다. 지금은 중학생인 필자의 여식이 초등학교의 많은 추억 중에 인상에 남고 기억되는 일로 4학년 때 남자였던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오른 겨울 북한산행, 6학년때 제자들을 눈물로 졸업시킨 교직생활 초년생이던 처녀선생님과의 추억을 꼽는다. 또 초등학교 6년인 아들은 4학년때 남자 담임선생님을 제일 좋아했다. 아직 많은 변화를 겪어야 하는 시기인 아들은 담임선생님을 자신의 모델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학창시절의 기억은 선생님과 친구의 일이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업무특성과 우리의 교육현장의 형편상 어려움으로 교사에 의존해 해결해야하는 학교의 많은 업무중에 남자 교사들에 대한 의존도가 집중됨에 따른 문제를 토로하는 일선학교장의 고충을 들은적이 있다. 이상적인 교육이 아쉬운 현실에서 교원의 적절한 성 균형 유지가 필요함을 느낀다. 고등학교에서의 여교사 증가가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모습도 기대하면서 적정한 교원의 성 할당제를 실시하면 교단의 바른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경기천자춘추/인재(人材) 양성과 교육개혁

경기천자춘추/인재(人材) 양성과 교육개혁 김진춘 (경기도 교육위원) 냉전의 시대에는 군사력(軍事力)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였고, 20세기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는 경제력(經濟力), 즉 돈 있는 나라들이 지구촌을 지배해왔다. 그러다가 21세기 지식기반 사회, 다양성과 자율을 바탕으로 한 정보화 사회에 와서는 인력(人力)을 가지고 경쟁하는 사회가 되었다. 막강한 군사력도 경제력도 인력 개발 없이는 확보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를 창출해낼 수 있는 인력을 얼마만큼 양성해서 확보하고 있느냐를 가지고 국가 경쟁력을 평가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어느 국가나 사회를 막론하고 그 사회 또는 집단을 이끌어가는 5%수준의 엘리트 집단 또는 리더그룹이 있는데, 이들을 창조적인 소수자(Creative minority)라고 한다. 이들의 아이디어에 의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내면, 나머지 사람들은 이들이 창조한 문화를 더불어 먹고 사는 것이다. 이같은 인력 경쟁 사회에 있어서는 인력관리, 인력 개발 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있어야 그 집단이나 국가는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히딩크 축구 감독처럼 뛰어난 인력관리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만이 축구신화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도 기술 중의 가장 고난도 기술이 인간을 다루는 기술이라고 하였다. 사람을 잘 다룬다는 것은 리더십을 가지고 경쟁력 있는 인력을 창출해 낼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교육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할 만큼 시대사조는 변하고 있다. 다양성에 바탕을 둔 평등교육도 중요하지만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수월성 교육을 통하여 경쟁력 있는 인력을 얼마만큼 양성해 낼 수 있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다. 교육개혁도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경쟁력 있는 인재(人材)를 양성해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천자춘추/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들

경기천자춘추/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들 경기관광공사 사장 김종민 요즈음 세상이 어수선하다. 자신에게만 유리하도록 판세를 바꾸어 보려는 욕심 때문이다. 이기적 타산이 도처에서 충돌하고 파열음을 낸다. 한치의 양보가 없는 치열한 싸움 속에서 정의와 질서, 평화와 공존, 이타와 합리, 품위와 겸양은 설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 합종연횡이나 기업간의 합병에서 기선제압을 위한 샅바잡기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술수가 처음부터 난무한다. 공무원조합과 공무원노조, 쉬워 보이는 작명을 놓고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국제적으로 눈을 돌려도 요란하고 어지럽다. 이라크 무기사찰은 전쟁의 예고처럼 들리고, 북한 핵 문제는 민족의 내일을 어둡게 한다. WTO나 OECD 회의장 역시 국익의 대결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우연한 자리에서 혼돈스런 세태가 화두가 되었다. 우리들을 불안하게 하는 이런 저런 일들이 회자 되었다. 세상이 시끄럽고 경제가 불안해도 정치가 잘 되면 마음 붙이고 살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 분이 인간사나 정치가 잘 되기 위해서 없어져야 할 행태를 조목조목 꼽았다. 하나는 침소봉대(針小棒大)이다. 바늘만한 것을 몽둥이만하다고 심하게 과장한다. 둘째는 아전인수(我田引水)이다. 제 논에 물대기처럼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남을 오도한다. 셋째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이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끌어다 대어 억지로 조리에 닿도록 하는 일이다. 마지막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도둑이 되레 매를 드는 것처럼 잘못 해놓고도 상대방을 나무라고 윽박지르는 일이다. 듣고 보니 어떤 설명보다 오늘의 혼란을 알기 쉽게 이해시켜 준다. 요란하게 문제가 된 일들 중에 억지 논리나 궤변이 개입되지 않은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마음이나 편히 지내고 싶은 소시민들을 황당하게 만들지 않는 사회가 건강하고 좋은 사회다. 원칙과 정도는 언제 쯤이면 자리 잡을까.

경기천자춘추/경기도 국악의 전당

경기도에는 유·무형의 전통문화유산이 무척 많다. 무형의 대표적인 유산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인 경기민요다. 경기민요 외에 웃다리(경기·충청지역)의 대표적인 풍물인 평택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이 있고, 소리와 음악과 춤사위가 빼어난 경기도도당굿(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도 있다. 이외에 안성남사당 풍물놀이, 포천 메나리, 김포의 통진두레놀이 등 경기의 소리와 민속은 풍부하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토양을 갖고있는 경기도에 경기국악의 맥을 잇고 이를 발전시킬 ‘경기도 국악의 전당’이 건립되고 있어 국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상당히 뜻깊게 생각한다. 경기도의 국악(樂·歌·舞)은 서울이나 남도에 뒤지지않는 많은 ‘꺼리’를 갖고있다. 그러므로 경기도 국악의 전당 건립은 서울이나 호남 중심의 국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중부지역 국악을 활성화 시키고 경기국악의 우수성을 계승 발전 시키는 역할을 하게될 것이란 기대다. 경기도 국악의 전당은 단지 경기도에 국한된다기 보다는 인천을 포함한 서해안지역, 강원도, 충청도 일부지역 그리고 통일시대를 앞두고 황해도까지를 망라, 중부지역 국악의 메카로서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하는 중요성에 더욱 의미가 크다. 지난 6월 용인시 기흥읍 보라리 한국민속촌 옆에 착공한 경기도 국악의 전당은 183억원의 예산을 들여 2004년 완공 예정이다. 1만760평의 부지에 연면적 1천648평 규모로 575석의 공연장과 전시실, 연습실 등을 갖추게 된다. 바람이 있다면 경기도 국악의 전당이 단순 공연장 수준을 벗어나 명실상부한 경기국악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건축하는 시·군 문화예술회관이 300억∼5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에 비해 경기도 국악의 전당 예산이 너무 적고, 공연장 등 시설이 비좁아 아쉬운 감이 있다. 지금같은 공연장이라면 도립국악단원들이 무대에 서기도 힘든 형편이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경기국악의 메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채주병 (경기도국립국악단 악장.거문고)

경기천자춘추/통계조사와 통계응답

“소장님, 통계조사하기가 너무 너무 힘들어요.” 퇴근이 임박한 시간에 가구를 대상으로 통계조사 협조를 부탁하기 위하여 출장 나갔던 직원이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다. 출장지역이 아파트 밀집지역인데 처음에는 경비실에서부터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것이다. 지난 번 방문했던 가구에서 ‘통계청에서 다음에 또 방문을 하면 절대로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다면서 경비아저씨가 ‘통계청 때문에 귀찮아서 죽겠다’며 출입부터 통제하고 나선다는 것이다. 말도 못시키게 하는 걸 통계의 중요성을 설명하여 겨우 대상가구를 방문하게 되었단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누구세요?” “예, 일전에 왔었던 통계청 직원입니다” “경비실에서 얘기 못 들었나? 통계청에서 오면 절대로 올려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경비아저씨를 바꾸든지 해야지 안되겠네 정말!” 우리는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다. 많은 정보를 이용하여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이용되는 정보 중에서 통계의 비중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통계는 주로 현장 조사를 통해서 작성된다. 현장조사 없이는 아무리 많은 우수한 인력을 투입하더라도 제대로 된 통계를 생산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현장조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응답자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응답자입장에서는 응답부담과 사생활 노출이 무엇보다도 중요시된다. 통계청에서는 응답자의 응답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중복되는 조사항목을 축소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통계조사시 개인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통계법)를 마련하여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통계작성과정에서 수집된 개인의 비밀에 관한 사항은 법으로 보호되고 있고(통계법 제13조), 통계작성에 종사하는 자가 직무상 알게된 사항으로서 개인의 비밀에 속하는 사항을 누설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통계법 제14조).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통계법 제23조). 우리 주위에는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그 중심에 정확하게 작성된 통계자료가 없다면 중요한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제대로 된 통계 생산을 위하여 통계조사에 협조를 부탁드린다. /통계청 경기통계사무소장 정 규 남

천자춘추/ 송무백열(松茂栢悅)

천자춘추/ 송무백열(松茂栢悅) 이천시장 유 승 우 옛날부터 전해오는 우리 속담중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가까운 친척이나 동료 등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앞서나갈 경우 은근히 질투를 느낀다는 뜻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중국 고담(古談) 가운데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말이 있다. 어의적(語意的) 해석으로는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뻐한다’라는 의미이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나무의 종류는 다르지만 사시사철 푸르다는 동질성(同質性)을 갖는다는 차원에서 사촌과 같은 관계에 있기때문에 전자(前者)의 우리 속담과 비교할 때 후자(後者)가 훨씬 더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남의 잘됨을 시샘하기 보다는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는 마음은 바로 칭찬문화의 발로로서 우리 사회를 밝게 하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시기하고 질투하는 분위기가 팽배할 때 우리는 살벌함마저 느끼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지나친 경쟁심리에서 나타나는 결과인 듯 하며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국가 공동체가 상생(相生)보다는 상극(相剋)으로 치달리게 될 때 사회가 불안하며 마침내 불행한 역사를 초래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의 수많은 당쟁이나 피비린내 나는 사화(士禍)로 역사가 얼마나 후퇴를 하였던가. 근대화를 더디게 하고 결국은 망국(亡國)의 한(恨)까지 남기게 되었으니 우리조상 모두가 저지른 자업자득의 결과라 하겠다. 생각컨대 우리는 조직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생존을 위한 경쟁원리는 오늘의 인류문명을 발전시켜온 원동력으로 그 공로가 높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열되어 상대방의 정당한 노력까지 시기하고 질투할 때 그 결과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돌아옴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잘됨을 축하하고 칭찬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충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를 않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버리자. 그것은 불행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송무백열’하는 마음을 길러 우리 공동체를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 영양소가 되게 하자.

<천자춘추>평범한 삶의 어려움과 보람

/유승열(안성문화마을 원장, 도예가) 지역에 잘 알고 지내는 후배가 표정이 다르다. 얼굴 가득 기쁜 기색이 역력하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집사람이 아기를 가졌다고 한다.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다. 이 후배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그래서 은근히 아기소식을 기다리던 중임을 알고 있던 터라 나 역시도 진심으로 기쁜 마음이 들어 함께 즐거워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이제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첫아이를 가졌을 때 느꼈던 기쁨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나와 가장 큰 경사중의 하나가 어쩌면 부모가 된다는 것일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기쁨일 게다. 그 기쁨의 와중에 또한 적잖은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른으로 책임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아 가는게 아닌가 싶다. 우리 부모의 삶이 그러했고 내 삶이 또한 그러하고 내 아이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고 사람들의 삶이란 거의 비슷비슷할 것이다. 부모의 보살핌아래 한편으로 부족한 것이 많은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소박한, 혹은 설레이는 희망을 안고 어린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첫 직장에 들어가거나 대학생활을 하면서 나름의 좌절과 삶에 대한 가치관을 갖게 되고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과 일생을 함께 할 배우자로서 언약하게 되는 시기가 대략 20대에서 30대초반의 나이가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여 그 소중한 결실로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 우리 아이에게는 보다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 애쓰면서 한편으로는 20살 시절의 꿈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나름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가 내 나이 30대 후반과 40대 초의 삶이 아닐까 싶다. 우리 부모의 삶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리하여 자식들이 자리잡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60대 이후의 일상에서 큰 행복을 누리는 것이 삶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로 평범한 삶일 것이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큰 우환없이 자잘한 고통과 기쁨속에 하루 하루 살아 나가는 삶, 평범한 삶, 그런 삶을 욕심내며 살고 싶다.

<천자춘추>시어머니

/여순호(경기도여성회관장) 이 해가 지나면 시어머니께서 90세가 되신다.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것을 뵐 때마다 감사하다는 마음이다. 시어머니는 10남매를 혼자 기르셨다. 40을 갓 넘어 막내 시누이 첫 돌날이 시아버지 삼우제 날이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돌떡을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역시 시어머니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 어머니는 적은 농사를 지으면서 10남매를 2년차로 학교에 보냈으니 보통 어머니 같으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나와의 첫 만남은 1974년 늦은 가을이었다. 결혼 문제로 만나 뵙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를 물으시더니, 결혼을 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그 자리에서 대답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당황하며 “제가 결혼을 하고싶어도 제 마음대로 못합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허락을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가끔 처음 만나자마자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느냐고 하면, 내 아들 결혼 문제인데 내가 하고싶은 말을 왜 못하느냐고 웃으신다. 어머니는 가식이 전혀 없는 분이다. 그래서 건강하신 것 같다. 어머니와 나는 20여년을 함께 살았다. 셋째인 우리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오히려 어머니가 내 일을 많이 도와 주신다. 나는 성당과 목욕탕을 어머니와 함께 가곤 하는데 딸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딸처럼 보인다니 기분이 좋다. 어머니와 나는 벽이 없다. 서로 할 말은 하고 살기 때문에 오해가 없다. 가끔 저녁이면 “어머니 약주 한잔 하시겠어요”라고 말씀드리면, “네가 먹고 싶어서 그러는 구나” 하시면서 식탁에 앉으신다. 어머니도 약주를 하고 싶으면 “얘야 술 한잔 할래”한다. 그러면 나도 “어머니 약주 잡수시고 싶으시군요”하며 한잔씩 나누곤 한다. 그러다가도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으면 단호한 말씀도 하신다. 그럴 때는 “역시 시어머니는 시어머님이세요”라고 하면 “너도 며느리는 며느리더라”하신다. 이때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소리내어 웃는다. 이렇게 살다보니 다정한 모녀 같은 정을 느끼며 산다. 어머니께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 결혼하고 증손을 볼 때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천자춘추>‘독감과 감기’

/손병관(인하대병원 진료부원장) 금년에는 변종 독감인 소위 ‘슈퍼 독감’이 유행할 것이라고 한다. 독감 바이러스는 병을 일으키는 항원이 변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심한 변종은 10년 이상의 주기로 일어나지만 경한 변종은 거의 매년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금년에는 심한 변종이 예상되어 유럽의 바이러스 학자들이 모여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변종 때문에 독감 예방접종은 매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노약자를 포함하여 심장병이 있다거나 천식 등 만성 호흡기질환이 있는 환자는 꼭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첫 해에는 1개월 간격으로 두 번, 그 후는 매년 한 번씩만 접종 받으면 된다. 독감과 감기는 전혀 다른 병이다. 감기가 심한 것을 독감으로 생각하는 환자가 많은데 두 질환은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독감 예방접종을 한다고 하여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라도 점도 지적하고 싶다. 흔히 ‘감기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틀린 것이다. 그러나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많은 심한 질환이 초기에는 감기 증상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독감은 물론이고 폐렴, 천식, 결핵, 간염, 에이즈, 심지어 많은 종류의 암까지도 처음에는 감기라는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의 입장에서는 감기 증상을 잘 구별하여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고, 환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나타난 증상을 그냥 감기겠지 하고 오랫동안 소위 ‘감기약’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 거의 같은 시기에 보도된 의사들이 ‘단순 감기’를 다른 병으로 진단하며 약을 많이 써서 감기에 의한 보험 청구액이 암 치료를 위한 보험 청구액보다 많다는 보도를 보며, 역시 감기는 가장 흔한 병인 것을 확인하며, 감기라고 진단된 환자 중에 적지 않은 수의 중한 병이 포함되어 있을 것도 또한 생각하며, 감기 증상을 정확히 구별해 내기 위해 애쓰는 모든 동료 의사들의 애씀이 정당하게 평가 받기를 기대해본다.

<천자춘추>어느 사법시험 채점평에 대한 소고

/서봉석(경기대 법학과 교수) 나는 언젠가 우리나라 사법시험 케이스문제의 시험답안에 대한 심사위원의 채점평을 읽었다. “문제점의 파악이나 논리전개는 매우 양호하나, 학설이나 판례의 소개와 비교없이 너무 주관적인 논리를 전개하여 점수를 잘 줄 수 없다” 라는 채점평이었다. 아마도 이 답안을 작성한 수험자는 그 채점평의 내용으로 미루어 사법시험에 낙방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번 시험에서는 많은 학설과 판례를 소개하고 비교하기 위해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유학시절 나는 6학기가 될 때까지 단 한번의 학과시험도 붙지 못하였다. 당시 나는 부족한 실력을 만회하기 위해 교과서를 반복하여 읽고, 이를 암기 하기 위해 전전긍긍하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시험에서는 내가 암기했던 모든 학설들을 지면에 옮겨놓기에 급급하였다. 급기야 나는 담당교수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낙방 이유를 따져 물었다. 그의 말인즉슨 “주체적인 논리 전개없이 백화점 식으로 학설을 나열하는 것에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출제된 문제는 담당교수 자신이 변형 창조해 낸 문제이기 때문에 학설이나 법원이 이에 대해 판결을 내린적이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판례란 있을 수 없다” 는 것이었다. 이 두개의 극명하게 상반되는 채점평은 두 학문세계간의 커다란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만일 위의 수험자가 독일에서 그와 같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주체적으로 그럴듯한 논리전개를 했음”이라는 채점평을 받았다면 매우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채점평은 독일에서는 최대의 찬사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학계나 판례가 얼마나 꼭 소개되어져야 할 만큼 정교한 논리의 주체적인 학설을 펴고 있는가? 또 주체적인 체계파악 능력과 논리적 구성능력이 없이 학문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도 학문에 대한, 그리고 법률인들의 대대적인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경기천자춘추/티끌과 들보

경기천자춘추/티끌과 들보 나진택(고양의제 21 운영위원) 들보(beam);지붕을 받치기 위해 두 기둥을 가로질러 걸쳐 놓은 나무. 신약에서 예수는 남의 허물은 보면서도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책망하면서, 작은 티끌은 보나 커다란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말씀 하셨다.(마7:3) 사람이 살아가며 남의 허물을 덮어주기 보다는 허물을 드러내어 보이므로 자신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티끌과 같이 미미한 타인의 허물을 가지고 마치 들보와 같이 커다란 문제인양 말해서 실제는 들보와 같이 커다란 자신의 허물을 감추고자 하는 것이다. 남의 허물을 들보와 같이 드러내어 만천하에 공개하는 시기가 왔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각 당과 후보 진영의 선거대책이 기본적으로 타 후보의 허물을 강조 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나라의 일꾼을 뽑는 일은 개인간의 사사로운 정을 떠나서 냉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과정으로 최대한 후보의 자질을 국민이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문화가 사사로운 정의 문화와 혼재되어 있는 이유로 이제는 들보와 같은 허물도 티끌과 같이 여겨 그냥 넘기기를 바라는 경향도 있다. 지연과 학연으로 인해 올바른 선택 보다는 무조건 적인 선택을 오래전에 결심한 유권자도 있다. ‘나는 무조건 OO당 이다’ ‘나는 무조건 아무개는 싫다’는 식이다. 무조건 이라는 무책임한 감정의 판단으로 인해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고 있음을 있지 말아야 한다. 이제 서서히 무르익어 가는 큰 일꾼(필자는 정치인을 일꾼이라고 생각함)을 뽑는 일에 차분하고 끈기 있게 마지막 한 순간까지라도 티끌만한 허물도 들보와 같이 보면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이웃의 사사로운 허물은 티끌로 여겨 덮어주고 선출직 일꾼의 허물은 들보로 보자.

경기천자춘추/초선 위원의 고민

경기천자춘추/초선 위원의 고민 김진춘(경기도 교육위원) 제4대 경기도 교육위원회 초선위원이 되어 처음으로 교육청에 대한 행정감사와 2003년도 교육비 특별회계 세입·세출 예산안 심의를 하였다. 40여년동안 일선 교육현장에서 교육을 하고 교육행정을 수행해 오면서 교육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했던 교육공급자가 어느날 갑자기 교원, 학부모 학생들 편에 서서 교육 수요자의 눈으로 경기 교육 전반에 대하여 문제점을 진단하고 교육성과를 평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 것이다. 겸허한 열린 마음으로 스스로가 걸어왔던 교직을 반성해 보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경기 교육 발전을 위하여 보탬이 되고 경기 교육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길인가 고민하게 된 것이다. 2003년도에도 8만여 교원들이 2백만 학생을 교육해내기 위하여 4조7천억원이란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나 쾌적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학교신축과 교실 증축 등 교육시설 확충과 질 높은 교육을 해내기 위한 인력자원 확보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이같은 실정을 교육 수요자들이 공감하고 한푼이라도 내 주머니 돈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전기 한등, 물 한 방울이라도 아껴 쓰고 절약해야 하는데 소모성 예산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산뿐만 아니라 인력 자원의 부족은 경기 교육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 지식 기반 사회란 인력 경쟁시대를 의미한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창출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인력을 확보한 집단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경기도의 경우 학급을 담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절대 교원수가 부족하여 퇴직한 고령 교사들을 초빙하여 기간제 교사로 활용해도 절대수가 부족한 실정이다. 교실도 부족하고 선생님도 없는 상황에서 교육의 질을 운운한다는 것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요구가 아닌가 한다. 이같은 교육여건 속에서도 으뜸 경기 교육 실현을 위하여 헌신적 봉사를 아끼지 않고 있는 8만여 교육가족들의 경기 교육사랑이 있기에 경기 교육은 내일을 향해 오늘도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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