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롭까, 톨큰, 발치카. 작가 이은선(32)의 소설제목들이다. 제목이 특이할뿐 아니라 이은선의 소설에는 우리 소설사에서 보기 드문 공간이 등장한다. 작가의 이력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작가는 소설가가 되기 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의 자격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세계언어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를 지낸 시기가 그중 하나다. 그래서 이은선의 작품 제목들에는 이채로운 단어들이 등장한다. 까롭까(상자), 톨큰(판도라), 발치카(러시아 맥주 대표브랜드)가 그러하다.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작가의 당시 견문이 빚어낸 제목이다. 소설의 배경도 물론 우즈베키스탄의 어느 마을들인데 채도 높은 색상과 피부에 와닿는 온도 등으로 생생하게 묘사된다. 중앙아시아의 낙후된 곳이나 눈사태와 크레바스의 위험을 안고 사는 고산지대 혹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커피 재배지가 등장한다. 이처럼 이은선의 소설들은 한국 소설이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해나가고 있다는 징후로 볼 수 있으며 나아가 그 성취에 있어서도 이 신예 작가의 기여는 크다. 이은선의 첫 소설집 발치카 No. 9(문학과지성사刊)이 더 반가운 이유다.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코끼리를 통해 뛰어난 상징적 압축미를 보여주며 등단한 이은선이 그간 꾸준히 발표한 작품 10편을 모았다. 소설집 앞쪽에 연달아 배치된 카펫, 까롭까, 톨큰은 수로(水路) 3부작에 해당하는데 부제가 말하듯 물이 작품의 중심핵을 이룬다. 우즈베키스탄 북쪽과 카자흐스탄 남쪽이 만나는 접경지대에 위치한 아랄 해는 한때 세계 4대 호수라 일컬어지는 내해였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사람들이 면화 재배를 위해 아랄 해로 유입되는 강물들을 중간에서 끊어 관개용수로 사용하는 바람에 이 풍족한 바다는 현재 70% 이상 사라지고 말았다. 목화산업과 정치와 군의 결탁은 아랄 해를 둘러싼 생명들이 말살되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방치했다. 물이 사라진 땅은 메마르고 염도마저 높아 작물이 자라지 않고 인근 주민들은 물 부족과 빈혈, 폐질환, 갑상선 질환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카펫의 어린 화자 슈흐랏이나 샤흐노자는 얼굴이 붓고 눈이 튀어나오는 병에 걸려 있는데 이는 갑상선항진증의 증상이며 바세도우씨 병이라고도 한다. 까롭까의 대령은 한 지역의 독재자인데 이곳의 재화와 노동력, 그리고 젊은 여자들은 모두 대령의 소유다. 톨큰은 이제 막 관개 사업이 시작되려는 마을에서 군인과 주민들이 대치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독자는 이 세 편을 통해 한 세계가 폐허로 변해가는 과정을 역순으로 읽게 되는데, 완벽하게 황폐해질 때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바깥으로 내질러지지 못한 구조요청들을 곳곳에서 확인하며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는 경험을 할 것이다. 값 1만3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영조 38년(1762) 윤 5월 13일, 조선사 최고의 비극이 일어난다.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히게 된 것. 그리고 8일 만에 죽고 만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죽음의 미스터리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 SBS 월화드라마 비밀의 문(의궤살인사건)으로, 조선사 최고의 참혹사에 대한 관심을 높아지고 있다. 소설과 역사서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글쓰기와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저술가 이수광이 때마침 신작 사도세자 비밀의 서(아시아刊)를 냈다. 팩션역사서를 모토로 한 이 책은 사도세자 죽음의 비밀이 담긴 금등지사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과 갈등을 축으로 치열하게 다룬 작품이다. 훌륭한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영조,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 슬픔으로 정신질환을 앓는 아들 사도세자, 그런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비통한 아버지 영조, 한편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바라보는 또 다른 아들 이산(훗날 정조)의 비통한 심정을 그리고 있다. 사도세자 죽음의 미스터리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노론의 사주, 정신질환 행동에 대한 처벌, 나경언의 고변, 영빈 이씨의 밀고 등. 이 책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기획한 인물이 다름 아닌 사도세자의 아버지이자 조선의 제21대 왕인 영조라고 말한다. 정신병자가 보위에 오르면 나라가 망하게 되기에 사직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였다는 것이다. 값 1만5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읽기 쉬운 건강서적이 나왔다. 보건복지부 지정 척추전문병원 수원 윌스기념병원 박춘근(55) 병원장과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가 공동 저술한 튼튼한 허리 든든한 인생(메디파크 刊)이다. 치료차 병원을 방문했던 이봉주와 박 원장이 하루 30분 체조만으로도 척추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의기투합한 것이다. 자칫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의학지식을 두 사람의 대화체로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어른 등 세대별 척추 건강법과 허리를 고치는 운동, 일상에서 척추를 관리하는 방법 등을 담았다. 특히, 박 원장이 진료한 사례를 곁들여 독자 혹은 환자들의 공감도를 높였다. 30대에 발생한 퇴행성 디스크, 파워블러거가 겪은 통증, 초등학교 고학년에게서 주로 발생하는 척추측만증 등 일반인이 알아둬야 할 사례들이 눈길을 끈다. 또 치료법보다 예방법을 비중있게 다뤄 집에 두고 볼만한 건강서적이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척추 이상 자가진단법과 회사에서 5분 동안 할 수 있는 스트레칭 등이 그러하다. 전설적인 마라토너 이봉주의 성공 스토리는 색다른 읽을 거리다. 한편, 박 원장은 10여 년 전, 미국 현대 척추외과의 선구자이자 스승이기도 한 윌스 교수를 기려 수원에 윌스기념병원을 개원, 2011년 국내 최초로 보건복지부 지정 척추전문병원과 의료기관 인증을 동시에 획득했다. 값 1만5천원.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천강에 비친 달 / 전창주 著 / 작가정신 刊 조선왕조, 최고의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세종대왕. 그의 업적 중 가장 위대한 업적을 꼽는다면 백중의 백은 단연 한글창제를 꼽는다. 당대는 물론이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민의 역사와 전통, 정서와 의식이 한글이라는 정신 유산을 통해 발현됐다. 하지만 세종 이외, 한글창제의 주역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한사람이 있다. 바로, 신미 대사다. 당대 최고의 범어(梵語) 전문가이자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신미 대사는, 그러나 창제에 있어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여길 수 있으나 이는 실록과 원각선종석보, 용재총화 등 다양한 사료에 기록된 팩트다. 이 소설은 사실에 근거해 기존 우리가 알고 있던 한글 창제에 대한 상식을 붕괴한다. 방대한 지식과 예리한 역사의식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탄탄하고 웅장한 역사적 서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값 1만5천원. 손톱공룡 / 배봉기 著 / 바람의아이들 刊 준호에게는 작은 돌 하나가 있다. 별이 된 엄마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돌에서 공룡이 튀어나왔다. 손톱만한. 더욱이 이 공룡은 말도 할 줄 안다. 자신의 이름이 무지무지하게 단단한 뿔이 우뚝 솟은 머리란다. 너무 길어 준호는 그냥 두두라 부르기로 했다. 두두는 준호와 닮았다. 엄마가 없는 것도, 낯선 세상에 홀로 떨어진 것도. 그렇게 서로는 서로에게 힘이 된다. 또 당근을 먹으면 쑥쑥 자라는 두두의 존재는 그 자체로도 즐겁다. 또 자신을 괴롭히는 반 친구들에게도 뾰족한 이로 혼도 내준다. 아동소설 손톱공룡은 판타지적인 요소를 갖춘 아이들을 위한 힐링 동화다. 아이에게 엄마의 부재는 엄청난 결핍이다. 그리고 그 결핍을 채울 또 다른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배봉기의 이 동화는 삶의 가장 비극적인 지점에서 차츰 회복돼 가는 준호의 이야기다. 값 8천500원. 중학생 엄마노릇 제대로 하기 / 권태욱 著 / 홍반장 刊 사교육 없이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는 것은 부모들의 보편적 욕망이다. 하지만 사교육이 판치는 입시공화국에서 이는 공염불에 가깝다. 이 책은 명문대 입학이라는 기본 명제에서 출발하는 입시서다. 뉴질랜드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는 저자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 스스로 공부하도록 하는 것은 명문대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저자의 오랜 경험이 자신감으로 자리한다. 명문대 출신이 남들보다 앞서가는 데는 지식보다 입학할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라 믿는 이들에게 구미가 맞을 듯하다. 값 1만2천원. 이주의 베스트셀러 1. 여자 없는 남자들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2. 21세기 자본 | 토마 피케티 | 글항아리 3.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 열린책들 4. 원피스 75 | Eiichiro Oda | 대원씨아이 5. 비밀의 정원 | 조해너 배스포드 | 클 6. 어떤 하루 | 신준모 지음 | 프롬북스 7. 김우중과의 대화 | 신장섭 | 북스코프 8.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장하준 | 부키 9. 싸드(Thaad) | 김진명 | 새움 10. 버티는 삶에 관하여 | 허지웅 | 문학동네
사도세자 이재운 著 / 책이있는마을 刊 스물여덟의 짧은 삶. 아버지 영조에 의해 광인으로 취급당하며 뒤주에 갇혀 죽은 것으로 알려진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 비명에 간 아버지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했던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 열다섯에 이미 대리청정에 나설 만큼 유난히 총명했고, 영조와의 관계도 완만했던 사도세자가 아버지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조선사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이 사건은 단순히 아버지를 향한 자식의 증오와, 아들을 향한 아비의 분노와 패륜이 사건의 전후를 구성하는 맥락은 아니었다. 당시 집권층의 권력을 둘러싼 암투와 수십, 수백년간 지속되어왔던 권력게임의 희생양이었다. 소설 사도세자는 사도세자의 꿈과 이상, 그리고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을 미스터리로 풀어낸 역사소설이다. 또 수많은 살해위협 속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야 했던 정조의 이야기도 박진감 넘치게 풀어냈다. 값 1만3천원 내 눈이 최고야 하다카 도시타카 著 / 마음물꼬 刊 일본의 동물행동학자인 히다카 도시타카가 전해주는 곤충이야기다. 이 책은 다른 곤충도감과 다르다. 학술적인 정보와 사진의 양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곤충도 딱 세 가지의 종만 등장한다. 참개구리, 왕잠자리, 물맴이. 또 그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머리, 가슴, 배 식의 도식적인 구분도 해부도 않는다. 참개구리를 주인공으로 왕잠자리와 물맴이를 차례차례 만나며 듣게 되는 생태와 삶의 이야기다. 다른 생태 그림책처럼 딱딱하게 주입식으로 설명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에 집중해 아이들이 곤충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동물학자가 쓴 책인 만큼 정보의 정확성도 지녔다. 값 1만2천원 알로이시오 신부 하삼두 著 / 카톨릭출판사 刊 숭고한 삶의 살다간 이의 뒤에는 위대한 스승이 있다.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 우리에게 울지마 톤즈로 익숙한 故 이태석 신부의 스승으로 알려진 이다. 625전쟁으로 처참하리만큼 가난해진 이 땅에 와, 버림받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전쟁 같은 사랑을 펼쳤던 알로이시오 신부.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 살면서 가난한 이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았던 스승의 삶을 직접 보고 체험하며 자란 이태석은 이후 아프리카 톤즈로 날아가 스승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된다. 글쟁이 화가로 알려진 하삼두 화백이 1년여의 걸친 작업을 통해 우리말과 영문, 그리고 한국 문인화로 표현한 책이다. 값 1만2천원 박광수기자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최연소 신문연재 소설가,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 책표지에 작가사진이 실린 최초의 작가. 소설가 故 최인호 작가(1945~2013)는 한국 문단에서 이색 기록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작가였다. 동시에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였다. 작가는 작고하기 4년 전, 이미 책의 제목을 나의 딸의 딸이라 지어 두고 손녀 정원이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써나가고 있었다. 허나, 작가 최인호는 그토록 고대하던 책의 모습을 끝내 보지 못하고 지난해 9월 25일 별들의 고향으로 훌쩍 떠나가고 말았다. 작가가 떠난 지 1주기에 맞춰 작가의 딸 다혜와 그 딸의 딸, 손녀 정원이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써나갔던 글을 엮은 책 나의 딸의 딸(여백刊)이 출간됐다. 나의 딸의 딸은 1부 작가의 딸 다혜의 이야기와 2부 그 딸의 딸, 즉 작가의 외손녀 정원이의 이야기로 나뉜다. 1부는 작가의 딸 다혜의 탄생에서부터 유치원 입학, 초중고 시절, 대학교 입학과 졸업, 결혼, 신혼생활 등으로 이어지는 무려 40년에 이르는 세월을 사랑과 경이로움의 시선으로 기록해나간 이야기이다. 또한 2부는 다혜가 딸 정원이를 낳으면서 시작해 손녀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는 12년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픈 딸을 들쳐 업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가는 아버지가 있고, 밤새워 시험 공부하는 딸을 몰래 훔쳐보며 홀로 한숨짓는 아버지, 신혼여행 떠난 딸의 빈방에 앉아 이별을 실감하며 눈물짓는 아버지가 있다. 또 거기엔 유아원을 땡땡이 치고 손녀를 데리고 백화점에 놀러갔다가 딸에게 들켜 혼이 나는 할아버지가 있으며, 손녀 앞에서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춤추고 노래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큰 작가 최인호의 모습이 아닌, 소박한 일상의 생활 속에서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우리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화가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빠가 쓴 수많은 책들 중 그 어느 것에도 표지를 그린 적이 없는 딸 다혜씨의 그림, 작가 최인호가 손녀를 위해 손수 만든 보물쪽지, 그리움이 듬뿍 묻어나는 편지,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악필로 유명했던 작가가 또박또박한 글씨로 정성껏 쓴 손녀에게 보내는 작가의 편지가 이채롭다. 값 1만4천800원 강현숙기자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검은 꽃,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여온 김영하 작가의 작품들이다. 문학동네작가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면서 당대 최고의 젊은 작가라는 신뢰를 주는 김영하 작가가 신작 산문집 보다(문학동네刊)을 펴냈다.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산문집에서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리하고도 유머러스한 통찰을 보여준다. 예술과 인간, 거시적 또는 미시적 사회 문제를 주제로 한 26개의 글을 개성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묶은 이 산문집에서, 독자들은 인간 내면과 사회 구조 안팎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김영하의 문제적 시선과 지성적인 필치를 만날 수 있다. 1부에서 우리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로 묶일 수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정확하게 관통해내는 글들을, 2부와 3부에서는 소설과 영화를 지렛대 삼아 복잡한 인간의 내면과 불투명한 삶을 비추는 그의 시선을 만날 수 있다. 4부에서는 좀더 미세하게 우리가 사는 사회를 들여다본다. 단연 압권은 이 산문집의 맨 앞에 놓여 있는 시간 도둑. 작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절대적 조건으로서의 시간 역시 사회적 불평등 현상으로부터 예외가 아님을 간파해낸다. 그는 우리가 익숙하게 만나는 풍경들, 지하철 안에서 무가지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사람들의 모습으로부터 계급계층에 따라 불균등하게 형성되어 가는 시간을 발견해내고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지켜낼 것인가 묻는다. 김영하 작가는 제가 늘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떤 일들을 실제로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어떤 일들이 사회에서 또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늘 관심을 갖고 있고, 알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이번 산문집에서 작가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사회 현상들을 때론 무릎을 치게 하는 촌철살인으로, 때론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해 유쾌하게 풀어낸다. 특히 한국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조망해내는 안목과 기술이 탁월하다. 한편 이번 산문집은 보다-읽다-말하다 3부작 중 그 첫번째에 해당한다. 이후 석 달 간격으로 책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다룬 산문집 읽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행해진 강연을 풀어 쓴 글들이 담긴 산문집 말하다가 출간될 예정이다. 값 1만2천원 강현숙기자
제35회 열린시학 가을호 신인 작품상 수필부문에 권월자(55ㆍ사진)씨의 수상한 그녀, 헤어디자이너로 변신외 3편이 선정됐다.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들(이재인 소설가ㆍ신효정 수필가)은 작품 모두 실생활에서 느끼고 겪은 체험을 쓴 작품으로 글을 풀어내는 속도나 문체가 확연히 다르다며 자신의 인생관이나 생각의 깨우침을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밀고 나가는 힘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수원 동신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인 권월자씨는 수상소감을 통해 숨겨둔 문학에 도전한 것은 30여 년만인데 당선 연락을 받고 얼마나 가슴이 벅찬 감회를 느꼈는지 모른다며 여러모로 부족한 점, 부단한 노력만이 잘 익은 열매를 딴다는 격언을 마음에 항상 새기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재미와 공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역사책으로 호평을 받은 스캔들 세계사(파피에刊) 시리즈 전 3권이 완간됐다. 스캔들 세계사3은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의 습격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신의 분노를 두려하는 인간 군상,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기발한 지혜, 권력 유지를 위해 형제를 합법적으로 제거해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의 비정함, 화려한 로코코 양식을 꽃피운 한 여성의 동화같은 숙명 뒤의 남모를 고뇌와 비애, 운명과 숙명보다 끈기와 노력으로 삶을 개척한 사람들의 땀과 열정, 악마와 드루이드에서 요정과 유령선 이야기까지, 웃음과 감동이 함께하는 역사 속 사건과 사람 이야기 18가지를 다루고 있다. 배경 역시 유럽은 물론 터키와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포괄했고 시간적으로 고대와 연관된 에피소드까지 포함해 더욱 풍성하고 재미난 역사 이야기를 들여준다. 그렇다고 절대 야사에만 초점을 맞춘 흥미 위주의 가벼운 책은 아니다. 3권 역시 1, 2권과 마찬가지로 세계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치했다. 중세를 뒤흔든 두 가지 큰 사건, 흑사병과 마녀 재판 이야기를 통해 중세의 전체상을 조망하고 영국의 명예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꽃미남, 루이 15세의 여자로 운명 지어진 마담 퐁파두르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로코코 양식, 그리고 유럽 이외에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 이야기까지 이 책을 읽다보면 각 국가별, 대륙별 역사의 흐름이 전체적으로 그려진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저자 이주은의 관점과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매력적이다. 값 1만5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아침에 시작한 하루를 저녁 때 살아서 마치리라는 보장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점령군을 마주치면 모두 차에서 내려 몸수색을 받고 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조롱당하고 모욕당한다. 그들의 하루는 점령군들의 하루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최대의 분쟁지, 팔레스타인들의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오늘은 없다. 그래서 내일을 꿈꿀 수 없다. 이들에게 가물거리는 희망을 선물하고 팔레스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기획된 책이 출간됐다. 팔레스타인의 눈물(아시아刊)은 팔레스타인 작가 13인이 팔레스타인의 고난과 희망을 전하는 산문집으로, 산문 15편이 수록돼 있다. 팔레스타인의 뛰어난 저술가 무함마드 자카리아와 한국작가회의 파견 작가로 팔레스타인을 취재한 소설가 오수연이 엮은 이 책은 더 깊어진 팔레스타인의 상처와 더불어 더 절실해진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육성이 담겼다. 오마르 그라옙의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이유와 나이루즈 카못의 불타는 도시에서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공격을 시작한 이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이 인류에게 보내는 절규이다. 인간성과 영혼, 아랍 민족과 지도자, 인권단체들과 구호 대행사들과의 결별을 선언 뒤로 하며, 불타는 도시에서도 끝내 재가 되지 않을 생명을 노래한다. 말라카 무함마드와 유시프 알자말의 글을 담은 가자의 일기는 2013년 9월 18일 라파 출입국 관리소를 배경으로 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가 어떻게 팔레스타인의 인권과 존엄을 훼손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지붕 없는 감옥에서의 삶이자, 영원히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의 삶이기도 하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도 적을 향한 시선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 치열하게 성찰하고, 분노와 증오를 희망으로 승화하려는 몸부림이 문장마다 고스란히 배어 있는 이 책은 고난에 대한 정직하고 핍진한 기록이며,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언어로 구현해낸 문학의 성취다. 팔레스타인이 고난의 땅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위안과 희망의 땅임을 증언한다. 무엇보다 분쟁지역인 팔레스타인에서 시대의 고난을 가장 예민하게 증언하는 작가들이 보내오는 메시지는 비통하고 절실하다. 씁쓸하게도 세계는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점을 지울 수 없다. 값 1만3천800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