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은 존재 그 자체, 그들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의 프로그램과 함께 했다는 자체 만으로도 열정과 흥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연이었다. 21일 오후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열린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은 완벽에 가까운 연주로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고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보기드문 파워와 섬세한 연주를 접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이날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미하일 플레트네트의 지휘로 자신들의 특장기인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을 연주, 관객들을 열정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객석의 소란스러움도 잠시 무대로 걸어나온 단원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잡자마자 붉은색 롱드레스를 입은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무대로 걸어나왔고 객석에서는 피아니스트를 박수로 맞이했다. 플레트네트의 지휘에 따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3번이 흐르자 백혜선은 음악을 음미하듯 오케스트라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파워 넘치는 연주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백혜선의 연주는 고요한 정적을 깨는 피아노의 향연이었다. 이 곡은 연주에 소요되는 파워와 기교가 가히 악마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곡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조차도 고정 레퍼토리로 하지 않을 정도로 연주자가 많지 않은 곡임에도 백혜선은 혼신을 다 한듯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부드러움으로 때로는 격정적으로 파워풀한 연주를 펼쳐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세 번의 커튼콜과 함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그의 연주는 단원들조차 악기를 두드리며 존경을 표시할 정도였다. 관객들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호응해 물결 흐르듯 건반 위를 수놓는 백혜선의 손에 시선을 고정했고 건반 위를 달리는 파워풀한 손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완벽하게 연주해냈다. 잠시 인터미션 시간이 지난 후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신기에 가까운 연주와 접할 수 있었다. 플레트네트의 지휘로 비장미와 유려함을 갖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객석은 이들의 연주에 이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첫 악장에서는 어두운 빛깔의 안단테 도입부에서 클라니넷이 애조 띤 선율로 무겁게 시작하더니 우울한 분위기로 맺었다. 2악장에서는 혼의 독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아리에타가 달콤하면서도 슬픈 분위기로 특별한 매력을 느끼게 해 주었고, 다른 작곡가들의 교향곡이 흔히 미뉴에트나 스케르조로 이뤄지는데 비해 왈츠로 이루어진 3악장에 이르러서는 경쾌한 느낌을 주어 1·2악장에서 느껴지던 무겁고 우울한 느낌이 활기에 찬 느낌으로 전환되었다. 곡은 4악장에 이르러 전곡에 일관됐던 그림자가 사라지면서 웅대하고 승리에 찬 울림으로 이날 공연을 맺었다. 플레트네트의 여유와 물 흐르는듯한 지휘로 러시아 음악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선사해 전곡이 끝났을 때는 객석의 박수와 환호가 그칠줄 몰랐다. 단원들조차 그의 지휘에 존경을 표시했고 관객들은 여러번의 커튼콜로 화답했다. 관객들의 호응에 화답하듯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는 앵콜곡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선사, 감동을 이어나갔다. 이날 공연은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연주로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에 취한 음악의 향연이었다. 한편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은 21일 도문화의전당 공연에 이어 24일까지 부산, 서울, 대구로 이어진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효녀 심청, 왕후 심청, 그리고 인간 청…. 국립창극단이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고양 아람누리를 찾아 기존 창극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초대형 스케일의 새로운 무대를 펼친다. 고양문화재단은 오는 25~26일 고양 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고양아람누리 개관기념 초청공연으로 심청전을 기반으로 한 국립창극단의 창극 ‘청(?)’을 올린다. 이 공연에는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과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이 함께 출연해 볼거리와 들을거리가 가득한 국가브랜드로서 손색 없는 무대를 꾸민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7.5도로 기울어진 회전무대로 녹색톤의 간결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풍기는 무대미학. 인당수 장면에서 심청이 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장면과 환속하는 장면을 환상적이고 정밀하게 처리, 신화와 설화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이 어떻게 무대 위에서 형상화되는지 보여준다. 음악 구성도 콘트라베이스와 팀파니 같은 서양악기와 국악 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코러스가 들려주는 신비한 벨칸토 하모니, 관현악곡으로 극 전체를 감싼 음악적 구성과 전통적인 수성음악 등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뤄 눈을 감고 들어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김홍승 연출가가 “더 탄탄해진 이야기와 구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듯, 이번 작품에선 심청의 인간적인 면이 특히 강조됐다. 지극한 효심으로 이에 감복한 용왕이 은혜를 내려 황후가 되는 신비한 인물로 그려진 심청전의 보편적인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심청이 지닌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심청=효녀’라는 수식어를 걷어내고 간결하면서도 의지가 강한 인간 ‘청’을 만들어냈다. 등장 인물들의 면모도 화려하다. 주인공들의 소리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명창 안숙선의 도창으로 진행되는 극에서 국립창극단의 형제 명창인 왕기철·기석이 심봉사로 출연해 팽팽한 소리대결을 펼치고 지극한 효심과 인간적인 심청은 여성의 강인함을 표출하는 연기를 펼쳐온 국립창극단의 차세대 프리마돈나 김지숙(33)과 박애리(30)이 맡아 이끌어 나간다. 25일 오후 8시, 26일 오후 4시. 7만~1만원. 문의1577-7766/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새로운 변모를 시도하는 수원시립합창단이 올해 창단 24주년을 맞아 지난해와 올해 공연곡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선정, 정기연주회 무대를 준비했다. 수원시립합창단은 오는 29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과 다음달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제110~111회 정기연주회를 연다. 이번 정기공연은 민인기 상임지휘자가 지휘한다. 지난 2여년 동안 관객들에게 높은 호응을 받은 곡들을 선별한 이번 공연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 곡으로 슈베르트 포 파트송즈(Four Partsongs), 대니보이(Danny Boy)와 같은 유명한 포크송, 키리에(Kyrie)와 같은 웅장한 전통 미사곡들로 구성된다. 지난 10여년 동안 합창단원들과 안무지도로 호흡을 맞춰온 뮤지컬 배우 강효성이 아바(Abba)의 대표적 히트곡인 ‘페르난도(Fernando)’, ‘맘마미아(Mamma Mia)’, ‘워터루(Waterloo)’, ‘댄싱퀸(Dancing Queen)’ 등을 다시 선보인다. 수원공연 A석 5천원, B석 3천원. 서울공연 R석 3만원, S석 2만원, A석 1만원 B석 5천원. 문의(031)228-2813 /김효희기자 hhkim@kgib.co.kr
러시아 최초 민간 오케스트라로 출발해 러시아 예술의 최고봉으로 부상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Russian National Orchestra)가 첫 내한공연으로 경기도문화의전당을 찾는다. 경기도문화의전당은 21일 오후 7시30분 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에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을 마련했다.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 창단 주역으로 17년동안 헌신해온 지휘자 미하일 플레트네트가 직접 지휘봉을 잡으며 열정과 섬세함을 겸비한 한국의 대표적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협연자로 나서 환상의 트라이앵글을 이룬다.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는 1980년대 구소련의 고르바초프에 의해 주도된 개방화 바람을 타고 러시아 최초의 민간 오케스트라로 창단돼 러시아 안팎의 역량있는 음악가들을 결집한 미하일 플레트네트가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단원들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독주자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이 뛰어나며 화려하고 세련된 사운드와 현대적 감각에 맞는 선곡, 이야기거리가 있는 폭넓은 연주활동 등을 통해 세계 일류 오케스트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연주회에선 비장미와 화려함을 갖춘 걸작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 E단조 Op.64와 마의 협주곡이라 불리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3번 D단조 Op.30 등 자신들의 특기인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만 연주한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3번은 기교와 파워를 갖춘 피아니스트들도 레퍼토리로 갖고 있지 않을만큼 힘들어 하는 곡으로 보기드문 파워와 열정, 섬세함을 갖춘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협연자로 나서 이를 훌륭히 소화해 낸다. 한편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는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수원을 시작으로 부산, 서울, 대구 등지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4차례 공연을 통해 러시아 음악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언제나 돌아가고 싶었던 학창시절…. 축 쳐진 어깨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잠시 쉼표를 찍고 그 추억으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전국 도시 문화예술회관 10곳을 순회하며 클럽투어를 통해 꾸준히 무대에 서온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자존심 봄여름가을겨울이 오는 18~19일 오후 7시 안양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참 잘했어요’ 가족콘서트를 펼친다. 이번 투어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은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열일곱 스물넷’, ‘브라보 마이라이프’, ‘한잔의 추억’, ‘미인’ 등 자신들의 히트곡을 중심으로 추억의 무대를 펼치며 라이브 공연의 진수를 보여준다. 음악은 부모와 자녀가 세대를 뛰어넘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꾸며지며 봄여름가을겨울의 1집부터 ‘I am SSaW Dizzy’ 라이브음반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콘서트를 연출,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무대는 풍금소리가 들리는 정겨운 교실 풍경으로 꾸며져 칠판과 풍금, 책상과 환경미화판이 기억 속 학창시절 교실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고, 풍금 반주에 맞춰 불러보는 음악시간 연주자들은 어느새 교실 속 학생이 돼 탬버린과 캐스터내츠 등으로 음악을 연주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직접 출연해 열연한 단편영화가 공연의 시작을 알려주고 공연 중간중간,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단편영화들도 상영된다./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계절의 여왕인 5월. 신록이 보석보다 더 빛난다. 가족들과, 또는 연인과 이런 작품들을 감상하면 어떨까? 구들장만 지지 말고 문화 나들이를 해보자. ◇강상중의 제10회 개인전 서양화가 강상중씨가 도자기와 장미를 소재로 한 개인전을 연다. 흙과 불 그리고 물이 만나 탄생하는 도자기가 평면회화에 그려지고 붉은 장미가 그 안에 담긴다. 흔히 정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화병과 꽃이 아니다. 분홍빛 계열의 작품들은 작가의 조형적인 시선에 따라 자유분방하게 배치되고 도자기와 장미가 앞뒤를 다투며 원색을 발산한다. 15일부터 오는 21일까지 수원미술전시관 제3전시실. 문의(031)228-3647 ◇맥간공예전 ‘물향기 금빛보리를 만나다’ 유광 흑색 바탕에 고급스러운 금빛 문양이 빛을 발하는 맥간공예가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물향기 수목원을 찾아간다. 이번 전시는 ‘물향기 금빛보리를 만나다’란 타이틀로 가족 하루 나들이 코스를 더욱 알차게 꾸며진다. 맥간공예 전문강사는 국내외 다수 전시회 경력과 함께 현재 예맥회 부회장, 오산도원맥간아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의(031)378-1261 ◇김현숙의 ‘Dream Plamodel전’과 독일 가브리엘 호른다쉬(Gabriele Horndash)의 ‘명함전’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제3기 입주작가 김현숙의 ‘Dream Plamodel전’과 국제교환작가인 독일 가브리엘 호른다쉬(Gabriele Horndash)의 ‘명함전’이 동시에 열린다. 김현숙은 일상생활의 도구 등을 조립완성전인 사각형의 프라모델 형태로 구성한 후 벽면에 테이프 형태로 부착했다. 가브리엘은 거리의 원색적인 현수막을 이용해 색과 글자를 더하거나 삭제하는 방법으로 거대한 명함을 만들었다.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문의(031)962-0070 ◇Group 아트 사패 정기전 경기북부에서 활동하는 Group 아트 사패(회장 한명옥)가 변화무쌍한 자연풍경을 화폭에 담은 5회 정기전을 연다. 14~18일 경기도북부여성비전센터 전시실에서 한명옥 회장을 비롯, 김근하·김선경·박희·손재덕·임혜종·정영순·홍명숙 등 20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서양화가 정창균씨의 지도로 경기도북부여성비전센터 수강생들로 구성됐다. 문의(031)876-6300 ◇오경영 개인전 순수한 어린이의 동심을 나무결에 담은 오경영(부천시 원미구 중동)이 개인전을 연다. 어린이의 일기처럼 서툰 글씨체와 그림이 목판에 담긴다. 형태가 거친 오리와 나비 등이 소재로 등장하고, 굵은 선으로 표현된 칼의 흔적이 투박하면서 정감이 넘친다. 전시는 오는 16일까지 서울 바움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문의(02)742-0480 ◇한국미술협회 김포지부 전시회 한국미술협회 김포지부는 17~24일 김포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서양화분과 회원들의 ‘색다른… 색전’을 연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평면에 펼쳐진 다양한 색과 형태가 눈길을 끈다. 혼수용 기러기와 댕기, 반짇고리를 담은 강정숙과 연꽃의 형태를 선으로 표현한 박재희, 택지개발로 사라지는 농촌의 땅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접근한 이운구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문의(031)983-9942 /이형복·김효희기자 bok@kgib.co.kr
18세기 초반 헨델 시대의 바로크 오페라는 말 그대로 '쇼'였다. 오페라 줄거리에 논리적 일관성이나 설득력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오페라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극의 내용보다는 화려한 무대장치와 특수효과, 그리고 가수들의 현란한 성악적 기교에 열광했기 때문에, '눈과 귀를 즐겁게!'가 극장의 모토인 것이 당연했다. 13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관객들은 그런 바로크적 엔터테인먼트의 특성을 극대화한 오페라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오페라단(단장 박기현) 초청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서울에서 펼쳐 보인 헨델의 '리날도' 한국 초연이었다(협력연출 마시모 가스파론. 17일까지).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현역 거장 연출가가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작품을 한국에 가져와서 성공적으로 작업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이미 지난해부터 관심이 집중된 공연이다. 무대장치와 의상, 소품 등 피치가 연출한 2005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프로덕션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기는 하지만, 가수들은 고프레도 역의 테너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번 공연을 위해 새로 캐스팅되었고 오케스트라, 무대 전환 담당 연기자들,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국 인력이었다. 그러니 결국 외국인 연출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팀워크를 이루어내야 했던 작품이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헨델의 '리날도'로 과연 오페라 극장 객석을 얼마나 채울 수 있을지 역시 오페라계의 큰 관심사였다. 간단히 말하면 결과는 기대를 뛰어넘는 성공이다. 물론 유료관객만으로 극장을 채운 것은 아니었지만, 첫 공연이 열린 오페라 극장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우선 연출가 피치의 명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올해 2월 예술의 전당이 '디도와 에네아스&악테옹' 공연을 통해 정통 바로크 오페라의 예술적 즐거움을 일깨운 것도 '리날도' 공연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도움이 된 듯하다. 공연 내용 면에서도 허술한 부분을 찾기 어려운 완성도 높은 공연이었다. 피치의 무대는 과거와 미래를 교묘하게 혼합해 빚어낸 환상의 세계였다. '리날도'의 소재는 이탈리아 천재시인 토르콰토 타소의 '해방된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11세기 말 십자군 전쟁 이야기지만, 헨델의 오페라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18세기 영국 귀족사회의 덕목과 예법이었다. 그 두 시대의 간극을 피치는 탁월한 아이디어로 해결했다. 당대 귀족의 품위를 대변하는 리날도, 알미레나, 고프레도 등 기독교 세계에 속하는 등장인물들은 금과 은을 입힌 조각상처럼 당당하고 차갑게 빛나고, 이에 대항하는 아르간테와 아르미다 같은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들은 붉은 색을 주조로 한 '이교적' 색상으로 타오른다. 한 번도 자기 발로 걷는 일 없이 높은 단 위에 서 있거나 배나 말을 타고 이동하며 망토까지 휘날리는 주인공들은 중세 십자군 전쟁 시대를 재현한다기보다는 바로크 시대 지배계급의 과장과 허장성세를 풍자하고 있다. 회전무대를 사용하지 않고도 등장인물들이 걷지 않고 이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가 바로 '사람'이라는 점은 흥미로운 아이디어다. 스무 명이 넘는 검은 옷의 무대 전환 연기자가 동원되어, 주인공이 위치한 단이나 말, 배를 움직이거나 주인공의 넓은 망토 자락을 끊임없이 휘날리게 한다. 일본의 전통극 형식인 가부키의 '구로고(黑子. 관객 눈에 잘 띄지 않도록 검은 옷을 입고 배우의 시중을 드는 사람)' 혹은 분라쿠에 등장하는 검은 옷, 검은 두건의 '인형 조종자'에게서 착안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관객에게 무대 전환과 등장인물 동선의 비밀을 모두 폭로하는 이런 아이디어는 관객이 극의 내용에 몰입하는 대신 객관적 거리를 취하게 하는 '예술적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라 스칼라 극장 프로덕션에서 그대로 옮겨온 '리날도' 무대의 틀은 피치가 그의 연출에서 애용하는 기둥 구조물로, 바로크 양식의 궁전 또는 극장을 연상시킨다. 1막의 예루살렘 성, 2막 아르미다의 성 및 알미레나가 갇힌 감옥, 3막 마법사의 동굴과 전투 장면 등이 모두 동일한 무대의 틀 안에서 펼쳐지지만, 무대 위의 스펙터클과 정교하고 인상적인 소품들 덕택에 지루함을 느낄 겨를은 없다. 특히 3막 마법사 장면의 지옥 같은 바다 풍경은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준다. 앞뒤로 무대의 깊이를 조절하면서 마치 거울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무대 전환의 테크닉은 관객에게 극장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을 실감케 했다. 내용상의 의미를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조명과 의상의 신비로운 조화와 완벽한 색채감 역시 극장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켰다. '디도와 에네아스' 공연에서 깔끔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연주를 들려주었던 고음악 전문연주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은 이번 공연에서 더욱 발전한 기량으로 청중에게 기쁨을 주었다. 왼손에 지휘봉을 잡은 프랑스 출신의 지휘자 기욤 투르니에르는 강약의 대비를 최대한 살린 섬세하고 열정적인 지휘로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최선을 이끌어냈다. 리날도의 3막 아리아 '화려한 나팔소리가(Or la tromba in suon festante)'에서처럼 트럼펫이 다소 불안정한 연주를 들려주어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라멘토 아리아 '사랑하는 신부여(Cara sposa)' 또는 '새들의 정원' 부분의 서정미나 출정 장면의 활기를 제대로 살린 연주가 특히 돋보였다. 한결같이 적역인 성악가들도 청중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로시니 전문가수로 인식되어온 메조 소프라노 라우라 폴베렐리는 압도적인 콜로라투라 기교, 선명한 음색, 폭발하는 에너지와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최고의 리날도임을 입증했다. '무정한 마음이여(Cor ingrato)'와 '사랑하는 신부여(Cara sposa)'에서 보여준 그의 깊이 있는 해석은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알미레나와 함께 부른 1막 이중창의 연기는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자신의 가창과 연기에 완전히 몰입시키는 탁월한 가수였다. '울게 내버려두세요(Lascia ch'io pianga)'를 불러 관객의 사랑을 받은 알미레나 역의 로베르타 칸치안은 미성과 따뜻하고 정감있는 음색을 지닌 소프라노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독특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아르미다 역의 소프라노 파트리차 비치레 역시 배역의 불 같은 성격을 개성적인 가창과 연기로 적절하게 소화해냈다. 고프레도 역의 미르코 과다니니는 바로크 오페라에 어울리는 섬세하고 절제된 가창을 들려주었고, 아르간테 역을 맡은 베이스 아담 플라쉬카는 바로크 오페라 베이스 가수에게 필수적인 긴 호흡, 그리고 스물 둘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안정적인 가창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국내 무대에서 리골레토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바리톤 박승혁은 이번 공연에서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음색과 표현력으로 조언자인 마고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이동하는 말이나 배 위에서 노래해야 하는 가수들은 무대 위 평지에 서서 노래하는 것보다 훨씬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장중하고 통일성 있는 무대를 위해 음악을 다소 희생시킨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특히 단상에 선 가수들의 자세가 순간적으로 불안하게 흔들릴 때는 관객도 함께 불안하고 안쓰러워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연출가 피치와 함께 무대에 등장한 검은 옷의 무대 전환 연기자 모두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복잡한 무대동선을 여러 날에 걸친 연습으로 철저하게 익혀 이 화려한 공연을 가능하게 한 또 다른 주인공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습 날짜가 2, 3일만 더 주어졌더라면 이들의 움직임이 더욱 유연해져서, 단상에서 노래하는 주인공들의 가창이 더욱 안정감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조금은 남았다. 관객이 극장에서 뭔가를 배워가는 대신 마음껏 상상하고 꿈꾸고 느끼기를 바란다는 연출가 피치의 소망이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는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극장을 떠난 뒤에도 관객들은 너울거리는 주홍색 망토의 잔상을 오래도록 간직할 듯하다. 적어도 관객에게 바로크 오페라의 본색을 알려주고 19세기 오페라와의 차이점을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공연이었다. 이후로도 바로크 오페라의 매력을 계속 즐길 것인가 하는 선택은 물론 관객 각자의 몫이다. /연합뉴스
“지리상으로 터키는 유럽과 가깝지만 아시아의 정서와 가까운 나라입니다.” 한국과 터키 수교 50주년을 맞아 지난 1일부터 14일까지 수원미술전시관에서 터키문물전을 열고 있는 에르한 아타이 터키 이스탄불 문화원장(33)은 터키를 이처럼 소개했다. “원래 터키는 중앙아시아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 풍습이 강하게 남아있어요. 특히 결혼식에서 함을 팔거나 장례를 3일 동안 치르는 게 그렇고, 장남이 결혼 후 부모를 부양하는 것도 그래요.” 터키는 교육열 또한 한국과 비슷하다. 이공대를 선호하고 좋은 대학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지난 97년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에르한 원장은 경희대 NGO 운영 석사를 거쳐 현재 경희대에서 인사조식분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사실 공학을 전공했지만 인문학에 더 관심이 많아요. 한국도 그렇지만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그는 2001년부터 원장을 맡으면서 한국문화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터키에서도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가는데, 1만명의 1명이 되기 보다는 형제의 나라 한국을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터키는 현재 참전용사 1만3천명이 생존해 있다고 한다. TV가 귀했던 시절 에르한 원장 또한 참전용사들의 영웅담을 들으며 한국을 친근한 나라로 인식했다. “양국간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해 서로를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수원미술협회(회장 조진식)와 이스탄불 문화원은 이번 전시를 통해 향후 지속적인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수원시의 자매도시인 터키 얄로바(Yalova)시 예술인들과 국제교류전 및 세계문화유산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아이템 개발에도 협력할 계획이다. 서구형의 외모지만 그의 능수능란한 한국말과 겸손한 태도에서 아시아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이스탄불 문화원은 각종 기념행사 중 가장 먼저 수원미술전시관에서 터키 풍경사진과 전통의상, 전통세밀화, 가정용 식기류와 램프 등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지난 97년 티보 바르가 콩쿠르 우승, 지난 2005년 에코 클래식 수상…. 헝가리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집시바이올린의 전설 ‘랜드바이(Landvay)’. 집시음악 특유의 애잔함이 우리의 전통 정서인 한(恨)과 맞닿아서일까. 우리와는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그가 그의 친구들과 함께 다음달 10일 내한, 서울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펼친다. 랜드바이와 친구들은 이번 내한공연을 통해 화려한 기교와 폭넓은 음악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답고 애수 어린 집시 바이올린의 정수를 직접 확인시켜 준다. 국내 음악 팬들은 과거 사라사테의 ‘지고르네이바이젠’을 ‘집시의 바이올린’으로 직결시키며 열렬히 애청했지만 막상 앨범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툭 던져진 랜드바이의 ‘집시 바이올린’ 앨범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었다. 렌드바이는 집시음악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친구들’로 명명된 랜드바이 밴드는 랜드바이를 포함해 제2 바이올린(Alexandre Afanassiev), 첼로(Alexander Bagrintsev), 비올라(Peter Menyhart), 더블베이스(Corneliu-Cosmin Puica) 등 다섯명의 앙상블로 구성돼 있다. 곡에 따라 헝가리 전통악기인 침발롱과 아코디언이 가세하기도 한다. 연주곡은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과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5번’, 비발디의 ‘사계(가을)’, 헨델의 ‘파사칼리아’,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이번 내한공연에선 크로스오버를 통한 ‘집시 음악의 대중화’에 두고 클래식 이외에 우리에게 친숙한 러시아·루마니아 민요와 무곡 등을 들려준다.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을 시작으로 러시아 민요 ‘모스크바의 밤’과 팝송으로 널리 알려진 ‘Those were the days’와 ‘Russian Gipsyswing’과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등을 들려주며 특별무대로 한국 대중음악도 여러곡 선사한다. 3만3천~8만8천원. 문의(02)3463-1730 다음은 순회공연 일정. ▲다음달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12일 충남 당진문예의전당 ▲〃 15일 양산문화예술회관 ▲〃 16일 목포MBC·목포시민문화센터 ▲〃 17일 나루아트센터 ▲〃 19일 용인여성회관 ▲〃 20일 서산문화예술회관 ▲〃 22일 춘천MBC·춘천문화예술회관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희끗희끗한 흰머리, 코 끝에 걸린 안경. 그래도 소리는 빵빵했다. 지난 9일 오후 수원 장안구민회관 한누리 아트홀. 이곳에서 수원 레인보우 경음악단의 창단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는 단원 20여명으로 가득 메워졌다. 일반 공연과 달리 오랜만에 정식 무대에 서보는 이들과 객석에 앉은 가족들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레인보우 경음악단은 젊은이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이제는 음악일선에서 은퇴한 장년세대들로 결성된 탓이다. 남편이나 아버지의 오랫만의 연주를 지켜 보려는 중년의 부인들이나 딸들은 학예회에 나간 어린이들을 위해 따뜻한 박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박장길 단장을 포함해 단원들의 가족은 그렇게 이날 공연을 기다려 오지 않았을까. 열린 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한누리 아트홀은 관객들이 꽃을 전달하기도 하고 사진도 촬영하는 등 공연 내내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흥겨움들로 넘쳤다. 기타, 섹소폰, 트럼본, 트럼펫 등 짱짱한 금관악기 음향들이 기세등등하게 울려퍼진 1부 경음악단 공연에 이어 2부는 젊은 후배그룹 신기루가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위해 ‘불놀이야’ 등을 부르며 흥을 돋웠다. 마지막 3부는 선·후배가 함께한 자두의 ‘김밥’이 이어지면서 객석은 앵콜을 연창했다. ‘삼바댄스’, ‘Besame Mucho’, ‘오브라디·오브라다’, ‘In the Moon’ 등 올드 팝과 지난 세월을 담은 추억의 노래 20여곡이 공연내내 이어지고 젊은 시절 즐기던 노래를 오랜만에 들어보는 관객들 표정에 만족감이 가득했다. 실버악단 창단이라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지닌 이날 공연장에서 수원 레인보우경음악단은 마지막 멘트로 “수원지역 음악문화를 위해 봉사공연에 힘쓰겠다”며 음악인의 의지를 다졌다. 좋은 취지에서 출발한 만큼 더욱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공연이 거듭될수록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된다./김효희기자 hhkim@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