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래 칼럼] 공공외교와 국가이익의 추구

지난달 14일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발표한 담화에 대하여 우리 국민들은 물론 세계가 실망하고 있다. 일본의 전 총리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등 양심적인 정치인과 지식인들도 아베의 담화는 잘못된 역사인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면서 비판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주요 지도자들도 아베의 담화는 물론 지금까지 행한 아베의 역사인식과 언행에 대하여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베에 잘못된 역사관에 인식한 담화에도 불구하고 유독 미국은 아베의 담화를 환영하고 있어 오랜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의 태도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정부는 아베 총리가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야기한 고통에 깊은 참회를 표하고 역대 일본 내각이 취해온 역사적 담화를 계승한다고 약속한 것을 환영한다면서 일본은 전후 70년간 평화와 민주주의, 법치에 변함없이 헌신해왔으며 이는 세계적 모범이 되고 있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으니, 이는 아베 총리가 담화를 통해 밝힌 일본의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과 일본의 밀월시대는 이것뿐만 아니다. 지난 4월29일 일본 총리로서는 전후 최초로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아베는 연설에서 진정한 사죄보다는 아시아 국가에 고통을 주었다라는 말로 일본의 침략 과거사를 적당히 덮었음에도 무려 10여 차례의 기립박수까지 받았다. 그리고 아베 총리는 미국의 주요 도시를 방문, 미국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활발한 외교활동을 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로서는 이런 미국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아베의 대미외교 성공은 결코 우연하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이는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오랫동안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펼쳐온 결과이다. 지금 세계는 외교 전쟁 중이며, 특히 한중일간의 외교전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과거 국가 간의 외교관계가 주로 주재 공관의 외교관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면 작금의 외교는 이런 공식적인 채널보다도 민간차원의 공공외교가 더욱 효과적인 외교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공공외교란 외국 국민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자국의 역사, 문화, 예술, 가치, 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고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상호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데, 일본은 이런 공공외교를 미국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행하여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공공외교는 정부 간 소통과 협상 과정을 일컫는 전통적 의미의 외교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문화, 예술, 원조, 홍보 등 다양한 소프트 파워( Soft Power) 기재를 활용하여 외국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 그들의 마음을 사고, 감동을 주어 해당 국가 지도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현대 외교는 군사력, 경제력 등을 주 무기로 하는 하드 파워의 개념에서 민간차원의 공공외교를 통해 상대방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소프트 파워 경쟁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공공외교는 일본과 비교하면 너무도 큰 차이가 난다. 2015년 예산 기준으로 미국 싱크탱크 및 연구소에 대해 한국 정부가 직접 투자하는 금액은 0원이다. 일본의 경우 정부 직접 지원액은 700억 원이며, 정부 산하기관과 민간재단을 모두 합하면 약 906억 원으로 한국의 37억 5천만 원에 비하여 무려 24배나 많다. 양국의 국내총생산(GDP) 격차는 불과 3.4배이지만, 공공외교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일본의 미국 컬럼비아대 등에 연간 수천만 달러를 기부, 일본전문가를 키우고 있으나, 우리는 액수도 미미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이 아닌 단발성 기부가 많아 한국전문가를 양성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외교는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임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공외교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여 민간분야에서 공공외교가 활성화 되도록 최대한 지원해야 될 것이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

[김영래 칼럼] 소용돌이 한국 정당정치

최근 정치권이 크게 요동을 치고 있다. 정치는 생물과 같아 변화하는 환경에 지배를 받을 뿐만 아니라 정치 그 자체가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에서의 변화는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 발생하는 변화 움직임은 이런 긍정적 요소보다는 부정적 요소가 더욱 많아 국민들로부터 정치 불신만 증폭시키고 있다. 우선 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집단인 정당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국회법 개정문제로 청와대와 당이 대립각을 세우면서 의원 스스로 선출한 유승민 여당 원내대표가 임기 도중 의원총회의 사퇴권고안을 받아들여 물러났다. 새로운 원내대표를 투표가 아닌 합의 추대하고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청와대와 당 지도부가 회동하여 외견상으로 당청관계가 복원된 것 같아 보이지만 과연 이런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이 행정부와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하고 갈등만 야기한 것은 청와대와 당 지도부 모두의 책임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문재인 대표는 리더십 부재와 더불어 비노(非盧)세력으로부터 친노(親盧)중심의 당을 운영한다고 연일 비판을 받고 있다. 야당은 그동안 당 대표가 너무 자주 교체되어 당 중진들은 거의 당 대표를 한 번씩은 했을 정도이니 리더십이 안정될 리 없다. 당을 혁신하겠다고 외부인사들로 혁신위를 구성, 활동하고 있지만 개혁안에 불만을 가진 상당수의 당 중진들은 분당 변수가 상수(常數)라고 하고 있으니, 이제 분당시기만 남은 것 같다. 이미 전 당직자 상당수가 탈당을 하였으며,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탈당하여 새로운 정당의 창당 신호탄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정당들의 요란스러운 행태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념적정책적 갈등에서 야기되고 있다면 국민을 위해 고뇌에 찬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갈등의 내면은 이념이나 정책적 갈등보다는 당권 장악을 위한, 더 나아가서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싸움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국회의원들과 정치지망생들에게 오직 관심은 내년 4월13일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 어느 정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아 출마, 당선되느냐에 대한 생각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70년 동안 한국정치사에 등장한 정당의 수는 무려 5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1964년 정치외교학과에 입학 이후 정치학을 공부하고 또한 대학 강단에서 34년 한국정치를 가르친 것까지 합치면 무려 50여년 동안을 정치학과 같이 한 필자도 그 동안 명멸된 정당의 명칭과 수를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으로 많은 정당들이 한국정치에 등장하였다. 지난 2008년 제18대 선거에는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친박연대 등 20개 정당이 후보자를 입후보 시켰으나, 이중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정당은 거의 없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 통합진보당, 창조한국당, 국민생각, 친박연합 등 19개 정당이 후보자를 등록시켰으나, 이중 상당 수 정당은 이미 다른 정당에 합병, 또는 해산되었다. 앞으로 9개월 있으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얼마나 많은 선거용 정당이 또 생길지 모르겠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당 이 아닌 정치인을 위한, 정치인에 의한, 정치인의 정당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될 것이다. 정당제도가 도입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당정치가 제대로 제도화되지 못한 한국 정당정치의 현실, 언제나 신뢰받는 정당정치가 이뤄질 수 있을까. 김영래 아주대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객원 논설위원

[김영래 칼럼] 글로벌시대와 시민의식

메르스(MERS)의 공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한달 동안 메르스가 한국에 전파되어 발생, 야기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파장은 일찍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대통령이 예정된 외국방문까지 연기하는 국가재난 사태가 발생했다. 고등교육 진학률 1위, 경제규모 세계 제14위라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메르스에 대처하는 정부 대책과 시민의식은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는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정보매체의 발달, 교통수단의 발달 등으로 일일생활권이 된 글로벌시대 (Age of Globalization)가 되었다.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각종 뉴스를 실시간으로 TV, 스마트폰 등을 통하여 어느 곳에서든지 볼 수 있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비록 개별 국가 간에 국경이 있고 민족 단위의 생활 문화권이 있지만 과거와 같은 폐쇄적인 국경의 개념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였을 때 선장과 승무원이 승객의 안전보다 자신의 안전보호에만 급급, 먼저 탈출하여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이 생명을 잃어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번 메르스 발생 시 정부의 대처나 일반 시민의 행태 역시 미숙한 초동 대처와 개인의 이기주의적 사고만 앞세워 행동함으로써 또 다시 후진국형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한국은 외국 환자들이 병을 고치려 몰려올 정도로 최고의 의료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의료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메르스 의심징후가 있는 의사가 스스로를 격리하지 않고 아파트재건축총회를 참석하였는가 하면, 강남에 거주하는 격리대상자인 주부는 격리기간이 끝나기 전에 지방으로 골프를 치러갔다가 위치 추적으로 발견되어 강제로 호송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그뿐 아니다. 화근이 된 최초의 메르스 환자가 병원에서 의사 진료 시 중동지역 방문 사실을 속였다가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이를 실토했는가 하면, 격리대상자가 자택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마음대로 밖으로 나가 쇼핑도 하고 울릉도까지 여행도 갔다고 한다. 당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자택에 격리된 것이 귀찮다고 몰래 외출하여 회식을 하는 등 마음대로 행동한 사례가 너무도 많다. 심지어 일부 격리대상자는 홍콩과 중국까지 여행을 하여 해당국으로부터 강제로 격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지 국민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홍콩과 중국은 한국으로부터 입국하는 여행객에 대하여 별도의 엄격한 검역을 하는 등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극도로 추락하고 있다. 글로벌시대에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려면 글로벌 시민의식(Global Citizenship)을 가져야 된다. 지구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행동 양식을 가져야 된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안전을 무시하고 개개인 혼자만이 살기 위하여 행동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할 때 공동체는 무너지는 것이며, 따라서 그 피해는 결국 개개인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빗나간 개인주의 사고는 글로벌시대에 있어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경쟁위주의 교육을 통하여 효율성과 생산성을 강조,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책임감, 인내, 희생, 봉사, 배려 등과 같은 시민의식을 함양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메르스 사태는 개인의 무책임한 이기주의적 사고와 행동이 공동체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는가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행동이 나 하나만의 행동으로 끝나지 않고 대한민국 공동체는 물론 지구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글로벌 시민의식의 함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함을 인식해야 될 것이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전 동덕여대 총장객원 논설위원

[김영래 칼럼] 돈·정치, 그리고 정치인의 영욕

돈과 정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정치에 있어 돈은 자동차 엔진의 윤활유와 같다. 자동차에 윤활유가 없으면 엔진이 움직이지 않아 자동차를 굴릴 수 없는 것 같이 돈이 없으면 정치가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품질이 좋지 못한 또는 가짜 윤활유를 쓰면 엔진 고장이 발생, 자동차를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정치에 있어 정치자금인 돈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인의 경우, 정치자금은 선거 때 선거자금으로, 또한 정당은 평상시 조직운영이나 정책 활동을 위하여 상당한 정치자금을 필요하게 된다. 때문에 정치자금을 정치의 모유(mothers milk), 또는 민주정치를 위한 필요악(necessary evil)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치인이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자금을 유권자로부터 기부받아 정치를 하게 되면 신뢰받는 정치인이 되어 국가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나 돈 많은 부자들과의 뒷거래를 통한 투명하지 못한 불법 검은 돈을 받아 사용하게 되면 정치도 부패하고 정치인은 부패정치인으로 낙인, 권좌에서 물러남은 물론 법의 심판을 받아 처벌도 받게 된다. 정치인의 경우, 정치자금을 어떻게 조달운영하느냐에 따라 권력의 장악 여부가 결정된다. 이런 정치자금의 운영 방식에 따른 권력의 부침은 일제로부터의 독립 후 해방공간에서도 있었다. 해방 직후 이승만과 김구의 경우,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지만 미국식의 정치훈련을 받은 이승만은 정치자금의 효율적인 운영을 통하여 김구와의 대결에서 권력을 쟁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정치자금의 큰 줄기는 지주계급 중심인 한국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이승만과 김구 모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김구 자신은 지금까지 돈 없이도 독립운동을 하여 돈이 크게 필요치 않으니, 나에게 줄 돈은 미국에서 돌아와 여러 가지로 돈이 필요한 이승만에게 주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이승만은 김구에게 갈 정치자금까지 받아 각종 정치조직을 운영하는데 사용, 그 후 해방 공간에서 권력을 장악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 등 2명의 전직 대통령은 불법으로 막대한 검은 돈을 기업인들로부터 받아 정치자금을 운용한 죄로 구속되는 불명예스러운 지도자가 되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도 아들이나 형제들은 물론 측근들이 검은 돈을 불법으로 거래, 구속됨으로서 결코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불거진 성완종 리스트는 한국정치에 불법 정치자금 거래로 인한 정치권의 흑막을 또 여지없이 노출시키고 있다. 불과 1개월 전만해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겠다던 전직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혐의로 총리직 사퇴 후 검찰의 조사를 받았는가 하면, 한때 모래검사로 명성을 떨치던 현직 도지사가 후배검사로부터 장시간 조사를 받고 이제 기소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돈과 정치, 그리고 정치인과는 뗄 수 없는 불가분이 관계에 있지만, 이럴수록 정치자금은 더욱 투명하고 깨끗하게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공천헌금 운운하고, 대통령 선거 후 선거자금문제로 정치권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한국정치는 언제까지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후진적인 정치문화에 머무를 것인지. 정치인들이 자기 분수조차 못 가리는 검은 돈의 유혹 때문에 정신 나간 돈정치가 되어서는 민주정치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정치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자금제도를 확립,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정치자금법을 조속히 개정, 부패정치인을 퇴출시키는 엄격한 정치자금제도를 마련하기 바란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전 동덕여대 총장객원논설위원

[김영래 칼럼] 독립공원 현충사를 아시나요

지난달 말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독립공원에서 광복 70주년 기념 나라사랑 순국선열 따라 걷기 행사가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와 ROTC중앙회 공동주최로 개최되었다. 봄기운이 물신 풍기는 휴일 ROTC 출신 장교와 후보생 1천여 명을 비롯하여 시민 2천300여 명이 한강과 북한산이 보이는 안산자락 7킬로미터를 태극기를 들고 걸으면서 순국선열들의 얼을 기리는 보람있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삼일절과 같은 기념행사가 있을 때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드리고 있다. 이는 순국선열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 고귀한 목숨을 바치신 뜻을 기리기 위한 것임은 물론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을 발전된 국가로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의식과는 달리 순국선열을 기리는 우리의 자세는 지극히 허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순국선열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의사와 열사를 말하며, 특히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투쟁하다가 목숨을 잃은 분들로서 유족회 자료에 따르면 무려 30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등등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순국선열 중에서 건국공로 훈장을 받은 분은 겨우 1%인 2천900여 명이고 이 중 보상금을 받는 유족은 25%인 74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독립공원 내에 있는 현충사의 관리도 부끄러운 실정이다. 우선 대부분의 국민들은 현충사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아산 현충사, 동작동의 현충원은 잘 알고 있으나,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현충사는 극히 일부 국민들만 알고 있다. 필자 역시 이번 행사 참석으로 현충사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며, 당일 참석자 대부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위패 봉안관이 설립된 것은 1996년이며, 최근까지도 봉안관은 순국선열기념일만 개방하다가 지금은 참배객을 위하여 매일 개방한다고 한다. 그러나 참배객들을 위한 편의시설 하나 제대로 마련되어 못할 뿐만 아니라 현충사 운영조차도 비영리단체인 유족회에서 담당하고 있어 안내원 비용 등 재정상의 문제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매년 광복절 전후만 되면 일본의 전범들 위패가 보관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총리나 각료들이 참배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 세계 제2차대전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전범을 추모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몰염치한 행위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최소한 위패 관리문제만 보면 야스쿠니 신사는 현충사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운영되고 있다. 참배객들을 위한 안내와 편의 시설도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넋을 기릴 각종 전시시설도 마련되어 있어 일본 청소년의 애국심 고취 교육에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말로만 순국선열 숭배를 하지 말고 진정으로 순국선열을 숭배할 수 있는 각종 보상의 확대는 물론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현충사 제반시설부터 제대로 갖추기 바란다. 대부분 유족들의 생활이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현황 파악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한다. 이번 걷기 행사 시 안산 자락길 곳곳에는 순국선열의 독립운동 활약 내용을 안내하는 설명문이 부착되고 순국선열의 이름을 딴 유관순 바위 청산리 솔밭 이봉창 전망대 안중근 광장 등의 명명식도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안산 일대 둘레길을 순국선열 둘레길로 명명하여 국민들에게 널리 알린다면 순국선열의 애국심을 더욱 가깝게 대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객원논설위원)

[김영래 칼럼] 정치가 케네디와 정객 닉슨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케네디와 제37대 대통령 닉슨은 1960년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동시대 정치인이지만 두 사람에 대한 미국 국민의 평가는 극명하게 대조적이다. 케네디는 1917년, 닉슨은 1913년으로 비슷한 시기에 출생하여 정치를 시작한 이들 두 사람은 각각 하원과 상원에서 의원생활을 하였고,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한 라이벌 정치인이다. 케네디는 동부 매사추세츠 출신이고 닉슨은 서부 캘리포니아 출신이다.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TV토론에서 패기있는 젊은 후보자였던 케네디가 승리하여 제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1963년 11월 텍사스의 댈러스시 방문 중 저격되어 사망하였다. 반면 닉슨은 대선 패배 후 캘리포니아 주지사선거에도 패배하는 등 불운을 겪다가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제37대 대통령이 되었다. 케네디는 최초로 가톨릭교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 뉴 프론티어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미국의 비전을 제시, 희망을 주었으며, 재임 중 베를린 봉쇄, 쿠바 사태 시 소련과는 일전을 불사하면서까지 단호한 정책을 추진, 문제를 해결하여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지금도 미국에서 케네디 집안은 정치명문가로 국민적 존경을 받고 있다. 반면 부통령까지 역임, 화려한 정치경력을 가진 닉슨 대통령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워터게이트 스캔들이라는 미국 초유의 선거부정행위를 자행하여 의회에서 탄핵 직전까지 가는 수모를 당해 대통령직을 중도에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야누스의 행태를 가진 정객의 오랜 기간 정치경험은 개인의 권력 쟁취와 유지, 확대를 위한 것이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설 명절은 오랜만에 흩어진 가족, 친지들이 모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따라서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도 무성하다. 특히 최근 국무총리 취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일부 각료의 개각,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장례 시 쏟아진 각종 정치언어 등으로 정치인들에 대한 시중의 평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무성하지만 한국에서 존경할 만한 정치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약 80% 정도가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을 정치인이라고 답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생 상대 설문조사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는 처음 대하는 외국인보다도 낮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매일같이 TV는 물론 신문, 라디오에 단골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에 가장 친근해야 되고 또한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여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 정치인들의 자화상이다. 국어사전에 정치가는 정치에 관여했거나 관여하고 있는 사람을, 정객은 정치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다소 애매하게 추상적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영어 사전에는 정치가는 Statesman이라 하며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으로, 정객은 Politician이라 표시하며 이를 정상배, 정치꾼 등으로 국어사전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 국민들에게 케네디는 정치가, 닉슨은 정객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정치가는 권력보다는 국가장래에 대한 비전과 정치인의 소명의식을 강조한다면, 정객은 권력의 쟁취를 위해서는 권모술수와 사적이익을 우선시하여 국민들로부터 지탄이 대상이 되고 있다. 신뢰받지 못하는 한국정치는 케네디 같은 정치가보다는 소위 닉슨과 같은 정객들이 정치판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난주 설 직후 민심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정치에 대한 신뢰도는 역시 낮다. 국민들은 사욕과 권력에 도취된 정객보다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에 의하여 이뤄지는 한국정치를 보고 싶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

[김영래 칼럼] 광복분단 70년, 이제는 평화통일 기틀을

2015년 을미년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앞으로 10일 있으면 민족의 명절인 음력설을 맞이하게 된다. 을미년의 상징이 청양(Blue Sheep)이라고 하며, 이는 상생과 평화, 그리고 화합을 뜻한다고 하는데, 새해 벽두부터 을미년 청양띠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남한에서는 물론 북한에서도 통일에 관한 논의가 무성하다. 지난해 연말 통일부 장관이 남북 간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한 당국자 대화를 가질 것을 공식 제의했는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사와 기자회견에서 분단 70년을 극복하기 위한 남북한의 신뢰관계를 강조하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는 한 해가 되기를 역설하였다. 더구나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고위급 접촉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의지를 신년사에서 표명하였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을미년을 맞이하여 국내는 물론 남북관계도 갈등과 불화로부터 상생과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는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국민 모두의 희망일 것이다. 남북한은 지난 70년간 광복과 분단이라는 이중적 구조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갈등 속에서 지구촌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어 관심 대상지역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남북관계가 청양띠의 바람같이 훈풍이 불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남북관계는 아직도 갈등상태일 뿐만 아니라 핵문제, 인권문제와 같은 폭발성을 가진 쟁점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열강들의 이해관계는 날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훈풍이 불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많다. 지난해 연초에 제기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으로 통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7월에는 통일준비위원회까지 조직, 활동하고 있으나, 실제적 차원의 남북관계는 524 조치 이후 한 발자국의 진전도 없이 담보상태이다. 남북은 625한국동란의 피비린내 나는 민족상쟁의 비극적 역사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풀지 못하는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광복을 평화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금년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 3년차이다. 금년은 총선과 같은 중요한 정치행사도 없어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국정을 집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내년 4월에는 총선, 2017년에는 대선 일정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금년이야말로 남북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아닌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하여 더 이상 정부에만 의존해서는 한계가 있다. 동서독의 사례에서 보듯이 지난 7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쌓인 장벽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남북 간의 이질감 해소가 무엇보다도 급선무이다.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한 지름길은 남북간의 민간분야에서 상호교류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 국민의 약 92%가 분단 이후 출생한 세대로 남북한 주민간의 이질감이 더욱 심화되어 이대로 가면 남북한은 남남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부는 음력설을 맞이하여 이산가족 상봉을 금년 대북정책에 최우선 순위로 추진해야 된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로 등록된 12만 9천 5백여 명 중 사망자가 6만명을 넘어 현재 남아있는 이산가족 수는 약 6만9천2백여 명이며, 이중 80세 이상 고령인구가 52% 정도 된다고 한다. 매년 3천8백여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 금년을 기점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사망 인구가 더욱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이산가족의 상봉은 시급한 과제이다. 이산가족들에게 가족 상봉과 같은 큰 명절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남북한 당국자가 말로만 남북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말고 우선 이산가족 상봉 계획을 조속 발표하여 이산가족들에게 희망의 선물을 음력설에 주기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을미년 벽두 남북한이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기반 조성의 첫 과제가 아닌지.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

[김영래 칼럼] 빛바랜 일기장과 생활 기록

신축년 1월1일이 되었다. 나는 쓰라린 경험과 역사를 가진 경자년을 더듬어 가면서 4294년은 좀 더 계획있는 생활을 하여 뜻있는 해가 되고, 올해의 주요 목표는 고교에 합격하는 것이다. 학교에 가서 신년축하식을 했는데, 교장선생님이 우리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을 하는 것이 제일 첫 과제이라고 했다 나는 올해는 고등학교 시험도 있고 여러 가지 계획이 있음으로 꿈 많고 공상 많고 경험 많은 신축년이 되기를 바란다 위의 내용은 필자가 중학교 3학년인 1961년(단기 4294년) 1월1월에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중학교 3학년인 1961년부터 일기를 써왔으니, 54년째 일기를 쓰고 있는 셈이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일기를 쓴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반면 그 많은 기간 과연 내가 일기를 쓰면서 매일의 생활을 얼마나 성찰하면서 인생을 보람 있고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지 새삼 반추하게 된다. 필자가 일기를 쓰게 된 경위는 중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이하윤 (異河潤1974년 작고) 교수의 수필 메모광(狂)을 읽고 난 후부터로 기억된다. 이하윤 교수는 그의 글에서 어느 때부터인지 나는 메모에 집착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와서는 잠시라도 이 메모를 버리고는 살 수 없는, 실로 한 메모광이 되고 말았다 요컨대, 내 메모는 내 물심양면이 전진하는 발자취며, 소멸해 가는 전 생애의 설계도(設計圖)이다 내 메모는 나를 위주로 한 보잘 것 없는 인생 생활의 축도(縮圖)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기와 메모는 다소 다를 수 있다. 메모는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 또는 남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글로 간단하게 요점만 적은 것이라고 한다면, 일기는 매일 매일의 활동과 생각을 규칙적으로 기록하는 것으로 자서전적 글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기든 메모든 자신의 매일의 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기록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이를 통하여 자신의 생활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일기와 메모가 가지고 있는 귀중한 가치일 것이다. 1960년대는 중고등학생들이 일기를 쓰는 것은 상당히 유행하였던 학생생활 풍속도의 하나였다. 당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학원잡지를 발행하던 학원사 등에서 만든 자유일기(自由日記), 실용일기(實用日記)란 이름 하에 제작된 일기장은 크리스마스와 신년 선물의 하나로 인기가 있었으며, 필자의 일기장도 당시 친지로부터 선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일기를 쓰는 것을 강력하게 권유하였으며, 많은 학생들이 이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형식적으로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1-2년 정도 쓰다가 고등학교, 또는 대학에 진학하면 그만두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하윤 교수의 수필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학창시절은 물론 중동부전선에서의 ROTC출신 소대장 시절, 미국 유학 시절, 그리고 교수가 된 이후도 계속하여 일기를 씀으로서 자연스럽게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도 과거에 있었던 일 중에서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일기장에서 찾아보곤 한다. 특히 중고등 시절 방학 때 당시 유행하였던 친구들과의 무전여행, 전방 GOP에서 병사들과의 생일 파티, 유학시절의 에피소드, 교수가 되어 첫 강의를 할 때의 느낌 등이 적힌 일기장을 보면 새삼 과거가 회상되며, 때론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 이뤄진다는 토인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일기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 될 수 있다. 특히 일기는 나의 망각증을 보완해 줌은 물론 매일 매일의 생활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어 더욱 애착이 가기에 오늘도 오래된 만년필로 일기를 쓰고 있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

[김영래 칼럼] 중동부전선에서의 1일 소대장

지난 9일부터 1박2일 동안 강원도 양구 소재 21사단 백두산 부대를 찾아 1일 소대장 생활을 하였다. 국방홍보원 산하 국방TV의 우리는 전우라는 프로그램의 촬영을 위하여 방문한 백두산 부대이기는 하지만, 젊은 병사들과 지낸 중동부전선에서의 하루는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백두산 부대는 한국전쟁 말기인 1953년 1월 창설된 부대로서 백두산까지 진격하여 태극기 꽂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부대 명칭을 지었다고 한다. GOP사단으로 작계지역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지대이며, 전방 사단 중 가장 길고 넓은 섹터의 철책선을 담당하고 있으며, 북한이 남침을 위해 파던 제4 땅굴이 발견된 곳으로 겨울에는 영하 20도 전후의 강추위가 몰아치는 최전방부대이다. 필자는 1968년 3월 학도군사훈련단(ROTC) 6기생으로 소위로 임관되어 1970년 6월말까지 백두산부대 GOP에서 소대장 근무를 하였다. 가칠봉, 도솔산, 펀치볼 등과 같은 가장 험난한 산악지대를 방어하고 있는 소초의 소대장을 지낸 필자는 이번에 46년만에 근무하던 소대를 방문한 것이다. 필자가 소위로 임관된 시기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김신조 일당의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하였던 사건 직후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남북한 긴장관계가 극심하던 해이다. 그해 여름에는 울진삼척무장공비침투사건까지 발생, 필자의 최전방 소대장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한 철책선 작업, 야간 잠복 근무, 동절기 시 1미터가 넘는 폭설 제설작업 등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 병사들과 보낸 청년장교 시절의 추억이 새삼 되새겨 진다. 동절기에는 폭설로 식수를 길어오지 못해 야간 불침번이 페치카 난로 위에 큰 양철 물통을 올려놓고 밤새도록 눈을 퍼부어 녹여 만든 물을 밥물과 식수로 쓴 다음 세수를 하던 전방생활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하던 열악한 군 생활이었다. 당시 강원도 양구 백두산 부대까지 가려면 춘천을 지나 화천 오음리를 거쳐서 가는 꾸불꾸불한 비포장 산악길을 곡예하면서 5시간 정도를 가고 또 전방 부대까지 험악한 산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올라가야 했던 머나먼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양구까지 포장도로에다 직선으로 터널을 뚫어 불과 2시간도 안되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단축되었다. 소초시설도 아주 현대화되었다. 신세대 병사들을 위한 체력단련실에는 탁구대, 러닝머신 등이 있는가하면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컴퓨터, 노래방 기기도 설치되어 있고 도서실에는 교양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일반전화로 일과 후에는 부모님, 친구들에게 언제든지 통화가 가능하고 분대별로 개별 침대가 있으며, 사워실에서 뜨거운 물로 목욕도 풀 수 있다. 식사는 대학 구내식당의 식단과 차이가 없으며, 필요하면 라면과 같은 간식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야간 잠복과 순찰 근무를 하는 병사들에게 살을 베는 강추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툼한 방한복도 강추위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남쪽 철책선에는 일몰시부터 밝은 전등이 켜지지만 북쪽에는 전기가 부족하여 그야말로 밤에는 깜깜한 암흑이다. 이런 혹독한 환경을 견디어내는 장병 때문에 중동부전선은 오늘도 이상이 없는 것이다. 이번 전방 방문에서 필자는 생일케이크를 사가지고 가서 첫날 저녁에는 12월 생일을 맞는 병사들과 생일파티를 하였다. 46년 전 소대장 시절 매달 생일파티를 할 때 즐거워하던 병사들의 모습이 떠올라 생일파티를 한 것이다. 이튿 날에는 마침 필자의 70회 생일이라 장병들의 축복 속에 생일잔치를 하였으니, 이보다 더욱 기분 좋은 생일잔치가 어디 있겠는가. 자랑스럽고 늠름한 대한의 건아! 21사단 백두산 부대 장병 파이팅!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

[김영래 칼럼] 개헌 문제의 해법

최근 개헌 논의가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11월 10일 국회에 결성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 소속 30여명이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제출하였는가하면, 여야당 대표는 정기국회 후 개헌논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사회각계각층 인사로 구성된 개헌추진국민연대가 결성, 개헌추진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한다. 반면 청와대는 개헌논의가 본격화되면 블랙홀이 되어 현재 추진 중인 경제정책이 지장을 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개헌논의 자제를 정치권에 요청하고 있다. 또한 일부 여당의원들은 개헌추진모임에서 제출한 개헌특위구성안 제출은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이기에 서명을 철회한다고 하는 등 정치권이 개헌문제로 우왕좌왕하고 있어 국민들은 정치권의 속내가 무엇인지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는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이 있은 이후 개헌문제는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역대 정권에서 다양한 형태로 논의되었다. 18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90% 이상이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국회에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186명의 의원이 참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도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두어 정부대통령 4년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의 복수안을 연구결과로 제출했다. 19대 국회에서도 개헌 움직임은 지속되고 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헌법개정자문위원회를 구성, 지난 7월 결과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또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은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155명의 의원들이 참여, 이번 정기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 내년 상반기 중 개헌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국민여론은 개헌에 대하여 다소 양립되어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0월 하순 실시한 개헌의 필요성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6%가 제도보다는 운영상의 문제이므로 개헌이 필요치 않다고 응답했는가 하면, 현행 대통령제에 문제가 있으므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42%로 나타날 정도로 의견이 갈려 있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이다. 따라서 헌법을 자주 변경하는 것은 정치질서 안정에 부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시대가 변했음에도 헌법을 개정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그대로 두어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도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헌법은 그 동안 9차례나 개정되었지만, 419학생혁명, 516 군사정변, 유신선포와 같은 중대한 정치변동에 의하여 급격하게 개정되었다. 87년 제9차 헌법 개정도 과거 헌법에 비하여 대통령 직선제, 국정감사권의 부활, 헌법재판소 설치 등과 민주적 요소를 담기는 하였으나, 5년 대통령 단임제와 같은 권력구조에 관한 규정은 3김과 같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강력한 영향력에 의하여 헌법 개정이 이뤄졌기 때문에 국민들의 광범위한 여론 수렴과정을 거쳐 자유스럽고 민주적인 상황에서 개헌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지금은 여야 정당도, 그리고 청와대도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3김과 같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도 없다. 이런 시기가 변화된 시대적 환경을 담는 개헌문제를 자유스럽게 공론화할 수 있는 적기라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의 여론이 양립되었음으로 오히려 개헌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라도 개헌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민주정치과정이다. 개헌은 정치인들의 정파적 이해가 아닌 국가발전을 위한 거시적 차원에서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학계, 언론 등에서 활발하게 공론화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것이 현재 복잡하게 얽혀있는 개헌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이 아닌지.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

[김영래 칼럼] 국정감사 유감

국회는 헌법 61조에 의거 국정감사권과 국정조사권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국민을 대신하여 행정부를 비롯한 기타 국가기관의 정책집행과 국민이 낸 혈세가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감사하고 문제가 있을 때 이에 대한 질책과 더불어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국회가 가지고 있는 국정감사권은 외국 국회에서는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권한이다. 선진국인 미국은 의회에 회계감사국(GAO: General Accounting Office)을 설치하여 행정부는 물론 기타 국가기관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회계감사국은 핵심업무가 회계감사와 평가는 물론 수사까지 할 수 있어 여론조사에서 연방의회, 백악관, 연방대법원에 이어 4위에 오르기도 할 정도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국회의 국정감사권은 미국 의회의 회계감사국과 같은 권한도 없고, 그렇다고 영국 의회와 같은 특정 사건별로 청문회 방식으로 임시수사센터를 설치하여 조사하는 방식도 아닌 일종의 변형된 형태의 감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는 행정부를 감사할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기구이기 때문에 국회는 국정감사권이라는 기형적인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변형된 형태의 국정감사이기는 하지만 국회가 제대로 권한을 행사한다면 국정감사를 통해 국회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 실태를 보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의 과거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정감사 기간 중에 국회의원들이 감사장에 출석한 공무원이나 증인들에게 알찬 준비에 의한 송곳같은 질문보다는 천편일률의 재탕, 삼탕의 호통치는 장면만 연출되고 있다. 볼성 사나운 막말과 고성이 난무하는가하면 여야간의 정쟁으로 시간만 소비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금년에도 예년과 같이 국회는 국정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실시된 국정감사는 오는 27일로 끝나기 때문에 거의 마무리 단계이다. 그 동안 식물국회라고 할 정도로 정쟁 속에 세월만 보낸 국회가 제대로 감사 준비도 하지 못하고 불과 20일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국정감사를 한다고 부산하게 요란만 떨고 있지 내실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구나 이번 국정감사는 피감기관이 지난해보다 무려 42곳이나 늘어 672곳이나 되고 증인도 각 상임위마다 수십명씩이나 되며 또 일부 상임위는 증인 채택 문제로 파행되어 귀중한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고 한다. 의원들 앞에 산더미 같이 놓여있는 각종 제출 자료를 꼼꼼히 챙기는 것은 고사하고 자료 목차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물리적으로도 짧은 시간에 이 많은 기관과 증인을 상대로 알찬 국감을 하기는 원초부터 어려운 것이다. 피감기관 관련자들을 수십명을 출석시켜 놓고 여야간에 의사진행 방식을 가지고 정쟁만하다가 끝나 오랜 기간 준비한 자료에 대한 질문 한번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막상 답변을 하려면 시간이 없다고 발언을 중간에 끊기도 한다. 심지어 질문한 의원은 이미 회의장을 떠난 상황에서 답변을 하는 경우 등등 실로 부끄러운 상황이 수없이 연출되고 있다. 대기업의 주요 임원들이 무슨 죄인 같이 증인석에 하루 종일 대기하고 있다가 회의가 파행되어 돌아가거나 또는 불과 1~2분도 안되는 질의응답만 하고 끝나는 사례도 있으니, 이것이 국정감사장인지 여야간의 정쟁판인지 또는 의원들이 큰 소리만 치는 호통장인지 모르겠다. 국감이 끝난 후에 후속조치가 어떻게 되었는지 챙기는 의원이 있다는 소리도 별로 듣지 못했다. 이런 국감이 연출되고 있으니 이번 국감은 이슈대안변화도 없는 3無국감이니 또는 허탕재탕맹탕의 3湯국감이니 하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 아닌가. 국정감사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 3無국감과 3湯국감이 계속되는 한 국회에 대한 불신을 더욱 커질 것이다. 제대로 된 국정감사를 통해 민생을 챙겨주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의 국회가 거듭날 수 있는 날은 언제 올 것인지?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前 동덕여대 총장

[김영래 칼럼] 제왕적 국회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왕적이란 용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제왕적이란 용어는 굳이 사전적 정의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과거 전제주의 시대의 황제와 같이 무소불위의 특권과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정치 체제 운영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정치용어나 정치인들의 행태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국회가 운영되는 과정이나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제왕적이란 비난을 받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추석 때 나타난 민심을 보도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 대다수는 현재와 같은 국회는 차라리 해산하는 것이 좋겠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런 국민의 따가운 질책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여전히 민심에 오불관언하며 일은 하지 않으면서 황제와 같은 특권만 누리고 있으니 국민의 분노는 더욱 끓어오르고 있다. 지난 5월 2일 국회 본회의 이후 5개월여 동안 국회는 단 한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입법 제로라는 한국 헌정사의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무노동 무임금의 관계법규를 준수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도 매달 월급과 입법비 명목으로 약 1천만원이 넘는 돈을 받고 있다. 물론 추석 때 상여금으로 387만8천원씩 모두 11억원 정도나 되는 국민의 혈세도 지급되었다. 경영자총협회에서 집계한 기업 평균 추석 상여금 93만2천원과 비교해도 3배 이상 많은 액수라고 하니 이는 제왕적 국회의원에 대한 대우가 아닌가. 현재 정기국회가 개회되어 의사일정도 정하지 못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입법 실적이 없어도 회기만 열면 매일 3만1천360원의 특별활동비도 받는다고 하니 매일매일 하루살기가 힘든 국민들은 국회 이야기만 하면 분통이 터진다. 추석 때 국민들로부터 그렇게 무서운 눈총을 받고도 추석상여금을 반납한 국회의원은 새누리당의 이정현 의원 밖에 없다고 한다. 연일 국회의원의 의무 불이행에 대한 국민적 질책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지난 19일 지급된 9월 세비를 반납하겠다고 말한 의원은 지금까지 한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분노한 시민들이 현재 인터넷과 거리에서 국회의원 세비 반납서명운동까지 전개하는 것이 아닌가. 국회의원에 주어진 특권이 얼마나 많은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은 원활한 의정 활동을 위해 9명의 직원을 둘 수 있으며, 사무실 운영비는 물론 9명의 인건비도 전액 국가에서 지원된다. 차량 주유비 및 유지비로 매달 110만원과 35만원씩 총 145만여원이 지급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우편료, 철도 이용 등등 각가지 혜택이 주어진다. 세비도 다른 기관의 눈치 볼 필요없이 여야가 합의만 하면 매년 인상할 수 있다. 가장 큰 특권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 비록 뇌물수수 혐의와 같은 부정부패가 있어도 회기 중에는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나 구금하지 못한다. 국회 동의도 재적의원 과반수 참석, 출석의원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다양한 특권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불체포 특권은 말 그대로 특권 중의 특권이기 때문에 사실상 전제주의 국가의 제왕이 갖는 특권과 다름이 없는 것 아닌가. 지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불체포 특권을 포함해 의원 세비 30% 삭감, 의원 연금 폐지 등을 공약으로 발표하였으나, 선거 후에는 꿀 먹은 벙어리 같이 묵묵부답이다. 실천할 의지도 없으면서 당선만을 위한 헛공약만 남발한 것이다. 국회는 제왕적 특권만 가질 생각만 말고 일하는 생산적인 국회상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민초들은 제왕적 국회가 아닌 국민들로부터 부여된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서민적 국회를 원한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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