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물처럼 흘러 가리라

물처럼 흘러 가리라 김현옥시인·수원 수일중 교장 필립 시몬스, 주옥같은 수필과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장래가 촉망되던 문인이었던 그는 35세의 나이에 루게릭이라는 병에 걸려 5년밖에 못산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게 된다. 루게릭병이라면 천문학자 스티븐 호킹이 앓고 있는 바로 그 병이다. 온몸의 근육이 무력해지는 근무력증을 앓으면서 저자는 ‘한번에 찻숟가락으로 하나씩 생명력을 덜어내는’ ‘느리고 성가신 폭력’앞에서 8년을 더 살게 된다. 그 느리고 성가신 폭력 앞에서 저자는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를 유별나게 만들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인간의 삶은 어차피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식한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삶이다. 나는 진정코 그것을 축복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삶의 생기와 환희를 알기 전에 유년기를 병마에 시달렸다. 열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런 병 저런 병 다 앓았다. 나의 몸은 갖가지 병원균들의 서식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바이러스나 세균들)들에 대한 두려움이 전이되어 그런지 지금도 벌레라는 벌레는 끔찍이 무서워한다. 겨우 몸을 추스를 정도가 되자 나 대신에 아버지가 힘든 투병생활을 하시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생활에 지치고 주눅든 가족들을 돌보면서 그리고 밤마다 아둔한 나의 인식능력에 절망하면서 소년기를 보내었다.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들이 외모를 가꾸고 포장하면서 백마를 탄 왕자를 꿈꾸는 시절에도 나는 ‘위로 향하는 타락’으로 끊임없이 발돋움하고 발버둥치면서, 나를 살리기 위해 비상하는 법, 추락하는 법을 터득하려고 하였다. 당시에 나는 코끝으로 죽음의 비린내를 맡으면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리워하고 미워하고 사랑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20, 30대가 가고, 40대도 가버렸다. 이제 50대 중반에 들어서니 죽음의 문제가 더더욱 편안하게 다가선다. 죽음의 문제는 앞으로 남은 시간들 속에서 나의 친구요 삶의 화두가 될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모든 욕구나 욕망이 다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물처럼 흘러가리라 마음먹는다.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여기, 내가 만나는 모든 존재와 사람들이 그렇게 절실하고 고마울 수가 없다. 오늘 내 몸을 괴롭히고 있는 이 신열과 고통조차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요즈음 나는 고통과 슬픔, 무기력감과 허무감, 권태와 고독, 죄와 업 그 모든 것을 다시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또한 나는 오늘 기쁨과 환희, 갈애와 집착, 아집과 편견을 다 놓아버리고 있다. 놓아버리는 법을 체득하고 있다. 어떻게 우아하게 떨어질 것인가. 작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떨어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놓아버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그 놓아버림은 포기나 체념과는 다른 것이라고.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내 병에 대한 진단을 받기 전에는 사는 것이 따분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하루하루가 의미있고 가치있는 나날이 될 테니, 이 얼마나 행복한 노릇인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니 더 잃을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원하지 않으니 모든 것이 축복이다. 소멸하는 것은 아름답다.

기고/4대 사회보험 정보연계 시스템

지방의 한 중소기업 총무과에 근무하고 있는 A양, 오늘은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연말이 다가오는데다가 지난 달에는 퇴사한 직원도 많고 새로 입사한 직원도 많아서 여기저기 신고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까지 그동안 팩스로 각종 신고서를 전송해 왔는데 팩스는 걸때마다 통화중이고, 우편으로 발송하자니 마감일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지난달에는 퇴직한 직원의 건강보험신고를 누락하여 과장님한테 또 한 소리를 들었다. 이번 달에는 빠뜨리지 않고 잘 처리해야 할텐데…4대 사회보험의 각종 신고업무를 한번에 처리할 수는 없을까? 그동안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여 온 ‘전자정부’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의 4대 사회보험이 ‘4대 사회보험 정보연계 시스템’을 통하여 인터넷으로 각종 신고를 접수할 수 있게 되었다. 4대 사회보험 정보연계란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별 각각 별도로 운영되던 정부 시스템을 상호 연계하여 창구를 일원화하고 4대 사회보험의 공통업무를 동시에 처리하여 더욱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11월 4일부터 동 시스템이 시험 실시하고 있으며, 사업장이나 가정에서 인터넷으로 사회보험에 대한 가입·변경·탈퇴신고 등을 처리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으로 신고할 수 없는 경우에도 국민연금관리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근로복지공단 각 지사, 노동부 고용안정센터 중 가까운 한 곳에서 다른 사회보험 업무까지 한꺼번에 신고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보험 신고에 필요한 각종 서식은 사회보험 포털사이트(www.4insure.or.kr), 노동부 워크넷(www.work.go.kr), 국민연금관리공단(www.npc.or.kr), 국민건강보험공단(www.nhic.or.kr), 근로복지공단(www.welco.or.kr)홈페이지와 각 공단 지사에 비치되어 있는 것을 이용하면 된다. 또한 전자정부(www.egov.go.kr)와 직접 연결하여 처리되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정보공유를 통하여 사업자등록증과 휴·폐업 사실증명원 등의 제출해야 할 첨부서류도 대폭 감축되어 민원 편의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유출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4대 사회보험 정보연계를 통한 개인정보는 전자인증과 같은 통제 절차로 엄격하게 보완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른 용도로 사용되거나 유출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시험실시 기간은 오는 31일까지 운영되며 이 기간 중에 나타난 국민 불편사항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즉각적으로 보완,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앞으로도 정부와 4대 사회보험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편의와 서비스 향상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 노력해 나갈 것이다. /정찬영 (국민연금관리공단 평택지사장)

<기고>급식방법 여건에 맞게 선택해야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 급식은 각 시·도 교육청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직영과 위탁 등 2가지 유형으로 실시되고 있다. 직영이란, 교육청이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식당 조리실 등의 시설을 설치하고 학교가 영양사 조리사 등의 인원을 직접 채용해 식단운영, 조리, 배식, 식자재구매, 사무관리 등 모든 업무를 학교에서 직접 담당하는 방식이다. 정반대로 위탁급식이란, 전문 민간업체가 교육청과 학교 가 하던 업무를 자체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대행하는 형식을 말한다. 학교는 민간업체가 제대로 하는지 철저한 관리감독만 하면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획일적이고 단편화된 구조에서 전문화되는 사회, 다양한 선택의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이같은 시대 조류에서 경기도 교육청은 중·고등학교의 급식을 기존 직영 방침에서 지난 9월부터 학교장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학부모 의견을 수렴해 학교 여건에 가장 적합한 방식(직영과 위탁중 한 가지)을 스스로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시민단체 등이 주축이 돼 ‘급식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직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업체는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직영과 비교해 급식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직영과 위탁 양쪽 모두 장점 및 문제점이 있다. 기록이나 통계자료에서도 상호 우위를 점하는 부분들이 있다. 먼저 직영은 초등학교에서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유년시절 부터 올바른 식사예절을 심어주고 편식을 안하는 습관, 질서 지키기 등 교육적인 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반대로 부식납품 및 입찰과 관련해 일부 잡음내지는 오해가 발생하는 등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급식과 관련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예산이 과다 지출되고 학부모들이 급식도우미로 나가야 하는 불편도 있다. 전문회사 위탁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부 업체로 인해 전체가 이익만을 추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학교급식을 위탁으로 시행한지 4년여 지나면서 올해는 식중독 사고가 10월 현재 단 1건도 발생하지 않는 등 위탁운영이 정착돼가고 있다. 그동안 위탁급식 가운데 이동도시락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았던 관계로 대다수 학부모들은 ‘위탁급식’하면 ‘이동 도시락’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외부에서 아침일찍 조리한 음식이 점심에 배달되다 보니 신선도가 떨어지고 심지어 위생사고의 원인이 돼 위탁급식을 반대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행하는 위탁급식이란, 전문회사가 학교안에 조리실을 설치하여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민간에 의한 책임 경영체제는 시대의 흐름이다. 그래서 국가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자 국가 기간사업인 전력, 철도, 통신, 은행, 심지어 교도소 조차 민간 전문업체에게 운영을 맡겨가고 있다. 급식 역시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은 물론 서울시청과 구청, 국회, 검찰청, 법원, 심지어 군부대 조차 민간위탁하는 추세에 있다. 민간기업이 만든 유아용 분유를 믿을 수 없다고 해서 분유회사를 정부가 직접 만들어 경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직영은 이제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직영이든 위탁이든 학교장과 학부모가 여건에 맞는 급식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그래서 미래를 짊어진 우리 자녀들이 더욱 맛있고 균형있는 영양을 섭취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한결식학생돕기운동본부 사무총장 서원현

<기고>나쁜 중독, 좋은 중독

/구본상(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팀장) 얼마전 개봉된 영화중‘중독’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형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하게 되어 형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 형의 영혼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온 것처럼 속여서 형수와 살게 되는 말 그대로 한 남자가 사랑에 중독된다는 내용이다. 무엇인가에 중독된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빗나간 사랑, 마약, 알코올, 도박같이 한번 중독에 걸리면 그 파장은 자신의 의지는 물론, 가족과 이웃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번져간다. 이런 중독은 사회 악이다. 몇 달 전의 일이다. 학교 선배님의 점심 초대로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현관을 막 들어서는데 아이들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중3, 중1된 두 딸이 전화요금과 관련하여 훈계를 듣고 있던 중이었다. 내용인 바 700서비스를 너무 많이 이용하여 평소 5만∼6만원이던 전화료가 갑자기 20만원이 넘게 나왔다는 것이었다. 700서비스로 핸드폰 벨소리를 최신곡으로 자주자주 바꾸는 것은 물론 대화방 같은 곳에 전화를 해서 잡담을 하는 등으로 전화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왔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700번으로 시작되는 전화서비스가 많다. 날씨나 교통정보제공에서부터 대학합격유무 확인까지 그 용도는 다양하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는 대부분 흥미위주인 것이 문제다. 핸드폰 벨소리를 최신곡으로 바꾸기, 좋아하는 연예인의 목소리 듣기, 선물타기 퀴즈나 게임 등등. ‘엔조이방’ ‘엿듣기방’ ‘포르노보기’ 등 이름부터 수상쩍은 전화서비스까지 청소년들을 무방비로 유혹하고 있다. 사실 나도 700서비스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700서비스로 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는 경기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팀장이다. 060-700-1212. 지난해까지는 700-1212였으나 정보이용 사이트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올해부터는 060-700-1212로 바뀌었다. 이 번호로 한 통화를 할 경우 2천원의 성금이 적립되어 소외된 우리 이웃들에게 돌아간다. 매년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는 ARS모금액에 애태우는 나에게 다른 700서비스는 중독이라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안타깝게도 그 흔한 700중독 중에 ‘성금모금700중독’에 걸린 사람은 의외로 적은 것 같다. 지난해의 경우 도내서 060-700-1212를 누른 횟수는 9만 건 정도다. 980만 경기도민은 물론, 220만 가구에도 턱없이 모자란 숫자이다. 같은 사람이 여러 차례 누른 것을 감안하면 실제 모금ARS에 참여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다른 700서비스는 이용하는 대로 비용이 들고 하루에 몇 번이고 걸 때마다 요금이 올라간다. 하지만 060-700-1212는 다르다. 하루에 아무리 여러 차례 눌러도 한번밖에는 되지 않는다. 10번이고 100번이고 걸어도 2천원만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060-700-1212의 중독자는 생기지 않는 걸까? 방법을 몰라서일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치는 정많은 민족이다. 이들이 성금의 귀중한 의미를 안다면, 그 성금이 우리 이웃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희망으로 돌아가는지 그 가치를 안다면 중독되지 않고는 못배길 것이다. ARS 한 통화는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 시설등에 전달되어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되살리는 귀하디 귀한 불씨가 된다. 올겨울은 따뜻하다지만 그래도 바람은 차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겨울은 더욱 고통스러운 법이다. 이들을 위해 일년 내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희망2003 이웃돕기캠페인’ 기간(12. 1∼1. 31)만이라도 매일매일 060-700-1212에 중독되면 어떨까? 올겨울에는 모든 사람이 060-700-1212를 누르는 ‘좋은 중독’에 걸리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기고>운전문화도 성차별

“저 앞차 말이야 틀림없이 여성 운전자일거야…”앞차가 과속을 않고 제대로 가는데 대한 뒷차의 남성 운전자 불만이다. 그리고는 추월하면서 여성 운전자가 맞으면 냉소의 시선으로 힐끔 쳐다본다. 그러니까 과속을 않고 얌전히 차선을 지키고 가면 그 차가 설령 남성 운전자일 지라도 여성 운전자로 아는 지경이 됐다. 난폭운전 위주의 자동차문화가 이토록 피폐되고 있다. 심지어는 이면도로에서 마주쳐 남성 운전자 차가 좀 물러 서 주어야 할 상황인데도 떡 버티고는 여성 운전자더러 물러서길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가 시비가 생기면 한다는 소리가 “여자가 다 차를 끌고 나와 귀찮게 한다”며 욕설을 해대기도 한다. 어느 사회단체가 수집한 운전자 성차별의 사례가 이러하다. 기막힌 사례가 또 있다. 차선을 끼어드려는 차가 있어 두어대를 끼어 들도록 양보하고는 뒷차가 빵빵거리는 바람에 더 지체할 수 없어 또 끼어드려는 차를 제치고 한참 진행하는데, 끼어들지 못한 차가 뒤따라와 추월하면서 남성 운전자가 손가락질을 마구 해댔다는 것이다. 화가 치민 여성 운전자가 뒤쫓아가 결국 사과를 받은 것으로 끝났지만 남성 운전자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남성 운전자가 오히려 여성 운전자를 보호하는 것이 일상화 됐다. 그건 남성 자신의 아내를 비롯한 여성가족 역시 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역시 자신의 가족 중에 여성 운전자가 있다. 그런데도 성차별을 한다. 남성 운전자가 다른 여성 운전자에게 성차별을 하면 자기 가족의 여성 운전자 또한 다른 남성 운전자에게 심한 성차별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여성 운전자에 대한 남성 운전자의 성차별은 사고가 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잘못 여기는 참으로 부끄러운 자동차문화에 기인한다. ‘운전은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는 자동차 잠언은 정말 귀담아 들을만 하다. 좋은 차를 지녀야 인격이 높은 것으로 착각하는 차격이 인격이 아니라, 운전의 품격이 곧 운전자의 인격인 것이다. 괜찮은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잘못되곤 하는 것을 보는 건 불행한 현상이다. 자동차문화의 성숙을 위해서는 고쳐야 할 점이 많지만, 우선 성차별부터 시정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는 여성운전 경력이 올해로 15년이다.관록을 내세울 것까지는 없지만 운전에 남의 욕을 먹을 단계는 아니라고 믿는다. 그런데도 앞서 같은 운전의 성차별 사례가 생소하지 않는 것은 비슷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여성 운전자의 아무 잘못 없이, 무턱대고 퍼붓는 남성 운전자의 횡포는 실로 지탄 받아야 할 폭력이다. 이미 여성의 능력이 직종과 계층을 불문하고 다양· 다재하게 인정돼 크게 파급된 마당에 새삼 운전의 성차별을 고작 말하는 것은 어쩌면 유치한 얘기이긴 하다. 하나, 이런 유치한 얘길 해야하고 또 들어야 할 책임이 일부 지각없는 남성 운전자들 때문에 있는 현실을 남성들은 성찰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화목한 자동차문화는 현대 사회생활의 명랑화를 기하는 일익이다. 여기엔 오직 교통법규, 교통도의 만이 있을뿐 남성·여성운전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여성 운전자에 대한 남성 운전자의 성차별 의식은 우선 남자의 체면이 아니다.

<기고>지방세에 대한 몇가지 고찰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지방재정 특히 세무행정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각종 지역개발사업, 주민편익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원확충이 필수적이며, 시민들 입장에서는 세금을 정확하고 공평하게 납부하고 있는지 또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최근 세무분야에 대해 주민의 대표로 구성된 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도 받았는데 주된 내용은 시민들로부터 과도하게 세금을 거두어 들이지는 않았는지, 조세정의 차원에서 탈루되는 세원들은 없는지 그리고 열악한 여건하에서 근무하는 세무공무원들에 대한 사기진작책은 어떠한 것들인지에 대한 사항들이다. 이처럼 의회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언론 등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글을 쓰게된 계기는 지방세분야에서 몇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사항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첫째로 시민들이 세금을 더 낼 수가 있는데 그 원인이 대부분 공무원의 업무착오이며 또한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우선 이러한 원인은 면적이나 세율, 과표 등을 잘못 적용한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전체의 5%에 불과하며 이중납부나 국세경정에 따른 세액조정된 경우와 차량 매매이전으로 자동차세를 날짜 계산하여 환부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금년 기준으로 현재 미환부액은 3%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오납은 전산이나 문서로서 확인되기 때문에 모두 발견되며 소액인 경우 미신청자의 계좌확인이 불가능하여 미환부된 경우와 거소불명인 경우 돌려주지 못하고 있는데 이도 세무부서에서 주소지 추적, 전화접수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환부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조세행정 운영상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법적 사항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전국 수많은 세무공무원들의 사기와 대다수 주민들이 자칫 세무행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단 1건이라도 공무원의 잘못 또는 착오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항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재발하지 않도록 전국의 모든 세무공무원은 더욱 노력해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반성의 계기가 되어 더욱 노력하고 있다. 둘째로 체납세중 징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사항에 대해 전문용어로 결손처분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 경우 세금징수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세목이 100% 납기내 징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체납이 계속 증가하게 마련이며 결손처분은 세금징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체납관리의 효율성을 위해서 우선 별도로 관리하고 주기적인 재산, 예금, 직장조회를 통해서 재산 발견즉시 압류 등 체납처분을 즉시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과감하게 결손처분을 하되 철저한 사후관리를 통해 탈루되는 세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셋째로 고액체납자가 많은데 적극적으로 징수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우리 속담에 ‘지키는 자가 열이라도 도둑하나를 막지 못한다’고 하듯이 악의적이며 고질적인 체납자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재산을 모두 타인(가족 또는 친척)명의로 이전해 버리면 현행법상 제재 및 징수가 어렵다.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서 세무부서에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특히 대다수의 성실납세자와의 형평을 고려해 최대로 징수노력을 하고 있다. 우선 부동산 등에 대해 최대한 신속하게 압류조치를 하고 신용정보제한, 관허사업제한, 예금 및 급여압류, 형사고발, 최근에는 출국금지 조치까지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앞서 지적한 문제에 대해서는 체납자 가족 재산도 체납처분할 수 있는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다고 본다. 지역의 주인은 주민이듯이 주민들의 성실한 납세는 지역발전의 원천이 되며 이는 주인으로서 당연한 권리이며 의무라 생각된다. 앞으로 지역발전을 위해 시민들의 성숙한 납세의식이 필수적이며 세무분야에 근무하는 공무원 역시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조세정의 실현과 시민들이 편리하게 납세할 수 있는 각종 시책의 개발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기고/'아파트'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서러움 세가지가 있다면 그 첫번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변화에 따라서 갈아입을 옷가지가 없을 때며, 두번째는 배가 고플 때 먹을 것 없어서 굶주릴 때며, 세번째는 하루 종일 살아 있음에 무엇인가에 간단없는 정진을 하다가 피곤한 몸뚱이 눕힐 공간, 즉 쉼터가 없을 때 그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명있는 모든 것은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하고 비바람 막을 수 있는 공간, 확보를 위하여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철학자는 말하기를 “쾌락의 궁전속을 거닐지라도 초라하지만 내 집만한 곳은 없으며 사람은 자기 집에 있을 때 가장 행복에 가까워지며 밖으로 나가면 그의 행복은 점점 멀어지게 되는 법”이라 하였다. 나는 가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하여 동물의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 세계에서도 영역 다툼에는 목숨걸고 지키려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하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욕심이 많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 세상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지난 겨울에 집없는 사람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다가 온가족이 불에 타죽은 소식을 접하면서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었다. 집이 없어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면서도 백악관이라고 자위하며 한 평생을 살아온 것도 서러운데 하필이면 추운 겨울에 불상사를 입었으니 그야말로 집없는 서러움으로 한 평생을 살다간 사람들이다. 가을철이면 집없는 사람들이 전세방과 월세방, 사글세방 그리고 내집을 마련하여 이주하는 이사 행렬이 줄을 잇는다. IMF사태 때 서울역사와 지하철역에 신문지와 라면상자를 깔고 덮어 생활하는 수많은 노숙자들도 꿈속에서 그리워하는 곳은 고향산천이며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한평생 따뜻하게 사는 것이 절박한 소망이었을 것이다. 내집을 마련하겠다고 한평생 먹을 것 안먹고 입을 것 덜 입으며 부지런히 재산을 모으는 개미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부동산이나 주식거래 등으로 한탕 잡아보려는 거미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보노라면 어떤 심정일까. 이 세상에서 고마운 것 다섯가지를 뽑으라면 첫번째는 우리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넓은 울타리를 제공해 주는 땅덩어리에 대한 고마움이며, 두번째는 그 울타리속에서 가정이라는 자그마한 울타리를 만들어 사랑과 정을 나눌 수 있도록 가꾸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이며, 세번째는 그런 울타리를 벗어나 좀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가르쳐 주시는 스승님의 은혜이며, 네번째는 그 넓은 울타리에서 한 평생 옳고 그름을 가려주며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다정다감한 친구들의 은혜이며, 다섯번째는 지구라는 울타리 속에서 생명의 자유와 자비광명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춥고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수많은 농부들에 대한 고마움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소중한 고마움이라 하여도 의식주가 해결 안되면 그 어떤 고마움과 은혜에 대한 보답보다는 서러움만 더할 것이니 어느 누가 입을 것을, 먹을 것을, 쉬는 자리를 찾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집 마련은 평생 화두가 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고층빌딩이 올라가고 고급주택이 들어서는 이 시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옛날 농경사회에서 수하석상을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삼고 생활해 온 우리네 선조들의 주거문화는 그래서 더욱 필요한 생활조건이 됐음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조성헌(전 안성군수)

기고/솔로몬의 선택

공공연히 사람이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명쾌하면서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법원에서 판결을 내리는 법관은 판결로서 말하지만 그 속에는 정의를 향한 법관의 고뇌와 가치관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법치국가에서 판사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인 것과 동시에 그만큼 책임이 뒤따를 것이고 공정한 판결을 위하여 언제나 외로울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정보화, 기호화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여 남이야 어떻게 되든 이웃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며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수법이 날로 다양하고 지능화되면서 선악을 구분하는 판사의 어깨는 더욱 더 무거워질 것이다. 더욱이 판사의 판결은 돌이킬 수 없는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거짓 같은 진실과 진실 같은 거짓 사이를 넘나들며 통찰하고 있을 것이다. 공정하고도 지혜로운 판결로 손꼽히는 기독교 구약성서에 나오는 솔로몬 왕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날 솔로몬 왕에게 한집에 살고 있던 두 여인이 갓난아기를 안고 와서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면서 솔로몬에게 이른바 판결을 요청했다. 한참 고민을 하던 솔로몬은 누가 친어머니인지 특별한 증거가 없으니 공평하게 둘로 나누어 가지라고 하면서 신하에게 칼을 가져오게 한다. 왕의 명령에 따라 칼을 들고 아기를 토막내려고 하는 순간 한 여인이 가로막으며 아이를 포기하겠으니 제발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애원했고 다른 여인은 왕의 명령대로 아이를 둘로 갈라서 라도 나누어 달라고 했다. 이때 솔로몬은 아이를 살려 달라고 애원한 여인이 진짜 어머니임을 판결한다. 친어머니라면 비록 아이를 남에게 주더라도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솔로몬의 판결은 모성애라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에서 나온 지혜로운 판결로 수준 높은 정신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면 재판은 신생아를 향하여 칼을 드는 어쩌면 무모한 일은 벌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도 솔로몬의 일화와 유사한 친생자 확인 소송이라는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보편적으로 유전자 감식을 이용하여 나온 결정적인 결과로 부모자식의 관계를 맺기도 하고 그동안의 인연을 끊고 남남이 되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사람의 체세폭속에서는 생김새와 크기가 같은 염색체가 쌍을 이루고 있는데 반은 아버지로부터 나머지 반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고유의 유전자이므로 사람의 혈액, 침, 머리카락 등을 채취하여 유전자 감식을 통하면 친생자관계를 간단히 식별할 수 있다. 고대시대의 솔로몬의 선택은 미묘한 사람의 심리와 정서를 투시하여 읽어내고 극적인 재판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독단에 빠지지 않고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사고하여 대의로 통찰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결단이야말로 시대를 거슬러 본받아야할 수준 높은 정신적 세계이다. 오는 19일은 새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당선자에 따라서 국가의 미래가 틀려질 수가 있지만 그것의 최종적인 결과에 대한 선택은 선거권이 없는 자를 제외한 20세 이상 국민의 판단으로 유보되어 있다. 대선 후보 모두는 자신만이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새 대한민국을 창출하여 민족을 이끌어갈 새시대의 새지도자라고 목소리가 드높다. 솔로몬의 재판은 거짓말로 일관하며 아이를 차지할 욕심만으로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던 여인과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눈 앞에 있는 자신의 자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여인 사이에서 모성애를 꿰뚫어 명 판결을 이끌어 낸 솔로몬처럼 지금 우리 국민 모두에게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아무런 거짓없이 목숨까지 내어 줄 수 있는 진정한 대통령 후보를 가리는 마음의 눈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리 유전자 감식을 해보아도 국민들의 풍요로운 미래와 안녕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대통령의 감식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단지 국민들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을 후보들에게 좌로 우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하고 지혜로운 국민들의 후회 없는 선택이 있을 뿐이다. /권성훈(시인)

기고/새해엔 자꾸 접시를 깨리라

기고/새해엔 자꾸 접시를 깨리라 김현옥(수원 수일중 교장·시인) 새해가 되면 1년의 운세를 알고 싶어 점쟁이를 찾거나 하다 못해 컴퓨터 점괘라도 보고 싶어진다. 도처에 불확실함과 위험이 편재해 있으니까, 또는 한 해를 경건하게 맞이하기 위해, 아니면 복을 받기 위해 점괘를 보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일일운세를 좀 보는 편인데, 왜냐하면 대인관계가 많고 특히 철부지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직종이라서 그저 하루하루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비는 마음에서이다. 올해는 양대 선거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불확실성과 불안의 세기라서 그런지 부쩍 점괘에 대한 관심들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전에 만난 친구도 새해 첫날에 접시를 깨고는 영 기분이 좋지 않다면서, 용한 점쟁이가 있으면 점이나 보고 싶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그 친구는 지나치게 깔끔하고 살림도 잘하는 친구여서 가끔씩 내가 강박증 환자라고 놀리는 친구이다. 걱정하는 친구에게 나는 “접시를 깨뜨리는 사람도 있어야 그릇장사가 살것 아니니. 나는 일주일에 한벌꼴로 접시를 깨는걸. 쨍그랑 소리. 얼마나 상쾌하니”라고 말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섞어 모가수의 “접시를 깨자(?)”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니까 친구가 웃었다. 그렇지만 못내 찜찜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라. 새해 첫날 접시 깨뜨린 게 뭐 그리 걱정거리란 말인가. 아니 죽고 사는 것 빼고 다른 일들이 뭐 그리 문제란 말인가. 모든건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접시는 깨지게 되어 있고, 더욱이 묵은 접시는 깨버려야 새접시가 들어설 공간이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우리 머리속의 접시도(패러다임, 고정관념 등) 묵은 접시는 깨뜨려버리고, 그 자리에 새접시를 놓아야 하는 건 아닐까? 나의 경우, ‘작심삼일’. 3일에 한번은 머리속 접시를 깨뜨려버리곤 한다.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깨우침을 확실하게 하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귀신꿈 때문에 어떤 날은 잠자는 게 두렵기도 하였다. 머리를 산발하고 입에는 칼을 물고, 피를 뚝뚝 흘리는 여자 귀신이 갈쿠리 같은 손톱으로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곤 하였다. 이건 꿈이야 하면서 버르적거리다가 겨우 소리를 지르고 깨어나곤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홀연히 귀신과 맞서기로 하였다. 아니, 귀신에 대해 재정의를 하기로 하였다. 귀신이 무언가? 억울한 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돌면서 하소연할 사람을 찾는 게 귀신 아닌가? 그리고 나는 명색이 상담가이고, 그래 오너라. 언제든지. 내 너를 맞이하여 네 원한과 하소연을 다 들어보겠다. 하고 마음먹고 귀신을 기다리니까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담력이나 용기가 아니다. 귀신에 대한 재정의, 내나름의 재해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상황이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절망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희망적으로 생각할 것인가는 순전히 마음먹기에 달렸다. 나의 경우, 현명하게 해석을 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귀신을 이해하고 귀신의 억울한 점을 풀어주려고 마음먹었더니 귀신이 사라졌다. 점괘도 그러한 것이다. 그저 심심풀이 정도로 또는 말과 행동을 삼가는 계기로 삼는 정도로 점괘에 의존하면 된다. 비오는 날이면 비가 와서 좋고, 갠날은 개어서 좋고. 비온 후에는 갤 것이고, 갠 후에는 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새해에는 자꾸 접시를 깨리라.

기고/한국벤처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

기고/한국벤처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 안산테크노파크원장 배성열 벤처기업은 우리나라 산업기술 경쟁력을 제고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필수 요소로 인식되어 왔으며 지금도 그 중요성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는 벤처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벤처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벤처의 경영상과 가치관을 재정립함으로써 경쟁력 강화를 도모해야 할 시점에 이르고 있다. 한때 장밋빛 청사진으로 호황을 누렸던 벤처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기본적인 벤처 인프라의 취약, 비즈니스 모델 불분명, 벤처정신 실종과 함께 정부 정책의 혼선 등을 주요한 내적 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경기급랭과 나스닥 시장 불안, 각종 금융사고와 함께 벤처에 대한 불신의 확산 등이 외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벤처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여기에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찾아 나감으로써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벤처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몇가지 핵심적인 사항을 점검해 본다. 우선 벤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중요하다. 벤처기업인은 물론 투자자는 그동안 벤처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대박의 환상과 함께 조급하게 성과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벤처 캐피털리스트 또한 전문성이 부족한 가운데 벤처기업의 경영에 대한 자문보다는 벤처기업인과 함께 머니게임에 치중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실패할 가능성보다는 성공가능성을 너무 염두에 두고 벤처기업을 바라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벤처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벤처 생태계를 진화시켜 나가기 위한 공감대의 형성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둘째, 벤처기업 경영자의 경영능력이 제고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벤처기업의 경영자가 기술소유자인 경우가 많고 이러한 이유로 기업 경영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경영자는 상품과 현금의 흐름, 회계·인사부문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적절한 아웃소싱 전략의 구사로 비교우위에 입각한 경영합리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셋째, 코스닥 등록이 벤처 성공의 기준이라거나 기술력만이 성공을 좌우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벤처의 성공은 코스닥에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과 고용의 창출이다. 또한 벤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기술력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되새겨 본다면 기술력보다는 오히려 기술을 상품화하고 마케팅할 수 있는 능력이 보다 중요하다. 소비재의 경우 디자인이나 브랜드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벤처기업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도 기술성보다는 상업성이 우선시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넷째, 벤처기업의 속성에 맞는 경영합리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벤처기업은 자사 핵심 역량과 관련된 기술의 세계 동향을 파악하고 보유한 기술을 시장의 니즈에 맞추어 나가기 위한 지속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경영상의 지분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사의 시장가치를 높이는데 더 고심해야 할 것이다. 지분율을 고집하는 벤처일수록 자금 유입이 어려워져 주가 투자의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후발업체에게 추월당함으로써 업계에서 퇴출 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한편 필요하다면 대기업과의 상생을 추구하는 전략을 구상할 필요도 있다. 이는 안정적인 투자자금 확보, 브랜드 가치 활용, 유통망 이용 등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벤처기업의 자구적인 노력만으로 벤처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지는 않는다. 벤처의 싹이 자라날 수 있는 유무형의 벤처 인프라가 갖추어져야 하며 일관성과 효율성이 있는 정부의 벤처육성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벤처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정부 부처별로 중복된 각종 지원프로그램을 재정비해야함은 물론, 수도권에 편중된 벤처 집적지를 지방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기고>누구를 위한 ‘만남의 장소’인가

/이 선 열 (한국미술협회 경기도지회장) 얼마전 경기도문화예술회관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어느 미술단체 전시회에 들렀다가 미술계 원로작가를 만났다. 오랜만이라 저녁식사를 하러 문예회관 옆의 만남의 장소 ‘예원’을 찾았다. 앉자마자 건네진 주문식단표를 보고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샤브샤브 2만2천원, 훈제오리요리 4만2천원…. 주머니 사정이 얄팍한 우리 예술인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고급스런 음식들만 나열돼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식단표 한 구석에 일반 음식점보다 다소 비싸긴 하지만 비빔밥·갈비탕·냉면 등의 대중음식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주변을 의식하면서 비빔밥을 주문했다. 주문하고 40분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지 않아 종업원에게 다시 한번 부탁해야 되는, 값싼 음식을 주문한 대가를 충분히 치르고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음식점을 도망치 듯 나오면서 분노와 함께 서글픔을 느꼈다. 경기도 문화예술의 산실인 경기도문화예술회관 서쪽 주차장 자리에 1년간의 긴 공사끝에 ‘예원(藝園)’이라는 3층 건물의 음식점이 11월초에 들어섰다. 이 건물이 들어선다고 할때 많은 예술인과 시민들은 건물이 들어서면 서쪽이 막히므로 문화예술회관 전체 미관에 영향이 크다, 전시장 주 출입구 쪽에 건물이 들어서 통행에 불편을 주며 가뜩이나 비좁은 주차공간을 더욱 비좁게 할 것이다, 지하에 위치한 전시장 주출입구를 건물이 가려 그러잖아도 열악한 전시장 입구가 안보여 일반인들이 전시장을 찾기 어렵고 현수막도 안보인다, 건물을 문예회관에서 직접 건립하는 것이 아니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C호텔이 건립해 20년간 사용한 후 기부채납 한다니 특혜의혹이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을 제기할 때마다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많은 문화예술단체들이 이곳에 상주하고 있고 이곳을 드나드는 도민들에게 만남의 장소라는 휴식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의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편의시설이며 부지선정도 C호텔 측에서 그곳이 아니면 수지타산이 맞지않는다고 해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해명 아닌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리 예술인들과 시민들은 건물 신축의 타당성을 강조하는 관계자 측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1년 동안 건축공사현장의 소음과 주차장 폐쇄로 인한 불편을 참고 견뎌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것이 예술인을 위한 만남의 장소이며 편의시설이고 대중음식점이란 말인가. 그곳엔 예술인은 별로 없고, 찾기 쉽고 주차장시설 좋은 덕에 부유한 미식가들만 붐비고 있다.예술인들은 오히려 값싼 음식점을 가기 위해 위축된 모습으로 그 앞을 지나 다니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개인음식점 개업식에 도지사 명의로 초대장을 뿌린 것도 비상식적인 일이고, 본래의 취지나 목적에 어긋나는 음식점 영업을 계속 하는데도 팔짱만 끼고 방관하는 경기도문예회관 측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기고>’지방자치’ 성공하려면...

/ 권오규(의왕시의회 의장) 지방자치는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지역주민간의 상호 관계속에서 이루어진다. 집행부와 지방의회, 지역주민과의 관계는 포괄적 계약에 의한 주인과 대리인간의 관계를 가지며 집행부는 주민에게 필요한 공공재와 공공서비스의 공급을, 지방의회는 집행부를 통제하는 대리인 역할을, 주민은 이들 서비스공급에 소요되는 부담을 하게 된다. 집행부와 지방의회는 대리인과 대리인 간의 관계를 가지며 양자 모두 주민의 복지증진을 목적으로 존재하지만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대립과 갈등이 발생하며 의회와 집행부간 필요없는 갈등은 지방정부의 문제해결능력을 떨어 뜨리고 행정불신을 초래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갈등의 원인은 첫째 상호역할에 대한 이해부족과, 둘째 불완전한 역할분담, 셋째 행태 및 가치관의 차이, 넷째 이용가능한 정보의 집행부 독점등을 들수 있다. 이와같은 갈등의 원인을 극복하고 의회와 집행부가 균형적 발전을 이루기위해서는 상호간 적극적인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집행부에서 의회의 대표성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 집행부는 전문성이나 정보면에서 의회에 비해 우월한 입장에 있으며 집행부관료들이 의회의 대표성을 훼손해 왔다. 앞으로 정보의 집행부독점이 완화되어야 할것이며 집행부 관료들이 의회의 기능을 인정하고 협력할때 상호 갈등을 해소하고 지방자치의 발전을 이룰수 있을것이다. 둘째, 의회사무직렬의 신설이 필요하다. 현재 지방의회의원들은 직원들의 보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의회사무기구에 근무하는 직원에 대한 인사권이 단체장에게 있기 때문에 지방의회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집행부를 의식하게 되며 능동적인 업무지원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지방의회의 기능을 견제하기위해 의도적으로 의회사무직렬을 신설해야 한다. 셋째, 집행부 정책결정에 대한 의회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지역개발과 도시개발, 지역환경정책등의 결정에 관계의원을 참여시키므로 의회와 집행부간 상호이해를 높이고 지역주민의 복지증진에 기여하게 될것이다. 넷째, 지방의회는 주민의 행정수요 파악에 노력해야 한다. 주민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주민이 필요로 하는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능동적인 해결에 노력해야 할것이다. 다섯째, 의원간의 집단 토론이 활성화 돼야 한다. 현재 의원 상호간 정책대안 개발을 위한 집단토론이 부족하며 앞으로는 의원상호간 토론문화정착을 통해 상호간 정보의 교환과 공유가 가능하게 될것이다. 여섯째, 지방의회는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 한 지방사무에 대해 조례를 제정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례위반에 대해서도 벌칙규정을 둘수 있도록 해 자치입법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의 집행부와 의회는 상호불신과 갈등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런 관계는 두 기관의 존립목적인 주민의 복지향상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두 기관의 관계변화를 위해 집행부는 봉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면서 의회를 지방행정의 파트너로서 인정해야 할것이며 의회는 주민으로부터 위임된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할수 있도록 자기변화와 지위향상에 노력하는 가운데 의회와 집행부간 균형적인 발전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기고/‘아이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세요’

기고/‘아이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세요’ 김현옥<수원 수일중 교장·시인> 예년보다 추위가 빨리 찾아왔습니다. 아침마다 자녀들 학교에 보내시면서 안쓰러워하실 부모님 마음이 저에게도 전달되는 듯 합니다. 우리 학교 현장이 가정보다 더 환경이 좋아져야 할텐데 그저 더도 덜도 말고 너무 춥거나 덥지 않은 환경에서 생활하도록 해주어야 할텐데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학부모님, 제가 오늘 편지를 드리는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최근 초등생 두명의 자살과 관련하여 저의 걱정과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지요. 며칠전 지방의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공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그 학생의 유서를 매스컴으로 전해 듣고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그애 나이일때 눈속을 뒹굴기도 하고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나 숨바꼭질 놀이를 하면서 지냈는데…. 한창 개구쟁이로서 장난도 치고, 싸우기도 하고, 만화도 보고, 사람 사는 동네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나이에 자고 깨면 그저 학교로 학원으로 내몰리면서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공부하는지도 모르면서 쫓기는 아이들이 참 측은합니다. 아니 한 학교의 책임자이자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심히 부끄럽고 막막합니다. 학부모님, 요즘 한국사회는 강박증적일 정도로 성급하고 일류지향적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친구는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것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기 보다는, 다른 애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우쭐거리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경쟁자를 미워하거나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일이 많습니다. 수행평가를 할때에 교사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시기, 질투, 반목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자기 능력이 미치지 않을 때 심하게 좌절하거나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심한 경우 자살을 초래하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또 한 명의 초등 어린이는 왕따로 인해 자살을 하였답니다. 더욱 측은한 것은 자기를 따돌린 아이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갔다는 것이지요. 무엇이 그 어린 아이의 가슴을 그렇게 아프게 하였을까요. 죽는 마당에서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에 한을 묻고 저 세상으로 간 그 아이가 저승에서인들 자기 거처를 잡을 수 있겠는지요. 왜 해맑고 활기차야 할 우리 아이들이 너무도 큰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지 학부모님께서는 그 답을 아십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 아이들이 사랑 대신 미움을, 믿음 대신 불신을, 친구 대신 적을, 행복 대신 불행을, 자신감 대신 좌절감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지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누구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이 강박증적인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게 있습니다. 고통이나 불행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 그 질이나 양의 차이가 있을 뿐 고통과 불행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법이지요. 다만,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가에 따라 그것은 고통과 불행이 되기도 하고, 인간적 성숙이라는 멋진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생생한 경험의 언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학부모님, 요약하자면 우리 아이들에게 삶에 대해 아름답고 건강한 시각을 갖도록 도와주자는 것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보고, 주변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배려하면서 사는 아이들로 키웠으면 하는 게 제 소원입니다. 그러면 공부 못했다고, 공부 어렵다고, 친구들이 자기만 따돌린다고 불행해하거나, 자살하지는 않을 것 입니다. 공부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사는데 큰 지장 없습니다. 건강한 육신과 아름다운 마음이 있으면 되지요. 친구 좀 없으면 어떻습니까.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들이 있는데 책이 있고 나무가 있고 하늘이 있고 강아지도 있는데 뭐 어떻습니까.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소중하고 경이롭고 아름답습니다. 존재와 생명에 대한 외경심, 사건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궁금증, 그런 것들은 아이들이 인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천국의 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세요.

기고/난파청소년 교향악단 음악회를 마치고

기고/난파청소년 교향악단 음악회를 마치고 김정자 성정문화재단 이사장 문화 예술의 세기라고 하는 21세기엔 더욱 체계화되고 전문화된 문화예술 보급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런 가운데 우리에게는 또 다른 책임이 있다. 차세대들에게 자랑스럽고 가치있는 한국문화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좋은 토대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재단법인 성정문화재단은 바로 이를 위한 예술 인재 양성, 폭넓은 국제교류를 목표로 설립하였다. 이미 난파소년소녀합창단 등의 활동을 통해서 세계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검증됐다. 이 점에서 민간 예술 단체의 양성은 곧 문화보급, 전통계승과 연결된다는 확신을 갖는다. 그런데도 우리의 현실은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민간 예술단체가 제대로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인식 부족의 원인은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시급함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나마 난파청소년교향악단은 1991년 창단 이래 청소년 문화의 일익을 선도해 왔다. 성인 교향악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청소년 교향악단 축제를 개최하고 중고교 순회 난파청소년 열린음악회를 통해 중소도시의 문화 간격을 좁히는 등 활동 영역을 크게 넓혔다. 아름다운 청소년 음악을 매체로 정서문화의 밀알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수요로 하는 창의성, 다양성 있는 문화적 소양을 공급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밝혀주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10년전 수원시내 초·중·고등학생 중심으로 구성된 난파청소년교향악단은 창단 공연에 이은 정기 연주회등 각종 연주회를 거듭할 때마다 눈부신 실력 향상을 보였다. 이에 힘입어 지난 1995년에는 국내 청소년 오케스트라로서는 처음으로 저명한 외국인 지휘자 샘집바 박사를 초청, 광복 50주년 기념 음악회를 성황리에 가질 수 있었다. 또 그 이듬해엔 난파 예술원 창립 15주년을 맞아 기획연주인 청소년 교향악축제를 성공리에 가졌다. 미래 문화의 원동력인 청소년 예능 인재를 발굴, 육성해 온것을 보람으로 생각한다. 얼마전 경기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가진 난파청소년교향악단 창단 10주년 기념 음악회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감동을 관중들에게 진하게 전한 뜻깊은 자리였다. 우리의 귀여운 청소년들이 하모니를 이루는 교향악단의 우아한 선율은 바로 천사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이런 음악속에서는 오직 진실된 인간성만이 있어 사회를 밝게 해준다. 성정문화재단에는 이 밖에도 성정예술원, 난파소년소녀합창단, 성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성정장학회, 성정예술기획 등이 있어 주로 청소년 문화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항상 시작하는 마음이다. 앞으로 더욱 큰 결실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이 갈구된다. 아쉬운 점, 미흡했던 부분도 물론 있었으나 청소년 문화예술 사업을 통해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자 한 초심의 큰 틀엔 변함이 없다. 수원은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편달과 협조가 있어 주시기를 거듭 간곡히 기대한다.

기고/양심의 자유와 병역

기고/양심의 자유와 병역 우탁균(인천·경기지방병무청인천병무신고사무소) 지난 50여년의 짧은 시간동안 우리를 둘러싼 주변환경은 급속히 변화되었다. 1,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나타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극한 동서대립이 막을 내리고 분단국 독일이 상호이념논쟁을 종식하고 통일을 하는 등 21세기로 접어들면서 평화적이고 다원화된 세상으로 전환이 된 것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폐쇄되었던 북한과 화해분위기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과거 일부 종교단체에서 시작된 종교적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젠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려고 하며, 이를 제도화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 신념을 포함하여 통상 ‘병역, 집총을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절대악이라 확신하여 거부하는 행위’로 개념지을 수 있을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론자들은 병역거부의 이유로서 반전과 평화 그리고 비폭력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은 비단 그들만이 추구하는 이상세계가 아니며 군대가 있기 때문에 전쟁이 있다는 그들의 주장 역시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들은 집총을 하는 병역이행 대신 대체복무제도를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병역을 성실히 이행하는 또 하나의 양심과 어떤 객관적 기준으로 비교·형량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외국의 입법례를 보면 미국, 독일, 대만등 많은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또는 사실상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으나 제한된 범위내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40여개 국가에서는 아직까지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각 나라마다 지내온 역사적 환경과 현재의 여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의 판단은 쉽지 않다. 인간의 양심은 어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각자의 자라온 환경에서 형성된 인간내부의 신념, 사상, 가치관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주관적 판단으로서 개인적 양심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더욱이 한번 형성된 양심이 그 이후에 절대로 변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 아닌 이상 외부에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양심의 판단기준을 세우기는 쉽지 않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고립된 무인도에서 한 개인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주변의 제재를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사는 이 사회에서 개인의 내면세계인 양심이 외부로 표출되어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결코 개인적인 문제만으로 한정될 수 없는 것이다. 즉 외부로 표출된 개인의 양심이 주변에 심히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다른 사회구성원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제재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타당한 상식의 토대위에서 형성된 사회구성원들의 약속인 “법”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회적 약속으로서 받아들이던 병역의무이행이 일부 계층에서이기는 하나 거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것이 점차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원적 민주주의 국가로 그만큼 성숙했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일부 종교단체의 병역거부도 아직 사회구성원들의 검증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객관적 판단기준도 없는 개인의 내부 신념을 이유로 하는 병역의 거부는 그 어떤 대체복무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대다수 사람들이 수용하기에 이른감이 없지 않다. 더구나 개인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병역기피를 위한 1회성 양심인지, 평생의 확고한 가치관·신념인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병역을 거부한 양심의 지속적 실천을 외부에서 강제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면 이는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요컨대, 사회구성원들의 오랜 약속으로서 성실히 이행되어야 할 병역의무는 외부 통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다분히 추상적이면서 포괄적인 개인의 양심을 이유로서 거부되어 질 수 없는 것이다.

기고/지방화시대와 지방문화

기고/지방화시대와 지방문화 광명문화원장 정 원 조 흔히 사람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 무언가 진행하려 할 때 누가 옆에서 시끄럽게 굴면 “거기 지방방송 좀 꺼 주세요” 한다. 물론 우스갯 소리다. 하지만 이 말에는 지방이라는 의미가 중앙의 개념보다 상대적으로 비하되는 의미가 담겨있다.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왜 하필 지방 방송이라 표현하는가. 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방이란 개념을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못한 것, 좀 부족한 것, 보다 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이 잠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서울 사는 사람들 뿐 아니라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현상이다. 아마 고려, 조선시대 이후 줄기차게 진행돼 온 이 땅의 중앙집권적 정치문화로 인해 정치, 경제를 비롯한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것들이 중앙 집중화의 양상을 띠어온 데 그 근본적 뿌리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에서 보는 것처럼 일체의 중앙 집중화 현상 속에 내재된 중앙중시, 지방홀시 문화는 새로운 지방화 시대에서 분명히 타개되어야 할 구시대적 정신유산이다. 문화란 곧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요,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한국문화라 함은 한국 사람들이 사는 삶의 총체적 양식을 의미하며 그들의 고유한 삶의 방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구문화, 전통문화, 음식문화 등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서울의 문화는 서울사람을 서울사람이게 한다. 마찬가지로 경기, 충청, 부산 등 다른 지방의 문화는 그곳 사람들을 그곳 사람들로 만들어 준다. 각 지방과 지역의 사람들은 그들이 가꾸고 있는 독특하고도 고유한 문화에서 자신들만의 모습을 찾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긍지와 자랑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지방문화가 없었다. 모든 문화는 서울에 집중되었고 중앙의 문화가 지방으로 일방적으로 흐르기만 할 뿐이었다. 그 결과 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재나 지역에 대한 진정한 자각과 긍지가 있을 수 없었고 중앙에 대한 상대적 열등의식과 그에 따른 동경만이 있었다. 중앙의 삶이 표준으로 되었으며 사는 지역만 다를 뿐 사는 모습은 똑같이 획일화 되어 버렸다. 이는 전통적으로 강력했던 중앙집권정치에 의한 영향으로 지역적 특성과 기반을 갖고 있는 지역문화 활동이 점차 중앙문화 활동에 예속되면서 어쩔 수 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었다. 선진각국에서는 이미 제도적으로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렸으나 우리는 이제 비로소 본격적 지방자치 시대를 시험하고 있다. 정치적 이유로 그동안 실현이 미뤄져 온 지방자치는 지방의회 선거과정을 통해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 결과 점차적으로 중앙 중심적 체제에서 지방 분권에 기초를 둔 본격적인 지방화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이 지방화 시대에서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파적 차별 대우를 받아 온 지금까지 일체의 모든 제도나 문화 등은 종식돼야 한다. 자기가 속한 향토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진 문화주민들에 의해서만 본격적인 지방화 시대는 꽃필 수 있다. 어느덧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던, 중앙적인 것은 좋은 것, 고급적인 것, 지방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좀 못한 것, 수준 낮은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도 본격적인 지방화 시대의 전개와 함께 자연스레 사라지게 될 것이고 지금과 같은 이분법적 구분개념 조차도 사라질 것이다. 지방화 시대를 맞는 시급한 관건은 내가 속한 향토에 깊은 애향심과 자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고장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주민들이 타도시보다 자신의 지역에 자부심을 갖게 될 때에만 진정한 지방화 시대는 성취될 수 있다.

기고/난개발 더 이상은 없다

기고/난개발 더 이상은 없다 이정문(용인시장) 용인시의 공무원은 몹시 괴롭다. 언론매체에서 수년째 난개발의 대표지역으로 질타당하는 것이 괴롭고, 늘 산적한 민원업무와 집단민원에 시달리는 것이 괴롭다. 또 인터넷을 통해 연일 주민들로부터 높은 원성을 듣고 있음에도 뾰족한 단기 해결책이 없어 더욱 괴롭다. 원성의 가장 많은 이유가 교통 불편이고, 그 다음이 문화 복지시설의 부족이다. 이 모든 것이 난개발의 결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책이 어찌 한낱 지방자치단체의 공직자들에게만 전적으로 있으랴. 준색한 변명을 늘어 놓으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정확한 현실을 알려 용인시 공직자들의 불명예를 덜어줌과 동시에 시민들의 따뜻한 이해를 구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뿐이다. 물론 무분별하게 허가를 해준 일부 책임은 면할 수 없다. 하지만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민원 서류를 불허가 처리하기에는 일선 행정기관 공무원들의 능력으로 한계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난개발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서울인구 분산정책과 이를 위해 기반시설에 대한 아무런 대책없이 완화시켜준 법규때문이었다. 건설업체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교묘하게 법의 허점을 피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행위가 가능하다면 그러한 법을 제정한 정부측에 책임을 물어야 하겠는가 아니면 그저 법의 시행자에 불과한 일선 공무원을 탓해야 하겠는가. 용인시의 수려한 자연이 아파트 숲으로 변한 지금에 와서 책임소재를 놓고 왈가 왈부해보았자 다 소용없는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지방자치단체로서의 용인시가 아닌 대한민국의 용인시로서 해결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문화복지 기반시설 부족이야 도리없이 용인시가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교통망 확충은 정부차원의 지원 없이는 해결이 불가한 대규모 예산 사업이다. 현재 계획되어 있는 광역교통망이 시기를 앞당겨 추진되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답답한 시의 입장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기를 시민에게 호소한다. 용인시의 시장 역시 괴롭다. 보람과 명예를 추구하면서 생활하는 공직자들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괴롭고 이를 빨리 치유할 대책이 없어 괴롭다. 공직자들의 고통을 해소해 주려면 보다 많은 정원이 필요하고 시민들의 원성이 칭찬으로 바뀌도록 해주어야 한다. 원성을 없애는 길은 시급한 교통난을 해소하고 더 이상의 난개발이 없도록 사전에 방지하는 길이다. 지금의 현실은 난감하지만 그러나 희망은 있다. 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되어 예전과 같은 난개발을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상해 있는 공직자들의 어깨를 보듬으며 다짐하고 싶다. 하루 빨리 난개발의 불명예를 벗어야 한다고. 우리 용인시의 앞날에 모두를 고통스럽게 했던 난개발은 더 이상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기고/경기도, ’환경 위협’ 대처해야

경기도는 이제 예산규모가 10조원이며 인구는 1천만이고 모든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중심지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 보면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부분보다는 중앙부처의 논리가 아직까지도 더 우선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1994년에 제정되어 수도권의 공장 신축 및 증축 등의 총면적을 건교부장관이 매년 결정하여 고시하는 ‘공장총량제’에 묶여 많은 공장이 입주를 원하고 있으나 매년 수천억원의 손해를 보며 허가를 내줄수 없는 처지이며, 최근 국무총리실에서 발표된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개선 및 주민지원등에 관한 법률’은 광주시를 비롯한 해당지역 7개시군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고 2003년 본예산에도 국비 지원금의 2분의1이 삭감되는 등 그 이외에도 여러 부분에 있어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협력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인생은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항상 문제와 해결의 연속이라고 한다. 경기도 또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난개발로 인한 대기오염, 수질의 악화, 끊임없이 밀려오는 황사, 각종 전염병의 재발, 빈부의 격차로 인한 사회보장 수요의 증대 등 보건복지와 환경분야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 이 분야에 많은 예산과 자원을 투입하여도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없다. 그렇다고 등한시 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수십 수백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신문지상 등 각종 매스컴을 접하다 보면 일년내내 국민의 건강이 한시도 쉴틈없이 위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봄에는 중국으로부터 몇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황사가 몰려와 전염병이 발생하고 여름에는 어린 자녀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유행병처럼 번지는 눈병, 일본 뇌염, 휴전선 일대의 말라리아, 가을에는 다시 황사와 국민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독감, 축산업에 치명타를 가하는 돼지콜레라, 예전에 사라졌던 수두의 재발 등 우리나라가 과거에 겪었던 전염병이 다시 창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의 무분별한 개발과 전혀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이제 경기도는 도민의 건강과 삶의 질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인접국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의 훼손과 국민 건강에 대한 위협요소에 대해 보다 폭넓고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적인 환경단체와 중앙부서, 일본의 관련부서 그리고 인접도와 협력하여 정기적으로 중국 내륙지방의 사막화 실태파악과 아울러 중국내 대기오염물질의 과다 배출지역, 수질악화 중점관리 지역 등을 사전에 조사하여 그 현황을 파악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실무차원의 협력체계를 구성하여 회의를 정례화시켜 환경기술의 지원 등 체계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해당분야의 전담부서를 환경국내에 국제 환경계 또는 과를 증설하여 지금부터라도 각종 자료 등을 수집관리하여 향후 환경문제가 악화되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항상 세상은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기를 희망한다. 경기도민의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을 위해 보다 깊이 있는 노력으로 환경오염의 피해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제 행복하고 건강한 경기도의 미래를 도민 스스로가 선택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신보영(경기도의원)

<기고>경로우대

/황종태(전 남양주시장) 어느덧 세월이 흘러 육십을 훨씬 넘기고, 이젠 전철을 탈 때에도 경로 우대권을 받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전철을 탈때가 되면 마음은 두 갈래가 되어 갈등을 느끼곤 한다. 그 한가지는 매표소의 직원이 얼굴을 한번 보고 아무말 없이 경로우대권을 내어 줄 때, 이젠 나도 누구나 인정하는 늙은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다른 한가지는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말할 때 사람 말을 믿지 못하고 번거로움을 주는 것 같아 야속한 생각이 들 때이다. 가끔 전철 매표소 앞에서 불친절함이 마음에 안 들어 큰 소리를 내는 노인을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과거에는 젊은을 무기삼아 제법 한 가닥 하던 사람이었다는 생각때문인지 불친절함에 무시 당하는 것 같아 더 화가 나고 큰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되어 가는 순리를 받아들이고 우리가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젠 시들해져 그냥 지나치는 내 자신이 되고 보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늙어 가는 것이 아닌가 염려스러워진다. 나이든 사람을 우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경로 우대권은 혜택을 받는 이들에겐 마음 편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에 줄을 서면서도 어느 창구의 직원이 밝은 인상으로 표를 내어 줄까 점치면서 골라 서게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도 눈을 마주치면 밝은 모습으로 표를 건네주는 매표원을 볼 수 없었다. 모두가 바쁜 시대에 그럴 수 있는 일이라 단정짓기엔 너무 아쉬움이 많은 것 같다. 어느 외국 서적에서 읽은 내용이다. 미국의 어느 고속도로에 매표소가 여러개 있었는데 유독 한곳에만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어느 큰 슈퍼마켓에서도 계산대 한곳에만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 이유는 직업의식이 매우 투철한 직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들은 관을 똑바로 세워 놓은 곳이 매표소라고 조롱하지만 내가 소개하는 매표원에겐 일하면서 음악도 듣고 춤 연습도 하면서 급여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직장이었던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이 미소 짓게 하고 친절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사람들은 스텝을 밟으며 즐겁게 일하는 매표원을 한번 더 보려고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슈퍼마켓 직원은 항상 미소와 친절을 잊지 않았고, 그날의 금언이 적힌 쪽지를 준비해 고객들에게 나눠주니 이것을 받기 위한 줄서기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화를 읽고, 표정 없는 얼굴로 표를 던져 주는 것과 같은 우리네 직업인들의 생각을 비교하게 된다. 찡그린 얼굴 보다 미소로 대답할 수 있는,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닌 천직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는 직업의식을 갖는 것이 자신에게도 행복한 일이 아닐까?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우리네 미덕이었다. 그러나 점차 각박해져만 가는 현실속에 점차 빛이 바래 가는 것도 사실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가끔 노약자 좌석에 젊은이가 앉아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참지 못하고 호통을 치며 나무라는 노인들이 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내가 동조를 해야 하는지 모른 척 해야 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을 때가 있다. 모 고등학교에서의 여론조사를 보면 버스나 전철에서 앞에 서 있는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 할 것이냐에 대한 질문에 똑같은 요금을 냈는데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한다. 서글픈 얘기지만 설문 결과에 기막혀 하기보다는 변해 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 들여야하지 않을까? “젊은이는 뜨는 해, 우리네 노인은 지는 해”라고 인정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서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또한 이런 생각을 지니고 사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세상살이가 이해타산만 갖고는 살 수 없는 것이고, 진정한 가치는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얻을 수 있다는 것과 합리적인 사고와 멀리 바라 볼 수 있는 혜안을 키워 줄 수 있도록 도와야 겠다. 젊음과 늙음은 세월과 나이로만 측정되는 것이 아닌 꿈과 열정의 깊이로 인해 늙은이가 젊은이로 젊은이가 늙은이로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하지 않을까? 미래에는 첨단 과학과 생명 기술의 발달로 노령화 사회로 간다 한다. 증가하는 노령인구로 사회복지 정책은 더 발달해야 하고 막대한 예산이 투여돼야 하는 만큼 사회의 부담도 커지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 젊은 시절에 노력한 대가로 오늘날의 발전을 볼 수 있었다지만 우리의 소망이나 목표는 아직도 멀기만 하므로 인내해야 할 것 같다. 생의 말미를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우리의 현실에 감사하고, 이 사회가 우리를 다소 섭섭하게 할지라도 너그러움으로 마음을 채워보자. 이러한 좋은 예가 일본의 노인들은 젊은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출근시간에는 가능한 공공시설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하루도 그저 건강하게 보낸 것을 감사하면서, 또 경로 우대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도 감사의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아량을 가져 보자. 우리 노년기의 삶이 건강하고 장수한다고만 해서 최상의 삶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모든 것을 여유 있는 마음으로 바라 볼 수 있고,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인 것 같다. 오늘, 경로 우대권을 받게 되면 창구 옆에 놓인 불우이웃돕기 함에 우대 받은 금액을 넣고 전철을 타 볼까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기고>GMO(유전자변형작물) 과연 문제인가?

/성종환(농촌진흥청 공보관) 얼마전 GMO를 반대하는 민간단체에서 수원역에서부터 시위를 하며 농촌진흥청을 방문하였다. GMO 안전성 연구 포장도 직접 둘러보았으며, GMO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의 자리도 가졌다. 모두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9월18일 가진 농촌진흥청에 대한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주문한 내용과 같이 ‘안전성 문제를 철저히 검증하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GMO에 대한 이해를 한층 깊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사실 GMO의 필요성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다만,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있기에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계층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GMO의 안전성 이해는 농작물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한다. 오랜 옛날 인류는 자연상태 그대로를 먹고 살았다. 그러나 인류가 늘어나면서 오늘날 우리가 먹는 쌀, 채소, 고기 등은 보다 많은 생산을 내기 위해 개량된 결과물이다. 초기에는 자연교배만으로 유전자 재조합이 이루어져 개량되었다. 그후 인공교배 등을 거쳤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사람이 직접 유전자를 조작하는 생명공학기술에 까지 이른 것이다. 즉 GMO는 농산물의 효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유전자가 재조합된 것이다. 과학적으로 보면 품종개량의 한가지 방법에 불과하다. 다만, 기간 단축 등 효율화를 위해 방법이 개선된 것 뿐이다. 무엇보다도 GMO는 특성이 명확한 유전자만을 육종 목표가 분명한 농작물에 도입하므로 목적 이외의 특정 개체가 출현할 가능성은 없다. 특히 오랜 기간의 광범위한 연구 결과 GMO가 안전성에서 재래 방법에 의해 생산된 농작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증명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학술지로 논문이 실린 경우 큰 명예가 되는 ‘네이쳐(Nature)’지 2001년호에는 GMO인 유채, 감자, 옥수수를 대상으로 10년간 안전성 연구 결과로 환경이나 인체에 대한 위해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국제적으로는 2000년 1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GMO의 환경 및 인체 안전성 확보를 목적으로 한 국제 규범인 ‘바이오안전성의정서’가 채택되었다. 한편으로 99년 식품의약안전청에서는 ‘GMO식품, 식품첨가물의 안전성평가자료심사지침’을 제정하였다. 이에 따라서 제초제저항성 콩에 대해 1년여의 심사과정을 거쳐서 안전성을 확인하였다. 최근에는 해충저항성·제초제저항성 옥수수의 안전성 검토 후 수입을 승인하였다. 현재도 면화 등 7종의 GMO에 대한 식품안전성을 심사중이다. 농산물 생산과 수입을 관장하고 잇는 농림부에서도 2002년에 ‘유전자변형작물의 환경위해성평가심사지침’을 고시하고 GMO의 환경적 안전성 검정체계를 구축하고 국민들의 염려를 대비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 나라의 GMO에 대한 안전성 관리는 학계나 기업에서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불평할 정도로 철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선진국이나 국제기구 등에서 추천하는 일반적인 관리 규범에 비추어 볼 때에도 적절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류에게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불이나 자동차 등이 위험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GMO도 마찬가지이다.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되, GMO가 인류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이득에 대해 균형된 시각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일방적인 매도는 곤란하다. 이렇게 설명하고 보니 친구가 던진 질문이 새삼 생각난다. “너는 GMO 먹는가” 물론이다. 부담없이 먹는다. 즐겨먹는 두부나 콩나물이 대표적이다. 사람에게 좋다고 수십년 먹던 의약품이 문제가 되어 폐기되는 경우가 있다. 미쳐 몰랐던 특이한 부작용이 오랜 시간 점검된 결과이다. 약품이나 검정되지 않은 채로 먹는 보양식품보다도 통계적으로 더욱 안전한 것이 GMO라는 평가이다. 그러나 돼지고기를 먹을 때 배탈이 나거나, 고등어를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특이체질이 갖는 정도가 GMO에서 거론되는 문제 수준이다. 그러나 0.001%의 확률도 개인적으로는 100%일 수 있다. 따라서 GMO의 안전성 연구는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미래 농업의 비전으로 등장하고 있는 GMO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떨쳐버리자. 의약품을 개발하는 연구자를 믿듯이 GMO를 개발하며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연구자의 양심을 믿고 함께 문제를 푸는 의식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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