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자춘추/티끌과 들보

경기천자춘추/티끌과 들보 나진택(고양의제 21 운영위원) 들보(beam);지붕을 받치기 위해 두 기둥을 가로질러 걸쳐 놓은 나무. 신약에서 예수는 남의 허물은 보면서도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책망하면서, 작은 티끌은 보나 커다란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말씀 하셨다.(마7:3) 사람이 살아가며 남의 허물을 덮어주기 보다는 허물을 드러내어 보이므로 자신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티끌과 같이 미미한 타인의 허물을 가지고 마치 들보와 같이 커다란 문제인양 말해서 실제는 들보와 같이 커다란 자신의 허물을 감추고자 하는 것이다. 남의 허물을 들보와 같이 드러내어 만천하에 공개하는 시기가 왔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각 당과 후보 진영의 선거대책이 기본적으로 타 후보의 허물을 강조 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나라의 일꾼을 뽑는 일은 개인간의 사사로운 정을 떠나서 냉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과정으로 최대한 후보의 자질을 국민이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문화가 사사로운 정의 문화와 혼재되어 있는 이유로 이제는 들보와 같은 허물도 티끌과 같이 여겨 그냥 넘기기를 바라는 경향도 있다. 지연과 학연으로 인해 올바른 선택 보다는 무조건 적인 선택을 오래전에 결심한 유권자도 있다. ‘나는 무조건 OO당 이다’ ‘나는 무조건 아무개는 싫다’는 식이다. 무조건 이라는 무책임한 감정의 판단으로 인해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고 있음을 있지 말아야 한다. 이제 서서히 무르익어 가는 큰 일꾼(필자는 정치인을 일꾼이라고 생각함)을 뽑는 일에 차분하고 끈기 있게 마지막 한 순간까지라도 티끌만한 허물도 들보와 같이 보면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이웃의 사사로운 허물은 티끌로 여겨 덮어주고 선출직 일꾼의 허물은 들보로 보자.

경기천자춘추/초선 위원의 고민

경기천자춘추/초선 위원의 고민 김진춘(경기도 교육위원) 제4대 경기도 교육위원회 초선위원이 되어 처음으로 교육청에 대한 행정감사와 2003년도 교육비 특별회계 세입·세출 예산안 심의를 하였다. 40여년동안 일선 교육현장에서 교육을 하고 교육행정을 수행해 오면서 교육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했던 교육공급자가 어느날 갑자기 교원, 학부모 학생들 편에 서서 교육 수요자의 눈으로 경기 교육 전반에 대하여 문제점을 진단하고 교육성과를 평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 것이다. 겸허한 열린 마음으로 스스로가 걸어왔던 교직을 반성해 보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경기 교육 발전을 위하여 보탬이 되고 경기 교육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길인가 고민하게 된 것이다. 2003년도에도 8만여 교원들이 2백만 학생을 교육해내기 위하여 4조7천억원이란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나 쾌적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학교신축과 교실 증축 등 교육시설 확충과 질 높은 교육을 해내기 위한 인력자원 확보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이같은 실정을 교육 수요자들이 공감하고 한푼이라도 내 주머니 돈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전기 한등, 물 한 방울이라도 아껴 쓰고 절약해야 하는데 소모성 예산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산뿐만 아니라 인력 자원의 부족은 경기 교육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 지식 기반 사회란 인력 경쟁시대를 의미한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창출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인력을 확보한 집단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경기도의 경우 학급을 담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절대 교원수가 부족하여 퇴직한 고령 교사들을 초빙하여 기간제 교사로 활용해도 절대수가 부족한 실정이다. 교실도 부족하고 선생님도 없는 상황에서 교육의 질을 운운한다는 것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요구가 아닌가 한다. 이같은 교육여건 속에서도 으뜸 경기 교육 실현을 위하여 헌신적 봉사를 아끼지 않고 있는 8만여 교육가족들의 경기 교육사랑이 있기에 경기 교육은 내일을 향해 오늘도 발전하고 있다.

경기천자춘추/제2회 세계도자 비엔날레

경기천자춘추/제2회 세계도자 비엔날레 김종민(경기관광공사 사장) 몰려온 추위와 함께 전국적으로 열리던 각종 문화축제와 행사들이 자취를 감추고 벌써 잊혀진 듯 하다. 문화축제로는 세계적인 기록을 수립한 세계도자기엑스포가 끝난 것은 작년 이맘 때였다. 도자기로 문화행사가 잘 될까 걱정도 많았지만 국내외에서 606만명이 다녀가면서 모든 기우를 씻어 냈다. 96년 일본 사가 도자기 박람회의 250만명 참관 기록을 훌쩍 뛰어 넘으면서 ‘경기도가 세계지도에 도자기를 표시했다’는 국제적인 평판을 받았다. 잘 기억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세계도자기엑스포와 함께 제1회 세계도자비엔날레가 동반 개최되었다. 세계도자공모전과 국제도자학술회의를 주내용으로 하는 격년제 행사를 같이 연 것이다. 당시 공모전은 69개국에서 4천200여점이 출품되어 세계 최대의 경쟁전이자 신진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로손 오예칸이 ‘치유하는 존재’라는 대형 도조로 그랑프리를 타면서 국내외 도예계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 온 기억이 새롭다. 그는 작품당 10∼20만달러를 받는 대형작가이지만 유색 편견 속에서 다른 행사에서는 상복이 없었지만 공정한 심사로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내년 9월 경기도는 제2회 세계도자비엔날레를 개최한다. 엑스포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행사의 성격과 질이다. 요즈음 지식기반산업사회의 조성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작년에 확보한 8천400여장의 도자예술 슬라이드는 바로 오늘 현재 세계 미술가들이 지니고 있는 생각을 집대성한 색채와 형태 그리고 디자인의 보고이다. 억지로 모으려고 해도 잘 안되는 현대 예술지식 데이터베이스가 자연스럽게 경기도에 조성된 것이다. 이를 산업미술에 적극 활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 내년에도 첫 대회를 능가하는 도예지식기반이 쌓이도록 지금부터 많은 투자와 함께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때라고 본다.

경기천자춘추/‘토요상설 국악공연’

경기천자춘추/‘토요상설 국악공연’ 채주병(경기도립국악단 악장.거문고) 경기도립국악단이 마련한 ‘토요상설 국악공연’이 매월 첫째·셋째 토요일 오후 5시 경기도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다. 지난 1999년 처음 시작한 토요상설 국악공연은 경기도문예회관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매회 중고생 및 국악애호가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연 7천∼8천여명이 관람하고 있다. 공연은 보다 다양한 우리 가락과 전통춤을 펼쳐보임으로써 도내 국악공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고있다. 토요상설 국악공연은 도립국악단의 정기·기획공연이 관현악 위주의 창작음악이 대부분이어서 국악의 악·가·무(樂·歌·舞)를 제대로 선보일 기회가 적어 전통부터 창작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또 토요일 오후에 도문예회관에 오면 언제나 우리음악을 접할 수 있게해 국악 대중화에 일조하고, 특히 청소년들이 우리음악을 가까이서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국악이 생소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없애고 재미있고 흥겹고 우리정서에 맞는 우리음악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생활속에 친근하게 자리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는데 생각보다 일찍이 자리를 잡았다. 총 20회의 국악상설무대에선 수제천·종묘제례악·보허자 등의 전통음악부터 각 악기의 멋과 맛을 감상할 수 있는 독주 및 이중창·실내악 연주, 포구락·춘앵전·처용무 등의 전통무용, 가곡·가사·시조 등의 성악, 판소리, 경기민요, 사물놀이 등까지 100여가지의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토요상설은 소극장 특유의 아늑하고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국악의 진미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연주자의 숨결과 표정, 손놀림 등을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으며 민요나 사물놀이 때는 저절로 어깨춤이 나올만큼 흥이 전해진다. 상설공연은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객석이 비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소문이 나고 마니아가 생겨 객석이 꽉 찬다. 학교에서도 국악감상 과제를 내주어 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 가을이 저물어가는 이 계절, 국악공연을 찾아 마음 깊은 곳까지 울림을 주는 우리음악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경기천자춘추/체감물가와 지수물가

지난 달 경기지역의 소비자물가가 1년 전에 비해 평균 3.1% 상승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통계자료를 보면서 일부에서는 개인이 느끼는 물가수준과 차이가 많다고들 한다. 특히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을 토대로 임금이나 연금이 결정되는 직장인들로부터 이와 유사한 내용의 전화를 받곤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물가는 통계청에서 매월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소비자들이 소비생활을 하기 위하여 구입하는 상품 가격을 조사하여 전국 또는 특정지역의 물가변동을 측정하기 위하여 작성된다. 여기에는 쌀, 배추, 달걀, 사과 등 식료품 가격뿐만 아니라, 전·월세 등 주거관련 품목, 전기료, 도시가스료, 수도료, 의복비, 병원비, 학원비, 교통요금, 미용료 등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소비하는 모든 품목들의 가격변동이 포함된다. 이들 품목들의 가격을 매월 조사하여 보면 올랐다가 다시 내리거나 내렸다가 오르는 품목이 있는가 하면, 계속 오르거나 내리기만 하는 품목도 있고, 몇 년 동안 가격변동이 없는 품목도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이러한 모든 품목의 가격변동을 종합하여 작성한다. 이에 반해 개인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주로 가격이 오른 품목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10월 중 경기지역의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1년 전에 비해 평균 3.1% 올랐다. 이를 품목별로 보면 무, 배추, 밤, 한우쇠갈비, 국산담배, 경유, 택시료 등은 10% 이상 올랐으며, 납입금, 입시학원비, 등유가격도 평균이상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품목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물가오름세는 매우 크게 느껴질 것이며, 대부분 사람들은 주로 이들 품목의 가격인상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닭고기, 달걀, 도시가스료, 이동전화료, 전기료 등은 1년 전에 비해 오히려 내렸으며, 또한 1년 동안 가격변동이 거의 없는 많은 품목들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소비자물가지수가 평균 3.1% 상승하였다는 것을 이해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체감물가가 정부에서 발표하는 물가에 비해 높게 느껴지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인 것 같다. 정규남(통계청 경기통계사무소장)

경기천자춘추/ 미군기지 이전 유감(有感)

미군기지 이전 유감(有感) 유승우(이천시장) 지금 이천시에서는 미군기지의 이전 문제로 민심이 크게 동요되고 있다. 지난 3월 춘천에 있는 미군 헬기부대가 이천시 항작사 부근으로 이전 될 것이라는 국방부의 일방적인 발표가 있은 후 부터 여러 가지 억측과 함께 이전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군기지 이천 이전반대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시내 곳곳에 반대 플래카드가 흉물스럽게 게첩되고 있다. 이러한 반대 사유는 단순한 지역적 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몇 가지 결정적인 하자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반대 사유는 국방시설 이전 설치문제는 법령상에도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토록 되어 있는데 이를 생략하고 일방적으로 선정 발표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 사유로는 지역적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첨단 산업인 하이닉스 반도체와 LG 실트론, 위성전파감시센터 등 중요 국가 산업시설이 이전 예정지에 근접하고 있어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천 전 지역은 자연보전 권역이며 팔당상수원대책 지역으로 각종의 규제를 받고 있어 민원이 크게 야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군사시설에만 너그럽다는 데 대해 납득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외에도 몇 가지 예상되는 문제점이 있어 대책위원회에서는 수차례에 걸친 논의와 범시민반대집회 시위를 강행하였다. 그리고 시장과 국회의원, 시의회 의장, 대책위원장, 출향인사 등 대표단이 국방부 장관 항의방문과 2차례의 국회 상임위를 방문하여 지역 주민의 의사를 전달하며 부지선정을 재고토록 촉구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에서는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정 발표한데 대해 정중히 사과를 하면서 문제사안에 대해 재검토를 시사했다. 그러나 국회 통일안보외교통상위원회(통외통위)와 본회의에서는 비준동의안에 ‘지방자치단체의 민원을 해결하여야 한다’는 강제규정의 부대의견을 달도록 결정하여 그동안의 노력이 다소나마 효과를 거두게 되어 위로가 되었다. 지금은 협의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화 시대이며 아울러 지방정부의 자치역량이 크게 강조되는 시대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기능과 역할은 서로 존중되어야 하며 이제라도 이천시민의 진정한 의사가 반영되기를 바란다.

<천자춘추>내가 만들고 싶은 도자기

/유승렬(안성문화마을원장·도예가) ‘안성맞춤’은 안성시장의 발달과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시장의 발달은 당연히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언제나 흥청거리게 마련이고, 시장거리는 온통 축제분위기였을 것이다. 그 속에서 탄생하고 발전한 것이 안성 남사당인데, 그 남사당은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신명나는 놀이로(풍물-농악, 버나-접시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 놀음) 서민들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던 남사당은 민속학자 주강현씨의 말이 아니래도, 오늘날 대중연예의 효시이며, 선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결국 남사당은 서민과, 대중과 함께 울고 웃은 서민 예술로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남사당이 아니라 남사당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고장 안성에서 예술가라 이름하여 도예를 하고있는 입장에서 떠오르는 감회일 것이다. 안성과 인접한 경기도 광주군의 관요에 가려 그 명성이 덜 하기는 하지만 안성에도 조선시대 일반 도자기 생산양상을 보여주는 여러 도요지가 남아있다. 안성시 일죽면 화곡리의 도요지도 그중에 하나인데 17·18세기 지방 철화백자 가마의 중요한 발굴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 화곡리의 도공들이 만들던, 만들려고 했던 도자기는 어떤 도자기일까? 300여년전 안성 화곡리에서 가마에 불을 지피던 도공들의 혼과 정신은 어떤 것일까? 도자기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여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은지도 어언 20년이 흘렀고 안성땅에 자리잡은지도 10년을 바라보는데 난 어떤 도자기를 만들고 싶은 것이고 300년 후에도 있을 이땅의 도공들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은 것일까? 가을을 느낄 사이도 없이 찾아온 겨울을 작업장 한켠 연탄난로를 통해 느끼며 내가 만들고 싶은 도자기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데 뜬금없이 남사당이 떠오른건 아마도 남사당처럼 그렇게 서민과, 대중과 함께 하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 아닐까? 산다는 것은 결국 한길로 통하는 것인가 보다.

<천자춘추>소중한 편지

/여순호 (경기도여성회관 관장) 나는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150여통 간직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받은 것으로 1966년부터 1976년 사이의 편지다. 내가 생각해도 36년 동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사를 여러번 했고 결혼 후까지도 보관하고 있는 편지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 보내온 편지이기 때문에 함부로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편지는 다양하다. 아름답게 그림을 그린 엽서에서부터 선화지, 내 키만큼 긴 160㎝ 두루마리에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 보낸 것 등 다채롭다. 수녀님의 편지는 수녀가 돼라는 내용이었고, 나의 약혼식을 성당에서 해주신 신부님은 ‘금년에는 귀여운 옥동자를 얻으라’는 내용을 보내주셨는데 그 해에 정말로 첫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내준 친구가 있다. 무려 82통이나 된다. 1966년 내가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한 해부터 결혼한 해까지 보낸 편지다. 동갑내기인 그 친구는 기관은 다르지만 업무 내용이 같아서 한달에 한번은 상급기관 회의에서 만나곤 했다. 또 1년에 한번은 1주일간 합숙훈련을 받기도 해 친하게 지냈다. 잠시 못만나면 서로 편지를 쓰곤했는데 항상 아름다운 내용으로 단둘이 만나서 대화하는 것 같이 잘 썼다. 그래서 나는 어느 기회가 오면 이 아름답고 소중한 글을 책으로 엮어야지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이 기회에 한 소절만 소개할까 한다.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보니 추억이 아름답고 모든 편지들이 아주 소중하다고 여겨진다. 역시 보관하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맑은 하루가 간다. 언제 또다시 오늘이 올지… 푸른 하늘에 기약해 볼까? 그간 안녕? 요 깍쟁이, 나 보고 싶지도 내 얘기 듣고 싶지도 않니. 난 얼마나 보고싶고 너의 얘기 듣고 싶은데. 기다리마. 긴긴 얘기 가득 실은 너와 그리고 이야기를…”- 점례가. 또 한해가 아쉽게 저물어가는 이즈음, 추억을 더듬으며 잊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성이 가득담긴 편지를 직접 써서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천자춘추>‘의사는 와 보지도 않고 인턴이...’

/손 병 관(인하대병원 진료부원장) 병원에 불만이 있는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가끔 들리는 말이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아파오는 것이 사실이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전공의의 대명사가 ‘인턴’이고 흔히 병원에서 발생하는 좋지 않은 일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며 어떤 면에서는 전공의를 비하하는데 쓰이고 있는 용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턴’, 병원에서 가장 고생하고 있는 직종이다. 물론 전문의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스스로들 인정하며 감내하고 있지만 그들의 업무는 정말 눈에 띄지 않는 데서 환자의 진료에 꼭 필요한 궂은 일을 하고 있는 의사들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들도 엄연한 의사라는 사실이다. 제목에 나와있는 ‘인턴’이라는 용어 속에는 전공의를 모두 포함하여 하는 말로 생각되는 데 전공의 과정은 인턴과 레지던트로 나뉘며 인턴 과정은 모든 과를 돌아가며 각 과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일을 담당하며 후에 자기들이 전공으로 하여야 할 진료과목을 선택 및 준비하는 과정이며, 레지던트는 한 과목을 정하여 3년 또는 4년간 환자를 직접 보며 그 과의 전문의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는 의사들인 것이다. 필자도 가끔은 ‘교수님이 왜 직접 검사하고 치료해 주지 않느냐’는 항의를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검사나 치료하는 과정에서의 많은 부분은 교수나 전문의보다 전공의가 훨씬 잘한다’고 솔직히 밝힌다. 환자 진료에 있어서 물론 같이 논의하여 최종 결정은 교수가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환자 옆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관찰하는 전공의들의 판단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병원에서 전공의의 역할은 참으로 크다. 그들이 없으면 종합병원의 진료는 불가능해지며 그들은 수련만 받는 의사가 아니기에 이미 ‘수련의’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고 하여 ‘전공의’로 용어를 바꾼지도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것을 느끼며 아쉬울 때가 많다. 요즈음 병원에서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는 4년차 전공의들의 다소 힘들어 하는 표정을 종종 접하며 그들이 사회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위로하며, 모두 합격하라는 응원을 보낸다.

<천자춘추>함부르크의 택시운전사

/서봉석(경기대 법학과 겸임교수) 반평생을 학문에 몸담고 있는 나는 늘 학문의 방법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다. 누구나 학문에 있어서 갖가지 방법론이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나의 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을 얘기하고자 한다. 나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3년동안 모자라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함부르크시의 택시운전사로 일을 했었다. 그런 연유로 홍세화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가장 실감나게 읽은 사람은 아마도 내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택시운전사와는 달리 독일에서의 택시운전사는 승객을 기다리는 시간이 거의 일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한가한 직업이어서 나와 같은 그곳의 택시운전사들은 대부분 많은 독서를 하게 되는데 특히 밤근무때에는 더욱 더 한가로운 자유를 갖게 되므로 나는 늘 밤에만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에는 내가 쓰고있던 박사논문의 구성, 풀리지 않았던 문제점, 무엇보다도 나의 주장에 대한 당위성과 창작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있었는데 이러한 문제들이 실제로 거의 택시안에서 해결되고 결정이 되어짐으로써 오히려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그 일을 나는 기꺼이 해내고 있었다. 개인적인 습성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내게는 두 아이와 아내가 함께 있는 15평 남짓한 기숙사에서나, 수많은 책과 학생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대학의 도서관내에서는 자유로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어두운 도시거리의 택시승강장이나 깜깜한 숲속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달릴때면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들이 잘 떠오르면서 모든 문젯거리들이 쉽게 정리되곤 했었다. 해탈을 위해 불교에서 쓰는 방법처럼 그 때 나는 오랜 시간동안 사색을 필요로 하는 화두를 잡고 있었고 그 택시안은 내 화두풀이의 수련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그러한 버릇이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공부의 방법으로는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책상에 앉아 남의 글을 많이 읽는 것 보다 오랜시간을 투자해서 정말로 깊게 고민하고 사색하여 나름대로의 창의적인 산물을 낳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을 한다. 돌이켜 보면 많은 시름속에서 번쩍하이 혜안의 눈이 떠져 그토록 풀리지 않고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을 해결했을 때의 환희에 들뜬 그 수많은 새벽녘, 그때마다 나는 반가운 택시 승객도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와 그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곤 하던 일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또 작품다운 논문을 쓰려면 다시 함부르크로 돌아가 택시운전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천자춘추>학교교육과 위대한 스승

/김진춘(경기도 교육위원) 공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사교육비 지출이 가계부를 압박하고 있다. 학교는 졸업장을 받기 위한 과정일 뿐 공부는 학원에 가서 하는 것을 착각하고 있다. 입시공부를 통한 대학진학이 마치 인생의 최종 목표인 것처럼 학교 교육을 불신하고 있다. 학교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학교라는 상점을 차려 놓고 교사가 점원이 되어 학생들에게 수강료를 받아 가며 지식을 파는 곳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터득시켜 주고, 올바른 가치관과 품성을 지닌 건전한 인격체를 양성하는 곳이다. 또 각종 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하여 합리적인 의사결정력을 길러주고 강인한 체력과 예절이 몸에 배도록 가르치는 곳이며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주는 곳이다. 그리하여 지(智), 덕(德), 체(體), 예(藝), 기(技)의 전인 교육을 해 내는 곳이다. 이같은 교육은 학교에서 학급을 담임하여 학생을 가르치는 위대한 스승만이 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알콘’이란 사람은 서투른 교사는 말로 지식을 팔고, 보통교사는 지식을 이해시키려 하고, 우수교사는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지만, 가장 위대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감동·감화를 주는 교사라고 하였다. 학교는 시험 기술자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지적 창의력과 인성을 갖춘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는 곳이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들은 하지만 사도에 대한 자부와 긍지, 그리고 열정과 사랑으로 오늘도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는 위대한 스승들이 묵묵히 교단을 지키고 있는 한 공교육의 미래는 밝을 수 밖에 없다.

경기천자춘추/중국이 변했다

경기천자춘추/중국이 변했다 경기관광공사 사장 김종민 중국이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를, 특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만 합쳐서 국가 경영의 혁신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실제로 경제가 엄청나게 성장하고 중국전체가 개발의 열풍 속에서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지난주 경기도 대표단과 같이 요령성과 광동성을 둘러 보고 변하는 중국을 새로운 각도에서 체감했다. 이번 방문에서 5년전과 크게 달라진 중국인들의 취향과 행태를 보고 중국이 진정으로 변했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우선 만만디(慢慢的)가 사라지고 있었다. 광동성 최고책임자인 이장춘 당서기가 손학규 지사와 아침 8시30분에 회담을 시작하고 안내하는 중국 공직자들의 시간관리가 예사롭지 않게 정확해 졌다. 식탁에서독한 56도짜리 바이주(白酒)가 사라지고 대신 포도주가 올라왔으며 무리하게 건배를 하자는 사람도 없어졌다. 거리가 깨끗해지고 건물마다 옷을 입히고 모자를 씌워(穿衣戴帽) 유람선을 타고 보는 주강(珠江)의 야경은 어느 자본주의 나라의 강변보다 화려했다. 식탁은 기름진 음식 보다는 야채와 생선회가 자주 오르는 등 가벼워졌다. 참석자마다 주르륵 돌리던 선물도 간소화되어 대표에게만 증정되었다. 특히 공연은 칙칙함과 느림이 사라진 대신 산뜻하고 빨라져 현대 중국의 색채와 소리가 부담없이 마음에 와닿았다. 눈에 띄는 것만 가지고 평하기엔 무리가 있고 물론 뒤안길로 가면 옛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리라. 그러나 고치기 어려운 생활 습관이라는 소프트웨어까지 선진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적 관습과 행동으로 무장을 시작한 중국의 미래적 변화를 다시 그려본다.

경기천자춘추/호응높은 ‘교원 국악연수’

경기천자춘추/호응높은 ‘교원 국악연수’ 채주병(경기도립국악단 악장.거문고) “국악교육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는데 학생들에게 국악교육을 한다는 것이 늘 두렵고, 한편으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교직 경력 20년동안 다양한 분야의 연수를 받았지만 국악연수가 가장 보람있고 유익했습니다. 우리 음악의 멋과 맛에 반했고 국악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런 연수를 주변 교사들에게 권하고 싶고 기회가 되면 한번 더 받고 싶습니다.” 지난 여름방학 경기도립국악단이 도내 초·중등교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원 국악연수’를 마치고 난후 어느 교사가 남긴 글이다. 우리 음악의 전승·발전을 위해 1996년 창단한 경기도립국악단은 국악의 대중화 및 국악인구 저변확대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기·기획공연과 시·군 순회공연 이외에 토요상설국악공연, 일반인 대상 국악강좌, 청소년 국악교실, 교원 국악연수 등이 그것이다. 이들 공연과 강습·연수 등을 통해 국악은 고루하고 재미없고 나이 많은 사람이나 듣는 옛날 음악이라는 인식을 깨고 우리음악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관심을 갖게하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실시하는 교원국악연수는 호응이 무척 좋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도내 초·중등학교의 교원 50여명이 참가하는 국악연수에선 2주간 하루 6시간씩 국악의 이론과 실기를 강습한다. 국악총론·국악사 등 다양한 국악이론과 사물놀이·경기민요·단소 등을 배우고 익히면서 우리음악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나중에는 애정까지 갖게한다. 연수가 끝날 즈음 참가자들은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좋았다’ ‘무척 유익한 시간이었다’ ‘더 심도있게 배우고 싶다’고 입을 모으며, 보다 많은 교사들에게 연수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최근 음악교과서에 국악 비중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국악에 대해 잘 모르거나 서양음악에 뒤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 서양음악을 전공한 음악교사들이 상당수 국악까지 가르치고 있어 국악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있다. 이런 실정이기에 교원 국악연수는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교사뿐 아니라 교육청 등에서도 우리음악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기천자춘추/통계응답의 중요성

경기천자춘추/통계응답의 중요성 통계청 경기통계사무소장 정규남 통계는 의사결정의 기초자료이다. 정부에서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통계를 정책입안이나 정책집행결과를 평가하는데 기초자료로 활용할 뿐 아니라 정책집행과정에서의 변화나 동향을 분석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정부뿐만 아니라 연구기관, 기업, 일반국민에 이르기까지 통계는 다양한 계층에서 활용된다. 특정 과제에 대한 연구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거나 그 대안을 찾기 위해 통계가 활용되기도 하고 사업의 개시, 경영의 평가, 시장 조사, 부동산 등 자산의 투자, 가계의 관리에 이용하는 등 통계의 이용범위는 매우 넓다. 이러한 통계는 대부분 개인이나 가구 또는 사업체를 대상으로 관련사항을 조사한 후 집계하여 발표되고 있다. 따라서 통계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통계를 기획하고 조사하는 사람의 노력은 물론이고 응답자의 성실하고 정확한 응답이 매우 중요하다. 응답자가 사실과 다르게 응답을 하거나 응답을 거부하게 되면 통계의 생명인 정확성이 큰 손상을 입게 된다. 통계청에서는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하여 5년마다 표본가구나 표본사업체를 전부 또는 일부 교체하고 있다. 금년이 그에 해당하는 해이다. 요즘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통계청 직원들이 새로이 선정된 표본가구나 표본사업체를 방문하여 조사를 부탁드리고 있다. 정말 많은 분들이 통계조사에 성실히 응해주시고 있는데 대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러나 성심 성의껏 응답에 응해주시기를 부탁드려도 문조차 열어주시지 않는 등 거절하시는 분들도 있다. 또한 평소에 통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분 중에도 자신이 이러한 통계조사에 응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응답을 거부하는 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통계의 정확성은 떨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 잘못된 정책이 수립되어 우리 모두가 손해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내가 제공해 준 통계자료가 국가정책의 초석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가정경제의 디딤돌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시고 통계조사에 보다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

경기천자춘추/역사가 숨쉬는 박물관

경기천자춘추/역사가 숨쉬는 박물관 / 이천시장 유승우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역사박물관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고 있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박물관은 그 민족의 뿌리와 역사를 확인하는 교육의 장(場)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마다 20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작년에 미국을 연수하는 과정에서 각 고을마다 소규모의 박물관이 수두룩하게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이 의문이 어느 정도 풀릴 수 있었다. 그들의 조상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 대륙에 이주한 이래 황무지를 개척하고 풍요의 강대국을 만들기 위해 흘린 땀의 흔적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청교도 후예들은 조상들의 엄청난 시련과 그 노력의 결과를 확인하면서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짐은 물론, 후손으로서 이를 지키고 더욱 발전시켜야 할 사명감을 전수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바로 뿌리존중의 역사의식 확립이라 하겠다. 필자는 얼마전 관내의 어느 고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 학교의 교장선생께서 현장을 안내하며 역사 박물관 설립계획을 설명하였다. 50여년의 역사에 불과하지만 초창기의 교모와 배지며 개인 성적표 등 졸업생들의 각종 소장품과 유품을 수집하여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박물관을 통하여 도시화·산업화하는 메마른 세태속에서 학교의 위상을 제고하고 후학들에게 모교사랑의 정신을 고취시킴으로써 미래의 꿈을 제시하려는 착상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천시에서도 지난 5월 설봉엑스포공원에 25억원의 예산을 투자하여 이천시립박물관을 개관하였는데 지금까지 5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열악한 지방재정 여건속에서 이 박물관이 설립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천시민들에게 풀뿌리 지방자치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참여와 협력을 통한 심포니사회를 구현하는데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경기천자춘추/’안성맞춤’의 고장

경기천자춘추/’안성맞춤’의 고장 유승렬(안성문화마을 원장·도예가) 필자는 도자기를 통해 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그러기에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자 애쓰고 있고,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한다.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말하자면 ‘안성맞춤’이라는 말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안성은 이미 삼국시대에 그 지리적·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삼국간의 각축의 장이 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전란때마다 외적의 침입에 맞서는 중요한 전략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러한 안성의 지리적 위치는 이후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삼남에서 한양을 잇는 요충지로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조선 3대장의 하나인 안성장을 꽃 피우게 됐다. 이렇게 시장이 발달하니 자연스럽게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고, 그로 인해 각종 수공업기술이 발달하는데, 그중에서 유명한 것이 바로 ‘안성유기’였다. 놋쇠로 만든 생활도구를 유기라고 하는데, 유기그릇 제작방법은 주물, 방짜, 반방짜등 세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에서 안성유기는 주물유기인데 안성의 유기는 그 모양이 아담하고 정교할 뿐더러 견고하고 품질이 매우 좋아 이름이 높았다. 특히 한양의 양반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특별히 그 품질과 모양을 좋게 하는 것을 ‘모춤’이라 하였는데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즉 안성에다가 유기를 주문하면 그 품질과 모양이 주문자의 기호에 딱 들어맞는다는 의미에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생긴것이고, 그것이 오늘날에는 일반명사로 쓰이는 것이다. 안성에는 지금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77호이신 김근수옹을 통해 안성유기의 명맥과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안성맞춤 박물관이 개관하여 유기를 중심으로한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안성맞춤’은 결국 신용이고 믿음이다. 그 ‘안성맞춤’이 과거의 명성이 아닌 오늘날도 사람살기 안성맞춤인 고장이라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경기천자춘추/ 네 덕 내 탓

경기천자춘추/ 네 덕 내 탓 /여순호(경기도여성회관 관장) 평소 존경하는 서예계의 대가 소당 이수덕 선생께서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수덕 700전’을 열어 이를 관람하게 되었다. 많은 작품들 중 나는 한 작품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네덕 내탓’이라는 작품이다. 나는 한참을 그 글을 음미해 보았다. 대부분 ‘내 탓이요’는 잘 쓰지만 ‘네덕’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날부터 지금까지 내 스스로 잘 살아가는 것 같아도 결과는 남에 의해서 사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잘못된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편안하다. 엄지손가락을 나한데 돌리면 마음이 편하지만, 검지를 남한데 돌리면 속상하고 불쾌하다. 그럴 수가 있느냐하면서 화가 난다. 손가락 방향에 따라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나의 큰 탓이옵니다”하며 세 번 가슴을 치며 음송을 한다. 매번 미사 때마다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하지만 무엇이 내 탓인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 시련이 왔다. 공직생활 29년이 되던 지난 1995년에 나와 직접 관계없는 일로 해임을 당한 것이다. 그 후 행정심판으로 복직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서운한 일이 많았다. 나는 미사 봉헌을 하기 위하여 성당을 찾았다. 미사 중에 ‘내 탓이요’를 하며 생각했다. 그래 바로 내 탓이구나. 누구를 원망하고 남의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내 탓이구나. 왜냐하면 나의 부족한 탓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정이나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은 모두 내 주변에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웠을 때 다시 공직생활을 하게 된 것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이렇게 오늘 글도 쓰는 것이 아닐까. 이번 기회에 나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린다. 그 분들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또한 남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된다. 누구든지 ‘내 덕’에 사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지만 우리는 ‘네 덕’에 살고있는 것이다. 이 가을, 삶을 한번 되돌아보면서 ‘네덕 내탓’을 가슴에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천자춘추>의사가 되기 위한 마음 가짐

/손병관(인하대병원 진료부원장)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리라 믿지만, 우리 의사들은 2000년 여름, 소위 의약분업에 반대했던 의료계의 투쟁을 아픈 마음으로 기억한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그렇게 올바른 길을 제시했고, 심지어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환자 곁을 떠나면서까지 옳음을 주장했으나 우리 편에 서던 사람들이 너무도 적었던 것을 말이다. 최근에 유행했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에는 ‘오늘날의 의사들은 정말 보기에도 애처로울 정도로 재정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능고사, 대학 입시철이 되면 의과대학을 지망하는 학생의 점수가 매우 높은 것을 매스컴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공부하기 힘들다’ ‘의사가 되고 전문의가 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돈이 많이 든다’라고 말하면서도 의과대학생이 되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의과대학에 들어오려는 학생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질병이 아닌 인간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과는 구분되는 인간과학이 그들의 전공 분야임을 알아야 한다. 앓는 인간 전체를 이해하고, 인간 속의 자연인 육체를 알고, 그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의사가 행하는 의료행위가 인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사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의대 입학 후에도 계속하리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힘든 과정임에 틀림없으나 보람 있는 직업이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직업임도 사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데칼트는 ‘만일 앞으로 인간을 보다 총명하게, 보다 유능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의학이다’라고 했을 것이다. 이은성의 소설동의보감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던 얼음골에서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죽어가는 몸을 해부하고 나서 관을 잡고 통곡하며 ‘이 허준이 의원이 되는 길을 괴로워하거나, 병든이들을 구하는데 게을리 하거나, 약과 침을 빙자하여 돈이나 명예를 탐하거든 저를 벌하소서’라고 부르짖던 말도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곰씹어 볼 내용이다.

<천자춘추>애국심 콤플렉스

/서봉석(경기대 법학과 겸임교수) 현재 대선후보 중 한 사람이 자손의 국적 문제로 정치적 곤혹을 치르고 있다. 또한 얼마전 총리 지명자도 자식의 국적문제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되어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이는 우리의 국민정서가 국적을 바꾸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애국심 콤플렉스는 편협한 이기적 사고일 뿐이다. 진정한 애국심이란 맹목적적으로 한국국적을 고수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는 무엇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우리 모두가 훌륭한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면 나라를 위해 더욱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기실 독일에 사는 동안에 동화를 거부한 이방인으로서만 존재한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된다. 당시 나는 지금까지도 우리사회의 의식? 淡?존재하는 애국심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었다. 현재 한국인들이 학업이나 취업 등의 이유로 외국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제는 그들이 가능한 한 현지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동화되어야 한다. 영주권이나 국적이 필요하면 취득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 그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그 나라에 체류하는 목적에 성공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과도 없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해도 할 능력이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한국국적 회복의 요건을 완화하여 한국사회에서의 동화와 참여도 쉽게 되어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나는 맹목적적 애국심의 국민정서에 언론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많은 언론들이, 다른 나라를 수용하면 마치 내 나라를 배반한 듯이 몰아가고, 민초들은 이를 너무도 당연한 듯이 따라가고 있다. 이때 다른 의견의 개진은 국민정서라는 미명하에 은근히 협박받고 묵살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감정보다는 이성 그리고 국제시민의식에 눈을 떠야 한다. 선진사회에서는 이러한 무조건적인 애국심을 강조하면 오히려 미개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고 배척된다. 우리가 국제사회를 인정하지 않고 어찌 그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나의 학문과 세계관은 독일유학을 통해서 매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것이다. 독일은 내게 있어서 국제시민의식을 일깨워준 제2의 조국이다. 나는 이제 꼭 한국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독일을 위해서도, 좀더 나아가 국제사회를 위해서 이익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천자춘추>자녀의 인권, 부모의 인권

/나진택(고양의제21 운영위원) 자녀의 인권을 생각하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지난주 지역에서 학부모 단체가 개최한 세미나의 주제가 자녀의 인권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자녀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생활 속에서 어리다는 이유로 의사가 무시되어 지므로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와 학생으로서 부모의 교육목표에 따르지 못하므로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한 과정에서 의사가 무시되어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청소년이 미래의 희망으로 꿈을 키울 수 있는 환경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가치와 분위기,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다다르면 우리사회의 자녀인권에 자신이 없어진다. 특히 교육과정을 통한 우리사회와 가정 속에서 침해되는 자녀의 인권은 심각한 수준이다. 조기교육과 함께 초등학교부터 시작되어지는 갖가지 만능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을 시작으로 자식을 위한 부모의 애정이라는 포장으로 학원, 과외 등으로 인간의 기본 욕구인 수면의 욕구마저 반납 된지 오래이며 보편화 되어있다. 부모의 인권을 스스로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사교육비 지출 세계1위’ ‘약 30조원에 이르는 공교육비를 맹렬히 추격하며 29조원에 이르는 한국의 사교육비’대충 이런 자료들이 부모의 인권도 우려하는 일 들이다. 고3 자녀가 가정의 중심이 되어버린 우리의 현실에서 이미 아버지도 돈 벌어다 주는 기계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현대경제 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월 평균 소득이 70만원 미만인 저소득층의 17.5%가 금융기관 등의 대출과 사채등 빚으로 교육비를 충당한다고 한다. 소득이 151만원에서 200만원에 이르는 가정도 5%정도가 사교육비 때문에 빚을 진다고 한다. 자녀와 부모가 함께 앞으로 잘 살아보기 위한 교육이라는 커다란 짐 밑에서 서로의 인권이 말살 되어가는 현실이다. 민주화 운동에서만 듣던, 거창하게만 느껴지는 인권이 사실은 우리 곁에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UN 인권선언 1조)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