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3일 18시, 우즈벡 최고의 국립극장 Novoi에서 ‘Korean Kamuac 2006’ 공연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주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과 한국교민회 후원으로 마련된 이번 공연에는 한국교민을 비롯하여 한국어를 공부하는 우즈벡 학생 및 현지인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져 약 1,000여명의 관객들이 1∼3층 객석 모두를 가득 채웠다. 무료입장으로 진행된 이번 공연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는데 마음이 급한 관람객은 공연 2시간 전부터 미리 공연장에 나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정도였다. 공연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되었는데, 화려한 의상과 빠른 리듬, 개인 위주의 춤동작이 주가 되는 우즈벡 전통 춤에 비해 역동적이며 동시에 정적인 한국의 춤을 관람하면서 현지인들은 다른 듯 비슷한 매력을 가진 한국의 전통 춤사위의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공연 중간 중간 흥에 겨운 현지인이나 고려인은 일어나 어깨춤을 추기도 하고 연신 박수갈채를 보내며 공연에 흥을 돋우었는데 특히 이번 공연에서 가장 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은 작품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원한 테마인 ‘부채춤’이었다. 죽선과 한지의 운치어린 부채의 움직임은 만개한 연꽃이 물결을 따라 춤을 추듯 포근함과 우아함을 나타내 주었는데 공연 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큰 환호와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우즈벡인들을 보며 그들이 느꼈을 감동을 짐작할 만 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을 접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재 이곳 우즈벡에 소개되는 대부분의 한국문화 관련 공연이 전통춤이나 전통음악을 전달하는 공연 일색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현대적인 대중음악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이곳 우즈벡에서는 한국의 전통놀이나 전통의상, 전통무용 등의 공연이 수차례 이루어져 같은 테마의 행사가 반복적이어서 식상해 하는 현지인들이 생겨나는바 이제는 지명도 높은 가수들의 공연 및 문화행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때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내년에는 고려인 강제이주 70년을 맞이하여 더더욱 한국전통문화와 관련한 공연이 줄을 이을 전망인데 이에 현대적인 대중공연도 함께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요즘 부쩍 감성교육에 열광이다. 어릴때부터 창의적인 사고를 위해 문화예술이 적극 활용되는 추세다. 자녀를 적게 낳는 시대상을 반영하듯 예체능 학원마다 어린이들이 북적댄다. 최필규 수원여대 아동미술과 교수는 그 선두에 서 있다. 어린이 미술교육을 강단에서 직접 가르치기도 하지만 본인 스스로 미술교재를 개발하고 실용화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달 초 수원여대 내 문을 연 ‘아이웰(I well) 센터’ 관장을 맡고 있기도 한 최 교수. 본격적인 체험교육을 위한 시설로 회화와 목공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들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평일에는 유치원이나 어린이 집 등 단체를 대상으로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음달부터는 토요일과 일요일 엄마와 아빠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중앙대 서양학과와 홍익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그의 작품은 어떤 빛깔일까. 문화예술에 대한 체험도 중요하지만 미술 기초가 튼튼해야 응용도 가능한 법. 그는 미술 창작영역에서도 의욕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28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수원미술전시관에 이어 다음달 27일부터 내년 1월3일까지 서울 세종호텔 세종갤러리에서 개인전을 마련한다. 수원 캠퍼스에 마련된 최 교수의 작업장에는 물감 냄새가 가득했다.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대학 주변의 나무와 풀 등을 찍어 프린트한 후 캔버스를 직접 짰다. 그 위에 유화물감으로 붓질을 하거나 둥근 원, 혹은 정사각형, 비정형 등의 형상들을 얹어 작품을 완성했다. “새벽에 일어나 작업하며 만났던 신선한 아침 공기와 자연과의 대면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최 교수가 자연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전원풍경을 간직했던 캠퍼스 주변으로도 개발의 물결이 밀어 닥쳤기 때문이다. 인근 행정타운 개발로 아름답던 자연풍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번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커다란 나무도 그런 이유다. 사진 이미지는 검은 색깔이다. 옛일을 회상하듯 아련히 담긴 나무는 동네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했던 당산나무였을 것이다. 나무가 그려진 작품에는 토목공사에 사용되는 거리측정 도구(폴대)가 한켠을 장식. 개발에 따른 자연파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최 교수는 내년 1월 고향인 평택에서 ‘뿌리전’의 주인공으로 참여한다. 평택시가 주최하는 이 전시에선 학창시절부터 최근까지의 대표작품과 함께 미술대전 상장까지 다채롭게 전시된다. 그는 크게 4차례에 걸쳐 작품들이 변화됐다. 서울로 통학하던 대학시절은 기차를 소재로 작품을 그렸다. 이후 실제 종이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종이작업에 10년동안 매진했고 컴퓨터를 이용한 3D 합성 작품들도 선보였다. 수원 전시에선 컴퓨터 작업과 페인팅 작업을 결합시킨 또다른 작업이다. 작가에게 변화는 또 다른 도전을 제시한다. 교육자이자 작가로서 창작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당당한 모습을 기대해 본다./이형복기자 bok@kgib.co.kr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가족이 있는 집이란다.” 만물이 결실을 맺는 가을, 누구나 기뻐하고 고민하는 가족간 사랑을 주제로 관객들과 교감하는 조그마한 공간이 마련된다. 수원여대 연기영상과(지도교수 장용휘·제작지도 정보석) 학생들이 제6회 졸업공연으로 닐 사이먼의 ‘사랑을 주세요’(Lost in yonkers)를 오는 27일 오후 7시30분, 28일 오후 4시와 7시30분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공연장 무대에 올린다. 주제는 ‘가족의 사랑’. 사랑이 있는 가정이라는 테마는 어떤 개인에게도 가장 소중하며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보루이며 또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안식처이다. 이 작품의 바탕에는 고난과 역경을 인내와 의지로 헤쳐 나와 강철처럼 굳어진 의지력 강한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딸이 있다. 의지력 강한 어머니의 이미지로 유태인 할머니가 등장한다. 인종차별을 뼈 속 깊이 체험한 유태인 어머니가 신천지 미국으로 건너와 겪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그대로 자식들에게 짊어지게 하는 굴절된 정신구조와 뿌리깊은 피해의식도 짙게 배어 있다. 전석 무료.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지난 96년 창단 이후 10주년을 맞은 경기도립국악단. 경기소리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하는 사명이 이들의 역할이다. 지난 20~21일 진행된 경기도립국악단 10주년 기념공연 ‘축제’는 첫날은 경기소리를 선보이고 둘째 날은 계승 발전시킨 창작곡들로 이어졌다. 마지막 날 공연은 이준호 전 예술감독이 1부 3곡, 김영동 현 예술감독이 2부 2곡 등을 선보였다. 김영동 예술감독이 연배로는 선배지만, 초대감독에 대한 예우로 무대를 꾸몄다. 국악계 두 거목이 무대에 오르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이준호 전 예술감독이 창단 당시 작곡한 ‘우리비나리’가 둘째 날 첫 곡을 장식했다. 이날 이 감독은 ‘우리비나리’와 해금협주곡 ‘추상’, ‘축제’, 김영동 예술감독은 전폐희문과 대금시나위를 위한 곡 ‘겁’, ‘성주굿’을 위한 국악관현악 등을 올렸다. 이날 창작전통음악 무대는 전체적으로 서양 오케스트라의 형식을 따온 곡들로 경기도립국악단의 특성과 맞아떨어졌다. 이날 선보인 다섯곡 중 특히 해금을 연주한 강은일 연주자가 눈에 띄었다. 해금 활대를 사용하는 기법이 남다른 강 연주자는 이날 공연 중 해금의 강한 음색을 선보였다. 가야금이나 거문고보다 적은 2개의 줄을 이용해 내는 소리지만, 풍부한 음량과 음색을 들을 수 있었다. 이날 연주한 곡 ‘추상’에서 강 연주자가 본인의 해석을 더해 기존에 들어오던 해금의 음색과는 다르게 ‘지직지직’ 소리를 내며 강하게 긋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전통음악에서 찾아보기 힘든 음색을 해금을 통해 표현해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했다. 강 연주자는 다른 연주자들과 다르게 서양 드레스를 입어 눈길을 끌었다. 전체적으로 경기도립국악단에 어울리는 곡들로 선곡된 점이 익숙한 옷을 입은 듯 편안했지만, 지난 10년을 다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념공연에서 초연곡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김효희기자 hhkim@kgib.co.kr
올해를 마감하는 단풍의 아름다움보다 더 고운 사랑의 콘서트가 열린다. 연예협회 시흥지부(지부장 박남춘)는 다음달 6일 오후 3시부터 시흥 대야종합사회복지관 5층 대강당에서 어르신 300여명을 모시고 제4회 시흥시 연예예술상 시상 및 축하공연을 마련한다. 시흥시와 시흥시의회, 예총 시흥지부 등이 후원하고 월드이벤트TV가 중계할 이번 이벤트에는 연예인으로 현진우·조승구·편승엽·배일호·김진·김하림·김병찬·김현욱·라동근·신원균·김가수·조철남·최한호 등이 출연하고 조세원악단이 반주를 담당하며 진째즈아카데미가 감미로운 율동을 선사한다. 이벤트는 시장 표창 및 감사패 수여, 시의회 의장·국회의원·연예협회 이사장 표창, 연예협회창작분과위원장 공로패 전달, 예총 경기지회장·예총 시흥지회 및 연예협회 시흥지부장 표창·공로패 전달, 감사패 및 봉사상 수여 등에 이어 축하공연으로 이어진다. /허행윤기자 heohy@kgib.co.kr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결혼. 그 결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경기도립극단(예술감독 전무송)은 지난 21일 오후 7시 도문화의전당 소공연장에서 전무송 예술감독의 세계명작시리즈 1탄으로 도립극단의 첫 레퍼토리인 러시아 작가 고골리의 작품 ‘결혼’을 무대에 올렸다. 공연은 지난 16일 가졌던 리허설에서 기자와 각계 인사들이 제기했던 문제점들을 상당 부분 보완해 공연시간이 30여분 정도 줄었고 느슨했던 극 전개도 빠른 템포로 진행됐으며 배우들의 위트있는 몸짓과 얼굴표정, 대사를 음미하면 곳곳에서 웃음을 터지는 등 작품의 묘미들도 곳곳에 배려됐다. 배우들은 원작인 러시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펄펄 눈이 내리는 무대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연기했다. 주의깊게 볼 대목은 배우들의 대사와 표정. 중매쟁이 표클라가 자신을 질책하는 것을 보고는 까취까료프에게 “꼴깝을 떨어요”라고 말한다든지, 아가피아가 구혼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까취까료프가 시킨대로 다른 구혼자들에게 애교섞인 말로 “아직 나이가 어려 시집갈 생각을 안해 봤어요”라든가 “모두 꺼져버려! 이 바보들아”라고 소리치는 장면 등 심각한 분위기에 우리나라 말이 가진 뉘앙스를 제대로 살린 대사들은 객석을 일순간 웃음으로 반전시켰다. 주연배우 이반 꾸즈니치 역의 이찬우, 여주인공 아가피아역의 조은하, 이 극의 히어로 까취까료프 역의 안혁모 등의 연기도 관객들이 작품의 의미를 음미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찬우는 게으르면서도 우유부단한 성격의 주인공역을 잘 소화했고 여주인공 조은하는 대사에 힘이 있고 때로는 수줍은 모습을 여유있게 연기했으며 안혁모는 수다스러운면서도 친구를 결혼시키려는 열정을 과장되지 않은 몸짓과 표정으로 보여줬다. 조연배우들도 감칠맛 나는 대사와 연기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관객들이 폭소를 터트린 하일라이트는 이반 꾸즈니치와 아가피야가 서로 키스하는 장면. 이반 꾸즈니치가 아가피야의 손에 키스하자 까취까료프가 아가피아의 흰 팔뚝을 쑥~ 걷어올리며 팔에 입을 맞추고 급기야 아가피야와 꾸즈니치가 서로 얼굴과 입술에 ‘쪽쪽’ 대며 키스할 때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연극의 대미는 결혼 의미를 관객들 스스로 음미하도록 던져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주인공 꾸즈니치가 결혼할 것을 결정하고도 “결혼하면 나를 구속하겠지”란 독백과 함께 창문을 넘어 달아나고 아가피야가 흰 드레스를 입고 창가에서 허탈해 하고 중매쟁이 표클라가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하는 설정을 통해 결혼의 의미를 관객들 몫으로 남겼다. 소공연장 로비에는 카펫 위에 테이블이 설치되고 ‘ㄷ’자 모양의 안락의자와 티테이블 3개를 갖춘 자그마한 미니 카페가 설치돼 관객들에게 러시아에서 직접 공수한 홍차와 녹차, 커피를 무료로 제공해줬다.연극이 끝난 후 전무송 감독의 팬사인회를 준비하는 등 연극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도 좋은 발상이었다. 다만 여주인공 아가피야가 독백을 하는 장면에서 극이 끝난 듯 갑자기 객석에 환하게 조명이 들어오는 실수와 관객들의 낮은 관람 예절 등은 아쉬웠다. 곳곳에서 핸드폰을 열어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듯 했고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고 어린이의 칭얼대는 소리, 객석의 벽을 긁는 소리 등은 공연의 감동을 반감시켰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투란도트 공주로 몸무게 150㎏의 거구가 출연한다고 상상해보세요. 현대의 오페라에서는 가창력 뿐 아니라 외모와 연기력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76) 씨가 지난 19일 한국오페라단 박기현 단장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 그의 한국과 인연은 지휘자 정명훈 씨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등 세 차례 작업한 것이 전부다. 그는 내년 5월 서울에서 한국적 색채를 넣은 '피치표' 오페라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22일 오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시차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면서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건강 비결을 묻자 "열심히 일에 매달리고, 음식은 적게 먹는 것, 그리고 많이 걷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21일에는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을 둘러보고, 한정식집에서 물김치 등 갖가지 한국음식도 맛봤다. 26일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그는 재래시장에 들러 한국의 옷감을 구경하고, 한강과 사찰 등도 둘러볼 계획이다. 한국에서 체험한 것들을 오페라 연출에 반영한다는 것. "한국에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같은 훌륭한 공연장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예술의전당이 무대에 집중할 수 있게 설계됐다는 점에서 좀 더 나은 것 같았습니다. 한국음식은 자연의 맛을 살렸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음식과 통한다고 할까요." 한국에서 어떤 작품을 올릴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21일 뮤지컬 '점프' 공연을 보면서 힌트를 얻은 듯 했다. "공연을 보면서 한국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는 것을 느꼈어요. 한국 무대에 올리는 오페라도 그 점을 고려해서 정할 겁니다. 헨델의 '리날도' 같은 바로크 오페라가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일반인의 선입견과 달리 헨델의 바로크 오페라들이 속도감 있고 음악도 화려하거든요." 그가 지난 50여 년간 연출한 오페라만 500편이 넘고, 연극까지 합하면 700편 이상이다. '대가' 또는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인물.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의 예술감독도 맡았고, 오페라 관련 전시회도 숱하게 열었다. 오페라에 잔뼈가 굵은 만큼 주관도 뚜렷하다. 첫째는 "베르디의 '아이다'가 돼야지 연출가의 '아이다'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목소리 뿐 아니라 연기력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출가는 무대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습니다. 단 오페라 초연 때의 정신을 무시하면 안되죠. 또 연출이 색다르고 독창적이더라도 관객한테는 쉽게 다가가야 합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무대 디자이너와 의상 디자이너 등을 두루 거쳤으며, 오페라 연출의 거장 루카 론코니와 공동작업을 하다 1977년 연출가로 독립했다. 무대 디자인에서 건축적 요소가 많이 발견되는 점과 다른 오페라와 달리 무대, 미술, 의상 등을 혼자 전담하기 때문에 통일적 연출 컨셉트가 유지되는 점이 그의 작품이 가진 강점이다. "무대는 수학적 정확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잘 결합해야 합니다. 아무리 발상이 좋아도 건축이 수학적으로 치밀하지 않으면 건물이 무너지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죠. 또 저는 극장이 신전 만큼이나 성스럽고 절대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탈리아 페사로에서 해마다 열리는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25년간이나 맡았으며, 2005년 10월에는 2년 임기의 마체레타 오페라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오페라 연출에서 업적을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언제까지 오페라 연출을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때까지"라고 답했다. /연합뉴스
일상을 잠시 잊고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그리운 가을밤, 마음에 맞는 연인과 함께 아름다운 선율에 기대어 와인과 함께 즐기는 수아레 콘서트는 어떨까? 성남아트센터는 다음달 26일 오후 9시 앙상블시어터에서 수아레 콘서트 ‘달콤한 화요일’을 연다. 수아레(Soire’e)는 야간흥행이란 뜻을 가진 프랑스어로 다른 음악회와 달리 하루 일과가 끝난 시간 공연장을 찾아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 전에 와인을 즐기며 긴장을 풀고 해설이 곁들여진 영상음악회를 즐길 수 있는 형식의 콘서트다. 퇴근 후 마음에 맞는 동료끼리,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데이트 장소를 찾는 연인들끼리, 모처럼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부부끼리 공연 전 제공되는 와인과 크렉커를 즐기며 담소를 나눌 수도 있고 음악영상을 보면서 연주자와 해설자가 깊이있는 해설을 통해 관객과 연주가, 해설자 등이 함께 호흡한다. 이번 콘서트에선 정신과 전문의로 오페라 평론가이자 음악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박종호씨가 해설을 맡아 관객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영상을 감상하며 생생하고 맛깔난 해설로 공연의 재미를 더해준다. 오는 21일 공연에선 브람스의 ‘교향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헝가리 무곡’ 등을 선보였으며 섬세하고 따뜻한 소리를 갖춘 바이올리니스트 정준수가 출연했다. 다음달 26일 공연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으로 함께 한다. 레퍼토리는 교향곡 제6번 ‘비창’,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등이다. 전석 2만원. 문의(031)783-8027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저렇게 남들이 즐거워하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 고통을 겪고 있을까."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3막에서 병으로 죽어가면서 창밖에서 들려오는 사육제의 소란에 이렇게 반응한다. 화려한 사교계 파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막에서 "오로지 인생을 즐기자"고 외치던 비올레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변신이다.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정은숙)의 '라 트라비아타' 연출가 볼프람 메링은 1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공연에서 바로 이런 비올레타의 모습에 주목하며 '사회적 약자의 비극'에 악센트를 주었다. 오케스트라가 1막 전주곡을 연주하는 동안 무대에 펼쳐지는 풍경은 파리의 빈민가. 노숙자들의 무리가 거리 한 모퉁이에서 옹색하게 잠을 자고, 그 무리에 섞여있던 비올레타는 홀연히 그 세계를 빠져나와 무대 반대편 어느 신사의 품에 안긴다. 대본에 쓰여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비올레타의 전사(前史)다. 1막 '축배의 노래'가 펼쳐지는 장면부터 보게 될 때 간과하기 쉬운 비올레타의 출생과 신분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장치인데, 이렇게 해서 3막의 죽음이 갑작스러운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 초반부터 극에 내재해 있는 필연적인 귀결임을 보여준다. 굶주리며 거리를 헤매던 빈민계층의 소녀가 상류층의 풍요로운 삶을 꿈꿔보지만 사회적 신분의 벽과 이중윤리에 부딪혀 결국 파멸하고 마는 과정. 비올레타가 거리에서 잠을 자는 장면으로 극을 시작함으로써 이런 과정을 마치 비올레타의 꿈속 이야기처럼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끌고 간 것도 독특한 연출 방식이었다. 전주곡의 파리 빈민 장면과 연결되는 1막의 파티 장면은 무대와 의상, 소품 등 모든 것이 흑백이어서, 세련된 파티 드레스들이 무대를 채웠는데도 뒤에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게 했다. 복잡한 무대 전환 없이 하나의 세트를 전막(全幕)에 사용하는 것은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꽤 오래 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유행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라 트라비아타' 무대로는 새로운 시도. 무대 디자이너 임일진이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라고 해설한 무대 중앙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아래 계단은 상당히 효율적으로 이용되었다. 2막 1장에서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와의 행복한 삶을 노래할 때 그를 시종 지켜보는 빈민들의 존재 역시 다가올 파국을 암시한다. 연출가 메링은 밝고 화려한 삶과 누추하고 가련한 죽음의 극적인 대비를 택하는 대신, 끊임없는 암시와 불안한 분위기로 관객에게 비올레타의 본질을 바라보게 했다. 3막에서 빈민들이 계단에 베개들을 깔아 비올레타의 침대를 마련하는 연출상의 아이디어는 한동안 교류하던 상류사회에서 비올레타가 철저히 버림 받았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비올레타 역의 소프라노 스테파냐 본파델리는 비올레타 역에 꼭 어울리는 음색과 외모로 유럽 각지에서 찬사를 받아왔지만 19일 첫 공연에서 완전히 성공적인 역할을 해내지는 못했다. 원래 큰 음량과 드라마틱한 가창으로 승부하는 가수는 아니지만, 1막에서는 고음이 불안정해 '이상해라E strano'부터 '언제나 자유롭게Sempre libera'에 이르는 고난도의 콜로라투라 부분에서 청중을 압도하기 어려웠다. 2막부터는 좀더 유연한 가창을 들려주었지만 비올레타의 진수를 보여준 것은 3막에 가서였다. 제르몽의 편지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 읊조리며 원망하는 탁월한 연기, 죽음을 앞두고 부르는 '이 초상화를 받아요Prendi, quest'e l'immagine' 등의 설득력 있는 가창은 객석을 감동시켰다. 알프레도 역을 맡은 테너 박현재는 지난해 '호프만' 역에 이어 정확하고 안정적인 가창을 들려주었다. 다만 사랑에 빠진 젊은 청년의 열정과 분노를 좀더 자연스러운 연기로 표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올레타의 사랑을 허락 받은 기쁨, 비올레타를 죽음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처절한 슬픔 등을 그의 가창과 연기에서 충분히 느끼기 어려웠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배역은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다. 제르몽 역의 바리톤 유동직은 힘과 정교한 해석력을 함께 지닌 최고의 바리톤이었다. 그는 풍부한 성량을 신중하게 조절하며, 따뜻한 아버지인 동시에 냉혹한 장사꾼인 제르몽의 이중적 성격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국립오페라 합창단은 활력이 넘치는 정확한 가창으로 극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카를로 팔레스키가 지휘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베르디의 쉼표들을 예민하게 살려 극의 긴장감을 제대로 전달했다. 단조로운 무대가 섬세하고 치밀한 조명의 변화로 장면마다 다른 인상을 지닐 수 있었던 점도 특기할 만하다. 주역들의 연기 호흡이 그리 자연스럽지 않았음은 한 가지 아쉬운 점이다. 본파델리와 박현재는 가장 극적인 순간('사랑해줘요, 알프레도Amami, Alfredo')에서 조차도 진정으로 사랑에 빠져 있는 커플 같은 인상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관객도 3막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연기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여전히 어색한 구투(舊套)가 남아있는 '라 트라비아타'의 한국어 대본은 새로운 세대의 관객을 위해 반드시 손질이 필요하다. 공연은 23일까지 계속된다. /연합뉴스
19일 호암아트홀에서 펼쳐진 베를린 필의 수석 플루티스트인 엠마누엘 파후드 콘서트는 연주가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음악적 성과들을 집대성하는 무대였다. 연주가의 사정으로 예정되어 있던 베버의 소나타가 브람스 소나타로 대체되면서 2부 순서는 가장 최근 발매된 그의 브람스 소나타 신보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뿐만 아니라 1부에 연주된 풀랑크의 소나타와 세자르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 앙코르로 연주한 클로드 볼링의 크로스오버들은 과거에 이미 음반으로 발매돼 검증된 레퍼토리들이었다. 유일하게 플루트를 위한 오리지널 원곡으로 연주된 풀랑크의 소나타는 작품에 내재된 색채감이 명쾌하게 묘사된 호연이었다. 파후드 특유의 낙천적인 음색과 여유있는 테크닉은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멜랑콜리보다는 활기와 생동감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이어진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는 본래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을 파후드가 플루트로 편곡한 것이다. 플루트의 호흡과 음역을 고려해 템포와 옥타브가 상당 부분 편곡됐지만 작품의 기존 틀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템포를 빠르게 조정했다고는 하지만 한 호흡으로 소화하기 힘든 패시지들을 파후드는 놀랍도록 긴 프레이징으로 한숨에 질주했으며 그 와중에도 섬세한 묘사들을 놓치지 않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스케일은 플루트라는 악기의 한계상 온전하게 복원되지 않았지만 대신 현악기에서는 간과되었을 작품의 세부적인 아름다움이 파후드의 숨소리를 통해 멋지게 복원되었다. 파후드의 오랜 리사이틀 콤비인 에릭 르 사쥬는 섬세한 플루트에 시의적절하게 반응하며 최고의 호연을 이끌어냈다. 2부 순서로 연주된 브람스 소나타는 클라리넷 원곡을 역시 파후드가 플루트 곡으로 편곡한 것이었다. 소나타 1번과 2번 양곡 모두 클라리넷의 음색이 가지고 있던 저음의 우직한 무게감은 플루트로 바뀌면서 섬세하고 예민한 정서로 변화되었다. 자칫 플루트의 높은 음색으로 인해 가볍게 둥둥 떠다닐 수도 있었을 곡에 전반적인 무게를 지탱해 주는 것은 에릭 르 사주의 피아노였다. 브람스가 군데군데 삽입해 놓은 다채로운 대위와 화성을 느릿느릿 차례로 섭렵해가는 동안 르 사주는 플루트가 숨이 가빠질 때 즈음 알아서 프레이즈를 끊어주는 한편 음색의 변화를 통하여 단조로운 진행을 탈피했다. 1번보다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작품인 2번은 플루트와 피아노 모두 다소 어깨의 짐을 벗어던지고 가볍고 느슨하게 연주를 진행했으며, 1번보다도 플루트의 장점이 더욱 돋보이는 연주였다. 브람스 소나타는 가을의 스산한 정서에 더없이 어울리는 레퍼토리였지만 역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진지함은 관객들의 심리에 부담으로 작용했던 듯싶다. 이러한 무거운 분위기를 파후드 자신 또한 감지했는지, 앙코르로 그는 클로드 볼링의 넘버 두 곡을 연달아 선보였다. 감미로운 선율과 더블텅잉(double-tonguing)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재기발랄한 연주에 청중들은 본래의 활기를 회복하고 공연장을 나설 수 있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