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市, 영화 배트맨 신작서 또다시 고담시티로 변신

미국 시카고시가 또 한번 배트맨을 맞아 고담시티로 변신한다. 18일(현지 시각) 리처드 데일리 시카고 시장은 워너 브라더스의 배트맨 영화 시리즈 가운데 최신작인 '어둠의 기사(The Dark Knight)' 의 6일에 걸친 사전 제작 촬영이 시카고에서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데일리 시장은 " 워너 브라더스가 다시 시카고로 돌아오기로 결정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시카고시는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면서 영화 제작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카고시는 지역 경제와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되는 영화 산업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 덧붙였다. 사전 제작 일정에는 이날부터 20일까지의 내부 촬영과 21일부터 24일까지의 외부 촬영이 포함돼 있는데 21일과 23일,24일에는 헬기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시카고시는 외부 촬영 기간 도심의 일부 도로를 통제하고 필요할 경우 버스 노선도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워너 브라더스는 다음달 영국의 런던에서의 작업에 이어 6월에 다시 시카고로 돌아와 여름 내내 '어둠의 기사' 제작을 계속할 예정인데 대부분의 촬영은 시카고 도심 지역에서 진행된다. 시카고에서는 지난 2004년 여름에도 전편인 '배트맨 비긴즈' 가 촬영된 바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신작 '어둠의 기사' 는 내년 7월 18일 개봉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새영화> 여성들의 판타지 '쉬즈 더 맨'

끌리는 영화는 따로 있다. 롱테이크에 변변한 줄거리도 없는데 왠지 가슴을 파고드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할리우드 스타가 총출동하고 작품성ㆍ흥행성을 함께 인정받는 거장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는데도 영 구미에 당기지 않는 작품도 있다. 바로 기호(嗜好) 때문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10대가 좋아할 영화, 남성이 열광하는 영화 등 굳이 나눠 얘기하게 되는 것은 성별과 연령대에 따라 그 관객층에게 어필하는 영화는 분명 따로 있기 때문이다. 20~30대 여성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뭘까? 아마 그들의 판타지를 반영하는 영화일 듯싶다. 20대 초반의 여성은 지긋지긋한 교복을 벗고 맞이한 봄 향기 가득한 공원에서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싶을 테고,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쯤 된 결혼적령기의 미혼여성은 든든한 경제력에다 매너에 매력까지 갖춘 남성이면 신랑감으로는 물론 데이트 상대로도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것은 현실의 문제이고 현실에서 발을 살짝 떼고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면 20~30대 여성에서 공통분모로 남는 것은 잘생긴 남성과의 짜릿한 로맨스일 것이다. 판타지란 현실감이 전혀 없는 것이니 과도하게 잘생긴 남성일수록 여성들은 열광한다. 그런 잘생긴 남성과의 로맨스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주겠다고 나선 영화가 '쉬즈 더 맨(She's The Man)'이다. 축구에 미친 비올라(아만다 바인즈)는 교내 여자축구부가 해체되자 난감하다. 남자부에서는 여자를 부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데 그녀는 어떻게든 축구가 하고 싶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남자 행세를 하는 것. 그녀에게는 마침 자신과 닮은 쌍둥이 오빠 세바스찬이 있다. 음악에 미친 세바스찬이 런던에서 열리는 음악축제에 간 사이, 비올라는 오빠가 입학할 예정인 학교에 오빠 행세를 하며 입학한다. 그녀의 목적은 단 하나, 축구부에 드는 것이다. 축구부에 입단하고 기숙사에까지 무난히 입성(?)했는데 문제는 룸메이트 듀크(채닝 테이텀). 그를 속여야 꿈에도 고대하는 축구를 할 수 있는데 쉽지 않다. 그런 사이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같은 축구부원인 듀크와 함께 운동하고 얘기하면서 비올라는 듀크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쉬즈 더 맨'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다. 달콤한 사랑과 코미디가 함께 하는 이 장르는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영화의 모든 요소는 이 해피엔딩을 향해 돌진한다. 쌍둥이 남매의 외모와 체격이 딴판인데도 영화가 닮았다고 하면 'OK'다. 리얼리티가 떨어져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는 판타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획단계부터 철저하게 여성 관객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듯하다. 인형 같은 여배우를 제치고 적당히 예쁜 여주인공이 잘생긴 남자 주인공을 차지하는 것도, 남성 스포츠의 대명사인 축구에서 여성이 당당하게 홀로 서는 것도 모두 여성 관객에 충족감을 줄 것이다. 영화는 여성주의 관점을 살짝 건드리면서 "저 애도 하는데 너도 할 수 있어"라며 여성들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이런 뻔한 스토리와 구성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여성들을 만족시킨다. 시사회가 끝난 뒤 여성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볼 때 '쉬즈 더 맨'은 시종일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여성 영화라는 확신이 굳어진다. "난 그런 뻔한 스토리에 넘어가지 않아"라고 말하는 여성도 아마 이 작품을 보며 웃고 있을 확률이 높다. 작품성을 논할 영화는 아니지만 기획성은 높이 살 만한 상업영화라는 얘기다. 노티카 모델 출신으로 '스텝 업'에 출연했던 채닝 테이텀과 미국 10대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아만다 바인즈가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쉬즈 더 맨'은 메가박스가 5월부터 여성 관객을 겨냥해 내놓는 영화 브랜드 '무비온스타일'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첫 작품으로 괜찮은 선택인 듯싶다. 5월3일 개봉. 관람등급 미정 /연합뉴스

<새영화> 미국의 추악한 진실 '더블 타겟'

'디파티드' '이탈리안 잡'의 마크 월버그가 주연을 맡은 '더블 타겟'은 맷 데이먼이 주연한 액션스릴러 '본 슈프리머시'를 연상케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자주 등장하는 암살전문 특수요원과 대통령 암살 사건이라는 흔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다. 소재나 내용은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지만 세밀하게 잘 짜인 스토리와 실감나는 액션, 미국 정부와 정치인의 위선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자칫 뻔한 영화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을 피해나간다. 위험한 비밀작전을 수행하던 중 작전이 들통날 것을 우려한 미국 정부로부터 버림받고 절친한 동료를 잃은 특수부대 최고의 스나이퍼 밥 리 스웨거(마크 월버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지키려던 조국에 대한 배신감으로 은퇴한 뒤 산 속에 은둔해 살아간다. 그러던 그에게 '정부 관계자'라는 존슨 대령(대니 글로버) 일행이 찾아와 대통령 암살 음모를 막아달라고 요청한다. 스웨거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존슨 대령의 집요한 회유에 넘어가 대통령 암살을 막기 위한 작전에 참여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력이 주도하는 거대한 음모에 의해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스웨거는 오히려 범인으로 몰려 쫓기는 신세가 된다. 영화는 대통령 암살미수범으로 몰린 스웨거가 대통령 암살 사건 배후에 감춰진 거대한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간다. 거대한 어둠의 세력에 맞서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스웨거를 돕는 인물로 신출내기 FBI 요원 닉 멤피스(마이클 페냐)와 비밀작전 수행 중 사망한 동료의 부인 세라 펜(케이트 마라)이 등장,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영화는 1㎞ 밖에서도 목표물을 정확히 맞추는 최고의 스나이퍼의 세계와 거대한 음모의 배후로 목적달성을 위해서라면 인간 목숨을 파리 목숨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추악한 미국 주류 정치인을 등장시킴으로써 영화적 재미를 배가시킨다. '더블 타겟'은 특히 다양한 영화적 장치를 통해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을 비롯해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제3세계에서 저지르고 있는 추악한 만행을 간접적으로 풍자함으로써 영화의 정치적 품격을 한층 높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눈부시도록 새하얀 산 정상의 설원에서 벌어지는 스웨거와 악의 세력 간의 숨막히는 총격전은 이 영화가 스펙터클이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인정하게끔 한다. 26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

<새영화> 미국의 동물 영웅 '닌자거북이 TMNT'

'닌자거북이' 역시 세계적으로 알려진 만화 캐릭터다. 1984년 미국 미라지 스튜디오에서 발행한 만화는 1987년 최초 2D 애니메이션 TV시리즈로 제작돼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1990년 이후 총 3편에 이르는 실사영화로 제작됐으며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변신해 지난달 미국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성공을 거뒀다. 미국인에게 그만큼 친숙한 캐릭터임을 입증한다. 무술을 하는 네 마리 거북이가 주인공. 전설적인 예술가들의 이름을 갖고 있다. 첫째이자 리더인 레오나르도는 책임감 강한 성격, 조각 분야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인 도나텔로에서 이름을 딴 둘째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로 컴퓨터를 다루는 데 능하다. 셋째 미켈란젤로는 낙천적이고 활달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바티칸 궁전의 천장화 그림을 그린 피렌체파의 창시자 라파엘의 이름을 딴 막내는 정의감에 불타지만 다혈질의 성격이다. 뉴욕 하수구에서 돌연변이로 태어난 이들은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추고 약자를 돕는다. 영화는 대도시 뉴욕의 암울한 전경과 하수구 속 지하세계의 정교함을 표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배경만 놓고 본다면 실사 느와르 영화와 견줘도 손색없다. 긴박함을 불어넣는 액션과 등장인물의 생생한 캐릭터는 서로 융화하지 못하는 갈등을 묘사하는 데 충실히 적용된다. 네 형제가 같은 마음으로 뭉치기 위해 정신수련의 덕목을 알릴 때마다 깔리는 동양적 선율의 배경음악은 동양 사상에 대한 미국인의 동경을 드러낸다. 실사 버전의 닌자거북이 영화를 제작했던 홍콩 골든하베스트의 토마스 그레이 회장이 미국 제작사인 IMAGE의 임원으로 들어와 이 영화를 기획했다. 뉴욕과 관련한 디자인은 미국의 디자이너가, 쿵후와 검술 장면은 홍콩의 아티스트들이 만들었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레오나르도가 무술 수련을 떠난 후 각자의 삶을 사느라 같은 공간에 살아도 모래알처럼 흩어진 세 동생이 다시 만나 화합을 이루는 과정과 함께 3천 년 전 전설의 부활을 꿈꾸는 인물로 인해 다시 나타난 괴물과 전설 속 장수들을 물리치고 지구의 평화를 이룬다는 것이 기둥줄거리다. 닌자거북이의 최고의 적수였던 슈레더가 죽고 난 후 레오나르도는 수련을 위해 남미로 떠난다. 남겨진 형제들은 다른 일을 한다. 도나텔로는 컴퓨터 수리 상담, 미켈란젤로는 어린이 파티 대행사를 차린다. 라파엘은 형들에게 숨기고 '나이트워처'라는 이름으로 밤이면 범죄자를 소탕하지만 시민은 찬사를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두려움만 갖고 비난한다. 라파엘이 정신적 혼란을 거듭하고 있을 즈음 레오나르도가 돌아온다. "형이 왜 꼭 우리를 이끌어야 하느냐"고 대드는 라파엘과 "넌 너무 생각이 없다"고 비난하는 레오나르도는 갈등을 겪는다. 닌자거북이들의 친구이자 고고학자인 에이프릴은 기업 총수 윈터스의 의뢰로 고대 석상을 찾는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체들이 엄청난 괴물을 잡아가는 일이 생긴다. 에이프릴은 3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단순한 전설이 아닐 수 있다고 추리한다. 3천 년 전 세계를 지배하고자 전쟁을 일으켰던 왕이 영생을 얻는 대신 자신의 충직한 장군들이 돌로 변하는 아픔을 겪는다. 윈터스 회장이 바로 그 왕이었으며, 영생의 버거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주를 풀려고 한다. 3천 년 만에 별이 일렬로 움직이는 날 세상에 뛰쳐나온 13마리의 괴물을 모두 잡아 우주로 되돌려 보내야만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장군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석상 장군들은 왕이 저주를 풀어 모두 죽음을 맞게 할 작정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역모를 꾀한다. 윈터스 회장의 눈과 귀가 돼주는 닌자 조직 풋 클랜의 여두목 카라이의 목소리를 장쯔이가 연기했으며 '판타스틱4'에 출연한 크리스 에반스가 에이프릴의 남자친구 케이스를 연기했다. 닌자거북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한국에서는 디즈니류의 캐릭터와 달리 큰 인기를 얻지 못하는 탓에 이 영화가 국내 관객에게도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애니메이션에 대해 선입견이 분명한 한국 관객에게는 타깃층이 모호한 작품이라는 점도 한몫 거든다. 26일 개봉. 전체관람가. /연합뉴스

인디영화계 스타 감독 짐 자무시의 인생관

"저는 돈과 라이프 스타일을 중심에 두고 삶을 꾸려나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건 너무 뻔한 삶처럼 느껴지죠. 정말 수많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도 있거든요." 평범하게 사는 이의 말이 아니라는 게 느껴지지 않나. '천국보다 낯선'으로 영화 팬들에게 친숙한 인디영화의 대표주자 짐 자무시 감독의 인터뷰집 맨 첫 장에 실린 말이다. 짐 자무시 감독의 인터뷰를 엮은 책 '짐 자무시'가 나왔다. 마음산책 출간. 작가를 꿈꾸며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짐 자무시는 대학 마지막 학기에 교환학생으로 파리로 건너간 후 인생의 길을 바꿨다. 도서관 대신 영화관에서 죽치고 살았던 그는 뉴욕으로 돌아와 뉴욕대 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한다. 1980년 졸업작품으로 만든 '영원한 휴가'가 독일 만하임 영화제를 통해 유럽에 선보였으며 1984년작 '천국보다 낯선'이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에 뽑히며 전세계 영화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다운 바이 로'(1986), '미스터리 트레인'(1989), '지상의 밤'(1991), '이어 오브 더 호스'(1997)에 이어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2005년작 '브로큰 플라워'까지 짐 자무시는 인디영화이지만 결코 '그들만의 리그'에 머무르지 않고 폭넓고 새로운 영화 세계를 보여줬다. 인터뷰집 '짐 자무시'는 1981년부터 2000년까지 발표된 짐 자무시의 인터뷰 중 의미 있는 텍스트 15편을 골라 짐 자무시의 인생관과 영화관을 드러낸다. 활자로 정리된 그의 말을 통해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린 뒤 그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구체적으로 염두에 둔 상태에서 1년 정도 그와 관련한 디테일을 모아 스토리를 끄집어내는 그의 창작 스타일과, 아주 단순한 구조에 끌리며 어리둥절한 상태를 즐긴다는 인간으로서의 독특한 취향을 알 수 있다. 392쪽. 1만4천500원. /연합뉴스

복수에 대한 새로운 관점 日영화‘하나’

한 사내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영화라면 으레 비장한 복수로 마무리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 복수를 완수한 사람도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곤 하니까. 이렇게 반복돼온 ‘복수의 굴레’를 유쾌하게 변주한 영화가 있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근작 ‘하나’(19일 개봉)다. 2004년 도쿄 한복판에서 버려진 채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린 ‘아무도 모른다’로 칸 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히로카즈 감독은 이번에 170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마치 시트콤처럼 여러 개성있는 인물들이 어우러지는 코믹한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복수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이 신선하다.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죽이기 위해 에도의 한 마을로 온 무사 소자(오카다 준이치)는 아이들에게 글 가르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문약한 성품. 겨우 원수를 찾아내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해 단란한 가정까지 꾸린 상태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는 그를 죽여야 하지만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칼을 뽑을 수 없는 소자.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딜레마를 사뿐히 뛰어넘는다. 이 영화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12일 복수에 대해 이처럼 다른 관점을 제시한 이유를 설명했다. “복수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복수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 한국 영화 ‘올드보이’처럼 그 방향으로 계속 나가는 영화가 있다면 ‘하나’처럼 복수를 안하는 쪽을 택하는 영화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독특한 점은 특별히 성품이 고결한 사람이어서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그린다는 것. 감독은 “소자가 강한 사무라이였다면 영화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약한 사람으로 설정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제목 ‘하나’는 일본어로 꽃이라는 뜻이고 원제는 ‘꽃보다 더’이다. 마지막 장면에 “벚꽃이 미련없이 지는 것은 내년에 다시 필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의미에 대해 묻자 감독은 “일본 사람들은 벚꽃에서 ‘비장한 죽음’을 떠올린다”면서 “‘꽃보다 더’라는 말은 무사가 할복할 때 부르던 유명한 단가의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죽음보다 더’라는 의미를 역설적으로 제시한 것”이라 풀이했다. 배두나에 대한 관심을 표하면서 한국 영화계에 애정을 드러내온 그는 “기회만 닿는다면 배두나와 꼭 영화를 찍고 싶다”면서 “설경구와 송강호도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라고 말했다. 오는 7월 촬영에 들어갈 차기작에 대해 “가족에 관한 작은 이야기로 잔혹한 느낌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길 바란다고 하자 “제발 그렇게 되길…”이라며 웃어보였다.

공직 이후 첫 영화‘밀양’찍은 이창동 감독 “감각 안풀려 고생”

“4년만에 영화 현장에 나서니 몸도 감각도 잘 풀리지 않아 고생스러웠습니다. 한동안 쉬었다가 그라운드에 서는 선수의 느낌이랄까요.” 문화관광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영화 ‘밀양’(제작 파인하우스필름)을 찍은 이창동(53) 감독의 소감이다. 10일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 주연배우 송강호(40) 전도연(34)과 함께 자리한 이 감독은 “뜨거운 마음으로 만들었다” “부끄럽지 않게 만들려 했다”는 등 제작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털어놨다. 흥행 성적에 대한 전망을 묻자 “흥행 위주로 찍지는 않았지만 관객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소통하고 싶었다”면서 “다만 얼마나 많은 관객을 불러모았느냐로 소통 여부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작 ‘오아시스’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특별감독상 등을 받은 것과 관련, 국제영화제 수상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영화제를 겨냥해서 작품을 만든 적은 없었고 영화는 그렇게 등수 매길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그런 기대를 말해올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밀양’은 남편을 잃고 밀양으로 내려와 아이까지 잃는 절망적인 여자 신애(전도연)와 그 주변을 맴도는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의 이야기다. 이 감독은 “멜로인 것은 분명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멜로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주연 배우 송강호에 대해서는 “10년 전 ‘초록물고기’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노력하는 배우”라 했고 전도연에게도 “화장을 안해도 내 눈에는 충분히 아름답다”고 칭찬했다. 송강호는 이 감독에 대해 “조금 과장하자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감독님”이라고 존경을 표했고, 전도연에 대해서도 “늘 존경해온 최고의 여배우”라고 추어올렸다. 지난달 11일 결혼 이후 공식석상에 처음 나타난 전도연은 “결혼 준비 때문에 극중 캐릭터에 몰입하기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일과 사생활은 나뉘어 있는 것이라 연애할 때의 행복한 기분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또 “예전에는 일이든 결혼이든 인생의 전부라고 여겼으나 나이가 들면서 모두 내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게 됐고, 때문에 둘 중 하나의 비중이 더 커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다만 앞으로는 더 바쁘게,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밀양’은 다음달 17일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