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균동 감독의 신작 ‘美人’은 몸에 관한 단상(斷想)같은 영화다. 정신의 지배를 받는 객체로서의 몸이 아니라 감정을 표출하고 느끼고 뭔가에 반응하는 주체로서의 몸이 이성과의 만남을 매개로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몸이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관심의 대상이란 기저위에 서 있는 이영화의 주인공은 그래서 인간의 신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현대무용가 안은미씨가 몸 연출을 별도로 맡은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인터뷰 잡지기자(오지호)가 애인에게서 버림받은 22살의 누드모델(이지현)을 우연히 만나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는 내용의 영화 원작은 여 감독이 몇해전에 내놓은 중편 소설 ‘몸’. 두 사람의 나머지 일상사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는 카메라는 오직 침실에서의 거침없는 섹스, 몸에 대한 탐닉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의 육체적인 사랑만 좇고 있다. 그것도 아주 미세한 몸짓까지 앵글에 담아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남녀 누드집을 보는 듯한 인상이 남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에게 섹스는 단순한 유희를 뛰어넘는, 가장 적나라한 인간의 언어에 다름아니다. 실제, 여 감독은 “우리의 이성 보다 오히려 솔직한 ‘몸’의 사랑에 주안점을 두었다”, “억제하지 않은 욕망이 보여주는 몸짓은 충분히 아름답다”는 말로 이 영화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극단적인 차별성을 실험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이 영화의 몸에 대한 탐미적인 관심과 집착에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12일 개봉.
올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또 한편의 공포영화 ‘해변으로 가다’는 PC통신만이 유일한 대화 수단인 한 젊은이가 통신에서조차 ‘왕따’를 당하자 ‘살인마’로 돌변해 자신을 따돌린 아이들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의 슬래셔 무비다. 특정동아리에 소속된 7명의 젊은이가 등장하고, 이들 모두 살인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하나의 비밀’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양만 보면 먼저 개봉한 영화 ‘가위’와 닮았다. 그러나 ‘가위’가 유지태, 김규리, 하지원 등 요즘 뜨는 ‘스타군단’을 앞세웠다면 ‘해변…’은 ‘생짜 신인’들을 과감히 주인공으로 기용해 참신함을 노렸다. 영화 초반에는 일찌감치 살해된 한 명을 제외한 일곱 명의 청춘 남녀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마음껏 젊음을 누리는 모습이 펼쳐진다. 이들은 모두 PC통신 ‘바다사랑 동우회’ 회원들. 통신상에서만 친분을 쌓아오다 회원 중 한 명인 ‘원일’의 초청으로 바닷가의 한 별장에 모였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깐. 이들에게 죽음을 예고하는 이메일이 한 통씩 도착하고 이때부터 얼굴을 알 수 없는 살인마로부터 한 명씩 난도질 당한 채 살해된다. 살아남은 이들은 추리를 통해서 살인마가 ‘샌드맨’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샌드맨은 통신에서의 악명높은 행각때문에 회원들에 의해 영구제명당하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샌드맨이 보낸 이메일을 단서로 ‘샌드맨은 우리들 중에 있다’는 심증을 굳힌 이들은 이때부터 ‘내부의 적’을 추적해 나간다. 사람을 ‘장작 패듯’ 도끼로 찍어내는 잔인한 ‘살인마’는 의외로 가장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인물이라는 것쯤은 영화를 좀 본 사람이면 짐작할 수 있을 듯. PC통신, 한 여름 외딴 바닷가, 젊은이들의 성적 일탈 등 철저히 신세대들의 감성코드에 맞췄다. 김인수 감독의 데뷔작으로 12일 개봉.
10여년전 흑백만화를 원작으로 처음 크랭크인 된 ‘크로우’의 완결판이다.이소룡의 아들 브랜든 리가 주연을 맡아 첫번째 작품을 촬영하다 사망한 영화로도 관심을 끌기도 했다. 프랑스 스타 뱅상 페레가 주연한 두번째 작품에 이어 에릭 마비우스가 주연으로 발탁된 세번째 완결편. 섬뜩한 폭력과 빠르게 바뀌는 현란한 화면, 고딕풍의 음산한 분위기로 영화는 내내 관객들이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풍겨나온다. SF액션영화답게 눈에 띄는 특수분장 효과도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 음울하면서도 환상적인 공간연출에는 최첨단 컴퓨터그래픽이 동원됐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애인 로렌(조디 린 오카페)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전기의자에서 사형당한 알렉스(에릭 마비우스)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한채 떠돌다 신비한 까마귀의 인도로 ‘크로우’로 부활, 범인들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인디영화계에서 연기력을 다진 마비우스의 고독하고도 강렬한 인상이 영화를 떠받치는 주된 기둥. 영국출신 제작자 배럿 낼러리가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았다. 8일 개봉.
“남국적 풍취의 대초원과 로맨스, 스펙타클한 화면, 이소룡식 액션,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춤, 스릴, 분노 등이 한데 어울어진 ‘울트라 초특급 엔터테인먼트’” 인도 영화 ‘춤추는 무뚜’는 영화가 최대의 오락이자 위안거리인 인도인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롱런히트를 기록한 오락영화다. 대저택의 하인인 무뚜(라지니 칸트)가 뒤늦게 백만장자의 아들로 밝혀지는, 인도판 ‘왕자와 거지’. 여기에다 유랑극단의 여배우 랑가(미나)와의 러브스토리가 극을 이끌어 간다. 여성댄스 그룹 ‘샤크라’를 연상케 하는 경쾌한 노래와 테크노 비트에 어우러진 춤이 시종일관 스크린에 넘쳐나 한편의 뮤지컬 영화를 연상케 한다. 약 1천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마차신도 볼만하다.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의 미덕은 오락적인 재미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 아버지와 아들, 1인2역을 소화해 낸 라지니 칸트는 인도영화의 흥행보증수표로 불리고 있는 대스타이며 화려한 춤솜씨를 자랑한 여주인공 미나는 뛰어난 리듬감을 지닌 인도의 아이돌 스타다. 오락영화의 마술사로 불릴 정도로 히트작을 많이 낸 K.S. 라비크마르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15일 개봉.
올들어 처음 선보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실적인 등장인물 묘사에다 태초의 자연풍광이 어우러져 애니메이션과는 거리가 먼 실사영화 같다. 기원전 6천500만년 백악기, 공룡 이구아노돈 알들이 약육강식의 처절한 생존경쟁으로 짓밟힌 가운데 알에서 극적으로 부화한 알라다는 여우 원숭이 가족들의 도움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거대한 유성이 떨어져 지구와 충돌하는 대재앙이 뒤따라 위기에 처한 알라다와 여우 원숭이떼는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 끝에 피난중이던 수백마리의 다이너소어 무리를 만나 새로운 낙원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동족들의 피난길에 동참한 알라다는 이구아노돈의 리더격인 크론의 폭압적인 전횡에 반기를 들고 집단적인 힘의 위력의 위대함을 무리들에게 일깨우고, 그 덕택에 자신들을 공격해온 카노타우로스 공룡떼를 물리치고 꿈에 그리던 파라다이스에 당도하게 된다. 실사와 크게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정교함과 시각효과는 컴퓨터그래픽과 디지털 기술에 힘 입은 것으로, 이 영화가 내세우는 볼거리로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구아노돈과 여우원숭이 등 등장동물들의 표정연기도 실감난다. 1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