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정체성 찾아 헤매는 '개와 늑대…'

전수일 감독의 영화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전작 '내 안에 우는 바람'(1997)과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1999)에 이은 '시간의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 김(안일강)은 은행의 빚 독촉과 짜증 나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고향 속초로 떠난다. 겉으로 보이는 여행의 목적은 6ㆍ25 전쟁 때 헤어진 숙부를 찾는 숙모를 돕는 것. 속초로 향하는 버스와 민박집에서 김은 영화(김선재)를 우연히 연거푸 만나게 되고 어린 시절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는 그녀의 여정에 무작정 합류한다. 김과 영화는 폐광촌을 함께 떠돌아다닌다. 이들은 폐광촌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낸 뒤 헤어지고 김은 부산으로 돌아가지만 곧 숙모의 부고를 듣고 다시 속초로 향한다. 그는 이번에는 속초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흔적을 찾아 나선다. 제목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해가 질 무렵 저 멀리 보이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불분명한 시점을 가리킨다. 이 영화는 결국 찾지 못할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동생을 찾아 떠돌지만 동생의 흔적은 오로지 영화의 기억 속에만 있을 뿐이다. 김은 옛 자취에 대한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오히려 술에 취해 낯선 사람을 붙잡고 "제가 어디에 살았는지 아세요?"라고 묻는다. 이들이 찾는 것은 동생과 옛 집일 뿐만 아니라 자아와 정체성이다. 실향민으로 가득한 속초와 허물어진 폐광촌을 떠도는 이들의 등에는 개인적인 상처뿐 아니라 분단의 아픔과 고향 잃은 설움까지 지어져 있다. 로드 무비답게 화면은 거리를 방황하지만 오래된 흑백 필름같이 고즈넉하기도 하다. 김과 영화가 헤매고 다니는 폐광촌과 길거리는 밤낮에 따라 황폐하기도, 아름답기도 하고 새하얀 눈밭은 적막한 동시에 눈부시다. 애초에 상업성에 등을 돌린 이 영화는 이해와 사유를 고스란히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여기에 영화의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다. 주인공들이 하염없이 헤매고 다니는 길에 시선을 맞추다 보면 관객은 멀미가 날 수도 있다. "지들이 알기나 해요, 예술이 뭔지?"란 영화 속 김의 대사가 왠지 귀에 박힌다. 이 영화는 2005년 완성돼 2년 만인 21일 개봉된다. 서울 씨네코아와 광주 광주극장, 부산 국도극장 세 곳에서만 볼 수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시민과 함께 거듭나는 광주인권영화제

올해로 12번째를 맞는 광주 인권영화제가 조직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해 광주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하는 영화제로 거듭난다. 광주인권운동센터는 "광주지역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영화제를 위해 16일 오후 광주 금남로 근린공원에서 '인권영화제 조직위원회 발기인대회'를 연다"고 13일 밝혔다. 광주인권운동센터가 주축이 돼 지난 1996년 시작된 광주인권영화제는 '인권'을 주제로 한 '대항영화'와 '독립영화'를 소개하고 지역의 대안영상물과 창작자들을 발굴하는 역할을 해왔다. 1회부터 4회까지는 서울 인권영화제의 프로그램을 받아 운영했으나 5회부터는 광주에서 독자적으로 기획, 운영해 왔다. 특히 광주지역에서 만든 작품들을 발굴, 소개하는 '광주의 시선' 부문은 '광주'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담아내 주목을 받았다. 이번 조직위 발기인대회에서는 길놀이, 노래공연, 영화음악 퀴즈, 마술공연에 이어 발기인 선언과 인권 포스터 전시, 역대 인권영화제 상영 작품 판매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광주지역 영화인과 영상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발기인선언은 광주인권영화제가 인권운동센터의 울타리를 벗어나 광주 시민과 함께하는 영화제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와 함께 낮은 곳을 향한 인권영화의 쉼없는 발걸음을 확인하게 된다. 12회 광주인권영화제는 올해 말 열리며 구체적인 행사일정과 장소는 영화제 조직위가 꾸려지면 발표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대종상 영화제 안성기·김아중 남녀주연상

8일 밤 1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내린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배우 김아중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김아중은 ‘미녀는 괴로워’(리얼라이즈필름·KM컬쳐,김용화 감독)로 제44회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과 국내 인기상을 거머쥐었다. ‘미녀는 괴로워’는 이날 여우주연상, 촬영상, 음악상 등 모두 3개 부문상을 거머쥐었다. 남우주연상은 영화 ‘라디오 스타’의 안성기에게 돌아갔다. 안성기는 지난해 청룡영화상에서 박중훈과 함께 ‘라디오 스타’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데 이어 또 다시 대종상에서도 남우주연상 수상의 기쁨을 맛봤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또 배우 김윤석이 영화 ‘타짜’, 심혜진이 ‘국경의 남쪽’으로 각각 남녀조연상에 빛났다. 김윤석은 ‘타짜’의 아귀 역으로 악역의 진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관객의 시선을 모았다. 심혜진은 지난 1997년 ‘초록물고기’로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10년 만에 대종상을 받았다. 신인남녀배우상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류덕환, ‘국경의 남쪽’의 조이진이 각각 차지했다. 감독상은 ‘괴물’의 봉준호 감독이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최고 흥행작 ‘괴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감독상과 올해 초 최고의 영화상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또 다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신인감독상의 영예는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권형진 감독이 안았다.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전도연은 특별상을, 원로배우 신영균은 공로상을 각각 받아 한국영화의 성가를 올린 공을 인정받았다. 네티즌의 투표를 통해 주는 인기상은 이범수, 김아중(이상 국내 부문)과 정지훈(비), 김태희(이상 해외 부문)가 각각 받았다.

<새영화> 문화적 충돌의 영화 '준벅'

필 모리슨 감독의 미국 영화 '준벅'은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 구성원 사이의 문화적 충돌을 다룬 작품이면서 한편으로는 국내 관객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는 영화다. 시카고에서 아트 딜러로 일하는 영국 출신 매들린(엠베스 데이비츠)은 남편 조지(알렉산드로 니볼라)와 함께 미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시골의 한 화가를 찾아 간다. 마침 근처에 조지의 가족이 살고 있어 매들린은 처음으로 시댁을 방문하기로 한다. 그러나 퉁명스럽고 강한 성격의 시어머니 페그(셀리아 웨스턴)와 조용한 시아버지 유진(스콧 윌슨), 신경질적인 시동생 조니(벤 매켄지)와의 만남은 시작부터 불안하다. 임신한 동서 애슐리(에이미 애덤스)만 매들린을 호들갑스럽게 반겨준다. 화가의 작품을 유치하기 위해 며칠 간 시댁에 머물게 된 매들린은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물에 기름을 탄 듯 시댁 식구들과 좀처럼 섞이지 못한다. 게다가 시댁 가족들도 그리 화목해 보이지는 않는다. 가족들 사이의 애증과 상처를 그린 이 영화는 소소한 해프닝을 통해 유머감각을 보여주면서도 시종일관 차분하고 냉정해 묘한 분위기를 낸다. 이 가족은 엄청난 상처를 안고 있지는 않다. 잘난 형에 대한 동생의 열등감, 도시적인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불만, 사랑이 식은 남편에 대한 어린 아내의 안타까움 등 여느 가정에서나 한번쯤 겪을 만한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 가족 관계의 위기는 구성원 개개인의 성격에서 나온다. 가족의 숨겨진 비밀이 아닌 캐릭터에 치중한 영화의 접근방식은 신선하다. 그러나 영화는 갈등을 꺼내놓기만 하고 끝내 원인을 찾거나 봉합하지는 않은 채 엔딩 크레디트를 올린다. 여기에 국가 간 문화적 차이도 추가된다. 결혼 6개월만에 우연한 기회로 시댁 식구들을 처음 만나게 된다거나 시동생이 형수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장면은 국내 관객에게는 낯설다. 다만 온 가족이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화해하는 할리우드식 가족영화에 눈살을 찌푸리는 관객이라면 억지로 잡아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듯한 결말에 찬성 한 표를 던질 수 있다. 부엌에서 나누는 대화가 온 집안에 울려퍼질 정도의 좁은 공간과 짜임새 있는 조명 활용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뇌리에 남는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들의 예술을 뜻하는 '아웃사이더 아트' 작품들도 영화 속에 등장해 좋은 볼거리를 준다. 지적인 매들린보다 천진난만한 애슐리 역의 애덤스가 관객들의 시선을 확 잡아끌 것.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약혼녀로 백치미를 뽐냈던 애덤스는 이 영화로 새로운 매력을 선보여 전미비평가협회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씨네큐브 한 곳에서 28일부터 만날 수 있다. 청소년 관람 불가. /연합뉴스

<새영화> 몸에 지배된 마음 '두번째 사랑'

김진아 감독의 장편 데뷔작 '두 번째 사랑'(제작 나우필름ㆍVox3)의 소재는 지극히 자극적이면서 상투적이다. 애정이 배제된 섹스를 목적으로 만났다가 수차례 몸을 섞다보니 어느덧 사랑에 빠지게 되더라는 스토리는 신파적일 뿐더러 그다지 새롭지도 않다. 하지만 한국 남자와 미국인 백인 여자와의 조합은 특별하고 이채롭다. 그 때문에 이 영화는 대부분의 구성요소가 여성 취향이지만 한국 남자관객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불법체류자 신분인 지하(하정우)는 미국에서 세탁소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며 한국에 있는 애인을 데려와야 한다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다. 지하는 정자를 팔아 돈을 벌기 위해 불임센터를 찾아갔다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정자 기증을 거부당한다. 하지만 며칠 후, 불임센터에서 우연히 만났던 매력적인 백인 여자가 그의 거처를 찾아와 한 번에 300달러씩 줄테니 임신이 될 때까지 성관계를 갖자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소피(베라 파미가)라는 이름의 이 백인 여자는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남편 앤드루(데이비드 맥기니스)와 살고 있지만 아기가 없어 부부관계에 위기를 겪고 있다. 불임센터를 찾아갔다가 남편을 닮은 한국 남자 지하를 우연히 만난 소피는 끌리듯이 지하의 뒤를 쫓아가 '은밀한 거래'를 제안하게 된 것. 처음 만난 남자, 그것도 인종적 편견이 엄연히 존재하는 미국 땅에서 처음 만난 동양계 남자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하고 그와 동시에 즉석에서 옷을 훌훌 벗어제끼는 소피의 행동이 과연 얼마나 개연성과 설득력이 있느냐 하는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어쨌거나 지하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소피와 제안을 받아들여 곧바로 '거래'에 들어가고 소피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육체의 접촉이 끝나자 조용히 약속한 비용을 지불한 뒤 지하의 방을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까지 그랬듯이 기계적인 섹스를 가지려던 소피는 배고프니 함께 밥부터 먹고 하자는 지하의 제안에 짜증스러워한다. 지하가 식당에서 밥을 먹는 동안 초조하게 앉아만 있던 소피는 그녀의 태도를 못마땅히 여긴 지하가 "뭐가 그렇게 급하냐, 너무 밝히는 것 아니냐, 돈을 주고 해보는 것은 내가 처음이냐"는 등의 말로 비난하자 그동안 억눌렀던 울분을 한꺼번에 토해내며 맞받아친다. 슬피 울고 있는 소피를 본 지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다정하게 소피의 등을 안아주고 이때부터 둘의 관계는 무미건조한 육체의 영역에서 감정의 영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얼마 후, 임신 소식을 알리면서 "이제 그만 만나자"고 한 뒤 머뭇머뭇 뒤돌아서는 소피에게 지하는 그저 축하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지만 그녀가 떠나고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허전함이 밀려오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게 된다. 결국 지하와 소피는 당초 약속한 거래가 끝났는데도 만남을 지속하게 되고 서로에게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관계로 발전한다. 영화는 극단적일 정도의 빈번한 클로즈업 기법을 사용해 두 남녀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부각시키고 좇아간다.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한 감정묘사가 돋보이는 이 같은 클로즈업은 주인공들의 위태로운 심리상태와 섬세한 감정변화를 밀도 있게 포착하지만 다소 남발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디파티드'에서 맷 데이먼의 연인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베라 파미가는 여러 차례 반복되는 베드신에서 아름다운 몸과 함께 감정변화로 흔들리는 유부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연기해 강렬한 여운을 던져주며, 하정우 역시 신선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연기로 상대 역인 파미가와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영화 '피아노'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마이클 니만의 내밀하고 리드미컬한 음악은 영화의 정서적 매력을 배가시킨다. 아무래도 여성 취향이 강한 영화라 여성 관객과 남성 관객의 반응이 많이 다를 듯. 한미 합작영화인 '두 번째 사랑'은 올해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기도 했으며 미국에서는 '네버 포에버(Never Forever)'란 제목으로 소개됐다. 2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