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영화라면 으레 비장한 복수로 마무리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 복수를 완수한 사람도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곤 하니까.
이렇게 반복돼온 ‘복수의 굴레’를 유쾌하게 변주한 영화가 있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근작 ‘하나’(19일 개봉)다. 2004년 도쿄 한복판에서 버려진 채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린 ‘아무도 모른다’로 칸 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히로카즈 감독은 이번에 170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마치 시트콤처럼 여러 개성있는 인물들이 어우러지는 코믹한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복수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이 신선하다.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죽이기 위해 에도의 한 마을로 온 무사 소자(오카다 준이치)는 아이들에게 글 가르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문약한 성품. 겨우 원수를 찾아내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해 단란한 가정까지 꾸린 상태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는 그를 죽여야 하지만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칼을 뽑을 수 없는 소자.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딜레마를 사뿐히 뛰어넘는다.
이 영화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12일 복수에 대해 이처럼 다른 관점을 제시한 이유를 설명했다. “복수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복수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 한국 영화 ‘올드보이’처럼 그 방향으로 계속 나가는 영화가 있다면 ‘하나’처럼 복수를 안하는 쪽을 택하는 영화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독특한 점은 특별히 성품이 고결한 사람이어서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그린다는 것. 감독은 “소자가 강한 사무라이였다면 영화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약한 사람으로 설정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제목 ‘하나’는 일본어로 꽃이라는 뜻이고 원제는 ‘꽃보다 더’이다. 마지막 장면에 “벚꽃이 미련없이 지는 것은 내년에 다시 필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의미에 대해 묻자 감독은 “일본 사람들은 벚꽃에서 ‘비장한 죽음’을 떠올린다”면서 “‘꽃보다 더’라는 말은 무사가 할복할 때 부르던 유명한 단가의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죽음보다 더’라는 의미를 역설적으로 제시한 것”이라 풀이했다.
배두나에 대한 관심을 표하면서 한국 영화계에 애정을 드러내온 그는 “기회만 닿는다면 배두나와 꼭 영화를 찍고 싶다”면서 “설경구와 송강호도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라고 말했다.
오는 7월 촬영에 들어갈 차기작에 대해 “가족에 관한 작은 이야기로 잔혹한 느낌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길 바란다고 하자 “제발 그렇게 되길…”이라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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