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도심의 언덕길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적당히 경사진 산자락에는 이국풍의 예배당과 세월을 품은 주택이 바다를 바라다보며 앉은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엽서같다. 한 때 안골말이라고 불리던 내동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골목어귀에서 파란 눈의 선교사와 구한말 조선의 관리들을 마주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민 갈 사람들은 줄을 서시오 조용한 동네 내동에 요즘 망치 소리가 요란하다. 내리교회는 바로 옆 비탈진 언덕 아래쪽에 제물포웨슬리관 복원과 아펜젤러센터 건립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장 가림판에 붙은 조감도에는 붉은 벽돌로 지은 예배당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제물포 웨슬리관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옛 내리교회 예배당이다. 각종 역사 관련 책자에서 내리교회를 얘기할 때 마다 등장하는 사진 덕분에 눈에 익숙한 예배당이다. 이전의 교회를 허물고 선교사의 도움 없이 1950년대 초 순수하게 내리교인의 헌금으로 봉헌한 성전이다. 그동안 설계도면이 없어 복원에 애를 먹었는데 미국 뉴저지연합감리교에 소장돼 있는 도면을 발견해 다시 짓게 됐다. 60여 년 전 비탈진 내리언덕의 풍광에 한몫했던 예배당이 다시 세워지는 것이다. 내리교회는 우리나라 이민사의 첫 장을 연 교회다. 그 현장이 교회 아래쪽에 있었다. 음식점 돈비어천가 옆 골목으로 들어오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그 부근에 동서개발회사라는 간판을 단 하와이 이민사업 대행사가 있었다. 회사 대표 미국인 데쉴러는 내리교회의 도움을 받아 1903년부터 약 7천500여 명의 조선인을 하와이로 이주시킨다. 이것이 우리나라 이민사의 첫 장이다. 동서개발회사는 폐업하고 해방 후 여러 세대가 들어와 사는 집으로 사용되다가 다시 그 자리에 인천예식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몇 갈래로 난 윗길은 동인천과 신포동을 잇는 지름길이었다. 이 길을 통하면 용동마루턱에 있던 미락제과 앞으로 나오면서 큰길로 연결되었다. 인천 토박이들은 동인천에서 신포동 갈 때 이 길을 이용했다. 이 골목에는 80년대 중반까지 토담벽을 한 초가집이 있을 만큼 변화가 더딘 동네였다. 뒷골목에서도 역사의 한 줄이 쓰여진다 좁은 골목으로 언덕으로 오르면 붉은 서양식 주택이 하나 나온다. 동네 사람들이 흔히 내동 벽돌집으로 부르는 유항렬 저택이다. 유항렬은 한국 최초의 도선사(導船士)이다. 그는 동경고등상선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선사 자격증을 땄다. 조선우선주식의 선박 선장으로 인천~칭따오~상하이간을 운항한 바다 사나이다. 해방 후 일본인 도선사들이 모두 떠났을 때 구호물자를 실은 선박들을 홀로 인천항으로 안내했다. 그가 살던 이 주택은 223㎡의 대지 위에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1933년에 지어졌다. 건축한 지 8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튼실하게 보인다. 벽돌아치와 굴뚝 등이 이국적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테라스. 이 테라스는 남쪽으로 나지 않고 서쪽으로 나있다. 서쪽에는 팔미도가 있다. 그는 이곳에 서서 망원경으로 팔미도 앞으로 들어오는 배들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지금은 아무리 각도를 잡아도 팔미도가 보이질 않을 듯 싶다. 안이 궁금해 초인종을 눌렀다. 답이 없다. 바로 옆의 구멍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저 집에 사람이 사나요?, 오늘은 없을 거예요. 주말에 가끔 서울사람들이 와요., 누가 오는 건가요., 그 후손들이 오는 것 같아요. 건축은 한번 세워지면 사람의 수명보다 긴 세월을 버티며 동네를 지킨다. 이제 테라스에 서서 그 누구도 망원경으로 팔미도를 바라보지 않지만 그 집은 언덕에 기댄 채 바다를 여전히 바라보고 있다. 언덕 밑으로 내려가면 경인식당이 나온다. 점심 먹을 겸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에서 할머니 한분이 또렷한 목소리로 맞는다. 63년 전통 경인식당의 실제 손맛의 주인공 임금옥 할머니다. 벽에 조리사면허증 액자가 붙어 있다. 1349호 누런 면허증에는 쪽진 머리를 하고 한복을 입은 할머니의 빛바랜 사진이 붙어있다. 1919년 3월 7일생. 31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난 6일 후에 출생했으니 올해로 만 92세다. 할머니는 28세부터 평양냉면을 만들어 팔았다. 지금은 아들 내외가 현재의 자리에서, 손자며느리는 서울에서 3대째 평양냉면을 만든다. 할머니가 오래 사신 게 고마운 사람들이 옛 맛을 잊지 못하고 경인식당을 여전히 찾는다. 역사는 책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골목 식당에서도 역사는 매일 쓰여지고 있다. 백범이 옥고를 치른 인천감리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언덕에 아파트를 세운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다. 내동은 한 때 근엄한 관공서 하나를 품고 있었다. 1883년 개항 직후 이곳에 통상업무를 담당하는 인천감리서(仁川監理暑)가 생겼다. 나중에 인천부(현 인천시청)의 역할에다 개항장재판소와 학교까지 들어섰다. 행정, 사법 기능에 교육기관이 들어선,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행정타운이다. 감리서에는 감옥이 있었다. 포승줄에 묶인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920년대 초까지는 죄인이 볼기 맞는 비명소리가 담장을 넘어 인근 민가에 들렸다. 백범 김구 선생도 이곳에서 3년 여 동안 옥고를 치르며 인천항 축항 공사를 하는 강제 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1895년 관립외국어학교가 인천감리서 안에서 개교했다. 개교 당시 학생수는 30명으로 수업 연한은 4년이었다. 첫 졸업식에는 9명, 2회 때는 단 한 명만 졸업했다. 이후 공립상업학교로 개편되고 1922년 현재의 송림초교 터로 이전하게 되는데 이 학교가 바로 인천고다. 1972년 2월에 법원이 석바위로 이전하면서 이듬해 대한준설공사가 들어섰다. 이 회사는 후에 한진그룹에 속하고 1990년 한진종합건설이 된다. 한진은 이 건물을 1996년경에 헐고 인천신포스카이타워라는 지하 2층 지상 12층의 아파트를 짓는다. 거대한 요새와 같은 이 아파트는 응봉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과 월미도를 휘돌아 오는 바닷바람을 갈라놓았다. 감리서 표지석 옆에는 풍만한 몸매의 3명의 나체 연인상이 세워져 있다. 불가마 사우나에서 세운 듯하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터에 볼썽 사나운 모습이다. 끌어내 볼기를 치고 싶다. 아파트 바로 옆에 언덕길이 있다. 이 길을 경계로 왼쪽은 외국인 조차지, 오른쪽은 조선인 부락이었다. 이 길은 성공회 내동교회로 이어진다. 1891년 한국 최초로 인성여고 부근에 세워진 성공회 내동교회는 1956년 현재의 위치인 성누가병원 부지에 교회를 다시 지었다. 내동교회는 625 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영국전몰장병을 추모하기위해 그 유가족들이 모금 해 건축한 일종의 전쟁기념 성당이다. 50년대 말까지 교회 안뜰에는 대공기관포가 있었다고 한다. 내동교회를 얘기하면서 의사 랜디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조선식 온돌이 있는 성누가병원의 문을 열고 뛰어난 한문 실력으로 낙선시(樂善施선행을 함으로써 기쁨을 준다)라는 병원이름을 직접 지었다.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보던 랜디스는 장티푸스에 걸려 32세 나이에 요절했다. 그는 한복 두루마기에 쌓여 북성동 외국인묘지에 안장되었다. 교회 뜰을 거닐다보면 갖가지 표지석과 기념비, 그리고 흉상들을 만날 수 있다. 이를 읽다보면 구한말 역사의 한 페이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글_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 사진_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우주선을 타고 별나라,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즐거운 상상, 누구라도 해봤을 것이다. TV로 만화영화 로보트태권V를 보면서 하얀 가운을 입고 뚝딱뚝딱 멋진 로보트와 우주선을 만들어내는 과학자를 꿈꾸지 않은 어린이가 있었을까? 하지만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과학자가 되기가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다거나 우주선을 쏘아올리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거나 하는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것들을 알게 되면서 꿈은 어느새 꿈으로 잊혀지고 말았다. 우주선을 타러 떠나기엔 당신의 엉덩이가 너무 무겁다면 자동차로 한시간 남짓이면 되는 강화도는 어떨까. 달나라에만 산다는 옥토끼가 사실은 강화도에도 살고 있다. 전시비행체험 등 풍성우주과학 꿈 키우는 달나라 구경옥토끼우주센터(인천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1026)에는 달나라에 온 것처럼 우주복을 입고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다. 키 작은 사람이 우주선을 타기에 더 유리하대요. 신이 나서 우주센터 이곳저곳을 열심히 돌아보고 있던 초등학교 6학년 김호준군(13)은 친구들보다 작은 키가 항상 불만이었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우주인을 꿈꿀 수 있는 자신이 더없이 자랑스럽다.옥토끼우주센터는 TV로만 로보트태권V같은 공상과학만화를 보면서 우주인을 꿈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달나라에 간 듯 우주를 보고 느끼면서 꿈을 현실로 키워주고 성장시키는 곳이다.옥토끼우주센터는 본관인 우주과학박물관, 야외테마공원 그리고 미술관 등 3가지 테마시설로 구성돼 있다.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직접 우주인이 되볼 수 있는 7가지 체험기구.사이버 인 스페이스는 우주비행사들의 다축훈련 장비중의 하나로 중력저항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 실제 훈련장비는 1인승 무동력으로 돼 있으나 일반인들도 쉽게 체험할 수 있게 특수변형해서 만들었다. 6인 엘리베이터는 적도에서 3만5천786㎞ 높이의 정지궤도에 거대한 인공위성을 띄우고 지표면에서 그 위성까지 케이블을 연결해 엘리베이터와 같은 방식으로 사람이나 물건을 우주로 운송하는 기구다.아직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1991년 강철보다 100배나 단단한 탄소나노튜브가 등장하면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코스모프호 로켓은 자라나는 꿈나무들이 우주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꿈의 로켓. 코스모프호를 타고 올라가면서 우주에 떠있는 국제우주정거장, 달착륙선, 코스모프캡슐 등을 감상할 수 있다.이밖에도 중력가속도체험, 2인 엘리베이터, 1인승 우주공간 이동장치 (MMU), 미래도시 꼬마기차 등이 어린이들을 기다리고 있다.우주의 탄생부터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은 재미있는 우주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이다.1층에 있는 달체험관에서는 실제크기의 달 착륙선과 월면차를 볼 수 있고 3층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인 이소연박사가 탑승해 화제가 된 소유즈호와 그녀가 열흘간 직접 생활하고 교신한 장소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실제 크기와 똑같이 만들어 놓아 미래 꿈나무들이 우주선 생활을 체험해볼 수 있다. 이밖에도 우주로 탐험을 떠나게 만들어주는 태양계여행, 화성탐사관, 우주복포토존 등이 마련돼 있으며 어린이들이 우주과학 원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물(에어)로켓쏘기, 항공기 모형만들기 등 각종 실습교육도 이뤄지고 있다.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줄 3D영화 미운공룡 딜로포와 숲이야기도 매 시간 상영된다.야외공원에도 아이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볼거리가 가득하다. 쥐라기 시대의 공룡들을 실제크기로 만날 수 있고, 로봇공원, 사계절 썰매장, 은하수유수풀 등 즐길거리가 다양해 주말 가족 단위 나들이 코스로도 인기 만점이다. 카페테리아와 연계된 미술관에서는 멋진 예술과 함께 여유로운 휴식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옥토끼우주센터는 입장료만 내면 모든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부담없이 아이들의 현장체험학습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함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실속형 우주체험형 테마파크다.글_김미경기자 kmk@kyeonggi.com [인터뷰] 안경회 대표 우주강국으로 가는 초석이 되었으면 처음에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만의 전시관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옥토끼 우주센터를 세계 3대 문화 브랜드로 키우는 게 꿈입니다종합 디자인설계 전문업체 옥토끼이미징의 안경회 대표(49)는 자신의 사비를 털어 강화도 6만6천㎡ 규모대지에 항공우주분야 전문전시관인 옥토끼우주센터를 세운 장본인이다.안 대표는 실제 우주선의 모습과 우주인의 생활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직접 카메라와 캠코더를 챙겨들고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와 나사(NASA)를 찾았고, 항공 우주 연구원과 공군 우주연구소 등 전문기관의 자문을 받기를 반복한 7년의 시간 끝에 옥토끼우주센터를 만들어냈다.안 대표는 예전처럼 로봇태권브이 같은 공상과학만화를 보면서 막연히 우주인의 꿈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주선을 타보고 무중력의 현상 등 우주과학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체험하면서 그 꿈을 키워야 한다며 이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이 글로벌 우주강국으로 발전해 나가는 지름길이고 옥토끼우주센터는 그런 디딤돌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안 대표는 옥토끼우주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사진이나 모형물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들이 우주복을 입어보고 우주기구를 타볼 수도 있는 살아 움직이는 체험관이라는 것이다.안 대표는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행동반경이나 전시물을 만져보고 싶어하는 특징들을 설계에 반영했다며 눈으로만 보는 인테리어가 아닌 손으로 만지고 온몸으로 느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안 대표는 어린이들이 우주에 흥미를 갖게 하고 호기심을 키워주는 체험교육이 자리잡는다면 머지않아 우리나라가 우주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다고 믿고 있다.그는 한반도를 둘러싼 전세계가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우주로 나아가는 보이지 않는 전쟁일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우주강국이 되려면 미래 꿈나무인 어린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항공우주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글_김미경기자 kmk@kyeonggi.com문의 홈페이지(oktokki.com)/☎032-937-6917~9
치열한 수사 전쟁을 그린 영화 특수본(감독 황병국)이 대한민국 형사 영화의 새로운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대한민국 특별수사본부란 의미의 특수본은 동료경찰이 살해된 후 구성된 특별수사본부 멤버들이 숨겨진 범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펼치는 숨막히는 액션 수사극. 엄태웅은 동물적 감각을 가진 지독한 강력계 형사 김성범 역을 맡아 냉철한 FBI 출신의 범죄심리학 박사 김호룡(주원)과 함께 특수본의 주축이 돼 숨막히는 액션 수사를 펼친다. 또 넘치는 카리스마로 특별수사본부를 지휘하는 경찰서장 황두수(정진영), 따뜻한 인간미를 갖춘 생계형 형사 박인무(성동일 분), 엘리트 여형사 정영순(이태임), 비리 형사 박경식(김정태) 등 다양한 형사 캐릭터들이 등장해 특별수사본부의 액션 수사에 참여한다.영화는 한 두 명의 형사 캐릭터가 아닌 특별수사본부 안의 다양한 형사 캐릭터가 등장해 인물들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휴머니즘과 진한 드라마를 녹여냈다. 형사와 범인의 쫓고 쫓기는 단순한 대결이 아닌 형사와 범인, 형사와 형사, 조직과 조직 간의 대결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인천 가정동 재개발 지역과 만수중앙시장서 촬영특히 최근 예능에서의 이미지를 벗고 카리스마 넘치는 엄액션으로 다시 태어난 엄태웅은 특수본에서 강도 높은 액션, 폐창고에서의 격렬한 몸싸움과 총격전 등을 대역 없이 완벽히 소화해 냈다. 뿐만 아니라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와이어 한 줄에 몸을 의지한 채 서 있거나,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고 벽을 타는 것을 포함한 모든 장면에서 부상 하나 없이 열연해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엄태웅과 쌍벽을 이루는 범죄심리학 박사로 나오는 주원. 2006년 뮤지컬 알타 보이즈로 데뷔한 뒤 그리스 싱글즈 등의 작품으로 뮤지컬계 스타로 떠오른 주원은 지난해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 구마준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최근 KBS2 주말드라마 오작교 형제들에서도 형사로 출연, 매력적인 모습을 선보이고 있는 주원은 치밀하고 냉철한 분석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파헤쳐가는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박에도 정진영, 성동일, 이태임, 김정태 등 이름만 들어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의 막강한 배우들이 출연해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쳐 명품조연 종합선물세트 영화로도 손색이 없다. 특수본의 촬영은 전국 각지에서 진행됐다. 세트촬영을 비롯해, 대전 중부경찰서, 서울 가리봉시장, 일산의 치안센터, 경북 예천의 구 담배재료창고 등. 영화에 어울리는 장소를 찾기 위해 스탭들이 밤낮으로 땀을 흘렸다. 지난 7월 18일, 45회차 촬영이 진행된 곳은 바로 인천 가정동에 있는 재개발 지역(루원시티 예정지). 이날 촬영에는 특수본 촬영을 통틀어 가장 많은 인원과 차량이 동원됐다. 주요 인물과 스탭 등 80여명과 100여명 이상의 보조출연이 동원됐으며 카메라 2대와 발전차, 조명탑차, 그립(장비)탑차 등 다량의 촬영장비와 주인공들의 직업 성격상 경찰과 관련된 많은 차량, 소품들이 동원됐다. 대규모 씬이었던 만큼, 주연배우들과 엑스트라로 동원된 인원들 모두가 합을 맞춰서 여러 번의 테이크를 반복해 가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특히 장마가 끝난 직후의 폭염으로 모두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후문.이외에도 교통사고 장면은 공항신도시에서, 기타 많은 추격장면을 화수동 자유시장, 만수동 만수시장, 송현동 중앙시장 등에서 상당부분 촬영됐다.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치밀한 서사와 실제 범죄 현장을 방불케 하는 액션씬을 촬영하기에 인천 지역이 제격이었다는 것이 영화제작팀의 이야기다.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사진_인천영상위원회
‘꽃미남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요즘 남자들, 미(美)에 대한 관심이 높다. 헤어스타일, 피부관리, 식스팩 만들기까지 자기 몸 관리를 위한 자기 시간 쪼개기는 벌써 오래 전 일이 됐다. 여성만의 전유물인 양 여겨졌던 패션아이템들도 남성만을 위한 것들로 다양해지면서 선택의 폭 역시 점점 넓어지고 있다. 그 중 패션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구두에서도 남자들의 구두는 다양화되고 있다. 남성구두의 형태별 종류도 옥스포드, 스니커즈, 슬립온, 로퍼, 플랫슈즈, 부츠, 키높이 등 때와 장소에 따라 격에 맞는 필수 아이템을 선택하여 신는 구두 패스트패션(fast-fashion)족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모양에 국한됐던 디자인도 다양해지고 있다. 남성들의 요구가 날로 높아지면서 기성 브랜드보다는 나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려는 패셔니스타들의 선택이 수제화로 쏠리고 있다. 특히, 구두를 단순한 신발 이상의 패션 아이템 또는 액세서리로 생각하는 트랜드가 만연하면서 착용하기 편한 신발은 기본이고, 남성패션과 매치 업(Match up)할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의 구두를 선택해 신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남성수제화는 이제 주문자의 취향과 발의 특징에 맞게 여러 모양으로 진화하고 있다. 70~80년대 수제화 골목을 중심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수제화의 인기가 다양해진 소비자의 요구로 인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구두 장인’이 직접 제작해 편안하고 가치 더해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수제화는 비싸다’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 선뜻 구입하기가 꺼려지는 게 사실. 수제화는 손으로 만들어서 고가이기 보다는 일반구두에 비해 고객의 발 특성과 요청에 맞도록 주문제작 형식을 띄고 있다. 그 만큼 편안하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특화돼 고객의 만족도가 높고 장점이 많기 때문에 중저가 구두에 비해 고가라고 생각할 뿐이지 사실 백화점 등 고급 구두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세련된 디자인과 편안한 착용감, 가죽의 재질 등을 고려해 볼 때, 결코 고가가 아니라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수제화를 신어본 남성이라면 그 편안함과 만족스러운 가격 때문에 계속 찾게 된다는 것. 수제화 인기에 힘입어 현재의 남성수제화 트랜드에 맞는 신선한 디자인과 1:1 맞춤 제작 상담 게시판을 회원제로 운영하는 업체도 있고 고객의 취향과 발의 특징 등을 DB화 하고 있어서 한 번 주문제작 했던 고객이라면 방문없이도 주문할 수 있는 남성수제화 쇼핑몰이 인기다. 발 볼, 볼등 넓이, 겉굽, 안굽 등 고객의 발에 최대한 맞추도록 작업 지시를 진행하는 그레안트 브랜드(www.greant.co.kr)를 비롯해 역대 대통령들의 구두를 만들어 온 국내 최고의 구두 장인이 섬세한 수공 기술로 엄선된 가죽과 재료를 이용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수제 구두를 완성해 제공하는 ‘알쿠노(Alcuno)’, 질 좋은 고급 가죽으로만 수제화를 만드는 ‘호구스(www.ho9s.com)등이 남성 수제화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전통 남자수제화 전문 쇼핑몰 가오슈즈(www.gaoo.co.kr) 이충현 대표는 “요즘 남성고객들은 발의 편안함은 기본이고, 디자인에 포인트를 줄 수 있는 톡톡튀는 디자인을 요청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취향이 다양해지고 있는 남성고객을 위해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시도와 실용성 등을 항상 고려해 제작하기 위해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남자수제화 전문 쇼핑몰 가오슈즈(www.gaoo.co.kr)
섬진강 시인 김용택(63)이 외도를 했다. 38년 동안 전북 임실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강, 산, 풀, 꽃 등 자연을 노래하던 시인이 예순이 넘어 사랑시를 썼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아이들 앞에 서 있는 것을 자기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로 여겨온 그의 이번 외도는 다소 의외다. 미발표작 59편을 포함해 총 64편의 사랑시가 담긴 이번 신작 속눈썹(마음산책 刊)에선 그간 꽁꽁 숨겨왔던 시인의 로맨티스트다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지난날의 사랑, 그리고 지금의 사랑을 기록한 저자의 시에는 사랑의 대상을 향한 잔잔하고 수더분한 고백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어쩌지 못하고 터뜨리는 과격하고 무모한 신음소리가 담 겨 있다. 사랑은 한 땀, 한 땀 마음에 수를 놓는 것이라고 말하고, 꽃보다 아내가 천 배 만 배 더 예쁘다고 이야기 하는 등 소박하고 솔직한 언어로 사랑에 대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 때론 응큼하고 섹시하게 시인은 이번 시집은 사랑의 길이 써준 시의 집이다. 바람 부는 들길을 지나 해질녘에 찾아든, 따뜻한 새집. 속눈썹이 떨렸던 날들 그 연애의 기록이라고 정의했다. 시골 깡촌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겪고, 보고, 느낀 사랑은 도대체 어떤 냄새일까? 무슨 모양일까? 게다가 어느 정도 뜨거웠을까? 궁금해진다. 몽롱해집니다/피곤하고 졸리운데/당신이 내 가슴에 한없이 파고드시니/대체 여기가 어디랍니까//(현기증), 지금은 괴로워도 날 잊지 말아요/서리 내린 가을날/물 넘친 징검다리를 건너던/내 빨간 맨발을/잊지 말아요//(나를 잊지 말아요 중 일부), 지금 내 곁을 스치는/작은 바람결에도 나는 쓰러집니다/당신인걸요//(지금 중 일부)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애걸하고 현기증까지 호소하는 이가 과연 김용택 맞나 싶다. 어디서 이런 감수성이 나오는 것일까. 잘달막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 까만 안경테 너머로 해맑게 웃는 시인의 시골형 외모에선 엿볼 수 없는 말랑말랑함이 시집 전체를 점령하고 있다. 시인에게 물었다. 직접 쓴거 맞냐고. 난 굉장히 섬세하고 미세한 사람이야. 자연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격정적이고 열정적이고 감정표출이 자유로운 사람이지. 나는 교양이 없는 사람이야.(하하)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감추지 말고 맘껏 표현해야 해. 그래서 내 시는 응큼하고 섹시해. 성적인 것도 굉장히 많아. 간절하고 절절하고 거침없이 표현하기도 하고. 나이가 든다고 해서 그런 감정이 죽는 건 아니야. 사랑없이 어떻게 인생을 살겠어.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야. 사랑은 점잖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응큼한거지. 안 그래? 사랑의 감정은 감춰선 안돼. 나이 예순이 넘어 사랑시 외도? 오호라 김용택은 시골촌놈이 아니었어. 그럼 조금 파격적인 시도 한편 읽어볼까. 우화등선(羽化登仙) 형, 나 지금 산벚꽂이 환장하고 미치게 피어나는 산 아래 서 있거든. 형 그런데, 저렇게 꽃 피는 산 아래 앉아 밥 먹자고 하면 밥 먹고, 놀자고 하면 놀고, 자자고 하면 자고, 핸드폰 꺼놓고 확 죽어버리자고 하면 같이 홀딱 벗고 죽어 버릴 년 어디 없을까. 친구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는 시 우화등선(羽化登仙)은 농도가 짙다. 또 이번 신작의 대표작이기도 한 속눈썹을 읽어보면 응큼한(?) 시인을 만날 수 있다. 산그늘 내려오고 창밖에 새가 울면 나는 파르르 속눈썹이 떨리고 두 눈에 그대가 가득 고여온답니다 시인은 솔직하게 고백했다. 속눈썹은 굉장히 성적이야. 여자하고 첫 키스를 할 때 살짝 눈을 떠보면 여자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 그런 경험을 오랫동안 기억을 하고 있었던 거지. 바로 그런 여자의 속눈썹, 내밀하고 엉큼하면서 노골적이고 도발적이고 또 굉장히 섹시한 거예요. 섬진강 시인 이번엔 신작 속눈썹으로 독자를 찾아오다 #시골교사와 흔해빠진 남편 사이 전북 임실군 덕치면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 때 초등교사 임용고사를 통해 선생님이 된 시인.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 외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는 실상 전문적으로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순창농림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인 그에게는 섬진강과 아이들이 문학적인 성장에 큰 보탬이 되었고 밑바탕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문학적 허영심이나 객기를 적어도 김용택에게선 찾아 볼 수 없다. 너무 쉽고, 너무 솔직하고, 너무 간절해서 문제지. 자신의 모교이자 근무지인 덕치초등학교의 아이들과 즐거운 입씨름을 하고 살아서 그에겐 거짓이 없다. 38년을 교단에 몸 담으면서 나도 여느 직장인들처럼 때려치고 싶은 때도 많았지. 하지만 되돌아 보면 아이들과 함께한 난 행복한 삶은 살았어. 아이들과 보낸 시간과 자연을 빼놓고 김용택을 논할 수 없지. 매일 아침 출근하던 학교를 안 간다고 생각해봐. 학생들을 못 보게 되니깐 내 활기찬 구석이 빠진 것 같애. 영원한 2학년 담임선생님답게 아이보다 더 아이 같은 동심을 가진 시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순환을 지켜보며 그 풍경에 감동하고 전율하고 삶의 이유를 찾아보면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왔다. 시골 깡촌에서 평생을 살면서 겪고, 보고, 느낀 사랑은 도대체 어떤 냄새일까? 그런 그가 지난 2008년 8월 퇴직 후 전국 팔도를 다니며 강연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요일 빼곤 매일 강연 다니느라 바뻐. 전국 안 다닌데 없이 다 다니고 있네.(하하)강연 다닐 땐 아내랑 늘 같이 다니는데 아내가 전국 팔도 고속도로를 다 꿰고 있지.(하하) 학교, 도서관, 지자체 등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지. 주로 내 이야기부터 시작해 문학, 특히 시이야기, 농사농촌자연에 대한 스토리를 편안하게 들려줘. 강연을 다닐 때 마다 아내와 동행한다고? 애처가인가, 공처가인가, 아니면 나쁜 남편인가.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나는 아내의 옳은 말을 다 듣는 사람이야. 아내를 안 시켜먹어. 여태껏 물줘, 국좀 더줘, 신문 갖다 줘 그래본 적이 없어.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해서 모든 일을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라. 나는 격이 없는 사람이고 나는 편하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야. 권위적인 것을 싫어하고 남을 시켜먹지 않아. 아주 편한 사람이지. 시인은 덧붙여 부부금슬을 살짝 자랑했다. 나도 흔해 빠진 남편 중 한명이야. 짜증내고 싸우고 다 그러고 사는거지 뭐. 싸우면 내가 늘 지지. 올해로 부부 26년차라 크게 싸울만한 일도 별로 없어. 남들 보단 부부간엔 잘 지내는 편이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 남편으로서는 90점 정도 줄 수 있지.(하하) 운전을 도맡아 해주는 아내는 시인이 서른여덟에 얻은 스물 네살의 아리따운 아가씨였다고 하니 참 능력자일세. #작은 학교 만들 계획자유롭게 살고 싶어 시인은 학교를 만들 계획이다. 그냥 작은학교란다. 나를 만나기 위해 시골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그동안은 학교생활하느라 사람들을 외면했지. 내가 살기 힘드니깐.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에 내년부터 월 2회 정도 나를 찾아오면 만날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콘셉으로 작은 학교를 운영하려고 해. 작은 학교에 오면 어른, 아이 예외없이 한 시간씩 글쓰기를 해야 해.(하하) 도시의 아이들과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와서 편하게 놀고 갔으면 좋겠어. 평소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던 그였기에 학교를 만든다고 해서 정치적 해석을 덧붙여봤다. 단숨에 난 그런 거 못해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무책임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난 자유롭게, 무책임하게 살고 싶어. 관에 대한 욕심 전혀 없어. 조직을 이끌고 책임질만한 인물이 못 돼. 평생 초등학교 1~2학년을 가르치고 살았잖아. 우리반 5~6명도 책임을 못져 벅찼는데 어른들을 관리하라고? 이 낡을대로 낡고, 썩을대로 썩은 지루하고 고루한 어른들을 관리하라면 난 못해. 돈을 많이 준다해도 난 못해. 나 보고 교장을 하라고 한 적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거절했지.(하하) 인터뷰 내내 시인의 아내를 시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차를 타고 전주로 내려가는 시인의 뒷모습이 예뻐보였다. 이 늦가을에.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완만하고 부드러운 붓의 곡선으로 동양의 아름다움을 전해 온 임무상 작가.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곡선공동체의 미와 금강산에 이어 곡선미의 찬가로, 작가는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곡선으로 조화를 이룬 다양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금강산 테마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20년 전 다녀온 백두산 천지, 년 전에 다녀 온 중국 황산의 영객송, 소나무 기행에서 스케치해온 명목 소나무 外, 화조 등 다양한 소재들이다. 역시 대표작은 미년 팔월 백두산.20년 전 스케치 해온 백두산 천지를 재구성해 작가만의 조형언어인 곡선화법을 접목시켜 탄생한 대작이다. 당시의 감동을 얼마만큼 표현했느냐는 의문이지만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에 나름대로 탐구하고 모색하며 작업에 충실했다. 특히 벼루돌(硯), 토분(土粉), 도자안료(陶瓷顔料) 등 천연혼합채색을 사용해 고유의 토속적인 빛깔과 질감을 발현했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같은 필법과 채색을 사용했지만 분명한 것은 백두산 작화를 통해 작가 그림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장선화 정구찬갤러리 관장임무상 경북 문경 출생 서라벌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 전공열한 번째의 개인전과 400여회 초대전, 그룹전 출품 다수의 국제전 및 아트페어 참가서울미협 이사,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부이사장 및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현재 한국미협,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
중소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기술이 바탕되어야규모는 작지만 뛰어난 기술력으로 국내시장은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당당히 최고를 달리는 경기도 기업이 있다.자동차 에어컨 부품인 패럴(자동차 에어컨 호스&파이프 조립용 부품)과 머플러(자동차 에어컨 냉매 이동시 발생되는 소음방지용 부품)를 생산하는 ㈜휘일이 그 주인공이다.화성시 양감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휘일은 국내 자동차 에어컨 시장에서 패럴과 머플러 모두 10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인도 등 5개국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의 15%를 차지하고 있다.㈜휘일 유태승 대표이사는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며 기술을 바탕으로한 성장과 새로운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 유망중소기업선정올해 300만 달러 수출계획지난 2000년 설립된 ㈜휘일은 2004년 자동차 에어컨 패럴 발명 특허를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2006년도에는 자동차에어컨용 머플러 발명 특허를 획득하면서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했다.2006년 당시 매출액이 연간 12억원, 수출은 전무했던 ㈜휘일은 2008년 경기도 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 지원을 받게 되면서 급속도로 발전을 하게 된다.특히 지난 2008년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가 실시한 미국 텍사스주립대(UT) 기업지원프로그램에 참가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해외시장에도 첫발을 내딛었으며, UT 프로그램 참여 3년만인 올해 4월에는 미국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비스티온(Visteon Corporation)과 연간 5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채결하기도 했다㈜휘일의 머플러와 패럴은 2008년 세계일류화 상품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휘일의 기술 개발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지난해에는 일체형 머플러를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으며, 올해는 용접이 필요없는 공조용 머플러 제작기술도 개발해 냈다. 이러한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바탕으로 2006년도에는 12억원에 머물던 매출액이 2009년에는 44억원, 2010년 81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120억원 이상의 매출이 전망되고 있다.수출액 또한 2006년까지 전무했던 ㈜휘일은 2008년도 16만달러, 2009년 60만달러, 지난해에는 17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300만달러 이상 수출이 계획돼 있는 등 최근 3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휘일의 성장 동력에 대해 유 대표는 기술개발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 도와 경기중소기업지원센터의 도움 등을 꼽았다.유 대표는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UT프로그램 덕분에 해외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고, 회사의 CI를 만드는데도 큰 도움을 줬다며 중소기업의 경우 국내시장에서 살아남기가 매우 힘든 상황인데, 지자체가 중소기업들의 해외진출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기자동차냉장고시장 도전장유 대표가 ㈜휘일을 경영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력이다. 기업이 잘 되려면 열심히 일하고 기술을 개발해 내실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유 대표는 좋은 색시를 얻고 싶으면 그만큼 멋진 신랑감이 되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해 자기 자신을 가꾸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고 말했다.이어 유 대표는 기업을 운영하는 CEO의 삶을 살아가면서 한가지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은 바로 조복이다며 평소에 복을 만드는 일을 해야 나에게 복이 온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있다고 말했다.실제 유 대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뜻하지 않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군 장교 출신인 유 대표는 전역 후 첫 직장이 폐업을 하게 돼 졸지에 실업자가 됐지만, 회사 근무 당시 거래처였던 스프링 공장을 사장에게 부탁해 무일푼으로 인수하게 돼 오늘날 ㈜휘일이 탄생하게 됐다.또 일체형 머플러 개발에 고민을 하고 있을 때에는 ㈜휘일에서 근무하다가 대기업으로 떠났던 직원이 인사를 하기 위해 ㈜휘일을 찾아왔다가 우연히 아이디어를 제공해줘 신기술을 개발해내기도 했다.유 대표는 사업의 성공요인에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운도 상당히 중요하다며평소에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이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데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성실하게 살고 내가 먼저 주위를 많이 도와주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이러한 유 대표의 신념은 ㈜휘일의 경영방침에도 고스란히 묻어나, 지난해에만 경기도와 지역사회 등에 6천만원 가량의 기부를 하는 등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도 실시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을 넘어 냉장고, 전기자동차 시장까지 ㈜휘일의 자동차 에어컨 부품인 패롤은 지난해 국내 시장 점유율 100%를 기록했으며 머플러는 70%를 기록했다. 또 해외시장의 경우 Visteon(미국), Hutchinson(프랑스), Conti-Tech(독일), Nichisin(일본), Subros(인도) 등 5개 업체에 공급하고 있으며 전 세계시장의 15% 가량이 ㈜휘일의 부품을 쓰고 있다.이처럼 자동차 에어컨 부품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휘일은 이제 냉장고 시장에 도전장을 내걸었다.유 대표는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을 계속 도전해야 한다며 자동차 에어컨 부품을 만들었던 기술을 냉장고 분야에도 접목시켜 냉장고 시장으로의 진출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냉장고 시장은 자동차 시장보다 세계적으로 몇 배 이상 큰 시장이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이미 독일, 미국 등 현지 기업들에게서 ㈜휘일의 냉장고 부품 기술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해외진출이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휘일은 본격적인 냉장고 시장 진출을 앞두고 냉장고 부품을 전문적으로 연구생산하기 위해 화성시 북양동 일대에 2천500평 규모의 공장을 신설 중이다. 특히 ㈜휘일은 자동차 부품 시장과 냉장고 부품 시장을 동시에 전략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냉장고 부품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별도의 법인 설립을 구상하고 있다.또한 ㈜휘일은 냉장고 분야 이외에도 최근 자동차 시장의 트랜드가 되고 있는 전기자동차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최근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자동차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휘일에도 전기자동차 관련 부품을 생산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어, 향후 5년안에 전기자동차 시장에서도 ㈜휘일이 커다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세계시장 진출에 대해 유 대표는 세계시장은 최소양분율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내가 99개를 잘해도 1개를 못하면 그 1개 만큼만 평가를 받게 된다며 제일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다고 강조했다.이어 세계시장이 원하는 기술은 간단하다. 더 싸게, 더 좋은 물건을 공급하는 것이 바로 기술이다며 중소기업의 경우 브랜드 파워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기술력을 통해서 믿음과 신뢰를 쌓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세계 1등을 향한 ㈜휘일의 꿈나무가 잘 자라는 것은 나뭇잎이 열심이 광합성을 하기 때문입니다유 대표는 기업이 성장하는 것에 대해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직원 한명 한명이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해주기 때문에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칭찬하는 리더쉽을 통해 직원들과 소통을 하고 싶다는 유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세계1등을 해보는 것이 최종 꿈이라고 밝혔다.유 대표는 작은 분야에서라도 ㈜휘일이 세계1등을 해보는 것이 최종 꿈이다라며 현재 자동차 패럴과 머플러 등은 세계 시장에서 4위 정도의 위치에 있지만, 향후 냉장고 분야와 전기자동차 관련 분야는 반드시 세계 1등을 해보이겠다고 밝혔다.그는차량용 에어컨에 쓰이는 패럴은 세계시장이 연간 7억개로 추정되는데 ㈜휘일에서 8천만개를 공급하고 있다며 에어컨 내부의 소음을 줄여주는 머플러는 세계적으로 4천만개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가 350만개를 공급하고 있으니 향후 10배이상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시장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이어 내년에는 ㈜휘일의 매출 비중을 국내보다 수출에 더 주력할 계획이다. 현재 우리 기술과 생산력으로도 세계시장에 뒤쳐지지 않으나 계속 발전시켜 향후 5년안에 세계1등이 ㈜휘일이 오를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경기도에서도 해외에 진출하려고 하는 많은 중소기업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주고 집중 육성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글_이호준기자 hojun@ekgib.com사진_하태황기자 hath@ekgib.com
11월 11일 오후 2시께 과천 시민회관 체육관. 체육관은 코트 구석구석으로 날카롭게 꽂히는 배구공을 받아내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아줌마 선수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20여명의 아줌마 선수들은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여느 프로선수 못지않은 진지한 표정으로 볼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때때로 공을 받아내지 못할 때면 아 하는 탄성 소리와 함께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구슬땀으로 범벅된 얼굴 한 가운데에서는 행복 가득한 미소가 번져나왔다. 강도 높은 리시브 연습이 마무리되자 코트 한복판에서 호각을 불며 선수들을 불러 모으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어딘가 모르게 친숙한 얼굴. 강한 카리스마로 아줌마 군단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강 스파이크로 우리나라 배구계를 이끌었던 국내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 전 국가대표 지경희 선수였다. 이처럼 지경희 감독의 열정적인 지도아래 배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이들은 바로 30여명의 아줌마 배구 동호인들로 구성된 과천시여성배구단. 지난 1980년대 후반, 과천시 관내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모임에서 출발한 과천시여성배구단은 매주 3차례에 걸친 강도높은 훈련을 꾸준하게 반복한 결과, 전국 여성체육대회와 생활체육 카네이션 어머니배구대회 등 각종 생활체육 배구대회 등을 연이어 석권하며 전국 최강팀으로 자리매김 했다. 올해에는 경기도민체육대회와 경기도생활체육대축전, 전국 여성체육대회, 카네이션어머니배구대회 등을 모두 휩쓸며,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그 중에서도 순수 동호인들로 구성된 생활체육동호회에 출전, 선수 출신들로 구성된 팀들을 모두 물리치고 일궈낸 경기도민체전 우승은 유례없는 성적이라 할만큼 대단한 업적으로 꼽힌다. 이처럼 과천시여성배구단이 전국 최강의 전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국가대표 출신인 지경희 감독과 문효숙 코치의 열정적인 지도 아래, 아줌마 선수들 모두가 나이국적 등과 상관없이 배구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실제, 과천시여성배구단에는 3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선수가 함께 어울려 땀을 흘리고 있으며, 일본 출신의 선수도 3명이나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과천시와 생활체육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도 과천시여성배구단이 발전을 거듭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지경희 감독은 격렬하고 힘든 운동이라는 편견 때문에 배구 동호회에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면서 큰 부담없이 즐길 수 있으면서도 다이어트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운동인 만큼 보다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글_박민수기자 kiryang@kyeonggi.com사진_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안데스 산맥 해발 3천399m 지점의 분지에, 잉카제국의 수도로 한때 100만 명이 거주했다는 도시 쿠스코(페루 남부의 고원도시)가 있다.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세계의 배꼽이라는 뜻. 쿠스코에 왔으니 근교의 잉카 유적지들을 둘러봐야지 싶어 지난 5월 9일 쿠스코 외곽 당일투어에 참가했다.삭사이와망(Sacsayhuaman)은 쿠스코의 동쪽을 지키는 요새였다고 한다. 돌, 돌, 돌들 뿐이다. 그나마 종이 한 장 끼울 틈 없다는 잉카의 정교한 석재 건축이 눈길을 끈다고나 할까. 장례의식 장소였다는 미로라는 뜻의 켄코(Qenqo)는 거대한 바위를 지그재그 모양으로 깎아 만든 돌 제단으로 매우 인상적이다. 큼직한 바위 안에 조그만 동굴이 만들어져 있다. 의자 모양의 석단은 잉카 황제가 앉았던 자리라고도 하고,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던 인신공양의 제단이라고도 한다. 문자를 남기지 못한 잉카문명이니 실제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누가 알겠는가. 쿠스코의 북쪽을 지키던 요새지 푸카푸카라(Pukapukara)는 요새라기보다는 축대모양으로만 남아 있었고 잉카의 수원(水源) 탐보마차이(Tambo Machay)는 성스러운 샘이라고 불리는데 일년 내내 건기나 우기 때나 항상 일정 양의 샘물이 흐른다고 한다. 잉카시대에는 왕족의 목욕탕이었을 곳으로 추측한다.지형으로 봐서 전혀 샘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라, 물이 어디에서 발원했는지 찾기 위해 근처의 강이나 호수에 색소를 풀어 시험하였지만 끝내 그 근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유적지마다 입구에는 장사치들이 민예품기년품 좌판을 벌이고 있고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모델로 돈벌이하는 아주머니들도 진을 치고 있다. 이틀 날에는 성스러운 계곡(Valle Sagrado de Los Incas)을 투어했다. 쿠스코를 중심으로 하여 반경 수십 km 주변에 있는 우루밤바강 계곡에 산재해 있는 잉카 유적지들을 둘러 보는 것이다. 제일 처음에 간 곳은 (마추픽추처럼)산 정상에 있는 피사크(Pisaq) 유적지. 맞은편 산 중턱에 숭숭 뚫어져 있는 구멍들은 잉카의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다음은 성스러운 계곡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유적지인 오얀따이땀보(Ollataytambo)다. 6개의 거석, 주변에는 이만한 크기의 바위가 없는데 이 돌들을 바퀴도 없이 어떻게 산 정상으로 옮겼는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고 한다. 6개의 거석들 사이를 작은 돌들로 이음 처리한 부분은 역시 잉카의 석재 건축에 대한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수많은 돌덩어리의 사진들. 이탈리아의 폼페이도 그렇고 터키의 에페수스도 이제는 사라진 역사의 유적지들이란 수많은 돌덩어리에 다름 아니다. 글사진_김영훈
송년사 임 병 호바다에 지는 석양이 세모에 가슴을 붉게 적신다스며드는 저녁 햇살 혈관 타고 뜨겁게 흐르는데세월 깊을수록 더욱 짙푸른 한 삶이여 사랑이여생각하면 용서받을 말 뉘우칠 일 왜 이리 많은가서러웠던 인연 그 이름도 오늘 모두 먼저 보내고강물처럼 찾아오는 풀빛 그리움에 젖어 살으려네구름으로 바람으로 오작교 건너는 은하수 물결로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날 있으리 안녕히 가시라그날을 바라보며 제야의 언덕에서 별빛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