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으로… 온 가슴으로… 사랑을 노래하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63)이 외도를 했다. 38년 동안 전북 임실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강, 산, 풀, 꽃 등 자연을 노래하던 시인이 예순이 넘어 ‘사랑시’를 썼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아이들 앞에 서 있는 것을 자기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로 여겨온 그의 이번 외도는 다소 의외다. 미발표작 59편을 포함해 총 64편의 사랑시가 담긴 이번 신작 ‘속눈썹’(마음산책 刊)에선 그간 꽁꽁 숨겨왔던 시인의 로맨티스트다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지난날의 사랑, 그리고 지금의 사랑을 기록한 저자의 시에는 사랑의 대상을 향한 잔잔하고 수더분한 고백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어쩌지 못하고 터뜨리는 과격하고 무모한 신음소리가 담 겨 있다. 사랑은 한 땀, 한 땀 마음에 수를 놓는 것이라고 말하고, 꽃보다 아내가 천 배 만 배 더 예쁘다고 이야기 하는 등 소박하고 솔직한 언어로 사랑에 대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 때론 응큼하고 섹시하게
시인은 “이번 시집은 사랑의 길이 써준 시의 집이다. 바람 부는 들길을 지나 해질녘에 찾아든, 따뜻한 새집. 속눈썹이 떨렸던 날들… 그 연애의 기록”이라고 정의했다.
시골 깡촌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겪고, 보고, 느낀 사랑은 도대체 어떤 냄새일까? 무슨 모양일까? 게다가 어느 정도 뜨거웠을까? 궁금해진다.
몽롱해집니다/피곤하고 졸리운데/당신이 내 가슴에 한없이 파고드시니/대체 여기가 어디랍니까//(‘현기증’), 지금은 괴로워도 날 잊지 말아요/서리 내린 가을날/물 넘친 징검다리를 건너던/내 빨간 맨발을/잊지 말아요//(‘나를 잊지 말아요’ 중 일부), 지금 내 곁을 스치는/작은 바람결에도 나는 쓰러집니다/당신인걸요//(‘지금’ 중 일부)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애걸하고 현기증까지 호소하는 이가 과연 김용택 맞나 싶다. 어디서 이런 감수성이 나오는 것일까.
잘달막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 까만 안경테 너머로 해맑게 웃는 시인의 시골형 외모에선 엿볼 수 없는 말랑말랑함이 시집 전체를 점령하고 있다.
시인에게 물었다. 직접 쓴거 맞냐고.
“난 굉장히 섬세하고 미세한 사람이야. 자연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격정적이고 열정적이고 감정표출이 자유로운 사람이지. 나는 교양이 없는 사람이야.(하하)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감추지 말고 맘껏 표현해야 해. 그래서 내 시는 응큼하고 섹시해. 성적인 것도 굉장히 많아. 간절하고 절절하고 거침없이 표현하기도 하고. 나이가 든다고 해서 그런 감정이 죽는 건 아니야. 사랑없이 어떻게 인생을 살겠어.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야. 사랑은 점잖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응큼한거지. 안 그래? 사랑의 감정은 감춰선 안돼.”
나이 예순이 넘어 ‘사랑시’ 외도?
오호라 김용택은 시골촌놈이 아니었어. 그럼 조금 파격적인 시도 한편 읽어볼까.
‘우화등선(羽化登仙)’
형, 나 지금 산벚꽂이 환장하고 미치게 피어나는 산 아래 서 있거든.
형 그런데, 저렇게 꽃 피는 산 아래 앉아 밥 먹자고 하면
밥 먹고, 놀자고 하면 놀고, 자자고 하면 자고,
핸드폰 꺼놓고 확 죽어버리자고 하면 같이 홀딱 벗고 죽어 버릴 년
어디 없을까.
친구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는 시 ‘우화등선(羽化登仙)’은 농도가 짙다. 또 이번 신작의 대표작이기도 한 ‘속눈썹’을 읽어보면 응큼한(?) 시인을 만날 수 있다.
산그늘 내려오고
창밖에 새가 울면
나는 파르르
속눈썹이 떨리고
두 눈에 그대가 가득 고여온답니다
시인은 솔직하게 고백했다.
“속눈썹은 굉장히 성적이야. 여자하고 첫 키스를 할 때 살짝 눈을 떠보면 여자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 그런 경험을 오랫동안 기억을 하고 있었던 거지. 바로 그런 여자의 속눈썹, 내밀하고 엉큼하면서 노골적이고 도발적이고 또 굉장히 섹시한 거예요.”
‘섬진강 시인’ 이번엔 신작 ‘속눈썹’으로 독자를 찾아오다
#시골교사와 흔해빠진 남편 사이
전북 임실군 덕치면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 때 초등교사 임용고사를 통해 선생님이 된 시인.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 외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는 실상 전문적으로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순창농림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인 그에게는 섬진강과 아이들이 문학적인 성장에 큰 보탬이 되었고 밑바탕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문학적 허영심이나 객기를 적어도 김용택에게선 찾아 볼 수 없다. 너무 쉽고, 너무 솔직하고, 너무 간절해서 문제지. 자신의 모교이자 근무지인 덕치초등학교의 아이들과 즐거운 입씨름을 하고 살아서 그에겐 거짓이 없다. 섬진강>
“38년을 교단에 몸 담으면서 나도 여느 직장인들처럼 때려치고 싶은 때도 많았지. 하지만 되돌아 보면 아이들과 함께한 난 행복한 삶은 살았어. 아이들과 보낸 시간과 자연을 빼놓고 김용택을 논할 수 없지. 매일 아침 출근하던 학교를 안 간다고 생각해봐. 학생들을 못 보게 되니깐 내 활기찬 구석이 빠진 것 같애.”
‘영원한 2학년 담임선생님’답게 아이보다 더 아이 같은 동심을 가진 시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순환을 지켜보며 그 풍경에 감동하고 전율하고 삶의 이유를 찾아보면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왔다.
시골 깡촌에서 평생을 살면서 겪고, 보고, 느낀
사랑은 도대체 어떤 냄새일까?
그런 그가 지난 2008년 8월 퇴직 후 전국 팔도를 다니며 강연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요일 빼곤 매일 강연 다니느라 바뻐. 전국 안 다닌데 없이 다 다니고 있네.(하하)강연 다닐 땐 아내랑 늘 같이 다니는데 아내가 전국 팔도 고속도로를 다 꿰고 있지.(하하) 학교, 도서관, 지자체 등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지. 주로 내 이야기부터 시작해 문학, 특히 시이야기, 농사·농촌·자연에 대한 스토리를 편안하게 들려줘.”
강연을 다닐 때 마다 아내와 동행한다고? 애처가인가, 공처가인가, 아니면 나쁜 남편인가.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나는 아내의 옳은 말을 다 듣는 사람이야. 아내를 안 시켜먹어. 여태껏 ‘물줘’, ‘국좀 더줘’, ‘신문 갖다 줘’ 그래본 적이 없어.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해서 모든 일을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라. 나는 격이 없는 사람이고 나는 편하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야. 권위적인 것을 싫어하고 남을 시켜먹지 않아. 아주 편한 사람이지.”
시인은 덧붙여 부부금슬을 살짝 자랑했다.
“나도 흔해 빠진 남편 중 한명이야. 짜증내고 싸우고 다 그러고 사는거지 뭐. 싸우면 내가 늘 지지. 올해로 부부 26년차라 크게 싸울만한 일도 별로 없어. 남들 보단 부부간엔 잘 지내는 편이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 남편으로서는 90점 정도 줄 수 있지.(하하)“
운전을 도맡아 해주는 아내는 시인이 서른여덟에 얻은 스물 네살의 아리따운 아가씨였다고 하니 참 능력자일세.
#‘작은 학교’ 만들 계획…“자유롭게 살고 싶어”
시인은 학교를 만들 계획이다. 그냥 ‘작은학교’란다.
“나를 만나기 위해 시골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그동안은 학교생활하느라 사람들을 외면했지. 내가 살기 힘드니깐.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에 내년부터 월 2회 정도 나를 찾아오면 만날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콘셉으로 작은 학교를 운영하려고 해. 작은 학교에 오면 어른, 아이 예외없이 한 시간씩 글쓰기를 해야 해.(하하) 도시의 아이들과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와서 편하게 놀고 갔으면 좋겠어.”
평소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던 그였기에 학교를 만든다고 해서 정치적 해석을 덧붙여봤다. 단숨에 “난 그런 거 못해”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무책임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난 자유롭게, 무책임하게 살고 싶어. 관에 대한 욕심 전혀 없어. 조직을 이끌고 책임질만한 인물이 못 돼. 평생 초등학교 1~2학년을 가르치고 살았잖아. 우리반 5~6명도 책임을 못져 벅찼는데 어른들을 관리하라고? 이 낡을대로 낡고, 썩을대로 썩은 지루하고 고루한 어른들을 관리하라면 난 못해. 돈을 많이 준다해도 난 못해. 나 보고 교장을 하라고 한 적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거절했지.(하하)”
인터뷰 내내 시인의 아내를 시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차를 타고 전주로 내려가는 시인의 뒷모습이 예뻐보였다. 이 늦가을에.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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