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내려간 기온…최대한 따뜻하게 입는 게 트렌드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입기 편하면서도 따뜻한, 그러면서 스타일리시한 패션까지 연출할 수 있는 겨울 잇 아이템 패딩이 인기다. 더 이상 투박하고, 뚱뚱해 보이는 패딩점퍼가 아니다. 패딩에 디자인을 입히고, 신발까지 패딩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올 겨울 다양해진 패딩으로 보온성과 스타일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자. ▲패딩점퍼기능성과 디자인 두마리 토끼를 잡는다보온성이 뛰어난 오리털과 거위털, 누빈솜이 들어간 패딩은 올 겨울, 두껍고 투박한 이미지를 벗고 새롭게 변신했다. 초경량 소재를 사용해 부피는 최대한 줄이고 몸매선은 살린 슬림 롱 패딩도 멋쟁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리바이스 슬림 다운점퍼(Levis Slim Down Jumper)는 슬림핏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가벼운 길이의 패딩 재킷으로 움직임이 편할 뿐 아니라 어떤 옷에든 쉽게 어울려 실용성이 높다. 재킷 목 부분이 높게 디자인 되어 목도리 없이도 따뜻함을 유지하고 멋을 낼 수 있는 것이 특징. 겨울 밤에 꼭 어울리는 제트 블랙(jet black)과 세련된 네이비 컬러인 드레스 블루(dress blue), 와인 빛이 가미된 고딕 그래이프(gothic grape)까지 총 3가지 컬러로 선보여 골라 입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성용 리바이스 에센셜 파카(Levis Essential Parka)는 힙을 덮는 길이의 밀리터리 패딩 재킷이다. 진한 카키 컬러와 편안한 실루엣은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하며, 어깨에 달린 후드에는 부드러운 인조 털이 디자인 되어 고급스럽고 따뜻한 느낌을 더한다. ▲패딩부츠편안한 착화감에 보온성까지최근 출시된 방한용 패딩부츠는 스타일까지 살리면서 보온성도 뛰어나 출퇴근과 스키장까지 모두 활용 가능한 것이 특징. 패딩부츠 하나만으로 충분히 체감온도를 높일 수 있다. 패딩 부츠는 최초에는 스키장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기능성이 강조된 아이템이었으나 지난 시즌부터 스타일리쉬한 디자인을 보강하고 실생활을 위한 활용도를 높이면서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올 겨울 시즌에는 여기에 다채로운 색상과 발열 기능 등 기능성까지 더욱 업그레이드돼 겨울철 패션과 방한을 모두 책임지는 킬러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프씨의 이지연 대리는 패딩 부츠는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색상과 세련된 디자인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기능까지 갖춰 다양한 스타일링이 가능해 추운 겨울 데일리 부츠로 손색이 없다며 편안한 착화감과 보온성이 탁월한 기능성 슈즈와 함께 패셔너블한 겨울 룩을 연출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올 겨울, 기능성과 디자인으로 무장한 패딩패션으로 추위와 당당하게 맞서보면 어떨까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사진_리바이스이에프씨

[허용선의 세계속으로] 찬란한 문화유산 간직 동유럽의 ‘보물창고’

폴란드 국민은 오랜 세월 동안 외침의 수난 속에서 신음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 전통을 지켜 온 생명력이 강한 국민으로 알려져 있다. 폴란드가 낳은 4대 위인을 들라면 쇼팽, 퀴리부인, 교황 바오로 2세 그리고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을 지지하던 당시의 종교, 과학계에 일대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지동설을 제창하여 소위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일대 전환을 이룩했던 인물이다. #들판이 많은 나라수도 바르샤바의 매력 폴란드라는 이름은 폴란이라는 슬라브 계통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폴란은 들판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국명으로까지 된 것은 그 만큼 폴란드에 들판이 많아서다. 나라 크기는 한반도의 1.3배로 동유럽 국가 중 가장 크다. 구소련의 붕괴 후 1989년부터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이고 경제개발을 통한 국가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바르샤바는 폴란드의 수도로 이 나라 정치경제 문화관광교통의 중심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시의 80% 이상이 파괴되는 쓰라린 과거를 안고 있지만, 지금은 중세 시대 유적과 유물이 잘 복원돼 옛 모습 그대로를 감상할 수 있다. 198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구시가지는 바르샤바의 젖줄인 비스와 강의 왼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잠코비 광장은 구시가지의 중심으로 왕궁을 비롯해 카페, 기념품점, 교회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광장 중앙에는 1664년 세워진 높이 22m의 지그문트 3세 기념비가 서 있다. 인어 동상은 양손에 칼과 방패를 든 모습을 한 여신상이다. 바르샤바 저항의 역사를 나타내는 이 동상은 바르샤바의 상징물이다. 왕궁은 1526년부터 폴란드 왕족들이 살았던 곳이다. 폴란드왕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포니아토프스키는 왕궁을 아름답게 꾸몄다. 그는 매주 왕국의 학자와 예술가들에게 만찬을 베풀었다. 1918년 독립국가가 된 이후 왕궁은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왕궁 광장에서 오른쪽에 있는 역사박물관 옆길로 걸어가면 16세기의 요새인 붉은 벽돌로 된 바르바칸 성벽을 만난다. 1548년에 시가지를 보호하기 위해 1.2km 길이로 세워졌던 성벽이다. 이곳을 지나면 신시가 광장이 나온다. 바르샤바 반란박물관은 나치 독일에 대항한 바르샤바 시민들의 봉기를 기념해 세워졌다. 내부에는 봉기군의 전투 모습과 나치 독일 군대의 진압 모습 등이 전시돼 있다. 샤스키 공원의 승리 광장 쪽에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은 전사자 무덤이 있는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1939년 나치 기동군단의 기습적인 침략에 맞서 산화한, 폴란드 기병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묘에는 돌비석처럼 총검을 쥔 두 명의 보초가 화로에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지키고 있다. 게토 기념광장은 신시가지 서쪽에 자리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국내에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유태인들이 살고 있었다. 1939년, 폴란드를 침입한 나치는 1940년 11월 바르샤바의 북부 지역에 큰 담을 쌓고 그곳에 유태인을 분리시켜 집단 거주하는 게토를 만들었다. 10만 명 정도가 정원인 이 지역에 50만 명이 넘는 유태인을 집단 이주시키는 바람에 식량 부족과 각종 전염병이 게토 지역을 휩쓸었다. 나치는 나중에 우크라이나 지역에 있는 새로운 유태인 거주 지역으로 이들을 이주시킨다는 거짓 속임수를 써서 인근의 트레블링카와 오시비엥침으로 이곳 유태인들을 실어 나른 뒤 가스실에서 학살을 자행했던 것이다. #피아노 시인 음악가 쇼팽 폴란드인들에게 춤과 음악은 생활과 완전히 밀착돼 있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작곡가 쇼팽을 배출한 이 나라는, 쇼팽이 폴란드를 위해 작곡했다는 마주르카라는 음악을 들으며 곧잘 눈물에 젖는다. 그들은 마주르카가 가장 폴란드적인 음악으로, 어느 작곡가도 이처럼 완벽하게 폴란드를 표현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1830년 쇼팽은 프랑스 연주 여행 중 러시아의 침공으로 바르샤바가 함락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결국 망명의 길을 택해야만 했다. 바르샤바 대학과 마주보고 있는 길 건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메고 있는 모습의 조각상이 있는 성십자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말 이른바 63일간의 바르샤바 반란 때 가장 큰 격전이 벌어진 장소로 유명하다. 또한 쇼팽이 젊어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던 곳으로 교회의 기둥에 쇼팽의 심장이 안치되어 있어 유명해졌다. 쇼팽박물관은 전쟁 때 파괴되었던 옛 성을 복원해 쇼팽 관련 자료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11개의 테마로 이뤄진 방에선 다채로운 쇼팽의 삶을 말해준다. 1~2층에서는 리스트로부터 선물 받은 피아노와 부모로부터 받은 금시계, 자필 편지와 악보 등이 전시돼 있다. 시대 순으로 전시돼 있어 쇼팽의 어린 시절부터 파리에서 죽을 때까지 그의 삶을 느낄 수 있다. 3층은 콘서트홀로 사용되고 있다. #국립 쇼팽 음악대학교 바르샤바에 있는 쇼팽 음악대학교는 한국 유학생들이 많은 곳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에도 음악을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야그나 단코프스카(Jagna Dankowska) 부총장에 따르면 현재 800여명의 학생 중에 한국 학생이 40명이다. 또 2명의 한국사람이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구에 있는 계명대학교는 폴란드 국립쇼팽음악대와 1993년 교류를 시작해 학석사 연계학위제를 개설하고 계명-쇼팽음악원을 설치,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교류 덕분에 국립쇼팽음악대 교수들이 계명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명대 학생들은 쇼팽음악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글사진_여행 칼럼니스트 허용선 허용선은 중앙대와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년 전국대학미전 문교부장관상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보도 관련 공로 체육부장관상, 2004년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그 동안 9회에 걸친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금까지 세계 90개국, 1천여 곳 이상을 취재했다. 사진작가가 겸 여행칼럼니스트,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출간한 책만도 20권에 이른다. 인터뷰 - 크쉬스토프 마이카 주한 폴란드 대사 아내 조피아와 함께 한국에 와서 주한 폴란드 대사의 직무를 수행한지 어느 덧 7개월이 지난 크쉬스토프 마이카(Krzysztof Ignacy Maika Ph. D) 주한 폴란드 대사는 부임 첫 날부터 한국에서의 생활은 우리 집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는 서울을 좋아하게 되었고,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성북동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의 첫인상이 궁금하다 한국 사람들은 아주 친절하고, 항상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기 나라와 문화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아쉽게도 이러한 가치는 세계 여러 곳에서 이미 유행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지만 한국인의 이런 문화를 사랑하는 자세에 감탄했다. 지금껏 근사하게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시민들의 행렬, 많은 지역 축제, 한복 패션 쇼, 한국 김치 시식을 통한 홍보 등을 다른 곳에선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서울은 이렇게 활기 찬 도시여서 우리 부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심지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외교적인 활동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정학적이나 역사적으로나 한국과 폴란드는 비슷한 점이 많다는데, 정말 그런가. 양 민족은 영광의 순간뿐만 아니라 민족의 비극으로도 찬란했던 과거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폴란드와 한국은 정치적인 도구로 침략을 이용한 이웃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 예를 들어, 폴란드는 1795년에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한 마지막 3차 분할의 결과로, 123년 동안 세계 지도에서 사라졌고, 1918년이 되어서야 독립을 되찾게 되었다. 폴란드는 자기 문화와 전통과 언어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오랜 억압의 기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현재 폴란드와 한국은 좋은 경제성과를 자랑스러워한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2009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과 폴란드와 호주만이 플러스 성장을 했다. 또한 한국인과 폴란드인은 직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국가 순위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폴란드를 찾는 한국 여행자 숫자가 점차 늘고 있다. 주로 많이 가는 곳은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아유슈비치 수용소, 바르샤바, 크라코프 등이다. 이외에도 가볼만한 곳은 어딘가 폴란드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13곳이 있다. 이 외에 독특한 호박 세공으로 만든 장신구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아름다운 그다인스크, 크라쿠프처럼 아름다운 구시가가 있는 브로츠와프, 특히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 속에서 약간의 고독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딱 좋은 비에쉬차디 산맥, 산 사람들의 전통이 그대로 묻어나는 자코파네가 있는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타트라 산맥, 그리고 들소가 자연과 어울리며 자유롭게 살고 있는 비아워비에자 삼림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공원 등을 들 수 있다. -폴란드 음식 중에는 한국 음식과 비슷한 것이 있다는데,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김치찌개와 비슷한 비고스가 있다. 한국인들에게 폴란드 수프가 입에 맞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숲에서 따와 말린 그물버섯 수프를 추천하고 싶다. 또한 산악지방에서 먹는 돼지고기 요리, 즉 치즈와 버섯 등을 섞고 고기를 갈아 만들고 소금에 절인 양배추와 함께 먹는 요리를 비롯한 고기 요리들이 추천대상이다.

[문학공장⑤] 함민복 시인

꽃봇대 함민복 전등 밝히는 전깃줄은 땅속으로 묻고 저 전봇대와 전깃줄에 나팔꽃, 메꽃, 등꽃, 박꽃......올렸으면 꽃향기, 꽃빛, 나비 날갯짓, 벌 소리 집집으로 이어지며 피어나는 꽃봇대, 꽃줄을 만들었으면 강화도 시인 함민복(50)은 동네에 상이 났을 때 상여를 메고 싶었다. 그런데 강화도 사람들은 결혼한 사람만 상여를 멜 수 있다고 했다. 당연 총각신분의 시인은 자격미달인 셈. 시인은 마흔 넘어서도 상여를 메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반평생을 혼자 살아온 함 시인네는 제비도 집을 짓지 않는 척박한 곳이었다. 시인은 제비를 속여보려고 TV를 크게 틀어 여자와 아이들 목소리도 내고 빨래를 널어보기도 했다. 제비가 여성 호르몬 냄새를 맡는지 몰라 여자 후배에게 집에 한번 놀러 왔다 가라고 부탁까지 했다고. 적적할 때 제비소리라도 들어보려던 마음과 다른 생명체와 한 지붕 밑에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나름 노총각 시절 설움이 컸다. 한 시인은 여름에 가도 추워보였다. 궁상의 극치였다고도 했다. 그런 그가 열달 전인 지난 해 3월 장가를 갔다. 사는 곳은 강화도, 집도 없고 돈은 벌어서 뭐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만큼 경제적 감각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노총각 시인을 구제해준 이는 그의 제자로 1962년생 동갑내기 박영숙씨다. 그런데 결혼 후 시인이 달라졌다. 꽁꽁 숨어 지내던 그가 좋아하는 술도 끊고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강연도 다니고 책을 2권이나 냈다. 생활하는데 있어 일단 미루고 보자를 입에 달고 살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4개의 눈과 2개의 심장 반가운 마음에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강화도 초지인삼센터 길상이네로 찾아갔다. 12월 초순의 날씨는 차가웠다. 언 손을 비비면 시인을 찾았지만 없었다. 아내 박영숙씨만이 분주하게 인삼을 정리하고 있었다. 시인은 강화문학관에 강연이 있어 갔단다. 시인을 기다리는 동안 근황을 물었다. 둘다 결혼 생각이 없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뭐 신혼재미 이런 거 몰라요. 나이가 들어서 신혼은 큰 의미가 없죠. 참, 함 시인은 가게 운영에 전혀 도움이 안 돼요.(하하) 인삼 가게 오픈한지 1년이 넘었는데 정말이지 딱 한번 카드를 긁었어요. 영업력은 꽝, 손님들한테 보고 가세요라고 말도 못해요. 그럼 그렇지. 함 시인이 수줍음 많기로 유명한 사람 아닌가. 말주변도 없고. 시인이 도착했다. 일찍 지는 해를 붙잡고 사진부터 찍었다. 초면에 서먹서먹했던지 시인은 강화도 이야기를 끊이없이 들려줬다. 1996년 강화도에 와서 빈농가에 살면서 시를 써온 시인의 강화도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다. 해를 달님에게 양보하자 강화도는 칡흙같이 어두워졌다. 시인은 단골 시래기밥집으로 가자고 했다. 야들야들한 시래기밥에 청국장을 슥슥 비벼 먹으면서 시인은 무장해제됐다. 밥 같이 먹고 그런거죠. 뭐 특별한 게 있겠습니까. 참 김치 찢을 때 상대방 젖가락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거. 4개의 눈과 2개의 심장으로 사는 게 결혼이죠. 동창들이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낼 때 장가를 간 시인은 신혼이라고 특별한 게 없다 했다. 그러면서도 쑥스러운지 또 강화도 이야기가 이어진다. 강화 동막에서 13년 동안 살면서 만난 동네 친구, 형님 이야기부터 시작해 강화도 새우젓이 우리나라 70%를 차지한다느니, 어부생활 10년 하면서 있었던 배멀미 이야기까지. 무척 수다스러웠다. 강화도 이야기는 쉼이 없고 실타래를 풀듯 줄줄줄 터져 나온다. 10년 넘게 작품을 통해 시인을 만나온터라 말많은 시인이 어딘가 모르게 낯설다. 하지만 마냥 편하고 좋다. 뻔한 인터뷰 질문이 오히려 시인의 입을 방해하는 거 아닌가 싶어 그냥 시인의 이야기만 경청했다. 10남매 중 막내인 아내와 같이 살다 구순의 장모님을 생각해 결혼식을 올렸고 아내가 결혼하고 살이 2kg 빠졌다, 간이 안 좋아 술을 끊고 지낸다, 인삼가게는 수익이 신통치 않다는 등 일상속 자신의 이야기를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쏟아낸다. #시에게 미안하고 시인에게 미안한 일 시인의 시에는 가난의 모습이 깃들어 있고 가난의 숨결이 숨쉬고 있다고 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보내고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했으나 결국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고 서울예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는 벅찼다. 구절양장의 인생길을 걷고 있는 시인의 시는 무거웠다. 이번 신작은 변신이다. 지금까지 어둡다였다면 시집 꽃봇대(대상 刊)에서의 함민복은 밝다다. 달, 눈물, 물고기, 까치, 밥. 시인의 작품에 자주 등장했던 시어들과 거리가 먼 꽃이 등장한다. 줄곧 가난하기만 했던 시인의 작품에 화사한 꽃이 나왔다. 사랑의 힘일까, 아니면 쉰살 넘어 작품 세계의 변화일까. 이유가 뭐든 신선하고 좋다.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를 살펴보면 전깃줄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집과 건물은 없다며 문명의 상징이기도 한 전깃줄 대신, 집들과 건물들이 우리들 마음속에서만이라고 꽃줄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의 제목을 꽃봇대로 정해봤다고 밝혔다. 동료 시인들의 시를 읽고 감상을 덧붙인 절하고 싶다(사문난적)는 시인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까지 일간지에 시로 여는 아침란에 연재했던 고려 문인 이규보와 조선 시인 이달과 권필, 근현대의 백석과 박목월, 고은 등은 물론 송찬호, 이성복, 나희덕, 신용목, 최승호, 강형철 등 현대시인들까지 77명의 시 77편을 자신의 감상평과 함께 담은 책이다. 함 시인은 시를 소개하면서 시를 망쳐 놓는 것 아닌가, 걱정이 인터넷처럼 만발했다. 실제적으로 시인의 의도적 의미를 왜곡하고 시의 의미를 축소 해석해 시의 날개에 돌을 얹어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글도 있다. 시에게 미안하고 시인에게 미안한 일이다. 시는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능력이 있음과 이해심 넓은 시인들의 마음을 몰래 대출해 여기 죄를 묶는다고 고백했다. 두 권 모두 착하디 착한 함민복이 낸 거다. 쭉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착해진다. 아니 착하게 살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서울 창신동, 상계동, 일산을 거쳐 강화도에서 살고 있는 시인. 처음 강화도에 왔을 때 시인은 친구도 친척도 없었다. 동막리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했고 말 거는 이도 없었다. 강화도 외톨이 시인을 소설가 김훈은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그는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고 있다. 그는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은자(隱子)이고, 숨어서 내다보는 견자(見子)이다고 말했다. 2012년 시인은 외롭지 않다. 반평생만에 부부의 연을 맺어 살 부비고 사는 아내도 있고 길상이(강아지)도 있고 어엿한 인삼가게 영업상무라는 사회적 신분도 갖고 있다. 이제 그 누구도 시인을 더 이상 가난하다고 말 할 수 없다. 글_강화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 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디지털(Digital) 감성을 통해 본 도시 야경

도시는 현대인에게 더불어 숨 쉬는 생활공간이자 일상적인 환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도시 야경에 대한 감정도 그렇다. 도시 야경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다. 산업화와 조명의 발달로 화려해진 도시 야경은 그 시각적 이미지 또한 다양하게 변화하고 발전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컴퓨터를 활용한 디지털이라는 문명이다. 신현예 작품은 이 관점에서 도시 야경을 현대문명의 시각에 맞춰 디지털 감성으로 재해석해 표현하고자 했다.도시의 야경속 빛은 어두운 밤 하늘의 별처럼 희망을 상징하는 메시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컴퓨터의 등장과 발달로 디지털 감성은 회화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고 현대 회화에 있어서도 새로운 창작의 수단과 방법이 됐다. 디지털 이미지는 신속하고도 빠르게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는 장점마저 가지고 있다. 디지털 감성을 바탕으로 도시 야경의 시각적공간적 이미지들을 평면속에서 다양하게 표현해야 할 회화적 조형성은 작가가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할 창작 과제일 것이다. <프로필> 신현예 Shin, Hyeon-Ye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개인전 4회 (서울, 대구)2011 심상전 정기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2010 대구아트페어 (EXCO, 대구)2009 한국 우수대학원생 초대전(서울아트센터, 서울)외 단체전 다수. 한국 미술협회 회원

“소외지역 구석구석, 신나는 공연으로 행복을 전달합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 코미디언, 탤런트, 국악인 등 연예인으로 구성된 한국연예예술단(단장 전병찬)은 자신들의 끼와 재능을 발판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화제의 키워드로 떠오른 이른바 재능기부다.지난 2005년 공연봉사를 펼치고자 11명으로 출발했던 예술단은 어느덧 연예인 40명, 후원인 20명으로 회원만 60명을 넘어섰다.분기별로 한 차례씩 가요, 코미디, 국악 공연을 준비해 연간 4번의 공연을 하려는 계획이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2010년에는 8번이나 무대에 섰다. 지난해 11월 말 영월교도소 공연에 이어 12월 15일 화성노인전문요양원 자장면, 떡, 과일 전달과 함께 공연까지 8번의 공연을 치렀다.인원이 넉넉해진 탓에 한 차례당 6명에서 10명씩, 스케줄이 맞는 데로 참여하면서 이같이 수차례의 무료공연을 하는 게 가능하다.예술단이 향하는 곳은 노인시설, 장애인시설, 병원 등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아픈 것을 치료하는 데 웃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믿음에서다. 최근에는 교도소까지 저변을 넓혔다. 자신들의 공연을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는 다짐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을 펼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장애인 시설에서는 공연을 관람하던 지적 장애인이 불쑥 무대로 올라와 가수를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가 하면, 가지 말라고 서럽게 울기도 한다고. 덕분에 공연을 마치고도 한 시간이나 떠나지 못한 일도 있다. 교도소는 규율이 엄하고, 분위기가 딱딱해 신나게 공연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흥이 나서 손을 잡고 같이 춤을 추고 싶어도 통제된 턱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설보다도 좋아하며 환호성을 외치는 탓에 다음 달에도 교도소 위문 공연을 떠날 계획이다. 예술단은 일반인을 위한 공연도 펼친다.공연을 접하기 어려운 시설 위주의 공연을 하다 보니 일반 시민을 위한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느낀 탓에 수원실버가요제를 만들게 됐다. 지난 2007년 만들면서, 65세 이상의 노인 16명이 출전해 노래실력을 뽐내는 노래자랑 대회다. 공연 사이사이마다 예술단이 축하공연을 펼치면서 흥을 더하다 보니,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예선전 경쟁률도 수대일에 이르고 있다.공연과 더불어 식료품과 상품도 전달한다. 노인복지관과 장애인 시설에는 쌀과 과일 등을 전달하고, 가요제 대상에게는 부상으로 김치냉장고를 제공하고 있다.연예인 회원들이 매달 2만원씩 부담하는 회비로는 공연경비를 충당하는 데도 어림없어, 좋은 뜻을 펼치려는 후원인들이 매회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부담한다. 경기가 점차 어려워지는 탓에 후원금을 모으기가 어려워지는 게 요즘 예술단이 하는 고민이다.전병찬 단장은 웃음이 어느 곳보다 필요하지만, 접하기 어려운 곳이 있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뒀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앞으로도 예술단이 선사하는 흥겨운 공연을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글_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탱고의 고향 ·무지개빛 마을, 라 보카

남녀 간 호흡이 중요해 하나의 심장과 네 개의 다리로 표현되는 탱고의 고장,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았다. 라보카는 특히 탱고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동네지만 활기와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 컬러풀한 집들과 탱고를 공연하며 사람들을 끄는 식당들, 거리의 화가들로 생기가 넘친다. 탱고는 정열 그 자체다. 화려한 스텝, 격렬한 몸짓, 매혹적인 눈빛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탱고의 시작을 알고 나면 그리 흥겹게만은 보이지 않는다. 탱고는 라보카 항구에서 몸을 팔던 여자들이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추던 춤에서 유래됐다.탱고의 애잔한 역사가 살아 숨쉬는 라보카 항구에는 사라질 줄 알면서도 모든 것을 바치는 슬픈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용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 하다.부레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약간 남쪽에 위치한 라보카는 18세기 후반부터 스페인과 유럽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처음 아르헨티나 땅에 정착하게 되는 항구였다. 그리고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를 배출해낸 보카 주니어스의 연고가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라보카의 메인 스트리트는 까미니또(Caminito). 노천식당들마다 탱고 공연 무대를 갖추고 있고, 노상에서 20페소(6천원)를 내면 같이 탱고 포즈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수많은 공예가와 미술가들의 시장, 탱고쑈, 전형적인 이탈리안 술집들이 재미있는 볼거리다. 알록달록 벽면과 선명한 그림의 조합, 그림이 따로 없다. 끊임없는 컬러들의 유혹들. 어디 하나 허투루, 대충 무채색으로 슥슥 밀어버린 곳이 없이 꼼꼼하게, 컬러풀하게 마을을 메워나간 그들의 예술혼이 온 마을을 점령하고 있다. 라보카는 이곳 출신 화가 베니토 킨케라 마르틴이 디자인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색채와 유머러스한 감각을 보여주는 마을 곳곳은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명소를 들라면 단연 콜론극장(Teatro Colon)이다. 오페라 입장료도 아니고 그저 극장 내부를 돌아보는데 물경 60페소 (1만8천원)의 지출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밀라노의 라스칼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좌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만큼 결코 아깝지 않은 액수다.글사진_여행가 김영훈

[포토에세이] 신년사

‘끼와 열정이 어우러진 한국 문화 콘텐츠 산실’

만화창작애니메이션영상연출 등 4개 학과 운영전공관련 산학협력도 탄탄 체험위주 특성화 교육日지바테쓰야상 대상 등 졸업생 발군의 실력 발휘 만화창작애니메이션영상연출 등 4개 학과 운영전공관련 산학협력도 탄탄 체험위주 특성화 교육日지바테쓰야상 대상 등 졸업생 발군의 실력 발휘 끼와 열정이 어우러진 한국 문화 콘텐츠 산실, 글로벌 인재의 산실, 뉴미디어시대를 이끌 만화영상의 메카. 한국애니메이션(ANIMATION)고등학교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하남시 창우동 523-4 위치한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교장 최창수이하 애니고교)는 더불어 바르게, 날마다 새롭게, 언제나 너르게라는 교훈 아래 21C 한국 영상교육의 미래 인재를 육성해 나가고 있다. 개교 12년을 맞은 애니고교는 지난 2000년 3월 2일 경기도교육청 지정, 자율시범학교로 개교한 뒤 2008년까지 시범학교로 운영돼 왔다. 만화창작과애니메이션과영상연출과컴퓨터게임제작과 등 4개 학과로 나눠져 있으며 해마다 각 과별로 25명 내외의 끼있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전교생은 교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특성화 고교라는 여건을 고려해 예술적 소양과 전문성 배양, 국제적 의사소통 능력 구비, 체험학습중시탄력적 교육과정 운영, 애니메이션영재교육원(만화애니메이션) 운영, 전공관련 산학협력업체 교내 유치, 기능경기대회 참가를 위한 팀 구성 및 운영, 창업동아리 육성 등 특색있는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지난 2003년에는 교육인적자원부 주관, 특성화사업 자체 평가 우수학교로 선정되는가 하면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선정,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지정됐다. 또한, 2009년 전문교과 인정 도서개발 교육감 표창과 학교급식우수학교 교육감 표창을 잇달아 받으며 주목받았다.지난해 졸업생(9기)의 경우, 영상연출과 졸업정원 25명(재수생 24명은 별도)이 모두 국내외 유명 대학에 진학했는가 하면 만화창작과(26명)는 16명, 애니메이션과(정원 25명)는 18명, 컴퓨터게임제작과 24명중 18명(재수 6명 별도)이 진학했다.더욱이 이 학교에서 배출한 인재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발산하는 끼(?)는 조목조목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만화창작과 1기 졸업생 김정현씨는 지난 2006년 12월 1일 일본 신인 만화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인 제50회 지바테쓰야상(ちばてつや賞) 대상을 거머줬다. 당시 김씨는 교토 세이카(精華)대학교 4학년이었다. 지바테쓰야상은 일본 3대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가 원로 만화가 지바테쓰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30년 전 제정한 상으로 신인 만화가를 위한 최고의 등용문이다.또한 4기 졸업생 박설아(만화창작과)씨는 문화컨텐츠 진흥원이 선정한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인기리에 방영된 KBS드라마 추노에서 만화제작에 참여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있다.지난 2007년에는 당시 3학년 재학중이던 신보경양(18)이 학교 과제물로 만든 1분짜리 애니메이션 UCC(사용자제작 콘텐트) 춤추자 는 일주일만에 동영상 사이트 키위닷컴(www.keywui.com)에서 17만명이 감상하는 등 벼락스타로 떠올랐다. 지난 2007년 11월 초순, 이 학교 3학년 권예슬양(만화창작과)은 한 발 앞 선 특성화된 실력으로 시험도 치르지 않고 일본의 동경공과원에서 합격 통지를 받는 숨은 실력을 발휘, 당시 언론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2년제 대학인 동경공과원은 커리큘럼이 탄탄하고 시설이 훌륭해 방송 및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유명한 대학이다. 최창수 교장은 우리 학교는 다원화시대가 요구하는 색깔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질서가 우선하는 기본경영, 창의성이 가득하고 특색있는 칼라경영,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우선하는 신뢰경영을 펼치고 있다며 학생들을 명실공히 21세기 문화교육 중심이자 왕성하게 뛰는 대한민국의 심장 엔진 동력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_하남강영호기자 yhkang@kyeonggi.com

“인삼으로 겨울 건강 챙기세요”

겨울철 불청객 감기. 추운 날씨 탓에 운동이 귀찮아지고, 자연스레 몸의 움직임도 줄어들어 감기에 걸리기 쉬운 계절인만큼 면역력을 높여줄 수 있는 식품섭취를 통해 몸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겨울철 감기 예방에 효자식품은 바로 인삼. 사포닌이라는 중요 생리활성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소화기와 호흡기 등 주요 장기의 기능을 높여 원기를 보강함으로써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 허약한 체질을 개선시키고 피로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등 인체의 방어력과 저항력을 동시에 보강해주는 작용을 활발히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인삼으로 겨울철 가정에서 인삼차나 인삼 쉐이크, 또는 인삼을 달여 꾸준히 먹는다면 가족건강도 지키고 감기도 예방할 수 있다. 겨울에는 뭐니뭐니해도 따뜻한 인삼차가 제격이다. 수삼을 깨끗이 씻어 작게 절편으로 만든 후 햇볕에 말려 완전히 건조되면 냉장고에 보관한다. 인삼차는 물 약 2ℓ에 인삼 8~10g 정도를 넣고 끓여서 적당량을 마시면 된다. 여기에 잣과 건대추 약간을 띄우면 보다 부드러운 향을 즐길 수 있다. 인삼을 달여 먹을 경우에는 수삼 2뿌리, 대추 3개, 생강 1/2쪽, 물을 약탕기에 넣은 후 물이 3분의 2로 줄 때까지 2시간 정도 달여주면 된다. 달인 물은 상하기 쉬우므로 반드시 냉장실에 보관하고 가급적 2~3일 내에 먹도록 한다. 인삼의 쓴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인삼 쉐이크를 만들어 보자. 인삼의 머리 부분인 뇌두를 제거한 수삼 2뿌리에 우유 약 1ℓ와 적당량의 꿀을 믹서기에 넣고 혼합한 후 약 3분간 갈아주면 된다. 아이들 건강간식으로는 인삼튀김이 제격이다. 밀가루에 계란 1개와 소금 약간을 넣고 물에 풀어 튀김옷을 먼저 만든다. 깨끗하게 씻은 수삼을 약 1cm 정도의 굵기로 길게 잘라 튀김옷에 버무린 다음,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튀긴다. 여기에 샐러드드레싱이나 꿀을 곁들여 내면 쓴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인삼 튀김이 완성된다. 이밖에도 잘게 썬 버섯과 인삼을 넣고 양념간장을 곁들여 비벼먹는 인삼버섯영양밥, 불고기로 요리할 때 인삼을 달인 육수를 사용해 얇고 길게 썬 인삼을 같이 버무리면 고기의 비린내도 없애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인삼불고기가 완성된다. 이밖에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인삼과일쉐이크도 겨울철 아이들 음료도 제격이다. 인삼을 넣기만하면 인삼닭죽부터 인삼전복죽, 인삼호박죽, 흰삼흰쌀생선죽 등 다양한 맛으로 즐길 수 있다. 또 인삼으로 쨈을 만들어 빵과 먹으면 든든한 아침 식사로 딱이다.농촌진흥청 인삼과 차선우 과장은 겨울철 가정에서 인삼을 꾸준히 섭취하면 신체 면역력을 향상시켜 감기 등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며 천하의 명약이라도 과잉 섭취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적당량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사진_농촌진흥청

‘서른살에 연봉 1억 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연봉 1억원, 이 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 중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꿈의 영역과도 같은 말이다.보험업계에 몸담은 지 2년 남짓만에 연봉 1억원을 이뤄내고 세계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 : 백만불원탁회의) 회원이 된 정재웅 미래에셋생명 SFC(30경기도 구리시)는 그래서 더욱 남달라보인다.처음부터 쉬운 길은 아니었을 거다. 그와 함께 일을 시작했던 동료 25명 가운데 지금껏 살아남은 사람이 고작 2명이라는 것만 봐도 보험재무설계라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비결을 물어봤더니 허허허 너털웃음에 어쩌다보니란다.한번 흘겨봐주고 진지하게 다시 물으니 장난기 가득했던 웃음이 사라지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인정하고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을 갖고 부딪혔어야 할 사회의 편견과 벽을 허물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낸 자신감이 느껴졌다. ■긍정은 나의 힘목표를 정해 놓고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는 것처럼 이뤄나가는 걸 좋아해요. 하나씩 성공할 때마다 내 자신에게 지금까지 잘 해왔구나, 정말 노력 많이 했구나 칭찬해줄 수 있으니까요동그란 얼굴, 서글서글 눈매, 웃음기 가득한 입가, 재웅씨의 첫인상은 세상을 참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이었다.울산 출신인 그가 고향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홀홀단신 서울로 떠나와 보험업계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도 긍정의 힘이 작용해서다.울산에서 나름 알아주는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보험일 시작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의아하게 보기도 했지만 전 자신있었어요.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었거든요그가 보험계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3년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병간호를 하면서 만난 젊은 부부였다. 어머니와 같은 병실이던 그 젊은 부인도 암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았는데 보험도 준비 안돼 있는데다 모아둔 돈도 없어 항암치료 한번을 맘편히 받지 못하고 허무하게 세상을 뜬 것이다.재웅씨는 인생관이 바뀌니 직업도 바꾸게 됐다고 했다. 손 쓸 도리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머니도 결국 돌아가시고 언제 어디서 나한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걸 배우게 된 거죠.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사람이 되자 마음 먹었어요 그렇게 보험계 일을 선택한 뒤 SFC(Special Financial Consultant)라는 명함을 들고 만난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갈 때 그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을까.재웅씨는 처음부터 무리하게 높은 곳을 바라보지 말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마음 먹었어요라면서 일주일에 3건씩 계약을 맺는 걸 목표로 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음주에 더 잘하면 돼하면서 나를 다독였더니 그게 또 되더라고요라며 어깨를 으쓱한다.그는 지난해 5월 25주 연속 1주일에 계약 3건을 달성하고 계약부문 동메달을 따냈으며 2011년 1월 전국 미래에셋생명 SFC 6천여명 가운데 91위에 이름을 올리는 실적을 거뒀다.긍정이라는 무기를 갖고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 그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을 누비는 유쾌한 보험쟁이서울 서초동 한솔지점에 근무하는 재웅씨는 서울, 인천, 경기, 부산, 울산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그의 애마인 젠트라X는 2년 동안 무려 12만㎞를 달렸다. 지구를 세바퀴나 돌고온 셈이다. 재웅씨의 철칙은 가족은 나를 기다려주지만 고객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백 KM를 달려가 고객을 만나고 어렵게 맺은 계약이니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고객 한사람 한사람이 다 소중한 친구고 인연이다.재웅씨는 보험이나 재무상담을 하다보면 어려운 주머니 사정이나 건강이야기, 가족이야기까지 나누게 된다며 내가 계약하고 싶은 욕심에 무리하게 밀어부치지 않고 고객이 부담갖지 않고 꾸준하게 재무설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한번 맺은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재웅씨는 3개월에 한번씩 고객들에게 소식지를 돌린다.어디 주식이 오르고 환율이 어쩌고 하는 어려운 이야기는 쏙 빼고 자신이 3개월 동안 열심히 발로 뛰고 계약을 따내고 새로운 고객들과 인연을 맺은 일, 고객들에게 생긴 좋은 일, 고객 생일 챙기기, 보험금 지급사례 등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가끔은 실적이 좋지 않다고 투정부리기도 하고 아내를 닮은 예쁜 공주님이 태어난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그래도 전문 재무설계사답게 각종 금융정보와 경제흐름을 파악해 펀드에 가입하는 적시, 돈을 빼야 할 때, 채권형 투자로 갈아타야 할 때 코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재웅씨는 보험에 인생을 걸어보고자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시작한 일이지만 내 밥벌이 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고객의 꿈이 이뤄져야 내 꿈도 이뤄진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며 열심히 뛰는 보험쟁이, 그거면 충분하다고 예의 그 너털웃음을 짓는다. ■말단 SFC에서 명예로운 MDRT회원으로 재웅씨는 올해 자신이 목표로 했던 첫 관문을 통과했다.전세계 보험인들에게 명예의 전당으로 인식되고 있는 MDRT 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어낸 것이다.MDRT는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갖춘 생명보험 전문가로 구성된 협회로 백만불 원탁회의라는 이름답게 기본조건으로 연수익 1억원 이상을 올려야 하고 계약유지 등 보험설계사로서 우수인증을 받아야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재웅씨는 1년 동안 통장에 찍힌 월급을 다 더해보니 1억원이 조금 넘더라고요라며 이제 첫 단추를 잘 꿰었으니 MDRT 윗단계인 COT(3억원), TOT(5억원)까지 노려봐야죠라고 자신한다.참 쉬운 일처럼 말하는 그가 조금 얄미워보이기는 해도 목표를 이루려고 밤잠 설쳐가며 운전하고, 더 전문적인 SFC가 되려고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흘린 땀방울을 알기에 연봉 1억원이라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의 진솔함과 유쾌함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글_김미경기자 kmk@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