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소통과 단절의 미장센 '바벨'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바벨'을 보고 나서다. 브래드 피트가 진지한 연기파 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한 이 영화는 그러나 피트를 위한 영화는 아니다. 그의 연기가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특별히 돋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청각장애 일본 여고생 지에코 역을 연기한 일본의 신예 기쿠치 린코 같은 무명 배우는 놀라울 정도의 빼어난 연기력을 보여준다. 모로코나 멕시코, 일본의 다른 신인 배우들의 연기도 여느 기성 배우 못지않게 훌륭하다. 오히려 영화의 간판 격인 브래드 피트나 케이트 블란쳇의 열연이 무색할 정도다. 이냐리투 감독의 '진실 3부작' 중 하나인 '바벨'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인간들간의 의사 소통과 단절을 다룬 영화다. 모로코와 미국, 멕시코, 일본 등 4개국을 오가며 사건이 전개되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언어도 아랍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6개나 된다. 이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도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복잡하고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멕시코 출신인 이냐리투 감독의 스페인어를 영어로 통역해 다시 배우들에게 아랍어로 전해야 했던 모로코 촬영현장이나 영어를 일어로 통역해 이를 다시 수화로 배우들에게 전달해야 했던 일본 촬영현장은 바벨탑을 쌓다가 혼돈에 빠졌던 인간의 모습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 이냐리투 감독은 이러한 과정에 대해 "내가 도전했던 그 어떤 일보다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또한 가장 만족한 일이었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영화는 모로코 사막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미국인 관광객 부부(브래트 피트ㆍ케이트 블란쳇)가 어린아이들의 철없는 장난으로 야기된 총격사건으로 부상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피습사건이 벌어진 모로코와 이들 부부가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온 미국, 남매를 돌보는 멕시코인 보모가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는 멕시코, 총격사건에 사용된 사냥총을 모로코인에게 선물한 일본인 사업가와 그의 청각장애인 딸이 사는 일본 등을 오가며 사건이 전개된다. 4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의사소통의 단절 또는 왜곡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총상을 입고 황량한 모로코인 마을에 버려지게 된 미국인 부부는 언어의 단절(영어와 아랍어)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일본의 청각장애인 여고생인 지에코는 장애로 인한 의사소통의 단절이라는 멍에를 지고 있다. 어린 남매의 멕시코인 보모는 위압적인 미국 공권력과 대면하면서 불법체류자라는 약자의 신분에 따른 의사소통의 장벽을 경험한다. 4개국을 어지럽게 오가며 각각 따로따로 전개되던 사건들은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톱니바퀴처럼 하나로 맞물리면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는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 하나 없이 시종일관 진지하고 심각하게 전개되며 관객 입장에서 볼 때 특별히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네 개의 독립된 영화를 하나로 묶어놓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를 하나씩 따로따로 놓고 보면 청각장애인 여고생의 정신적 방황과 일탈을 다룬 일본편 에피소드가 작품성이 가장 뛰어나다. 데뷔작인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 등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작업에 천착해온 이냐리투 감독의 고고한 예술혼이 영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22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

1월 영화관객 전년 대비 24.9% 감소

올해 1월 영화관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9%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극장체인 CJ CGV가 발표한 1월 영화산업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영화관객은 1천610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천140만 명에 비해 24.9%나 줄어들었다. CGV는 지난해 1월의 경우 760만 명을 동원한 '왕의 남자'와 435만 명이 관람한 '투사부일체' 등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 2~3편 있었던 데 비해 올해 1월에는 30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시장주도작이 없었던 것이 부진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한국영화 점유율은 50.6%(서울 기준)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7.6%에 비해서는 20%포인트 이상 낮아졌으나 흥행 톱5 중 네 편이 한국영화였을 정도로 한국영화가 우위를 유지했으며 미국영화의 점유율은 38.9%였다. '황후화' '묵공' 등이 선전한 중국영화의 점유율은 6.0%로, 전년 대비 750%나 증가하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1월 흥행순위를 보면 지난해 12월 개봉해 1, 2위를 차지했던 '미녀는 괴로워'와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흥행 호조를 이어가 올해 1월에도 자리를 유지했으며 1월 흥행순위 11위에 오른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는 국내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순위 1위에 올랐다. 장르별 점유율은 코미디가 26.1%로 1위를 차지했으며 1월 주요 흥행작 중 4편이 코미디였다고 CGV는 밝혔다. /연합뉴스

<새영화> 노래를 향한 꿈 '드림걸즈'

올해 아카데미상 후보 중 뮤지컬 영화 '드림걸즈'는 단연 눈에 띈다. 총 6개 부문에서 8개의 후보지명을 받아 최다 부문 후보작이 됐다. 그러나 불운하기도 하다.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등 주요 부문에서는 후보지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 그럼에도 남녀 조연상 후보에 오른 에디 머피와 제니퍼 허드슨의 존재감이 뚜렷하다. 특히 감독 스스로도 제니퍼 허드슨에 대한 빚을 갚으려는 듯 자막이 올라갈 때 별도의 팁으로 그를 소개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제니퍼 허드슨은 조연이라고 하기엔 미안할 정도다. 뮤지컬로 따지자면 커튼콜을 세계적인 톱스타인 비욘세가 아닌 제니퍼 허드슨이 한 것. 비욘세가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이 놀랍다. 그가 맡은 디나는 프로듀서의 철저한 기획 속에 만들어진 상품이며, 그 이유는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얼굴이 예쁘고 백인들이 좋아할 만한 말라깽이 몸매를 가졌기 때문이며, 목소리에 아무 개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대사 속에 들어간다. 물론 영화 마지막 부분 진정성을 담은 노래와 인간애를 보여줌으로써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세계적인 톱스타라면 흠칫 물러섰을 배역을 기꺼이 해낸 비욘세의 용기는 높이 살 만하다. 그렇지만 관심은 아무래도 제니퍼 허드슨에게 쏟아진다. 6개월 동안 무려 780명이 거쳐간 오디션에서 발탁돼 첫 영화 '드림걸즈'로 단박에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 버라이어티 선정 '주목할 만한 배우 10'에 뽑히며 아카데미상 조연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말 그대로 그는 '드림걸즈'를 통해 '꿈을 이룬 여자'가 됐다. 흑인 특유의 발라드 선율에 마음을 담아 부르는 그의 노래들은 '드림걸즈'에 빠져들게 하는 큰 이유. 특히 'And I'm telling you'를 부르는 장면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에디 머피의 능수능란한 연기와 노래를 보고 듣는 맛도 유별나다. 두 배우 모두 조연 이상의 역할을 영화에서 해줬다. 뮤지컬 영화 '시카고'의 각본을 맡았던 빌 콘돈 감독은 스타 탄생의 과정을 통해 각자의 꿈을 향한 열망과 욕망을 담았다. 인종차별이 여전히 극심해 흑인은 흑인만의 무대에 서야 했던 1960년대, 노래 잘하는 흑인이 스타가 되는 과정은 힘겹기만 했다. 차별과 편견을 뛰어넘는 과정이 지극히 현실적이며, 꿈을 이룬다는 대의명분으로 차별받았던 자가 차별하는 위치에 올랐을 때 얼마나 더 비열해지는지도 외면하지 않고 드러낸다. '드리메츠(dreamettes)'라는 예명으로 매번 오디션에 출전하나 아무런 '빽'이 없어 번번이 떨어지는 에피(제니퍼 허드슨), 디나(비욘세), 로렐(애니카 노니 로즈). 꿈 많은 소녀인 이들은 한 오디션장에서 캐딜락 딜러이자 프로듀서를 꿈꾸는 커티스(제이미 폭스)를 만난다. 커티스는 이들에게 갑자기 펑크난 흑인 스타 지미 선더 얼리(에디 머피)의 코러스를 제안하고 세 소녀는 우상의 뒤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환호한다. 커티스는 지미와 드리메츠를 통해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한다. 에피의 동생인 작곡가 씨씨(케이슨 로빈슨)가 작곡한 노래를 백인 가수가 표절하자 캐딜락을 판 돈으로 DJ들을 매수해 흑인의 노래가 라디오 방송에 처음 나갈 수 있도록 로비한다. 방송에 입성한 후 백인들만이 선다는 라스베이거스 쇼무대에 이들을 세우는 등 커티스는 착착 계획대로 더 큰 무대로 향해간다. 커티스는 드리메츠를 지미와 결별시켜 '드림스'라는 여성 트리오를 기획한다. 그러나 메인 보컬은 지금까지 해왔던 에피가 아닌 디나. 뚱뚱하고 목소리에 개성이 강한 에피보다는 늘씬하고 편안한 목소리의 디나가 백인들의 시선을 더 끌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에피는 거세게 저항하지만 꿈을 이루고 싶다는 씨씨, 우린 한 가족이라고 말하는 디나의 설득으로 그룹에 잔류한다. 드림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다. 전세계적으로 비틀스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 정도. 그러나 사랑하는 커티스가 점점 더 외면하는 데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디나에게만 쏠리자 소외감을 느낀 에피는 결국 팀을 떠나고 만다. 커티스는 디나를 통해 이제는 야욕처럼 변질된 꿈을 실현하려 한다. 디나와 커티스는 결혼까지 하지만 디나는 커티스의 꼭두각시나 다름없으며, 유명 작곡가가 된 씨씨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유행에 맞춰 편곡된 노래를 지켜봐야 한다. 화려한 영광을 잊지 못하는 지미는 약물중독자가 돼간다. 커티스의 딸을 낳고 혼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에피는 지미의 전 매니저 마티를 만나 재기를 꿈꾼다. '드림걸즈'는 의미적절한 노래로 이들의 욕망과 좌절을 담는다. 성공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에 공감의 폭이 크다. 또한 뮤지컬의 특징을 표현해낸 조명 솜씨는 눈여겨볼 만하다. 백인이 쌓아놓은 공고한 벽을 흑인이 깨뜨리는 내용이지만 여전히 그 벽은 깨지지 않았을까. 최다 부문에 후보를 냈음에도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건 백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흑인들의 노래였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할리우드에서 나오기도 했다. 2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3대 영화제 수상 가뭄 베를린서 해갈될까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베를린 국제영화제(Berlin International Film Festival)가 8일(현지시간) 개막한다. 올해로 57회째를 맞은 베를린 영화제는 18일까지 베를린 시내 일원에서 열릴 예정. 극영화 경쟁부문 국내 초청작이 없었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한불 합작영화 '히야쯔가르' 등 두 편이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영화계는 2004년 '사마리아' '올드보이' '빈 집'이 차례로 베를린, 칸, 베니스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래 한동안 경쟁부문 진출도 뜸했던 터라 어느 때보다 수상 기대가 높다. 베를린 영화제 사무국은 이 두 편의 영화를 포함해 장편 극영화 경쟁부분 진출작 22편의 리스트를 지난달 초부터 세 차례에 걸쳐 발표했다. 경쟁부문에는 프랑스와 미국 영화가 다수 초청됐다. 올해 개막작과 폐막작의 영예는 모두 프랑스 영화가 차지했다. 개막작으로는 전설적인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이, 폐막작으로는 하층민 여성이 작가로, 사교계의 여왕으로 성공하는 과정을 다룬 '천사(Angel)'가 선정됐다. 올리비에 다앙 감독이 연출한 '장밋빛 인생'에서 피아프 역은 마리옹 코티야르가 연기했고 이 영화에는 프랑스 대표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도 출연한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영화가 개봉되면서 피아프 추모 붐이 일고 있다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천사'는 천재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연출작으로 영화 '스위밍 풀'에서 오종과 작업한 연기파 배우 샬롯 램플링을 비롯 샘 닐, 로몰라 가레이 등이 출연했다. 램플링은 지난해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해 이 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이외에도 프랑스 영화 '목격자들(The Witnesses)과 '도끼에 손대지 마(Don't Touch The Axe)'가 장편 극영화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도끼에 손대지 마'에는 제라르의 아들 기욤 드파르디외가 출연해 이번 영화제에서는 부자가 함께 레드카펫을 밟는 광경이 연출될 듯하다. 세계 3대 영화제를 포함, 유명 영화제들의 할리우드에 대한 배려는 올해 베를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할리우드 스타의 방문이 절실하기 때문. 올해 베를린을 찾은 미국 영화는 경쟁부문 초청작 3편을 포함 모두 6편이다. 로버트 드니로ㆍ맷 데이먼ㆍ앤젤리나 졸리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출연한 '더 굿 셰퍼드(The Good Shepherd)'를 비롯해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ㆍ조지 클루니 주연의 '좋은 독일인(The Good German)',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보더타운(Bordertown)' 등이 극영화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장편 비경쟁부문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와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 미ㆍ영 합작영화 '더 워커(The Walker)' 등 3편의 미국 관련 영화가 초대됐다. 올해 장편 비경쟁부문 초청작 4편 중 3편을 미국에서 가져간 것. 베를린 장편 경쟁부문을 찾는 아시아 영화는 올해 총 4편. 이중 '싸이보그지만…'와 '히야쯔가르'를 제외한 두 편은 모두 중국 영화다. 베이징 시민들의 갈망과 두려움을 담아낸 '베이징에서 길을 잃다(Lost in Beijing)'와 투병 중인 전 남편을 돌보기 위해 새로운 남편을 찾아나서는 여성의 여정을 그린 '투야의 결혼(Tuya's Marriage)'이 그것. 이 외에도 '내 부모가 휴가로 보낸 그해(The Year My Parents Went on Holiday)'와 '디 아더(The Other)' 등 남미 영화도 초청됐다. 유럽영화로는 '옐라(Yella. 독일)' '나를 추억하며(In Memory of Myself. 이탈리아)'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I Served The King of England. 체코-슬로바키아 합작영화)' 등이 있다. 한국 영화로는 경쟁부문 진출작 '싸이보그지만…'와 '히야쯔가르'를 제외하고도 다수의 작품이 다양한 부문에 초청돼 베를린을 찾는다.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과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가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고, 이윤기 감독의 '아주 특별한 손님'이 영포럼 부문 초청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아이스케키'와 '천하장사 마돈나'는 영화제 내 어린이 영화제 격인 제너레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경쟁부문에 진출한 '싸이보그지만…'의 박찬욱 감독과 주연배우 비(정지훈)ㆍ임수정, '히야쯔가르'의 장률 감독과 주연배우 서정 등이 곧 베를린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 이외에도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ㆍ이해준 감독, '아이스케키'의 여인광 감독, '후회하지 않아'의 제작사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와 이송희일 감독과 주연배우 이영훈, '아주 특별한 손님'의 이윤기 감독, '해변의 여인'의 홍상수 감독과 제작사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 등이 베를린을 방문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밤의 세상서 부르는 ‘태양의 노래’…‘작은 영화 큰 감동’

흔히 일본영화를 두고 ‘작은 영화 큰 감동’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런 경구가 잘 어울리는 일본영화 한 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대규모 액션도 화려한 영화적 치장도 없지만 ‘삶의 진정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태양의 노래’가 그것이다. ‘태양의 노래’는 자외선을 받으면 죽는 XP(Xeroderma Pigmentosum·색소건피증)에 걸린 열여섯살 소녀가 주인공이다.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 소녀의 첫사랑이나 짧은 인생을 절절하게 하기 위한 설정이었다면 감동은 턱없이 작아질 것이다. 남들이 활동하는 낮에 오지 않는 잠을 청해야 하고, 해가 져서야 집 밖으로 나설 수 있는 카오루 덕에 ‘밤의 세상’도 구경하고 밤낮이 뒤바뀐 사람들의 ‘쉽지 않은’ 인생도 간접으로 경험한다. 태양 저편에서 살아야 하기에 어딘가 그늘이 있는 카오루가 밝게 느껴지는 것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노래가 있기 때문이다. 카오루는 밤이 되면 아무도 오가지 않는 역 앞에 앉아 혼자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직접 만든 노래다. 카오루 역을 맡은 유이(YUI)의 맑은 목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묘한 설렘과 감동을 준다. 유이는 실제로도 싱어 송 라이터다. 영화 속 사람들과 영화 밖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주제가 ‘Good-bye days’도 유이가 촬영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카오루와 한마음이 되어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 태양이 떠있는 낮을 자기 시간으로 할 수 없는 카오루의 안타까움, 자기만의 밤과 노래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소망이 애절하게 전해온다. 영화 보도자료에 소개된 유이의 다이어리 내용을 보면 노래를 만들고 부른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난 영화 속에서 ‘카오루’로 살자고 생각했다.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영화 그 자체이니까.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무엇보다 ‘카오루’ 본래의 빛이랄까, 영혼의 빛을 보아주었으면 한다. ‘Good-bye days’ 녹음할 때, 이 곡으로 이 영화 속의 중요한 부분을 가득 담아내고 싶은 바람이 커서 몇 번이고 다시 불렀다.” 연기가 처음인 유이는 어딘가 어두운 그늘도 있고, 어른스러운 듯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장난기를 지닌 카오루를 훌륭하게 소화해 지난해 일본 아카데미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Good-bye days’가 담긴 앨범도 35만장 판매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6월 개봉한 영화도 10억엔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영화는 바다를 낀 작은 마을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세트도 아닌데, 영화의 분위기나 카오루의 정서와 잘 어우러져 풍광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가마쿠라에서의 촬영은 연출을 맡은 코이즈미 노리히로 감독의 희망이었다.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극단을 도울 때 자주 가마쿠라에 갔었는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바다가 있고, 산 쪽으로 가면 작은 도로도 있어서 거리로서 매력이 있구요. 요코하마라는 도시와도 가깝고 낮에는 사람들이 많지만 밤에는 갑자기 적어지는 것도 밤에 살고 있는 카오루의 고독한 심정과도 일치된다고 느꼈어요.” ‘태양의 노래’. 밤에 불려지는 노래지만, 쏟아지는 태양 아래서 부른 어떤 노래보다 뜨거운 열정을 담고 있고 듣는 이의 마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일까. 역설적인 듯하면서도 공감가는 제목이다. 강렬한 마스크와 어리숙해 보일 정도로 따뜻한 미소를 동시에 지닌 코지(츠카모토 타카시 분)가 보여주는 사랑법, ‘착신아리’ ‘도쿄 타워’ 등으로 낯이 익은 개성파 배우 키시타니 고로 등의 호연도 눈여겨 볼 만하다. 태양이 지면 우리를 만나러 오는 카오루의 노래가 큰 울림을 주는 ‘태양의 노래’는 오는 22일 국내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