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스타마케팅 효과 있나

최근 톱스타를 내세운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면서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흥행의 보증수표'처럼 생각하고 있는 스타 마케팅의 효용성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4일 영화계에 따르면 톱스타인 이병헌과 수애를 앞세운 '그해 여름', 다니엘 헤니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Mr.로빈 꼬시기', 정우성ㆍ김태희를 내세운 '중천' 등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면서 국내 영화계에 만연한 스타 마케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11월30일 개봉한 '그해 여름'은 못 이룬 첫사랑의 아련한 아픔을 밀도 깊게 그린 정통 멜로 영화로 한류스타인 이병헌과 수애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기대를 모았으나 30여만 명의 관객만을 끌어모으는 데 그쳐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 '그해 여름'은 톱스타의 출연도 출연이지만 작품성이나 이야기 구성도 괜찮았던 것을 감안하면 흥행 실패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지난달 7일 개봉했던 'Mr.로빈 꼬시기'는 젊은 여성층으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혼혈 스타 다니엘 헤니의 영화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으나 7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치며 손익분기점을 넘는 데 실패했다. 이 영화는 어설픈 설정과 이야기 구성, 한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막이 나오는 문제점 등에도 불구하고 다니엘 헤니의 여성관객 흡인력을 지나치게 과신했다가 낭패를 보고 말았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화제작 '중천'은 톱스타인 정우성과 김태희가 주인공으로 출연했을 뿐 아니라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세간의 화제가 됐으나 2일 현재까지 144만 명의 관객이 관람하는 데 머물러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중천'이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들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흥행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영화계 내부의 일반적 평가다. 이처럼 '흥행의 보증수표'로 일컬어지는 스타를 앞세운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자 갈수록 몸값이 치솟고 있는 스타 배우들의 효용 가치가 지나치게 과대포장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녀는 괴로워'의 흥행 성공에서 볼 수 있듯 굳이 톱스타가 출연하지는 않더라도 외모 지상주의라든가 성형과 같이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설득력 있게 영화로 구성하는 기획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더이상 관객은 줄거리와 캐릭터 빈곤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는 작품을 단지 스타가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선호하지는 않는 것 같다"면서 "대중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를 발굴해 영화화하는 전문적 기획력을 강화해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올 영화계 유망주? 스폰지!…‘작지만 좋은 영화’로 매출 80억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한 사무실 구석에 놓인 탁자에 14명의 직원이 빽빽하게 둘러앉았다. “아오이 유우가 ‘허니와 클로버’ 무대인사 건으로 다음 주에 오는데 언론에 언제 알릴까요?” “‘숏버스’ 등급은 언제 나오나요?” “1월 4일에 나오는데 별 기대는 안합니다. ‘창문을 마주보며’ 등급도 같이 나올 겁니다.” “‘스쿠프’ 프린트는 토요일에 입고될 예정입니다.” “종로에 ‘바벨’ 현수막 걸린 것 보신 분 있어요? 글자 잘 보이던가요?” “민규동 감독님이 ‘열 세 살 수아’ 크랭크인 한 뒤에 현장공개 한 번 하자고 하시네요. 황규덕 감독님의 ‘별빛속으로’ 촬영은 좀 늘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두어 달 죽쒔지만 ‘수면의 과학’이 잘되고 있으니까 그 사이 것은 잊어버리고 내년에도 잘해 봅시다.”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작가주의 영화들을 수입·배급·제작하는 영화사 스폰지의 회의 모습이다. 그런데 회의방식이 좀 특이하다. 30분 남짓 주고받는 대화 속에 십수 편의 영화 제목이 빠르게 지나가더니 끝났다. 조성규(39) 대표가 질문을 하면 각 직원들이 자기 분야에 대해 답하는 형식인데 어느 쪽도 기록하는 것이 별로 없다. “서로 돌아가는 내용을 단계별로 다 꿰고 있는데 새삼 적을 필요가 없다”는 조 대표의 설명. 좋은 작품을 다양하게 흡수하겠다는 뜻을 지닌 스폰지는 지난 한해동안 57편(영화제 형식 상영작 포함)을 배급했다. 그 중 손해를 본 것은 두 세 편에 불과하다. 설립 첫 해인 2002년에 5억원에 그쳤던 매출은 2006년 70억∼80억원으로 올라섰다. “큰 이익은 못냈지만 2007년에도 50여편 배급하고 한국영화 서너 편 제작할 동력을 얻었다”고 밝힌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영화계에서 이렇게 작으나마 확고한 믿음을 주는 스폰지를 2007년 영화계의 기대주로 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품성에 관심 있는 영화팬이라면 스폰지의 이름이 꽤 낯익을 것이다. ‘조제,호랑이,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등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들을 국내에 소개했고,빔 벤더스,기타노 다케시,페드로 알모도바르,짐 자무시 등 감독들의 작품을 꾸준히 들여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에 개봉한 ‘메종 드 히미코’가 9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아 작은 영화로서는 대박을 터트렸다. 지난 7월 시작한 ‘일본 인디 필름 페스티벌’은 80% 이상 좌석 점유율을 자랑하며 10월까지 롱런하는 등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실력있는 국내 감독들의 작품 제작도 참여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종로 시네코아 상영관을 대여해 ‘스폰지하우스 종로’를 열고 ‘스폰지하우스 압구정’까지 마련해 안정적인 배급구조를 꾀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조 대표는 “10년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조 대표가 지인들과 함께 스폰지의 전신인 영화사 ‘디지털 네가’를 만든 것은 연세대 신방과 대학원을 졸업한 지 얼마 안된 1997년 9월이었다. 영화 무가지 발행을 함께 했던 이 회사는 2001년까지 ‘화양연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수입했고 ,홍콩 감독 프루트 챈을 기용해 장혁 조인성 주연의 ‘화장실,어디에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손해로 2002년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몇몇은 다른 회사로 흩어졌고 조 대표를 비롯한 일부는 2002년 1월에 서브 브랜드 격으로 만들어뒀던 ‘스폰지’로 자리를 옮겼다. 이름은 달라졌으나 ‘작지만 좋은 영화’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던 이들은 2004년부터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지금은 초창기 멤버들까지 거의 컴백한 상태. 대규모 배급사 몇몇이 스크린을 독과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스폰지가 나름의 수익구조를 갖출 수 있었던 원인은 ‘스폰지다운 영화’라는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때문이다. 조 대표는 “스폰지 영화는 머리 아프게 예술만 추구하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영화를 제외한,좋은 감독의 좋은 영화”라고 소개한다. 이에 공감한 관객들이 스폰지의 이름을 믿고 꾸준히 극장을 찾고 있는 것. 또 2003년부터 운영한 네이버 카페의 힘도 컸다. 이 카페는 일정 기간 들어오지 않으면 강제 탈퇴시키는 규정에도 늘 2만명을 웃도는 회원들이 스폰지 개봉작들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보낸다. 그러나 ‘대박’이라고 해봐야 7만∼8만명 수준이고 1만명도 안드는 영화들이 더 많은 것이 스폰지의 현실. 그런데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은 마케팅 비용을 거의 쓰지 않는 동시에 영화들을 워낙 좋은 가격에 일찍 사오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국제영화제를 다니며 미국,유럽,일본 등의 주요 배급사들과 꾸준히 접촉하고 신뢰를 쌓아온 덕에 경쟁력을 가지게 됐다는 것. 또 현재 어떤 감독이 어떤 배우와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정보를 모두 꿰고 있어야 적절한 시기에 사올 수 있는데 스폰지가 지난 10년간 쌓아온 노하우는 바로 이런 점이다. 그러다보면 영화를 보기는커녕 제작도 안된 상태에서 구입하는 일도 많지만 배우나 화젯거리보다는 감독을 보고 결정하기 때문에 기대와 다른 작품을 갖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올해도 스폰지는 구스 반 산트,우디 알렌,프랑스와 오종,허우 샤오시엔 등 감독 작품들을 개봉할 예정이고 오다기리 조,기타노 다케시,빔 벤더스 등을 주제로 한 영화제를 기획 중이다. 또 영화진흥위원회가 40억원,스폰지 등이 40억원을 투자해 만든 ‘다양성 펀드’를 통해 한국 영화 제작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내후년 쯤에는 케이블 ‘스폰지 채널’을 만드는 것도 새로운 목표.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지만 수익에 크게 연연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목표는 “계속 좋은 영화를 하는 것”이고 이는 스폰지가 존재하는 한 무난하게 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올 한국영화 미리보기…막은 코미디로 올린다

지난 연말 다소 부진했던 한국 영화들이 2007년을 맞아 새 각오를 다지고 있다. 당분간 장르 구별없이 다양한 영화들이 선보이다 설 연휴를 앞두고 코미디가 줄줄이 개봉할 예정이다. 올해 첫 테이프를 끊는 한국 영화는 4일 개봉하는 ‘오래된 정원’과 ‘언니가 간다’. 황석영 원작,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1980년대를 기억하는 30∼40대에 초점을 맞춰 운동권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과 가슴 아리는 로맨스로 승부를 건다. 고소영의 코믹 변신을 내세운 ‘언니가 간다’는 12년 전 과거로 돌아가 예전의 자신에게 연애코치를 해준다는 내용의 판타지다. 11일에는 ‘허브’와 ‘묵공’이 개봉한다. 강혜정 배종옥이 주연한 ‘허브’는 지체장애인을 다룬 따뜻한 시각과 진한 모성애로 여성 관객들의 호응을 얻을만한 영화. 한·중·일 합작 영화로 류더화와 안성기가 주연한 ‘묵공’은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대규모 역사물이다. 이어 18일에는 여운계 김을동 이문식 등 전편의 배우들이 거의 그대로 출연하는 ‘마파도 2’가 스크린에 걸린다. 2월 개봉작 중에는 박진표 감독,설경구 김남주 주연의 ‘그 놈 목소리’가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 공소시효가 만료된 영구미제사건인 ‘1991년 이형호 유괴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 강동원이 유괴범의 목소리로 출연한다는 점도 화제다. 2월 둘째 주부터는 설 연휴를 염두에 둔 코미디들이 쏟아진다. 한 건물에 들어선 검도장,택견장,쿵푸도장의 세 김관장이 벌이는 대결을 신현준,최성국,권오중 주연으로 그리는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감우성 김수로 주연의 ‘쏜다’,정준호 김원희 주연의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차태현이 트로트 가수로 분하는 ‘복면달호’,‘색즉시공’의 윤제균 감독과 임창정 하지원이 다시 뭉친 ‘1번가의 기적’,김석훈 주연의 조폭 코미디 ‘마강호텔’ 등이 이때 개봉될 예정. 이밖에 기대되는 작품으로는 송강호가 조직폭력배와 가장 역할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내용의 누아르 ‘우아한 세계’,1980년 광주를 재현할 안성기 이준기 주연의 ‘화려한 휴가’,이창동 감독·송강호 전도연 주연의 ‘밀양’,장윤현 감독·송혜교 주연의 ‘황진이’ 등이 있다. 또 현재 촬영에 들어간 황정민 주연의 미스터리 스릴러 ‘검은 집’,심형래가 5년에 걸쳐 만든 SF판타지 ‘디 워’ 등도 올해 중에 공개될 전망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김아중 흥행성공 활짝

“지금까지 영화를 세 편 찍었지만 무대인사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지난 두 편의 영화에서는 제가 주연이 아니었거든요. 처음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무대인사 다니는 게 힘들다기보다는 신나고 재밌어요. 물론 영화가 잘 되고 있기 때문이겠죠?” 개봉 2주만에 25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김아중(24)은 요즘 즐겁다. 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지난 추석 시즌 개봉됐던 타짜 이후 처음. 영화계로서는 11월의 극심한 부진을 훌훌 떨쳐버리게 만든 효자 영화인 셈이다. ‘미녀는 괴로워’는 개봉 3주차로 접어들었음에도 좀처럼 열기가 식지 않고 있어 300만~400만 고지도 뛰어넘을 기세다. 극장가의 대목인 크리스마스 연휴에 서울시내 주요 극장을 돌아다니며 바쁘게 무대인사를 다닌 김아중을 26일 오후 인사동에서 만났다. “영화 찍으면서 많이 고생했는데,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고 행복해요. 근데 솔직히 아직 실감은 잘 못하겠어요. 200만 명이 넘었다고들 하시는데, 붕붕 뜨거나 그런 기분은 아니거든요. 왜냐면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저희 스태프들끼리는 이미 대박이 날 걸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영화를 다찍고 나서 스태프들끼리 필름을 돌려봤는데, 그 때 이미 ‘아,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오더라구요(웃음)” 영화 성공 덕에 벌써부터 차기작 섭외가 많이 오지 않느냐고 묻자 “지금은 ‘미녀는 괴로워’가 잘 되도록 더 열심히 뛸 생각”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보는 오디션마다 떨어졌던 김아중이 이제는 충무로를 밝혀줄 유망주로 무럭무럭 크고 있다./연합뉴스

'박물관이…' 신정연휴 예매순위 1위

벤 스틸러 주연의 판타지 코미디물 '박물관이 살아 있다'의 인기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9일 영화전문 예매사이트 맥스무비(www.maxmovie.com)에 따르면 '박물관이 살아 있다'는 신정 연휴를 앞둔 이날 오전 10시 현재 29.47%의 예매점유율을 기록하며 크리스마스 연휴 시즌에 이어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크리스마스 연휴 북미지역 박스오피스에서도 1위에 올랐던 이 영화는 공룡ㆍ사자 등 자연사박물관 전시물들이 밤만 되면 살아 움직인다는 재미있는 설정으로 방학을 맞은 어린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면서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2위는 지난 14일 개봉한 뒤 2주 만에 25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김아중 주연의 코미디물 '미녀는 괴로워'(22.39%)가 차지해 만만치 않은 뒷심을 과시했고, 3위에는 정우성ㆍ김태희 주연의 국산 판타지 대작 '중천'(9.80%)이 올랐다. 4위에는 홍콩스타 수치(舒淇)가 새로운 '조폭마누라'로 캐스팅돼 화제를 모은 '조폭마누라3'이 비교적 저조한 예매점유율(9.15%)로 이름을 올렸으며. 5위를 차지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로맨틱 홀리데이'(8.95%)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나면서 하향곡선을 그렸다. 이밖에 6위는 '올드미스 다이어리'(7.17%), 7위는 '해피 피트'(6.69%), 8위는 '007 카지노 로얄'(5.54%), 9위는 '네티비티 스토리'(0.64%), 10위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0.20%)가 각각 차지했다. /연합뉴스

<새영화> 판타지 영화 계보 잇는 '에라곤'

불을 뿜는 용을 타고 하늘을 날며 전투를 벌인다. 북유럽 신화의 어느 언저리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 같은 상상 속의 이미지가 영화 '에라곤'이 구현한 판타지의 세계다. 올해 23살에 불과한 미국의 판타지 소설가 크리스토퍼 파올리니의 원작을 영화화한 '에라곤'은 10대 청소년 작가(파올리니는 '에라곤'을 15살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가 17살의 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쓴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만큼 상상력의 수준이나 스토리라인이 다분히 10대 취향이다. 어찌 보면 '반지의 제왕'을 축소시켜놓은 것 같기도 한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컴퓨터그래픽(CG)을 앞세운 특수효과다. 하늘을 날며 불을 뿜는 용, '워크래프트'같은 컴퓨터 게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사악한 마법사와 그가 구사하는 기괴한 마법, 반란군들이 거주하는 은둔의 세계인 '바르덴' 등 기발한 상상력의 세계를 할리우드만의 노하우로 멋들어지게 재현했다. 1억2천만 달러(약 1천116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캐나다에서 로케이션한 스펙터클한 영상도 볼거리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아주 오래 전'이다. 용감하고 정의로운 드래건 라이더(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보호 아래 '알러게이자'의 도시들은 풍요와 번영을 누렸으나 드래건 라이더들은 차츰 힘을 과신하며 오만해졌다. 그들 중 한 명인 갈러토릭스(존 말코비치)가 패권을 잡은 이후 알러게이자는 사악한 마법사 더르자(로버트 칼라일)를 앞세운 갈러토릭스의 폭정으로 인해 고통과 파괴만이 만연하는 세상으로 변해 있다.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작은 골짜기 카버홀에 살고 있는 17세 소년 에라곤(에드 스펠리어스)은 어느 날 숲 속에서 윤기 나는 파란색 알을 발견해 집으로 가져온다. 그것은 전설 속의 드래건 전사를 불러들이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드래건의 알'이었다. 에라곤은 알을 깨고 나온 드래건 사피라와 텔레파시로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마을을 떠돌아다니는 신비한 인물 브롬(제레미 아이언스)으로부터 전설의 드래건 라이더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차츰 그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깨닫는다. 에라곤은 세상을 공포와 어둠으로 몰아넣은 절대권력 갈러토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반란군들의 세계인 '바르덴'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나고 급기야 반란세력을 뿌리뽑기 위해 쳐들어온 갈러토릭스 군대와 운명을 건 전투를 펼치는데… '에라곤'은 파올리니의 판타지 시리즈 '유산 3부작'의 1부에 해당한다. 따라서 올 겨울 개봉된 '에라곤'이 흥행에서 성공을 거둘 경우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2, 3부도 잇달아 영화화될 전망이다. 2005년에 발표된 2부 '엘디스트(Eldest)'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60주간 올랐으며 파올리니는 현재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인 '인헤리턴스(Inheritance)'를 집필 중이다. 신선하고 기발한 상상력과 CG로 구현한 멋진 볼거리로 가득찬 '에라곤'은 그러나 '반지의 제왕' 같은 초대형 판타지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까다로운 관객에게 어느 정도 소구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년 1월1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