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우 "맡은 캐릭터에 늘 연민 생긴다"

(서울=연합뉴스) 19일 개봉하는 영화 '핸드폰'(감독 김한민)은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연예인 매니저 오승민(엄태웅)과 이 전화를 우연히 주운 정이규(박용우)의 대결을 그린 스릴러다. 정이규는 평소에 한없이 친절하고 착한 남자지만 승민과 전화통화를 하고 범죄를 시작하면서 내면의 분노와 악마성을 분출한다. 이 역을 맡은 박용우는 11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악역인 정이규도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핸드폰'의 인물들은 여러 해석이 가능해요. 이규는 평소 남들 말을 무조건 들어주는 '예스맨'이지만, 자신도 대화가 필요한데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를 읽는데 이규가 승민에게 맞는 장면에서 실제로 내가 맞은듯이 아팠습니다." 초반 20여분간 전화 속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박용우는 말을 더듬는 어수룩한 목소리부터 제정신이 아니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소름끼치는 목소리까지 다양한 목소리 연기를 보여준다. "이규는 처음에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절실한 상황에서 승민의 아내와 통화를 하죠. 익명성이 보장되니 자기 속을 꺼내 보이는 시도를 처음 하는 거예요.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뱀처럼 무섭게 느껴질 수 있죠. 그런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엄태웅과 역할을 바꿔 맡았으면 어땠을지 묻자 박용우는 정이규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강해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투톱' 영화에서 항상 받는 질문이에요. 하지만 어떤 역할을 맡을 때나 그 캐릭터 생각에 바쁘고, 그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생깁니다. 그러니 다른 인물은 보이지 않죠." 엄태웅 역시 "오승민 역이 버거워서 다른 인물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오승민은 항상 흥분돼 있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죠. 어디서 얼마만큼 감정 표현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감독님을 믿고 해결해 나갔습니다." 김한민 감독은 엄태웅과 박용우에게는 상반된 모습들이 있어 대비와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저는 '대비'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두 배우는 캐릭터뿐 아니라 연기하는 모습, 실제 성격, 심지어는 여자친구 사귀는 모습도 서로 다르고 대비를 이루죠. 물론 승민의 느낌을 박용우가 일부 갖고 있기도 하고, 반대로 이규의 느낌을 엄태웅이 가지고 있기도 해요. 그런 모습이 있으면 서로 캐릭터를 보강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새영화> '문프린세스-문에이커의 비밀'

(서울=연합뉴스) '나니아 연대기', '황금 나침반', '에라곤', '잉크하트' 등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서양의 판타지 영화는 잊을 만하면 관객들을 찾아오곤 한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시리즈만큼 전 세계 관객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작품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컴퓨터그래픽(CG) 면에서는 웬만큼 완성도가 있지만 이야기의 규모가 작고 청소년용이라는 인상이 짙어 성인 관객에게 크게 호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 프린세스'도 이런 가운데 개봉하는 또 하나의 전체관람가 판타지 영화다. 1940년대 엘리자베스 굿지의 '작은 백마(The Little White Horse)'를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10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았으며 상상력의 수준 또한 1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 보기에 적합한 정도다. 아버지가 책 한권을 빼고는 아무런 유산 없이 세상을 떠난 뒤 10대 소녀 마리아(다코타 블루 리처드)는 삼촌 벤자민(이언 그루퍼드)이 사는 숲 속의 문에이커 저택으로 향한다. 마리아는 아버지가 남긴 책에서 신비로운 달빛 세상과 자연의 선택을 받은 여자 문 프린세스(나타사 매켈혼)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다. 마리아는 문에이커 저택과 숲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묘한 존재들을 만나게 되고, 자신이 숲 전체에 걸린 저주를 풀 새로운 문 프린세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반적으로 볼거리는 충분하다. 나무가 울창한 숲, 옛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대저택, 소녀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침실 등 로케이션과 세트 촬영을 통해 공간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또 주인공이 연방 갈아입는 예쁜 의상들이 시선을 끈다. 여기에 검은 사자, 백마 파도, 마법의 요리사 등이 적절한 CG로 표현됐다. 그러나 빈약한 스토리라인이 주는 아쉬움은 크다. 마리아가 현실에서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에 설명이 충분치 않아 마리아가 왜 선택받은 문 프린세스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반면 숙적인 드 누아가(家)와의 관계는 지나치게 단선적이라 긴장감이 떨어진다. 장르적 분위기도 매끄럽지 않다. 신비로운 판타지로 시작했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마리아의 가정교사, 집사 등이 연출하는 코믹 장면들이 뜬금없이 끼어든다. 또 중간 중간 들어간 삼촌 벤자민의 로맨스는 문 프린세스 이야기의 일관성을 해친다. 19일 개봉. 전체 관람가.

위성DMB, 밸런타인데이 영화 풍성

(서울=연합뉴스) 위성DMB 방송사업자 TU미디어는 오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TU박스(10번)와 TU엔터테인먼트(3번) 채널을 통해 최신 인기 로맨틱 영화를 연속 방영하는 밸런타인데이 특별 편성을 실시한다고 10일 밝혔다. 먼저 최신 영화를 가장 빨리 즐길 수 있는 채널인 TU박스는 14일 두 커플의 짜릿한 여행기를 다룬 '로맨틱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강풀의 인기 만화를 영화화한 '순정만화', 꽃미남 4인방이 열연한 달콤한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을 다룬 '미인도'를 방영한다. 이외에도 고려말 금기의 사랑을 다룬 흥행작 '쌍화점', 제이슨 스타뎀의 액션이 돋보이는 '트랜스포터 - 라스트 미션' 등이 2월 중 TU박스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TU엔터테인먼트에서도 '달콤 살벌한 발렌타인 데이'라는 주제 아래 정려원이 다중인격자로 열연한 '두 얼굴의 여친'을 비롯 다니엘 헤니, 엄정화 주연의 '미스터 로빈 꼬시기', 전국민의 연애 지침서로 손예진, 송일국 주연의 '작업의 정석'이 방영된다. 이어 한예슬 주연의 '용의주도 미스 신'과 이기적 B형 남자와 소심한 A형 여자의 혈액형 러브 스토리 'B형 남자 친구'가 방영될 예정이다. 또한 인기 오디오 채널, TU리퀘스트(35번)에서도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음성사서함 ☎070-7893-1058에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 음성메시지를 남기면 매일 오후 2~4시에 방송을 통해 신청자의 사랑 고백 메시지가 전해진다. TU리퀘스트 전용 모바일 번호인 #2440으로 자랑하고 싶은 연인 사진과 자신만의 사랑 고백 문자를 보내면 추첨을 통해 초콜릿 기프티콘을 선물로 제공한다.

영화배급사 쇼박스, 업계1위 CJ엔터 눌러

(서울=연합뉴스) 영화 배급사 쇼박스가 1월 극장가의 배급사별 점유율 순위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10일 발표한 '2009년 1월 한국 영화산업 통계 자료'에 따르면 쇼박스는 '쌍화점'과 '적벽대전2' 등 5편을 배급해 32.9%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CJ엔터테인먼트는 쇼박스보다 1편 많은 6편을 배급했지만 '달콤한 거짓말'과 '마다가스카2', '유감스러운 도시' 등 상영작들이 기대에 못미친 끝에 14.1%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3위로 처졌다. CJ엔터테인먼트는 한동안 배급사별 점유율 순위에서 1위를 유지해왔다. 작년 1년간 배급점유율 순위에서는 30.1%의 점유율로 2위 10.1%였던 쇼박스를 훨씬 앞서기도 했다. CJ엔터테인먼트가 주춤한 사이 '과속스캔들'을 흥행에 성공시킨 롯데시네마는 22.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2위에 올랐다. 1월 전체 관객수는 1천645만4천282명으로 작년에 비해 27.6% 증가했으며 이중 750만9천313명이 한국 영화의 관객인 것으로 집계돼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45.6%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1월의 50%보다 4.4% 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한국 영화는 작년부터 상영된 '쌍화점'과 '과속스캔들'이 월별 흥행순위 1~2위를 차지하며 선전했지만 신규 개봉작인 '유감스러운 도시'가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냈다. 미국 영화의 점유율이 작년 동기의 48.5%보다 14.6% 포인트 떨어진 33.9%인 가운데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제3국 영화의 점유율은 작년 1월의 1.5%에서 대폭 상승한 20.4%를 기록했다. 제3국 영화의 강세를 이끈 것은 월별 박스오피스에서 3위를 차지한 중국 영화 '적벽대전2-최후의 결전'이었다. '러브 인 클라우즈'(영국ㆍ캐나다), '트랜스포터-라스트미션'(프랑스)의 활약으로 유럽영화의 점유율도 작년 1월 0.4%에서 6.3%로 껑충 뛰었으며 일본 영화 역시 '벼랑위의 포뇨'의 선전으로 0.4%에서 2.7%로 점유율이 상승했다.

<독립영화史 새로쓴 워낭소리, 50만가나>

다른 독립영화 흥행 기폭제 기대 (서울=연합뉴스)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관객수 26만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넘어서며 한국 독립영화의 흥행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난 주말 신규 개봉작인 할리우드 영화 '세븐 파운즈'나 한국 영화 '키친'을 거뜬히 제친 이 영화는 박스오피스 3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저예산 영화인데다 소규모 개봉 영화인 '워낭소리'가 일으키고 있는 돌풍은 스케일 면에서도 이전 독립 영화가 거둔 성과를 훌쩍 뛰어 넘는다. 이전까지 한국 독립 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은 공동체 상영(지역회관, 학교 등 상영)을 포함해 9만~10만명을 동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학교'(김명준)였으며 외국 영화를 포함해도 22만명을 모은 '원스'가 가장 흥행이 잘된 독립 영화였다. 1억원 가량의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배급 비용 포함) 1억원 가량을 들인 이 영화의 매출액은 9일 영진위 가집계 기준 18억원 가량. 극장 측이 가져가는 수입과 마케팅비 등을 제외해도 이미 들인 돈의 4~5배 이상의 수익은 거둬들인 것으로 보인다. '워낭소리'의 흥행세가 특히 의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7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한 뒤 차츰 스크린 수를 늘려나가며 흥행세가 증폭되는 상황이라는 데 있다. 오프닝주 관객수 7천500명, 박스오피스 순위 15위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우호적인 입소문과 언론의 폭발적인 반응이 맞물리며 스크린수(배급사 발표 기준)가 22개, 36개로 차츰 증가했으며 지난 주말에는 70개까지 늘어났다. 이는 소규모 개봉과 와이드 릴리스로 개봉 방식이 이분화한 극장가에서 매우 이례적인 움직임이다.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한국 극장가는 대체로 개봉 규모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차츰 스크린수가 줄어가며 상영이 끝나는 방식의 배급이 일반적이었다. '워낭소리'의 가장 큰 성공 원인은 바로 양질의 콘텐츠와 관객들의 입소문에 있다. 이 영화는 TV나 인터넷 광고 없이 일부 신문과 영화전문지에만 광고를 했으며 마케팅 비용은 배급과 상영에 쓰인 돈이 대부분이다. '워낭소리'의 성공 사례는 '독립 영화는 지루하다'는 공식을 깬 것인 만큼 다른 독립 영화들의 제작과 상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5일 개봉한 '낮술'(노영석)이 입소문을 무기로 스크린 수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똥파리'(양익준)와 '나무없는 산'(김소영) 등 조만간 관객들을 만날 예정인 독립 영화들도 '워낭소리'의 성공에 고무된 모습이다. '낮술'과 '똥파리'의 배급사인 영화사 진진의 관계자는 "'워낭소리'의 성공은 쉽지 않은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어 온 독립 영화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최근 독립 영화들은 관객들과의 소통에 충실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만큼 제2, 제3의 흥행 성공사례가 잇따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워낭소리'의 흥행이 어디까지 갈지는 미지수다. 인디스토리의 남희승씨는 "관객과 극장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 얼마 만큼 관객이 더 들지 예측하기 힘들다"며 "13~14일 주말부터는 스크린수가 80개 가량으로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관객수 50만명은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옛날영화속 '나쁜남자'영화제서 만나자>

(서울=연합뉴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고전영화제에서 국내외 영화 속 '원조 나쁜 남자들'을 만나보자.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조선희)은 이달 말까지 한국 고전영화 속의 거칠고 고독한 남자주인공들을 만나 볼 수 있는 무료 VOD 상영전 '사내, 주먹을 쥐다'를 연다. 또 지난달 말 개막해 내달 1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계속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박찬욱ㆍ오승욱 감독이 매력적인 악당들이 등장하는 고전영화들을 선보이는 '최선의 악인들' 특별전이 마련됐다. ◇'사내, 주먹을 쥐다' = 한국영화 VOD 사이트(www.kmdb.or.kr/vod)에서 열리는 이번 온라인 VOD 기획전에서는 쓸쓸하고 외로운 남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1950~1970년대 한국영화 6편이 소개된다. 1950년대 판 '쉬리'를 연상케 하는 '운명의 손'(1954, 한형모)은 여간첩과 방첩대 대위의 추격과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담았다. 이 영화에는 한국영화 사상 최초의 키스신이 등장한다.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가 호흡을 맞춘 '지옥화'(1958)는 미군부대의 물품을 밀수하는 형과 이를 만류하는 동생, 그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양공주 소냐의 이야기를 담은 액션 누아르. 정창화 감독의 누아르 '노다지'(1961)는 암흑가의 주먹세계를 흑백의 짙은 명암, 실루엣과 그림자 이미지로 담았다. '황혼의 제3부두'(1971, 전우열)는 사제지간에서 형사와 살인 용의자의 관계로 바뀐 두 남자의 이야기를 항구도시 부산을 배경으로 그리며 '5인의 건달들'(1971, 고영남)은 복수를 위해 다양한 캐릭터의 건달 5명이 의기투합하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1970년대 초 명동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명동잔혹사'(1972, 변장호ㆍ최인현ㆍ임권택)는 도시 중심부의 주먹세계에서 일어나는 조직의 배신과 복수, 비극을 3가지 이야기로 선보이는 옴니버스 영화다. ◇'최선의 악인들' = 박찬욱ㆍ오승욱 감독이 프로그래머가 돼 선보이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선한 영웅들과 달리 범죄자나 무뢰한, 악당들을 매혹적으로 그린 고전영화 6편이 소개된다. '밤 그리고 도시'(1950, 줄스 다신)는 영국 런던 거리를 헤매는 야심 많은 사기꾼 해리가 은퇴한 레슬링 스타 그레고리우스를 만나면서 휘말리는 음모를 통해 억압된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그린다. 자크 베케르 감독의 '구멍'(1960)은 형무소 지하에 구멍을 파고 탈옥하는 계획을 꾸미는 네 남자의 이야기이며, 마이크 호지스 감독의 '겟 카터'(1971)는 런던 암흑가의 갱이 동생의 죽음에 얽힌 음모를 알아내고 펼치는 복수극이다. '들판을 달리는 토끼'(1972, 르네 클레망)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갱단에 들어온 남자가 갱단 우두머리의 딸을 납치하는 임무를 맡았다가 기묘한 상황에 빠지는 범죄물. 마르코 페레리 감독의 '그랜드 뷔페'(1973)는 먹고 마시고 섹스만 하는 이상한 게임을 시작한 중년 남자 4명의 이야기를 통해 천박한 소비주의를 묘사한다. 안드레 줄라브스키의 '포제션'(1981)은 전장에서 첩보활동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마크와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내 안나의 이야기를 그린 컬트적인 영화다.

<새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서울=연합뉴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인가. 수많은 영화가 다뤄왔던 소재이지만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만큼 용감하고 또 잔인하게 이 소재를 노려보는 영화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유머가 섞인 가벼운 어조를 띄고 있지만 영화는 묵직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는 것과 죽는 것, 함께 있는 것과 떨어져 있는 것,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인가 질문을 던지며 끈질기게 해답을 찾아나선다. 도리스 되리 감독은 '단 껍질에 쓴 알맹이'라는 전작들의 장점을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한다. 결혼하고 싶은 노처녀 이야기 '파니 핑크'(1994년)와 다른 이상을 가진 젊은 부부 이야기 '내 남자의 유통기한'(2005년)이 모두 말랑말랑한 이야기 속에 무거운 진실을 담았었다. 영화는 씨줄과 날줄이 빈틈없이 잘 짜여진 천처럼 촘촘하면서도 힘이 있다. 사과나 파리, 손수건, 장신구, 그리고 후반부에 나오는 죽은 이의 재까지 감독이 자연스럽게 심어놓은 소품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처럼 적확하며,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깊이 있는 은유를 담은 것까지 힘있는 대사들은 관객들의 심장에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투박한 화면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는 연기에서부터 대사, 이야기, 주제에 대한 통찰력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까지 어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파니 핑크'를 보고 열광했던 관객이라면 도리스 되리 감독이 거장이 돼서 돌아왔음을 보고 다시 열광할 만하다. 자녀들을 외지로 보낸 뒤 남편과 함께 노년을 보내던 여성 트루디(엘마 베퍼)는 의사로부터 남편 루디(한넬로어 엘스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그 사람이 없이 살 수 있을까' 남편을 졸라 아이들을 만나러 베를린행 기차를 타는 트루디는 "매일 먹는 사과 한 쪽이면 병원 갈 일 없다"며 자신하는 루디에게 차마 그의 몸 상태를 말하지 못한다. 베를린에서 아들과 딸을 만나지만, 왠지 아이들의 모습은 낮설다. 함께 뭘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색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 있으니 행복하다. 일본에 사는 아들 칼(막시밀리안 브뤼크너) 생각이 나지만 만나러 가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아내였다. 여행 중 갑작스럽게 트루디가 세상을 떠나자 루디는 큰 충격을 받는다. '남겨진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혼자 돌아온 집에 아내의 빈자리는 견딜 수 없이 크다. '아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중얼거리던 루디는 여행 가방에 아내의 옷과 장신구를 넣고 아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일본을 향해 떠난다. 죽음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트루디가 추고 싶었고, 루디가 일본에서 보게 되는 일본 전통춤 부토(舞蹈)에 응축돼 있다. '그림자의 무용'이라고 불리는 이 춤은 남은 남편이 먼저 떠나간 아내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원제는 '벚꽃-꽃구경'이라는 뜻의 'Cherry Blossoms-hanami'이다. 영화 속 벚꽃은 아내에게 남편이 보여주고 싶던 것이며 벚꽃 구경이 한창인 공원은 남편이 부토를 보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19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