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과 긴 거리의 시야를 막은 채 사는 도심. 일상에 침잠되어 도심에서 빼앗긴 시선을 찾던 날의 풍경이다. 안개 자욱한 들판은 수채화처럼 촉촉하고 고요하고 아스라하다. 귀하고 짧은 틈의 들판의 소리가 오감을 만져온다.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하지만 눈이 마음이 무장해제다. 시야를 먼 곳에 둘 수 있는 유일한 사유의 쉼터. 도심의 빌딩 숲에서 턱턱 숨 막힘에서 잠시 해방된 시간이다. 홍채원 사진작가
계절이 돌아서면서 나뭇잎들이 마당과 골목길까지 나뒹굴면 시간 반을 쓸어야 깨끗해진다. 바람이 불고 비 오는 날 마당 쓸기는 더러 버겁기도 했다. 하지만 마당 쓰는 일은 하루를 시작하며, 또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음을 쓸어내리는 일로 여겼다. 어느 날 외출 후 하늘이 훤히 보여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나무가 잘려나간 모습이었다. 옆집 나무라 어쩌지도 못했지만, 마음 한쪽에 휑한 바람이 일었다. 다행히 모아 둔 낙엽들이 무덤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번씩 휘 휘 저어 주면 아직 남은 온기로 은은한 나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한여름 무더위 속 나무 그늘에서는 잠시나마 시원함을 느낀다. 나무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기온 차를 올 한해 절실히 온몸으로 느꼈다. 온난화로 세상의 기온은 올라가고 사막화는 늘어만 간다. 나무 한 그루에 대한 위대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잘려나간 나무의 남은 밑동에서 내년에 건강한 잎들이 무성하게 피어나길 기원해 본다. 홍채원 사진작가
나무는 두고 나무는 두고 우수수 출타했다. 언제 돌아오려는가 내년 봄즈음 오려는가 누구를 위하여. 홍채원 사진작가
드러나지 않고 깊숙하고 고요하여 아늑하다. 아련히 깊다. 계절의 현란함에 짓눌리지 않고 빛에 의해 드러난 풍경에 걸려 넘어졌다. 은은한 속삭임의 언어, 시간이 떨어트린 그림자다.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사라지면 곧 소멸되고 말 일이다.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 않은 시간이 그려낸 풍경에 냅다 정신 줄을 놓았다. 홍채원 사진작가
땅이 사라졌다. 온통 하늘을 향해 치솟는 건물들이며 콘크리트 위에 서 있다. 어린 시절 땅이 있던 곳이면 스케치북 없이도 그림을 그리는 놀이터였고 흙을 만지며 도깨집도 지었고 땅 따 먹는 놀이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온전히 왔던 대로 빈손으로 돌아왔다. 비가 내리면 흙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요즘은 땅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만져 보기는 더 어렵다. 어느 날 쿵캉쿵캉 집들이 헐리고 콘크리트와 시멘트란 갑옷을 벗겨줘야 얼굴을 내밀고 긴 한숨을 쉰다. 도심에서 땅이 숨을 쉴 수 있는 일은 건물 하나가 헐려야 딱 그 공간만큼 정해진 시간 동안 세상을 향해 숨을 쉴 수가 있다. 그 시간이라는 것도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이 쫙쫙 달라붙을 정도로 실감 난다. 요 며칠 근처 집이 헐리고 다시 큰 빌딩이 들어선다고 한다. 그 짧은 틈을 놓칠세라 사진을 찍었다. 나무며 풀들은 겨울이면 같이 한 계절 쉬어가는데.감옥 아닌 감옥살이는 땅이 하는 걸까 우리가 하는 걸까. 촉촉한 땅 냄새가 그립다. 홍채원 사진작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바사니오는 금, 은, 납 상자 중 금, 은 상자를 외면하고 납 상자를 선택한 덕에 아름답고 부유한 포사를 아내로 맞이한다. 대장동이 무엇이고 노른자 땅이 다 무엇인고. 바사니오 같은 계절을 느낀다. 마른 잎 떨어내고 휘영청 휜 허리, 초록이 우거지고 붉은 꽃피워 유혹하던 계절은 뒤로 물러났다. 더 이상의 욕망이나 불안은 없다. 온전히 그대로를 들어내는 계절의 초입에 힘 잃은 햇살이 부드럽다. 지금은 삼매(고요, 절멸, 적정)에 빠지기 딱 좋은 계절이다. 정신집중 하기 좋다는 말이다. 독서의 계절이라 운운하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손 전화기 내려놓고 종이 질감 느끼며 독서삼매경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홍채원 사진작가
가을, 풍성함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사실 비어 내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툭. 맑은 자궁 하나, 언제 잉태했는지 쑥 빠져나간 빈터만 남았다. 봄부터 뜨거운 여름을 잘 견뎌주고 이 계절에 쑥- 토해내다니! 알밤의 흔적이다. 누군가에겐 일용할 양식이요, 새 생명을 위해 풀숲 어디에서 고요히 고요히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테다. 비워내는 것은 빈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잉태하는 일인 게다. 조건 없이 내어주므로 자신을 비우는 것. 가을이란 계절, 참 경이롭다. 빈 것은 진정 빈 것이 아님을. 홍채원 사진작가
어느 날 내게 쪽지 편지가 손에 들어왔다. 이름은 쓰여있지만, 성은 알 수 없고 얼굴도 더더욱 알 수 없다. 다만 손편지에 맘이 이끌려 내게 온 것이다. 1년이란 시간이 흘러 갑자기 궁금해져 풀어 보았다. 신화 앨범이 새로 나온 이야기며, 야자 수업 시간에 쓰고 있으며, 자기 반 애들은 맨날 야한 얘기만 한단다. 어제 마을버스에서 친구를 보았는데 교복이 어느 학교 것인지 모르겠다 등 사춘기 소녀의 꼭꼭 눌러 쓴 손편지에 모의고사가 끝나고 망쳤다며 교복 입고 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다시 피시방에 가서 메일을 보낸다는 추신까지 쓰여있는 걸 보면 아직도 더 할 말이 남았다는 건지. 풋~ 웃음이 인다. 조잘조잘 시절 쪽지 편지 속에 풋풋함이 묻어 나의 사춘기 시절도 소환해 낸다. 편지에 대한 질감을 느끼기 어려운 즈음 오늘은 손 편지 한편 써서 누군가에게 건네야겠다. 홍채원 사진작가
그늘은 어느새 스산하고 양광은 등에 따갑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계절이다. 가을이면 추수를 한 후 바람 따라 곡식 등을 까 불러서 쭉정이를 걸렀다. 어머니 손에서 바람을 가르고 리듬 타며 춤추고 동고동락했던 사물이다. 희망을 필요로 하는 절박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생과 사의 경계 선상에서 겹겹 기우고 다시 고쳐 썼다.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 고단한 무게가 느껴진다. 한 감정 속에 다른 한 감정이 스며든 물건이다. 몸의 흔적이 밴 주인을 먼저 떠나보낸 사물은 더 이상 사람이 그립지 않다. 움직임에 다 다르니 오직 그리운 것은 고요뿐. 홍채원 사진작가
추석 명절 끝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 빗물받이 통에 물이 금세 한가득 찼다. 현미경으로 보면 물의 결정체는 육각형이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염소로 소독하는 수돗물에서는 깨끗한 육각형의 결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염소 소독은 자연의 물이 가지는 결정 구조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진동의 세기에 따라 물의 형태도 다르게 나타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의 의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이 뿌려진 빗물은 우주의 소중함 그 자체이며 자연이 자연에 주는 힘의 근원임을 깨닫는다. 홍채원 사진작가
한가위 음식은 시절식 가운데 음식 종류와 색상이 화려하다. 오곡백과가 결실을 맺어 추수를 시작하는 때라 햇곡식, 햇과일을 비롯한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사랑과 정성이 깃든 음식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 없이 맛있고 풍요롭다.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 맛보다 못하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송편을 찔 때도 솔잎을 깔고 찌면 소나무의 기운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시기 가족들과 맛있는 송편으로 건강한 한가위 맞이하길 기원해 본다. 홍채원 사진작가
잊히지 않는 얼굴이 있어 찾아갔다. 작은 단칸방에 부엌 하나, 단출한 살림에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얼굴이셨다. 얼굴은 몸의 표면에서 형태의 변화가 가장 많은 부분이며 눈은 마음 상태를 잘 드러낸다 하던가. 눈은 보이는 현상만을 인식하지 않고 그 내면의 것까지 느끼는 기관으로 사물을 깊이 있게 분별한다 해서 심안(心眼)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르신의 모습에서 공(空)의 모습이 보였다. 코로나19로 뜸했던 시간은 이미 시간의 강을 건너 있었지만 남기고 가신 어르신의 미소를 보며 입꼬리를 올려 본다. 홍채원 사진작가
산책길 어귀에 아직 흙냄새가 가시지 않은 풋풋한 배추, 호박, 가지가 소쿠리에 곱고 순하게 담겨 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양의 채소는 욕심도 없나 보다. 살 사람은 적당한 금액을 내고 가면 되는지 지키는 사람도 없다. 넘치지도 과하지도 않은 모습을 보며 일상의 다소 복잡하고 허우적거리던 마음 천천히 호흡하면 좋겠다. 걸어야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홍채원 사진작가
시절이 변해 필요한 물건을 대형마트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해결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음식 배달도 늘어 동네 쌀가게는 찾아보기 더욱 어렵다. 아직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 쌀 떨어질 때 쯤 찾아가는 골목안 터줏대감 50년 된 쌀가게. 주인 어르신의 손길 묻어 있는 40년 된 세련미 없는 질박한 그릇에 담긴 쌀을 사며 이웃을 끌어안는 작은 행복이랄까. 홍채원 사진작가
마을 어귀에 공동우물이 있던 곳에는 늘 사람들이 북적였다. 동네 아낙들이 모여 빨래를 하거나 식수로도 사용했다. 우물가 동네 아낙들의 웃음소리도 희미해진 지 오래다. 뜨거운 여름 한 두레박 길어 올려 시원하게 등목했던 시절이 그리운 계절이다. 홍채원 사진작가
여름꽃들이 시름을 잊어 갈 무렵 짱짱한 기세로 꼿꼿이 서 있는 맨드라미 꽃. 맨드라미는 만들어 놓은 것 같다라는 순우리말이다. 꽃의 모양이 마치 닭볏처럼 생겼다고 해서 한자로는 계관화(鷄冠花)라고 부른다. 관직에서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네 정치하는 분들 본인의 입신을 위해서가 아닌 진정 관료의 마음가짐으로 승승장구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홍채원 사진작가
불볕더위가 한창이다. 뜨거운 햇살에 마당 한편에 참깨를 말리고 있다. 올 추석에는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 햇 참기름에 송편 굴려 가며 구수한 이야기꽃을 피우길 기대한다. 홍채원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