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 서재형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장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은 지난 4월 경기농림재단에서 경기도 농식품의 유통 지원체계 등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새롭게 출범하면서 도내 농식품 유통 업계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변화의 물결 속에 진흥원에 혁신과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많은 기대를 받으며 지난달 서재형 전 롯데쇼핑 상무가 민간기업 출신으로는 최초로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장에 취임했다.취임 한 달을 맞은 서재형 제2대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장을 만나 그동안의 소회와 진흥원의 미래를 들어봤다.Q 취임한 지 한 달이 됐다. 그동안의 소회는. A 지난 7월10일 취임한 뒤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지난 4월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경기도의 농식품 유통업무 전반을 관리하는 기구로 새롭게 출범한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에게 지금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개인적으로는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동시에 경기도의 농업농촌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면서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고민하고, 진흥원에 대한 도민들의 높은 기대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한화그룹과 롯데그룹 등 유통분야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며 다양한 현장경험을 쌓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민간기업의 장점과 공공기관의 장점을 융합할 수 있도록 해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의 초석을 닦아 나가겠다. Q 진흥원 최초 민간기업 출신 대표에 거는 기대가 많은데. A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유통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었고 임원까지 했던 것에 대해 매우 많은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퇴직 후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던 중 경기도와 도민들을 위해 일하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것이 그동안 받은 행운들을 돌려줄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시작하게 됐다. 공공기관에서의 업무가 처음이라 아직 긴장 반 설렘 반이다. 낯선 점도 많지만 앞으로 배우게 될 것도 많은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하는 것이 더 많다.현재 민간에서 느꼈던 것들과 아이디어를 계속 메모하면서 진흥원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진흥원 역시 첫 민간기업 출신 대표에게 거는 기대도 많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원장으로서 진흥원의 발전을 위해 업무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고 또 즐겁고 일할 맛이 나는 직장문화, 상식이 통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가는데 책임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 Q 경기농식품을 통한 친환경급식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A 진흥원은 G마크 인증제, 경기사이버장터, 6차산업지원 등 경기도 농식품 전반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중 친환경 등 우수농산물 학교급식 지원사업은 그중에서도 주력하고 있는 사업이다. 현재 진흥원은 1천132개 학교(초등 893개교, 중등 229개교, 특수 10개교)에서 총 70만 명의 아이들에게 안전한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매출규모는 지난해 기준 연간 약 1천153억 원이다. 이런 가운데 진흥원은 학교급식에 도내 농식품 공급규모를 증가하기 위해 출하 확대를 추진, 지난해 829개 농가에서 올해 1천여 농가로 확대될 계획이다. 또 친환경 등 우수농산물 학교급식 공급체계의 공정성·투명성을 강화하고자 공모위원회를 통해 평가방법과 기준 등을 마련할 뿐 아니라 학교급식통합정보시스템을 운영해 급식의 모든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이와 함께 안전 농식품 공급을 위한 잔류농약 및 방사능 검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해 원천 차단하는데 노력을 다하고 있다. 올해는 잔류농약·방사능 2천500건에 대한 검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 앞서 1회, 2회를 거치면서 많은 호응을 받았던 ‘친환경 학교급식 레시피 오디션’이 조만간 개최될 예정인데, 이번 대회가 이전과는 차별화되고 경기도 친환경급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겠다. Q 경기농식품이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고민이 많을텐데. A 대표적으로 ‘쌀’이다. 우리나라 쌀 소비량은 해를 거듭할 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무조건 “쌀을 먹어라”라고 강요만 할 수는 없다. 소비자들이 쌀은 ‘맛있는 식품’으로 인식해 구매로까지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시중에 팔리고 있는 쌀 포장지에 변화를 주고 싶다.현재 쌀 판매자들은 이 쌀을 어떻게 조리해야 가장 맛있는 밥이 나오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고 있다. 쌀은 재배되는 지역과 수확시기, 품종에 따라 모두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가장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서는 그 쌀의 특성에 맞는 조리법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단순히 인분에 맞춰 물과 쌀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만을 알려주고 있다. 예를 들어 라면 포장지를 보면 라면마다 물의 양과 끓이는 시간 등 조리법이 모두 제각각이다.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이기 위해 탄생한 ‘황금 레시피’인 것이다. 쌀도 마찬가지로 가장 맛있게 밥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올해 하반기 주목할만한 것들은. A 올 하반기에는 경기정원문화박람회와 G-푸드쇼가 도민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정원, 도시의 숲이 되다’를 주제로 오는 9월29일부터 10월1일까지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릴 제5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는 경기도와 안산시가 공동주최하고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이 주관하는 행사다. 현재 시민참여정원, 작가정원 등의 작품선정, 시공·디자인 컨설팅을 마치는 등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박람회 개최지인 화랑유원지 인근 고잔동 구도심 주거지역에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시민 참여형 마을정원 만들기’ 시범사업을 추진해 주역주민들의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경기정원문화박람회 때 조성된 정원은 박람회 후에도 철거되지 않고 시민들의 여가공간으로 활용되며, 마을정원 만들기를 통해 생활 속 정원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G-푸드쇼는 오는 10월25일부터 28일까지 서울코엑스에서 열리며 8만 명 이상의 소비자가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지난 2007년 시작된 G-푸드쇼는 경기 농업농촌을 알리고 소비자와 농민이 직접 만날 수 있는 농특산물 박람회로 자리잡았다. 또 G마크와 시ㆍ군의 대표 농특산물 등이 총망라해 소비자들은 물론 국내외 바이어들에게도 경기도 우수 농특산물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좋은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는 ‘소비자가 만드는 건강한 삶’을 주제로 총2천800m²의 공간에 180여 개 부스가 설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넥스트 경기농업의 미래를 제시하고 농업농촌 가치체험을 위한 식품·푸드문화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Q 앞으로 목표와 각오는. A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을 작지만 실행력이 강한 강소(强小)조직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해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하고 보람있는 진흥원’으로 만들겠다. 이를 위해 ‘유통진흥원 중장기 발전전략 구축작업’을 추진해 조직의 유사기능 중복·불합리성을 개선하고 핵심기능 중심으로 배치할 계획이다.명확하고 다양해지는 환경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제로베이스에서 조직을 재설계할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성과를 내고 조직의 발전에 기여한 성실한 직원에게는 반드시 보람과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조직과 개인의 목표를 부합시키는 방향으로 운영할 것이다.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은 경기도민이 주인이다. 그만큼 공공기관으로서 해야할 책임을 완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도민의 ‘이익’과 ’미래’를 의사결정의 중심에 두고 고민하겠다. 앞으로 더욱 성장해나갈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을 보여드리겠다. 한진경기자 / 사진=조태형기자

[경기인터뷰] 현정화 렛츠런파크 탁구 감독

Q 7월 말 비영리 법인인 ‘현정화 스포츠클럽’을 설립했다. 이 재단을 설립하게 된 배경은. A 스포츠 관련사업을 하고 있는 마이핏 범효진 대표이사와 평소 친분이 있었는데, 어느날 만나서 얘기하던 중에 재단설립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게 됐다. 은퇴이후 10여년 간 대표팀 지도자로 일해오면서 더 늦기전에 스포츠 꿈나무를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힘써야겠다고 생각해왔다. 이러한 뜻을 범 대표에게 내비치자 평소 추진력이 빠른 그가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통합 운영되고 있는 현 시점이 재단을 설립해 운영할 적기라는데 범 대표와 의견을 같이했다. Q 앞으로 재단에서는 어떤 사업과 활동을 펼칠 계획인가. A 우선, 올해 계획은 10~12월 전국 6개 지역에서 탁구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24일 CTS기독교방송과 MOU를 맺었으며, 이 대회서 나오는 수익금을 탁구 꿈나무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려고 생각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탁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종목들까지도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범 이사장이 평소 인맥이 넓은데 이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구상중에 있다. 탁구교실이나 아카데미 등 다각도로 사업을 논의하고 있지만 재단이 설립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Q 재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정의 재원과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한데, 재원조달과 인적 구성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A 대한탁구협회에 30년간 몸담은 뒤 은퇴한 분께 도움을 요청해 사무국장으로 모셔왔다. 탁구와 관련된 제반의 행정업무는 그분께서 맡아주실 계획이다. 재단을 설립하면서 나와 범 이사장이 주변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많이 하고 있다. 한동안은 재단이 자리잡기까지 살림을 꾸려 나가기 위해 지인들의 후원이나 기부를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탁구쪽에 내가 가진 인맥과 사업가로서 범 이사장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재단을 키워나갈 생각이다. Q 현 감독께서 이사장을 맡지 않고, 본인은 클럽 회장을 맡으셨다. 재단의 운영 방식과 범효진 이사장의 역할은. A 앞서 말했듯이 범 이사장님이 인적네트워크가 많아 그분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나는 재단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렛츠런파크 감독과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으로도 일하고 있어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범 이사장님이 재단에 대해서는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감사하게도 여러 방면으로 우리 재단을 도와주시겠다는 분들도 많이 나타나셔서 큰 힘이 된다. 또한 우리 재단이 사단법인이 됐기 때문에 기부나 후원을 하게 되면 세액공제 등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앞으로 후원과 참여가 더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그동안 국내에서는 홍명보, 최경주, 장미란, 양준혁 등 여러 스타선수 출신들이 공익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들 재단의 운영을 벤치마킹하거나 별도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사례는. A 홍명보 재단이 롤모델이다. 홍명보 재단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도 재단을 설립한다면 저렇게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오래전부터 아이들한테 꿈을 주고 싶었다. 요즘 아이들이 환경이 좋아지면서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데 운동을 통해 꿈을 심어주면 극기의 힘과 근성이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학창시절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나를 강하게 했기 때문에 목표가 뚜렷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아이들을 찾아 꼭 도움을 주고 싶다. 대표팀에서 선수들만 지도하면서 무언가 아쉬움을 느꼈다. 원석을 발굴하고 어릴 때부터 하나하나 가르치며 선수로 키워내고 싶다. Q 현 감독은 한국 여자탁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탁구여왕’으로 국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특히, 세계선수권에서 단식과 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을 모두 우승한 유일한 한국선수로 남아있는데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A 먼저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이 기억에 남는다. 5천여 명의 관중 속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것은 선수로서 최고의 행운이 아닌가. 또한 그때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가 너무 소중했고, 역사적인 대회였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시합을 뛰어보니 나도 모르게 7천만의 기운이 느껴졌고, 이것이 곧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21살이던 내가 당시 우승소감을 “이것이 바로 통일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밖에 1993년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식 우승을 한 것도 소중했던 경험이다. Q 선수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뒤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를 거쳐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람도 있고, 어려움도 있을텐데. A 선수 때는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왔지만, 지도자와 행정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이 크다. 선수와 지도자로만 오랜시간 활동해오면서 행정가로서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해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내 탁구 인생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이번 재단 설립은 진정 내가 원했던 것이며 또다른 ‘제3의 탁구인생’이라 생각한다. Q 후배 겸 제자인 유승민이 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된 이후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A 유승민은 선수시절이나 지도자를 할 때나 늘 총명하고 리더쉽을 갖췄으며, 성취감이 있는 친구였다. 무엇보다 행정가로서 유승민이 부럽다. 나는 국가대표 선수생활 10년, 대표팀 코치와 감독으로 10년 등 총 20년을 보내면서 행정가로서의 꿈에 투자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승민이가 협회에서도 많이 도와줬지만 나는 혼자만의 힘으로 하다보니까 그런 길이 있는 줄도 잘 몰랐다. 자기계발에 조금 더 몰두했다면 나도 행정가로서 꿈을 더 빨리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평소 승민이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등 많이 의지하고 있으며, 내가 이루지 못한 부분을 이뤄줘서 고맙고 대견하다. Q 평생 탁구인으로서 앞으로의 목표와 바램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들려달라. A 나는 죽는 순간까지도 탁구인일 것이다. 40년을 탁구만 해왔지만 탁구를 빼면 내 인생은 없다. 탁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후배들한테 돌려주고, 앞서가는 여성 스포츠인의 한사람으로 다른 종목을 포함한 여성 후배 선수들을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이번에 설립한 재단이 앞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주변에서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리며,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 현정화를 기억해주시는 국민 한분 한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좋은 모습으로 계속 기억될 수 있도록 지도자나 행정가로서 더욱 노력하겠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ㆍ정리=김광호기자

[경기인터뷰] 홍종순 동남보건대학교 총장

“선택과 집중을 통해 보건ㆍ의료계열 특성화를 완성하고, 독창적이면서 확산 가능한 4차 산업혁명 선도 대학으로 육성하겠습니다”4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수도권 유일의 보건대학’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동남보건대학교의 최근 성장세가 매섭다. 지난 4월 진행된 ‘2017년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사업’ 연차 평가에서 그동안 터줏대감으로 자리하던 유수의 대학들을 제치고 당당히 ‘A등급’을 받았다. 이는 수년간 구조개혁평가에서의 어려움을 딛고 지난해 특성화전문대학 육성사업 신규사업 참여대학에 선정된 지 1년 만에 얻어낸 성과이기에 더욱 값진 결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이 같은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어낸 데에는 특성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보건ㆍ의료에 특화된 동남보건대를 육성ㆍ발전시키는 데 앞장 선 홍종순 총장(61)이 있었다.학생들의 취업률 향상은 물론, 보건의료서비스 영역의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는 동시에 교육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등 수도권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건대학으로 우뚝 선다는 계획을 하나씩 실천해 나가며 지난달 27일 연임된 홍 총장으로부터 동남보건대 미래 비전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Q 2년간 다시 동남보건대 총장을 맡아 학교를 이끌게 됐는데. A 동남보건대는 그간 전국 평균보다 10%가량 높은 국가고시 합격률과 75.6%라는 양질의 특성화 계열 취업률을 기록하는 등 보건의료 인재 양성에 선두주자 역할을 해왔다. 글로벌 취ㆍ창업을 위한 언어교육 및 보건3D프린팅융합교육을 실시하고, 성과관리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최근 각광을 받는 ‘융합인재’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발 빠른 대응에도 나섰다. 고령화시대 대비 보건ㆍ의료의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하는 한편 올해부터 식품제약과를 신설,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독창적 인재 발굴도 학교 발전에 한 몫했다.특히 우리 대학은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했다. 수도권 보건ㆍ의료산업 분야에 우수한 인력을 공급하고, 노인ㆍ장애아ㆍ다문화 가족 등 지역사회 약자를 보듬는 현장실습,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들과 협력해 지역민들에 양질의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번 연임을 통해 보건의료계열 특성화 위한 구조개혁, 보건ㆍ의료계열 4차 산업혁명 선도 대학 완성, 현장중심형 교육, 글로벌 마케팅 확대 등 동남보건대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이를 통해 양질의 취업처 확보를 위한 노력과 해외 유학생 유치 등에도 힘써 우리 대학의 미래를 밝혀 나가겠다. Q 동남보건대가 그 동안의 어려움을 딛고 정상화를 위한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지. A 그동안 우리 대학은 전문대학기관평가인증에서 ‘교육품질우수 인증대학’으로 선정됐고, 간호교육인증평가 결과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간호학 학위과정을 5년간 인증받았다. 교육부 주관 4주기 교원양성기관평가에서 전국 1위를 해 최우수 교원양성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많은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1주기 특성화평가에서 정량지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정성지표에서 대학의 역량보다 낮은 평가를 받아 근소한 차이로 특성화 대학에 선정되지 못했다. 이 같은 결과 때문에 대학 구원성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다’라는 신념하에 산학협력단을 중심으로 동남보건대학교 특성화를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해 2주기 특성화사업 평가에서 신규로 진입하는 성과를 이뤄냈고, 또 올해 4월에는 연차 평가에서 A등급이라는 놀라운 성적표를 받았다. 또 특성화전문대학육성사업을 위해 우리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자율적이고 선제적인 학사구조를 만들고, 강점분야 위주로 대학의 체제를 개편했다. 일자리 현장중심의 교육과정 및 취업 친화적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에도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왔다. 특히 ‘건강사회 맞춤형 휴먼케어 전문인재 양성’을 목표로 자연과학계열을 특성화계열로 정하고, 보건의료분야를 주력산업분야로 설정했다. 보건의료산업 종사자의 국내외 인력 수요변화에 따른 국제화와 현지화가 가능한 인력을 양성하고, 현장중심의 교육과정에서 학습한 내용을 직접 산업체 현장실습을 통해 숙련시켜 직무역량이 높은 인재를 배출키로 했다.이를 통해 산업체가 요구하는 전문직 특화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산업체와 대학교육의 미스매칭을 해소하며, 보건의료서비스 영역의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대학의 책무인 교육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등 성과창출을 위해 노력해 나갈 방침이다. Q 지난해 구조개혁평가에서의 어려움을 딛고 재정지원제한에서 해제되고, 올해는 특성화대학 평가에서 상위 등급에 포진되는 등 예전의 명성을 찾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어떠한 면이 주효했다고 평가하는지. A 우선 기획처를 기획조정처로 명칭 변경하고 총장 직속기관으로 승격시켜 전략기획팀과 전략운영팀으로 업무분장을 했다. 또 위기탈출 프로젝트(3Ds Project)를 수립, 모든 구성원들과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해왔다. 기존 중장기 발전계획 이행실적을 검토하고, 대내외 대학 교육환경 및 내부역량을 분석해 수도권 중심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자 오는 2020년까지의 대학 특성화 및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특히 우리 대학의 모든 구성원들은 학사구조개편, 재정분야 개선, 학생지원 및 교육체계 개선 등의 3개 분야 26개 세부이행과제를 도출한 후, 이행과제를 성실히 수행해 대학체질 개선에 주력했다. 이와 함께 학생지원 및 교육체계 개선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전문성 있는 현장직무중심형 전임교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장중심교육 운영을 위해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의 교육과정을 도입, 운영하고 있다. 또 입학부터 졸업 때까지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최종적으로는 취업까지 연결되는 ‘Schoool Life Cycle’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결국 대학의 모든 구성원들이 노력해준 원동력을 바탕으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 됐다. Q 수도권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건대학이 되기 위한 비전과 실현 계획이 있다면. A 우리 대학은 ‘지식의 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No.1 드림플러스 동남보건대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는 것’에만 그치는 교육이 아니라 ‘할 줄 아는 것’을 지향하는 최상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학생, 기업, 지역사회)의 새로운 가치창조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학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수요자 중심의 대학교육 △국제화와 지역산업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키는 글로벌 역량 향상 △취업지원 활성화를 통한 창조취업 △대학의 특성화 목표 달성을 위한 내부 시스템 혁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산학협력 △산업체의 요구를 반영한 현장중심형교육 특성화 등을 6대 전략과제로 세웠다. 또 ‘대학 특성화 및 중장기 발전계획’에서 수립한 비전과 전략과제를 3단계의 발전방향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단기적으로는 내실경영에 기반한 질적 경쟁력 확보를 거쳐 중장기적으로 2020년까지 지방발전을 이끄는 우수대학으로의 도약을 위해 단계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진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통해 △고객 구성원의 만족 극대화 △전문적이고 실무적인 교육서비스의 선도 △기업체 및 지역사회와의 파트너쉽 강화 △내부경쟁력 향상을 이뤄내 대한민국 대표 보건전문대학의 토대를 만들어 나가겠다. 끝으로 연임에 대한 부담이 많지만, 학교와 법인 그리고 학생이 모두 하나 돼 동남보건대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이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김규태기자

[경기인터뷰] 이우영 로이교육재단 이사장

우리나라 최초로 컴퓨터로 전산 직업교육을 시행하고, ‘체험식 영어마을’을 만들어 글로벌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는 한국 직업교육의 선두주자가 있다.로이교육재단을 책임지고 있는 이우영 이사장이다. 그는 80년대 초 고교 교사를 그만두고 돈 없고 못 배운 아이들을 떳떳한 사회인으로 양성해보겠다며 교육전문학교를 만들어 현재의 로이교육재단까지 일궈냈다. 현재 그가 이끄는 영어마을과 실용전문학교, 직업전문학교만 총 8곳에 달한다. 다음은 이우영 로이교육재단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처음 직업전문학교와 실용전문학교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A 33년 전인 29살 때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었다. 그때만 해도 고등학교에서 대학가는 비율이 30%가 안됐다. 그렇다면 대학을 못 가는 70% 아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정말로 쓸모없는 아이들인가? 공부 못해서 못 갔느니 실력이 없어서 못 갔느니 하면서 모든 책임은 그 아이들한테 돌아갔다. 이게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고뇌이자 아픔이었다.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목적은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면 직업이라는 것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배우도록 하면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이 아이들에게 직업교육을 시켜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대학 못간 아이들 다 와라. 너희들도 소중한 사람들이다”라고 외치면서 직업전문학교와 실용전문학교를 시작하게 됐다. Q 30여 년 전에는 직업전문학교와 실용전문학교라는 말조차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었을 텐데. A 요즘에서야 우리나라도 직업교육을 시켜야 된다거나 창의적인 아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 재단에선 이미 30여 년 전에 이미 이런 것을 시작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주고 인도해주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한다.30년 전만 하더라도 직업교육이라고 하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나 재소자들 같은 사람들한테만 직업교육을 시킨다는 인식이 많았다. 벽돌쌓기나 미장 같은 것들이 당시 우리사회에서 해왔던 직업교육이다. 이게 잘못된 것이다. 우리 재단에선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컴퓨터로 전산 관련 직업교육을 시작했다. 관련 법 조차 없어 노동부를 찾아가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노력도 많이 했다. 그때는 심지어 직장인과 대학생들도 찾아와서 교육을 받곤 했다. Q 일반 학교교육과 비교했을 때 로이재단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지. A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거꾸로 교육’ 방식을 적용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한번 정도 경험을 하게 한 다음, 그것에 대한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빠르다는 것이다. 전산교육을 시킬 때도 우리 재단에선 80년대 초부터 거꾸로 교육을 했다. 일단 전산 프로그램을 가져다가 일단 가동을 해보고 나서 무슨 프로그램인가 하나씩 뒤집어 보는 방식이다.먼저 겪어보고 난 후 이론을 하나씩 배우니까 아이들은 신기하고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방정식을 배워도 그 방정식을 어디다 써먹는지를 우리는 알지를 못한다. 그저 시험에 나오니까 외우기만 했을 뿐 어떻게 응용하는지를 모른다. 그런데 아이들을 바깥에 데리고 나가서 땅위에 줄자로 가로와 세로를 재보고 면적을 구해본다면 이해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Q 재단명이 여러 번 바뀐 것으로 아는데. A 처음에 팔봉산업교육원에서 글로벌에듀로 바꿨다가 올해 들어 로이교육재단으로 다시 변경했다. 처음 팔봉이라고 정한 이유는 내 고향이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이라 그렇게 했다.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네가 할 수만 있다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다.그것 때문에 이쪽에 발을 들이게 됐고, 아버지 호도 팔봉으로 지어드리고 팔봉으로 재단 법인명을 한 것이다. 그 이름으로 계속 이어오다가 영어마을도 하게 되면서, 팔봉이란 이름이 촌스럽다는 의견이 많아 글로벌애듀로 바꾼 것이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우리재단이 30년이 넘었고 뭔가 정착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로이(LOY)로 바꾼 것이다. 로이는 내 이름 이우영 이니셜이다. Q 30년 동안 이어오면서 교육 프로그램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 A 직업은 계속 변천하게 돼 있다. 우리는 거기에 따라가는 측면이 하나 있고, 미래에 어떤 직업이 나타날 것인지 예측해서 그 학과를 미리 만들어야 된다. 그래서 직업교육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게 된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 또한 두 가지 인력을 양성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지금 인기가 좋은 분야라고 거기에 맞는 사람을 많이 양성을 해놓으면, 몇 년 후에는 포화가 돼 실업자가 생긴다.이러한 인력을 잘 고려해야 한다. 미래에는 어떤 직업이 필요하고 인력은 어느 정도 필요할 지 예측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대학이나 전문교육기관 같은 곳에서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관련분야 인력을 양성해놓지 않는다면 인력이 필요한 기업들과의 미스매칭(부조화)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이런 것을 잘 조율하는 게 필요하다. Q 인력양성 측면에서 현행 대학교육 방식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A 앞에서 말한 미래의 인력활용에 대한 예측시스템에 있어서 처음에는 우리나라 대학 시스템이 참 좋았다. 인하대는 조선, 한양대는 건축·토목, 광운대는 전자, 건국대는 축산학과, 홍익대는 예술계 등 각자 전문화되고 강한 분야가 있었다. 사실 이런 구조를 계속 유지해왔더라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대학들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교육보다는 경영이란 측면으로 빠져들고 종합대학이라는 영역을 키우다보니 온갖 학과들을 만들게 됐다. 결과적으론 자신들이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다.대학이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기초학문을 중시하는 부문이 있어야 되고, 또 하나는 실용학문을 하는 분야로 나눠 가야 했다. 지금 대학들은 이 두 가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짬뽕처럼 마구 섞어버린 것이다. 대량실업이나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이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진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나을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경기가 좋아도 기업은 아무나 데려다 쓰지를 않는다. 기업에게 필요한 사람만 만들어내면 기업은 가져다 쓰게 돼 있다. 반면에, 필요하지 않는 불량품을 만들어내면 이들은 절대로 구입하지 않는다. Q 현행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A 교육의 목적은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늘 아이들에게 “너 지금 고생해서 공부 열심히 하면 나중에 잘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어”라고 말해왔다. 그럼 아이들은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오늘도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아이들이 막 뛰어가서 학교를 가고 싶고 이러한 학교는 없는가?이게 항상 의문이었다.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줘야 하는 역할은 어른들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그렇지를 못했다. 앞으로는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더불어 그런 아이들이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면서 자신의 갈 길을 찾을 수 있게끔 만들어줘야 한다. 사람마다 다르고 개성이 있고 특성이 있다. 이것을 제대로 살려주고 찾아주면서 그 길을 가게 할 때 각 분야에서 최고의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Q 인천시영어마을과 서구영어마을도 운영하고 있는데. A 아이들만 잘 가르쳐놓으면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이 아이들은 세계시장으로 뛰어갈 것이다. 영어마을을 만든 이유가 여기 있다. 아이들을 우리나라 안에만 가둬놓을 게 아니라 세계적인 넓은 시장에 풀어놓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말을 할 줄 아는 게 우선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1995년도에 ‘영어 체험식 마을’을 만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영어교육은 초·중·고교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 영어를 배웠으면서도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이 손을 꼽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외국인과 직접 말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노래방이 생겨서 전 국민이 가수가 됐듯이, 영어마을에선 아이들이 외국인들과 뒹굴면서 영어를 마구 쓰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곳은 영어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곳이다. 이게 바로 ‘거꾸로 교육’이다. Q 앞으로 로이교육재단의 교육방향은 무엇인지. A 우리는 즐겁고 행복한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앞으로의 교육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같이 연결된 교육이 될 것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이론적인 것은 온라인으로 하고, 아이들이 와서 하는 것은 오프라인에서 교육하는 실습장이 될 것이다. 우리 로이 교육장은 직업교육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이 사회가 필요한 직업인으로 만들 것인지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계속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아마도 자연주의 교육 쪽으로 많이 갈 것이다. 아이들이 책 없이 그냥 자연에서 주제를 가지고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교육에 치중하면서 언어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될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아닌 세계 곳곳으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글로벌화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게 로이교육재단의 목표이자 앞으로 할 일이다. 김준구기자 사진=장용준기자

[경기인터뷰] 최종성 또봉이통닭 대표

치킨은 남녀 노소 구분없이 모두에게 사랑받고, 언제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국민 대표간식으로 자리매김 한지 오래다. 수 많은 치킨 브랜드가 국민들의 입맛을 유혹하는 가운데 기존 치킨보다는 촌스럽지만 차별화된 복고풍 통닭으로 전국구 브랜드로 성장한 업체가 있다.바로 ‘또봉이통닭’이다. 최근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가격 인상 논란이 불거지기 이전, 오히려 가격을 내리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된 또봉이통닭은 점주와 소비자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실패를 교훈 삼아 치킨계의 성공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최종성(45) 또봉이통닭 대표를 만나 그의 인생 역정과 경영 철학을 들어봤다. Q 대형 프랜차이즈 치킨업체들의 가격인상 러시 속에 올해 들어 두 번째 인하 결정을 내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A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다. 또봉이통닭은 지난 3월 가격을 5% 인하했다. 치킨의 경우 겨울이 비수기이고 당시 조류 인플루엔자(AI)까지 전국을 들썩이게 하며 점주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점주들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들에게 베풀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했다.마진율이 낮기 때문에 큰 폭의 인하를 할 순 없었지만 제한된 품목에서 5% 인하를 하고, 이를 본사에서 보전해준다면 점주와 소비자 모두 좋을 것 같아 점주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을 내렸었다.한 번 해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최근 치킨계가 양계업계의 불매운동, 가격인상 등으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또봉이통닭이 큰 회사는 아니지만, 타 브랜드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 끝에 1차로 최대 10%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 가장 힘든 사람은 점주들이고,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치킨시장이 더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이윤을 줄이면서 인하가 가능했던 요인은 무엇인가. A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임대료, 직원 월급, 경비 등 많은 비용이 발생되기 때문에 이윤을 내야 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소비자가 외면하면 닭 판매수가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이윤이 줄어든다.적게 파는 것 보다 이윤을 낮추고 좀 더 많이 판매하면 소비자들에게 착한 이미지로 어필할 수 있고, 응원해줄 것이라는 기대심이 있었기 때문에 적게 남더라도 ‘박리다매(薄利多賣)’로 가자고 생각했다.또한 또봉이통닭은 육계 공급업체인 (주)하림과 연중계약을 맺어 닭의 시세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연중 균일가로 공급받는다. 이 때문에 점주들의 부담을 덜 수 있고 가격 인하도 가능했다. Q 또봉이통닭이 홀로 가격을 인하해 타 브랜드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것 같다. 주변 업체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A 가격 인하가 이슈가 된 이후 질책도 있었고, 격려도 있었다. 하지만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해 가격을 인하한 것이 아니다. 또봉이통닭도 정책이 있고, 계획이 있고, 방향이 있다. 1차 인하를 지난 3월에 했기 때문에 가격 인하가 이슈가 되기 위한 단발적 이벤트가 아니라고 충분히 설명했다.점주들이 힘들어하고, 소비자들이 외면할 때 본사는 새로운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점주가 있고, 점주가 있기 때문에 본사가 존재한다. 따가운 시선도 있지만 점주와 소비자를 생각할 때는 강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주변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는 소비자와 점주가 함께 살아갈 윈윈(win-win) 전략이었다. 동종 업체들의 왜곡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내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다. Q 반면 일반 소비자들과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A 포털사이트의 댓글을 보면 ‘앞으로 또봉이만 사먹겠다’, ‘우리동네에도 가맹점을 만들어달라’ 등 긍정적인 의견이 95% 이상을 차지했고, ‘단발적인 기업 마케팅이다’, ‘상술이다’ 등의 부정적 견해도 1~2% 있었다.부정적 견해에 대해 옹호하고 응원하는 네티즌들이 많아서 큰 힘이 됐고, 창업 문의전화도 빗발쳤다. 생각 외로 반응이 너무 좋아 감사할 뿐이다. 소비자들의 성원에 보답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Q 최 대표께서는 씨름선수 출신으로 알고 있다. 운동과 거리가 먼 치킨 프랜차이즈를 창업하게 된 계기는. A 학창시절 씨름 선수로 활동하다가 대학 진학 후 발목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 두게 됐다. 학업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씨름을 그만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대학을 중퇴하고 머리를 식힐 겸 무작정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말도 안통하는 나에게 늘 친절하게 대해주는 일본 사람들을 보며 이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배워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귀국했다가 일본으로 다시 건너갔다. 어학원을 다니며 야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돈을 모아 슈퍼마켓 앞에서 액세서리 노점상을 하다가 2년 만에 그 슈퍼마켓을 인수했다.장사운이 있었는지 옆가게를 하나씩 인수하게 됐고, 20대 후반 기반을 마련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업 아이템을 물색하던 중 부동산 경기가 좋아 공부를 시작했고, 창업 컨설팅까지 배우게 됐다. 남들을 도와주는 창업컨설팅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창업을 하는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만두가게를 운영했다.만두가 겨울에는 매출이 좋은 반면, 여름에는 떨어져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인들에게 내줬던 10여 개의 가맹점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결국 첫 외식업에서 실패를 맛봤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대중적인 메뉴를 고민했고, 전국의 치킨집을 돌아다니며 배우다 또봉이통닭을 창업하게 됐다. Q 2011년 창업 이후 6년 만에 500개 매장이 넘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빠른 성장을 이끈 비결은 무엇인가. A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은 많은 사람이 도전하지만 폐업 또한 많은 업종이다. 치킨 업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다. 기존 치킨보다 차별화되면 성공할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맛과 가격에 초점을 맞췄다.크기는 좀 작게 보일수 있지만 파우더를 얇게 입히고, 기름을 빼서 건강식으로 만들어보자는 콘셉트를 적용했고, 직접 닭을 튀겨 판매하며 소비자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 고민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려울수록 옛 것을 찾는다. 기존 치킨보다 촌스럽지만 차별화된 복고풍의 통닭을 만들자는 게 잘 적중한 것 같다. Q 스포츠인 출신 기업인으로서 경영철학과 직원들에게 평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A 만두로 아픔이 있었지만 여기서 주저앉으면 나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항상했다. 선수 때부터 승부욕이 강했지만 이제는 좀 달라졌다. 점주들의 의견을 듣고, 소비자의 눈높이로 생각하는 철학을 갖게 되며 ‘123 법칙’을 접목시켰다.본사의 갑질을 예방하기 위해 ‘점주들에게 1번만 말하고, 점주들의 이야기는 2번 듣고, 점주들이 한 이야기는 3번 생각하고 위에 전달하라’고 늘 직원들에게 강조한다. 말을 많이 하기보단 많이 듣고 소통해 실천하는 ‘123 법칙’이 잘 통하고 있는 것 같다. Q 또봉이통닭의 향후 비전과 목표가 있다면. A 사실 이번에 또봉이통닭이 이슈가 되기 전까지는 가맹점을 늘리고 해외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무의미한 것 같다. 정상에 올라가는 것 보다 정상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 이번을 계기로 노하우와 경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착한 이미지’가 큰 무기라는 것을 배웠다.착한 이미지를 갖기 위해서는 소비자 중심의 눈높이와 점주와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것 같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착한이미지, 착한가격으로 소비자를 생각하는 기업 운영을 하겠다. 현 상황에 자만하지 않고 신뢰와 믿음을 주는 기업으로, 소비자, 점주와 함께하는 회사를 만들겠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정리=홍완식기자 사진=전형민기자

[경기인터뷰] 박찬호 안양 세계태권도한마당 조직위원장

오는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 나흘간 열리는 ‘2017 안양 세계태권도한마당’은 지금까지의 태권도 대회와는 사뭇 다르다.대회명을 ‘한마당’이라고 정한 것처럼 단순한 격투대회가 아니라 세계인들과 안양시민이 함께 어우러져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준비하고 있다. 非 체육인임에도 조직위원장의 중책을 맡아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박찬호(71서원풍력기계(주) 회장) 조직위원장을 지난 8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만났다. 박찬호 위원장은 기업인 출신답게 성공적인 대회 개최와 더불어 안양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안양의 경제발전을 함께 도모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안양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박 조직위원장에게 이번 대회의 준비상황과 그 과정에서의 애로사항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박찬호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Q 2017 안양 세계태권도한마당 조직위원장의 중책을 맡으셨는데 계기는. A 먼저 우리나라 대표 문화콘텐츠인 태권도를 안양시의 발전에 활용하겠다는 이필운 안양시장의 발상으로 안양시가 이번 한마당 행사를 유치하게 됐다. 이후 대회를 통해 안양지역 경제를 활성화시켜 보자는 취지에서 기업인인 내게 조직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이 시장의 요청에 공감해 흔쾌히 수락했다. Q 안양 세계태권도한마당은 어떤 행사인지 규모와 성격에 대해 소개해 달라. A 2017 안양 세계태권도한마당은 태권도라는 전통적 무예의 가치가 구현되는 태권도 최대 규모의 축제다. 이번 행사에 전 세계 60여 국가에서 6천여 명의 선수 및 관계자가 참가한다. 태권도 기술의 균형 발전을 통해 태권도인은 물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태권도 문화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의 대회다. 겨루기 중심의 종목으로만 인식되어온 태권도에서 탈피해 품새, 격파, 태권체조 등의 경연을 통해 기술발전을 이루는 것이 목표다. 높이 날아올라 펼치는 신기의 기술, 엄청난 에너지를 한 순간에 뿜어내는 위력 격파, 10여 명의 팀원들이 펼치는 군무를 보면 태권도의 다양성과 창의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Q 조직위원회가 출범한 지 두달 가까이 지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꾸려졌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A 지난 2015년 12월 유치위원회를 구성해 첫 발을 디뎠다. 이후 여러 심사 절차를 거쳐 2016년 11월 국기원으로부터 유치가 확정됐으며, 올해 들어 시의회, 안양시태권도협회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필요예산을 확보하는 등 기초 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지난 3월 국기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4월 말 조직위원회가 꾸려진 뒤 5월 조직위원회 현판식을 갖은 후에 이번 달 3일 공식 출범했다. 조직위원회는 위원장과 사무총장 이하 4개 본부, 13개 팀으로, 총 250여 명이 일하고 있다. 현재 조직위는 한마당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기 위해 기본계획과 세부실행계획을 수립ㆍ시행하고 있으며, 사전홍보, 선수단 등록, 선수들을 위한 교통, 숙박 문제에서부터 선수, 관계자, 관람객의 안전대책 등에 이르기까지 제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Q 그동안 국내외에서 많은 태권도 행사가 치러져 오고 있는데, 이번 안양 대회가 추구하는 목적과 추진방향은 어떤 것인가. A 국기인 태권도의 세계적 축제를 통해서 태권도 발전은 물론 안양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2017 안양 태권도 한마당은 선수와 관람객이 하나 되는 행사가 되도록 준비할 것이다. 국기원 모토인 ‘태권도로 하나 되는 세상’에 즐거움과 소통, 참여라는 개념을 보태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대표문화를 4차 산업의 기술을 빌어 태권도를 통한 즐거움으로 모두가 하나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안양지역 경제 발전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지식기반 창조산업을 210여개 국가의 親 한국문화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태권도에 활용할 계획이다. 첨단기술을 통해 각국 선수단, 관계자, 그리고 세계의 관람객들에게 우리 안양시를 알리고자 한다. Q 종전 대회와 차별화 된 안양만의 특색을 강조한 것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A 본 경연 외에도 볼거리가 있는 관람형 콘텐츠의 도입, 실시간 정보공유 시대에 걸맞게 전 세계의 간접 관람자들에게 태권도의 진수와 우리의 통신기술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태권도를 수련하지 않은 일반 관람객들도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게 함으로써 즐거움과 함께 태권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자 한다. Q 6천여 명의 참가자들을 수용하려면 숙박시설과 교통 등 여러 가지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을텐데 준비하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나. A 행사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예산문제로 어려움이 있다. 25회를 맞이하는 세계적 규모의 행사임에도 중앙정부 지원 없이 지방정부 보조금과 국기원 자체 예산을 모아 치르는 행사라 부족한 점이 많다. 아울러 우리 안양시에 대규모 선수단, 관계자가 편안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대형 숙박시설이 미흡하고, 주변 관광시설들의 기본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도 원활하고 만족스러운 행사 진행을 준비하는데 다소 아쉬운 점이다. Q 또한 4일간 원활한 대회 운영을 위해서는 조직위원 뿐 아니라 많은 민간 참여가 필수적이다. 자원봉사단 운용 계획은. A 이번 2017 안양 세계태권도한마당은 세계 60여 개국 6천여 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운영에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 안양시와 국기원 인력 외에 통역봉사자 50여 명과 행사지원 일반 봉사자 200여 명이 함께 참여하여 행사를 치르게 된다. 공항 입국에서부터 선수 수송, 숙소운영, 식당안내, 경연지원, 출국수송 등 각 분야별로 봉사자가 함께 참여하여 성공적인 행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자원봉사자는 현재 5월 29일부터 6월 29일까지 모집 중이다. Q 안양에서는 2006년 세계롤러선수권대회를 개최한 이후 11년 만에 큰 국제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기대되는 효과와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은. A 우리 안양시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안양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제한된 예산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기 위하여 시 당국과 지역기업, 경제단체, 관련단체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하고 있다. Q 앞으로 대회 개막까지 한 달여 남았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인데 남은 기간 어느 부분에 역점을 둬 일할 계획인지. A 축제 분위기의 한마당 대회 개최는 물론, 우리 안양시를 방문해 주시는 선수 및 임원 관계자들에게 안전과 편의, 그리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안양의 발전에 이번 행사가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할 것이다. Q 세계태권도 한마당의 성공 개최를 위해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경기도민들께서 이번 행사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란다. 해외에서 참가하는 선수단 및 관계자에게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시고, 우리 안양을 그분들께 알리는 민간사절 역할을 해주실 것도 부탁드린다. 7월 29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대회기간 가족, 친지 분들과 함께 경기장을 방문하셔서 관람해주시고, 재미있는 행사에 직접 참여해 국기 태권도의 즐거움을 함께해 주시기 바란다.대담=황선학 체육부장정리=김광호기자 사진=김시범기자

[경기인터뷰] 송달용 경기도민회 회장

1천300만 명이 모여 사는 경기도는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지만 사실 경기도에 대한 정체성을 찾기 힘들다. 학업, 취업을 위해 각 시ㆍ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한 데 섞여 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기도에 대한 애향심, 자긍심 등의 정체성을 경기도민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이 같은 경기도민의 애향심과 정체성을 고취시키기 위한 역할을 하는 곳이 경기도민회다. 지난 1986년에 설립한 경기도민회는 도민 애향심, 정체성 고취뿐만 아니라 장학재단을 설립, 매년 500명의 저소득층 도민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고 도내 장거리 통학 학생들을 위해 서울에 장학관을 운영하는 등 ‘경기도’라는 틀 속에서 모든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경기도민회를 이끌고 있는 송달용 회장은 “경기도와 경기도민이 하나로 통합되기 위해 경기도민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Q 올해 경기도민회 역점사업은 무엇인가 A 경기도는 천 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그간 모든 분야에 걸쳐 중심지 역할을 다 해왔다. 경기도의 역사와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역할을 하는 곳이 경기도민회다. 도민회가 만들어진 1986년도 당시 회원 대부분 4050세대지만 세월이 지나다보니 회원도 고령화되고 새로운 회원 가입도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경기도민회의 첫 번째 역점사업은 1천300만 경기도민에게 경기도민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리는 것이다.31년 동안 경기도민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경기도민회이지만 우리가 경기도민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홍보가 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야 우리가 하는 장학사업 등의 혜택도 경기도민 모두에게 골고루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두 번째는 경기도의 도정과 각 시ㆍ군의 정책 등을 도민에게 홍보하는 일이다. 경기도와 각 시ㆍ군이 하고 있는 일들을 도민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복지, 서비스 혜택도 아는 사람한테만 가는 경우가 생긴다. 경기도와 각 시ㆍ군이 홍보를 자체적으로 하고 있지만 이에 더해 우리도 나름대로 회원들을 대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Q 도민회 조직회 활성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계획하고 있는지. A 최근 경기도의원과 31개 시ㆍ군 의원들, 그리고 지난 2015년과 지난해에 장학금을 받은 384명 학생의 학부모, 그리고 장학관 졸업생 등에게 가입권유서를 총 3천300부 배포했다. 내용은 경기도민회가 하고 있는 사업들과 계획 등을 담았다. 경기도민회가 장학금, 장학관 사업 등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회원가입이 끊기면 더 이상 이런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그랬더니 한 달 새 120여 명이 가입을 했었다. 공감으로 이끌어낸 성과라고 볼수있다. 또 지난 4월부터는 회원 전체에게 생일카드를 보내고 있다. 회원들의 생일을 잊지 않고 축하한다는 것이 큰 일은 아니지만 생일을 챙겨줘서 고맙다는 감사전화가 오기도 한다. 평소 가입은 했지만 경기도민회에 무관심하게 있던 사람들도 한 번씩 경기도민회에 대해 되새김을 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참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2천300명 회원에게 지속적으로 생일축하 카드를 보낼 계획이다. 또 하나는 회원들의 친목사업이다. 최근 등산대회와 문화탐방 등을 하고 있는데 문화탐방은 해외나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도내 우수기업체 탐방을 한다. 경기도 내에 동양피스톤 등 세계우수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경기도 홍보도 함께하기 위함이다. Q 경기도민회는 장학사업, 장학관이 매우 대표적인데. A 매년 경기도민 500여 명 학생에게 12억가량의 장학금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굳이 세어본다면 총 2만9천 명, 180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한 셈이다.장학관 역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우선 선발해 경기도에서 서울로 장거리 통학하는 학생들을 위해 서울에 기숙사를 세워 학생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또 장학관 졸업생들이 따로 장학회를 만들어 경기도민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모으고 또 동창회를 만들기도 했다. 직장인이 된 졸업생들은 후배를 위해 직장 멘토 역할도 하고 상담, 취업 알선 등도 하고 있어 나름대로 순기능도 생기고 있어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준 장학금, 장학관의 혜택을 누린 이들이 다시 고향 후배들을 돕기 위해 이러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자체가 경기도민으로서의 자긍심, 애향심 등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Q 경기도민이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A 사실 경기도의 정체성을 딱 무엇이라고 정의하기 힘들다. 경기도를 색깔로 따지면 백색(흰색)이다. 무색이라는 말이다. 지방색이 없다. 또 경기도는 무취다. 구수한 냄새가 없다. 또 무미다. 짜릿한 맛도 없다. 무원(無援)이다. 정권이 바뀌면 장관, 총리 등을 임명하는데 이때 호남, 영남 사람이 임명됐다라는 말만 하지 “경기도 사람이 장관, 총리가 됐다” 라는 말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색, 무미, 무취, 무원인 경기도다. 그런데 이를 다르게 본다면 경기도는 바다와 비슷하다. 1천300만 인구가 모두 다른 시도에서 와서 더불어 잘살고 있다. 결국 경기도는 ‘융합’, ‘표용’이 정체성이 셈이다. Q 경기도민 애향심 높이기 위해 경기도민회의 역할이 있다면. A 경기도민회는 경기도민의 애향심 고취가 궁극적인 큰 목표다. 진짜 경기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은 아마 1천300만 중 10%도 안될 거다. 결과적으로 애향심을 가질 수 없는 구조다.경기도의 복지혜택을 받는 이들은 경기도의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 경기도의회에서 ‘경기도 깃발’을 게양해 자긍심을 고취시키자는 조례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경기도 곳곳에 경기도기를 꽂아 자긍심, 애향심 등을 높일 필요가 있다.또 하나는 경기도의 노래다. ‘경기도의 노래’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경기도민이 많을 거다. 적어도 우리 장학관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경기도의 노래를 알려주고 또 한 번 같이 부르면 경기도에 대한 기억이 얕게나마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Q 지난해 ‘평택항 수호 범 경기도민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는데 활동계획은 A 평택항 매립지 경계분쟁은 2009년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매립지 관할 구역은 행자부장관이 결정하기로 했다.이에 따라 지난 2015년 행정자치부 중앙분쟁 조정위원회에서 국토이용계획의 효율성과 주민의 편의성, 행정의 효율성, 지리적 여건 등을 감안해 매립지 96만 2천336㎡ 중 평택시에 67만9천589㎡를, 당진시에 28만 2천746㎡를 분할 결정했다.이에 당진, 안산시에서 대법원 소송과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평택항 수호 범 대책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경기도민회지 등을 통해 경기도민에게 정확히 알리고 경기도 출신 국회의원 60명 중 안전행정위원회에 소속된 7명의 의원을 방문해 평택항 경계 분쟁 현황을 설명할 것이다.또 지방자치법 일부 개정안에 대한 부당성을 국회차원에서 강력하게 제기하도록 할 예정이며 평택항 매립지는 평택시 관할이 당연하므로 당진, 아산시의 부당한 대응방식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해 나갈 예정이다. Q 마지막으로 경기도에서 오랜 공직생활 해왔는데 후배 공무원들에게 당부할 점이 있다면. A 요즘 공무원 되려는 경쟁이 치열한데 대부분 직업이 안정되고 퇴직하면 연금을 받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안다. 공직생활은 사실 지역발전에 대한 자기 소신으로 해야 한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뭐든지 적당히 하기 마련이다.자리에 앉아 적당히 월급 받고, 또 상사 눈치 보며 일한다. 이런 행동보다는 우리 지역발전, 더 나아가 국가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공무원의 보람은 여기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후배 공무원들이 꼭 이런 점을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대담=김창학기자 정리=허정민기자 사진=전형민 기자

[경기인터뷰] 전종민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장

“식중독 사고는 예방과 함께 확산 방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FIFA U-20 월드컵 대회에서 자칫 발생할 수 있는 식중독 사고 차단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전종민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장(58)은 여름철을 앞두고 식중독 사고 예방을 위해 사전 대비가 철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경인식약청은 한창 진행 중인 FIFA U-20 월드컵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경기장(매점)과 선수 숙소(호텔), 도시락 제조업체 등 식음료 시설에 대한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전 청장은 “대회가 끝날 때까지 식품안전관리에 온 힘을 다할 것”이라며 “국민은 물론 우리나라를 찾은 모든 이들이 안심할 수 있는 식ㆍ의약품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경인식약청은 주기적으로 학교 급식소, 매점 및 식재료 공급업소를 시·군·구 및 교육청과 합동점검(연 2회 실시)함으로써 사전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현장에서 집단급식 시설을 관리·운영하고 있는 초·중·고등학교장 및 유치원장과 영양사에 대한 위생교육을 집중 실시(연 2회)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지난해부터는 식중독 조기경보시스템을 학교와 유치원·어린이집으로 확대, 식중독 발생 시 오염된 원재료에 의한 식중독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다.Q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하는 일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A 식약처는 ‘안전한 식·의약, 건강한 국민, 행복한 사회’를 비전으로 식품, 농축수산, 의약품, 화장품, 의료기기 등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본부와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그리고 6개 지방청(서울·부산·경인·대구·광주·대전)으로 구성돼 있다.본부는 식품과 의료제품 분야의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법령 제·개정 등을 통해 식·의약 안전관리를 총괄하고 있으며,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식품·의료제품 분야의 기준규격 설정 및 인·허가 관련 심사업무를 수행한다. 또 6개 지방청은 수입 식품 검사, 의약품, 의료기기의 허가 및 식품과 의료제품의 사후관리 등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Q 관할인구만 1천만명이 넘어 맡은 바 역할이 큰 경인식약청장으로의 소회는. A 경인지방식약청은 경기도 한강 이남 21개 시ㆍ군(면적 5천906㎢ㆍ인구 912만4천여 명)과 인천시 10개 군ㆍ구(면적 1천46㎢ㆍ인구 298만3천여 명)를 관할하고 있다. 또 인천항과 평택항, 인천국제공항 등이 자리 잡은 수입의 요충지로 전국 수입 식품의 60%가 집중되는 것은 물론 의료제품 제조업체 또한 많이 소재하고 있어 명실공히 대한민국 식ㆍ의약 분야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식·의약품의 위해 요인을 최대한 제거하고, 국민이 마음 놓고 식·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이다. Q 경인식약청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A 경인식약청에서는 의약품 제조환경의 선진화 기반을 확립하고, 위해 평가를 기반으로 한 예방적 의료제품안전관리 강화에 힘써왔다.GMP 관리 강화를 위해 2015년부터 시행된 의약품 정기 평가 및 적합판정서 발급 등 ‘3년 주기 GMP 적합평가 제도’의 조기 정착에 노력해 왔다. 또한 의료기기 품질책임자 의무지정제도 전면 시행에 따라 제조수입업체의 품질관리 수준을 높이고 이를 통한 소비자 안전 확보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아울러 맞춤형화장품 판매 시범사업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관내 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의료제품 산업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Q 식약처는 말 그대로 먹거리 안전 확보가 최우선 과제일 텐데, 그간 추진 성과는. A 적발 위주의 단순 지도점검 방식에서 벗어나 안전한 먹거리 생산기반 조성을 통한 사전안전관리에 주안점을 두고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을 지속적으로 확대적용(2013년 46%→2016년 69%)해오고 있다. 또 식중독 조기경보 시스템 운영으로 식중독 환자 수를 25%가량 감소(2014년 4천135명→2016년 3천123명)시켰으며, 식품안전나라 등을 통해 식품 안전정보를 지속적 제공해 소비자 알권리 보장에도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 체감도가 2013년 72%에서 2016년 85%로 증가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Q 그렇다면 앞으로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할 부분은. A 고의·상습적으로 부정·불량 식품을 제조·판매하는 업소들을 퇴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제조일자, 유통기한 변조행위, 중량 변조, 부적합 ‘물’ 사용 또는 자가품질검사 부적합 제품을 유통·판매한 행위 등은 적발과 동시에 퇴출(원스트라이크 아웃제)시키는 등 문제 영업자에 대한 관리를 대폭 강화할 예정이다. 또 의약품의 품질을 확보하고 제조환경 선진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의약품 제조업체에 대한 국제기준의 3년 주기 실사관리를 올해 완료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 제조 의약품의 신뢰성 및 해외에서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제 의약품 분야 품질 및 규제조화를 선도하는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와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에 정회원으로 가입했고, WHO와 백신 사전적격성 약정을 체결해 국내 백신의 해외 진출도 지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의료기기 품질책임자 의무지정제도 전면 시행에 따라 제조수입업체의 품질관리 수준을 높이고 이를 통한 소비자 안전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Q 식약처는 학교뿐만 아니라 미취학 어린이의 안전한 급식을 위해 2011부터 어린이급식 관리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는데. A 최근 맞벌이 가구 증가 등 사회환경 변화에 발맞춰 어린이 급식관리지원센터 확대를 통한 어린이 수혜율(2012년 9%→2016년 60%)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초·중·고등학교 학교장 대상 특별교육 및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맞벌이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노인식생활 안전관리에도 신경 쓰는 등 취약계층의 먹거리 안전관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영양사 고용의무가 없는 전국 어린이집·유치원의 어린이 급식 위생·영양 개선 및 맞벌이 부모의 안심환경조성을 위해 2011년부터 어린이 급식관리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말 경기지역 기준으로 21개 어린이급식지원센터를 설치, 5천112개 어린이집이 등록돼 15만7천617명의 어린이가 혜택을 받고 있다. 앞으로도 어린이 급식관리지원센터 설치를 확대하는 동시에 설치된 곳은 더욱 체계적으로 운영, 안전한 급식환경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식약처는 스포츠로 치면 심판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국민들이 소비할 음식과 농산물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 활동 영역이 제한적인 부분이 있다. 과거 여러 사업을 진행하려다가 한계에 부딪혀 무산됐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맡는 분야가 많아지는 등 기관의 역할은 커지고 중요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보다 조금 더 독립성을 보장받는다면 우리나라 농ㆍ어민 및 국토 관리 차원에서 보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명관 유병돈기자

[경기인터뷰] 변봉덕 코맥스 대표이사 회장

50여 년 전 수학과를 졸업한 청년은 학교 선생님이라는 안정된 길 대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당시 생소했던 ‘인터폰’ 사업이다. 청년은 직접 가방을 둘러매고 미국과 영국을 다니며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한국 최초로 인터폰을 생산한 회사는 신뢰와 인재경영을 내세우며 홈 IoT기업으로 성장했고, 이제 대(代)를 이은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대한민국 1호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된 코맥스 변봉덕 대표이사 회장(77) 이야기다. 존경받는 기업인과 장수기업인이 드문 시대에 변 회장은 존경받는 기업문화를 확산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 17일 코맥스에서 변 회장을 만나 기업의 바람직한 롤모델과 기업인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동안 기업인으로서 걸어온 길을 회상할 때는 물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에서 노장의 노련함과 통찰력이 느껴졌다. ‘최초의 인터폰 생산업체’, ‘제1호 명문장수기업’의 타이틀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Q 50여 년 전만 해도 인터폰이 생소했다. 어떻게 사업에 뛰어들게 됐는지 궁금하다. A 맞다. 당시만 해도 공장에서 가발이나 신발을 생산하는 노동집약 산업이 중심이었다. 청년 시절, 정보통신의 중심지인 세운상가에 자주 놀러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 정보통신 산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언젠가는 정보통신 산업이 국가산업을 선도할 거란 생각을 했다. 전자기기 개발과 제조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인터폰 사업을 구상했다. 기존에 없던 거니 오히려 기회가 될 거란 자신도 있었다. 전화기와 달리 인터폰 같은 구내통신 사업은 국가의 제약이 없었고,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란 판단이 들었다. 그러던 중 1968년 ‘중앙전자공업사’로 시작해 도어폰을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1970년대에는 주택붐이 일면서 1970~80년대의 웬만한 고급주택에는 거의 우리 제품이 사용됐다. 2000년대부터는 인터넷 기술이 접목된 홈네트워크 제품을 개발해 시대를 이끌어나고 있다. Q 정보통신 시장은 변화가 워낙 빠르지 않나. 패러다임을 선도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A 코맥스는 창업 초기부터 해외시장에 눈을 돌려 1970년대 이미 세계 전자박람회에 참가했다. 또 해외광고 등 적극적인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펼쳐 시장을 전 세계로 확대했다. 이처럼 미래전망을 볼 수 있는 식견을 갖고자 전문지식과 새로운 기술, 시장을 항상 공부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오면서 정보통신 기술이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지 않나. 시선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리면 금세 경쟁자들에게 뒤처지는 경쟁사회가 됐다. 이런 때일수록,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창조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아무리 규모가 큰 회사라고 해도 미래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면 그 회사는 몇 년 안에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Q 코맥스 역시 위기가 많았을 텐데, 역경을 이겨나간 과정을 알려달라. A 사업 초반에는 개발한 제품에 많은 자금을 투자했는데도 제품이 팔리지 않아 파산 직전까지 간 적도 많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결방안을 찾는데 애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탈출구가 보였다. 한번은 납품했던 제품에 불량신고가 빗발쳤다. 인터폰에 들어가는 스위치가 불량이었다. 당시 판매했던 제품을 모두 새 제품으로 교환하면 회사 경영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불량품으로 고객을 속일 수는 없었다. 기업은 신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품을 산 고객을 일일이 찾아가 정중히 사과하고 새 제품으로 교체했다. 현재의 ‘리콜’ 제도인 셈이다. 당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고객들이 오히려 감동하면서 우리 제품을 홍보해 줬다. 신뢰가 쌓이다 보니 결국 주문량이 더욱 늘어났다. 위기가 이뿐이었겠는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왜 이런 위기가 왔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잘못한 부분을 고치며 새롭게 성장하자는 마음으로 위기를 이겨내 왔던 것 같다. Q 대한민국 제1호 명문장수기업이 됐다. 비결은 무엇인가. A 명문기업으로 선정돼 회사로서는 큰 영광이긴 하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아 부끄럽다. (웃음) 우리나라 산업의 역사가 짧은데, 장수 중소기업을 독려하려고 준 게 아닌가 싶다. 다만, 한 가지 분야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건 비결이라 생각한다. 또 기업이 오랫동안 사업을 영위하려면 ‘관계’가 중요하다. 협력사, 고객사들과 신뢰를 구축했던 것이 오랜 기간 기업을 운영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관계를 맺은 지 40여 년 이상 되는 해외 고객사들도 있는데 이들 회사는 자식·손자까지 우리 회사와 관계를 이어간다. 고객뿐만 아니라 내부 직원에게도 같은 관점으로 접근한다. 회사의 미래는 직원에게 달렸다. 회사 내에서는 인재를 육성하고, 내부에서는 신뢰 관계를 구축한 게 반세기 동안 성장한 힘이었다. Q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경영권을 2세에게 승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A 10여 년 전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우리 회사를 거액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기업을 매각할 것인지, 장수기업으로 끌고 갈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아들에게 가업 승계에 대한 결정권을 줬다. 대기업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있지만, 중견ㆍ중소기업은 이런 것들이 부족하지 않나. 장수기업으로 가기 쉽지 않다. 아들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들이 이탈리아에 살면서 100년 넘는 중소기업을 많이 봐서인지 아버지가 창업한 회사를 명문 장수기업으로 만드는 것도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하더라. 과거 50년을 넘어 코맥스가 유럽의 존경받는 강소(强小) 제조기업처럼 미래 50년에도 더욱 성장한다면 창업자로서 매우 보람될 것 같다. Q 최근 사회적으로 재벌개혁이 화두가 되면서 반(反)기업 정서도 확대되는 것 같다. A 안타까운 일이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정치권과 정부는 큰 차원에서 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4차산업 시대가 된 만큼 새로운 혁신과 기술,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기업들이 새로운 길을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Q 어려움 속에서도 수출 시장을 개척하며 고군분투하는 중소 기업인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A 도전정신과 성실함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싶다. 1970년대 초반, 해외로 진출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들은 수출을 생각하지 않았다. 기반이 없었고 자금도 부족했지만, 우리 회사의 제품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또 앞으로는 해외 수출이 회사의 미래 먹거리라고 생각해 세계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첫 시장이 미국이었다. 초창기에는 물론 매우 힘들고 어려웠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전쟁’, ‘분단’ 국가일 뿐이었다. 해외 바이어들은 잘 알지 못하는 국가의 제품이다 보니 신뢰할 수 없다며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더욱 바이어들을 만나려고 열심히 뛰어다녔고 현재는 120여 개의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감회가 새롭다. 꾸준히 확신을 하고 개척해 나가면, 언젠가 빛을 볼 수 있을 거다. 정자연기자 사진=전형민기자

[경기인터뷰] 황규철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

“명예롭고 좋은 자리인 줄 모르고 왔는데 정말 이런 자리가 있구나,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자리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황규철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은 지난 2012년 취임 후 현재까지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천적십자에 몸담아 온 시간에 대해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황 회장은 지난 2009년 사랑의 열매 1억 이상 고액기부자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인천에서 2번째로 이름을 올렸고 인천적십자사 고액기부자(RCHC)에도 두 번째로 가입하는 등 인천지역 나눔의 선봉에 서 있는 인물이다.그런 황 회장에게 있어 인천적십자는 늘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고 노인과 장애인, 취약계층에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단체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황 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지난 시간 동안 인천적십자사는 생명의 소중함과 우리네 쪽방촌, 하우스촌의 애달픈 삶과 그 궤도를 같이했다.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위기 가정을 지원하고자 적극적으로 행정기관과 연계하고 빵국수떡 만들기, 자선바자회와 같은 시민참여 기획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나누고 아끼는 마음을 확산할 수 있었다. “지난 성과는 모두 함께 해주는 후원자가 있기에 가능했다”며 모든 공을 후원자들에게 돌리는 황 회장의 모습에서 진정한 나눔과 봉사가 무엇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다음은 황 회장과의 일문일답. Q 일반 시민들은 적십자에 대해 잘 모르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A 대한적십자사는 각종 재해재난 이재민 구호활동뿐만 아니라, 2010년 연평도 포격,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등과 같이 준전시상황, 사회적 재난 등이 갑자기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이재민과 그 가족을 돌보는 일을 우선한다. 응급구호품 전달, 피해 이재민 심리적 지지활동, 응급의료활동 등을 전개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물적·인적 지원을 펼치고, 스스로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치술 교육을 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실직이라든가 이혼·배우자 사망과 같이 위기에 놓인 가정을 발굴, 지원하고 봉사원과 결연을 맺어 가사보조와 말벗봉사·목욕봉사 등 기초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대상자 케이스에 따라 생계·주거·의료·교육 등에 걸쳐 가장 시급한 지원을 하고 있다. Q 자원봉사자가 주축이 되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A 적십자사의 모든 사업은 평소 잘 훈련된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수행하고 있다. 현재 우리 인천에는 약 7천 명의 적십자 봉사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재난 현장에서의 구호활동, 그리고 평소 우리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힘겹게 사는 분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일에 쉼 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이웃을 구석구석 찾는 이유는 불행했던 ‘송파 세모녀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희망풍차프로그램은 위기가정을 돕는 사업프로그램이다. 적십자 봉사원과 대상자 간 1대1 결연을 맺고 매주 1회 이상 어려운 가정을 방문해 반찬전달과 목욕봉사 등 기본서비스는 물론, 각 대상자에게 꼭 필요한 도움(의료·주거개선·교육·기초생활)을 주기 위한 통합 맞춤형 서비스다. Q 지난 6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뿌듯한 일이 있다면. A 가장기억에 남는 일이 동구 송림동에서 8명 대가족이 사는 집을 고쳐 준 일이다. 다문화 며느리에 교통순찰대 순경과 노부모와 딸 셋이 비가 새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3천여만 원 들여서 집을 고쳤는데 가족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특히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보통 다문화 가정 외국인 며느리를 친정에 보내는 사업들이 많은데 우리는 역발상으로 그들의 고향에 있는 부모를 모셔와 우리 적십자가 가진 병원에서 아픈 곳을 치료해주는 사업을 펼쳤다. 두 번에 걸쳐 진행했는데 현재는 예산 문제로 중단돼 무척 아쉽다. 사실 적십자가 중앙조직이라고 하지만, 시민과 함께하지 않으면 어려운 구조다. 인천지역에 적십자 회비를 걷고자 100억원을 고지하면 26억원 정도 들어온다. 그래서 다양한 행사를 통한 모금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이게 쉽지가 않다. 주변 지인을 통해 기부금을 만드는 것도 한계가 있고 시민의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현실이다. Q 회장 취임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A 우리 인천에 시민과 함께 나눔 문화를 확산한 것과 그 기부금으로 힘들게 사는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것들이 참 뿌듯하다. 2016년에는 희귀난치병 어린이를 돕고자 4월 30일 인천대공원에서 걷기대회를 열어 6천600만원의 기부금도 모금했고 환아 8병에게 의료비를 지원했다. 인천에서 처음으로 계단 오르기 대회도 열어 아동 지원 기부금으로 약 2천800만원, 정기후원자 131명(월 약정금액 161만원)을 모을 수 있었다. 최근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2017 함께 걷자 인천페스타에는 약 2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해 희귀·난치병, 소아암 어린이를 도울 수 있는 기부모금행사도 열었다. 막 취임했던 2011년 기준 기부금(품) 모금액이 2억원에 불과했는데 나눔 문화 확산을 통해 기부금 모금액을 늘리고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에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화한 결과 지난해 기준 기부금(품) 모금액이 6억 5천여만원으로 3배 성장할 수 있었다. Q 적십자회비에 대한 시민의 오해를 풀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A 시민에게 꼭 필요한 사업을 하려면 많은 재원이 든다. 그 재원이 어떻게 마련되고 사용되는지에 대해 오해가 많은 듯하다. 먼저 정부지원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적십자는 적십자회비를 통해 운영되는 기관이다. 정부지원을 통해 운영되는 기금은 전체 예산의 약 5%밖에 되지 않는다.특히 북한에 퍼준다는 오해가 가장 많은데 실제 지역에서 모금되는 기금은 전액 인천지역 위기가정 지원과 안전사업 보급·화재·수해 같은 재난에 대비한 구호물품 비축과 관리 등에 사용되고 있다. 적십자회비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업에 사용된다는 것과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우리 이웃을 돕는 데 사용된다는 점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Q 앞으로 인천적십자가 나아갈 방향은. A 첨단기술이 세상에 풍요를 가져다주면서 참 빠른 세상이 돼가고 있다. 그만큼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이면에는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고독과 쓸쓸함, 위안을 받고 싶어하는, 다르게 말하면 서로 소통하는 걸 찾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직접적인 만남보다는 누군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사회가 돼가는 것 같아 아쉽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발히 사용되는 것도 이러한 우리의 삶과 직결된 것 같다. 그동안 인천적십자사는 위기가정에 생계, 주거, 의료, 교육 등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다. 또 심폐소생술, 응급처치술 시민교육을 통해 우리 스스로 안전할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사업의 중요성만큼 시민에게 필요한 욕구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온라인 채널을 통해 사람과 소통하면서 현재 우리가 가진 문제는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고 같이 해결할 수 있는 시민과 소통하는 인도주의 활동이, 진정성을 갖춘 소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시민과 적십자에 바라는 것은. A 솔직히 인천적십자 회장자리가 명예롭고 좋은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6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해보니 이렇게 명예로운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주변 지인을 만나 막말로 소주 한 장을 할 때 자연스럽게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이제는 인천적십자가 얼마나 훌륭하고 좋은 일을 하는 곳인지 설명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회장직이 끝나고 나면 무료급식센터에서 지인들 한 10명 모아 설거지봉사를 하고 싶다. 매일 할 순 없겠지만, 주에 1번은 봉사를 하면서 지난 6년간 느꼈던 자부심을 계속 느끼고 싶다. “기부와 봉사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시민이 많은데, 이처럼 가까운 곳에서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는 황 회장의 얼굴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이유가 무엇인지 새로운 느낌으로 새삼 다가왔다. 대담=이영수 부국장 정리= 주영민기자

[경기인터뷰] 유주현 대한건설협회 회장

우리나라 건설산업은 올해로 ‘고희(古稀)’를 맞았다. 1947년 대한건설협회의 전신인 조선토건협회 창립을 토대로 한국 건설산업이 태동한 지 70년이 흘렀다. 지난 시간 동안 한국 건설산업은 삽과 곡괭이로 시작해 이제는 세계 초고층 빌딩을 우리 손으로 직접 짓는 건설강국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70년간 한국 산업 발전의 중심에 섰던 건설산업은 이제 미국의 금리 인상,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으로 성장세가 둔해지고 있다. 공공 부문에서도 정부의 사회간접자본 예산 축소 및 신규 사업 억제 기조에 따라 건설 투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200만 건설인을 대표하는 대한산업의 수장이란 중책을 맡은 이가 유주현 회장(64)이다. 지난달 초 제27대 대한건설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유 회장은 본보와 인터뷰에서 “건설산업의 터닝포인트 시기에 회장이란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며 “건설산업의 발전과 경쟁력 강화, 또 새로운 시장을 열어갈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Q. 대한건설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신지 한 달여가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2017년은 건설업계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기와 도전을 겪는 격동의 한 해가 될 것으로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러한 건설산업의 터닝포인트 시기에 회장이란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더욱 무겁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로 인해 건설경기가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고,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불합리한 규제 및 발주처의 불공정행위를 개선하고 적정공사비를 확보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각종현안 등에 대한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하고자 취임이래 정관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 뵙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Q.회장직에 오른후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안이 무엇인지. A. 현재 건설업계 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적정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한 데 있다. 지난해 정부가 저가투찰로 인한 가격경쟁 심화 등 최저가낙찰제로 인한 폐해를 해소하고자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한 결과 낙찰률이 소폭 상승하였으나 수익성 개선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중소건설업체가 주로 수주하는 300억 원 미만 적격심사낙찰제 대상공사 역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약 17년 동안 낙찰률이 고정된 반면 표준시장단가 적용대상 확대 및 표준품셈 현실화 등으로 원가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공사비 부족문제가 심각하다. 향후 적정공사비 확보를 위해 건설단체가 연대해 대정부 설득은 물론 국회 건의, 토론회 개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관철시킬 것이다. Q. 공약으로 종합건설업·전문건설업 간 업역 제한 폐지 등을 주장했다. 진척도는 어떤가. A. 국내 건설산업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 간 칸막이 식 업역구조로 인한 생산성과 효율성 저하 등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소모적인 분쟁만 증가하고 있다. 미국, 영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도 경직된 업역제도가 없는데도 말이다. 최근 국토연구원에서도 ‘건설업역체계 합리화 방안 연구보고서’를 통해 업역구조 유연화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업역제한 폐지와 관련해 업계, 협회, 연구원 등으로 TF를 구성해 건설업계가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며, 연구보고서 발간, 세미나 등을 통해 업역 제한 폐지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Q. 최근 수급사업자의 권익 강화 등 하도급법 개정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A. 현재 우리 건설경기는 주택건설 경기 호황으로 좋아지는 듯하나 이는 단순 착시효과일 뿐이다. 대내외적으로 경제 환경 불확실성, SOC예산 축소, 수익성 악화 등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하도급 규제 강화 법안들은 기업 경영은 물론 전체 건설시장을 상당히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특히, 1만 1천여 개의 종합건설업체 중 98%가 중소기업이므로 이 같은 규제 강화는 대부분 건설업체에 심각한 경영 부담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경제 활성화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국회 차원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아울러 우리 업계 또한 대ㆍ중소업체의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을 위해 상생경영으로 원·하도급업체가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한다. Q. 건설 경기를 지탱하던 주택시장이 침체 후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A. 11·3 부동산대책의 영향으로 내수시장을 지지하던 주택·부동산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종 대출규제, 전매제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외 최근엔 후분양제 의무화, 분양가상한제 확대 법안마저 추진되고 있어 시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을 집단대출로 지목하면서 중도금 대출에 이어 잔금대출까지 규제한데다 최근 제2금융권의 집단대출까지 막힌 현 상황은 주택시장을 급격히 위축시킨 주요 원인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이미 분양 중인 사업장은 당초 계획과 달리 자금조달이 막혀 사업추진에 차질이 생겨 경영상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실수요자의 주택구입자금 부담을 가중시켜 서민 주거안정을 저하시키고 있다. 물론 가계부채 건전성에 대한 관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집단대출관련 연체율은 일반가계대출 연체율보다 더 낮고 시공사의 지급보증으로 인해 일반대출보다 부실화 우려가 적다. 정부는 서민의 주택마련 기회를 제고하고 주택시장의 급격한 위축을 방지할 수 있도록 주택시장에 대한 금융규제를 합리적 수준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Q. 부동산·주택 관련 대선 공약들이 ‘규제’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첨언하고 싶은 말은. A. 지난 몇 년간의 부동산 시장 호조는 저금리 및 택지공급 축소 등에 따른 시장의 흐름을 반영한 것임에도, 정부는 가격상승에 부담을 느껴 규제강화 일변도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인해 전반적인 올해 주택ㆍ부동산 시장은 다소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예상한다. 다만, 이런 규제가 당장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공급축소를 일으켜 인기지역의 가격상승을 불러일으키고 또다시 규제가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 시장상황에 따른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주택시장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도한 규제보다는 탄력적인 정책 추진과 주택의 안정적 공급을 통해 부동산ㆍ주택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대선국면에 접어들면서 대중인기영합적인 정책 남발이 우려되고 있다. 진보ㆍ보수를 떠나 건설·부동산 정책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서민의 일자리 창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 확보의 토대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현장과의 소통을 통해 건설산업이 공정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Q. 건설업 관련, 차기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 말은. A. 현재 건설산업은 언제 산업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해외수주가 1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고, 대내적으로는 SOC투자축소, 주택ㆍ부동산시장 침체 등 한마디로 ‘시계제로’ 상태다. 그럼에도 정부와 국회는 건설산업을 타 산업과 달리 규제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큰 게 사실이다. 건설산업은 대표적인 일자리창출 산업으로서, 고용ㆍ공간 복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 규제보다는 진흥정책 중심으로 건설산업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특히, 지속적인 SOC투자가 최우선 정책이 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SOC 예산을 점진적으로 축소할 예정이나, 최근 국토연구원 등에서는 선진국 사례를 들어 앞으로도 SOC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고, 특히 시설물의 노후화가 급증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는 SOC투자가 고용ㆍ공간복지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속적인 투자확대를 해야 한다. 국민 안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후 시설물에 대한 성능개선 및 스마트화 추진이 매우 절실하다고 본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는 주택시장 불안정성의 심화로 이어지고 결국 공급축소를 불러와 가격상승이라는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므로 부동산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규제는 과감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 이중과세 논란이 있는 규제는 과감히 폐지해주길 바란다. 조성필기자

[경기인터뷰] 최진용 인천문화재단 대표

“처음 국가직 말단공무원이 되어 공보부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문학담당’ 업무를 주었어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서정주, 박목월, 김동리, 구상, 황순원, 이은상 선생님 등을 수시로 만날수 있었고,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훗날 영화ㆍ연극담당도 그렇게 흥겹게 일했어요”최진용(70) 인천문화재단 대표는 흥이 있는 사람이다. 그를 만나 대화를 시작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는 술을 좋아한다. 5천명에 달하는 술친구가 그의 카톡에 담겨있다. 그러나 술보다는 공연관람을 더 즐기고 공연관람 보다는 책과 노는 것을 좋아한다.그는 읽지도 않으면서 매일 몇권씩 책을 사는 책 마니아다. 5만권의 서적을 보유해 ‘장서소장가’ 기념패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책보다는 여행을 더 즐기고 여행보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의 주변에는 늘 여러 친구들이 있다. 노소동락하며 그는 즐거운 삶을 산다.문화예술담당 공직을 지내며 ‘한국영화정책의 흐름과 발전방향’(공저, 집문당 1993년) 등 책을 펴냈다.또 지방문화육성방안(1980년), 공연예술의 해외수출방안(2001년), 기술의 발전과 예술영역의 확장(2013년) 등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대학에서 10년 이상 강의를 했다. 2010~2013년까지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을 지냈다. 그를 몇차례 만나 지나온 삶과 인천에 온 이후의 근황을 인터뷰 했다.Q 고교졸업 후 문화공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A 육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는데 인천동산 중ㆍ고교를 졸업했다. 당시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이 어려워 졸업후 돈을 벌어서 대학에 가 볼까 했다. 노동현장에서 인부로 6개월여 일을 하다보니 너무 힘들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서울에서 세무서의 보조직을 얻어 일을 이어갔으나, 시험을 통해 제대로 취업을 하고 싶었다. 고졸로 시험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는데 모신문사에 기자시험을 보았다가 보기좋게 떨어졌다. 이번엔 KBS방송국 피디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국영방송국이므로 공무원시험을 봐야했다. 1년여간 공부해 국가직공무원 시험에 합격, 공보부 말단직원으로 공직을 시작하게 됐다. 면접 때 “방송국에 가서 프로듀스로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최군은 일단 공보부에 가서 경력을 쌓은 후 방송쪽 일을 해라”고 했다.그러나 행정을 시작한 후 담당업무가 너무 재미있었고 ‘피디로서 능력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평생 피디 일은 못했다. 입사 후 건국대 야간대학을 다녔다. Q 문학담당 공직에 있으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A 군대에 3년을 꼬박 다녀온 후 복귀해 2년 동안 문화예술 중장기계획을 세우는 문화예술관실에서 문학행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서정주, 박목월, 김동리, 구상, 황순원, 이은상, 곽종원 선생님 등을 수시로 만날수 있었고, 그게 너무 신기했다. 주로 이런 분들은 문화공보부의 자문위원으로 자주 뵙게 되었고, 그 일이 너무 좋았다. 외람되게도 그분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분들 덕분에 직장 생활이 늘 행복했다. 말단 직원으로서 심부름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런 심부름이 너무 기뻤다. 후일 문학을 담당하지 않을 때도 수 십 년 간 그분들과 연락하며 만나는게 늘 좋았다. 대부분 부친뻘 되는 문학가들이셨다.구상선생님도 그 중 한 분 이었다. 구상 선생님은 “어이 친구”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김동리 선생님은 서예의 대가였는데 붓글씨를 써주기도 했다. 후에는 유종호 전 예술원회장, 젊은 이문열, 오정희 작가 등과도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Q 연극담당과 국립중앙극장장 시절은 어떠했나. A 연극을 담당하면서 주중 1~2편, 주말 3~4편 등 매주 4~5편의 공연을 봤다. 그것은 40년 이상 지속되었다.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과의 뒷풀이에 대부분 참석해, 그들과 밤늦도록 연극과 예술 전반에 걸쳐 토론했다. 예술 현장의 고충을 온몸으로 느끼며 일했다. 충무로5가에 최현배 선생님 아드님이 운영하던 정음사 낡은 5층 건물에 연극회관이 있었다. 연극회관은 천정도 낮고 연극공간으로는 부실해 “꼭 옮긴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마침내 지금 성공회 옆의 쎄실로 연극회관을 옮기고, 제1회 대한민국 연극제를 열게 됐다. 그 후에 직접 국장, 장관을 설득해서 마침내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을 1981년 4월 개관하게 됐다. 평생 가장 보람스러운 일이다. 1999년 국립중앙극장장 시절은 최악이었다. 당시는 IMF 경제위기로 직원 50%감축과 국립합창단등 해체 등에 대한 지침을 받고 많은 고심을 했다. 전속단체, 상주단체, 예술진흥회, 아르바이트 학생까지 900여명 이었다. 나는 ‘함께 가는 개혁’을 추진했다. 나에게 준 지침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립합창단을 없애라는 지시도 있었다. 그때 만약 국립합창단을 없앤다면 각 지방의 합창단이 모두 없어져야 할 판이었다. 결국 국립합창단, 발레단, 오페라 등은 법인화해 예술의 전당으로 이관해 살리고, 국립극장은 슬림화한 후 체질강화대책을 수립해 마무리했다. Q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일들을 소개해 주실수 있는지. A 삼성출판사 김종규 회장은 ‘한국 문화계의 마당발’ 혹은 ‘문화계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분이다. 진정으로 예술인들을 사랑한다. 당시 일부 예술인들은 연극팜프렛, 전단 등을 인쇄할 자금조차 없었다. 1991년 어느날 “가난한 극단, 무용단,화가 등을 지원해 달라”며 김회장께 조심스럽게 도움을 청했더니 좋다고 하셨다. 그로부터 여러해 동안 많은 예술인들을 김회장에게 보냈고 두 말 않고 도와주셨다.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또, 1991년말 이어령 장관은 퇴임 직전에 저를 불러 “정부의 KS인 한글완성형 코드는 99.9%는 맞지만 없는 글자가 있다”며 “한글 KS를 100% 완벽한 조합형코드로 바꾸려니 돈이 2조원이나 들고 뾰족한 방법이 없어, 제2의 훈민정음인데 해결책이 없을까?”라고 했다. 고민끝에 이미 퇴직한 前 이상희 과학기술부장관을 찾아뵙고 의논했더니, “흥분되는 일이다”며 예산 한 푼 안 들이고 ‘완성형ㆍ조합형 복수지원’ 컴퓨터 선택방식으로 이 문제를 말끔이 해결해 주었다. 칸느, 베를린, 모스크바 등 국제영화제 한국대표단 및 개인적으로 참가한 것이 잊을 수 없다. 또 해외 40개국 1천200여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 본 일은 전시장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부인과 장인의 도움이 항상 컸다. Q 인천의 문화 전망과 인천문화재단 대표로서 과제는. A 인천은 국내에서 가장 경제성장 속도가 빠른 도시 중 하나이다. 송도신도시에서 발전하는 인천의 힘을 느꼈지만, 배다리와 동구 뒷골목에서는 쇠락하는 구도심의 쓸쓸함을 보았다. 문화는 신도시에 품격을 높이고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전체 시민들에게 문화가치를 통해 당당한 자부심을 선사 할 수 있다. 지금은 문화적 인프라나 수요자가 서울 등에 크게 못미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4~5년 후에는 인천의 문화적 잠재력이 폭발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시의 ‘문화성시(文化盛市) 인천’ 정책은 이러한 문화잠재력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믿는다. 문화·예술섬 프로젝트는 옹진군 북도면의 3개섬 신도에는 ‘만화의 섬’, 시도는 ‘음악의 섬’, 모도는 ‘조각의 섬’으로 기획하고 있다. 무의도는 ‘연극의 섬’으로 추진된다. 꼭 ‘문화기부 1위 도시 인천’ 달성을 해내겠다. 현재 180여명의 문화기부자를 500명 이상 늘이고 싶다, 이로써 3년 내에 2천명의 정기적인 문화기부자를 모시고자 한다. 물론 금액은 5천원부터 시작된다. 목표를 달성한다면 장래 인천문화의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다. 최근 배다리 헌책방, 동인천 대한서림 등 학창시절 추억이 깃든 서점을 찾았다. 학창시철 그렇게 커 보였던 대한서림은 너무 작게 느껴져 아쉬웠다. 시민들 사이에 책읽기와 독서토론 분위기를 전파하는 것도 문화재단의 일이라 생각한다. 대담=김신호 인천본사 부국장/ 정리=양광범기자 사진=장용준 기자

[경기인터뷰] 강득구 경기도 연정부지사

대선 후보자들 사이에서 ‘연정’이 혼란스러워진 국정운영을 바로잡고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주목 받으면서 19대 대통령선거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경기도는 지난 2014년 남경필 경기지사 취임과 함께 경기 연정 1기를 출범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부터는 연정 2기를 이어가고 있다.경기 연정 2기를 이끄는 강득구 연정부지사는 ‘연정은 협치, 협치의 중심은 도민, 도민의 중심은 민생’이라며 연정의 가치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연정의 궁극적 목표이자 지향점은 ‘도민 행복’ 인만큼 도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연정을 이뤄내고 민선 7기에도 경기 연정이 지속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 연정부지사와의 일문일답. Q 취임 6개월여가 흘렀다. 그동안의 소회는. A 취임한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6개월이 어떤 날은 하루가 여삼추일 정도로 힘든 것도 많았지만 보람도 많았다. 특히 정치를 해오면서 항상 시대적 가치와 시대적 소명을 생각하자는 다짐을 하는데 현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연정’을 이뤄나갈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보람 있고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소임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하려고 하고 있다. 앞으로도 초심을 그대로 유지하며 288개의 민생 연정 과제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정의 메신저’ 가 되겠다. Q 연정 2기 288개 사업 중에 가장 의미를 두는 것이 있다면. A 청년들이 매월 10만 원을 저축하고 3년간 일자리를 유지하면 경기도 지원금, 민간기부금, 이자를 합쳐 1천만 원의 목돈을 마련해주는 ‘일하는 청년통장’이라는 정책이다. 예전에 내가 20대 때는 상대적으로 개인적 고민보다는 사회적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지만 지금 20대들은 개인적 고민이 상당히 많다. 가장 큰 것이 취업난이다. 그렇다 보니 일하는 청년통장을 통해서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과제이자 연정의 주요 의제다. Q 대선을 치르면서 경기 연정이 주목받고 있는데. A 연정이 국가적 이슈로 주목받으면서 경기 연정이 연정의 초기모델로 인정받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으며 그만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더욱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연정과 경기 연정은 사실 다소 차이가 있다. 대선후보들이 말하는 연정은 정치ㆍ정파적 연정이다. 현재 국회 의석 구조로는 어떤 정당의 후보든지 과반수를 넘기 어렵기 때문에 연정을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연정을 할 수 있는 대상과 그렇지 못한 대상을 구분하는 등 쉽게 말해 과반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연정이다. 그러나 경기 연정은 연정보다는 ‘협치’의 개념이다. 경기도 집행부와 경기도의회가, 경기도의회의 여ㆍ야가 288개 정책 합의문을 근거로 도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를 하고 도정을 이끌자는 것에 협의한 것이 경기 연정이기 때문이다. Q 분당사태로 경기 연정의 주체가 모호해졌는데. A 중앙의 분당사태가 도의회에도 역시 영향을 미쳤다. 이같이 중앙의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는 것이 경기 연정의 한계로 지적될 수도 있지만 지금 경기 연정의 큰 틀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경기도의회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까지 다당제가 됐지만 교섭단체는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2개뿐이기 때문이다.경기연정 합의 당시 주체였던 새누리당의 적통을 이어받은 자유한국당이 연정에 참여하고 있기에 근본적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 남경필 경기지사가 바른정당 소속이므로 집행부와 민주당, 한국당의 도의회와의 연정 관계에도 문제가 없다. Q 수원 군공항이전을 둘러싸고 수원시와 화성시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협치라는 큰 틀에서 도가 제시할 수 있는 해결법은. A 경기도는 이재율 행정1부지사를 중심으로 ‘수원 군공항 이전 T/F팀’을 구성하고 보다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지난 연정실행위원회에서도 군공항에 관한 안건을 다룬 바 있다. 경기도의 입장은 국방부와 수원시, 화성시 등 이해관계자 간이 소통을 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고 행여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도민들에게 정확한 정보공개를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원군공항 이전 문제는 협치를 통해 해결점을 찾아나가야 하는 문제이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연정부지사로서 민원인들도 만나보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경기도가 역할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Q 민선 7기에도 경기 연정이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지속 가능한 것인가. A 남경필 지사가 경기지사로서 취임할 당시 먼저 제안을 했고, 그 당시 도의회 민주당에서 동의했기 때문에 경기 연정이 탄생했다. 이처럼 민선 7기 도지사의 입장과 도의회의 입장, 의석분포 등에 따라 달라질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연정의 가치가 민선 7기에서도 존중됐으면 한다는 입장이다.그 무엇보다도 ‘연정은 협치, 협치의 중심은 도민, 도민의 중심은 민생’이기 때문이다. 연정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도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기 연정이 앞으로 더 나아가 도민들이 좋은 사례라고 평가돼야 하고 그렇게 자리매김한다면 차기 도지사와 도의원들도 연정의 필요성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다. Q 도민들에게 경기 연정의 인지도가 매우 낮다. A 수도권은 중앙정부와 가깝다는 이유로 지방자치에 다소 관심이 적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가 확대ㆍ강화되고 경기도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자리 잡는다면 연정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도민들이 지역의 다양한 활동, 지방자치에 적극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연정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연정에 대한 평가도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얼마 전 촛불이 세상을 바꾼 모습을 보았다. 논쟁을 떠나서 촛불이 세상을 바꾼 것은 분명하다. 촛불은 그동안 정치의 대상이기만 했던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것이고 정치의 주체가 된 것을 의미한다. 결국 정치를 바꾼 것이고 세상을 바꾼 것이다. 정치권력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국민이다. 연정의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도민들이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 Q 경기 연정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A 연정합의문에 담긴 288개 사업 중에는 예산이나 법적 제도에 가로막혀 현실적으로 당장 실행이 어려운 부분들이 다소 있다. 이에 사업마다 어떠한 문제를 가졌는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사업의 목표 등을 수정하는 것은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남 지사와 양당대표와의 합의를 통해 조율할 방법을 찾아나갈 예정이다. 무리한 추진이 아닌 현실적인 방향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다. 현재 경기 연정은 미비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협의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부족한 점도 보이겠지만 남 지사를 비롯해 연정의 주체 모두가 경기 연정에 대한 진정성이 높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경기 연정은 현재 도민들이 원하는 가장 큰 시대적 가치라고 믿는다. 도민 행복, 민생을 위해 경기 연정이 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한진경기자 사진=오승현기자

[경기인터뷰] 김훈동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재난 현장에는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지난 2013년 성남 모란역 오피스텔 화재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봉사단원들은 순식간에 집과 일터를 잃은 이재민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이불을 제공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사고 중 하나인 세월호 참사에서도 노란 조끼는 빛을 발했다. 화재, 수해 등 재해현장 구호활동을 비롯해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위한 따뜻한 ‘인도주의’ 활동을 꾸준히 펼쳤다. 이처럼 경기지역의 ‘빛과 소금’이 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가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이한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비롯해 대한민국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활동해왔다. 그랬던 경기적십자사가 올해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사랑ㆍ나눔ㆍ봉사로 여는 미래’라는 슬로건 아래 신발끈을 더욱 꽉 조였다. 김훈동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73)을 만나 사랑과 나눔의 의미, 그리고 경기적십자사가 새롭게 걸어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Q 적십자가 하는 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A 지금으로부터 158년 전인 1859년 이탈리아 북부 솔페리노 전쟁터에서 스위스 청년 ‘장 앙리 뒤낭’이 아군과 적군의 부상자를 차별 없이 돌보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국제적십자운동이 태동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5년 고종황제 칙령으로 ‘광제박애(廣濟博愛ㆍ널리 사람을 구하고 고루 사랑하라)’의 정신으로 만들어졌다.경기적십자사는 해방 이후인 1947년 5월21일 설립돼 올해로 70주년이 된다. 경기적십자사는 근현대사의 시련과 발전과정에 소외된 경기도민들과 함께했고, 재난구호를 비롯해 사회봉사, 안전ㆍ보건, 청소년적십자(RCY), 국제협력, 남북 이산가족찾기, 헌혈 등 생명보호와 고통경감을 위한 인도주의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Q 경기도는 전국 최대 규모의 지자체다. 그만큼 경기적십자사의 역할이 클텐데.A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는 전국 15개 지사 중 규모, 사업 면에서 위상이 가장 크다. 활동하는 봉사원만 2만5천 명에 달하고 RCY 단원과 지도자 또한 3만7천 명에 이른다. 사회공헌협약을 체결한 기관도 31곳으로, 기부금 등을 포함한 재원 규모도 가장 크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규모가 큰 만큼 각종 재난, 재해 발생 시 많은 인명피해가 우려되고, 매년 취약계층도 증가하고 있다. 경기도 내에서 적십자가 해야 할 일이 많다.Q 경기적십자만의 특색 있는 사업을 소개한다면.A 규모가 큰 만큼 경기적십자는 많은 부문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실시하는 도민 참여프로그램인 ‘1m 1원 자선걷기’는 올해로 15회를 맞이한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모금인 ‘씀씀이가 바른 기업’은 1년 만에 100여 개가 넘는 기업이 가입했다. 매달 정기 후원을 받는 ‘희망나눔명패’는 국회의원 80%가 가입하는 등 지속적으로 가입이 확대되는 중이다. 이러한 경기적십자 고유의 사업들을 각 지역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Q 올해로 경기적십자사가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가장 중요한 시기 회장직에 연임됐다. A 지난해 11월 회장직에 연임됐다. 이 3년이 남은 인생 마지막 봉사의 길이라 여긴다. 특히 올해 경기도지사 설립 70년을 기점으로 ‘경기적십자 70년, 사랑ㆍ나눔ㆍ봉사로 여는 미래’라는 표어 아래 원점에서 다시 경기적십자를 리모델링하고자 한다. 시대 환경 변화에 발맞춰 적십자도 변해야 한다. 적십자에 대한 도민들의 사회적, 경제적 의식이 많이 달라졌다. ‘적십자는 신선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적십자의 변화된, 젊고 신선한 느낌을 도민들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희망과 박진감, 열정을 갖춘 조직으로 만들어 나가겠다.Q 그렇다면, 올해 경기적십자의 구체적인 변화 방향은 무엇인가.A 지난 2월 부로 인사를 쇄신했다. 경기적십자 70년 역사 안에 유례가 없던일이다. 도 간부 전원을 시ㆍ군으로, 시ㆍ군 간부를 도내로 전면 교체했다.기존에 해오던 것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고자 한 까닭이다. 7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경기적십자가 아직 지역과 밀착되지 않았다고 본다. 이번 인사쇄신은 지역사회 안으로 적십자가 더욱 뛰어들겠다는 우리의 다짐이다. 이를 통해 봉사원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자 한다. 현재 31개 시ㆍ군 530개의 봉사회가 있는데, 아직 없는 지역을 대상으로 봉사회를 더욱 확충할 것이다. Q 나눔과 봉사의 의미를 어릴 때부터 깨닫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A 그렇다. 올해 경기적십자사의 목표 중 하나가 청소년적십자(RCY) 단원의 적극적인 육성이다. 자라나는 미래 세대인 초ㆍ중ㆍ고ㆍ대학의 RCY 단원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부제일주의라는 교육관에서 벗어나 인성교육이 대두되고 있다. 청소년기에 자신보다 어려운 친구를 생각하고, 또 어려운 이웃에 봉사하며 받는 느낌은 가장 값진 산 교육이다.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봉사하며 느낀 체험과 교훈은 학교 활동에서 얻는 것보다 가치가 더욱 크다. 이를 위해 RCY 동문 출신 교사들을 결집해 창단을 집중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적십자가 관심을 갖고 지원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Q 개인적으로는 올해 수원화성문화제 시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게 됐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A 수원지역 최대의 축제인 화성문화제를 올해 시민들의 손으로 직접 추진한다. 어깨가 무겁지만, 책임감을 갖고 성공적인 축제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사상 최초로 시민들이 중심이 돼 축제를 진행한다. 열 명이 백 보를 걷는 것보다 백 명이 함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본다. 화성과 정조대왕이라는 정체성을 살려가며 행사 전반에 시민 참여의 폭을 대폭 키우고자 한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축제가 되도록 시민들과 함께 잘 이끌어가도록 노력하겠다. Q 마지막으로 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는. A 사랑과 나눔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이념과 종교, 정치 등을 모두 초월하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소외된 이웃들이 많다. 우리 봉사회원들에게도 항상 봉사는 감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적십자가 앞장서겠다. 특히 더 많은 취약계층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는 도민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적십자 봉사자를 포함한 모든 적십자 가족이 혼연일체가 돼 앞으로 더욱 도민들과 공감하고, 참여하고, 감동을 주는 경기적십자사로 거듭날 것을 약속드린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린다. 대담=이용성 사회부장 / 정리=이관주기자 사진=전형민기자

[경기인터뷰] 수원출신,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김동욱 교수

지난달 전 세계 의학계 이목이 한국의 한 의학 연구팀에 집중됐다. 김동욱(56)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팀이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치료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유전자 ‘코블1(Cobll1)’을 찾아낸 것. 만성골수성백혈병은 만성기의 순한 상태가 지속되다가 항암치료에 실패할 경우 암세포가 무한히 증식하는 급성기로 전환, 사망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그동안 세계 의학계는 이 급성기로 변화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매진했지만, 베일을 벗겨 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러던 중 김 교수팀이 14년 연구 끝에 세계 의학계의 오랜 숙제이자, 염원을 풀어낸 것이다. 김 교수로부터 그동안 연구 성과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Q 오랜 시간 끝에 연구에 성공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A 만성골수성백혈병이 만성기에서 급성기로 전환되는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 의학계의 오랜 숙제였다. 이번 연구는 그 실마리를 푼 것이다. 첫 단추를 끼웠다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뿌듯하기도 하고, 지난 14년간 해왔던 것 중에 하나를 이뤘다는 것에 보람차다.Q 이번 연구결과가 정확하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A 만성골수성백혈병이 치명적인 이유는 갑작스런 급성기 전환과 그에 따른 환자의 사망이다. 2000년대 표적항암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사망률이 현저하게 줄었지만, 항암치료에 실패하고 급성기로 전환됐을 경우 1년 이내에 사망하게 된다. ‘코블1’ 유전자를 찾아냈다는 것은 급성기로 넘어가는 환자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설사 넘어갔더라도 이를 억제하는 약을 개발해서 다시 만성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데 의의가 크다. 연구 결과가 발표된 ‘루케미아(Leukemia)’는 전 세계 혈액암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술지라 할 수 있다. 논문을 싣는 것조차 하늘의 별따기인데, 이곳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의미있는 논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전 세계 혈액암 대가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Q 14년동안 어떤 연구들이 진행됐는지.A 2003년 정부과제로 처음 받아 진행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총 3번의 정부과제를 받았다. 그 사이 2010년 지금의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결과물을 얻었다. 인간 유전자 3만4천개 중에서 450개가 백혈병 진행과 연관이 돼 있을거라는 추측을 했고, 이 유전자를 줄여나가는 연구를 진행했다. 처음 450개가 74개로 줄었고, 3년 전 14개로 압축시켰다. 14개 중 현재까지 알려져있지 않으면서 아무도 연구를 하지 않았던, 2개를 골라 연구를 계속했고, 그중 하나가 ‘코블1’이다. 이 유전자를 찾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수많은 유전자를 줄여나가는 과정을 이어온 것이다.Q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나.A 한가지 주제만을 가지고 연구했다는 점이다. 한가지 분야만 연구하는 연구팀이 구성돼 있다는 점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또 이런 유전자를 분석할 때는 수 없이 많은 과학자들이 참여해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같은 연구를 진행할 수 있던 팀들이 있었다. 2년전 김홍태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 명경재 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부 교수 등과 함께 프로젝트팀을 구성했고, 2달에 한번씩 연구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다. 여기에 연구비가 필요할 때 연구비 지원도 꾸준히 이어졌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백혈병은행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한국백혈병은행은 2002년 한국인 만이 가진 백혈병 세포의 각종 기초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동안 진단법을 개발함과 동시에 국내 타 연구기관의 관련 연구에 활용하기 위한 정보 네트워크을 갖춰왔다. 연구를 위해서는 처음 진단 때부터 치료 중간 중간의 환자 검체가 필요한데, 연구에 필요한 환자의 검체가 한국백혈병은행에 보관돼 있었다. 한국백혈병은행에서 환자 검체를 15년 넘는 기간 꾸준히 보관해왔기 때문에 유전자를 추적할 수 있었다. Q 지금은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나. A 현재는 추가적인 실마리를 풀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유전자를 활용해 진단키트와 치료제를 만들 계획이다. 방법에 대해서는 지난해 이미 세계특허를 등록한 상태다. 진단키트는 숙명여대 연구팀에서, 치료제는 국내에 유사한 물질에 대해 연구하는 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논문에 채 발표는 안했지만, 추가로 환자에 대한 활용성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특히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연구비 확보에 매진할 계획이다. 연구사업단을 만들어 정부 연구비를 장기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Q 환자 진료와 학생 교육에 연구까지 쉽진 않았을 것이다. A 저와 같은 임상교수들은 환자도 봐야 하고, 연구도 해야 하고, 학생도 교육시켜야 한다. 논문도 꾸준히 써야하고, 틈틈이 외국 강의도 진행한다. 연구원 월급을 제가 직접 줘야 하기 때문에 연구비를 벌어야 하는 것도 제 몫이다. 때문에 연구를 하는 교수들이 적을 수밖에 없다. 보통 대학병원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교수가 10%가 채 안된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연구비가 있어야 하는데, 연구비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해외의 경우 우리보다 조건이 좋고, 돈의 단위도 다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정부에서 주는 연구비다. 하지만 정부 연구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기업이 동참하면 좋은데, 아직까지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런 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행여 진행하더라도 외국 기업에 비해 턱없이 적다. 병원에서도 진료 잘해서 돈 잘 버는 교수가 인정받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까지 더 많은 것을 연구해야 하고, 환자들을 위한 더 많은 치료제가 나와야 함에도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다. 거꾸로 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Q 의학연구 성과가 많이 도출 되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A 연구비의 50%는 정부지원이고, 50%는 자체적으로 마련한다. 사실 좀 아쉬운 부분은, 더 많은 연구비 지원이 있었다면 조기에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 행여나 연구비를 받았다 하더라도, 연구를 평가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형식적이다. 중요한 연구결과를 토론해야 할 시간에 연구비 정산과 관련한 보고서를 쓰며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많다. 평가 자체를 과정이 아닌, 성과 중심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송시연기자 / 사진=전형민기자 김동욱 교수는… ● 수원 신풍초ㆍ삼일중, 서울 중경고 졸업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의학 학사ㆍ석사ㆍ박사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혈액내과 교수 ●미국 프레드허친슨암연구센터 연구원 ●미국 콜로라도주립대학교 부속병원 혈액종양내과 연구원 ●미국 프레드허친슨암연구센터 교환연구교수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 이식면역연구소 교환연구교수 ●한국백혈병세포유전자은행 대표 ●가톨릭대학교 분자유전학연구소 소장 ●아시아태평양만성골수성백혈병연구회 위원장 ●세계만성골수성백혈병재단 이사 ●유럽백혈병네트워크 패널위원

[경기인터뷰] 장문익 대한컬링연맹 회장

한국의 동계스포츠 종목 중 이렇게 단기간 급성장한 종목이 또 있을까.최근 강릉 세계주니어컬링선수권 대회서 사상 처음으로 남자 대표팀이 우승을 거뒀다. 지난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여자 대표팀의 깜짝 활약 이후로 컬링은 서서히 국민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컬링의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해온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장문익(46ㆍ에버에이트 대표) 대한컬링연맹 회장은 누구보다 앞장서 컬링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 인사다.지난 9일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장에서 만난 장문익 회장은 우리 컬링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한 것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드러내며 내년 평창을 도모하고 있었다. 다음은 장문익 회장과의 일문일답. Q 먼저 지난 강릉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서 사상 첫 남자 대표팀이 우승한 것을 축하드린다. 한국 컬링의 수장으로써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텐데. A 이번 대회서 평창올림픽에 대한 희망을 봤다. 남자팀은 금메달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선수들이 기적을 만들었다. 여자팀은 올림픽도 출전했고 세계주니어대회 은메달까지 획득했었기에 여자팀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었는데, 남자대표팀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어린 선수들이지만 무관심속에서도 묵묵히 훈련해 온 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Q 컬링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비인지 종목이었고, 국제무대에서도 한국 컬링은 주목을 받지 못하며 변방에 머물렀었다. 그런데 최근 시니어와 주니어 모두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을 받고 있는데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A 대한민국 컬링의 2세대인 2014 소치 올림픽 여자대표팀이 처녀 출전해 비록 메달 획득은 못했지만 신선함과 가능성을 국민들게 보여줬다. 소치올림픽 직후 컬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기업의 후원을 받게 됐고,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기량이 급성장했다. 그리고 역사가 짧은 대한민국 컬링이 단시간에 발전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의성컬링장이란 존재가 있다. 국내 유일의 국제규격 컬링연습장으로 선수 훈련뿐 아니라 심판 및 지도자교육, 아이스메이킹 교육 등등 경기력 향상을 위한 시스템이 모두 갖춰진 대한민국 컬링의 메카다. Q 평창 동계올림픽을 1년 앞두고 지난 2월 강릉에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로 테스트 이벤트를 치뤘다. 현장에서 직접 대회 운영을 지켜봤을 텐데, 준비 상황은 어떠한가. A 이번 대회를 통해 경기장 보완과 인력 배치 등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었다. 연맹과 조직위에서 많은 운영 요원을 선발해 경기운영부터 FOP까지 다양한 방면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다만 강릉컬링센터가 기존 체육관을 리모델링하다보니 바닥평형이나 아이스메이커 등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어 이를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직위와 강릉시 등과 협의, 빠른 시일내에 경기장 문제점을 보완해 우리 선수들이 적응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 Q 컬링은 가장 짧은 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록한 대표적인 동계 종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에는 등록 팀 수가 50여개 안팎에 선수도 800여 명으로 저변이 얇다. 또한 전용 훈련장도 손꼽을 정도로 열악한데 앞으로 활성화와 대중화를 위한 방안은. A 현재 컬링인구는 생활체육 동호인까지 합하면 약 1천여명 정도 된다. 최근 컬링인구가 급성장하고 있으나 평창올림픽에서 사상 첫 메달을 획득한다면 저변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 전용경기장 건립과 기존 경기장의 개선, 관련 장비 지원 확대, 그리고 연예인 컬링팀 창단과 같은 스포테인먼트 이벤트를 통해 지속적인 홍보활동도 활발하게 추진할 계획이다. 올해 말 의정부시에 전용컬링장이 완공될 예정이고, 기존 의성컬링장도 4개 시트에서 6개 시트로 확장되며,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 컬링경기장이 생긴다. 이러한 시설을 기반으로 초·중·고교, 대학 및 실업팀을 창단해 풍부한 선수 인프라를 구축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통한 우수 선수를 양성에 힘쓰겠다. Q 1994년 대한컬링경기연맹이 창립된 이후 23년이 지났다. 통합 컬링연맹 초대회장으로 지난해 취임하셨는데 컬링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A 컬링과의 인연은 2012년 세계컬링선수권대회 때 대표팀의 경기를 접하면서 시작됐다. 컬링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비인지 종목이라는 무관심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4강까지 진출한 대표팀이 매우 인상 깊었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한다면 분명 한국 컬링이 세계적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이든지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전임 김재원 회장님과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3년간 연맹 부회장으로 재임했었고, 이후 고심끝에 한국 컬링이 발전하는 데 있어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자 연맹 회장직을 맡게 됐다. Q 흔히 컬링을 ‘빙판위 체스경기’라 일컫는다. 상당한 두뇌싸움이 필요한 종목으로 알고 있는데 컬링 종목의 매력은 무엇인지. A 컬링은 매너있는 신사 운동이며, 다양성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경기다. 쉽게 말해 상대방의 경기력에 지장을 주지 않고, 경기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상대방과의 격차를 줄이지 못할 경우 패배를 빠르게 인정해 경기를 종료하는 등 예의와 매너를 지키는 스포츠다. 컬링은 심판이 경기에 거의 관여를 안해 가장 공정한 스포츠이고 점수 매기는 방법까지 독특하며, 바둑과 체스처럼 수많은 전술과 전략이 있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Q 현재 평창 대비 국가대표 선발과 준비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A 형평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가장 우수한 팀을 선발하기 위해 출전 범위를 넓히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하도록 복수의 선발 방식으로 변화를 줬다. 기존의 선발방식은 대한체육회에 등록돼 있는 전국규모 승인대회를 통해 매 대회마다 출전 및 결과에 따라 포인트를 누적하게 되며, 누적된 포인트 순위로 국가대표선발전 출전 자격을 줬다. 그러나 변경된 선발 방식은 예선전을 4위에서 6위까지로 범위를 확대해 1팀을 선발했고, 남녀 각 8팀의 경쟁구도는 동일하지만 1차전 4강까지 진출한 팀만 2차전에 출전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2차전에서 1차전 우승팀이 우승한다면 3차전 없이 국가대표로 확정하는 시스템이다. 5월이면 3개 종목의 국가대표팀이 확정된다. 평창까지 남은 9개월 동안 최대한 국제대회를 많이 참가해 경험을 쌓게하고, 동시에 강릉에서도 평창대비 훈련을 병행할 계획이다. Q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의 한국컬링이 지향하는 목표와 회장으로써 바라는 바가 있다면. A 지난 2014년 부회장으로 소치올림픽에 함께 참여했다. 당시만 해도 국민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컬링이 예상 밖 선전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했으나, 노메달의 아쉬움이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은 동계올림픽에서 빙상 종목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에서는 메달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우리 나라에서 개최되는 평창올림픽에서 컬링종목 사상 최초의 메달을 넘어 남녀 단체전, 새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믹스더블전 모두 메달권 집입이 목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컬링의 저변이 많이 확대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 정리=김광호기자사진=전형민기자

[경기인터뷰] 김은아 경기도주식회사대표

“미국, 일본처럼 다양성이 공존하려면 결국 중소기업이 많아야 합니다. 중소기업이 중소기업으로서 공존할 수 있도록 파트너로서 제 몫 다하고 싶어요”경기도주식회사 김은아 대표(44)의 말이다. 벤처기업이 창업 후 사업화 단계에서 어려움 겪는 시기를 ‘데스밸리(죽음의 계곡Death valley)’라고 부른다. ‘데스밸리’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창업 후 3년께 되면 유통, 마케팅 단계에서 쉽게 사장되는 중소기업들이 많다.이에 경기도 내 중소기업들이 데스밸리를 견딜 수 있게, 넘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 바로 경기도주식회사다. 경기도주식회사는 사업화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판로개척을 해주는 등 유통, 마케팅을 지원해주고 있다.지난해 11월 8일 설립된 경기도주식회사는 12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1호점을 열고 중소기업 판로개척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김은아 대표는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공공플랫폼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중소기업의 성장을 돕고 경기도만의 공유적 시장 경제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Q 경기도주식회사 어떤 곳인가. A 제조 기반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자립과 사업 연속성이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 중소기업들이 스스로 ‘브랜드’라는 것을 가지고 지속 가능해야 하는데, 제품 개발하는 데에만 주력하다 보니 후에 해야 할 마케팅, 유통 등 단계에선 미흡한 점이 많기 때문.우리는 중소기업을 ‘파트너’라고 한다. 파트너들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 협력하고 마케팅, 유통 등을 도와준다. 우리가 도와주는 분야는 소상공인, 스타트업 등도 있지만 올해 주력하는 분야는 중소기업이다.지난해 닻을 올린 경기도주식회사가 올해는 정체성을 가져야 하기에 그렇게 선택했다. 이렇게 우리만의 정체성이 확보되고, 뼈대가 만들어지고 근육이 생긴다면 소상공인과 스타트업 분야에도 본격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Q 경기도주식회사 대표를 맡은 이유. A 약 19년간 거쳤던 직장들은 모두 마케팅, 브랜딩 등 분야였다. 홍보 마케팅 분야로 한우물만 판 셈이다. 그러다 직장 생활을 통한 경험과 노하우를 사회에 제대로 환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더 이상의 직장생활보다는 그간 쌓였던 것들을 가치있게 사회에 되돌려주자는 뜻에서 경기도주식회사 대표를 맡았다. 경기도주식회사 성격상 중소기업의 성장을 통해 공유적 시장 경제가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려면 시장과 소비자를 누구보다 잘 알고 현장에서 발로 뛰어본 사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내가 그 적임자라고 생각했다.실제로 현장에 뛰어들어가 보니 그간의 현장경험이 경기도주식회사의 방향과 잘 맞아떨어졌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 또 해야 하는 일들이 사회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 자부심을 갖고 중소기업들을 돕고 있다. Q 경기도주식회사 1호점, 그간 성과는. A 도내 25개 중소기업의 300여 가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첫 시도인 만큼 당초 기대만큼은 못 미쳤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했다. 급변한 국내 정세와 다소 미흡했던 업체 상품들의 경쟁력 강화 작업이었다. 현재 경기도주식회사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가장 잦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있다.방문 비율로 따지자면 외국인이 6, 국내인이 4였고 외국인 중 대다수는 중국인이다. 우리가 1호점을 DDP에 배치한 이유도 잠재적 소비자 타겟이였던 중국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컸다. 그러나 최근 사드 배치 등의 문제로 외국인 발걸음이 점차 끊어지면서 DDP 방문, 판매율이 잇따라 저조해진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또 하나는 가격, 디자인 등을 조정해 상품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제품을 판매대에 올렸어야 했는데 시간에 쫓겨 그러지 못했다. 결국 가격적인 메리트와 소비자의 니즈를 적합하게 발굴해내지 못했다.크게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현재는 1호점에 배치된 제품들의 가격을 중소기업들과 논의하며 조정하고 경쟁력이 아쉬운 제품은 교체하는 등 후속작업하고 있다. 가격이나 상품경쟁력에서 매력도를 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반면 주식회사 1호점에 입점해 있는 기업들은 기존 오프라인 판매 채널 대비 낮은 수수료로 소비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소기업들도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를 만날 수 있었고, 이러한 시도에서 경기도주식회사가 적지만 색감 있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Q 곧 2호점 개점 예정인데, 성공 이끌어낼 만한 방안 있나. A 주식회사 2호점은 시흥시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에 입점한다. 외국인 혹은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DDP에서 가족단위로 소비자 타겟이 바뀔 예정이다. 지난달부터 도내 중소기업 데이터베이스를 모으고 있다. 최근까지 1천500개가량 모았다.물론 주식회사 2호점 입점 공고를 내면 신청할 기업들은 있겠지만 그것보다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우리가 스스로 경쟁력 있는 업체를 발굴할 수도 있다. 2호점 또한 소비자의 트래픽이 높은 곳이다. 도심형 아울렛은 주변 인근 주거단지부터 시작해서 잠재적 소비자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2호점은 ‘라이프스타일’을 갖춘 편집숍 콘셉트로 생각하고 있다. 상품 하나하나에 스토리텔링을 하고 가치를 부여시켜 결국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유발시키는 방법으로 말이다.예컨대 매장에 평범한 전화기를 놓고 판매하는 것보다 우리가 90년대 사용했던 전화기를 상품으로 내놓으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전화기’ 등의 가치를 부여시킬 수 있다. “가치 있는 상품이니까 산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2호점을 준비 중이다. 브랜드 가치 및 상품 콘셉트를 보여주는 브랜드 스토어로 자리 잡을 것이고 다른 유통 채널과 비교해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Q 2호점에 배치될 제품 선택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A 제품 선택의 기준은 정말 간단하다. ‘잘 팔리는’ 제품을 골라 배치할 거다. 경기도주식회사가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 데이터베이스를 잘 활용해 경쟁력 있는 상품을 선택할 방침이다. 특히 2호점은 특히 라이프스타일과 연관성이 높은 제품들을 발굴하고 이를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해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갈 것. 일상적이지만 둘러보면 가치가 있고 이에 경기도주식회사만의 스토리를 입혀 좋은 콘텐츠로 개발할 계획이다. 충분히 시장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제품으로 가꿀 예정이다. 이와 함께 업체 대표의 철학도 중요하게 볼 것이다.예컨대 ‘아이들이 이용하는 제품이니 안전 관련 특허 하나 받으려고 6개월 동안 매달리는’ 그런 열정, 끈기가 있는 대표들 말이다. 현재 일차적으로 경기도주식회사 자문회의에서 평가 기준 등의 자문을 받은 상태다. 자문회의에는 현직 디자이너, 바이어, 중소기업단체협회, 변리사 등 20여 명의 전문가가 모여 상품선택 기준 등에 대해 논의했다. Q 경기도주식회사가 갖는 의미는. A 요즘 “중소기업을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키우는 게 목적이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우리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을 중소기업으로서 공존하는 것이 경기도주식회사의 최종목표다. 일본의 경우 대기업보다 중소기업들이 많고 또 오래 지속되고 있다. 국가의 허리를 맡고 있는 중소기업이 튼튼한 셈이다.우리나라와는 정 반대의 경우이기도 하다. 결국 국가의 다양성이 지속되고 높아지려면 중소기업들이 중소기업으로서 공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가의 허리를 담당해야 할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또는 제조업의 경우 제조 단가가 싼 동남아, 중국 등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쓸쓸한 현실이자 고통받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특히 전국적으로 경기도에 중소기업들이 많이 밀집돼 있다. 중소기업 육성은 경기도가 해야 할 일이다. 경기도주식회사의 의미는 이런 사명감에서 찾을 수 있다. 중소기업에 가치를 계속 부여해주고 또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중소기업들이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장이 마련되는 경기도 주식회사가 됐으면 좋겠다. 중소기업의 파트너로서 공존하고 싶다. 허정민기자 / 사진=오승현기자

[경기인터뷰] 이정호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

“지역 주민들 그리고 동료 변호사들과 수원고법 시대를 ‘함께’ 열어가겠습니다” 이정호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57연수원 27기)은 ‘도전’에 익숙하다. 남들은 직장에 다닐 서른넷부터 사법고시 준비에 나섰고,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변호사를 시작한 것도 큰 도전이었다.개업을 하자마자 ‘IMF 사태’가 찾아왔을 때는 어려운 환경에 놓인 ‘청소년’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온몸으로 부딪혔다. 마라톤에 도전해서도 14년 동안 10회의 풀코스를 완주했다. 말 그대로 도전의 삶을 살아온 이 회장에게 이제 새로운 과제가 찾아왔다.바로 2년 뒤 열리는 ‘수원고법’ 시대다. 지역 법조 환경을 달라지게 할 수원고법 시대에 맞는 지역 변호사들의 변화가 필요한 때, 경기변호사회 회장이라는 중책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두려워하는 내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소통’과 ‘화합’을 기치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이 즐겁다는 이 회장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따뜻한 변호사’를 만들어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이 회장은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동반자가 있으면 어려운 일도 극복하고 시너지 효과도 있다는 뜻”이라며 “도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받는 경기변호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Q 2년 뒤 ‘수원고법’ 시대가 열린다. 그간의 소회는. A 지난 4년 동안 고등법원 유치는 가장 큰 화두였다. 수원고법 유치는 더 나은 법조 서비스를 제공받길 원하던 경기도민들의 열망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제 수원고법 유치가 확정된 만큼 기쁨을 누리는 것은 여기까지다. 이제는 지역 변호사들이 어떻게 주민들에게 보답하고 봉사하는지가 중요하다.특히 지역 주민들이 믿고 고민거리를 맡길 수 있도록 질 높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8년 전 경기변호사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을 때 지역 기업들이 지역 변호사를 활용하기보다는 서울로 많이 가는 모습을 봤다. 더 이상 지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맡기지 않는다. 고법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깨닫고 대비해야 할 일이다. Q 지역 변호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복안이 있나. A 일부 회원들은 이미 개별적으로 모여 판례나 전문 분야 공부를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업무에 쫓기다 보니 참여가 부진한 경우도 많다. 나 또한 지난 1999년 ‘행정법학연구회’를 만들어 활동을 하다가 중단한 아픔을 갖고 있다. 그래서 협회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학회 모임들을 만들 생각이다.역량을 기르고 싶은 회원들이나 젊은 변호사들에게 공부의 기회와 정보 공유의 장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협회에서는 분야별 전문가나 특강을 안내해주고, 회원들에게 홍보하는 역할 등을 펼칠 계획이다. 금방 잘 되긴 어렵겠지만, 5~10년 뒤 미래를 본다면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Q 경기지역 주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경기변호사회를 강조했다. 그만큼 지역에서의 다양한 활동도 기대된다. A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들의 신뢰다. 경기변호사회는 경기도민들의 신뢰를 먹고 자란다. 그러나 여전히 법조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도 여전하다. 법조 비리 등이 크게 이슈화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변호사는 ‘변호사다워야’ 한다는 국민들의 주문과 다름없다. 사실 경기변호사회는 지금껏 법률구조, 소송구조, 민사소액 소송변호사단 구성, 무료 법률상담, 찾아가는 법률상담소 등 다양한 지역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본다. 꼭 법률이 아니더라도 행동하는 봉사를 전개할 생각이다. 소년원 아이들과 ‘삼겹살 파티’도 하고, 부모와 자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운동 등도 펼치고 싶다. 이 세상에 사랑받지 못할 청소년은 없다고 본다. Q 청소년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A 지난 2000년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의 사건 변호를 했던 것이 시발점이었다. 형보다 못하다는 비교에 벌어졌던 다툼이 사건으로 이어졌다. 따뜻한 대화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소년범에 대한 국선변호사를 10년 정도 하면서 청소년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그렇게 활동하면서 내린 결론은 역시 부모와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만이 청소년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사회가 좋아야 아이들도 보호받고, 대우받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하는 이상 평생을 가져갈 화두다. Q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변호사 배출 수가 늘면서 변호사계도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었다. 사시 출신과 로스쿨 출신 간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A 사시-로스쿨 문제는 지방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나라에서 정한 적법한 자격을 갖춘 변호사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요즘 변호사들 중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회장에 취임할 때도 소모전과 분열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변호사에 대한 주민 불신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특히나 수원고법이 설치되면 대형 로펌들이 이곳으로 내려올 것이다. 오히려 더욱 지역 변호사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 사시와 로스쿨간 기수가 비슷한 변호사들을 묶어 계속 만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인적으로 변호사 생활을 늦게 시작해 누구보다도 변호사들의 애환을 잘 안다. 소외되는 회원들이 없도록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농구, 마라톤, 야구 등 다양한 동호회 활동을 장려해 소통과 화합을 이끌어내겠다. Q 변호사는 어떤 사람이라고 보는가. A 변호사는 ‘연기자’다. 사건은 대본이다. 최선의 변론을 위해서 변호사는 명연기자가 돼야 한다. 건축 사건이면 건축사가 돼야 하고, 회계 사건이면 회계사가 돼야 한다. 이를 통해 변호사는 의뢰인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지역 주민들의 고민거리를 함께 안고, 주민들의 삶을 내 삶이라 생각해야 한다. 사건이라는 대본이 이해가 안 된다면 연기자처럼 계속해서 대본을 연구해야 한다. 언제라도 명 변호를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역주민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관심과 애정을 돌려드리는 일이라고 본다. Q 앞으로의 각오와 포부, 지역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A 수원고법 유치운동 당시 도민들께서 보여준 열망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그 혜택을 돌려주고 싶다. 더욱 체계적으로 변호사 역량을 강화해 주민들의 고민거리를 누구보다 잘 해결하고, 지역 현안과 아픔을 함께하며, 희로애락을 같이 느끼는 경기변호사회를 만들겠다. 항상 낮은 자세로 지역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문제’는 부정적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정답은 과거의 산물이다. 문제가 새로 생기면 답을 찾기 위한 고민이 요구된다. 미래 시대를 여는 ‘문제 있는 변호사’로서 지역사회와 함께 뛰어 나가겠다. 이명관 이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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