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혁신교육 10년, 독일교육에서 길을 찾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지난 2일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교육선진국 독일의 교육은 뭐가 다르고, 무엇이 특별한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추진된 5박7일 간 독일 교육현장에서의 일정은 경기교육의 미래를 이끌어가기 위한 유의미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독일은 6세부터 4년 동안의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그룬트슐레(Grundschulen)에 입학한다. 초교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하는 10살 때 담임교사와의 상담을 통해 학생들의 진로가 결정된다. 우리나라와 달리 인문계와 실업계 구분이 없고 차별도 없다. 또 무조건 대학에 가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선행학습이라는 게 없다. 성적표가 없고 틀에 짜인 학제 대신 다양한 팀별 및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가 있다. 심지어 교장조차 두지 않거나 학생마다 시험문제가 다 다른 학교도 있었다. 이처럼 독일의 교육은 다양하고, 학생 중심의 학제와 지역사회와 기업의 책무가 남다르다. 이 같은 독일 교육에 대해 이재정 교육감은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를 경험하고 분할 통치되는 경험을 겪고 동독과 서독으로 나눠진 후 통일된 독일의 교육은 폭이 넓고 깊고 다양하다며 특히 직업교육의 체계가 상당히 견고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재정 교육감을 비롯한 도교육청 학생정책과, 미래교육정책과 진로 및 직업교육담당 장학사 등 방문단은 첫날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한 초ㆍ중ㆍ고 결합 12년제 대안학교인 오버우어젤 발도르프슐레(Freie Waldorfschule Oberursel)를 시작으로 독일 헤센주(州) 교육부, 인문실업 종합학교인 이게에스 노르트엔트 슐레(IGS Nordend Schule der Vielfalt), 베를린 국립 직업학교 STB 등 교육기관을 방문했다. 특히 100년 전, 주입식 위주의 전통적인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이 가진 능력과 감성, 사고의 조화로운 발달을 지향하며 독일에서 처음 시작된 발도르프슐레를 방문한 학교에서는 지난 100년간 독일 교육에 크게 영향을 미친 발도르프 교육개혁의 철학을 공유하고, 경기혁신교육의 향후 발전적인 운영 방안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또 인문계와 직업계가 통합된 형태의 종합학교(게잠트슐레Gesamtschule)로 전교생 600명 규모의 IGS에선 인문계직업계 구분 없는 통합교육, 교사-교사, 교사-학생의 팀 문화, 지역사회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학생중심 프로젝트 운영 등 이 학교만의 특색있는 교육 철학과 교육법, 진로직업교육을 살펴봤다. 이것은 펜이다라는 식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예를 들어, 학생들이 직접 보트 만드는 법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예산 책정하기(수학), 물 위에 배 띄우기(물리), 영어로 된 조립설명서 이해하기(언어) 등의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자연스럽게 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인문계, 직업계 반 구분 없이 이런 공통 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강점과 적성을 스스로 알아가게 된다. 이처럼 교육의 개별화를 지향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흥미와 적성을 키워주는 이 학교만의 교육철학에 방문단은 많은 인상을 받았다. IGS 게잠트슐레 교장단의 플로리안 노이키르헨(Florian neukirchenㆍ40)씨는 우리 학교의 융합교육은 학생들은 모두 다르다, 단지 다른 방향을 지향할 뿐이다는 관점에서 시작한다라며 대표적인 교육과정으로는 주 4시간 학생 스스로 공부할 과목과 진도 등을 구성하는 수업(SOL)이 있다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입시교육에 함몰돼 자신의 진로 탐색과 적성에 대해 고민을 할 여유조차 없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과 달리, 독일 게잠트슐레 학생의 경우 충분한 시간에 걸쳐 자아를 탐색을 거쳐 진로직업교육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재정 교육감은 게잠트슐레의 수업 방법과 과정, 진로교육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라며 우리나라 직업교육도 이 게잠트슐레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부적인 논의를 거쳐 도교육청만의 마이스터과정 위주의 미래 진로직업교육 대안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프랑크푸르트ㆍ베를린)=강현숙기자

영화 ‘1987’과 6·10 민주항쟁… 세상을 바꾼 그들의 선택

시간이 지나도 우리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지워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 부르고 그 역사는 지금 우리의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영화 1987은 지난 2017년 12월 27일에 개봉한 6월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다. 6월 민주항쟁으로부터 33년이 지난 지금, 2년 전 겨울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1987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영화 1987의 중심에는 1987년 1월, 경찰에게 심문을 받던 대학생이 사망하게 되었던 사건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놓여져 있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진실을 숨기려는 경찰, 진실을 파헤치려는 검사, 진실을 보도하려는 기자, 진실을 바꾸려는 운동가들 등의 이야기들이 엮어져 있다.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주조연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은 인물은 있어도 영화 속에서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없다. 주연은 물론 조연까지 심지어 특별출연까지 인물 하나하나가 영화 속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덕에 영화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인물에 관련된 사연을 만나보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할 틈 없이 흥미를 유발하였고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연희라는 인물 그 자체이다. 영화 중반부서부터 등장하는 연희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성장하는 인물이다. 그 말은 즉, 연희는 누구보다 주체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의 연희가 사회의 부조리를 깨닫고 각성하여 이 시대의 새로운 영웅으로 거듭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연희는 그 당시의 민주화 운동에 회의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다수의 시민들을 상징한다. 이러한 연희가 처음에는 사회 문제를 외면하였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면서 시위에 가담하게 된다. 이는 사회에 무관심하던 넥타이 부대, 회사원들과 같은 사람이 6월 민주항쟁에 합류했다는 것을 연희라는 인물에 녹여서 표현해 낸 것이다. 그리고 한국 영화에서의 여성은 대부분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여성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며,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실행할 줄 아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러한 차별화된 특징이 이 영화를 매력있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실제 여성운동가를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1987은 많은 상징이 담겨 있다. 영화를 여러 번 보면 볼수록 새로운 사실이 보이고 그 때문에 신선한 감동이 벅차 오른다. 이 영화는 눈물이 미친 듯이 날 정도로 슬픈 영화는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해 결국에는 벅찬 감동을 전달해 준다. 이러한 점들이 오히려 영화의 여운을 남기고 기억을 더 오래 가게 만드는 것 같다. 또한 배우들의 실존 인물들에 대한 연기가 영화의 몰입을 도울 뿐만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한 감정이 더욱더 잘 돋아 날 수 있게 하였다. 그 날, 그 곳에서는 특별한 누군가가 있었던 게 아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부당함에 맞섰고 진실을 외쳤다. 그 희생, 눈물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선택과 외침은 어떠한 지도자도 국민과 민주주의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역사적 근거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이들이 원하던 세상,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박예진 용인 보라고 3

학교안 체험 현장… 향긋한 ‘바리스타 꿈’ 키워요

광주 초월고등학교(교장 강창수)의 점심시간 핫플레이스는 아미띠에 카페다. 교내 카페 아미띠에에서는 항상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주문을 받고 능숙한 솜씨로 음료를 제조하는 특수학급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미띠에는 초월고등학교 특수학급 학생 19명의 서비스 교육 실습 현장이다. 아미띠에 카페실습은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대인관계 형성능력과 더불어 사회성 및 인성을 향상시키고자 실시됐다. 학생들은 메뉴 주문받기, 포스시스템을 통한 메뉴관리 및 음료 만들기를 통해 교직원들과 관계를 맺는 서비스 교육을 받는다. 특히 학생들은 중점적으로 학습한 인사하기와 눈 마주 치기를 활용해 자신감을 갖고 활기차게 실습에 임하고 있다. 아미띠에(amiti)는 친절, 배려라는 뜻의 의 이름에 걸맞게 인성교육, 예절교육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것이 특수학급의 교육 목표다. 강창수 교장은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심어주는 일이라며 인사하기라는 작은 활동에서 싹튼 지속적인 성취감, 자존감이 또 다른 것을 해내고 싶어 하는 도전의식으로 발전하는데 이러한 도전의식이 업무수행능력의 향상을 이끌어 직무 현장에서도 본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틀이 된다고 강조했다. 선생님들은 카페 실습 교육을 통해 현장 경험을 쌓은 학생이 일터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차고 한다. 특수학급을 담당하는 김미경 통합교육부장은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은 지적 및 사회성의 제한으로 인해 인지적 학습으로 거둘 수 있는 효과가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라며 따라서 카페 실습을 통한 현장 경험을 중심으로 융합적인 활동을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올해 졸업한 특수학급 학생인 김종익 학생은 경기도광주하남교육청이 위탁으로 운영 중인 꿈엔카페에 취업했다. 아미띠에 카페 현장 실습을 바탕으로 형성한 자존감과 도전의식을 바탕으로 항상 꾸준한 노력을 해 온 졸업생은 채용 면접 시 손님 응대 영역에서 가산점을 받아 최종 합격했다. 강창수 교장은 특수학급 학생들이 자신이 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우리 학교는 특수학급 학생들의 자존감을 탄탄히 심어주는 교육활동을 전개해 이들이 사회에 자연히 녹아들 수 있는 통합교육을 실현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미디어경청종합

[학교 소식] 교내 통일 염원 ‘바람개비 동산’ 조성

김포 통진고등학교(교장 김재곤)는 지난 3일 학교 희망의 언덕에서 평화누리 전문적 학습공동체 교사들(대표 장문희)과 대표 학생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과 평화를 소망하는 바람개비 동산 조성 행사를 가졌다. 올해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통일공감학교로 지정된 통진고교는 평화와 통일 관련 체험활동과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통일교육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100여 개의 바람개비를 직접 제작해 통일 동산을 조성했다. 교육주간 동안 통일골든벨, 통일 소망 글쓰기, 통일 관련 영상 시청 등 평화와 통일을 희망하는 체험 행사를 진행해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학생들이 지역사회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행사를 직접 제안, 기획하면서 바람개비 동산을 학교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언덕에 조성, 지역 주민과 함께 공감하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바람개비 프로젝트를 기획한 통진고 2학년 손경희 학생은 평화와 통일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염원이 바람개비 동산 조성으로 결실을 맺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통진 지역 포토존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돼 보람 있는 활동이 됐다고 밝혔다. 통진고등학교는 향후 바람개비 동산의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통진 지역뿐만 아니라 김포시의 랜드 마크로 주목받을 수 있도록 기획 중이다. 김포 통진고 이종영 교사

[스쿨통] 수원 연무중, 희망의 운동화 그리기

수원 연무중학교(교장 이기홍)는 지난 5월 27일부터 31일까지 5일간 희망의 운동화 그리기 행사를 개최했다. 희망의 운동화 그리기 행사는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mizi)와 연결해서 연무중학교에서 올해까지 2년째 진행중인 행사다. 행사는 연무중학교 ESD 도우미반이 계획 및 진행했다. 학생들이 방과 후에 희망운동화 행사에 참여해 흰 운동화에 희망의 메시지를 그려주었다. 행사는 방과 후, 제 1, 2, 3 과학실에서 나눠 진행됐으며 5일 동안 전교생 약 250여 명이 행사에 참여했다. 학생들이 그린 운동화는 추후 라오스의 청소년들에게 직접 배달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새 운동화를 보내지 않을까? 그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그림을 통해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또한 새 운동화의 상품성을 지워 유통과정에서 블랙마켓, 즉 암시장으로 유출되는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빈곤 국가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수원 연무중학교는 유네스코의 이념을 다양한 교육 활동을 통해 앞장서 실천하는 유네스코 학교다. ESD(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도우미반에서 매년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희망의 운동화 그리기 행사 역시 2018년도부터 2년동안 진행 중이다. 작년에는 이외에 공정무역 초콜릿 판매, 워머 기부 등 다양한 활동을 실시했다. 희망의 운동화 그리기는 운동화 위에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해외 빈곤 청소년들에게 전달하는 전 세계적인 지구촌 나눔 운동이다. UN의 국제 평화 및 세계 아동을 위한 비폭력의 프로젝트인 AMMP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미지센터를 시작으로 2007년도부터 진행되었으며 매년 한 국가를 정해 희망의 운동화를 전달하고 있다. 이채원기자(수원 연무중 3)

[학생 칼럼] ‘커피밭 사람들’로 얻을 수 있는 사소한 행복

책 커피밭 사람들의 글쓴이는 중남미 일대의 커피밭을 여행하고 커피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사연 많은 삶을 직접 경험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있다. 커피 한 잔 뒤에 가려진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사소한 행복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가져다 주는지 알려주고 있다. 요즈음에는 커피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정작 커피를 따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수확한 고급커피 한 잔 먹지 못한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현대인들은 이 책에 나오는 커피를 따는 노동자들보다도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많다. 하지만 대다수 현대인들은 커피밭 노동자들보다도 행복하지 못하다. 왜일까? 결국 가진 것과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커피밭 사람들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진 것은 적어도 행복할 수 있고 사소한 일에도 행복하고 감사할 줄 안다면 이들처럼 매사에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엘레나와 기예르모 부부가 나온다. 두 부부는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커피 밭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들은 10시간 가까이 땀 흘려 일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일해서 받는 대가는 우리나라 돈으로 1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일을 다녀온 뒤 마시는 콜라 한 잔에 아주 행복해한다. 나는 나도 콜라 한 잔에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두 부부보다 더 여유 있게 사는 데도 행복을 느끼는 것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이 아닐까. 최근 이슈가 되는 연예인이나 재벌 총수 2, 3세들의 마약 사건의 경우도 사소한 것에 만족하고 행복할 줄 모르고 욕심이 끝이 없다 보니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고 만족하지 못한다면 결국 과욕을 부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확행이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초등교육 3년이 전부인 배움과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하루 종일 땡볕 아래 커피를 따야 하는 상황에서도 온전히 자기 삶에 감사하는 엘레나에 비춰진 나를 본다. 강민혁 용인 손곡중 1학년

[학생 칼럼] 장애등급제 폐지, 편견과 차별없는 세상을 위하여

오는 7월 장애등급제 폐지를 앞두고 있다. 7월부터 적용되는 제5차 장애인 정책 종합계획에 대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 알아보자. 1988년 시행된 장애인 등급제는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라 장애 종류별 1~6급으로 분류된 제도다. 장애 분류에 등급을 구분 져 차등적인 복지혜택을 부여한다. 이 제도는 등급에 따라 복지 혜택을 분류하는 등 행정적인 편의를 제공한 부분도 있었지만 장애인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낙인효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지속해서 있었다.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제5차 장애인 정책종합계획을 심의, 확정했다. 이번 정책의 가장 큰 변화는 6개의 등급으로 획일화시켜 서비스를 제공하던 방식과 달리 종합적 욕구 조사를 실시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종합 욕구 조사의 결과에 따라 서비스 폭이 다양해지고 이를 위해 정부는 2019년 7월부터 2022년까지 일상생활 지원, 이동지원, 소득 고용지원 등 개별적 조사를 통해 맞춤형 도움을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기존 1~3급 장애인들은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4~6급은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하고 장애 정도는 서비스를 지원할 때 기준이 아닌 참고자료로만 활동하고, 주요 서비스별 수급 자격은 별도의 자격심사를 통해 맞춤형 복지혜택을 실행할 예정이다.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다수 여론은 보통 장애에 등급을 매겨 장애인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알려 하지 않고 병명과 등급만을 보고 복지혜택의 부여 결정을 정해버린다는 비판적인 의견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혜택이 1급 장애인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고 2, 3급 장애인들은 중증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복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에 장애등급제를 점차 폐지하고 종합욕구 조사를 통해 맞춤형 복지혜택을 실행할 수 있도록 주장한다. 법적인 제도의 변화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없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김서영 용인 백암고 3학년

[항일독립운동 학교 유적지를 찾아서] 7. 파주 교하초등학교

파주시는 얼마 전 31절 100주년을 맞아 파주시 일대에서 대대적인 만세시위의 도화선이 됐던 교하초등학교(옛 교하공립보통학교)에 파주 교하 31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우고 준공식을 가졌다. 경기도 지역 언론뿐 아니라 중앙 일간지에서도 기사로 보도했고, 파주시에서도 310 교하공립보통학교 만세시위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독립만세 거리행진 퍼포먼스를 하였다. 또한 파주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100주년 기념식 및 경축음악회, 파주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 학술심포지엄, 3ㆍ1운동 거리대행진 재현행사 등 4대 분야(기념비 건립, 기념문화사업, 교육학술전시, 시민참여홍보 등)의 총 17개 사업이다. 100년의 역사와 가치를 범시민적으로 기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들이 포함됐으며 이번 추진단 회의결과를 토대로 확정된 기념사업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파주에서 맨 처음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은 어디일까? 국사편찬위원회 기록에 의하면 1919년 3월 10일 구세군 교인 임명애(林明愛)는 교하공립보통학교 운동장에 모인 학생 100여 명을 독려해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기록돼 있다. 다른 곳과 달리 파주에선 보통학교가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에 교하초등학교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임명애가 선창하자 학생들도 따라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파주 곳곳으로 번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 시위 이후 3월25일 당시 16살 학생인 김수덕과 24살 농민김선명이 염규호, 임명애의 집에 와서 독립운동을 의논하고 염규호가 원고를 작성하고, 김수덕이 등사판으로 격문을 만들어 와석면 당하리 일대에 배포했다. 격문의 내용은 동리 산으로 오는 28일 일동은 모이라. 집합치 않는 자의 집에는 방화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당시에는 이처럼 극단적인 방법까지 써가며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의지를 담았던 것이다. 하루 전인 3월 27일에 만세시위가 실행됐다. 700여 명이 시작했는데, 면사무소로 행진하면서 1천500여 명에 달했다. 교하헌병주재소 헌병들이 발포하면서 최홍주가 사망했고, 그로 인해 시위대는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파주 독립만세시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임명애와 염규호였다. 임명애는 독립운동사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3월 25일 시위가 임명애 집에서 기획됐고, 체포된 이후 경성지방법원에서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그 내용을 보면 임명애는 공립보통학교운동장에서 생도들을 선동하여 치안을 방해한 자 격문을 배부해 자기 면민들과 조선독립운동을 하려고 꾀하여 이 날 소관 관청의 허가를 얻지 않고서 볼온문서를 인쇄하여 반포함으로써 그 지방의 정일을 깬 자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염규호, 김수덕, 김선명에게는 징역 1년형을 임명애에게는 징역 1년6월형을 판결했다. 당시 만삭이었던 임명해는 구세군 사령 부인으로도 활약했다. 임명애는 서대문형무소에 유관순과 함께 8호 감방에 수감됐다. 그녀는 구세군 사령 부인으로 임신 중에 체포됐다. 임명애는 출산이 임박하여 수감된 지 한 달만인 1919년 10월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출산하고 11월에 신생아와 함께 다시 들어와 수감생활을 했다. 그러나 한겨울 엄동설한 추위에 난방도 되지 않는 감옥은 기저귀가 얼어붙는 등 아이를 키우기에는 너무도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때 같이 수감돼 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산모에게 자기 밥을 덜어주고, 아기의 오줌 싼 기저귀를 손으로 짜서 허리에 감싸 체온으로 말려주는 등 함께 아기를 돌봤다. 1921년 4월 만기 출소하면서 임명애는 고향에 돌아왔다. 현재 파주시에서는 임명애 생애를 담은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 공연할 예정이다.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1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독립운동으로 평가되는 항일투쟁이었다. 31운동의 결과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한민족의 역사를 지탱하며 독립투쟁을 주도해 왔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역사적 법통으로 천명하고 있는 만큼 100주년의 의미는 더욱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윤용한 화성 고정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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