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소감]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 “환경문제 해결 미래 먹거리 창출”

저를 당선시켜 주신 서구 구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제게 보내주신 열렬한 지지와 성원에 ‘실천’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저는 서구 주민 여러분의 엄중한 명령을 받들어, 촛불정신의 민의가 가득 담긴 열린 구정을 통해 구민과 함께 발전하는 서구청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구는 산업화시대부터 국가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으며, 신도시와 수도권매립지의 미래비전 수립 과제도 주어진 과거와 미래의 가치가 함께 하는 곳입니다. 저는 30년 환경·행정전문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먼저, 많은 서구 주민들께서 걱정하고 계시는 환경문제에 주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환경과 안전을 통합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하겠습니다. 서구 주민의 오랜 숙원이자 인천의 최대 현안인 수도권매립지 문제에 마침표를 찍고, 수도권매립지를 서구의 30년 미래 먹거리로 반드시 만들어 내겠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능력과 열정을 쏟아 부어 서구의 현안들을 해결하겠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를 서구 주민과 함께 하는 소통과 경청의 기회로 삼고 구민 여러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했습니다. 저의 경청과 소통의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저를 선택해 주신 서구 구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당선소감] 맹성규 남동구갑 국회의원 당선인

저 맹성규를 따뜻하게 품어주신 인천시민과 남동구민 여러분!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지난 5월16일 인천시청 브리핑룸에서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한 후 28일 동안 더 나은 인천, 더 나은 남동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고향 인천에서 남동구 구민 여러분을 찾아뵙고 일일이 인사를 드리며 많은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을 만나 경청하고 소통하는 자세로 의정활동에 임하겠습니다. 지난 30년의 공직생활 동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동구 구민 앞에 국회의원으로 서게 됐습니다. 고향 인천을 떠나 공직자로 활동하면서 남동구가 직면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추진력 있게 공약을 실행할 ‘일 근육’도 길렀습니다. 이제 남동구민과 국민들을 위해 제 경험과 지식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걱정할 것 많고 고민할 것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 맹성규는 여러분들이 이겨내고 있는 그 삶의 무게, 그 어깨의 짐들을 함께 나누어지겠습니다. 막막한 순간 마지막으로 떠올릴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따뜻한 버팀목이 되어 드리고자 합니다. 늘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주당 바람 비껴간 인천 강화군…한국당 유천호 당선

6·13 지방선거에서 인천을 휩쓴 여당 초강세 현상이 유일하게 강화군을 비껴갔다. 인천의 10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9곳을 승리한 가운데 자유한국당 유천호(67) 강화군수후보가 유일한 야당 기초단체장으로 당선됐다. 강화군수를 지낸 유 당선인은 현직 군수인 무소속 이상복(64) 후보와의 3번째 대결에서 40%가 넘는 득표율을 얻어 재기에 성공했다. 강화군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으로 전통적인 보수 표밭으로 꼽히지만 역대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강세를 보여 접전이 예상됐다. 유 당선인은 2012년 보궐선거에서 강화군수로 당선됐으나 2년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이 후보에 2천여 표 차로 자리를 내줘야 했다. 앞선 2006·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무소속 안덕수 후보가 연달아 승리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전국적인 여당 강세 속에 민주당·한국당·무소속의 3파전 구도가 형성되면서 보수표심을 모은 유 당선인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더불어민주당 한연희(58) 후보는 보수 텃밭 강화에서 26.6%를 득표해 무소속 이 후보와 표를 나눠 가졌다. 두 후보의 득표 차는 1천여 표에 불과했다. 한 후보와 이 후보가 모두 행정 관료 출신인데 반해 유 당선인은 언론계 출신으로 상대적으로 친화력이 돋보인 점이 승패를 가른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개표 초반부터 선두를 달리던 유 당선인은 결국 높은 득표율로 이 후보를 가볍게 따돌렸다. 강화군은 인천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면적이지만 문화재 보호법과 군사시설보호법 등 각종 개발 규제에 묶여 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를 넘는 초고령 지역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유 당선인이 규제를 풀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유 당선인은 "강화군의 지리 여건을 살려 남북교류 거점 도시와 수도권 제1 관광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나 인천시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며 없던 길도 뚫어가며 공약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또 "농·어업인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여 자유무역협정(FTA) 수입 개방에 대응할 수 있는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6·13 국민의 선택_그는 누구인가] 진보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인

300만 인천시민은 1,2대 직선 교육감이 연이어 비위에 연루돼 위기에 빠진 인천교육을 구할 새로운 수장으로 진보진영 단일후보 도성훈 인천시 교육감 당선인을 선택했다.도성훈 당선인은 1985년 2월 인천 성헌고등학교에서 재단의 파행적 학교 운영과 비리에 맞서 싸우는 것으로 첫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전교조 설립에 주도적이었던 그는 1천500여명의 대량 해고사태를 피하지 못했다.그가 다시 교편을 잡은 것은 1994년 3월, 해직된 지 4년 6개월 만이었다. 해직교사로 교육민주화를 외치며 현실적 어려움을 겪던 그가 교단에 다시 서게 된 것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있는 혁신학교를 선사하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 400년 된 느티나무를 벗 삼았던 석천리 꿈많은 소년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인(58)은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석천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버스도 다니지 않던 산 중턱 산골마을이었다. 천안에 가려면 3시간 동안 산길을 걸어야 하는 ‘산골 소년’이었다.사찰과 사당 등을 짓는 대목(大木)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에서 살던 그는 궁핍한 산골에서 벗어나 강원도 철암 공장으로 향하던 부모님의 손을 떠나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그의 고향 입구에는 400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어른 양팔로 세 번을 둘러야 할 정도로 큰 나무는 그에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곳이었다가, 미래의 꿈과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을 키우는 희망의 공간이기도 했다. 봄이면 산에 올라 친구들과 함께 진달래를 따 먹고, 달래와 냉이, 다래, 으름, 머루, 칡뿌리로 간식을 대신했지만, 조부모가 아낌없이 준 사랑 덕에 삶에 가장 큰 자양분을 얻었다. ■ 부모님에게 교사의 덕목을 배우다 10년 만에 함께 살게 된 부모님은 한없이 자애롭던 조부모와 달리 그를 엄격하게 대했다. 어리광만 부리며 살았던 철부지에게 어머니는 아들이 잘못될까 우려돼 회초리로 매섭게 야단을 치곤 했다. 반면 아버지는 교육문제는 어머니에게 일임하고 그를 묵묵히 바라보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 어머니의 엄격함, 아버지의 신뢰는 그가 교사로서 살아가는 내내 가슴에 간직한 덕목이 됐다.80년대 초반 민주화 요구 집회와 시위 속에도 대학생활 낭만에 빠져 베이스기타를 잡았던 그는 시골훈장으로부터 한학을 배워 자신에게 가르쳐주며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전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스승의 보람을 느끼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교직을 이수해 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 첫 부임 학교서 사학재단 비리에 맞서다 1985년 2월, 대학 졸업 한 달 뒤 사립학교인 인천 성헌고 교사로 부임했던 그는 재단 이사장 부인이 교장으로 있던 이곳에서 처음 사학재단 비리와 맞섰다. 1987년 새로운 학교재단이 들어선 뒤 부족한 교사를 임시 강사 채용으로 대체하는 등 이상한 일이 이어졌다.결국 그는 동료교사 8명과 함께 1988년 1월 유성으로 떠난 여행에서 처음 서로 문제에 공감하고 공동 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1988년 8월 23일 하나 둘 뜻을 함께했던 교사 23명이 평교사협의회를 공식 발족했고, 그는 초대 회장이 됐다. 첫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이후 작은 사건이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결국 그는 교사협의회 결성을 사유로 해임됐고, 청문회를 통해 교사 임용 비리 등 학교 전횡이 폭로되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 100여명이 학교로 몰려오면서 다시 복직할 수 있었다. ■ 4년 6개월, 해직교사의 삶이 시작되다 성헌고 민주화 투쟁이 마무리될 무렵 전국 교사협의회가 교원노조건설특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전교조 결성이 본격추진됐다. 그 역시 전교조 결성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1989년 6월 10일 전교조 인천지부도 800여명의 교사들과 함께 결성식을 열고 정식 출범했다. 그는 학교민주화를 주도하고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1989년 8월 1일자로 직권면직 조치됐다. 1천500여명의 대량해고 사태에 항의하며 전국 해직교사들과 명동성당 단식농성에 참여하고 있을 때였다.그곳에서 뜻을 같이하는 고교 동창 5명을 만났다. 부평고 출신 해직교사만 6명, 힘든 단식에도 그가 교육민주화를 포기하지 않도록 한 힘이었다. 4년 6개월 해직교사 시절, 그의 부인 김인숙씨는 묵묵히 남편 곁을 지키며 가정을 책임졌다. 명절에도 빈 손으로 고향집을 찾아야 했고, 어머니 생신에는 빈손으로 갔다가 아들의 어려움이 마음 쓰여 사준 점퍼를 입고 돌아오며 그는 참 많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 다시 돌아온 학교, 멈출 수 없었던 교육민주화 1992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해직교사들의 원상복귀에 매달린 그는 1994년 3월 신규 특별채용 형식으로 관교중학교에 부임했다. 여전히 전교조는 불법이었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그는 선생이야말로 평생을 해볼 만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두 원하는 내용의 복직이 아니었지만 받아들였다.전국 최초 여자공업고등학교인 인천여자 공고에서 일하던 1999년, 드디어 전교조는 합법노조가 됐다. 1년 6개월여를 전임자인 사무처장으로 일하던 그는 2001년 다시 교사로 복직했다. 그리고 2002년, 인천지부장선거에서 11대 인천지부장에 당선됐다. 이후 12대 지부장까지 연임하며 교육개방, 교육행정정보시스템(네이스) 도입, 학교급식 지원조례 등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면 언제나 제일 앞에 그가 있었다. ■ 행복한 교육 만들기에 나서다 부개고등학교에 부임한 그는 인천 참교육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반찬가게, 정육점, 국수집을 운영하는 각계각층 시민 400여명이 참여해 십시일반 장학금을 모았다. 그리고 옮겨간 동인천고에서는 인문계 고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고민했다. 인문계 고교를 활력이 넘치는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는 2016년 행복배움학교(인천형 혁신학교)인 동암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해 학교 혁신을 이끌었다. 동암중은 모두가 주인이었고, 소통에 두려움 없는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곳이었으며, 학부모와 학생 모두 학교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곳이었다. 욕설, 체벌, 꾸중 대신 칭찬과 웃음이 가득했던 동암중은 그에게 ‘2017 대한민국 참봉사대상’ 참교육공헌부문 대상,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 교육부문 대상을 안겼다. 김경희기자

[6·13 국민의 선택_그는 누구인가]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인천시장 당선인

300만 인천시민은 민선 7기 인천 호를 이끌어 갈 적임자로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인천시장 후보를 선택했다. 박 당선인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현역 시장인 유정복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압하고 인천시장에 당선됐다.박 후보의 당선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정에서의 보수세력에 대한 실망감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각각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 당선인이 주장했던 ‘지방적폐 청산’이 시민들의 표심을 자극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선거결과로 인해 인천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먼저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 펼쳐진 평화체제 속에서 박 당선인이 공약한 남북교류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이외에도 원도심과 신도시의 균형발전1조원대 중소기업 육성자금 지원과 B-MeC 벨트 조성 등 미래산업 육성제2경인선 건설과 서울지하철 2호선 연장 등 인천 교통망 확충사람중심 복지 등의 대표 공약도 기대된다.인천의 변화를 이끌어 갈 박 당선자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 피난민의 아들… 어려운 이웃에 눈뜨다 과일장사 어머님과 인천 미8군 항만사령부 군무원 아버지. 박 당선인은 전쟁의 설움을 안고 황해도 은률에서 인천으로 피난 나오신 부모에게 각별한 애정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설 천주교 사립학교인 박문초등학교로 전학 하면서 자연히 천주교를 접했고 지금의 신앙생활을 하는 계기가 됐다. 동산중학교 2학년 때 쪽방촌 이웃 사람들의 팍팍한 삶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청소년적십자회(RCY)에 가입,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을 계기로 제물포고등학교 시절에도 RCY의 경기도 지역 중등부 회장을 맞아 농촌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제물포고 1학년 때에는 전통 운동서클인 야간농구부에 가입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수업이 끝난 후 2~3시간 농구를 했다. 심지어는 입시가 코앞이었던 고3 때도 그랬다. 친구들로부터 ‘조금씩 쉬어가며 해라’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인생은 마라톤 풀코스’라는 생각에 따라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을 때에는 모든 정신을 가다듬어 집중하는 전략을 세웠다. 박 당선인은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은 후배들과 비교해도 자신할 만하다.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끈기 있게, 집중적으로 공부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운동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 서슬 퍼런 군사정권에 맞선 ‘원칙과 신뢰’ 당초 법관이 꿈이었던 박 당선인이 고려대 법대를 다니며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한 교수님의 “미국 같은 선진국들은 법조인이 인정받는 시대에서 행정가들이 주도하는 행정국가로 바뀌었네. 우리나라도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고 유능한 행정가가 되어 세계를 무대로 역량을 펼치는 것이 어떤가. 굳이 법관이 되에 작은방에서 한평생을 보낼 것인가?”라는 말씀은 진로가 바뀌는 계기가 됐다. 이 말씀을 계기로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이 기대하던 법관의 꿈을 접고 행정가로 나서게 된다. 박 당선인은 22세에 1981년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수습사무관을 시작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행시 합격생 동기들이 선호하는 곳은 내무부와 경제관련 부처였지만 박 당선인은 비인기 부서인 해운항만청을 지원하며 바다 행정과 첫 인연을 맺었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 논어에 나오는 한 구절로 공직자가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진실해야 하고 진실을 믿고 원칙과 소신에 따라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박 당선인은 ‘원칙과 신뢰’라는 공직 생활의 좌우명은 가슴에, 양복 주머니에는 사직서를 각각 품고 다녔다. 전두환 5공화국 시절, 해양항만청에서 엄청난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부산항 관내 공유수면 매립 업무를 맞았다.당시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대통령의 형이 대표를 맡은 업체에 이권 편의를 주라는 압력을 받았다. 이 업체는 지역주민과 갈등으로 공사를 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해운항만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넣을 정도였다. 하지만 업체와 주민을 설득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절차를 밟아 9개월만에 문제를 해결했다. ■ 노무현 前 대통령과 ‘혁신바람’ 국민의 정부 시절 해양부 근무 당시 국장 승진이 코앞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노무현(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장관으로부터 승진은 고사하고 총무과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노 장관의 설득력은 대단했다. 졸지에 온라인 업무처리와 지식 관리를, 조직 혁신도, 공정함과 신뢰도 함께 받을 수 있는 능력자(?)로 평가 받았다. ‘혁신’이라는 낯선 단어 앞에 처음 섰던 이날 서점으로 곧바로 달려가 ‘혁신’이라 쓰인 책을 한 보따리 구입했다. 노무현 장관과 맺어진 인연은 이후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과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인사수석(차관급)까지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의 철학을 공유했고, 이를 실현할 시스템을 배우고 경험했다. 특히 참여정부 인사수석 시절 박 당선인은 ‘삼다일공(三多一公)의 원칙을 갖고 임했다. ‘삼다’는 ‘다원(多源)’, ‘다청(多廳)’, ‘다로‘(多勞)’였으며, ‘일공’은 ‘공평무사(公平無私)’이다. 그는 이 같은 인사 원칙으로 인사 잡음을 봉쇄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 ■ 고향 인천에서 다시 태어나다 19대 인천 남동구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는 인천과 남동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박 당선인에게 인천은 단순히 정치를 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하는 삶의 터전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도림동(숫골) 과수원집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여전히 간석동에서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에 논현경찰서, 남동우체국, 수인선 터널식 방음벽도 단계적으로 설치했다. 이 밖에도 남동공단은 최첨단 리모델링 단지로, 소래포구는 국가 어항으로 예비 지정되는 등 남동구 5대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300명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4년 의정 종합평가에서 7위, 인천지역 1위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도 최선을 다했다. 크게는 소방안전교부세를 신설, 국가의 안전예산을 확충했고, 남동구 골목 골목에는 범죄예방 CCTV 시스템을 구축해 ‘안전이 곧 민생이다’라는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 박 당선자는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의 혹독한 검증을 겪었다. 하지만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 경쟁 후보들을 모두 캠프 인사로 모셔 원팀을 구성하는 등 아름다운 경선을 실현한 바 있다. 유제홍·수습 이승욱기자

인천시장 박남춘-市교육감 도성훈 ‘압승’

300만 인천 시민은 한반도 평화를 기반으로는 한 인천의 경제 발전을 선택했다.6·13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인천시장 후보가 자유한국당 유정복 후보를 52.8%대 41.0%(10시50분 기준)로 앞서며 인천시 입성에 성공했다. 박 후보는 ‘서해평화협력시대 동북아 경제 중심도시 인천’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같은 시간 현재 바른미래당 문병호 후보와 정의당 김응호 후보는 3.6%와 2.7%씩을 각각 득표했다.박 후보는 지상파 방송3사(KBS, MBC, SBS)가 이날 오후 6시에 발표한 출구조사에서 59.3%로 1위를 기록하며,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인천 시민은 선거 하루 전인 12일 열린 세기적인 북미회담을 비롯한 남·북·미 간 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된 만큼 평화를 통한 인천 발전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친문인 박 후보가 문재인 정부와 호흡을 맞춰 지역 현안을 풀어 낼 적임자로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박 후보는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 후보를 따돌리며 일찌감치 승리를 예감했다.박 후보의 당선으로 인천~개성~해주를 연계한 남북 공동경제자유구역, 남북공동어로구역 등 대북 관련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3명의 후보가 접전을 벌인 인천시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진영 단일 후보로 나선 도성훈 후보가 41.3%를 득표해 고승의, 최순자 보수진영 후보를 제치고 앞섰다.인천남동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후보가 67.9%를 얻어 당선을 확정했다.같은시간 기초단체장 선거 개표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10곳 중 9곳에서 앞서가며 싹쓸이를 예고했다. 자유한국당은 강화 1 곳을 앞서는데 그쳤다. 특히 영원한 보수 텃밭 이던 옹진군에도 평화 바람이 덮치며 장정민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앞섰다.전·현직 구청장 간 리턴매치로 열린 연수구청장 선거에서는 고남석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이재호 자유한국당 현 구청장을 제치고 지난 선거 패배를 설욕했다.박형우 더불어민주당 계양구청장 후보는 3선에 성공했으며 서구과 동구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이재현, 허인환 후보가 각각 앞섰다.부평구와 남구, 남동구, 중구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차준택, 김정식, 이강호, 홍인성 후보가 앞서며 싹쓸이 했다. 강화군은 유천호 자유한국당 후보가 무소속 이상복 현 군수를 제치고 당선됐다. 유제홍기자

인천지역 투표율 55.3%… 전국 꼴찌

지방선거 투표율 만년 하위권 인천이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전국 꼴찌를 면치 못했다.13일 중앙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투표가 마감된 오후 6시 기준, 인천 선거인 244만779명중 134만9천921명이 투표해 55.3%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지난 2014년 6월4일 치러진 제6회 지방선거 투표율 53.7%보다 1.6%P 높은 수치지만, 전국 평균 투표율(60.2%)보다 4.9%p 낮았다. 이는 전국 17개 특·광역시도 중 꼴찌로 16위 대구(57.3%)보다도 2.0%p차이가 났다.이외에도 경기(57.8%), 대전(58.0%), 충남(58.1%), 부산(58.8%), 광주(59.2%), 충북(59.2%), 서울(59.9%) 등이 50% 후반대에 머물러 전국 평균에 못 미쳤다. 전남이 69.3%로 전국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았으며 제주(65.9%), 경남(65.8%), 전북(65.3%), 울산(64.8%), 경북(64.7%), 강원(63.2%), 세종(61.7%) 등이 평균 투표율을 웃돌았다. 인천은 그동안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전국 최하위 수준의 투표율을 보였다. 1~4회 지방선거는 꼴찌를, 5·6회 지방선거는 각각 13위와 15위에 그쳤다. 특히 1회 지방선거에서 62%(전국 평균 68.4%)를 기록한 것을 빼고는 단 한번도 마의 60%를 넘지 못했다. 1998년 2회 지방선거는 43.2%로 전국 평균 52.7%보다 9.5%p 낮았으며 2002년 3회 지방선거는 39.3%(평균 48.9%)로 전국 16개 시·도 중 유일하게 30%대를 기록했다.2010년 5회 지방선거는 50.9%, 2014년 6회 지방선거는 53.7%로 50%대를 회복했지만, 이번 7회 지방선거에서 55.3%를 기록하면서 60% 고지 탈환은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주영민기자

“우리도 차별없이 투표할 수 있었으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데, 저는 이번에도 또 차별을 받았습니다.” 인천에 거주하는 중증장애인 정명호씨(29·뇌병변장애 1급)는 13일 오전 자신의 활동보조인 1명과 함께 집 근처 투표소를 찾았다가 선거관리인의 제지를 받았다. 정씨와 활동보조인은 졸지에 투표소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야 했고, 한참 지침서를 살펴보던 관리원으로부터 “참관인이 2명 이상 함께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정씨는 비밀투표가 보장된 선거에서 일면식도 없는 참관인이 자신의 투표권 행사를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참을 다툰 뒤에야 참관인들의 동의를 받아 활동보조인만 동행한 상태로 투표할 수 있었다. 정씨가 국민에게 보장된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40여 분이다. 일반적으로 5분이면 족하지만 8배가 더 소요된 셈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장애로 직접 기표가 불가능하면 가족은 1명, 가족외 2인 동반하에 투표할 수 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는 “가족외 2명을 참여토록 하는 것은 장애인이 자의로 투표하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라며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비밀투표 원칙을 침해하는 것인 만큼 반드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몸을 부축하고 도와주는 것일 뿐 기표는 활동보조인이 하는 경우가 많아 (비밀투표 침해)우려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김경희기자

‘인천의 미래’ 오늘 선택의 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인천시장과 교육감 등 민선 7기 풀뿌리 지방자치를 이끌어갈 300만 인천 시민의 일꾼을 뽑는 선택의 날이 밝았다. 13일간 전개된 공식 선거전은 12일 자정을 기해 마감됐고 13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인천지역 각 읍·면·동에 설치된 709곳의 투표소에서 일제히 투표가 진행된다. 시장과 시교육감 각 1명을 비롯해 기초단체장 10명, 시의원 37명(33개 선거구 33명, 비례대표 4명) 구의원 118명(42개 선거구 102명, 비례대표 16명), 남동갑 국회의원 보궐 1명 등 총 168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는 371명이 출마해 2.2대1의 경쟁률 속에서 치열한 유세전을 펼쳤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역대 최하위의 투표율을 기록했던 인천은 지난 8~9일 진행된 사전투표 결과 인천지역 유권자 42만9천112명이 투표를 마쳐 17.58%의 사전투표율을 보였다. 전국 사전투표율(20.14%)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로 전국 17개 시도 중 14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이번 투표율이 지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 투표율(53.7%)를 넘어 마의 60% 고지를 달성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각 후보는 12일 ‘시민들께 드리는 글’ 배포 등 마지막 선거운동을 통해 유권자의 지지와 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인천시장 후보는 이날 동암역 북 광장 출근 인사를 시작으로 신동근 의원과 서구 유세를, 유동수 의원과 계양구 유세를, 이성만 정책본부장과 부평구 유세를, 윤관석 의원과 남동구 유세를 펼친 뒤 남동구 구월동 신세계 백화점 사거리에서 마지막 집중 유세를 벌이며 막판 표 다지기에 주력했다. 박 후보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시민들은 ‘시장만 행복한 인천’이 아닌, ‘자신의 삶이 행복한 인천’을 원한다는 것 느꼈다”며 “국민이 촛불혁명으로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워줬듯이, 위대한 인천시민께서 소중한 한 표로 인천 정복시대를 끝내고 인천 특별시대를 열어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유정복 자유한국당 후보는 인천터미널 출근길 유세를 시작으로 모래내시장, 석바위시장, 신기시장, 거북시장, 계산시장, 부평시장 등 인천 지역 주요 전통시장을 돌며 유세한 뒤 부평롯데백화점 앞에서의 필승 총력유세 갖는 등 지지세 결집에 공을 들였다. 유 후보는 “인천시정은 대통령이 책임지지 않고 인천시정을 정당이 책임지지도 않지만 인천 시정이 잘못되면 시장의 책임이며 고통은 시민들의 몫이다”며 “‘일 잘하는 시장’ 유정복을 선택하는 것이 300만 인천시민 여러분의 가장 정확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호 바른미래당 후보는 자신의 지지기반인 부평구 한바퀴 유세를 시작으로 동·남·연수 등을 돌며 유세한 뒤 부평문화의거리에서 마지막 집중유세를 펼쳤으며 김응호 정의당 후보도 계양역 출근유세를 시작으로 당 전략지역인 남동구 집중 유세를 한 후 부평역광장 유세를 끝으로 공식선거 일정을 마무리했다. 고승의·도성훈·최순자 등 인천시교육감 후보는 인천교육의 변화와 발전을 약속하며 자신들이 미래의 인천교육을 책임질 적임자라는 것을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며 선거유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인천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투표는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반드시 해야할 권리이자 의무”라며 “꼭 투표에 참여해 뿔뿌리 민주주의의 기틀을 만드는데 기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13일 오후 6시 투표 마감 직후 사전 투표함을 시작으로 개표가 시작돼 당선자 윤곽은 당일 오후 10시30분께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최종 득표율 집계는 14일 오전 6시께 완료될 예정이다. 주영민·수습 이승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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