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시인' 피아니스트 백건우(60) 씨가 다음달 19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독주회를 가진다. 지난해부터 영국의 세계적인 레이블인 데카와 함께 3년을 기약하며 시작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 중 두번째 결실인 베토벤 초기 소나타(1-15번) 음반 출시를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다. 그는 지난해 중기 소나타(16-26번) 11곡을 녹음해 음반으로 냈으며, 내년에는 후기 소나타(23-32번)를 발매하는 것으로 3년 간의 대장정을 마친다. 이번 무대에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7, 28번 뿐 아니라 모차르트, 바그너, 슈토크하우젠 등 베토벤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받은 작곡가들의 작품도 선보인다. 10세 때 처음 리사이틀을 가진 백씨는 성지(聖地)를 찾아다니는 구도자처럼 라벨, 리스트, 프로코피예프, 쇼팽 등 한 작곡가의 작품을 골라 철저히 탐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부인 윤정희(영화배우) 씨와 함께 프랑스 파리에 거주 중이다. CJ문화재단의 후원으로 티켓가격(2만-6만원)도 저렴한 편. ☎02-751-9607~10. /연합뉴스
가수 채연이 새 음반을 녹음하다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4집 작업에 한창인 채연은 14일 저녁 고열이 나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집 인근인 서울 가양동의 한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과로에다 백혈구 수치가 낮다는 판정을 받고 1주일간 입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채연의 매니저는 "열이 나고 컨디션이 안 좋은 듯해 감기 몸살 정도로 생각했는데 백혈구 수치가 낮다는 진단에 무척 놀랐다"며 "일단 한 주간은 병원에 입원하며 안정을 취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제 직업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겁니다. 피아노를 치는 것은 즐거움을 주는 기술이고요." 14일 문호아트홀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양희원(미국명 조이스 양)은 말투나 표정은 영락없는 20살이지만 하는 말은 나이답지 않게 다부지다. 그는 15, 17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치기 위해 방한했다. 양희원은 4살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1997년 미국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에 입학한 이래 올해로 줄리아드 생활도 10년째에 접어들었다. 2005년 6월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 참가자로 나서 은메달을 차지했으며 마침내 뉴욕 필하모닉의 거장 로린 마젤의 인정을 받게 됐다. "마젤이 저를 선정한 이유를 말해줬어요. 관객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마젤의 눈은 정확했다. 양희원은 평소에 '혼자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다.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해왔다.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피아니스트의 기량이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에 잡아먹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말은 협연이지만 피아니스트는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를 상대로 한 판 대결을 벌이는 셈이다. 그는 뉴욕 필하모닉을 곁에서 지켜본 느낌을 '편안하다'라고 표현했다. "제가 아무리 이상한 짓을 해도 따라와 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함께 음악을 만들어 가는 건데, 잘 되겠죠 뭐." 주눅든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그의 밝고 쾌활한 성격은 연주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스스로도 어둡고 슬픈 곡을 칠 때는 부담이 된다고 말할 정도다. "쇼팽 같은 곡은 제 걸로 소화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한참을 생각하고 고민해야 제 안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게 느껴져요." 그는 현재 뉴욕에 살고 있다. 1년에 60회 이상 콘서트를 열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연습은 "내키는 대로" 한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는 건너 뛰기도 하고 흥이 날 때는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을 때는 뉴욕현대미술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찾는다. "메트로폴리탄에는 보고 싶은 작품이 딱 5개 있어요. 이것 때문에 일부러 메트로폴리탄을 찾곤 해요. 사실 음악 듣는 것보다 그림 보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그림 좋아하는 소녀답게 연주 드레스도 자신이 일일이 고를 정도로 까다롭다. "드레스 역시 예술이거든요. 공주 같은 드레스는 싫고 무엇보다 연주하기 편해야지요." 그는 이번 연주에 입을 와인색의 심플한 드레스를 펼쳐보이며 말했다. "사람들이 제 음악을 통해 무언가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즐거움이 됐든 슬픔이 됐든 어떤 감정이든 좋아요. 사람의 감정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다만 제 음악이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면 저는 성공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양희원은 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협연에 나서며 17일에는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무대에 선다. /연합뉴스
김민선이 뮤직비디오에서 청각장애인 연기를 펼쳤다. 출연료는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한다. 김민선은 최근 제주도에서 유리상자와 배슬기가 부른 '이별여행'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이 노래는 컴필레이션 음반 'Mind Bridge'에 수록된다. 소속사 브로딘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작품에서 청각장애인 역할을 소화한 김민선은 출연료 및 수익금 일체를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선은 소속사를 통해 "청각장애인 역할의 콘티를 보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많이 고민했고 촬영 전 수화를 배우며 촬영준비를 했다"면서 "진심으로 연기한다면 보는 사람에게도 느낌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올해 손꼽히는 히트곡 '사랑 안해'의 가수 백지영이 6년 만에 감격의 단독 콘서트에 나선다. 3월 발표한 5집 '스마일 어겐(Smile Again)'을 통해 발라드 가수로 변신한 백지영은 12월24일 오후 5시30분ㆍ9시30분 서울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라이브 콘서트 '컴백 퀸-스마일 어겐'을 펼친다. 백지영에게 올 한 해는 감동적이었다. 2000년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리며 가수 인생은 바닥으로 추락했고 6년이란 시간이 흐른 올해, '사랑 안해'의 대히트와 함께 재기에 성공했다. 공연 제목이 '여왕의 귀환'인 것도 힘든 시간을 딛고 우뚝 선 백지영에 대한 찬사를 담은 것이다. 공연기획사는 "이번 공연은 댄스와 발라드 두 테마로 진행된다"며 "30대가 된 여자 백지영이 보여주는 농익은 우아함을 고스란히 무대에서 녹여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장료 7만7천~8만8천원. ☎1544-2498 /연합뉴스
가수 소찬휘(34)가 데뷔 10년 만에 원점에 섰다. 8집을 위해 1집 당시 음악 파트너인 프로듀서 변성복 씨와 손잡았다. 데뷔곡 '헤어지는 기회' 때처럼 록댄스 가수로의 회귀다. 3월 이혼의 아픔을 딛고 노래에만 전념할 각오다. 다시 시작이다. 작년 5월 7집 이후 1년반 만인 새 음반 제목도 '더 비긴 어겐(The Begin again)'. 7집 이후 댄스와 록가수 이미지가 혼용된 소찬휘는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음반 제목도 가식 없이 진실한 노래, 좋은 노래를 부르자는 생각에서 붙였다. 소찬휘는 "댄스는 지금의 날 있게 해준 장르지만 원했던 방향은 아니었다"면서도 "8집에서 댄스 가수로의 회귀는 나의 음악적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했지만 변성복 프로듀서와의 만남이 그러한 생각에 변화를 갖게 했다"고 말했다. 새 음반은 어느 때보다 소찬휘의 시원한 가창력과 비트감, 특유의 감성이 잘 묻어난다. 히트 작곡가 박해운이 곡을 짓고 유명 작사가 강은경이 노랫말을 붙인 타이틀곡 '뷰티풀 나이트(Beautiful night)'는 즐거운 파티를 연상시키는 경쾌한 멜로디의 노래. 처음 소찬휘와 작업한 박해운은 "내 노래를 이처럼 시원스럽게 부른 가수는 지금껏 없었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대표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발라드ㆍ힙합 등 새로운 장르도 시도했다. 미디엄 팝 발라드곡 '엄마'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노랫말로 녹음 중 몇 번이고 눈물을 흘리며 완성했다. 또 이혼 등을 겪으며 복잡했던 심경을 노랫말에 담은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팝 발라드곡 '사랑했을까…'와 모던록 스타일의 '나빠요' 등은 소찬휘의 가창력에 감탄케 만든다. 난생 처음 랩에도 도전했다. '시즌 체인지(Season Change)' '헤이 러브(Hey Love)' 등 힙합곡에선 소찬휘가 선사하는 슬로 잼 스타일의 랩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랩을 처음 시도해봤다"며 "구피의 박성호와 함께 랩을 하고, 구피 출신 신동욱이 저음의 코러스를 맡았다. 색다른 작업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먹으면 찌는 체질인데 녹음 내내 야식의 유혹으로 고생했다"는 그는 "7집에선 록에 무게를 둬 프로듀서로서 내 감각을 살렸다면 8집은 철저히 보이스만을 가진 가창자의 위치에서 임했다"고 덧붙였다. 14트랙이 담긴 8집에는 소찬휘가 아끼는 전작인 '후회' '보낼 수밖에 없는 난' '현명한 선택' '여우사이' 등 6곡을 리메이크했다. 소찬휘는 "97년 '현명한 선택' 때 9시간 동안 녹음했는데 이번엔 세 시간 만에 끝냈다"며 "유난히 힘들었던 고음이 단 한번에 끝나 운이 좋았다. 주위 분들이 이제 '고음의 달인'이라며 박수쳐줘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2001년부터 대전 우송정보대학 방송실용음악과 가창전공 겸임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연합뉴스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음악예술 대학에서 발견된 안익태 선생의 학적 기록은 선생의 해외 유학 기록으로는 처음으로 발견된 공식적인 대학 학적부라는 점에서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안익태 선생은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한 뒤 1936년 유럽에 건너와 각국에서 펠릭스 바인가르트너, 코다이 졸탄, 폴 힌데미트 등 저명한 음악가들에게 수학하거나 이들과 교류하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폈다. 그러나 이는 선생을 아는 지인들로부터 말로 전해진 것일 뿐 지금까지 그의 유학 기록이 담긴 학적부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 리스트 음대 1938-1939 학적부 = 안익태 선생의 친필 기록 뒤에 붙인 학적 기록표에는 선생이 배웠던 교수 명부가 기록돼 있다. 음악 작곡의 경우 코다이 졸탄(Dr. Kodaly Zoltan), 바이올린-첼로는 쉬페르 아돌프(Schiffer Adolf), 실내악은 바이너 레오(Weiner Leo), 합창 지휘는 웅게르 에르뇌(Unger Erno)로 돼 있다. 버르토크 벨러와 함께 헝가리 민속 음악을 집대성한 코다이와 안익태 선생과의 관계는 선생이 코다이로부터 사사했다는 얘기가 전해졌을 뿐 구체적인 물증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었다. 선생이 리스트 음대의 외국 특별 입교생이었다고 알려져 왔지만 학적 기록은 물론 생존해 있는 코다이의 미망인 등 주변 인물들 중에서도 이를 증언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학적 기록이 발견됨에 따라 선생이 코다이로부터 작곡 이론을 배웠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으며, 당시 음대의 교수법으로 볼 때 안익태 선생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수학하면서 자작곡에 대한 코다이의 견해를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헝가리 음대에서는 훌륭한 음악가들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평가받는 것과, 자기 자신의 작품을 만든 뒤 평가받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교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익태 선생이 애국가를 작곡한 시기가 1935년 11월로 추정되고 있는 만큼 선생이 민속음악의 대가인 코다이에 애국가를 들려준 뒤 이에 대한 의견을 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밖에 안익태 선생이 수학한 쉬페르는 당대 최고의 첼로 연주자 중 한 명이었고, 실내악을 가르친 바이너 역시 헝가리 최고의 실내악 전문가 및 작곡가였다. 버터 언드러시 리스트 음대 총장은 "당시 헝가리 음악은 절정기였으며, 그 시기에 명성을 떨치던 각 분야의 대가들로부터 수학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 학적부 친필 기록 = 1938년 10월16일에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1938-1939년 학생 등록부에는 안익태 선생의 친필 기록이 담겨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보호자 이름에는 'Ahn, Dungook'으로 표기돼 있고 괄호 안에는 '미망인'이라고 돼 있다. 부친 안덕훈 씨가 돌아가신 상황이어서 모친 김정옥 씨의 이름을 평안도식 발음으로 적고, 성은 서양식으로 부친의 것을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국적과 모국어란에는 일본과 일본어라고 적혀있으나, 주소란에는 당시 일본 주소 위에 '조선'(chosen)을, 괄호안에 '코리아'(Korea)를 써넣었으며, 출생지란에도 '재팬'(Japan) 앞에 '평양, 조선'(Pyeng Yang, chosen), 괄호 안에 역시 코리아로 기록,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히고 있다. 생년월일은 1911년 12월5일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선생이 1906년생이지만 당시 나이가 많을 경우 입교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이렇게 표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경력란에는 1930년 도쿄 아카데미뮤직 음악 학사, 1936년 필라델피아 음악학교 음악 석사라고 표기돼 있으며, 헝가리 내 주소는 부다페스트 6구역에 있는 '외트뵈시'(Eotvos) 학생 기숙사라고 적혀 있다. 안익태 선생은 자신의 종교가 '장로교'(Presbyterian)이며, 직업은 지휘자, 작곡가라고 기재했다. 서명란에는 영문으로 'AHN EAKTAI'라고 쓴 뒤 한자로 친필 서명도 했다. ◇ 외트뵈시 기숙사 명부 = 안익태 선생이 3년간 머물렀던 부다페스트 외트뵈시 기숙사 명부를 보면 그의 이름은 3년간 음악 작곡 전공 분야에 이름이 올라 있다. 1938-1939년과 1939-1940년 2년간은 담당 교수가 코다이 졸탄으로 돼 있으며, 마지막 해인 1940-1941년에는 시클로시 얼베르트로 돼 있다. 첫 해 기록에는 이름 옆에 '외국인 장학생'이라고 명시돼 있어 헝가리 정부가 외국인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또 1939-1940년에도 학교 측으로부터 외국 장학생의 자격은 아니지만 등록금과 학비를 면제 받은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외국인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1년 간만 받은 것에 대해 리스트 음대 측은 애초 1년 동안만 공부하기로 했다가 나중에 2년을 연장했거나 뭔가 장학금 지급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는 헝가리 최고의 인문대학인 엘테(ELLT) 대학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는 외트뵈시 기숙사는 당시 최고의 학생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입실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엘테 대학의 김보국 교수는 "안익태 선생이 거주했던 기숙사는 현재는 부다페스트 11구역에 편입돼 있는데 당시 이 겔리르트 언덕 지역은 부다페스트 최고의 고급 주택가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기숙사 건물은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손상된 뒤 일부 보수 공사를 했지만 골격과 외양은 그대로 남아 있다. ◇ 첼로 콘서트 프로그램 = 학적부와 함께 발견된 안익태 선생의 개인 첼로 콘서트 프로그램은 선생의 첼리스트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시켜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안익태 선생이 당시 코샤 죄르지의 피아노 반주로 에클레스, 헨델, 바흐, 슈트라우스 등의 곡과 함께 자작곡인 '백합(Lily)'와 '목가곡(Pastorale)' 등 총 9곡을 연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버터 총장은 코샤가 헝가리가 낳은 최고의 음악가인 버르토크 벨러의 수제자로, 당시 최고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익태 선생이 코샤의 반주로 첼로 공연을 했다는 사실은 당시 선생의 높은 위상을 대변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익태 기념재단의 박정미 실장도 "안익태 선생이 버르토크 수제자인 코샤의 반주로 리사이틀을 열었다는 것은 새롭고도 매우 중요한 사실"이라며 선생의 첼리스트로서의 역량이 재조명 받을 수 있는 기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콘서트 프로그램에는 '17일 오후 8시30분'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 구체적인 연도 및 시기가 빠져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연합뉴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애국가의 작곡가 고(故) 안익태 선생(1906-1965)의 해외 유학 학적 기록이 헝가리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또 안익태 선생이 지난 1938-1941년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 민요의 대가 코다이 졸탄으로부터 직접 수학했으며, 당시 헝가리 정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했다는 새로운 사실과 함께 안익태 선생의 당시 친필이 담긴 학적부 기록도 공개됐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를 돌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폈던 안익태 선생이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했던 학적 기록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음악예술대학(이하 리스트 음대)은 12일 주 헝가리 한국 대사관(대사 엄석정)의 요청을 받고 수개월간 대학 문서 보관소를 뒤진 끝에 최근 안익태 선생에 대한 학적부와 기숙사 명부, 콘서트 기록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버터 언드러시 리스트 음대 총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록으로 볼 때 안익태 선생은 이 곳에서 첼리스트로도 활동했으며,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갖춘 음악가로 볼 수 있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1938-1939년 음대 학적부에 따르면 안익태 선생은 리스트 음대에서 3년간 코다이로부터 작곡 이론을 배웠으며, 쉬페르 아돌프로부터 첼로, 바이너 레오로부터 실내악, 웅게르 에르뇌로부터 합창 지휘를 각각 배운 것으로 밝혀졌다. 헝가리 민요의 아버지라 불리는 코다이는 물론, 쉬페르와 바이너는 첼로 연주와 실내악 분야에서 당대 최고의 명성을 떨쳤던 인물들로 평가되고 있다. 리스트 음대 측은 안익태 선생이 헝가리 음악이 절정기에 있었을 당시 최고의 음악가들로부터 음악을 배운 사실이 기록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안익태 선생이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 민속음악을 집대성한 버르토크 벨러의 수제자이자 당시 최고의 피아노 연주자 중 한 명인 코샤 죄르지의 반주로 부다페스트에서 첼로 공연을 했던 콘서트 프로그램도 발견됐다. 콘서트에서 안익태 선생은 자작곡인 '백합(Lily)'과 '목가곡(Pastorale)'을 비롯해 헨델과 바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곡을 연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안익태 선생이 직접 작성한 1938-1939년 학적부에는 가족사항과 생년월일, 출생지, 종교, 국적 등이 기재돼 있는데 출생지와 주소란에 '조선'(Chosen)이라고 쓴 뒤 괄호 안에 '코리아'(Korea)라고 기록, 자신이 한국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안익태 선생이 3년간 거주했던 외트뵈시 기숙사의 1938-1941년 당시 학생 명부도 발견됐다. 현재는 헝가리 최고의 인문대학인 엘테(ELLT) 대학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는 외트뵈시 기숙사는 당시 최고의 학생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입실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라고 리스트 음대 측은 설명했다. 버터 총장은 "각 분야에서 최고의 학생들이 머물렀던 외트뵈시 기숙사에서는 경쟁도 심했지만 학생들 간에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분위기였다"며 "안익태 선생도 당시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며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38-1939년 기숙사 명부에는 안익태 선생이 1년간 외국 장학생으로 헝가리 정부가 수업료와 기숙사 비용을 전액 지급했음을 보여주는 기록도 있다. 서울에 있는 안익태 기념재단은 연합뉴스가 보내준 자료사본을 본 뒤 "안익태 선생의 유럽 체류 당시 활동을 재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사실들이 담겨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리스트 음대 측은 내년에 헝가리가 낳은 세계적 음악가인 리스트 페렌츠와 코다이, 그리고 안익태의 코리아 판타지를 엮어서 한국-헝가리 공동 음악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연합뉴스
"너무 좋은 연기자, 스태프들과 함께 공연을 해 매우 기쁘고 한편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프리토리아 소재 국립극장에서 12일 저녁 막을 내린 오페라 '카풀렛가와 몬테규가(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맡은 박지현(33)씨는 공연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한국 성악가로서는 처음으로 이 나라 오페라무대에서 주역을 맡아 지난달 27일부터 공연, 한국 여성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선보였다. "줄리엣역의 프란체스카박은 화려한 콜로라투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기쁨과 슬픔을 적절하게 표현했고 정교한 감미로움을 선사했다" "그녀가 부르는 탄식의 노래는 부드러우면서도 합창단 소리보다도 강하게 극장 구석구석에 전달됐다. 그녀의 훌륭한 소프라노 음성을 당신은 정말 음미하게 될 것이다" 프리토리아뉴스, 비즈니스데이, 시티즌 등 남아공의 일간지들은 모두 줄리엣역을 열연한 박씨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는 이같은 평에 대해 "벨칸토창법을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같다"며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등 호응이 좋아 기쁘다"고 덧붙였다. 이날 객석을 채운 1천여명의 관객들은 대부분 백인들로, 박씨가 아리아를 부른 뒤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박씨가 이번 무대에 서게된 것은 지난해 유니사(UNISA.남아공대학)가 개최한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오페라부문 1위를 차지한 게 인연이 됐다. 남아공 최대 오페라공연단인 '오페라 아프리카' 기획관계자가 당시 콩쿠르에서 박씨를 눈여겨 본 뒤 줄리엣역을 제안한 것. '오페라 아프리카'는 이 나라에서 벨리니의 '카풀렛가와 몬테규가'를 초연하면서 감독에 유명 테너 가수 출신인 로런스 데일을 초빙했으며 연주를 맡은 남아공실내관현악단 지휘는 영국 출신 제레미 실버에게 의뢰했다. '오페라 아프리카'는 2007년에도 박씨를 초빙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는데 그녀는 같은해 2월엔 UNISA 후원으로 남아공 전국을 돌면서 독창 콘서트를 갖게 된다. 한편 성신여대와 서울대에서 수학한 뒤 2004년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그녀는 2007년에는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음악활동의 무대를 확장할 계획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아이바 짱" "아! 마쓰모토, 정말" "어떻게, 어떻게 엉~엉~". 일류(日流)가 출렁인 현장이었다. 일본 5인조 아이돌 그룹 아라시(ARASHI)의 첫 내한 공연은 팬들의 열기로 후끈하다 못해 뜨거웠다. 11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아라시 퍼스트 콘서트 2006 인 서울'에는 다섯 멤버의 사진이 담긴 부채, 아라시를 뜻하는 한자 '嵐'가 쓰인 피켓으로 3천석이 온통 뒤덮였다. 천둥ㆍ번개가 치는 영상에 이어 무지갯빛 반짝이 의상의 멤버들이 등장하자 객석에는 '꺅~' 소리와 함께 일순간 광풍이 불었다. 아라시를 직접 본 게 믿기지 않는 듯 팬들은 폴짝폴짝 뛰며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였다. 일제히 기립한 팬들은 첫 곡 '아라시(ARASHI)'부터 네번째 곡 '럭키 맨(Lucky Man)'까지 휘몰아친 아라시의 노래를 정확한 일본어 발음으로 합창했다. 또 아라시의 모든 노래마다 코러스처럼 추임새를 넣어 높은 충성도를 보였다. 사무라이 복장의 아라시가 '사무라이'를 열창하며 야광 칼을 들고 절도 있는 댄스를 선보이자 "아라시!" "아라시!"란 외침이 객석을 뒤흔들었다. 이날 아라시가 팬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은 '객석으로 침투하기'. 멤버들은 위로 치솟아 맨 뒷좌석까지 공중에서 이동하는 간이 이동무대를 통해 시종일관 객석 1ㆍ2층과 앞뒤를 샅샅이 누벼 팬들을 흥분시켰다. 마쓰모토 준은 1층 객석 중앙을 파고들어 '텔 미(Tell Me)'를 열창, CF 속 한 장면처럼 장관을 연출했다. 오노 사토시, 사쿠라이 쇼는 팬들이 내미는 손을 덥석 잡았고 아이바 마사키, 니노미야 가즈나리는 옷을 잡아당기는 팬들에게 미소지어 보였다. 팬들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아라시의 땀방울까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아라시의 또 다른 무기는 한국말과 재치 있는 입담. 멤버들은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스므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므니다" "우리 함께 즐겁게 노래해요" "고맙스므니다" "대한민국"이라며 서툰 한국말로 친근함을 과시했다. 한국말로 개사한 노래도 선보였다. 한국의 호텔에서 벌어진 돌발상황, 한국말을 연습하며 생긴 실수담을 솔직하게 얘기해 웃음을 유발했다. 앙코르 무대 때는 팬들의 흥분 상태가 절정에 달했다. 마쓰모토 준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일본판 '꽃보다 남자' 주제곡 '위시(Wish)'를 부를 때 팬들은 결국 "꺽 꺽" 소리를 내며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공연이 끝난 후 올림픽홀에서 만난 이재연(16) 양은 "이틀간 4회 공연이 순식간에 매진돼 공연을 보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아라시가 지금 우리와 함께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번엔 아라시의 부채, 사진 등을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공연장에는 산케이스포츠 등 일본 취재진도 참석했다. 아라시는 첫 내한에서 11일 2회ㆍ12일 2회 등 총 4회 공연을 펼쳐 1만2천 명의 팬들과 만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