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美 천재 뮤지션을 음반으로 만난다

30대에 요절한 천재 미국 뮤지션 두 명의 유작 음반이 나란히 국내에 발매됐다.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 1969~2003)와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1966~1997)의 앨범이 그것. 미국 포틀랜드 출신의 스미스는 14세부터 작곡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감성적인 보컬과 서정적인 포크 사운드로 음악 팬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1993년 데뷔 음반 '데드 에어(Dead Air)'를 발표한 그는 영화 '굿 윌 헌팅'의 삽입곡 '미스 미저리(Miss Misery)'가 아카데미 영화상 최우수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그는 2003년 10월 6번째 음반의 완성을 앞두고 미국 LA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당국은 '타살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자살'이라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 발매된 '뉴 문(New Moon)'은 1994년~1997년 사이에 녹음된 미발표곡을 중심으로 수록했다. 히트곡 '미스 미저리'의 초기 버전과 '프리티 메리 K(Pretty Mary K) 등 24곡을 두 장의 CD에 나눠 담았다. 버클리도 13세에 첫 자작곡을 완성할 정도로 탁월한 기량을 갖고 있었지만 1997년 31세의 꽃다운 나이에 미국 미시시피강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이번에 국내 발표된 '소 리얼:송스 프롬 제프 버클리(So Real:Songs From Jeff Buckley)'는 사망 10주기를 맞아 제작된 셈. 1960~70년대 음악을 자양분으로 삼은 그는 록을 기반으로 포크, 블루스, 솔, 가스펠 등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탁월한 가창력을 지닌 가수였으며, 작곡가와 기타리스트로도 천재성을 드러냈다. 그는 정규 음반으로는 단 한 장 '그레이스(Grace)'밖에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대의 거장들로부터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밥 딜런은 "지난 10년간 만난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라고 치켜세웠고,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는 "그의 죽음은 이 시대 최대의 상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번 음반은 '그레이스'와 이전에 발매된 유작에서 발췌한 대표곡과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아이 노우 잇츠 오버(I Know It's Over)' '소 리얼-라이브 인 재팬(So Real-Live In Japan)' 등을 담았다. 음반 속지에는 미공개 사진도 수록했다. /연합뉴스

휴대전화가 악기로 부상

휴대전화가 악기가 되고 있다. 컨템퍼러리 클래식 연주자인 윤보라(27)씨는 얼마전 맨해튼에서 가진 공연에서 삼성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가 공연 중에 전화를 건 것은 아니고 휴대전화로 연주를 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 음악공연에서 벨소리 등으로 인해 기피 대상인 휴대전화가 선구적인 전자악기 연주자 등에게는 록 음악이나 힙합, 컨템퍼러리 클래식 음악 연주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악기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호주의 록 밴드인 핸디댄디는 공연에서 휴대전화를 기타처럼 목에 걸고 에릭 클랩튼 같은 표정을 지으며 연주를 한다. 이들의 휴대전화는 랩톱 컴퓨터에 무선으로 연결돼 자판을 두드리면 불협화음과 디지털 비트를 만들어낸다. 이들 그룹은 이같이 휴대전화로 나오는 소리를 '블루투스 록'이라고 부른다. 몇몇 인기있는 DJ나 힙합 연주자들도 휴대전화를 악기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영국과 유럽 일부에서는 휴대전화 연주자를 위한 기술을 내놓은 업체들도 등장하고 있다. 신문은 일부 전문가들은 휴대전화가 자연스러운 악기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존스홉킨스 피바디음대의 컴퓨터 음악프로그램 책임자인 제프리 라이트는 "휴대전화가 악기로 등장하는 것에 놀랐지만 그렇게 돼서는 안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폴 매카트니 명곡, 디지털로 공개 시작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Ebony And Ivory)' '노 모어 론리 나이츠(No More Lonely Nights)' 등 디지털 판매가 금지됐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명곡을 인터넷에서 내려받고 통화연결음 등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EMI뮤직코리아는 "매카트니 음원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캐피톨사가 최근 전세계적으로 디지털 음악판매를 처음으로 시작했다"면서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28일부터 매카트니의 명곡이 MP3 등 디지털 음원으로 서비스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곡 목록에는 매카트니의 1970년 첫 싱글 음반 '폴 매카트니'부터 2005년 발매된 '카오스 앤드 크리에이션 인 더 백 야드(Chaos And Creation In The Back Yard)'까지 25장의 음반 수록곡이 거의 모두 포함됐다. '렛 잇 비(Let It Be)' '예스터데이(Yesterday)' 등 비틀스 시절 명곡을 라이브로 소화한 음반 '백 인 더 월드(Back In The World)', 마이클 잭슨과 듀엣으로 부른 '세이 세이 세이(Say Say Say)'와 스티비 원더와 부른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가 담긴 '올 더 베스트(All The Best)' 등을 내려받을 수 있다. 한편 매카트니가 몸담았던 전설적인 그룹 비틀스의 음악은 아직도 디지털로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 비틀스의 음원을 소유한 애플사가 디지털 음악판매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X-JAPANㆍ각트 합체해 슈퍼밴드 탄생

일본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록그룹 엑스재팬(X-JAPAN)의 요시키(YOSHIKI)와 비주얼록의 황제 각트(Gackt), 그리고 튜르비용 비주얼 록밴드 루나 시(Luna Sea)의 전 멈버 스기조(SUGIZO)가 뭉쳤다. 27일자 스포츠닛폰에 따르면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비주얼계 록 아티스트들의 라이브 이벤트인 'J록 레볼루션'에서 이 사실이 공표됐다. 이와 함께 네 번째 멤버로 인기 기타리스트인 미야비(雅)의 합류가 결정돼 미국 투어 콘서트를 마친 뒤 일본에 본격적으로 상륙한다. 스포츠닛폰은 "무대 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미야비의 슈퍼밴드 참가 사실이 발표된 데 이어 미야비의 연주 도중 스기조가 서포트 기타리스트로 참가했으며, '더욱 놀라운 깜짝쇼가 있다'는 미야비의 아나운스먼트와 함께 요시키가 등장했다"고 전했다. 객석으로부터 "아이 러브 유" "엑스! 엑스!"의 함성이 쏟아지는 가운데 요시키가 영어로 "일본에 앞서 특별한 발표가 있다. 다음달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애니메이션 이벤트에 이 멤버가 연주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슈퍼밴드 멤버 전원이 참가하는 첫 무대는 다음달 29일 1만5천 명 규모의 롱비치 아레나에서 열리는 '애니메 콘벤션' 이벤트. 이들은 여기에 게스트로 참가해 각트까지 가세한 비주얼록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비주얼계 록이 일본의 애니메이션 문화의 일부로 여겨져 J록과는 다른 장르로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요시키는 "이를 일시적인 붐이 아닌 구체적인 문화로 만들고 싶다. 우리들도 머리카락을 치켜세우고 비주얼계를 전면에 내세우겠다"며 의욕을 보이기도. 전격 탄생한 슈퍼밴드는 단독으로 미국 투어 콘서틀 개최한 뒤, 일본에서는 오는 11월 말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최종적으로는 5인조 밴드를 목표로 현재 베이스 기타리스트를 찾고 있지만, 지금의 4인조로 활동할 가능성도 있다. 끝으로 신문은 비주얼계 밴드의 노래가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다시 들어서는 등 붐이 재연될 가능성도 점쳤으며, 요시키 또한 "이쪽 팬도 포함해 여러분의 뿌리 깊은 서포트 덕분이다. 함께 일본의 록을 세계로 넓혀가고 싶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젊음의 노트’ 기억 하시나요?

“안개 속을 걸어봐도 채워지지 않는 나의 빈 가슴/ 잡으려면 어느새 사라지는 젊음의 무지개여….” 30~40대라면 누구나 한번쯤 노래방에서 불러봤을 법한 노래 ‘젊음의 노트’다. 1986년 MBC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작인 이 곡은 긴장감을 조성하는 도입부와 역동적인 멜로디 덕분에 응원가 등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자그마한 체구로 이 노래를 부른 유미리(42·여)는 당시 최고의 스타였다. 그녀는 단정한 정장 상의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다. 이후 앨범 한두장을 더 냈지만 세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그가 15년만에 새 음반을 냈다. 디지털 싱글 음반 ‘뉴 미리’.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특유의 귀여운 외모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다소 새침하게 보였던 이전 이미지와는 달리 일단 말문이 열리자 그는 가감 없는 솔직한 태도로 속내를 털어놓았다. “예전에 활동할 때는 말하는 요령까지 소속사의 지시를 받았어요. 노출이 심한 의상도 입지 못했죠.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데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좋아한 저로선 그런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그토록 목말라하던 가수 활동을 왜 이제야 다시 시작했을까. “1990년대 이후 국내 대중음악계의 분위기가 바뀌었죠. R&B와 힙합이 주류를 차지하면서 음악을 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미국 보스턴 버클리음대 재학생 신분으로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는 1집을 낸 후 미국으로 돌아가 공부(팝뮤직 전공)를 마쳤다. 귀국 후 1992년 김범룡 작곡의 ‘하이하이하이’를 발표했지만 이후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긴 공백기를 보냈다. “사람들이 제 노래는 알아도 유미리에 대해선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어렵게 복귀를 결정했지만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심각한 자살 충동에 시달리다 병원 치료 덕분에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최근 가요계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예전에는 노래만 잘하면 좋은 가수가 될 수 있었는데….” 그는 앞으로 음악채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방송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미혼인 그는 음악활동과 병행하면서 결혼계획도 세울 생각이다. “사실 복귀를 반대한 분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게 ‘나이를 먹어도 용감하다’며 용기를 좀 줬으면 좋겠어요. ‘유미리가 왜 저렇게 변했어’ 등 대중이 저에 대해 한 마디라도 말해주는 것 자체를 고맙게 여길 생각입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