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봇대’ ‘절하고 싶다’ 나란히 펴내
꽃봇대
함민복
전등 밝히는 전깃줄은 땅속으로 묻고
저 전봇대와 전깃줄에
나팔꽃, 메꽃, 등꽃, 박꽃......올렸으면
꽃향기, 꽃빛, 나비 날갯짓, 벌 소리
집집으로 이어지며 피어나는
꽃봇대, 꽃줄을 만들었으면
‘강화도 시인’ 함민복(50)은 동네에 상이 났을 때 상여를 메고 싶었다. 그런데 강화도 사람들은 결혼한 사람만 상여를 멜 수 있다고 했다. 당연 총각신분의 시인은 자격미달인 셈. 시인은 마흔 넘어서도 상여를 메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반평생을 혼자 살아온 함 시인네는 제비도 집을 짓지 않는 척박한 곳이었다. 시인은 제비를 속여보려고 TV를 크게 틀어 여자와 아이들 목소리도 내고 빨래를 널어보기도 했다. 제비가 여성 호르몬 냄새를 맡는지 몰라 여자 후배에게 집에 한번 놀러 왔다 가라고 부탁까지 했다고.
적적할 때 제비소리라도 들어보려던 마음과 다른 생명체와 한 지붕 밑에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나름 노총각 시절 설움이 컸다. 한 시인은 “여름에 가도 추워보였다. 궁상의 극치였다”고도 했다. 그런 그가 열달 전인 지난 해 3월 장가를 갔다.
사는 곳은 강화도, 집도 없고 ‘돈은 벌어서 뭐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만큼 경제적 감각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노총각 시인을 구제해준 이는 그의 제자로 1962년생 동갑내기 박영숙씨다. 그런데 결혼 후 시인이 달라졌다. 꽁꽁 숨어 지내던 그가 좋아하는 술도 끊고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강연도 다니고 책을 2권이나 냈다.
생활하는데 있어 “일단 미루고 보자”를 입에 달고 살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4개의 눈과 2개의 심장
반가운 마음에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강화도 초지인삼센터 ‘길상이네’로 찾아갔다. 12월 초순의 날씨는 차가웠다. 언 손을 비비면 시인을 찾았지만 없었다. 아내 박영숙씨만이 분주하게 인삼을 정리하고 있었다. 시인은 강화문학관에 강연이 있어 갔단다.
시인을 기다리는 동안 근황을 물었다.
“둘다 결혼 생각이 없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뭐 신혼재미 이런 거 몰라요. 나이가 들어서 신혼은 큰 의미가 없죠. 참, 함 시인은 가게 운영에 전혀 도움이 안 돼요.(하하) 인삼 가게 오픈한지 1년이 넘었는데 정말이지 딱 한번 카드를 긁었어요. 영업력은 꽝, 손님들한테 ‘보고 가세요’라고 말도 못해요.”
그럼 그렇지. 함 시인이 수줍음 많기로 유명한 사람 아닌가. 말주변도 없고.
시인이 도착했다. 일찍 지는 해를 붙잡고 사진부터 찍었다. 초면에 서먹서먹했던지 시인은 강화도 이야기를 끊이없이 들려줬다. 1996년 강화도에 와서 빈농가에 살면서 시를 써온 시인의 강화도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다.
해를 달님에게 양보하자 강화도는 칡흙같이 어두워졌다. 시인은 단골 시래기밥집으로 가자고 했다. 야들야들한 시래기밥에 청국장을 슥슥 비벼 먹으면서 시인은 무장해제됐다.
“밥 같이 먹고 그런거죠. 뭐 특별한 게 있겠습니까. 참 김치 찢을 때 상대방 젖가락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거. 4개의 눈과 2개의 심장으로 사는 게 결혼이죠.”
동창들이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낼 때 장가를 간 시인은 신혼이라고 특별한 게 없다 했다. 그러면서도 쑥스러운지 또 강화도 이야기가 이어진다.
강화 동막에서 13년 동안 살면서 만난 동네 친구, 형님 이야기부터 시작해 강화도 새우젓이 우리나라 70%를 차지한다느니, 어부생활 10년 하면서 있었던 배멀미 이야기까지…. 무척 수다스러웠다.
강화도 이야기는 쉼이 없고 실타래를 풀듯 줄줄줄 터져 나온다. 10년 넘게 작품을 통해 시인을 만나온터라 말많은 시인이 어딘가 모르게 낯설다. 하지만 마냥 편하고 좋다. 뻔한 인터뷰 질문이 오히려 시인의 입을 방해하는 거 아닌가 싶어 그냥 시인의 이야기만 경청했다.
10남매 중 막내인 아내와 같이 살다 구순의 장모님을 생각해 결혼식을 올렸고 아내가 결혼하고 살이 2kg 빠졌다, 간이 안 좋아 술을 끊고 지낸다, 인삼가게는 수익이 신통치 않다는 등 일상속 자신의 이야기를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쏟아낸다.
#시에게 미안하고 시인에게 미안한 일
시인의 시에는 가난의 모습이 깃들어 있고 가난의 숨결이 숨쉬고 있다고 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보내고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했으나 결국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고 서울예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는 벅찼다.
구절양장의 인생길을 걷고 있는 시인의 시는 무거웠다.
이번 신작은 변신이다. 지금까지 ‘어둡다’였다면 시집 ‘꽃봇대’(대상 刊)에서의 함민복은 ‘밝다’다.
달, 눈물, 물고기, 까치, 밥. 시인의 작품에 자주 등장했던 시어들과 거리가 먼 ‘꽃’이 등장한다. 줄곧 가난하기만 했던 시인의 작품에 화사한 꽃이 나왔다. 사랑의 힘일까, 아니면 쉰살 넘어 작품 세계의 변화일까. 이유가 뭐든 신선하고 좋다.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를 살펴보면 전깃줄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집과 건물은 없다”며 “문명의 상징이기도 한 전깃줄 대신, 집들과 건물들이 우리들 마음속에서만이라고 꽃줄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의 제목을 ‘꽃봇대’로 정해봤다”고 밝혔다.
동료 시인들의 시를 읽고 감상을 덧붙인 ‘절하고 싶다’(사문난적)는 시인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까지 일간지에 ‘시로 여는 아침’란에 연재했던 고려 문인 이규보와 조선 시인 이달과 권필, 근현대의 백석과 박목월, 고은 등은 물론 송찬호, 이성복, 나희덕, 신용목, 최승호, 강형철 등 현대시인들까지 77명의 시 77편을 자신의 감상평과 함께 담은 책이다.
함 시인은 “시를 소개하면서 시를 망쳐 놓는 것 아닌가, 걱정이 인터넷처럼 만발했다. 실제적으로 시인의 의도적 의미를 왜곡하고 시의 의미를 축소 해석해 시의 날개에 돌을 얹어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글도 있다.
시에게 미안하고 시인에게 미안한 일이다. 시는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능력이 있음과 이해심 넓은 시인들의 마음을 몰래 대출해 여기 죄를 묶는다”고 고백했다.
두 권 모두 착하디 착한 함민복이 낸 거다. 쭉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착해진다. 아니 착하게 살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서울 창신동, 상계동, 일산을 거쳐 강화도에서 살고 있는 시인. 처음 강화도에 왔을 때 시인은 친구도 친척도 없었다. 동막리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했고 말 거는 이도 없었다.
강화도 외톨이 시인을 소설가 김훈은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그는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고 있다. 그는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은자(隱子)이고, 숨어서 내다보는 견자(見子)이다”고 말했다.
2012년 시인은 외롭지 않다. 반평생만에 부부의 연을 맺어 살 부비고 사는 아내도 있고 길상이(강아지)도 있고 어엿한 인삼가게 영업상무라는 사회적 신분도 갖고 있다. 이제 그 누구도 시인을 더 이상 가난하다고 말 할 수 없다.
글_강화·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 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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