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히스 레저의 고독 '캔디'

(연합뉴스) 캔디(candy)는 맛있는 사탕이다. 또한 그 유혹을 떨쳐버리기 힘든 마약이기도 하다(캔디는 영어권에서 마약의 속어로 쓰이기도 한다). 영화 '캔디'에서의 캔디는 남자 주인공이 젊은 시절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연인의 이름이자 헤어나오지 못하는 마약이다. 2006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출품됐던 호주 닐 암필드 감독의 '캔디'에서는 올해 1월22일 우발적 약물 과다 복용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브로크백 마운틴'의 히어로 히스 레저의 음울한 음영과 마주할 수 있다. 마지막 한 장면을 빼고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마약에 절어사는 남자를 연기한 히스 레저의 눈빛이 세상을 뜨기 직전 그의 얼굴이 아니었을까라는 상념에 문득 사로잡힌다. 히스 레저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얼굴과 불안한 눈빛으로 화면을 채운다. 이 영화로 호주 FCCA어워즈 여우주연상을 받은 아름다운 여배우 애비 코니시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영혼을 그려낸다. 남자에게 캔디는 '천국'이자 '땅'이자 '지옥'이다. 영화는 이 세 가지 화두로 구성돼 있다. 천국에 있는 듯한 희열을 맛보게 하는 연인과 마약, 즉 캔디로 인해 미래가 아닌 현재에 충실한다는 명목으로 삶을 방치하는 두 젊은이의 위태로운 나날을 들여다본다. 시인 지망생 댄과 화가 지망생 캔디는 사랑하는 사이다. 캔디는 댄이 전부라 하지만, 댄은 캔디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차이가 있을 뿐.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눈먼 기관차 같다. 마약에 빠진 캔디는 쇼크로 죽기 직전에 이르지만 깨어난 후 '환상적이야'라고 말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마약 중독 상태에 빠진 두 사람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어떠한 정상적인 행위도 하지 않은 채 마약에 탐닉한다. 팔 게 없어진 댄과 캔디는 캔디가 몸을 팔아 벌어온 돈으로 곧장 마약을 산다. 그들 곁에는 이들의 삶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적극적인 개입은 하지 않는 캔디의 부모와 아버지를 원망하다 자신도 마약 중독이 된 대학교수 캐스퍼가 있다. 동성애자인 캐스퍼는 직접 마약을 조제하며 이따금 두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캔디의 매춘 행위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즈음 캔디가 임신을 한다. 두 사람은 태아를 위해 마약을 끊어보려는 시도를 처음 하지만 금단의 고통 끝에 마약에 절어 있는 부모를 둔 태아는 캔디의 뱃속에서 죽은 채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제 댄과 캔디의 관계도 경계선을 향해 치닫는다. 도시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두 사람은 한적한 시골을 찾는다. 이곳에서 캔디는 극심한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 젊은 날의 방황이 이처럼 위험한 것이라면 젊다는 것 자체가 감당하기 버거운 짐일 터. 고통은 길고 희망은 짧다. 그 희망조차도 안도할 수준은 아니며 그나마 그것이 희망인지, 삶으로의 힘겨운 귀환인지 가늠하자니 심란해진다.

닻 올린 여성 영화인들의 10번째 항해

(연합뉴스) 국내외 여성 영화의 흐름을 소개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개막식을 열고 10번째 닻을 올려 9일간의 항해를 시작한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아트레온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를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영화제는 여성의 시각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30개국의 영화 141편(장편 63편, 단편 78편)을 선보인다. 여성 감독의 영화만 보여준 예년과 달리 올해에는 '오픈 시네마' 섹션에서 국내외 남성 감독들의 여성주의 영화가 상영된다.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몸의 정치학'과 여성의 도발적 상상력에 주목하는 '판타스틱 여성영화-위반과 유혹의 공간'도 마련됐다. 또 1997년 출범 이후 열 돌을 기념하는 '9708 한국여성영화' 섹션을 통해 지난 10년간 한국 여성영화의 발전을 살펴볼 수 있고, 1~9회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들이 '커튼콜' 섹션에서 상영된다.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의 이름을 딴 박남옥 영화상(상금 1천만 원)이 신설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에게 처음 수여되며 '아시아 단편 경선'에서는 5개국 19편이 경합을 벌인다. 방송인 허수경과 배유정의 사회로 진행되는 개막식에서는 장필화 조직위원장의 개막 선언과 이혜경 집행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가수 한영애의 축하공연이 펼쳐지고 개막작인 10주년 기념 프로젝트 HD 옴니버스 영화 '텐 텐'이 공개된다. '텐 텐'을 연출한 이수연, 임성민, 장희선, 변영주, 울리케 오팅거, 헬렌 리 감독과 배우 나문희, 조희봉은 게스트 포토월 행사에도 참여한다.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ㆍ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과 전주국제영화제 민병록 집행위원장 등 주요 영화제 수장,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심재명 MK픽처스 대표와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 등 제작자, 임권택ㆍ이현승ㆍ김수용 감독, 배우 남성진 김지영 안석환 오광록 박해미 조은지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인터뷰> 칸영화제 지원받는 정이삭 감독

" (연합뉴스) 재미교포 2세 정이삭(29ㆍ미국명 리 아이작 정) 감독은 장편 데뷔작 '문유랑가보'로 지난해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다. 그리고 프리프로덕션 단계인 두 번째 장편 '러키 라이프(Lucky Life)'는 올해 제61회 칸 영화제의 젊은 감독 지원 프로젝트인 '시네파운데이션 아틀리에'에 뽑혔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 감독이 2년 연속 칸에 초청받은 것. 이에 대해 정 감독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가장 존경하는 감독들이 참석하고 있는 칸 영화제에 참여하게 돼 감사한다"며 "칸 영화제는 차세대 감독들을 지원하기를 바라는 것 같고, 나 역시 그 중 하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콜로라도의 한국인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아칸소에서 자라난 정 감독은 "국가적 정체성을 찾는 영화도 중요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죽음과 개인의 희생이라는 주제에 더 사로잡혀 있다"며 "관객과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여행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문유랑가보'는 르완다 내전을 겪은 두 소년의 여정을 그리고 있으며 '러키 라이프'는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남녀 네 명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다음은 일문일답. --장편 두 편으로 칸 영화제에 두 번이나 초청됐다. ▲칸 영화제는 영화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들의 참여도 최근에 두드러졌기 때문에 이 영화제와 관계를 쌓는 일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칸 영화제는 차세대 감독들을 적극 지원하고 싶어하는 것 같고, 나 역시 그 중 하나가 되고 싶다. --결과적으로 데뷔작 '문유랑가보'로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동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예산 3만 달러와 촬영 기간 11일이라는 악조건으로 르완다에서 영화 찍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도저히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었다. 잠잘 시간도 충분치 않았고 촬영을 시작하기 며칠 전까지도 배우와 장소가 정해지지 않았다. 주연 배우 중 하나가 촬영 사흘 전에 그만둬 버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힘들수록 더 나은 영화를 완성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르완다에 관한 영화이지만 대학살 사건보다는 그 이후의 후유증을 그리고 있다. ▲내 목표는 르완다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대학살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재연하는 영화는 이미 많다. 나는 르완다 관객에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는 공감대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인데, 많은 르완다인에게 내전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보였다. 다만 그들은 잔혹한 경험에서 비롯된 생생한 감정을 묻어둔 채 살아갈 뿐이었던 것이다. 그 분노와 억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르완다인의 시각에서 르완다인을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려 했나. ▲나는 영화를 만들 때 다양한 영화적 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먼저 사람들을 그릴 때는 진실해 보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내 예술적 신념에 부합하면서도 르완다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다. 내게는 이 영화가 전혀 다른 두 가지 문화의 접합점이다. 그러므로 르완다, 미국, 프랑스, 한국 등 다양한 문화권의 관객이 이 영화에서 비슷한 연결고리를 찾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한인가정에서 자라난 감독의 '무장소성(placelessness)'이 '문유랑가보'의 중심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점들이 이 영화로 나를 이끈 계기가 되긴 했겠지만 '그 문화에 속해 있지 않다'는 감정만으로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영화의 중심에 르완다가 있기를 바랐다. --김소영 감독의 '방황의 날들', 마이클 강 감독의 '웨스트 32번가' 등 한인 감독들이 재미교포로서 겪는 정체성 문제를 다룬 영화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주제에는 관심이 없나. ▲이 감독들은 국적에 대한 정체성을 바라보는 동시에 외로움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을 다루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한 주제이고 나 역시 이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이 주제에 끌리지 않는다. 죽음과 개인의 희생이라는 문제에 더 사로잡혀 있다. --영화를 통해 성취하려는 것은 뭔가. ▲영화를 만드는 목적은 요 몇 년 사이 계속 변하고 있다. 요즘에는 미디어가 정신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칸 영화제 이후 가족과 스페인을 여행했는데 오래된 성당들을 돌아다녔다. 그런 아름다운 성당에 처음 들어가 한두 시간 머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키 라이프'는 '문유랑가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보이지만 주인공들의 길고 험난한 여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영화인가. ▲두 편 모두 여행에 기댄 이야기며, 자연 또는 지형이 여정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러키 라이프'의 아이디어는 '문유랑가보'를 찍기 두어 달 전에 떠올랐다. 핵심을 설명하자면, 환멸감을 긍정적인 힘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문유랑가보'와는 비슷한 주제를 탐구하는 영화다. 두 편 모두 특별히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관객과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여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