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치명적인 유혹, 뿌리칠 수 없었다"

점점 더 관록이 묻어난다. 그렇지만 멋진 스타일은 여전하다. 영화 '타짜'(감독 최동훈, 제작 싸이더스FNHㆍ영화사 참)의 정 마담은 그래서 김혜수가 딱이다. 허영만 만화 원작대로라면 정 마담은 좀 더 나이가 들고, 김혜수 표현대로라면 한층 '육적(肉的)'이지만 '범죄의 재구성'을 쓰고 연출한 최동훈 감독이 재탄생시킨 정 마담은 캐스팅 소식을 듣자마자 김혜수가 적역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정작 김혜수 본인은 한동안 고민했다. 웬만한 중견 배우 못지않은 연기 '구력'을 자랑하지만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갈수록 세련된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김혜수를 만나 '타짜'를 촬영하며 맞았던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들었다. ◇"난 고양이과가 아닌데…" 시나리오 속 정 마담은 만화 원작보다 훨씬 교활하고 귀여운 여자였다. 현대적 느낌 또한 강했다. "아주 매혹적인 고양이가 연상됐어요. 사실 전 고양이과는 아니죠. 직설적이고, 내 판단에 대한 확신도 갖고 있고. 거기다 대중에게 드러난 배우로서 제 이미지 중 어떤 부분과 겹쳐 네거티브한 파장도 걱정됐습니다. 이미지만으로는 절대 영화 한 편을 끌고 갈 수 없어요. 배우가 연기하는 배역은 진짜 자기 모습에 있는 것을 뽑아낸다고 생각하는데 고양이과가 아닌 제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됐죠." '분홍신'이 끝나고 난 후 여행에서 돌아올 즈음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최동훈 감독 작품 시나리오가 들어왔다고. "너무 좋아, 너무 좋아"를 연발하며 귀국해 받은 시나리오였다.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이라는 말만 듣고 그토록 좋아했던 시나리오를 막상 받고 나서는 고심에 빠져든 것. "도전도 하지 않고 포기해버리기엔 감독과 배우의 조합이 무척이나 매혹적이었어요. 최동훈 감독에 조승우, 백윤식, 유해진 등.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죠." 추석 시즌인 28일 개봉하는 바람에 '추석에 화투를 부추기는 영화 아니냐'는 농담을 지겹도록 들었지만 누가 뭐래도 '타짜'는 도박을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여러 인간 군상의 모습이 나오며 그중 정 마담은 돈을 향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자다. "정 마담 같은 사람, 솔직히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게 교활한 사람은 아마 못 알아볼 거예요. 다만 내가 하는 역할이니까 좋다는 거고, 캐릭터로서 매력은 분명히 있죠." 예고편을 통해 드러난 김혜수의 정 마담은 농염하고, 화려하며 눈에 그득한 욕망을 담고 있다. ◇소름이 돋고 진정성이 충만한 연기 '타짜'는 만만찮은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그들이 뿜어낼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김혜수는 진심으로 동료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했다. 우선 백윤식. "드라마를 하며 만나뵌 적 있지만, 그땐 별 이야기 못했죠. 방송국은 남녀 분장실이 따로 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영화하면서 좀 더 밀도가 생겼습니다. 한마디로 '경륜'이 느껴졌어요. 연기란 스킬(skill)로 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 '아우라'라는 단어가 이처럼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는 것, 인생과 연기란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을 선배님 보면서 느끼게 됐죠."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 등 대부분 젊은 사람들인 데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먼저 다가갔다고 한다. "선배님이 스스로를 가볍게 보이시려 하는데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았어요. 끊임없이 젊은 사람들에게 본인을 낮추셨죠. 역시 연기는 '진정성'을 갖춰야 된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에게 충격을 안겨준 이들은 조승우와 김윤석의 연기. 조승우야 이제 연기 잘한다는 게 알려져 있지만,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윤석은 영화 조역과 '있을 때 잘해' 등 몇몇 드라마를 통해 이제 얼굴을 알리고 있는 배우다. 고니 역의 조승우와 아귀 역의 김윤석이 맞붙는 장면을 찍는 걸 보면서 김혜수는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가장 하이라이트였죠. 전 그걸 지켜보고 서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 장면을 찍는 3일 내내 두 사람의 연기를 봤는데,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 예전에 한 연극에서 여배우의 연기를 보고 난 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느낌." 도대체 어떤 점이 그를 이렇게까지 감탄하게 만들었을까. "배우들이, 특히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연기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더 드러내려고 해요. 본의 아니게 상대 배우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거죠. 그런데 두 사람은 자기 연기를 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해주고 있더군요.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런 이상적인 현장을 봤다는 게 정말 소중한 기억입니다." 이처럼 그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준 현장.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최동훈 감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그런 마음은 이 한마디로 정리될 듯. "앞으로 누가 됐든 최동훈 감독과 작업하는 배우를 보면 무조건 부러워할 거예요. 어떤 감독인지 내가 겪어봤으니까요." ◇세월과 노력이 가져다준 성숙함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비록 백윤식만큼은 아니더라도 인생을 담아낼 줄 알고, 자기 삶을 사랑하며, 그래서 부단히 노력하는 김혜수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나이를 한살 한살 더 먹으면서 생각도 조금씩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개봉 후 관객의 '세속적'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장면을 찍으면서도 '지금 현재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했단다. "장기적으로 미래를 가늠한다는 게 어렵더군요. 이젠 현재의 나에게 충실하자는 생각을 가져요. 내 판단대로 움직이고, 그 판단이 이성에 의한 것이든, 본능에 의한 것이든 한번 결정을 내리면 후회 없이 가자. 그래서 성공이든 실패든, 후에 있을 문제는 생각하지 말자구요." 올해 그는 참 바빴다. '타짜'를 찍기 직전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함께 하자는 제의가 와 '좋지 않은 가(家)'에 특별 출연했다. 여기서 그는 제대로 된 여자 '백수'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 그리고 지금은 바람난 유부녀들을 내세운 '바람 피기 좋은 날'을 한창 촬영 중이다. "연기라는 게 갑자기 느는 게 아니더군요. 어떤 상대를 만나 시너지를 발휘할 수도 있는 거고. 마음 가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살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모든 것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는 것 같고, 내 스스로에 대한 강박이 줄어듭니다." 늘 새롭고, 또한 늘 한결같은 배우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을 김혜수가 주려고 한다. /연합뉴스

최수종 “대조영 때문에 두달째 밥 안먹어요”

최수종은 눈에 띠게 야위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심하다 싶을 정도로 움푹 팬 광대뼈에서 사극 ‘왕건’이나 ‘해신’ 촬영 때와는 달리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살짝살짝 스치는 눈빛에서도 매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으며 옹골차게 다문 입술은 굳세 보였다. “이번 사극을 시작하면서 부터 아예 술을 입에 안댑니다. 철저히 관리 하지 않으면 노비출신으로 나오는 어린 대조영 역할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기 위해 밥을 안먹은지도 두달 됐어요. 대신 야채 고기 미숫가루 등을 먹고 촬영현장에서는 오이나 방울토마토로 끼니를 때웁니다.”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만난 그는 살빠진 이유부터 설명했다. ‘사극 전문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는 얘기에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사극을 연달아 하는 것은 처음이에요. ‘해신’ 끝난 이후 영화 등 4개의 시놉시스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대조영’ 시놉시스는)쳐다도 안봤어요. 그런데 호기심에 한번 읽기 시작했는데 (이 배역을) 남을 주기는 너무 아깝겠더라고요.” 그는 촬영이 시작된 이후,일주일에 한번 집에 들어간다고 털어놨다. “수요일 새벽 지방 촬영을 내려가면 토요일 밤이나 되서야 서울로 올라옵니다. 일요일에 스튜디오 녹화가 시작되면 밤샘촬영이 어이지고 다시 지방촬영이 시작되는 식입니다.” 빡빡한 촬영 일정이 힘들 법도 한데 오히려 이런 스케줄이 고마운 점도 있다. “항상 노트북을 가지고 다닙니다. 요즘은 모텔에도 인터넷이 되니깐 잠자러 들어오면 아내(탤런트 하희라)에게 이메일도 쓰고 문자메시지도 주고 받고 그래요.” 사극은 배우들에게 유난히 힘든 작업이다. 분장이나 의상에서부터 검술이나 말타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게 없다. 사극 출연 배우들이 곧잘 사고를 당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대조영은 극 초반에는 맞기도 많이 맞고 싸움도 많이 해요. 최근에는 밧줄에 묶여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장면을 4시간 동안 찍었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자연스레 눈에 핏발이 서던데요.” 대조영은 후발주자인만큼 MBC ‘주몽’이나 SBS ‘연개소문’보다 부담감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는 “다른 방송을 모니터하며 주인공들의 연기를 지켜본다”면서 “물론 저 세계에서 어떻게 일등을 할지 고민도 한다”며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배우의 ‘배’자가 사람 인에 아닐 비예요. 대조영은 대조영이지 인간 최수종은 아니란 겁니다. 그런데 카메라만 돌아가면 최수종의 눈빛이 달라집디다. ” 연출자 김종선 PD의 칭찬이다.

10시간30분짜리 영화 관람 체험기…관객에게 괴물처럼 다가온 영화

러닝타임 10시간30분! 2시간 안팎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괴물처럼 여겨질 영화가 있다. 지난 8일 개막한 서울영화제가 11일 상영한 영화 ‘필리핀 가족의 진화’(감독 라브 디아즈). 기획부터 완성까지 10년,촬영 기간만 8년이라는 점도 놀랍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630분에 달하는 상영시간이다. 이 영화를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쉬는 시간 포함해 12시간동안 내리 상영한다는 소식에 열 일 제쳐놓고 서울 종로 시네코아를 찾았다. 영화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과연 10시간 반동안 스크린에 집중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극기훈련과 영화관람 사이=어찌보면 대단할 것도 없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3편의 총 길이가 9시간27분이다. 20여부작 드라마를 DVD로 하루에 다봤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경우는 다르다. 흑백 화면에 배경음악도 없이 진행되는 예술영화인 것. 게다가 필리핀의 1970년대 정치적 혼란을 배경으로 한다니 얼마나 공감이 갈지도 관건이었다. 아예 재미에 대한 기대는 접은 채 극기 체험 한다는 생각으로 들어선 상영관. 소리 안나는 주전부릿감도 든든히 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쉬는 시간까지 175분간은 고되기 그지 없었다. 영화제에 이 작품을 추천한 필리핀 영화평론가조차 “미숙한 오디오 서빙,서투른 핸드헬드 카메라 촬영 등 기술적으로 불완전한 부분이 많다”고 했을 정도. 거기다 아무리 예술영화에 ‘롱테이크’는 필수라지만 마당 쓰는 데 10분,장작 패는 데 10분,화면 저쪽에서 이쪽까지 걸어오는 데만 10분 이상 걸리다보니 솔직히 졸음도 왔다. ◇10시간30분의 위력=그런데 이 영화는 왜 이리 길까. 대하 소설처럼 수많은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농삿꾼인 갈라도 가족과 탄광 인부 페르난도 가족이 주요 인물의 전부고 각각의 삶도 상세하지 않다. 러닝타임 대부분은 일상을 가만히 지켜보는 ‘롱테이크’에 할애됐을 뿐이다. 치명적 사건들도 일어나긴 한다. 갈라도 가족의 길다가 도시의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아이 레이는 9살 때 어머니 길다를 욕보여 죽게 한 동네 청년들을 총으로 쏜 뒤 방황을 시작한다. 길다의 오빠 카죠는 민병대에 잘보이려 대신 군인을 살해하고 감옥에 간 후 범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카죠의 세 딸은 할머니와 함께 농사 품팔이로 힘겹게 살아간다. 또 청년이 된 레이를 양아들로 거둔 페르난도는 허황된 꿈에 금맥을 찾아 헤매다 아들이 살해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간다. 짧게 압축하면 1시간 안에도 그려낼 이 인물들은 그러나 마치 실제 일상인 듯 천천히 흐르며 10시간여 동안 진행된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뒤로 갈수록 인물들의 머릿 속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영화가 긴 이유=후반부,카죠가 칼을 맞고 걸어가는 장면은 30분이나 계속됐지만 그의 한많은 삶을 알기에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왜 이 영화가 이리도 길어야 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그의 비틀거림 속에는 상처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살아온 삶의 몽환과 현실이 그를 더 아프게 한다. 영화가 끝난 뒤 상영관을 나서는 몸은 찌뿌듯했다. 하지만 극기체험을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동안 2시간여의 시간으로 다른 인생을 엿봤다 여겼던 오만도 되돌아보게 됐다. 다만 예술영화 환경이 날로 척박해지는 우리 현실에서 이 영화가 단관(單館) 개봉조차 안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만은 씁쓸함을 남겼다.

김현성 "언젠가 연기에 내 삶이 묻어날 것"

솔직히 참 안풀린다는 생각이 들었던 배우다. 10년 전 임순례 감독의 '세 친구'에 주인공으로 덜컥 캐스팅되고 '스물넷'에 이어 2002년 당시 제작비 1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블록버스터였던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에 당당히 남자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을 때만 해도 그는 말그대로 '전도양양한' 신예 배우였다. 그런데 '성소'가 '블록버스터의 재앙'으로 불릴 만큼 참담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고 난 뒤 김현성의 앞날도 불투명하게 변했다. 그 후 오랜 기간 불러주는 데가 없었고, 회심작으로 출연했던 TV 드라마 '북경 내 사랑'마저 시청률 5% 남짓한 저조한 기록을 보이고 말았다. 드라마틱한 연기 인생을 겪어온 김현성이 모처럼 영화에 출연했다. 14일 개봉하는 '두뇌유희프로젝트-퍼즐'(이하 '퍼즐')에서 그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청부살인업자 정으로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 "벌써 10년이네요. 돌이켜보면 '성소'가 끝난 후 2~3년 동안 기본적인 생활비를 벌지 못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결코 포기하지 못한 일이에요. 언젠가 고생고생하며 지낸 이런 내 삶이 연기에 묻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초 뮤지컬 '록키 호러쇼'에 출연하며 다른 장르에 도전하기도 했다. 뮤지컬 출연은 오히려 영화를 더 그리워하게 만들었고, 소극장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또다른 욕구를 자극했다. 뮤지컬에 출연했을 당시 캐스팅된 '퍼즐'에서 그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강한 흡입력을 갖고 있는 정을 연기했다.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이 떠올랐습니다. 감독님이 타란티노감독을 좋아해 그런 영화를 하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모방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일단 저는 이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그의 목표는 '유약하고 여린 청춘'이라는 이미지를 벗는 것이었다. "조금은 냉소적으로 보일 만큼 강한 이미지, 딱 부러지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정을 통해서 김현성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목표가 그것이었다면 김현성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영화 구성이나 캐릭터 자체가 불만족스러울지언정 다섯 명의 남자 배우들, 그 중 특히 관객에게 낯설었던 김현성과 규 역의 박준석은 눈여겨볼 만한 연기를 해냈다. 돈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뭉친 생면부지의 다섯 남자가 맞닥뜨린 비극적 상황은 인간의 믿음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여러가지 제작 여건이 안좋았던 데다 마케팅 과정에서 범인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축처럼 보이게 돼 아쉽기는 하지만 배우들은 최선을 다해 연기했습니다." '성소' 개봉 전에는 시나리오가 쌓일 만큼 찾는 곳이 많았으나 '성소'가 참패하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굴곡 큰 부침을 겪었던 그는 이제 소박한 목표를 정해 앞으로 나아간다. "'많이 해봐야 (연기력도) 는다'는 말 뜻을 잘 알겠더군요. 어느 한 장면이든 인상적인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연기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역이든, 김현성 식으로 해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네요. '퍼즐'은 이런 저의 각오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연합뉴스

최병서가 이덕화 목소리 더빙한 사연

"부탁해요~"라는 멘트로 1980년대 TV 쇼 프로그램 인기 MC로 활동했던 배우 이덕화. 1988년도 그의 젊디 젊은 모습이 영화에서 되살아났다. 그런데 목소리는 그의 것이 아니다. 개그맨 최병서가 그의 목소리를 더빙했다. 화제의 영화는 28일 개봉할 안성기ㆍ박중훈 주연의 '라디오 스타'(감독 이준익, 제작 영화사아침). 1988년도 가수왕 최곤(박중훈 분)과 그의 20년지기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인생유전을 그린 이 영화에서 이덕화는 하얀색 드레스 정장 차림으로 화면에 등장한다. 1988년도 MBC TV 연말 가요 프로그램인 '가요대제전'을 진행하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그의 옆에는 역시 곱디고운 조용원이 마이크를 잡고 서 있다. 두 사람은 마지막 순서인 가수왕을 발표하는데, 영화에서는 최곤의 이름이 호명된다. (실제로는 '신사동 그사람'의 주현미가 수상했다.) 화면은 당시의 방송 화면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 됐다. 문제는 최곤이 허구의 인물인 만큼 대사 더빙은 다시 했어야 하는 것. 그런데 이덕화의 목소리를 이덕화가 아닌 최병서가 했다. 더빙할 당시 하필이면 이덕화가 KBS TV 드라마 '대조영'을 촬영하다 낙마,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처음에 성우를 섭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용기 조감독이 과거 최병서가 이덕화의 성대모사로 인기를 끌었던 사실을 상기, 최병서에게 목소리 더빙을 제안한 것. 최병서는 오랜만의 실력발휘 기회에 흔쾌히 응했고, "1988년 MBS 가요대상, 영예의 대상, '비와 당신'의 최곤!"이라는 대사를 이덕화와 꼭같이 소화해냈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덕화와 최병서의 차이를 눈치챌 수 없게 됐다. 제작사 영화사아침의 정승혜 대표는 "최병서 씨가 이덕화 씨 목소리를 더빙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면 남들은 절대 모른다"면서 "오히려 이덕화 씨보다 더 이덕화 씨 같은 목소리"라며 웃었다. 한편 조용원의 경우는 대사가 "축하드립니다"로 짧아 전문 성우를 섭외해 더빙했다. /연합뉴스

천정명 "고현정 씨와 연기하게 돼 영광"

고현정의 '연하남'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 천정명이 "함께 연기하게 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두 사람은 MBC 수목드라마 '여우야 뭐하니'(극본 김도우, 연출 권석장)에서 9살 차이의 '연상연하' 커플로 등장한다. 12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천정명은 고현정과의 호흡을 묻는 질문에 "감히 선배님의 연기에 대해 말은 못하겠고 함께 연기하게 돼 너무나도 영광이고 배우는 입장에서 연기하고 있다"면서 "촬영하면서 재미있고 너무 편하게 해주셔서 연기하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다"고 대답했다. 천정명이 맡은 역할은 24세의 자동차정비소 정비공 박철수. 차에 미쳐 공고 자동차과를 졸업한 그는 사회적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별종이다. 누나(안선영)의 친구인 고병희(고현정)는 그의 사춘기 시기의 '로망'이었다. 그런 병희와 '사고'로 함께 잔 이후 우여곡절 끝에 로맨스가 시작되는 것. 천정명은 "철수 캐릭터가 워낙 자유분방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라서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늘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 편이고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배우는 자세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에 대해 그는 "지금 나이가 27살인데 주위에서 중고등학생 같다는 말씀도 많이 하신다"면서 "처음에는 너무 어려 보여서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장점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여우야 뭐하니'도 그런 이미지로 캐스팅된 것 같아 이제 다른 배우에 비해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MBC드라마넷, SO와 공동제작 사업제휴

MBC드라마넷(대표 장근복)은 12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별 SO발전협의회(회장 공성용)와 공동제작에 따른 사업제휴 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협정 체결에 따라 MBC드라마넷이 12월부터 방영할 예정인 코믹 미니시리즈 '빌리진 날 봐요'는 지역 케이블TV방송국(SO)들과 공동투자로 제작된다. SO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간 프로그램 공동제작은 이번이 처음으로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간의 사업교류를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자체 콘텐츠 확보가 시급한 SO로서는 제작 역량을 갖춘 PP를 통해 우수한 콘텐츠를 공급받을 수 있고, PP는 제작비를 줄이고 SO와 향후 프로그램 공급계약 등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MBC드라마넷 장근복 대표는 "앞으로 PP와 SO간의 바람직한 사업교류 모델을 제시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며, PP와 SO간 상호이익 증진과 우호협력 관계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성용 제주케이블TV 대표는 "이번 공동제작은 SO와 PP가 실질적인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하는 긍정적 모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훈과 박희본, 박탐희 등이 주연을 맡은 '빌리진 날 봐요'는 26부로 사전제작돼 12월 말 MBC드라마넷을 통해 방송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