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한 반항아 됐어요”

TV 드라마에서만 훌쩍훌쩍 잘 우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란다. “어릴 적 모시고 살았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길거리를 지나가다 연로하신 할머니들만 보면 금세 눈물을 글썽이게 돼요” 천성적으로 타고난 감수성일까. ‘눈물의 여왕’ 수애(본명 박수애·24)가 스크린 나들이를 했다. 오는 9월 3일 개봉하는 ‘가족’. MBC ‘러브레터’와 ‘회전목마’, KBS ‘4월의 키스’ 등 데뷔 이후 주로 브라운관에서만 활동하다 처음 출연하는 영화다. 영화는 이런저런 오해로 갈등과 불화를 겪던 아버지와 딸이 화해의 손을 잡고 따뜻한 가족애로 뭉치게 된다는 이야기. 수애는 이 영화에서 소매치기 전과 4범의 반항적인 큰딸 정은으로 나와 백혈병에 걸린 전직 경찰 아버지 주석으로 등장하는 중견배우 주현과 부녀지간으로 호흡을 맞췄다. 자신이 연기하는 영화 속 주인공 정은처럼 수애 자신도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사춘기 시절의 통과의례를 거쳤다고 한다. ”어쩌다가 밥 한끼 제때 챙겨주지 않으면 괜히 섭섭해서 ‘내가 혹시 주워온 자식은 아닐까’ 의심하며 부모님께 대들기도 했었어요” 수애는 드라마 한 편이 끝나면 바로 다음 드라마에 캐스팅되는 등 신인배우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기자로 꼽힌다. 그는 오는 11월 방영 예정인 KBS 드라마 ‘해신’에서 해상왕 장보고(최수종)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신라 6두품귀족의 딸 정화로 출연한다. 영화 ‘가족’에서 반항아로 나와 약간 도발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존의 고전적인 청순가련형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는 평에는 “신인으로서 한발 한발 내딛는 자세로 연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쌓은뒤 연기 실력이 뒷받침되면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싶습니다. 코미디 연기에도 도전해볼 생각이에요”라고 말했다.연기수업에 필요한 영화는 꼭 챙겨 보려고 노력하고 있고, 로맨틱 코미디 장르영화를 좋아하며, 특히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매력적인 홍콩 배우 장만위(張曼玉)를 자신이 본받아야 할 외국배우로 꼽았다.¶“다음 작품을 할 때마다 기대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야무진 포부를 밝힌 수애는 영화 ‘가족’을 보고 조금만 감동을 받은 뒤 “잘 봤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들으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수애는 기회 닿는 대로 양로원 등 복지시설을 방문해 봉사활동도 펼칠 계획이다.

MOVIE/엘리펀트, 알포인트, 프레디vs제이슨

■칸느가 선택한 영화 ‘엘리펀트’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번 ‘월광’의 친숙한 멜로디가 배경음악으로 감미롭게 깔리는 가운데 시리도록 푸르고 맑던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암흑으로 변한다. 마치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을 암시라도 하는 듯하다. 그 날의 학교 풍경도 다른 평온한 날과 다를 바 없었다.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이 미식축구를 하고 치어리더들은 응원 연습을 하느라 여념없다. ‘동성애와 이성애의 대화 모임’에서는 지도선생을 중심으로 남녀학생들이 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다른 교실에서는 물리학 수업이 한창이다. 식당은 음식이 먹을 게 없다고 투덜거리며 식사를 하는 학생들로 북적거린다. 식당 종업원 2명이 요리를 하다 말고 청결규정을 어겨가며 몰래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엿보인다. 도서관에는 책을 읽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너무나 일상적인 학교생활이 무심하게 펼쳐진다. 이런 평화로운 곳에서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가면서 12명의 학생과 교사 1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십명이 부상당하는 충격적인 총격사고가 터질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오는 27일 개봉하는 ‘엘리펀트’(Elephant·㈜동숭아트센터 수입ㆍ배급)는 지난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리틀톤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끔찍한 총기 난사사건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소재로 다룬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나 폴 F.라이언의 ‘홈 룸’, 벤 코치오의 ‘제로 데이’ 등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학생들의 시선으로 총격사건 전후 16분간의 상황을 차가울 정도로 차분하게 담고 있다.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 등 범행동기를 파헤치거나 손쉬운 총기구매 시스템이나 폭력적 비디오게임과 TV, 사탄숭배 등 미국사회의 모순을 고발한다든가 하는 일 따위는 않는다. 카메라는 줄곧 학생들의 뒤를 쫓아가며 그들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줄 뿐이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한 존은 지각해서 교장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사진찍기가 취미인 일라이는 나뭇잎이 물든 완연한 가을 교정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고, 소심한 성격의 미셸은 다른 학생들에게 멍청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따돌림을 당하고, 다이어트에 여념이 없는 치어리더 무리는 잘 생긴 미식축구선수 네이선을 보고 호들갑을 떤다. 총기를 난사한 당사자들인 알렉스와 에릭도 그 날 오후 집에서 컴퓨터게임을 하고 ‘엘리제를 위하여’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등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인터넷 총기구매사이트를 통해 주문한 총을 배달받고 함께 샤워를 한 뒤 집을 나선다. 둘은 치밀하게 짠 범행계획에 따라 학교에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 학생들을 죽인다. 이 영화는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아이다호’, ‘굿 윌 헌팅’, ‘파인딩 포레스터’ 등을 통해 젊은이들의 상실감을 탁월한 감수성으로 그려낸 거스 반 산트 감독이 자신이 살았던 미국 포틀랜드에 있는 폐교된 고등학교에서 20일 동안 35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찍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난 2003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의 황금종려상은 물론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상영시간 81분. 등급은 미정. ■알포인트 감미로운 男 감우성, 공포 장전! “손에 피를 묻힌 자는 돌아가지 못한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알포인트’(씨앤필름 제작·시네마서비스 투자·배급)는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72년 실종된 한국군을 찾으러 나섰던 수색부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에 의해 극도의 불안과 공포 속에 죽어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6개월 전 작전 지역명 R-포인트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당나귀 부대원으로부터 구조를 요청하는 무전신호가 사단본부로 걸려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벌써 3번째다. 병사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수색부대가 편성된다. 군사작전에 나갔다하면 항상 피를 보는 소대장 최태인 중위(감우성)를 비롯해 모두 9명의 군인이 수색에 나선다. 고향집 부모님에게 송아지를 사드리기 위해 형을 대신해 16살에 군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한 장영수 병장(오태경),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을 회상하며 하루 빨리 임무를 끝내고 귀국선에 오르기를 바라는 박재영 하사(이선균), 집에 돌아가면 아이와 마누라 손잡고 창경궁(당시 창경원) 나들이가는 게 꿈인 마원균 병장(박원상)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말년의 군인들이 합류한다. 이들이 들어간 곳은 베트남 호치민(당시 사이공) 서남부 150㎞ 지점의 캄보디아접경지역 섬으로 베트남전 당시 군사작전명 ‘로미오 포인트’로 불렸던 전략요충지. 원래 커다란 호수가 있던 이곳은 옛날 중국군이 쳐들어와 베트남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던 참살의 현장으로 베트남은 죽은 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피로 물든 호수를 메우고 사원을 세우는 등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햇빛조차 잘들지 않고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 습하고 음침한 곳이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베트남 사람조차 접근하기를 두려워하는, 원혼이 떠도는 곳.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전제 아래 영화는 출발한다. 수색 소대원들이 귀신에 씌이는 빙의현상으로 점점 미쳐가면서 서로 총을 겨누고 칼을 휘두르며 자멸하는 것은 신성불가침 지역을 침범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알포인트’는 전쟁이 초래한 광기를 공포 소재로 끌어들여 호러영화의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얀전쟁’, ‘텔미 썸딩’, ‘링’ 등의 시나리오를 쓴 공수창 감독의 장편 데뷔작.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6분. ■프레디vs제이슨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와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공포영화의 대명사격인 이들 영화 속 공포 캐릭터들이 대결을 벌인다면? 황당무계한 상상같지만 영화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무적의 두 살인마가 맞붙었다고 공포감이 두 배로 증폭될 것이라는 기대는 갖지 않는 게 낫다. 오는 27일 개봉 예정인 ‘프레디 vs 제이슨’은 공포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내용은 오히려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깝다. 가벼운 마음으로 엽기 호러 코믹 쇼 한 편 본다는 기분으로 즐기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듯하다.

씨네경기/쓰리몬스터, 헬보이, 시슬리2km

■쓰리몬스터 3國3色 옴니버스영화 잔혹 영상에 ‘몸서리’ 몬스터를 깨우지마! 영화는 사랑과 욕망, 증오, 질투, 복수심, 탐욕등 인간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는 탁월한 도구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모든 인간의 밑바닥에서 각양각색으로 피어오르는 마음의 속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불안’이 아닐까. 실존철학의 선구자 키르케고르(1813~55)는 모든 인간을 ‘불안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불안이 없는 개인이란 있을 수 없으며, 불안은 개인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올드 보이’의 박찬욱, ‘착신아리’의 미이케 다카시, ‘메이드 인 홍콩’의 프루트 챈 등 한국, 일본, 홍콩 3개국의 내로라하는 세 영화감독이 공동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쓰리, 몬스터’는 인간 불안심리의 한 단면을 호러라는 거울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감독들은 각각 ‘컷(박찬욱)’ ‘박스(미이케 다카시)’ ‘만두(프루트 챈)’ 등 세편의 영화에서 불안이 불러들인 참혹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컷’에서 괴한(임원희)이 평온한 가정을 꾸려가는 영화감독(이병헌)과 그의 아내(강혜정)를 납치해 감독의 아내를 피아노줄로 꽁꽁 묶어 놓고 감독에게 길에서 데려온 어린아이를 죽이지 않으면 아내의 손가락을 5분마다 절단하겠다고 위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에서 낙오돼 더이상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극도의 불안때문이 아닐까. ‘박스’에서도 불안에 시달리는 인간심리가 몽환적인 영상에 잘 포착돼 있다. 여류 소설가로 나오는 주인공 교코(하세가와 교코)는 밤마다 악몽을 꾸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린 시절 서커스 단원이었던 그녀는 쌍둥이 언니 쇼코가 의붓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데 대해 ‘버림 받았다’는 불안으로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만 쌍둥이 언니를 죽음으로 내몰고 만다. ‘만두’ 역시 다시 젊어지고 싶다는 여성의 욕망을 모티브로 잡고 있지만 극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인간불안의 심리극이라 할만큼 불안심리를 파헤치고 있다. 젊은시절 유명 여배우였던 칭(양첸화)이 태아로 만든 만두를 먹을만큼 젊음에 집착하는 것은 남편 리(렁카화이)로부터 버림받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 탓이다. 겉으로는 부유한 생활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지만 남편은 어린 여자에 빠져 자신에게 관심조차 없다. 세 편의 영화에는 ‘임신부·노약자 관람금지’라는 주의문구를 달아야 할 만큼 끔찍한 장면이 연이어 나온다. 잘려진 손가락을 믹서기에 넣어 돌리며, 입으로 목을 물어 살점을 뜯어내는 등 잔혹한 장면들이 관객을 섬뜩하게 한다. 20일 개봉. 상영시간 126분 ■헬보이 여름 날려줄 블록버스터! 선의 편에 서서 악에 맞서 싸우는 악마의 이야기라는 역설적인 발상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할리우드 SF액션블록버스터 ‘헬보이’(Hellboy). 컬럼비아 트라이스타영화㈜ 수입배급). 미국 만화가 마이크 미뇰라의 동명 인기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 영화는 이른바 ‘오컬트(Occult) 음모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세계의 배후에 미지의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조직이 있어서 인류를 지배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어둠 속에서 은밀한 공작을 꾸미는 악마 세력의 반대편에는 물론 빛의 세력이 존재한다. 이 음모론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도 빛과 어둠이 대결을 벌이는 영적인 현대판 마법전쟁이었다. 히틀러나 괴링, 헤스 등 독일 나치의 주요 지도자들은 암흑세력이 외부통로로 이용하는 흑마술단체의 멤버들이었으며, 이에 비해 처칠이나 루스벨트, 맥아더 등 연합군의 주요 지도자들은 빛의 세력이 외부통로로 이용했던 신비단체의 고위 멤버들이었다는 것. ‘헬보이’에는 이같은 비의적(秘意的) 메타포가 곳곳에 등장한다. 이 영화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마겟돈’ ‘터미네이터2’ ‘에일리언2’ 등의 영화에 참여했던 12개 특수효과 회사가 총동원돼 만들어낸 볼거리가 풍부하다. ‘헬보이’는 지난 4월 2일 미국에서 먼저 개봉해 사흘간 2천300만달러의 수입을 거둬들이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었다.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22분. ■시슬리2km 종합선물세트 ‘임창정’ “아따, 이 양반아. 거 좀 빨리 끊고 나오지. 고기 다 타는데 뭐하고 있나?” 조직을 배신하고 엄청난 값어치의 다이아몬드를 훔쳐낸 석태(권오중).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차 사고를 내고 한 마을로 흘러들어간다. 역시나 순박하기만한 시골 사람들. 친절하게 잠자리를 마련해주더니 이젠 삼겹살 파티를 열어놓고 고기 식는다며 빨리 오라고 야단이다. 하지만, 호의는 딱 여기까지만이다. 화장실에서 넘어져 기절한 석태의 몸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면서 마냥 사람 좋아보이던 이 농사꾼들은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한다. 13일 개봉한 영화 ‘시실리 2㎞’는 딱히 한 가지 장르로 꼽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눈이 하얀 귀신이 시도때도 없이 등장하는가 하면 치고받고 쫓고 쫓기는 액션이 있고 귀신과 사람 사이의 로맨스가 있는 한편 때리고 넘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도 빠지지 않는다. 영화의 장점은 이보다는 꽤나 재치있게 엮어 놓은 코미디와 배우 임창정의 능청스런 연기에 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석태가 방문한 마을은 ‘시실리’(時失里)에서 2㎞ 지점.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데다 왠지 음산함이 감도는 이상한 마을이다. 물욕에 눈이 어두워 다이아몬드를 빼앗고 석태를 산 채로 벽에 매장하는 마을사람들. 조직의 중간보스인 양이(임창정) 일행이 뒤를 쫓아 마을에 도착했을 때 석태는 이미 죽기 직전이다. 마을 사람들은 점점 ‘조폭’ 못지 않은 흉악함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이들 앞에는 귀신까지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코미디는 관람시간 전체를 끌고 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유쾌하다. 상영시간 109분. 15세 이상 관람가.

씨네경기/'바람의 파이터', '망치'

■바람의 파이터 목숨 걸었던 ‘전설의 승부사’ 최근 충무로 영화계가 일제시대에서 해방 이후시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우리나라의 실존 인물들을 스크린을 통해 되살리는데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애국지사 안중근(도마 안중근), 혁명가 김산(아리랑),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청연), 일본 프로레슬러 역도산(역도산) 등 고난의 시대를 온몸으로 헤치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연이어 영화화되고 있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바람의 파이터’는 이런 흐름의 연속선상에서 제작되고 있는 여러 영화 중에서 가장 먼저 선보이는 작품. 일본 무술 유파를 모두 격파한 무술인 최배달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최배달의 본명은 최영의. 192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6살에 파일럿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가 소년항공학교에 재학중이던 1939년 공수도 초단으로 무술계에 입문했다. 이후 1947년에 2차대전 이후 최초로 열린 전일본 공수도 선수권대회를 제패했고, 1948년 기요즈미 산에 들어가 18개월간 홀로 수도생활을 하며 몸을 단련한 뒤 산에서 내려와 일본 전역을 돌며 유도, 검도, 합기도 등 모든 무술 고수들을 차례로 제압해 일본내 무예 1인자가 됐다. 1994년 72살의 일기로 생을 마감. 카메라는 최배달이 일본의 전설적인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를 본떠 일명 ‘도장깨기’에 나서며 일본 무술 유단자들을 연달아 깨부수는 화려한 액션장면뿐 아니라 애절한 러브스토리 등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도 애정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다. “나는 싸우는 것이 두렵다. 지는 것이, 맞는 것이 두렵다. 싸우다 불구나 폐인으로 살아남을까 두렵다.” 최강자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나약하게 들릴 수 있는 목소리를 비중있게 전달한다. 주인공으로 열연한 양동근이 내뿜는 원시적인 힘은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양동근은 근육질로 단련된 탄력적인 몸을 뽐낼 뿐 아니라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는 고독하고 외로운 무술인의 모습을 실감나는 표정과 눈빛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가토 마사야가 일본 무술계의 수장 가토로 등장해 최배달과 무술대결을 펼친다. ‘리베라 메’이후 4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양윤호 감독이 3년간에 걸친 시나리오작업 등 오랜기간의 준비 끝에 내놓는 야심작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0분. ■망치 ‘망치’야 안녕! 악당 물리치는 개구쟁이 모험담 허영만 원작…‘코난式’ 토종애니 과연 ‘망치’가 내지르는 ‘그레이트 에코’의 고함소리가 한여름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보낼 수 있을까. 만화가 허영만의 동명 만화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국산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망치’(안태근 감독·캐릭터플랜 제작)가 오는 6일 개봉했다. 환경파괴로 대륙이 물에 잠겨버린 먼 미래가 배경. 바다 한가운데 솟은 ‘촛대마을’에서 태어난 개구쟁이 ‘망치’가 제미우스국의 공주 ‘포플러’를 도와 반란을 일으킨 악당 수상 ‘뭉크’의 전세계 정복 야욕을 꺾는다는 게 기둥 줄거리다. 전체적인 구성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을 연상시킨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후반부에서 망치와 뭉크가 ‘그레이트 에코’로 최후의 파워대결을 벌이는 싸움장면. 그레이트 에코는 단전에 온 몸의 기(氣)를 모으고 고함소리를 내질러 만든 강력한 파동파. 두개 힘이 부딪히며 빚어내는 파괴력을 화려한 비주얼로 잘 그려냈다. 영화초반 자전거 비행기 ‘날틀’을 탄 망치가 하늘과 바다를 빠르게 오르내리며 악당들과 펼치는 속도감 넘치는 비행기 추격전도 눈에 띈다. 하지만 원작만화를 짧은 시간안에 녹여내려다 보니 스토리 전개가 비약을 거듭하면서 내러티브가 중간 중간 끊겨 이야기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풍덩’ 던지지 못하게 방해하는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췄다는 이 토종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들의 흥미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 지 기대된다. ‘망치’는 2003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개막작으로 상영됐으며, 2004년 뉴욕국제어린이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씨네경기/등골 오싹한 공포가 몰려온다

■분신사바 저주의 영혼 깨우는 주문 학교를 ‘공포의 도가니’로 척박한 한국 호러 토양을 남다른 애정으로 비옥하게 가꿔가고 있는 안병기 감독(37)이 김규리·이세은·이유리를 주연으로 내세운 ’분신사바’를 들고 오는 8월 5일 관객을 찾아간다. ‘가위’(2000년), ‘폰’(2002년)에 이어 2년마다 여름 이맘때면 어김없이 한 편씩 내놓고 있는 ‘안병기표’ 직인이 찍힌 세번째 공포영화. ‘분신사바’는 정통 호러물을 표방한다. 그래서 공포영화의 전통적인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귀신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섬뜩하고 큰 눈을 밑으로 내리 깔았다가 약간 위로 치켜올렸을 때 객석에는 싸늘한 냉기가 흘러 넘친다. 특히 거울 속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원혼이 기어나오는 대목은 일본 공포영화 ‘링’의 유명한 장면, 즉 사다코가 TV 모니터에서 한 마리짐승처럼 기어나오는 장면을 모방했지만 더욱 소름돋게 한다.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온 학생이 ‘왕따’에 시달린 끝에 귀신을 부르는 ‘분신사바’ 주문으로 저주의 영혼을 불러내 학교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든다. ‘분신사바’는 영화로 제작되기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시나리오만으로 공포영화 강국 일본에 300만 달러에 수출됐을 뿐 아니라 이후 홍콩과 대만 등 동남아 지역은 물론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에까지 판매됐다. ‘폰’에 이어 미국 직배사인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가 투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는 물론 오는 8월 동남아시아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다. 상영시간 92분. 15세 관람가. ■인형사 버림받은 인형의 복수극 시골 외딴 숲 속 미술관에 네 명의 남녀가 초대된다. 통성명을 끝내고 미술관을 둘러보는 일행. 사람의 모습과 똑같은 인형들을 보며 신기해 하고 있는데 이상한 일들이 하나씩 생겨난다. 인형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게다가 건물 주변에는 빨간 옷의 정체불명 소녀가 맴도는 모습이 목격된다. 영화 속 공포의 도구는 ‘구체관절인형’(球體關節人形·관절이 공 모양으로 된 인형)이다. 갇힌 공간에서 한 명씩 죽어나가는 추리소설식 구성과 어린 시절 버렸던 인형이 사람이 돼 나타난다는 섬뜩함은 공포를 전달하기 위해 이 영화가 선택한 두가지 틀이다. 초대받은 사람은 주인공인 조각가 해미(김유미), 인형과 함께 온 내성적인 소설가 영하(옥지영), 여고생 선영(이가영), 사진작가 정기(임형준). 여기에 모델이 되고 싶다며 제발로 찾아온 남자 태승(심형탁)이 합류해 일행은 모두 다섯이 된다. 첫번째 비명은 영하의 입에서 나온다. 분신처럼 아끼던 인형이 갈기갈기 찢긴 채 발견된 것. 그러던 중 인형의 ‘죽음’에 슬퍼하던 영하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불안해 하며 서로 의심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하지만 의문의 살인은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정용기 감독의 장편 데뷔작. 상영시간 89분. ■얼굴없는 미녀 최면속 사랑의 끝은... “인간 참 복잡해… 보면 뭐해, 가슴만 아프지.” 인간이란 것, 정말 복잡하기 그지없다. 영화 ‘얼굴 없는 미녀’ 여주인공 지수(김혜수)와 그녀가 앓고 있는 정신병 ‘경계선 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만 봐도 그렇다. 누군가를 강렬히 사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그녀. 외환 딜러인 남편 민석(윤찬)은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고 있으며 삶은 건조하기만 하다. 남달리 진폭이 큰 변덕이 그녀의 머릿속을 덮쳐오기 시작한 것은 소설을 쓴다며 갑자기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부터다. 마구잡이식으로 자신감을 보이다가 적대감을 드러내고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시도했다가 갑자기 멍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남들이 자신을 버릴 것 같다는 피해의식이다. 2년 전 데뷔작 ‘로드무비’로 평론가들과 (영화를 본)일부 관객의 환호를 받았던 김인식 감독이 두번째 장편영화 ‘얼굴 없는 미녀’로 돌아왔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스타일에 있다. 도입 시퀀스에서 지수의 심리를 묘사한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매혹적인 장면이다. 발작을 일으킨 지수가 남편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것은 석원(김태우)이 종합병원의 정신병동을 그만두기 얼마 전이다. 석원의 전공은 최면치료. 동료의사이던 아내 희선(김난휘)이 의료사고를 저지른 후 자살한 일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병원을 떠난다. 얼마 후 두 사람은 한 대형마트에서 마주친다. 계산대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을 보면 지수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은 듯하다. 지수를 도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석원. 두 사람은 이날 이후 환자와 의사가 아닌 친구 사이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지수에게는 치열했던 옛 사랑에 대한 가슴 아픈 상처가 있다. 최면치료로 지수를 도와주던 석원은 이런 지수의 모습에 점점 빠져들고 결국 최면상태의 지수와 성관계를 갖는다. 두 남녀 주인공의 열연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만 영화는 아쉽게도 관객과 소통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는 듯하다. 극단적인 설정이나 화려한 시각적 테크닉이 그 자체에 머물 뿐 보는 이의 가슴에는 파고들지 못한 것. 6일 개봉. 상영시간104분. 18세 이상 관람가.

씨네경기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쿠르드족 오남매의 가슴 절절한 형제애 여기 한 쿠르드족 소년이 있다. 부모를 잃고 장남으로서 가족을 돌봐야 하는 12살 꼬마 가장 아윱. 어머니는 막내를 낳다 숨졌다. 밀수 길에 나섰던 아버지는 지뢰를 밟고 목숨을 잃었다. 아윱은 학교를 그만두고 돈벌이에 뛰어든다. 하지만 불치병에 시달리는 동생 마디의 약값을 치르고 나면 여동생 아마네에게 공책을 사주기도 빠듯하다. 설상가상으로 동생 마디가 수술을 받지 않으면 몇개월 못가 죽을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나온다. 결국 아윱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등짐을 지고 밀수행렬에 끼어든다. 밀수는 이란과 이라크 국경수비대의 눈을 피해야 하는 것은 물론 밀수꾼을 습격해 물건을 강탈하는 무장괴한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 게다가 사방은 온통 지뢰밭이다. 짐을 나르는 말과 노새조차 억지로 술로 취하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가 앞을 가로막는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이란계 쿠르드족 최초의 영화감독인 바흐만 고바디의 장편 데뷔작이다. 감독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철저한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아끼며 꿋꿋이 살아가는 어린 쿠르드족 다섯 남매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안는다. 스스로를 돌보기도 힘든 어린 나이에 동생을 살리겠다고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는 애처로운 모습은 보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은 이란과 이라크의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국경마을 바네. 감독은 어린아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전쟁이 평범한 쿠르드인의 생활을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란과 이라크, 터키의 접경지대에 흩어져살며 온갖 탄압과 시련을 겪고있는 쿠르드 사람들의 비극적인 현실을 날카롭게 증언한다. 영화는 실화에 기반을 둔, 거의 다큐멘터리나 다름없었던 28분짜리 단편영화 ‘안개 속의 삶’의 주인공이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확장하고 픽션을 가미해 제작됐다. 연기자들은 영화의 무대가 된 산악지대에 사는, 촬영에 들어갈 당시까지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1969년 이란의 고원지대 베인 출신의 쿠르드인. 고등학교졸업 후 라디오와 TV방송 일을 하던 중 영화의 매력에 사로잡혀 수도 테헤란의 영화학교에 진학해 영화에 대한 꿈을 펼쳤다. 키아로스타미와 모흐센 마흐말바프 등 이란의 대표적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연출을 배웠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눈물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감성적인 연출력으로 제53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KING ARTHUR 인간적 고뇌·연민서 갈등 ‘아더 왕’ 내면을 발견하다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영화 ‘킹 아더’(KingArthur)로 23일 한국 관객들을 만났다. ‘카멜롯의 전설’(제리 주커)이나 ‘엑스칼리버’(존 부어만) 등 그동안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판타지와 모험을 바탕으로 한다면 ‘킹 아더’는 이보다 과거의 시간을 살았던 실존 인물들의 기록에 가까워보인다. 시대 배경도 전설보다 1천년 정도 앞선 BC 5세기. 줄거리도 아더왕의 긴 일대기가 아니라 그의 인생 중 한 단면에 집중돼 있으며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은 이미 성장한 아더가 15년간의 군복무를 마칠 무렵이다. 때문에 만약 ‘나쁜 녀석들’ ‘진주만’ ‘아마겟돈’ 등으로 유명한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의 명성이나 여름 블록버스터라는 기대만으로 극장을 찾는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듯하다. 전투 장면은 스케일이 크지만 으레 이런 영화에서 기대되는 장대한 서사는 찾기 어려우며 아더왕이라는 이름에서 기대되는 판타지도 실화라는 틀 속에 묻혀 있다. 영화는 아더라는 한 인간의 야망과 사명감 사이의 고민을 주된 갈등으로 내세우고 있다. 로마의 장교 아더(클라이브 오원)는 랜슬럿(이오안 그루푸드) 등 동료 기사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꿈에 부풀어 있다. 이제 전역증만 받으면 로마의 땅 어디든 무사통과가 가능한 상황. 하지만 모두 전역의 기쁨에 들떠서 술에 취한 어느날 밤, 아더는 제마누스 주교로부터 마지막 임무를 전달받는다. 색슨족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영주 마리우스와 그의 아들 알렉토의 가족을 구해오라는 것. 알렉토는 장차 교황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다른기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결국 임무 수행에 나서는 아더. 일행은 색슨족 일행을 따돌리고 북쪽 마리우스의 성에 도달, 이들과 함께 무사히 남쪽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진짜 고비는 이제부터다. 일행이 머물던 하드리안성을 색슨족이 포위해 오기 시작한 것. 아더는 기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뒤 혼자 색슨족들에 맞서기로 한다. 한국 팬들에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트로이’의 목마보다 엑스칼리버 이야기가 생략된 아더왕의 이야기가 덜 친숙하다는 데 있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도 뻔한 스토리에 개성 없는 대사, 그다지 촘촘하지 못한 줄거리는 흥미를 돋우는 데 실패하고 있다. ‘머나먼 사랑’에서 안젤리나 졸리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클라이브 우웬이 아더역을, ‘러브 액츄얼리’ ‘슈팅 라이크 베컴’ 등에 출연했던 키라 나이틀리가 아더의 연인 기네비어역을 각각 맡았으며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나 ‘태양의 눈물’ 등을 연출한 안톤 후쿠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5세 이상 관람가. ■날으는 돼지 해적 마테오 “이 돼지 녀석들, 소시지를 만들어버릴 테다…” 여름방학을 맞아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 ‘날으는 돼지 해적 마테오’가 24일 개봉한다. 파란색 톤의 밝은 화면과 통통 튀는 느낌의 음악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듯 신이 나며 “이 돼지같은 돼지 녀석”이라는 식으로 돼지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자학적인’ 농담도 유쾌하다. 배경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별 가그플레인. 육지와 바다가 오염돼 모든 종족들은 하늘에 떠 있는 스카이랜드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해적을 꿈꾸는 돼지 비행사 마테오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돼지마을 오잉카. 해적 교과서를 지참하고 멋진 해적이 되려고 하지만 상당히 ‘어설픈’ 돼지들, 슈퍼마켓을 털러갔다 혼이 나고 배달 심부름을 하게 되는 등 ‘자질’이 의심스럽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 일당의 보금자리에 햄혹 왕국의 공주 ‘커틀렛’이 나타난다. 공주는 늑대 해적단 ‘울프비어드’에게 쫓기는 신세. 이들이 노리는 것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공주의 목걸이다. 우여곡절 끝에 목걸이를 빼앗아가는 데 성공한 울프비어드. 공주는 보물이 있는곳을 알려주겠다며 마테오 일행을 꼬시고 일행은 목걸이를 찾아 울프비어드를 향한다.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스토리의 부실’을 보강하기 위해 제작진은 TV시리즈 ‘외계인 알프’의 시나리오 작가 듀에인 카피지와 ‘포켓 몬스터’의 시나리오를 담당한 소노다 히데키 등의 해외 스태프들을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시키는 등 줄거리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전체관람가.

씨네경기

■화씨 9/11 대선을 앞둔 미국 사회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이 22일 국내 개봉한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는 반 부시, 반 이라크 전쟁이라는 정치적 깃발을 높이 치켜올리며, 부시행정부가 저지른 이라크 전쟁의 허상를 낱낱이 고발하고 있어 파병반대운동이 불붙고 있는 국내 여론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영화 제목 ‘화씨 9/11’은 그린 레이 브래들리의 소설 ‘화씨 451’에서 따온 것이다. 소설에서 ‘화씨 451’은 책이 타기 시작하는 온도를 뜻하는데, 마이클 무어 역시 ‘화씨 9/11’을 통해 미국사회가 부시가 교묘한 여론조작을 통해 조장한 테러의 공포속에서 진실이 어떻게 화염에 휩싸여 사라져 버렸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이클 무어는 영화에서 직접 내레이션을 하며 시종일관 부시를 신랄한 독설로 조롱한다. 부도덕하고 오만한데다 머리까지 나쁜 멍청이라고 비아냥댄다. 영화는 부시가 집권한 이후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보여주면서 부시가 얼마나 잘못된 판단과 거짓말로 국민들을 속여왔는지 집중 공격한다. 영화는 치열했던 2000년 미국 대선부터 시작한다.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한 무능한 부시가 플로리다에서 부시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던 앨 고어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백악관 주인이 된 것은 ‘허구의 선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미국선거를 비꼰다. 그리고 나서 부시 일가와 그 측근, 그리고 부시와 가까운 친구들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왕가와 빈 라덴 일가와 개인적으로, 사업적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유착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폭로한다. 이어 2001년 9월11일 뉴욕시간으로 오전 8시 45분 9·11테러가 발발했을 때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한 부시가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았다는 보고를 받고도 동화책을 읽으며 무려 7분 동안이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을 시간의 경과까지 자막으로 삽입하며 놀린다. 영화는 또 9·11테러 직후 미국에 있던 빈 라덴 일가가 FBI의 기초조사 조차 받지않고 백악관의 도움아래 특별기편으로 유유히 미국을 무사히 빠져나간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부시 일가와 빈 라덴 일가의 연관성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미국 의회 의원들이 법안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애국법’을 제정하면서 미국 사회 전체가 테러의 공포에 사로잡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현실을 희화적으로 보여준다.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빈 라덴을 잡지도 못한 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데 이어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와 ‘이라크-알 카에다의 관계’를 명분으로 단 한명의 미국인을 죽이지도, 미국 영토를 공격하지도 않은 주권국가 이라크를 폭격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또 ‘이라크 전쟁은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한다’며 이라크 석유에만 혈안이 된 미국 기업가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분노를 자극한다. 영화는 이라크 전쟁에서 아이를 잃은 한 어머니가 “아들을 살리고 싶다”고 절규하며 “내 아들을 이라크에 보낸 것은 알 카에다가 아니라 미국정부”라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마이클 무어는 누구’ 전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씨 9/11’을 만든 마이클 무어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논픽션 작가. 늘 낡은 운동모자와 티셔츠를 걸치고 나타나는 이 비만의 중년감독은 1954년 미시건주 플린트라는 가난한 마을에서 자동차 공장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때까지 줄곧 종교교육을 받았고, 한때는 성직자가 될 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학교교칙을 둘러싸고 학교당국과 마찰을 빚은 후 18살에 자신이 속한 학군의 교육위원회에 출마해 교육위원으로 당선돼 미국 최연소 선출직 공무원이 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갔으나 학교생활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 그만둔 후 22살에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안 신문인 ‘플린트 보이스’를 설립해 문제의식을 키웠다. 그가 전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미국 고등학교의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다. 그는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부시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외쳐 유명세를 탔다. 이 영화는 2002년 칸 영화제에서 55주년 기념상을 받았으며,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 최우수 해외영화상을 수상하며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드물게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989년 제너럴 모터스사가 자신의 고향 미시건주 플린트에서 자행했던 다운사이징의 파괴적인 결과를 묘사한 ‘로저와 나’를 만들었다. 감독이외에 그는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논픽션 작가이기도 하다. ■살인영화, 실제사건에 영향 미칠까… 연쇄살인범 유씨 집서… ‘공공의 적’ 등 DVD 발견 ‘살인의 추억’이나 ‘공공의 적’처럼 엽기적 살인을 다룬 영화가 실제 사건에 영향을 미칠까? 논란의 여지가 많겠지만, 최근 용의자 유영철씨가 검거된 연쇄살인사건이 ‘서울판 살인의 추억’에 비유되면서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 연쇄살인사건’이 ‘살인의 추억’에 비유되는 것은 오랜 기간 미궁에 빠졌던 사건인데다 살해수법도 엽기적이기 때문이다. 노인 살해사건은 10개월간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으로 자칫하면 화성의 경우처럼 더 오랜 기간 미궁에 빠질 뻔했다. 전기톱을 이용해 시체를 토막낸 뒤 암매장하는 것도 여성의 음부에 과일을 집어넣었던 ‘살인의…’ 이상으로 끔찍하다. 유씨의 집에서 발견된 10여장의 DVD 중 하나인 ‘공공의 적’ 또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노인들을 둔기로 내리쳐 살해하고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살해동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외국영화 가운데 연쇄살인을 다룬 것으로는 ‘머더 바이 넘버’(고등학생들의 연쇄살인), ‘양들의 침묵’(피부가 벗겨진 채 시체가 발견되는 연쇄살인), ‘세븐’(성서의 ‘일곱가지 죄악’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살인사건), ‘키스 더 걸’(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H’(최면을 이용해 계속되는 살인), ‘거울 속으로’(재개장 직전 백화점의 연쇄살인) 등이 연쇄살인을 다뤘으며 최근 개봉작으로는 ‘페이스’(복안을 이용해 지워진 얼굴을 복원)와 ‘거미숲’(시골 숲의 외딴 집에서 발견된 남녀의 시체) 등이 있다. 외국영화 가운데 연쇄살인을 다룬 것으로는 ‘머더 바이 넘버’(고등학생들의 연쇄살인), ‘양들의 침묵’(피부가 벗겨진 채 시체가 발견되는 연쇄살인), ‘세븐’(성서의 ‘일곱가지 죄악’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살인사건), ‘키스 더 걸’(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 등이 있다.국내에서는 ‘H’(최면을 이용해 계속되는 살인), ‘거울 속으로’(재개장 직전 백화점의 연쇄살인) 등이 연쇄살인을 다뤘으며 최근 개봉작으로는 ‘페이스’(복안을 이용해 지워진 얼굴을 복원)와 ‘거미숲’(시골 숲의 외딴 집에서 발견된 남녀의 시체) 등이 있다. 연쇄살인이라는 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룬 이 영화들은 대부분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깔고 있다. ■영화 ‘주홍글씨’ 제작 발표회 톱스타 한석규의 차기작으로 관심을 모으는 스릴러풍 멜러영화 ‘주홍글씨’의 제작발표회가 19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열린 가운데 감독과 배우들이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변혁 감독, 엄지원, 한석규, 이은주, 성현아./연합

씨네경기/하류인생, 트로이, 더블루스-소울 오브 맨

■하류인생 암울한시대 헤쳐간 삼류群像들 ‘국민감독’ 임권택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下流人生)’이 21일 관객에게 선을 보인다. 태흥영화사 대표 이태원과 촬영감독 정일성 등 ‘노장 트리오’가 손을 맞잡은 것은 예전과 다름이 없지만 ‘취화선’과 ‘춘향전’ 등 200∼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던 시대배경은 1960∼1970년대로 현대화됐다. ‘춘향뎐’에서 발탁한 조승우가 주연을 맡은 ‘하류인생’은 도도한 역사의 탁류를 온몸으로 자맥질하며 헤쳐온 한 사나이의 젊은 시절을 그린 것. 한국의 소리와 그림의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되살려냈던 노장의 손길은 한국적 액션을 표현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한국인의 정한(情恨)과 예술혼에 주목하던 눈길은 역사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 사내의 인생으로 옮겨갔다. 이야기는 1957년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시작된다. 고교 3년생 태웅(조승우)은 친구의 복수를 위해 이웃 학교에 찾아가 매서운 주먹 솜씨를 보이나 학교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을 보다 못한 승문(유하준)의 칼을 맞는다. 태웅은 허벅지에 칼을 꽂은채 승문의 집으로 찾아가 승문에게 직접 칼을 뽑으라고 소리치고 이 일을 계기로 승문의 누나 혜옥(김민선)을 만나게 된다. 승문의 아버지 박일원의 국회의원 선거 유세장을 찾았다가 자유당의 사주를 받은 정치깡패가 난입해 아수라장이 되는데 혜옥까지 동대문파 소속의 살모사에게 봉변을 당하자 태웅은 그를 한방에 제압한다. 이 일로 명동파 중간보스로 영입된 태웅. 빚을 받아주는 해결사 노릇을 하며 생계를 잇던 그는 박일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혜옥과 결혼하고 4·19와 5·16으로 깡패조직이 와해됨에 따라 영화업에 뛰어든다. 제작자가 영화에 손을 떼면서 제작을 떠맡게 된 그는 여배우의 잦은 출연 펑크와 제작비 부족 등 온갖 어려움을 뚫고 첫 영화를 완성하나 공연윤리위원회의 가위질로 참담한 실패를 맛본다. 빚더미에 앉은 태웅은 깡패 선배였던 오상필(김학준)을 찾아가 군납 건설업자들의 담합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빼어난 일처리 솜씨로 승승장구하는데 역사의 격랑은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시대배경과 줄거리는 흡사 ‘장군의 아들’과 ‘모래시계’를 합쳐놓은 듯하다. 꼼꼼한 세트와 소품은 ‘시간여행’을 떠나는 즐거움을 준다. 영화 도입부부터 조병옥 대통령 후보의 시국강연을 고지하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이유없는 반항’, ‘마부’, ‘007 위기일발 소련에서의 탈출’, ‘증언’ 등 미도극장에 걸린 간판으로 당시의 흥행작을 짐작할 수 있다.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신중현의 ‘님은 먼 곳에’도 들을 수 있다. 임권택 감독은 미장센(화면 구성)이나 사실 고증만을 위해 역사를 재현한 것은 아니다. 가위와 자를 들고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는 경찰관, 술김에 박정희 대통령을 욕했다는 이유로 택시 운전사의 신고를 받아 ‘빨갱이’로 몰리는 작가, 5·16 주동자들이 내건 ‘혁명 공약’을 다 외우면 훈방해주는 경찰서 등은 야만적이고 폭압적이었던 시대를 고발하는 외침이다. 겹치기 출연으로 제작자의 애를 먹이는 여배우나 공륜 심의에 잘려나간 필름 등임 감독의 뼈저린 경험에서 비롯된 일화들도 등장한다. 영화 곳곳에서 거장의 원숙함이 느껴지나 아쉬움도 발견된다.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수십 개의 에피소드로 토막내면서 특별한 극적 장치 없이 이어가다보니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비친다. 조승우와 김민선은 적역이라고 평가할 만하지만 많은 신인배우들과 조연들의 연기는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튀어보이는 느낌도 준다. ‘하류인생’을 완성하면서 100번째 연출작을 눈앞에 둔 임권택. 한국영화의 기념비가 될 그의 차기작이 어떤 규모로 만들어질지는 이번 영화로 임권택 감독이 여전한 관객 동원력을 입증하느냐에 달려 있다. ■트로이 戰神의 부활 “오~ 브래드” 고대 그리스 시대는 신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시대였다. 그리스 신들은 유독 질투심이 많고 변덕이 심해 인간들은 신전을 지어놓고 모든 일을 빌어야 했다. 호머가 지은 ‘일리아드’에서도 그리스 동맹군과 트로이 간의 전쟁은 신들의 불화가 빚은 일로 그려진다. 황금 사과(세상을 바꾼 네개의 사과 중 두번째)가 여신들의 경쟁심을 유발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장수들의 운명이나 전투의 승패도 모두 신들의 파워 게임에 따라 결정된다. 잠자리에서 어머니로부터 ‘일리아드’를 듣고 자랐다는 독일의 부호 슐리만은 트로이 전쟁의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으리라 믿고 터키에서 발굴에 착수해 트로이 유적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슐리만이 고고학을 통해 신화를 역사로 만들었다면, 미국의 감독 볼프강 페터슨은 문학을 영화화하면서 전설을 생생한 실화로 꾸며냈다. 21일 개봉될 영화 ‘트로이’에서는 신들의 역할이 없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줄리 크리스티)가 아들 아킬레스(브래드 피트)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저승의 강 스틱스에 몸을 적셨으나 붙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이 젖지 않아 유일한 약점이 됐다는그 유명한 일화마저 등장하지 않는다. 신들의 신탁을 믿고 예언을 하는 제사장들은 웃음거리가 되고 이를 따르는 왕과 장수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당시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발칸 반도와 소아시아 반도의 정세를 자막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미케네를 중심으로 동맹을 맺고 있었고 바다 건너 트로이와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그리스 연맹에서 떨어져 나와 트로이와 동맹을 맺는다. 외교사절로 트로이를 찾은 스파르타의 왕자 파리스(올란도 블룸)는 트로이의 왕비 헬레네(다이앤 크루거)와 사랑에 빠져 함께 귀국한다. 격분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브렌든 글리슨)는 미케네의 왕이자 그리스 연맹의 맹주인 형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에게해의 패권을 노리던 아가멤논은 그리스의 모든 도시국가에 동원령을 내린다. 그리스 최고의 영웅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결투, 성을 둘러싼 일진일퇴의 공방전, 전리품으로 얻은 여사제 브리세이스(로즈 번)로 인한 아가멤논과 아킬레스의 불화, 아킬레스의 둘도 없는 친구(영화에서는 사촌) 파트로클루스(가렛 헤드런드)의 화랑관창과도 같은 활약, 오디세우스(숀 빈)의 계략으로 바닷가에 남겨진 거대한 목마 등의 이야기가 ‘일리아드’와 비슷하면서도 때로는 다른 줄기를 만들어내며 흘러간다. 화려한 배역과 함께 관객의 눈을 압도하는 것은 스펙터클한 화면. ‘라이언 일병구하기’의 도입부를 연상시키는 그리스 군의 상륙작전, ‘반지의 제왕’의 재현처럼 느껴지는 트로이 성 앞의 전투 등은 모처럼 서사 액션 블록버스터를 보는 재미를 준다. 2억 달러의 제작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페터슨 감독은 신들의 이야기를 빼놓으면서도 고고학자나 역사학자와도 같은 해석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대신 극적인 재미를 위해 아가멤논의 야욕을 과장하고 아킬레스와 브리세이스의 사랑에 비중을 두어 서사 액션 블록버스터에 휴먼 멜로 드라마 성격을 가미했다. 호머의 서사시에서는 지성과 인내력을 가진 사람으로, 그리스 비극에서는 냉혹하고 교활한 인물로 그려지는 오디세우스의 역할도 주목할 만하다. ■더블루스-소울 오브 맨 블루스 전설 담은 다큐 ‘부에나비스타…’ 빔 벤더스 감독 14일 개봉한 영화 ‘더 블루스-소울 오브 맨’(원제 The Blues-The Soul of A Man)은 우리에게는 ‘베를린 천사의 시’나 ‘파리 텍사스’ 등으로 알려진 독일 감독 빔 벤더스의 신작 다큐멘터리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으로 쿠바 뮤지션들을 조명했던 빔 벤더스 감독은 이번에는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블루스의 전설들을 찾아 나선다. 감독이 스크린을 통해 되살아나게 한 뮤지션은 스킵 제임스, 블라인드 윌리 존슨, J.B. 르누아르. 영화는 이 세 명의 뮤지션들에 대한 기록 영상과 재현화면, 이들 음악을 최근의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엮었다. 스킵 제임스가 세상에 내 놓은 앨범은 한 장뿐. 이후 30여년 만에 병원에서 발견된 그는 극적으로 역사적인 공연에 합류한다. 윌리 존슨은 평생 길거리 공연을 하며 살아갔으며 르누와르는 새로운 세대의 변화를 노래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그들의 노래는 내게 세계를 의미했다. 그 노래들에는 내가 미국에 관해 읽고봤던 그 어떤 책보다, 어떤 영화보다 더 많은 진실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단지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관객에게 블루스의 역사를 맛보게 하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감독은 블루스의 뿌리를 찾아가면서 음악에 깊숙이 묻어있는 인간적 슬픔과 비참한 생활, 고뇌와 절망을 발견하기도 하고 신과 악마, 신성과 불경, 성스러움과 세속적임 사이에 놓인 블루스의 긴장감을 찾기도 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제작을 맡아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이크 피기스 등 7편이 연출한 7편의 다큐멘터리 연작 ‘더 블루스’ 중 한 편으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같은해 미국의 공영방송 PBS를 통해 방송됐다.

씨네경기

■아라한 장풍대작전 “장풍소년 나가신다, 얍!” 전설이 하나 있다. 마루치와 아라치의 경지에 오른 자가 열쇠를 가지고 신성을 띤 제단에 서면 아라한의 경지에 올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는다는 것. 이 열쇠가 악의 무리에게 들어가는 것을 막는 자들이 있으니 바로 일곱 명의 신선, 즉 칠선(七仙)이다. 옛날 같으면 긴 머리에 수염 기르고 높은 산에서 폭포 맞으며 수행을 쌓을 법한 이들이지만 2004년 세상은 여건이 그다지 좋지 않다. 무허가 침술원이나 700 주역풀이 서비스 정도로 생계를 유지할 뿐. 주변에 산이 없으니 편한 대로 건물 옥상에서 수행을 쌓고 TV 진기명기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능을 뽐낼 뿐. 30일 개봉한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제작 좋은 영화)은 코미디와 액션, 로맨스에 화려한 볼거리까지 우리 영화 중에서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종합선물세트형 액션영화다. 도심 속에 고수들이 숨어 산다는 것은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이지만 영화는 캐릭터를 풀어나가는 풍부한 에피소드나 이들이 생활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화면에서 관객들을 압도한다. 테헤란로나 명동, 광화문 같은 도심의 고층빌딩 숲을 누군가가 ‘어색하지 않게’ 날아 다닌다거나 비밀의 제단이 용산에 우직하게 서 있는 전쟁기념관 밑에 숨어 있다는 상상력은 생각만 해도 유쾌하다. 정말 열심히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맞고만 다니는 초보 경찰 상환(류승범). ‘어리버리’ 임무를 수행하던 어느날 상환은 정체 모를 장풍을 맞고 쓰러져 어디론가 옮겨진다. 바로 도심에 숨어 사는 도인들의 집. 장풍은 의진(윤소이)이 쏜 것. 우진은 이들의 리더격인 자운(안성기)의 딸이다. “자네는 마루치가 될 재목이야! 장풍도 가르쳐줄게…” 한심하지만 평범한 인생에 느닷없이 나타난 도인들도 당황스러운데 자신들의 제자가 돼달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거절하던 상환. 하지만 얼마 안가 의진의 미모에 반해, 그리고 진짜 정의로운 경찰이 되기위해 ‘도’를 배우기로 한다. 사실, 상환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엄청난 기가 흐르고 있었던 것. 상환은 의진과 칠선들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무공을 익혀간다. 상환이 밥하고 청소하며 차근차근 무예를 쌓아가던 어느날 청계천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속에 갇혀 있던 노인 한 명이 발견된다. 검은 옷의 이 노인은 바로 강력한 힘을 얻어 세상의 악을 다스리려 하던 강경파 ‘흑운’. 콘크리트는 청계천 복개시 칠선들이 흑운을 가뒀던 봉인이다. 이제 흑운은 세상으로 풀려나고 자운을 비롯한 신선들과 상환은 열쇠를 지키기위해 흑운과 맞선다. 영화의 매력을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주는 코미디에서 발견한다면 이는 상환 역의 류승범이 보여주는 확실한 색깔 덕일 듯하다. 영화의 무술감독이자 흑운 역을 맡은 정두홍의 연기도 전작들보다 한층 안정돼 보이고 도인 역의 연기자들도 유쾌한 웃음을 준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후반부 결투 장면이 잘 짜인 액션을 담고 있음에도 다소 늘어진다는 것.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를 만든 류승완 감독의 세 번째 극장용 장편영화다. 12세 관람가. ■효자동 이발사 송강호 맛깔 연기 ‘또 한번의 감동’ 좀처럼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송강호의 연기, 1960~70년대 근대사와 시대상의 맛깔스러운 재현,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 소시민의 ‘모험담’,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감동…. 올 상반기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관객들의 이런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다. 예전과 같은 패턴이지만 송강호의 코미디 연기는 늘 그랬던 것처럼 유쾌해 보이고 그가 보여주는 감동적 아버지의 모습은 어색하지 않게 코미디와 섞여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자리에 다른 배우를 대입시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그다운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변함없는 송강호의 장점이다. 여기에 억척스러운 경상도 아줌마 민자 역을 맡은 문소리의 연기도 부족한 게 없어 보이고 윤주상이나 정규수, 오달수 등 연극 쪽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마을 사람들 캐릭터도 탄탄하다. 영화의 시작은 사사오입 개헌이 있은 지 몇년 뒤인 1960년. 효자동의 왕씨네 만둣집에는 이발사 한모와 면도사 민자가 실랑이중이다. 민자는 한모의 애를 임신한 지 5개월. 한모가 애를 안 낳겠다는 민자를 설득하는 논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이다. “뱃 속의 애가 다섯 달이 넘으면 낳아야 된다는 얘기야.” 카메라는 이후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등으로 시대 배경을 옮겨가며 한모의 뒤를 따라간다. 그저 나라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일 거라며 3·15 부정선거에 한몫했던 한모. 4·19혁명이 있던 날은 아들 낙안이가 태어난 날이다. 여태까지 평범하지 않던 역사를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모의 인생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것은 5.16 쿠데타가 있은 지 얼마 뒤. 대통령 경호실장의 눈에 든 한모는 이제 대통령의 전용 이발사 생활을 시작한다. 소심한 동네 이발사가 군인 출신 대통령을 대하기는 쉽지 않은 일. 가르마 타기는 얼마나 조심스러우며 면도할 때는 또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는가. 간혹 대통령과 함께 하는 술자리나 가족 동반 식사 자리도 가시방석이다. 전반부에는 캐릭터와 이들이 처한 상황을 중심으로 웃음을 전달하던 영화는 아버지 성한모의 아들 사랑이 강조되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감동과 판타지를 섞어 놓는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런 전환이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갑작스럽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은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다. 감독은 데뷔작에서 자신이 직접 쓴 탄탄한 시나리오를 매끄럽게 화면 위로 풀어내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