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2004 한국영화계 결산.하울의 움직이는 성.서바이빙 크리스마스

해외영화제 품에 안았다 0%에 육박하는 자국영화 점유율,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의 초대박, 세계 3대 영화제의 잇따른 석권 등 올해 한국 영화계는 적어도 외형적으로 국내외에서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해외 수출 총액도 상반기에 이미 지난해 2천500만 달러(약270억원)를 넘어섰다. 하지만, 부쩍 커진 체격에 비해 내실이 없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저예산 제작, 소규모 상영관의 ‘작은 영화’들은 여전히 기지개를 펴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작품들의 ‘대박’ 이후 한해 내내 뚜렷한 화제작이 없었다는 점은 호황 속의 불황이라는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관객 1천만명 시대 ‘빛과 그늘’=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잇따라 전국 1천만명을 돌파하는 등 상반기 호황을 바탕으로 한국 영화의 올 한해 시장 점유율은 58%(IM픽처스 추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1천만명 이상을 동원한 ‘큰 물고기’ 두 편이 휩쓸고 간 한국 영화계는 그다지 뚜렷한 화제작 없이 1년을 보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를 제외하고는 서울 관객 100만명을 넘은 영화는 ‘말죽거리 잔혹사’(102만명) 한 편 뿐이었으며 ‘어린 신부’(서울 88만명), ‘내 머리속의 지우개’(79만명), ‘범죄의 재구성’(78만명), ‘아라한 장풍대작전’(76만 명), ‘귀신이 산다’(75만명),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67만명), ‘효자동 이발사’(66만명), ‘우리형’(66만명), ‘바람의 파이터’(64만명), ‘늑대의 유혹’(61만) 등 ‘중박’규모의 히트작이 이어졌다. ▲해외에서 높아지는 한국 영화 위상= 올해 한국 영화계는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베를린과 베니스, 칸 영화제에서 잇따라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기덕 감독은 ‘사마리아’와 ‘빈 집’으로 각각 베를린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올드보이’(박찬욱)는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또 최고 권위의 애니메이션 축제인 안시 페스티벌에서도 한국 작품 ‘오세암’(성백엽)이 대상을 차지했다. 영화제를 통해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한편 해외 마켓에서도 호조를 띠며 상반기에 이미 3천250만 달러의 해외판매 수익을 거둬들여 올 한해 수출 총액 400만 달러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TV 드라마에서부터 불어닥친 한류 열풍은 일본내에서 배용준, 이병헌, 최지우 같은 스타를 탄생시켰고 ‘태극기 휘날리며’(약 90만명),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약 70만명), ‘실미도’(약 50만명) 등의 히트작을 낳으며 한국 영화의 몸값을 올려놓고 있다. ▲실존인물 소재 영화 제작 붐= 연초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충무로는 실존 인물과 과거의 역사에 눈을 돌렸고 이는 올해 전체를 감도는 가장 뚜렷한 제작 경향이었다. 안중근 의사(도마 안중근), 극진 가라테의 고수 최영의(바람의 파이터), 프로레슬러 역도산(역도산), 원년 프로야구의 ‘패전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슈퍼스타 감사용) 등이 스크린을 통해 다시 태어난 실존 인물들이지만 흥행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드디어 ‘사랑’에 눈을 떴다. 23일 개봉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성 라퓨타’ 등으로 40년 애니메이션 인생을 꽉 채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신작. 이 작품은 지금까지 그의 애니메이션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과 평화’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젠 ‘너’를 지키고 싶다는 사랑의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 18살의 소녀 소피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우연히 꽃미남 마법사 하울을 만난다. 그러나 소피는 그와 함께 한 잠깐의 공중 데이트 때문에 마녀의 마법에 걸리고 쭈글쭈글한 90살의 할머니가 된다. 집을 나온 소피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청소부로 들어간다. 밤마다 상처입은 몸으로 들어오는 하울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키워나가던 소피. 그러던 중 매일 벌어지는 전쟁에 지쳐버린 하울을 위로해주고 하울 대신 국왕을 만나러 간다. 감독이 그려낸 환상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넘어선다. 집과 철근으로 만든 ‘움직이는 성’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자 지친 몸을 달래주고 외로운 사람들을 모두 받아주는 아지트 역할을 해낸다. 불꽃 악마 ‘캘시퍼’와 외발로 통통 뛰어다니는 무대가리 허수아비, 어수룩한 변신을 즐기는 제자 ‘마르클’, 철없는 악마 ‘황야의 마녀’ 등 톡톡 튀는 조연들의 연기도 영화의 완성도에 한 몫을 단단히 한다. 꽃미남 마법사 하울과 할머니가 된 소피, 가장 환상적인 이 둘의 캐릭터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커다란 새로 변신해 잔인하게 적을 해치우는 파괴력을 가진 마법사지만 머리카락 색깔 하나에 하늘이 무너질 듯이 괴로워하는 중증 왕자병 환자인 하울. 동시에 소피의 잠든 모습을 훔쳐보는 로맨틱함을 간직한 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소피는 젊은이의 열정과 할머니의 지혜로움을 모두 갖고 있다. 60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상상력을 갖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처럼 말이다. ‘할머니가 되니 잃을 것이 없어 좋다’거나 ‘이렇게 마음이 평화로운 적이 없다’는 소피의 말에서 ‘나이 듦’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또 마음가짐에 따라 30대, 40대 또는 10대로 돌아가는 소피의 얼굴에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이 둘의 사랑은 따뜻하다. 하울과 소피가 하늘로 훌쩍 날아오른 뒤 하늘을 두발로 걸어다니는 장면에는 비행기 같은 기계의 힘 없이 오직 서로의 팔에 의지해 중력을 거스르는,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하다. 하야오 감독 작품 최초의 키스신도 볼 수 있다. ‘키스신’보다는 ‘뽀뽀신’에 가깝지만 둘의 사랑을 그려내기에는 충분했다.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 관심에서 호감으로, 호감에서 사랑으로 발전시키는 단계가 조금은 서툴러 보인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어떤 것이 될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이 작품으로 그의 애니메이션 세계에 방점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마법을 걸어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그 마법을 푸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니까 말이다. 상영시간 119분. 전체관람가. ■서바이빙 크리스마스 오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하는 ‘서바이빙 크리스마스’(Surviving Christmas)는 크리스마스를 혼자서 보낼 위기에 처한 한부자 싱글 남자가 돈으로 ‘크리스마스用’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애인과 피지로 날아갈 꿈에 부풀었던 드루 래덤(벤 애플렉 분)은 애인이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한다”고 딱지를 놓으면서 졸지에 외로움이 사무치는 신세가 된다. 래덤은 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돌연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찾아가고, 현재 그 집에 살고 있는 가족에게 크리스마스를 가족처럼 보내는 조건으로 25만달러(약 2억6천만원)를 제안한다. 삶의 무게에 치여 이혼 위기에 몰렸던 부부는 이 돈으로 잠시 상처를 봉합하기로 하고 연휴동안 래덤의 부모가 되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한 법. 조금 전까지만해도 능력있고 자신만만한 남자였던 래덤은 엉겨붙을 부모가 생기자 갑자기 유년으로 퇴행한듯, 잇따라 억지스러운 요구를 한다. 불쑥 궁금해졌다. 밴 애플렉은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 가족주의를 설파하자는 의도라면 그는 이미 ‘저지걸’에서 가족의 가치를 역설한 바 있다. 애플렉은 이 영화에서 한발 더 나가 몸을 던지며 가족을 부르짖는다. 블록버스터 스타의 변신이가상하다. 그러나 ‘저지걸’ 출연이 감독 케빈 스미스와의 막역한 친분 때문이었고 영화 역시 저예산영화의 미덕을 어느 정도 발휘했던 것에 비해 이번 ‘서바이빙 크리스마스’는 다소 생뚱맞다. 유년과 가족에 대한 상처를 안은 캐릭터라지만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요란스러운 크리스마스 연휴를 홀로 보내야 하는 공포감은 외로운 싱글들에게 충분히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소재. 그러나 주인공이 돈이 많아서였을까. 영화가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은 땅에 발을 붙이고 있기 보다는 10여㎝ 떠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했나. “참 아이러니다. 난 돈을 쓰면서 끼어들려는 가족을 버리려들다니…”라는 래덤의 대사를 통해 드러난 이 영화의 주제는 살갑다.‘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라는 표어가 사무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설지 궁금하다.

MOVIE/역도산.올겨울 애니메이션.블레이드3

세상을 가졌으나 웃지 못했던…‘슬픈 영웅’ 力道山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잠잠했던 영화계에 15일 ‘역도산’(감독 송해성)이 대박의 꿈을 품고 관객들을 만난다. 한국에는 프로레슬러 김일의 스승 정도로만 알려졌지만 역도산은 일본에서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신화와 같은 존재다. 해성 감독에게 역도산은 여느 영웅들과는 다른 영웅인 듯하다. 전후 일본을 복구하는 데 한몫 단단히 한 영웅, 혹은 결혼반지까지 가짜였던 모사꾼으로 평가가 엇갈리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가 매 순간 너 아니면 내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인물이라는 것. 스스로 밝히고 있듯 감독은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역도산이라는 한 남자의 치열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영화가 영화계 안팎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단지 ‘대단한’ 실존인물을 소재로 택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18㎏이나 몸무게를 불리면서까지 열연을 펼친 명배우 설경구와 국내 영화에는 처음 출연하는 스타급 일본 여배우인 나카타니 미키, ‘파이란’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헤집고 다녔던 송해성 감독의 이름값에 ‘살인의 추억’, ‘말죽거리 잔혹사’, ‘범죄의 재구성’ 등 명가 싸이더스가 제작을 맡았다는 사실은 손가락을 꼽으며 개봉일을 기다리게 만든다. 뻑뻑한 빵을 우유 없이 먹는 듯, 혹은 꽉 막힌 헬스클럽에서 장시간 앞만 보고달리는 것처럼, 영화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에피소드와 바로 한 치 앞이 눈에 보이는 구성으로 지독스럽게 평범한 영웅담을 그려냈다. 다른 무도 영웅들과는 달리 ‘쇼맨십’이 넘치는 인물로 알려졌던 역도산은 이 영화 속에서는 이보다는 잔뜩 눈에 힘을 준 담백한 인물에 가까운 편. 그의 삶도 (작지 않은)큰 실패와 큰 성공만 반복하며 비슷한 종류의 다른 스포츠 영화에서 봐왔던대로 고난과 극복, 성공과 불안의 과정을 그대로 밟아간다. 레슬링 경기 장면도 그다지 스타일 없는 평범한 화면으로 일관하고 역도산(설경구)과 부인 아야(나카타니 미키)의 러브스토리도 그렇게 설득력이 있지 않다. 때는 1963년 일본 도쿄의 밤거리. 거센 빗길을 다급하게 달리는 차 안에는 역도산이 거친 숨을 뿜어내고 있다. 시뻘건 피로 물들어가는 하얀 와이셔츠, 피는 배를 움켜쥔 역도산(설경구)의 손 위로 새어 나온다. 피흘리는 역도산의 모습으로 시작한 영화는 과거인 50년대로 돌아가 세상을 다 가졌지만, 웃지 못했던 이 남자 역도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50년 역도산은 랭킹 3위에 오른 스모 선수다. 순수 일본인이 아니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는 말에 그는 난동을 부리고 결국 스모를 포기한다. 스모밖에 할 게 없었던 역도산. 하루 하루를 술에 취해 보내던 그는 어느날 운명처럼 레슬링을 만난다. 그에게 레슬링은 스모와는 다른 ‘세계’의 스포츠. 역도산은 연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왔듯,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한다. 2년 후, 프로레슬러가 되어 금의환향한 그는 일본에서 프로레슬링 사업을 시작한다. 모두들 반신반의한 상태에서 열린 첫 레슬링 시합. 많은 사람의 우려와 달리시합은 흥행에 성공하고, 전쟁 패배로 실의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은 역도산이 미국선수들을 때려눕히는 광경을 보며 환호를 내지른다. 점점 국민적인 영웅이 되어가는 역도산. 하지만 세상을 다 가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의 삶도 어긋나기 시작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7분. ■올겨울, 애니로 따뜻하게~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관객이라면 이번 겨울은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듯 하다. 따뜻함과 웃음을 전해줄 대작 애니메이션이 줄줄이 개봉하기 때문. 15일 개봉하는 디즈니-픽사의 ‘인크레더블’부터 24일 개봉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24일 개봉하는 톰 행크스 주연의 ‘폴라 익스프레스’, 내년 1월 7일 개봉하는 드림웍스의 ‘샤크’까지. 애니메이션 대국인 일본과 미국의 대표 선수들이 제작한 만큼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다양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인크레더블 =‘토이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의 픽사가 디즈니와 손을 잡고 만든 작품이다. 주인공은 초능력을 가진 미스터 인크레더블. 영웅으로 활약하며 악당을 물리치던 그는 평범하게 살라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보험회사원으로 지루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자신의 초능력이 필요하다는 사람을 만난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기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찰랑대는 등장인물의 머리카락부터 실사 영화에 뒤지지 않는 표현까지 볼거리로 가득하다. 순간의 웃음을 포착해내는 특유의 유머로 영화를 보는 내내 배꼽을 잡게 만든다. 2)폴라 익스프레스=아이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같은 이 작품은 산타를 믿지않는 소년이 북극행 열차인 ‘폴라 익스프레스’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으로, 잘 알려진 반 알스버그의 동화를 원작으로 했다. 실사 배우들의 연기와 표정을 디지털로 잡아내는 새로운 기법 ‘퍼포먼스 캡쳐’를 도입해 한 장면 한 장면이 살아 움직이는 동화책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톰 행크스가 1인 5역을 맡아 열연했다. 3)하울의 움직이는 성=일본에서 연일 흥행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미야자키 하야오표 수공예 애니메이션’인만큼 세밀하게 공들인 흔적과 그만의 상상력으로 꽉 차있다. 19살 소녀 소피는 어느날 마법에 걸려 90살의 노파로 변신한다. 소피는 마법사 하울을 만나고 움직이는 마법의 성에서 모험을 겪는다. 일본 그룹 SMAP의 멤버 기무라 타쿠야가 하울의 목소리 연기를 연기했고 감독의 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음악을 맡았던 히사이시 조도 작업에 참여했다. 4)샤크=‘슈렉’ 시리즈로 애니메이션의 새 장을 연 드림웍스가 갱스터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접목한 작품으로 작은 물고기 오스카와 상어 대부 돈 리노의 한판 승부를 재치있게 담았다. ‘슈렉’에서 봤던 대중문화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가 이 작품에서도 잘 살아있다. 윌 스미스와 로버트 드 니로, 안젤리나 졸리, 르네 젤위거 등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가 참여해 보는 재미뿐 아니라 듣는 재미도 있다. ■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없다’는 속설이 있지만, 최근 수없이 많은 속편들이 제작되면서 예외도 종종 생겨나고 있다. ‘블레이드3’도 그 중 한 편으로 기록될 만한 영화이다. 15일 국내 개봉되는 ‘블레이드3’는 ‘블레이드’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전편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던 ‘블레이드2’ 못지 않은 재미를 준다. 일단 ‘블레이드’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특유의 화려한 액션과 탄탄한 구성이 그대로 살아있다. 이는 ‘블레이드’와 ‘블레이드2’의 시나리오를 썼던 데이빗 S 고이어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덕이 크다. 그는 강력한 액션을 ‘MTV’ 스타일의 화려한 영상에 군더더기 없이 풀어내 감독으로서의 능력도 발휘했다. 이야기 자체는 ‘블레이드’나 ‘블레이드2’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 복잡한 복선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도 없다. 블레이드와 뱀파이어의 대결이라는 ‘간단한’ 설정 외에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간단, 명료하다. 낮에도 돌아다닐수 있는 뱀파이어의 제왕 ‘드레이크’가 등장해 블레이드와 최후의 대결을 벌인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 굳이 철학적 심오함이나 진지한 비장미를 덧칠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무게를 잡으며 멋진 대사를 내뱉을 만한 시점에서 의외의 위트있는 대사로 웃음을 전하기도 한다. 뱀파이어 진영에서 뱀파이어의 제왕을 등장시켰으니, 이에 ‘블레이드’도 홀로 맞서지는 않는다. ‘블레이드’는 오랜 동반자 휘슬러를 잃지만, 그의 딸인 애비게일(제시카 빌)과 한니발 킹(라이언 레이놀즈)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역시 주인공 웨슬리 스나입스의 건재함이 ‘블레이드3’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의 존재는 다른 ‘흡혈귀 액션’ 영화들과 내용상 큰 차이가 없음에도 ‘블레이드3’에 특별함이 느껴지게 한다. 한국인 아내를 둔 할리우드 액션스타 웨슬리 스나입스는 ‘블레이드3’에서 더욱 강하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크로스오버 음반 ‘이생강 추억의 소리’ 발매

대금명인 이생강(67·중요무형문화재 제45회 대금산조 예능보유자) 선생이 크로스오버 음반 ‘이생강 추억의 소리’(신나라)를 내놨다. 해금, 가야금 등 크로스오버 음악도 많이 연주하는 국악기들에 비하면 대금은 좀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선생은 1950년대부터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원조’격이다. 이미 70년대 초에 길옥윤 선생과 국악과 재즈를 접목한 음반을 선보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우리 것만으론 대중에게 어필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크로스오버’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번 음반은 2001년 초 소량 발매됐던 음반 ‘추억’의 수록곡 일부와 새 편곡작품 8곡을 더해 재편집해 만든 것이다. 창작곡인 ‘추억의 소리’를 비롯해 ‘황성옛터’ ‘타향살이’ ‘눈물젖은 두만강’ ‘봉선화’ ‘칠갑산’ ‘오빠생각’ 등 우리 전통가요,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 외국곡까지 13곡이 실려있다. 곡의 성격과 느낌에 따라 악기도 달라진다. 대금뿐 아니라 소금, 단소, 퉁소, 피리, 태평소 등 7가지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명인인 이 선생은 곡의 분위기에 맞춰 악기를 바꿔 녹음하고, 특히 재즈처럼 즉흥성이 있는 서양곡엔 피리를 택해연주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악기는 5음계에 맞춰져 있어 서양음계 연주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렇다고 개량악기를 써 버리면 원래의 구수한 맛이 나질 않습니다. 악기는 본래의 악기를 쓰면서 테크닉으로 음계의 문제를 극복했지요.” 지금까지 내놓은 음반만 해도 400여 종에 달하는 이 선생은 내년 4월쯤엔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인생 60년을 기념하는 공연도 연다고 한다. 그 외의 공연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어디서든 불러만 주면 공연은 한다”라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대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MOVIE/오페라의 유령. 태극기 휘날리며.6월의 뱀

■오페라의 유령 영상·음악·감동의 삼중주 미국 최대의 영화 사이트 IMDB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검색하면 대략 10여 편의 크고 작은 작품들이 소개된다. 영화뿐 아니라 TV시리즈와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만큼 ‘오페라의 유령’ 이야기는 지난 100년 가까이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1911년에 출간된 가스통 르루의 동명의 소설은 이 사이트에 따르면 1916년 독일에서 최초로 영화화됐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1986년 뮤지컬로 만들기 전에도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였던 것. 그러나 ‘오페라의 유령’이 지금처럼 화려한 낭만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웨버의 뮤지컬 덕분이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뮤지컬 영화 ‘오페라의 유령’의 조엘 슈마허 감독 역시 1988년 ‘오페라의 유령’의 뉴욕 초연을 보고 홀딱 반해, 그로부터 장장 16년간 웨버와 머리를 맞대고 영화화를 논의해왔다. 제작국가인 미국보다도 앞서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봉하는 슈마허 버전의 ‘오페라의 유령’은 2시간 23분 동안 관객을 화려한 뮤지컬의 세계로 안내한다. 영화는 지극히 화려하고 비교적 신실하다. 미국에서는 ‘너무 오페라적(TOO OPERATIC)’이라는 평가도 있긴 하지만, 이 영화의 여타 허점은 너무도 감미로운 음악 덕분에 가려진다. 영상과 음악의 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영화는 웨버가 직접 음악 감독을 한 작품답게 그의 뮤지컬 뺨치는 음악성을 과시한다. 물론 배우들의 가창력이 뮤지컬 배우들의 그것보다 모자라기는 하지만, 원체 원곡이 좋아 관람 내내 음악 감상실에 있는 것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영화의 내용은 뮤지컬과 큰 줄기에서는 같다. 1870년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를 무대로 유령처럼 극장을 점령한 정체불명의 남자 팬텀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를 사랑하는 젊은 귀족 라울의 애절한 삼각 사랑 이야기. 크리스틴을 향한 팬텀의 사랑과 음악적 열정이 광기를 띠면서 오페라 하우스는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영화는 여기에 뮤지컬에서는 없었던 팬텀과 라울의 과거를 추가했다. 슈마허와 웨버는 상상력을 신나게 발휘, 무대의 제약을 뛰어넘어 다양한 볼거리에도 신경을 썼다. 슈마허 감독은 ‘배트맨’ 시리즈를 연출한 솜씨를 살려 어두운 조명의 오페라 하우스와 팬텀의 지하 동굴을 특유의 기괴한, 그러나 세련된 분위기로 꾸몄다. 또한 긴장과 스릴, 액션을 한껏 살려 상업성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총제작비는 1억달러(약1천48억원)에 육박했다. 적어도 두 사람 만큼은 이번 작업을 아주 원없이 즐겼음에 틀림없다. 만 18살의 나이에 크리스틴을 맡은 에미 로섬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귀를 사로 잡는다. 뮤지컬 여배우들보다는 가냘프고 깊이가 떨어지긴 하지만 그녀는 착한 소녀의 이미지 그대로 ‘Think of me’ ‘Angel of music’ 등의 곡을 참 어여쁘게 소화했다./연합 ‘투모로우’ ‘미스틱 리버’에 출연한 로섬은 일곱살 때부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노래를 배웠다. 팬텀을 맡은 제라드 버틀러 역시 투박하긴 하지만 애절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크리스틴을 향한 사랑을 고백했다. 그의 목소리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과 함께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영등위 선정 올해의 좋은 영상물‘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영상물에 뽑혔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2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해 비디오, 아케이드 게임, 패키지 게임, 온라인 게임 등 다섯 개 분야에서 좋은 영상물을 발표했다. 패키지 게임 부문에는 ‘마그나카르타:진홍의 성흔’(소프트 맥스)이, 온라인 게임부문에는 ‘마비노기’(넥슨)가 각각 뽑혔다. 아케이드게임 부분에는 레이싱게임 ‘에스에이피티’(유니아나)가 선정됐다. 이밖에 비디오(DVD) 부문에는 코아필름서울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A부터 Z까지’가 뽑혔다. 올해의 좋은 영상물은 매년 영등위가 선정·시상하는 것으로 작품성과 국민 정서 함양에 기여한 콘텐츠에 수여된다. 시상식은 오는 10일 오후 5시 서울 장충동 자유센터 웨딩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6월의 뱀 잠들어 있던 욕망·관능을 깨우다 심리치료센터에서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는 젊고 아름다운 린코는 중년의 샐러리맨과 단둘이 살고 있다. 어느날 그는 ‘남편에겐 비밀’이라고 쓰인 우편물을 받는데 그 안에는 남편 몰래 자위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찍은 사진이 들어 있다. 공포와 수치심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는 그에게 또다시 사진을 담은 봉투가 배달되고 전화가 걸려온다. “사진과 필름을 돌려 받으려면 내 말을 들어!” 장대비가 쏟아지는 토요일 린코는 필름을 돌려받기 위해 짧은 치마를 입고 집을 나선다. 전화로 지시를 받으며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낯선 목소리는 얼굴도 드러내지 않은 채 옷을 하나씩 벗으라고 강요한다. 린코는 자신의 은밀한 모습을 훔쳐보며 부끄러운 행동을 강요하는 스토커에게 불쾌감과 두려움이 앞서지만 한편으로 몸속 깊이 잠들어 있던 욕망과 관능이 살아나면서 묘한 희열을 느낀다.¶평소 전화를 통해 상담 신청자들에게 “용기를 갖고 하고 싶은대로 해보라”고 조언하던 그가 이제는 스토커의 명령에 따라 차마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시도하며 해방감을 맛보는 것이다.¶결벽증이 있는 린코의 남편 시게히코는 어느날 집에서 아내의 모습을 담은 사진한 장을 발견한다. 의혹과 질투에 몸을 떨던 그는 며칠 뒤 아내를 미행하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등장인물과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섹스리스로 살던 남편이 스토커의 명령에 따라 나신으로 춤을 추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흥분해 자위를 한다는 설정은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취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매력은 강렬한 시청각적 이미지에 있다. 카메라 플래시의 섬광은 흑백톤의 거칠고 어두운 화면에 악센트를 주고, 대지를 때리는 빗줄기 소리에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와 셔터 소리가 겹쳐져 긴장을 고조시킨다. 관객도 줄거리에 빠져들기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카메라의 파인더 속으로 얼굴을 들이 밀게 된다. 마치 ‘몰래 카메라’를 찍는 기분으로. 후반부에 등장하는 린코의 전라 모습은 많은 관객을 관음증 환자로 만들고도 남을 만큼 눈부시다. 쓰카모토 신야(44)는 이 영화에서 제작, 연출, 시나리오, 촬영, 편집, 미술 등을 도맡으며 스토커 이구치 역까지 연기했다. 아역배우 출신의 구로사와 아스카(23)는 시나리오를 읽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는 등 철저한 준비로 감독의 마음을 움직여 린코로 낙점된 뒤 판타스포르토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상영시간 77분. 18세 이상 관람가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대학교 영화과 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감독에 선정됐다. 대한민국대학영화제(집행위원장 김창유) 사무국이 전국 51개 영화영상전공 대학재학생 2천300명을 대상으로 지난 달 18~28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고의 감독에 박찬욱 감독이 선정됐으며 최민식과 문소리는 각각 최고의 남녀 배우에 뽑혔다.

MOVIE/영 아담(Young Adam).까불지마.인터뷰-이병헌

■영 아담(Young Adam) 욕망과 운명의 굴레에 갇히다 성행위를 마치고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남과 여. 천장을 향해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젖꼭지에는 파리가 손을 비비며 앉아 있고 비스듬히 여자를 보고 있는 남자의 성기는 초라하게 늘어져 있다. ‘파격적인 성기 노출’ 식의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3일 첫선을 보이는 영화 ‘영 아담’(Young Adam)은 그다지 야하지 않은 영화다. 클로즈업으로 보이는 인물들의 큰 땀구멍이나 겨드랑이에 삐쳐나와 있는 털, 너저분한 침대 시트, 그리 유쾌하지 않는 이미지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데다 성행위라고 해봐야 담배 한대가 다 타기 전에 끝나니 훔쳐보는 즐거움을 느끼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이 영화를 설명하는 것은 후반부 안개가 가득한 강가를 항해하는 바지선(Barge船)의 이미지에 있다. 범인을 쫓지 않는 스릴러며 야하지 않은 에로물인 이 영화를 보다보면 ‘성이란 혹은 인간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규범과 일탈, 도덕과 비도덕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식의 질문에 빠져 마치 안개 속에 있는 듯 혼란스럽지만 인간과 그가 살아가는 삶의 깊은 곳을 엿보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정체 모를 남자 조(이완 맥그리거)가 영국의 한 마을로 흘러 들어온다. 남자가 일자리를 구한 곳은 석유 등의 물건을 나르는 바지선. 배에는 선주이기도 한 여자엘라(틸다 스윈튼)와 그녀의 나이든 남편 레스(피터 뮬란)가 일을 하고 있다. 이 바지선에서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되고 엘라와 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사를 나누는 관계가 된다. 레스의 눈을 피해 서로 정을 통하던 남녀, 점점 과감해지던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남편의 시선조차 무시하기 시작한다. 한편, 어느날 오후 이들 앞에 벌거벗은 젊은 여자의 익사체가 한 구 떠오른다. 타살일까, 아니면 자살일까.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그러던 중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에 검거된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비트 작가(Beat writers; 50년대 반사회적 작가 그룹)인 알렉산더 트로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트래인스포팅’의 이완 맥그리거, ‘올란도’의 틸다 스윈튼이 욕망과 운명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는 남녀주인공을 맡았다. /3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97분. ■까불지마 넘버2 vs 넘버3 3일 개봉하는 영화 ‘까불지마’는 인기시트콤 연기자며 왕년의 액션배우였던 오지명(65)의 감독 데뷔작으로 제작 발표때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다. 주인공 삼인방인 벽돌과 개떡, 삼복으로 변신한 사람은 최불암, 오지명, 노주현 등 세 명의 중견 배우. 여기에 그룹 UN의 김정훈과 ‘청담동 호루라기’로 알려진 방송인 이진성, 신인 연기자 임유진 등이 합세했다. 마치 ‘순풍산부인과’ 같은 시트콤에서처럼 영화의 미덕은 탄탄한 캐릭터에 있다. 벽돌(최불암)은 따뜻함과 의리를 지닌 인물이다. 별명처럼 벽돌같은 묵직함이 장점. 셋 중에서는 가장 철이 들어 보이며 슬픔도 안고 있다. 반면 개떡(오지명)은 단순, 무식, 과격을 콘셉트로 한다. 성격만 ‘개떡’같을 뿐, 기억력, 상황 판단, 참을성 모두 제로에 가깝다. 취미는 ‘삥 뜯기’, 싸움에서는 날렵한 주먹이 강점이다. 셋 중 막내인 삼복(노주현)은 이들 둘 사이의 중간 지점 같은 역이다. 장점은 빠른 상황 파악과 잔머리. 잘생긴 외모가 돋보이며 형들 사이에서 재롱도 ‘좀’ 피우는 편이다. 영화는 벽돌과 개떡의 ‘맞장’ 장면에서 시작된다. 은퇴를 선언한 보스가 넘버2와 넘버3인 두 사람에게 함께 조직을 맡으라고 말한 것이 발단. 두 사람은 강 둔치에서 한판 붙기로 하고 심판으로는 동생 삼복이 나선다. 하지만, 이 틈에 계략을 짜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한참 ‘쫄따구’인 동팔(김학철)이다. 결국 동팔의 음모로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벽돌과 개떡. 감옥 속에서 복수의 칼날을 간지 15년 되던 해 드디어 출소를 하고 삼복은 두부를 사들고 이들을 맞이한다. 15년 묵은 복수를 시작하는 삼인방. 하지만 웬걸, 동팔도 경찰서에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동팔은 이들에게 자신의 딸 은지(임유진)를 보호해주면 거액을 내놓겠다는 새로운 제안을 한다.방송과 영 화계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하지만, 65세 노장 신인 감독의 연출 실력은 어느 정도 될까?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영화는 탄탄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꽤 짜임새 있게 진행이되는 편이다. 웃음과 감동, 볼거리, 여기에 중견 배우들의 망가지는 모습까지 영화는 심심풀이 코미디의 기본은 갖추고 있다. 문제는 감독의 유머가 관객들과 통할지 여부. ‘털어서 나오면 십원에 백대씩’ 혹은 ‘정화조? 성이 정씨인가 보네?’라는 식의 유머가 관객들에게 먹혀들 수 있을까? 배꼽을 쥐기를 바랐었다면 지나친 기대일 듯 싶다./3일 개봉. 상영시간 100분. 15세 이상 관람가. ■인터뷰/‘달콤한 인생’ 뵨사마 이병헌 김지운 감독의 느와르 영화 ‘달콤한 인생’(제작 영화사봄)을 찍고 있는 ‘뵨사마’ 이병헌. 그는 올 하반기 일본에서 사진집 15만부, DVD 10만 세트, 캘린더 10만부를 각각 판매하며 ‘욘사마’에 비견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달콤한 인생’ 잘 진행되고 있나.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찍고 있는 기분이다. 영화의 특성상 내가 95% 정도 등장하니 거의 스태프나 마찬가지다. 현재 75% 진행됐는데, 연말까지 마치는 게 목표다. -얼마전에 한남대교 위에서 촬영했다. ▲어유, 짜릿했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촬영했는데 차량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많았다. 그래서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확실히 불황은 불황인가보다. 막연히 심야의 한남대교에서는 강 양쪽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감상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완전히 암흑이었다. -액션 연기가 많은데 다치지는 않았나. ▲초반에 허리를 잠시 삐끗한 이후에는 괜찮다. (하도 촬영이 고되서) 오히려 촬영이 없을 때 아프다. 나는 촬영장에서 ‘천하무적 김실장’으로 통한다. 극중 내이름이 김선우 실장인데, 10월 초였나 무려 14일간 밤마다 비를 맞는 신을 찍었다. 영화에는 겨우 6~7분 등장하는 신일텐데, 용케 안 쓰러지고 버텼다. 담요를 아무리 갖다줘도 부들부들 추운 상황이었는데 심지어 땅속에까지 묻혔다가 나왔다. -그래도 이 영화에 대단히 애정을 갖고 있다. ▲촬영 끝나면 열심히 공부한 후 방학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보람을 많이 느낀다. -얼마전 도쿄 팬미팅 열기가 대단했다. ▲어린시절 이후에는 축구장이나 야구장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날 행사장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짜 대단하더라. 만석의 축구장에서나 나올법한 함성이었다. -NHK 10시뉴스에도 생방송으로 출연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동시통역의 도움을 받으며 했는데, 독특한 경험이었다. 내가 말을 하려고 하면 곧바로 귀에서 일어로 통역하는 소리가 들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바짝 긴장했다. NHK 10시 뉴스는 90개국으로 나간다고 들었는데, 작은 실수라도 했다간 큰일나겠다 싶었다. 얼른 정신 차리고 이왕 하는 것 차분하고 자신있게 하자고 생각했다.-한류의 거품론이 제기된다. ▲그건 배우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배우는 그저 연기를 열심히 하면된다. 좋은 작품만 계속 나온다면 걱정없다. 결국 가수는 노래로, 배우는 연기로, 감독은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지금 한류가 대단하다고 그것을 지키려고 아등바등한다면, 그것은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것이다. 지금 일본인들이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연연하지 말고 다양성으로 승부해야 한다. 완성도 높은 다양한 작품만이 길이다.

MOVIE/삼사라.노 맨스 랜드.청룡영화제 등서 주·조연상 후보 대거 올라

■삼사라 ‘끝없는 선택의 삶’ 그 끝은…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던 독일·인도·프랑스·이탈리아의 합작영화 ‘삼사라(Samsara)’가 3년여 만에 26일 지각 개봉됐다. 화면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오지 풍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명징하고 구도와 인과응보라는 주제도 뚜렷하지만 오히려 이 점이 영화를 더욱 낯설고 멀게 느껴지도록 만들어 관객과의 만남을 더디게 했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배경은 해발 3천500m의 고원지대인 인도 북부 라다크의 한 마을. 호숫가를 따라 라마교 승려 일행이 길을 가고 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동료 타시가 외부와 출입을 끊은 채 수행중인 토굴. 3년 3개월 3주 3일 동안 일명 면벽(面壁) 무문관(無門關) 수행을 마친 그는 린포체(스승이라는 뜻)로부터 고위 승직을 하사받는다. 5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절에 왔다가 불문(佛門)에 귀의(歸依)한 동자승이 이제는 촉망받는 수도승이 된 것이다. 그러나 동진출가(童眞出家, 어려서 산문에 들어옴)해 고행까지 견뎌낸 몸이지만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을 수 없었던지, 아니면 전생(前生)의 인연을 끊지 못했던지 마을 축제에 내려갔다가 아름다운 처녀 페마에게 한눈에 반한다. 도반(道伴)의 만류도 그를 막지 못했고 여색(女色)을 호랑이나 뱀 본 듯하라는 부처님의 계율도 소용없었다. 페마도 운명처럼 다가온 타시를 거부하지 못한다. 결혼을 약속한 자마양이 있었지만 점쟁이에게 선택을 맡긴다. 환속(還俗)해 페마와 결혼한 타시는 평범한 산골 농부로 변신한다. 아들 카르마를 낳고 오순도순 살며 행복을 맛본다. 저울을 속이는 미곡 중개상 다와를 내쫓고 곡식을 직접 도시에 내다팔아 마을에 높은 소득을 올려주기도 한다. 자연의 변화 말고는 삶의 모습이 별로 달라지지 않는 산골의 일상을 담담히 좇아가다가도 영화 막바지에 이르면 초반부의 굴절 못지 않게 급격한 전환이 기다리고 있다. 초반부에 암시한 영화의 주제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것이다. 영화 제목 ‘삼사라’는 산스크리트 어로 윤회(輪廻)라는 뜻. 아들 이름 카르마는 내세의 응보(應報)를 결정짓는 선악의 소행, 즉 업(業)을 일컫는 말이다. 선불교(禪佛敎)의 공안(公案) 중 하나인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에서 따온 배용균 감독의 영화 제목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처럼 불가(佛家)의 화두(話頭)를 빗대어 제목을 다시 짓는다면 ‘싯다르타가 집을 나간 까닭은’쯤 될까.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어떻게 해야 한 방울의 물이 마르지 않을까’란 질문을 골똘히 생각하며 영화를 보는 것도 나름대로 지루함을 떨칠 수 있는 비결이다. 영화의 매력은 주제보다는 화면에 있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연봉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하늘빛 물을 가득 담은 호수,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고갯길, 자줏빛 승복과 낭랑한 염불 소리, 알곡을 털고 빻는 장면이나 실을 뽑아 피륙을 짜는 모습 등은 한번쯤 이곳을 여행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인도 출신의 판 날린 감독은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고산지대에서 15개국에서 모여든 스태프들과 영화를 찍느라 고행을 거듭해야 했다고 한다. 주인공 역의 숀 쿠는 뮤지컬 배우 출신의 신인이며 미곡상 다와 역의 락파 테링은 인도 남부 방갈로르의 수공예품 가게 주인. 페마를 빼앗기는 자마양 역의 켈상타시와 타시의 도반 소남으로 등장한 자마양 진파도 현지에서 캐스팅한 실제 농부와 라마승이다. 상영시간 138분. 18세 이상 관람가. ■청룡영화제 등서 주·조연상 후보 대거 올라 영화계에서 중견 배우들의 활약이 눈에 띈 한해였던 만큼 이들이 연말 각 영화제에서 결실을 보고 있다. 이달 29일 열리는 제 25회 청룡영화제와 12월 5일 개최되는 제3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에 주·조연상 중견 배우들이 대거 노미네이트되며 영광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원빈, 신하균 주연의 영화 ‘우리형’에서 두 아들의 어머니로 출연한 김해숙은 데뷔 이후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는 이미숙, 김혜수, 전도연, 강혜정과 함께 당당히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청룡영화제에서는 염정아, 엄지원, 추상미와 나란히 여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다. 특히 청룡영화제의 여우조연상에는 김해숙과 함께 ‘인어공주’에서 열연한 고두심도 후보에 올라 중견 배우의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박신양과 화면에 꽉 차는 연기 대결을 펼쳤던 백윤식 역시 주연상과 조연상에 이름을 올렸다. 청룡영화제에서는 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는 박신양을 제치고 주연상 후보에 올라 눈길을 끌고 있다. 대한민국영화대상의 여우조연상 후보는 중견배우들의 기세가 대단함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윤여정과 ‘위대한 유산’의 김수미가 고두심과 함께 세를 형성했다. ‘올드보이’의 윤진서와 ‘거미숲’의 강경헌의 이름이 중견배우들의 그늘에 가렸다. 중견 배우들의 활약은 영화 시나리오가 보다 촘촘해지면서 이들이 주로 맡게 되는 부모 역할이 단순한 부모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 더욱이 백윤식의 경우 작년 ‘지구를 지켜라’와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여지듯 강한 캐릭터로 젊은 톱배우들과 당당히 경쟁을 벌이고 있다. ■노 맨스 랜드 유머와 버무린 ‘잔인한 현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사이의 전장. 한차례 총격전이 치러진 뒤 양 진영의 한복판에 세 명의 군인이 남겨진다. 세르비아 병사가 한 명인데 비해 보스니아 병사는 두 명. 하지만 이 중 보스니아 병사 한 명은 등으로 지뢰를 누른 채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형편이니 일종의 힘의 균형 상태가 유지된다.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영화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 수입 백두대간)는 안보고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진흙 속의 진주 같은 영화다. 가벼운 듯 기발한 말장난과 유머를 유쾌하게 지켜보다 보면 전쟁에 대한 감독의 철학이 느껴지고 조금씩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줄거리를 쫓아가다 보면 전쟁의 참상은 어떤 다큐멘터리 보다더 강한 충격으로 전달된다. ‘노 맨스 랜드’에 고립된 세 명의 군인. 잠시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도 하지만 결국 적일 수밖에 없다. 지뢰 위에 누워있는 보스니아 군인(필립 소바고비치)은 빨리 누군가 지뢰를 제거해 이 억세게 나쁜 운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릴 뿐. 다른 보스니아 남자(브랑코 주리치)가 동료를 구하고 싶은 반면, 세르비아 남자(레네 비토라야츠)는 무조건 탈출만 하면 되니 서로 입장도 다르다. 그러던 중 UN 평화유지군이 사태 해결에 나서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외신들은 특종을 낚기 위해 모여들면서 상황은 더 복잡하게 꼬여간다. 잠시 긴장을 풀고 친교의 시간을 갖지만 제한된 공간 속의 적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 터지면 180도 돌변해 으르렁거릴 뿐. 코미디의 옷을 입고 시치미를 떼던 영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 정도로 잔인한 결론도 준비하고 있다.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98분.

MOVIE/shall we dance?. 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 수퍼사이즈 미

■shall we dance? 그의 생활은 춤과 함께 달라진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영화 ‘쉘 위 댄스?’는 리메이크 영화의 미덕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웬만해서는 원작의 매력을 뛰어넘기 힘든것이 리메이크 영화의 태생적 약점. 그렇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철저한 현지화(때에 따라서는 현대화)가 아닐런지. ‘쉘 위 댄스?’는 1996년 일본 영화 ‘단스오 시마쇼우까’(영어명은 쉘 위 댄스)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이미 검증 받은 시나리오에 리처드 기어, 제니퍼 로페즈라는 인기 배우가 주연을 맡았으니 대단히 매력적인 조합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현지화에 삐거덕거린다. 마치 얌전한 모범생처럼 원작을 부지런히 쫓아가는데만 신경을 썼다. 점프하고 싶은 것을 참고 발만 동동 구르는 격이라고나 할까. 일본 영화에서야 심심하고 정갈한 맛이 미덕이지만, 그것이 할리우드화될 때는 분명 어느 정도의 변신은 따라야 하는 법. 뉴욕에서 20년 간 변호사로 활동하며 부러울 것 없는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클라크. 그러나 삶은 무료하다. 부자들의 유언장을 써주는 일도 이제는 기계적이다. 아내와 영화 한번 보러 가는 것도 어렵다. 그런 그가 퇴근 길에 전철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던 볼룸댄스 학원을 용기 내어 찾는다. 그의 생활은 춤과 함께 달라진다. 물론 단순히 춤 때문만은 아니다. 젊고 아름다운 댄스교사 폴리나의 존재 자체가 설레게 한다. 춤은 등장인물들을 모두 즐겁게 만든다. 초보자들의 열정이 폴리나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하고, 술에 의지하던 원장 미찌도 ‘건전’하게 만든다. 또한 남편이 바람 난줄 알고 긴장했던 비벌리도 결혼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춤을 배우는 사실을 숨겨온 클라크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더 바랄 게 없는데 더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것이 부끄러웠다”며 비벌리에게 고백한다. ‘쉘 위 댄스?’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메마른 인생에 용기내어 기름질을 쳐보자고 조용히 이끄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 자체에 좀 더 기름칠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 ‘웬수’와의 ‘사랑방정식 ’ ‘007’ 시리즈의 피어스 브로스넌과 아카데미 영화제 단골 후보 줄리언 무어가 법정에서 만났다. ‘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원제 Laws of Attraction)’의 주인공은 둘 다잘 나가는 이혼 전문 변호사. 줄리언 무어가 연기하는 오드리 우즈는 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치밀한 논리로 승소율 100%를 자랑하며, 피어스 브로스넌이 배역을 맡은 대니얼 래퍼티는 풍부한 경험에 토대를 둔 예리한 직관으로 불패 신화를 쌓아왔다. 첫 대결은 오드리의 어이없는 완패로 끝난다. 대니얼의 후줄근한 옷차림을 보고만만한 상대를 만났다고 안심하다가 의뢰인의 정신병력을 모르고 지나쳐 보기좋게 한방 먹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워밍업을 위한 오픈 게임. 아일랜드 고성(古城)이 위자료로 걸려있는 록 스타 손 제미슨(마이클 신)과 패션 디자이너 세레나(파커 포지) 부부의 이혼 소송을 두고 자존심을 건 승부를 펼친다.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대던 둘은 아일랜드 고성으로 현지 답사를 갔다가 만나 마을의 전통축제를 함께 즐기며 가까워진다.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술에 잔뜩취해 정신을 잃은 뒤 아침에 깨보니 둘이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 게다가 손가락에 같은 반지가 하나씩 끼워져 있다. 둘은 엉겁결에 부부가 됐다는 사실을 감추기로 하고 뉴욕으로 돌아가 이혼소송변론을 계속한다. 이제는 법정에서의 승부보다는 사랑의 줄다리기 결과가 궁금해진다. 두 배우의 매력을 제쳐놓는다면 호감을 살 만한 요소가 그리 많지 않다. 98년 ‘슬라이딩 도어즈’로 감각적인 재능을 과시한 피터 호위트 감독이 지난해 ‘미스터 빈’(로완 애킨슨)의 원맨쇼에 기댄 ‘쟈니 잉글리시’를 선보인 데 이어 이번에도 주연배우의 후광에 연출력이 빛을 잃은 듯한 작품으로 실망시켰다. ● 수퍼사이즈 미(Super Size Me) 한달동안… 맥도날드만 먹어봐 패스트푸드업체 맥도날드를 정면으로 비판한 영화 ‘수퍼사이즈 미’(Super Size Me)가 12일 개봉한다. 영화가 화제를 낳은 것은 감독이 스스로를 직접 ‘마루타’로 사용해 실험을 했다는 점에 있다. 모건 스펄록 감독은 30일 동안 하루 세 끼를 맥도날드만 먹으면서 자신의 몸에 생기는 변화를 관찰했다. 직접 실험 대상이 된 만큼 영화는 전형적인 ‘미(me) 다큐멘터리’의 형태를 띠고있다. 때문에 영화의 중심에 있는 것은 흔히 다큐멘터리 하면 떠오르는 객관성보다는 감독이 강한 말투로 펼쳐내고 있는 주관적인 주장에 있다. 객관성을 위해 감독이 세워 놓은 기준은 ‘물을 포함해서 카운터에서 주문이 가능한 것만 먹을 수 있다’, ‘권하지 않으면 슈퍼사이즈 메뉴는 시킬 수 없다’, ‘메뉴에 있는 음식은 최소한 한 번은 먹어야 한다’의 세가지. ‘건강한 몸’임을 입증하기위해 두 명의 의사에게 건강 검진을 받았다. 영화 속 카메라는 감독이며 동시에 주연배우인 모건 스펄록의 몸을 하루하루 체크해 나간다. 햄버거에 ‘물려’ 구토를 하는 장면이나 ‘위와 아래’에서 가스를 뿜어내는 것을 보여주는게 실험의 전반부. 중간중간 몸무게 체크나 건강 혹은 체력 점검이 계속되고 날짜는 하루 하루 지나가 30일째를 향한다. 무모해보이는 이 실험은 생각보다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콜레스테롤 수치와 나트륨 수치가 점점 높아지더니 피곤과 두통은 점점 쌓여갔다. 결국은 의사로부터 중단하라는 권고를 받을 지경에 이르렀고 체중은 11㎏ 이상이 늘어났다. 원래 체중을 되찾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14개월이나 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시작됐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방식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다. 이는 영화의 구성이 비교적 단조롭기 때문. 영화는 주인공의 몸상태를 날짜별로 체크해가며 패스트푸드의 해악을 설명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시한부 삶’ 길은정씨 새음반 ‘만파식적’ 발표

“건강한 사람들의 하루는 저한테는 1년이나 마찬가집니다” 암 투병 중인 가수 길은정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음반 ‘만파식적’을 내놓았다. 직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그는 최근 암세포가 골반으로 전이되면서 병원에서도 길어야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신보 출시도 모자라 원음방송(서울 89.7㎒)에서 매일 생방송 ‘길은정의 노래하나 추억둘’을 진행하고 있다. 오른발이 완전히 마비되어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그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인터뷰를 특유의 소녀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담담히 이어나갔다. “매일 아침 병원 통증 클리닉에서 마약성분이 있는 진통제를 맞고 패치를 붙이고 링거를 맞고 방송국에 옵니다. 정신을 놓아버리면 완전히 폐인이 될 것 같아서 방송이라는 마지막 끈을 붙들고 있습니다. 무언가 사람을 만나고 약속을 하고 하는 일이 있어야 하잖아요. 매일 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비명을 지르고 잠도 한숨 못이루고 진통제를 맞을 아침만을 기다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도 너무 많이 맞아서 이젠 잘 듣지도 않네요.” 1996년 직장암과 투병을 시작했던 길은정은 2년 전 노래 시집을 내면서 임파선으로만 전이가 되어서 잘만 관리하면 10~20년까지도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림프와 혈류를 통해 암세포가 뼈 속까지 완전히 침투한 상태라고 한다. 골반과 척추에 전이되면서 오른쪽 다리는 현재 전혀 쓰지 못한다. 병원에서도 수술도 항암 치료도 가망이 없다고 짧으면 3개월 길어도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한번 무너지면 끝장이 날 것 같아서 마지막 끈을 붙들고 있어요. 그렇지만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예요.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게 받아들이고 맞이할 수 있을 것같아요”라고 했다. 오랫동안 자신을 옥죄어 온 병마와 싸워 가면서 평소 해야할 일들을 차근차근 준비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준비도 이미 해놓은 듯했다. “2년전 노래시집 베스트음반을 낼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을 했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 나온 ‘만파식적’ 음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음반은 작년 겨울에 녹음을 했었던 겁니다. ‘나 떠나도 멀리가도 눈물 흘리지 마요. 하늘보고 나를 보고 이 노래를 불러요’라는 가사를 직접 쓴 걸 보면 작년부터 예감을 하고 있었나봐요.” 이 노래는 그가 직접 작사한 ‘이 노래를 불러요’란 곡. 또 최희준의 원곡인 ‘종점’도 생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하는 의미로 해석돼 안타까움을 전한다. 그는 단독 콘서트는 아니지만 많은 팬들을 만날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7일 여의도 KBS홀에서 녹화하는 ‘열린 음악회’의 무대가 그것.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서 왼쪽발로만 지탱하고 기타를 치면서 ‘난 널’이라는 신곡을 부를 예정이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한참 생각하더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죠”라고 수줍어 한 뒤 “뭐랄까 정직한 낭만주의자였다”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MOVIE/내 머리 속의 지우개.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우작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사랑의 기억만은 지워지지 않기를… 깔끔한 정통 멜로 영화가 탄생했다. 오는 5일 개봉하는 톱스타 정우성, 손예진 주연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편지’ ‘접속’ ‘약속’ 등 1990년대 후반 스크린을 평정했던 멜로 영화의 바통을 성공적으로 이어받았다. 이 영화는 드라마, 스타일,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고루 90점을 넘어선다. 최루성이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통속적이지만 그 나름의 신선함이 배어난다. 여기에 스타성은 A+. 상업 멜로 영화로서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마지막 손맛이 다소 부족하다고 해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넌 너무 자신만만해. 인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냐?” 극중 철수(정우성 분)와 수진(손예진 분)이 결국 번갈아 가며 내뱉는 이 대사는 영화의 통속성을 상징한다. 예상대로 사랑은 핑크빛이 아니고 두 배우는 잇따라 눈물 흘리기 경쟁을 펼친다. 철수와 수진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결혼에 골인하지만 수진이 스물일곱 나이에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리면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 그러나 영화는 그러한 뻔함을 불식시킬 만큼 색이 잘 들었다. “내가 대신 다 기억해줄게, 내가 네 기억이고, 영혼이야” 철수가 자신을 떠나려는 수진을 달래며 하는 말. 이 말이 ‘닭살스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전개된, 둘이 사랑을 나누는 과정이 그만큼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유부남 상사와 도망치려다 버림받은 수진이 건설판 일꾼 같은 철수와 사랑에 빠지는 세세한 에피소드와 광고 같은 화면이 차곡차곡 쌓여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멜로영화에서 두 남녀 주인공의 스타일과 연기의 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정우성과 손예진은 같이 있는 모습이 하나의 CF였으며,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서 진짜 서로 사랑에 빠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본 요미우리TV에서 방송한 12부작 드라마 ‘퓨어 소울’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린 여성이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잔인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여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린 할리우드 클래식 ‘러브 스토리’의 전형성을 빗겨간다. 그럼에도 감독은 ‘최루성’이라는 표현을 거부한다. 이재한 감독은 “말초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울음이 메아리지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13살 소녀→‘서른살 킹카’ 꿈 이루다! 13살 소녀들은 꿈꾼다. 멋진 아가씨가 되는 꿈을. 지금은 가슴이 ‘평면’이고 치아에는 보철을 했지만 나도 언젠가는 모델 같은 아가씨가 될 테야. 오는 5일 개봉하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의 여주인공 제나는 아가씨 중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위치에 있는 서른 살을 꿈꾼다. 모든 것을 가진 완벽한 서른 살의 커리어 우먼. 그녀에게 딱 한가지가 없다면? 영화의 원제는 ‘13 going on 30’.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삽입곡 중하나인 ‘16 going on 17’가 문득 떠오르는데, 제나는 나이를 한 살 한 살 차근차근 먹는 것이 아니라 무려 17년이나 건너뛴다. 13살 생일에 소원을 빌었더니 다음날 아침 30살로 깨어나는 것. 소원대로 근사한 서른 살이 된 제나. 과연 그의 삶은 행복할까.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이 주는 뉘앙스는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 그러나 영화는 예상을 뛰어넘어 박자감, 음감이 아주 괜찮은 팝송으로 경쾌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톰 행크스 주연의 ‘빅’과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그리고 마이클 J.폭스 주연의 ‘백 투더 퓨처’의 장점만 모아 만들었다. 성의없는 아류가 될 수도 있었으나 영화는 매력적인 소재들을 대단히 깔끔하게 버무리며 A급 로맨틱 코미디로 재탄생했다. 서른 살이 된 제나에게는 근사한 남자친구와 멋진 직장이 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제나는 13살 때의 단짝 이웃집 소년 매트를 수소문해 찾아간다. 그러나 매트는 지난 17년 간 제나가 안겨준 상처로 가슴앓이를 해왔다. 힘든 일이 있을때마다 매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제나는 결국 약혼녀와의 결혼을 앞둔 매트에게 점점 빠져든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13살 소녀의 유치한 소원에서 출발했지만 그 전개는 지극히 성인의 눈높이에 맞췄다는 것. 소녀의 감성과 순수함을 계속 환기시키며 서른살 어른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달콤하게 그렸다.‘데어데블’의 여전사 제니퍼 가너가 담백한 매력을 과시하고, 무엇보다 로맨틱코미디의 여성 관객들을 사로잡을 남자 주인공 마이클 러팔로가 ‘별볼일 없어 보이는데 멋진’ 남성으로 그려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극중 러팔로는 외양은 평범하나 이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이고 ‘스위트’한 남성이다. ■우작 터키의 낯설은 풍경… 곳곳에 숨은 매력 지난해 5월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우작(Uzac)’이 5일 서울 코엑스아트홀 등에서 뒤늦게 선보인다. ‘우작’이 극장을 쉽게 잡지 못한 까닭은 단지 흥행 가능성이 낮다는 것. 대다수 극장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우작’은 배우들의 얼굴도 낯설고 형식도 생경하며 줄거리 전개도 지루해 보인다. 그러나 칸을 비롯한 많은 영화제의 심사위원들과 유수 언론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만큼 곳곳에 매력이 담겨 있다. 영화는 시골 마을의 들판에서 점으로 시작된 한 사람이 차츰 카메라로 가까이 걸어오는 롱테이크 장면으로 시작된다. 유스프는 일자리를 찾아 이스탄불에 있는 사촌 형에게 가는 길이다. 배경은 바뀌어 사촌형 마흐무트의 집. 사진작가인 그는 아내와 헤어진 뒤 정부와 가끔 정사를 즐기다 유스프가 찾아오자 사생활을 방해받는다. 처음에는 고향 안부도 궁금한 데다 며칠만 있으면 선원으로 취직할 것이라는 기대로 기꺼이 맞아주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일자리를 구할 기미가 보이지도 않고 자신만의 생활 공간에 그가 차지하는 자리가 점점 넓어지자 짜증을 내고 만다. 유스프도 형의 이중적인 태도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유스프와 마흐무트의 갈등은 마흐무트가 회중시계를 둔 곳을 잃어버려 유스프를 의심하면서 폭발하고 만다. 등장인물도 단출하고 줄거리도 단순한 데다 대사마저 거의 없어 지루하게 느껴질 법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의외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촌향도 현상에 따른 공동체 파괴와 구직난 등 터키의 사회상이 잘 드러나 있으며 이슬람 세계답지 않게 성적 관심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대목도 웃음을 자아낸다.

MOVIE/주홍글씨. 이프 온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주홍글씨 결코 벗어날 수 없어...어긋난사랑 그대가는... 트렁크 속에 갇혀 있는 남자. 총을 쏴봐도, 발길질을 해봐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안은 잔뜩 달궈져 땀은 비 오듯 흐르고, 같이 갇혀 있던 여자는 견뎌내기는 도저히 힘들 그런 고백을 쏟아내고 있다. 얼마 안있어 피를 쏟아내기 시작하는 여자. 남자는 발버둥칠수록 피범벅이 될 수밖에 없다. 단편 ‘호모비디오쿠스’와 첫 장편 ‘인터뷰’를 통해 주목받았던 변혁 감독이 두번째 장편 영화 ‘주홍글씨’(제작 엘제이필름)로 29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출연 배우들이나 감독이나 한결같이 얘기하듯 영화는 보기에는 다소 ‘불편한’ 영화다. 인물들은 욕망을 탐닉하며 잘난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이면에는 비밀을 하나씩 담고 있고 결론도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밀은 하나씩 드러나지만 현실은 여전히 몽롱할 뿐. 살인사건을 해결하려하는 남자도, 그의 아내와 정부도 그리고 의심스러운 용의자도 결국 향하고 있는 곳은 패배가 예정된 결말이다. 주변의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기훈(한석규). 사랑스러운 아내 수현(엄지원)과 곧 태어날 아이가 있으며 열정적인 정부 가희(이은주)가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강력계 형사인 그는 훈장을 받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그만큼 성공도 눈에 잡힐 듯하다. 어느날, 그에게 살인사건 한 건이 배당된다. 살해당한 사람은 30대 남자. 살해당한 곳은 자신이 운영하던 사진관이다. 시체는 무언가에 맞은 채 심하게 피를 흘린채로 발견됐고 신고자는 하얗게 얼굴이 질린 미망인 경희(성현아)다. 사건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의자를 체포한 기훈.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건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마침 아내 수현도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가희와 기훈의 관계를 눈치 챈 듯하다. 가희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은 기훈. 가희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지만 그녀에게서 쉽게 빠져나올 수는 없고 상황은 점점 혼란스러워지기만 한다. “항상 장난같이 시작되는 유혹을 왜 피하겠는가”라는 기훈의 욕망에서 “당신은 같이 사는 사람이 견딜수 없어지는 적 없나요?”라고 묻는 경희의 미움까지, 영화 속인물들은 하나같이 일탈을 보이고 있지만 공감하기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다. 후반부 이들 위에 내려 앉는 운명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스터리의 옷이 다 벗겨질 때쯤 반전은 충격보다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촘촘하게 잘 짜인 스릴러나 잘 다듬어진 드라마의 틀도 영화의 장점. 깔끔한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매력적인 편집으로 웰메이드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지만 영화는 인물의 감정을 충실히 지켜내는 데 집중하고 있어 보인다. 이기적이고 나쁘지만 인간적인 기훈의 모습을 보여준 한석규의 연기도 기대를 넘어서고 있으며 세 여배우, 특히 이은주는 지금까지 중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 상영시간 117분. 18세 이상 관람가. ■이프 온리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오는 29일 개봉하는 영화 ‘이프 온리(if only)’. 이별을 피할 수 없는 연인의 애절한 사연이 잔을 채우고 넘쳐 바다를 이룬다. 사랑에 ‘올 인’하는 낭만적인 여자와 사랑과 일을 구분하는 남자. 여자는 늘 자신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불만이다. 남자 역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여자의 태도가 안타깝다. 서로 사랑하지만 표현 방식이 다르다. 그러다 여자가 남자와 레스토랑에서 다투고 나가면서 차사고로 죽는다.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 채 여자를 눈 앞에서 잃은 남자. 만일 시간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프 온리’는 기적처럼 ‘어제’를 다시 얻은 남자가 자신이 이미 경험한(혹은 경험했다고 생각한) 끔찍한 미래를 막기 위해 자신의 여자에게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한 애정공세를 펼치는 이야기다.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이며 왠지 어제가 반복되는 느낌. 게다가 벌어지는 일들이 비슷하기는 하나, 순간순간 주인공의 의지가 개입하면서 그 결말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프 온리’는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 죽음마저 두렵지 않은 사랑을 역설한다. 어차피 사람은, 우리는 죽는다. 그렇다면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너무나 부족한 것 아닌가. 영화는 이렇듯 ‘착한’ 명제를 단 하루의 시간에 가둬놓고 전개하면서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사랑하는 이와 하루의 시간밖에 같이 보낼 수 없다면? “그녀(혹은 그)를 가진 것을 감사하며 사시오. 계산없이 사랑하시오.”(극중 택시 운전사의 말)제니퍼 러브 휴잇은 딱 푸들 강아지 같고, 뉴 페이스인 폴 니콜스는 머시 맬로우 같다. 둘의 연기는 모자람이 없다. 연인들이라면 이들에게 십분 감정 이입을 할듯. 그래도 너무 달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달콤 쌉싸름한’ 러브스토리 29일 개봉하는 로맨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존재감은 올 가을 극장가에서 홍수를 이루는 ‘이래도 안 울래?’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영화 사이에서 영화는 ‘쿨’ 하면서도 슬픈, 달콤쌉싸름한 뒷맛을 남겨준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장애인인 여주인공의 캐릭터.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는 구미코는 장애인 캐릭터의 전형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조제가 느끼는 ‘장애’는 좀더 현실적인 편. 장애의 고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아픔이 드러나는 방식은 당찬 모습을 통해서다. 구미코와 쓰네오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잔잔하게 절제가 돼 있지만 가슴을 시리게 하는 매력을 갖추고 있다. 처음의 설렘과 사랑을 나눌 때의 행복감, 이별의 아픔까지 카메라는 계속 차분함을 유지하지만 관객의 마음은 요동 칠 수밖에 없다. 대학생 쓰네오는 어느날 이른 아침 한 노파의 비명소리와 함께 언덕길에서 달려내려오는 유모차와 마주친다. 이 낡은 유모차에 들어 있던 사람은 어린애가 아닌 다큰 소녀 구미코. 다리가 불편한 소녀를 할머니가 산책시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는 구미코의 유일한 취미는 여기저기서 주워온 책을 읽는 것. 특기는 한번 먹어본 사람이면 다시 먹고싶게 만드는 음식 솜씨다. 서로 친구가 된 뒤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 쓰네오가 부담스러운 구미코의 통보로 두 사람은 잠시 헤어져 있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둘 사이의 사랑의 끈을 다시 이어준다. 영화 속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후반부 두 남녀가 ‘물고기들’을 만나는 장면. 사랑이 절정을 이루는 순간, 국도변의 러브호텔을 찾은 이들의 주변에는 물고기떼들이 맴돌고 있다. 감독은 국내에도 개봉한 ‘환생’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 이누도 잇신. 영화는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소개돼 당시 관객 사이에 ‘요란스러운’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 쓰마부키 사토시는 ‘워터 보이즈’에 출연했던 떠오르는 ‘꽃미남’ 스타. 여주인공 이케와키 치즈루는 이 영화로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배우다. 상영시간 117분. 15세 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