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의 누 조선시대판 살인의 추억 ‘혈(血)의 누(淚)’는 피눈물이다. 피눈물이 난다는 것은 한이 사무친다는 의미. 말할 수 없이 억울할 때, 그 억울함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피눈물이 난다. 조선 후기 한 외딴섬. 종이를 만드는 제지소의 운영으로 번창해가는 이 섬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대단히 참혹한 방식이다. 또 그에 앞서 원인 모를 화재로 조공용 종이가 가득 실린 배가 불타버린다. 한양에서 수사관이 파견된다. ‘과학수사’를 내세우는 냉철한 원규(차승원 분)는 섬을 지배하고 있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그 실체 파악에 나선다. 그 핵심에는 마을 사람들의 묵인하에 억울하게 참형을 당한 한 가족의 사연이 놓여있다. 사극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영화가 대단히 허술해보이기 마련. 캐스팅, 의상, 대사, 로케이션, 미술 등 곳곳에 지뢰가 놓여있다. 그런 면에서 ‘혈의 누’는 합격점을 무난히 넘어선다. ‘스캔들’처럼 미(美)를 탐하지는 않았으나 영화는 나름의 치밀한 고급스러움으로 관객을 정성껏 맞이한다. 여기에 사극과 스릴러의 결합이 별다른 누수 없이 잘 어울렸다. 조선 후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온몸으로 껴안은 영화는 자칫 스릴러에 함몰되기 쉬운 유혹을 떨치고 무게중심을 잘 잡았다. 서서히 균열이 생기는 반상의 질서와 그 사이를 비집고 꿈틀대는 자본주의 사상, 그리고 당시의 ‘마녀사냥’ 구실이 됐던 천주교도 등의 설정이 맞물려 돌아가는 속에 안경, 종이, 도르래 등의 장치가 시대를 흥미롭게 대변한다. 또한 영화는 고전적 액션의 신기원을 열었다. 제지소 내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CG에 기대지 않고 오직 제지소 내 각종 도구와 장치를 이용해 전개된다. 할리우드 영화로 익숙한 부비 트랩의 묘미가 조선 시대 제지소에서 펼쳐지는데 그 재미가 상당하다. 이러한 ‘기본’을 바탕으로 영화는 원규 캐릭터의 변화를 심도있게 포착했다. 김대승 감독은 원규의 공명심과 자부심이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수치심과 배신감으로 변하는 과정을 세밀화를 그리듯 표현했다. 이 과정에서 차승원은 기존의 코믹한 이미지에서 나오는 선입견을 보란 듯 깨버린다. 그는 시종 묵직한 톤으로 원규 캐릭터를 끌어나갔고 성공적으로 정극에 안착했다. 차승원의 이러한 변화는 영화를 보는 대단히 중요한 재미다. 자신을 정상으로 이끈 이미지를 정면으로 배반하기란 스타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 웬만큼해도 본전을 하기 힘들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그를 원규 역에 캐스팅한 좋은영화사의 안목과 용기도 높이 평가된다. 5월 4일 개봉, 18세이상관람가. ■밀리언즈 돈벼락 맞으면 뭐할거니?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 돈을 쓸 수 있는 기간은 열흘 뿐이다. 그렇다면 뭘 해야할까. 현대인들에게 이보다 더 즐거운 고민은 없을 것이다. ‘밀리언즈’는 유로화 통합에 관한 가장 깜찍하고 예쁜 이야기다. 돈다발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소재에 천진무구한 동심을 버무리고, 양념으로 엄마 잃은 아이의 보편적인 슬픔을 가미한 영화는 귀여운 동화로 탄생했다. 할리우드식 동화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도 눈여겨볼만 하다. 영국의 한 소도시. 기찻길 옆에 빈 박스를 쌓아놓고 그 안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7살 꼬마 데미안의 머리 위로 검정색 가방이 뚝 떨어진다. 누군가가 기차에서 집어 던진 가방 안에는 파운드화가 가득 들어있다. 9살 형 안소니는 “절대 아빠한테도 말하지 말고 신고도 하지마. 세금이 40%란 말이야”라며 둘이서 이 돈을 쓸 궁리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파운드화가 열흘 후면 유로화로 통합되는 것. 은행에서 환전을 하지 않는 한 열흘 후면 이 돈을 쓸 수 없는데, 꼬마들이 무슨 수로 은행에서 환전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신나게 쓰는 수밖에. 물론 이는 가상의 설정. 영국은 아직도 꿋꿋하게 파운드화를 쓰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 꼬마들처럼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 신나는 씀씀이는 현실에서 경험하기 힘들다. ‘28일후’ ‘트레인스포팅’ ‘비치’ 등에서 독특한 감각을 뽐낸 대니 보일 다운 설정이다. 감독은 돈다발 이전에 형제의 엄마를 하늘로 보냈다. 어린 데미안에게 사람들은 “엄마는 착한 일을 많이 해서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했을 것이고, 이 때문에 데미안은 유독 죽은 성자와 성녀의 이야기에 집착한다. 대니 보일의 괴짜 기질은 이 부분에서 도드라진다. 데미안의 상상을 통해 “하늘에서는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라며 담배를 피우는 성녀, 참수형 자국이 목에 그대로 남아있는 성자, 데미안 대신 학교 연극에서 목소리 연기를 해주는 성자 등을 등장시키는 것. 데미안은 이들을 만날 때마다 “하늘에서 우리 엄마 봤어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묻는다.두 형제의 180도 다른 돈 씀씀이도 흥미롭다. 어른처럼 세금과 부동산을 운운하는 안소니는 아이들에게 돈을 뿌리며 사람 부리는 재미에 빠진다. 반면 데미안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가난하세요(Are you poor)?”라고 물으며 그들을 돕기에 분주하다. 감독은 어른의 축소판인 이들을 대비시키며 돈에 대한 인간사 백태를 살짝 풍자했다. 청빈함을 내세운 몰몬교도들이 데미안이 몰래 기부한 돈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의 가전제품을 사들인 것이 그중 압권. 대니 보일은 지금까지와 달리 동화 속 예쁜 집 한채를 짓는 느낌으로 화면을 밝고 따뜻한 파스텔톤으로 유지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죽은 엄마를 되돌릴 수 없다는 뻔한 메시지를 나름의 감각으로 포장한 솜씨도 괜찮다. 그러나 아쉽다. 좀더 발칙하고 좀더 깜찍하기를 기대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5월 5일 개봉, 전체관람가. ■킹덤 오브 헤븐 ‘서민적 영웅’ 모험담 땅을 둘러싼 국가간의, 그것도 두 문화권이 충돌하는 곳에서의 분쟁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 뭉치처럼 풀어헤치기가 쉽지 않다. 화약고 중동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슬람 문화권과 기독교 문화권이 각자의 성지를 가졌으며 역사적으로 지배를 번갈아 해온 이 지역의 전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걸려있으며 스스로의 국가를 갖고자 하는 욕망이 얽혀있으니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잘 살아보자는 식의 장밋빛 꿈은 어쩌면 영화에서나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외화 중에서는 한동안 눈에 띄는 기대작이 없던 극장가에 할리우드 대작 ‘킹덤 오브 헤븐’이 5월 4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주인공은 떠오르는 스타 올랜도 블룸(‘반지의 제왕’, ‘트로이’)인데다 그의 뒤는 리암 니슨, 에드워드 노튼, 제레미 아이언스 같은 든든한 명배우가 받쳐주고 있다. 감독은 ‘글래디에이터’로 역사 대작 연출의 재능을 인정받았고 ‘블랙호크다운’으로 미국적 시각에서 벗어났다는 호평을 받았던 리들리 스콧. 영화는 오래간만에 괜찮은 대작을 기대하는 관객들의 발길을 잡아끌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여기의 중심이 되는 전투 장면은 바로 눈 앞에서 칼날이 휘둘리는 듯, 모래 먼지가 눈앞으로 튀는 듯, 사실감이 넘쳐나니 일단 이 영화가 볼거리라는 블록버스터의 미덕은 갖추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젊은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은 아이와 부인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다. 아내를 땅에 묻은 날 그를 찾아온 사람은 십자군 기사 고프리(리암 니슨). ‘내가 너의 아버지’라고 발리안에게 고백하는 고프리는 함께 자신이 영주로 있는 땅으로 떠날 것을 제안한다. 고민하던 중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발리안은 결국 고프리와 함께 가기로 하고 두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먼 길을 떠나게 된다. 동행 중 발리안은 아버지 고프리에게 검술을 배우며 전사로 거듭나지만 미처 예루살렘에 도달하기 전에 고프리는 세상을 떠나고야 만다.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 예루살렘에 당도하는 발리안. 이 곳은 국왕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튼)의 선정으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평화가 지켜지고 있지만 분쟁을 원하는 무리들 때문에 전쟁의 위협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발리안은 용맹함으로 왕의 신임을 받게 되고 아름다운 공주 시빌라(에바 그린)와 사랑에 빠지지만 상황은 그렇게 좋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평화주의자 왕의 목숨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며 공주의 남편은 악명 높은 기사 기 드 루지앵(마튼 소카슨)이다. ‘서민적 영웅’이라는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올랜도 블룸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펼치는 모험담에 전투 장면의 볼거리와 로맨스, 비장함이 적절히 섞여 있으니 영화는 괜찮은 대작이라는 호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다면, 주인공이 살생을 싫어하게 되는 동기나 살인을 피하고자 왕위를 거절한 그가 결국은 수많은 적들에게 칼질을 하게되는 과정은 설득력이 약해보인다. 두 문화권이 서로를 존중하며 ‘천국의 왕국’을 만들어보자는 식의 흔한 결론도 할리우드영화치고는 전향적이지만 블록버스터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은 쉬운 결론이다.상영시간 137분. 15세 관람가.
■댄서의 순정 영화 ‘댄서의 순정’은 순수하고 싱그러운 문근영의 캐릭터에 모든 것을 의지한 영화다. 전국 310만명을 모은 ‘어린신부’의 영광에 다시 한번 도전한 작품. 제작진의 선택은 이번에도 주효했다. 옌볜처녀 춤바람 났네 문근영은 여전히 예쁘고, 아니 더 예뻐졌고 더 착해졌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그게 너무나 매력적이다. 영화의 존재 이유가 살아나는 순간이다. ‘댄서의 순정’은 관객의 순정에 호소하는 영화다. 문근영의 순정은 남녀노소에게 일체 거부감 없이 스며든다. 거부감은 커녕 문근영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무장해제당한 관객은 저 밑에 가라앉아 흔적을 찾기 어려웠던 순정을 잽싸게 꺼내들게 된다. 관객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너그러운 관람의 자세를 취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옌볜처녀 장채린(문근영 분)이 위장결혼을 통해 서울에 온다. 스포츠댄서인 나영새(박건형 분)와 짝을 맞춰 댄스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곡절 끝에 ‘조선자치주댄스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언니 장채민을 대신해 온 채린은 춤을 전혀 못춘다. 파트너가 뒤바뀐 사실에 기막힌 영새는 그런 채린을 외면할까 하다 결국 훈련시켜 같이 댄스 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노래방에서 ‘난 사랑을 아직 몰라’를 멋대로 열창하던 ‘어린신부’가 이번에는 등려군의 ‘야래향’을 그럴 듯하게 소화하고 삼바춤까지 춘다. 2년 사이 키가 3㎝ 자라 165㎝가 된 문근영은 기존의 이미지를 깨고 꽤 날렵하게 삼바를 소화한다. 골반을 리드미컬하게 흔들고 빠른 스텝을 밟는 그의 모습은 분명 신선한 볼거리. 어여쁜 모습만으로도 만족하겠는데 어른이 되는 중간 과정에서 단련된 춤까지 선사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댄서의 순정’은 문근영이 중국어와 춤 연습에 흘린 땀방울만큼 ‘어린신부’ 보다 업그레이드된 영화다. 여전히 순정만화의 눈높이에 머물고 있지만 그 황당무계함은 ‘어린신부’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여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키치적 유머도 밉지 않고 완성도를 떠나 기승전결이 또렷하다. 이만하면 오락 영화로서의 정체성은 명확한 것으로 보여진다. ■모래와 안개의 집 화려한 결혼식장. 젊은 남녀가 하객의 축복 속에 식을 올리고 있고 신부의 아버지 매수드 아미르 베라니(벤 킹슬리)가 마이크를 든다. 한때 조국 이란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던 그가 이곳 미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어느 정도 부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추측밖에. 겉보기에는 성공한 이민자 같지만, 매수드의 실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직업은 고속도로 공사장의 막노동꾼, 고급 아파트에 사는 부유한 이민자처럼 보이지만 공사장의 작업복을 고급 정장으로 갈아입은 뒤의 얘기다. 낡아 보이지만,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 침대에 누워 아침을 맞는 캐시 니콜로(제니퍼 코넬리)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하다. 바쁜 사람이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고, 청소를 안해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아늑한 집이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와 모래처럼, 그녀의 삶도 위태로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남편에게 버림받은 처지, 알코올 중독자에서 벗어나 힙겹게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뒤뚱거리며 삶이라는 힘겨운 길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일 때문에 서로 얽히기 시작한다. 캐시는 세무당국의 실수로 집이 경매로 내 놓이는 처지에 처하고 매수드는 이 집을 싼 값에 구입한다. 캐시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유산이며 유일하게 자신이 기댈 곳인 이 집을 그것도 자신의 잘못도 없는데 빼앗길 수는 없는 일. 집을 비싼 값에 되팔 생각인 매수드도 이 집은 막내아들의 학자금이 될, 그래서 넘겨줄 수 없는 밑천이다. ‘모래와 안개의 집’(29일 개봉)이 그리는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들이다. 세상은 답답하게 막혀 있을 뿐, 비극적인 결말은 삶에서 이미 예정돼 있던 듯하며 힘겹게 절망을 극복해봤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괴로움이다. 인간의 의지라는 게, 순진하게 꿈꿔보는 희망이라는 게 작은 의미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 사이의 얽힘은 경찰관 레스터(론 엘다드)의 등장으로 더 꼬여만 간다. 캐시를 돕던 그가 잘못한 것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 부인과 자식을 버린 그는 경찰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매수드를 위협하며 가정과 직업이라는 그동안의 규범을 벗어던진다. 점점 복잡해지던 상황은 캐시가 총을 들고 매수드의 집으로 향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트리플X2:넥스트 레벨 리 타마호리 감독은 역시 파워풀하다. 이 영화의 감독이 그리는 것을 알고보면 “과연~”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사의 후예’에서 보여준 가공하지 않은 폭력성은 ‘007어나더데이’에서 자본과 반갑게 악수를 했고 결국 ‘트리플X2:넥스트 레벨’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거린다. 그는 그야말로 마음껏 때려부수고 폭파했다. 3년 만에 등장한 ‘트리플X’의 속편은 감독과 함께 주인공까지 바꿨다. 전편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빈 디젤은 개런티에 불만이 있었던지 속편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극중에서는 그가 죽은 것으로 처리됐다. 영화는 그토록 뛰어난 비밀 요원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한채 새로운 요원을 선보인다. 랩 가수와 배우를 오가며 활동하는 흑인 스타 아이스 큐브(36)다. 아이스 큐브의 발탁은 인권영화가 아님에도 흑인 주인공을 내세우는데 대단히 개방적으로 변한 할리우드의 최근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는 흑인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이 과거에 비해 놀랄만큼 편해졌다는 얘기. 동시에 흑인주인공은 미국 내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에도 부합한다. 더구나 아이스 큐브가 윌 스미스나 덴젤 워싱턴처럼 잘 빠진 흑인스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 더욱 눈길을 끈다. 그야말로 ‘B급 흑인 배우’의 등용인 것. 그러나 이 같은 제작진의 개방적인 사고와는 별개로 영화는 주인공에 의존하지 않는 영리함을 보였다. 소도둑처럼 생긴 큐브의 액션 연기는 굼뜨고 투박하다. 빠른 발차기나 총쏘기, 고공 다이빙 대신 도끼로 장작을 패야할 것처럼 생겼으니 그에게는 도무지 ‘스타일’이 안 나온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인지 영화는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을 못차릴만큼 격렬하게 요동친다. 주인공에게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며 여기저기서 터뜨리고 때리고 부순다. 전편이 익스트림 스포츠의 재미를 줬다면, 이번에는 탱크와 각종 첨단 무기를 미국 수도 워싱턴으로 끌고 와 ‘불꽃놀이’를 벌였다. 여기에 자동차 마니아들의 혼을 쏙 빼놓을 근사하게 빠진 명차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29일 개봉, 12세 관람가.
■역전의 명수 ‘역전(逆戰) 야구’로 유명한 군산상고의 고장 군산. 이곳 역 앞에는 명수라는 ‘양아치’ 녀석이 있다. 학교는 이미 중학교 때 깨끗이 정리했지만 ‘주먹’ 실력 하나는 꽤나 쓸 만한 편. 역전을 주름잡는 이 친구의 별명은 바로 ‘역전의 명수’다. 공부 잘하는 인재들만 모인다는 서울대학교. 이곳에는 수재 현수가 있다. 역전에 ‘양아치’ 떴다 커트라인 높다는 법대에 수석입학한 터라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은 이 친구에게는 ‘필수과제’처럼 보인다. 군산지역 최고의 수재로 이름을 날리던 현수의 미래는 꽤 밝아보인다. 똑 닮은 외모에 같은 지역 출신인 두 사람은 사실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형제다. 그것도 명수가 2분 17초 먼저 태어난 쌍둥이. 둘의 미래가 확연히 달라보이는 것은 이 집안의 가훈과 어머니의 자식 교육방침 때문이다. 집안의 가훈은 ‘여자 말을 잘 듣자’며 어머니의 교육 방침은 ‘잘될 놈에게 몰아주자’니, 현수의 미래가 밝은 만큼 명수의 미래는 그저 암울할 뿐이다. 정준호의 1인2역 연기와 ‘쥑이는’ 제목으로 관심을 끌었던 영화 ‘역전의 명수’(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가 15일 개봉했다. 15자 내외로 설명될 만한 ‘콤팩트’한 줄거리와 그 내용이 모두 담겨 있는 듯한 ‘쌈빡한’ 제목, 출연작마다 어느 정도 이상의 흥행은 해주는 배우 정준호가 모였으니 일단 잘 짜여진 ‘기획 영화’의 요소는 모두 갖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아쉽게도 짜릿한 홈런 레이스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 지루한 투수전 같은 지지부진한 재미만을 선사한다. 정준호가 연기하는 두 캐릭터의 대비도 그다지 명확하지 않은 편이며 뻔히 다음 장면이 예상되는 줄거리도 힘이 빠져 있다. 영화가 관객을 끄는 부분은 풍부한 조연진에 있다. 명수가 입소하는 교도소의 막내로 ‘변신’한 조형기나 파출소장 역의 임현식이 보여주는 애드리브와 ‘공공의 적2’의 박상욱, ‘말죽거리 잔혹사’의 박효준 등 탄탄한 조연급 연기자들의 모습은 ‘잔재미’를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신인 박흥식 감독의 데뷔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향하는 현수의 여자 문제를 뒤처리하며 시작된 명수의 대타 인생은 2년 뒤 대신 군에 입대하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2년여의 해병대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현수는 다시 현수 대신 교도소 생활까지 하게되고, 명수의 인생은 꼬여만 간다. 그 동안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법조인의 생활을 시작한 현수의 앞에는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다. 드디어 출소 날, 그의 눈앞에 뜻밖에 미모의 여인 순희(윤소이)가 나타난다. 순희는 명수의 전 여자친구. 사회부 기자인 그녀는 명수를 이용해 부모의 원수를 갚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순희의 제안은 은행을 털자는 것. 구체적인 계획에 총까지 준비해 놓았으니 여로모로 당황되는 상황이다. 결국 순희의 꼬임에 넘어간 명수는 정계와 재계의 비리가 연루된 복잡한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15세 이상 관람가. ■인터프리터 UN통역관이 뭔 죄? ‘위험’하기에 더 매력적인 얼마 전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직후 미숙한 통역이 도마에 올랐다. 그러니 UN 회의장에서 일하는 통역관의 스트레스는 어떨까. 첨예한 국제 문제들을 요리하는 현장에서 단어 한번 잘못 옮겼다가는 커다란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죽다’를 ‘사라지다’로 통역하면 바로 해고된다”는 극중 대사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일 터. 반면 그렇게 ‘위험’하기 때문에 매력적이기도 하다. ‘인터프리터’는 제목 그대로 통역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프리카 태생의 UN 통역사 실비아(니콜 키드먼)는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에 희귀한 아프리카 언어인 ‘쿠어’까지 구사한다. 그는 우연히 불꺼진 회의장에 들어갔다가 아프리카지도자의 암살을 모의하는 쿠어 대화를 엿듣는다. 현장에서 곧바로 도망쳤지만 그날이후 그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얼굴을 못봤지만 말을 알아들었다는 죄다. 서구 미인의 전형인 니콜 키드먼이 아프리카 내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메릴 스트립과는 또 다르다. 스트립은 아프리카를 즐겼지만 키드먼은 아프리카를 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실비아가 한때 손에 총까지 들었고, 흑인 반군 지도자와 사랑을 나누기도 했던 사실은 많은 대사와 몇 장의 사진을 통해 보여질 뿐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의 첫 스릴러라서 그럴까. 참 생뚱맞고 어설프다. 22일 개봉, 12세 관람가. ■칸, 누구를 선택? 지난해 ‘올드보이’의 영광이 올해도 계속 이어질까? 다음달 11~22일 열리는 제58회 칸 영화제에 어떤 작품이 초청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한국 영화는 지난해 ‘올드보이’(칸 영화제)와 ‘빈 집’(베니스 영화제)이 잇따라 주요 영화제에서 큰 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어서 올해 칸 영화제에서도 수상에 대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현재 출품이 확정된 작품은 감독주간에 초청된 ‘주먹이 운다’(감독 류승완)와 ‘그때 그사람들’(임상수) 등 두 편. 초청작 공식 발표가 예정된 20일에 정확한 목록이 나오겠지만 이들 작품들을 포함해 일단 5~6편의 한국 영화가 초청작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영화제 소식에 밝은 한 국내 영화인에 따르면 경쟁부문에는 김기덕 감독의 신작 ‘활’의 초청이 유력한 가운데 ‘극장전’(홍상수)과 ‘달콤한 인생’(김지운)도 후보에 거론되고 있다. 이밖에 한국 영화사 두필름이 제작하고 중국 감독 장률이 메가폰을 잡은 ‘망종’과 ‘태풍태양’(정재은)도 경쟁 혹은 비경쟁 부문에 초청될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인은 “일단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이들 작품 외에도 단편 영화도 다수 초청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앞서 스크린데일리 인터내셔널도 런던발 기사에서 ‘활’과 ‘태풍태양’, ‘극장전’이 공식 초청작으로 유력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기대를 모았던 ‘친절한 금자씨’(박찬욱)는 영화제 개막 때까지 완성이 어렵다는 점에서 출품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후보에 거론되고 있지만 ‘극장전’도 후반작업이 늦어져 8월 개최 예정인 베니스 쪽 출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칸 영화제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최종판인 ‘스타워즈-시스의 복수’(Starwars-Revenge of the Sith)가 개막작 혹은 공식 비경쟁부문 초청이 기대되는 가운데 ‘쿵푸허슬’(저우싱츠), ‘신 시티’(프랭크 밀러,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라스트데이즈’(구스 반 산트) 등이 초청될 것으로 보인다. ■배우 김정은<사진>과 이범수가 코믹 영화 ‘요원의 수기’에서 호흡을 맞춘다. 이 영화는 산아제한 정책이 펼쳐지던 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정은은 가가호호를 방문해 자녀 수를 체크하는 공무원. 이범수는 그런 김정은의 눈을 따돌리는 가장 역이다.
■WHITE NOISE 우리가 모르는 게 여기 또 한가지 있다. 바로 죽는다는 것.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죽은 사람이 되돌아 올 수 없는지, 그리고 죽은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는 짐작을 하거나 믿을 수는 있어도 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백색 공포’ 속으로… 8일 개봉한 영화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의 남자 주인공 조나단(마이클 키튼)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아내 안나(찬드라 웨스트)의 임신 소식을 듣고 백합과 초콜릿을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조나단. 하지만 아내는 늦게 돌아올 것이라는 음성메시지만 남겨둔 채 외출 중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내는 나타나지 않고 결국은 해변 도로에 차만 남겨둔 채 사라졌다는 소식을 통보받는다. 한 주, 두 주 실종 기간이 늘어가는 가운데, 어느날 레이몬드(이안 맥니스)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찾아온다. 죽은 안나의 메시지를 전하러 왔다는 게 그의 주장. 남자에게 면박을 주고 되돌려보내지만 얼마 후 안나의 시체가 발견되고 죽은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는 등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화려한 스펙터클이나 특유의 잔인함을 없지만 ‘화이트 노이즈’는 대신 영리함과 소름끼치는 무서움을 담고 있는 공포 영화다. 공포의 매개체는 비디오와 TV 화면 속에 흐르는 ‘찌지직거림’(노이즈)이다. 다시 레이몬드를 찾아간 조나단은 TV 화면과 VTR을 이용해 죽은 사람과 교신하는 방법인 EVP(Electronic Voice Phenomenon)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다. EVP는 죽은사람의 목소리와 모습을 보기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수십 년 간 행해져 왔다. 이를 알게 된 조나단에게도 이 방법은 안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이다. 레이몬드와 함께 안나의 신호를 기다리는 조나단. 하지만 어느날 레이몬드가 갑작스럽게 죽고 브라운관을 통해 죽은 사람들을 만났던 이들이 우연히 죽음을 맞게됐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안나의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난다.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나 소재가 일본 공포물 ‘링’과 비슷하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영화는 군데 군데 등장하는 반전이나 톱니바퀴 들어맞듯 잘 짜여진 줄거리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며 두려움 속으로 끌어들이는 영리함을 가지고 있다. 감독은 영국의 TV 드라마 연출가 출신인 제프리 삭스. 상영시간 98분. 15세 관람가. ■쿨 뮤직비즈니스계 그려 ‘펄프 픽션’의 춤 장면을 기억하는가. ‘V’자를 그린 채 흐느적거리며 트위스트를 추던 존 트래볼타와 우마 서먼, 이들이 11년 만에 다시 같은 무대에서 만났다. 바로 8일 개봉한 영화 ‘쿨!’(원제 Be Cool)에서다. ‘쿨!’은 뮤직 비즈니스계를 다룬 영화. 두 주인공은 고리대금업자 출신의 성공한 영화 제작자 칠리 팔머(존 트래볼타)와 러시아 마피아에게 살해당한 남편 대신음반 사업에 뛰어든 이디 에이슨(우마 서먼). 두 사람은 함께 힘을 합쳐 사업을 벌여나가고 이들이 발굴한 신인가수 린다 문(크리스티나 밀리언)은 주변 인물들의 방해를 극복하고 톱스타가 된다. 흥미로운 두 주인공이 만난 데다 쇼비즈니스의 뒷세계라는 소재도 관심을 끌 만하지만 영화가 전해주는 재미는 아쉽게도 기대에 못미치는 편이다. 관심을 모았던 춤 장면도 지극히 평범한 편. 인물들의 성공담과 개성 강한 주변사람들의 모습이 종과 횡으로 얽힌 줄거리는 산만하게 전개된다. 타란티노 감독 스타일의 산만함과 하드보일드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결국 너무 느리게 전개되는 게 단점이다. 때문에 산만함은 더 심해졌고 인물은 더 비현실적이며 짧지 않은 상영시간(112분)은 더 부담스러워졌다. 더 락, 데니 드비토, 하비 케이틀 등 탄탄한 조연진에 록그룹 에어로 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와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 중견 배우 제임스 우드 등의 풍부한 카메오 등 캐스팅이 화려하지만 그만큼 집중도는 떨어진다. ‘재키 브라운’의 원작자인 엘모어 레오나드의 소설을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게리 그레이가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판에 염증을 느끼던 칠리는 어느날 자신의 눈앞에서 음반 사업을 하는 친구 토미(제임스 우드)가 살해당하는 사건을 겪는다. 이 사건으로 죽은 친구의 섹시한 미망인 이디를 만나고 그 자리에서 그는 함께 사업을 할 것을 제안한다. 사업의 첫 프로젝트는 신인 가수 린다문을 발굴해 음반을 출시하는 것. 하지만 음반 출시까지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린다의 전속권을 주장하는 전매니저 라지와 토미에게 받을 돈이 있다며 나타난 프로듀서 러셀이 바로 그들. 여기에 토미를 살해한 마피아들과 이들을 추적하는 경찰들까지 끼어들며 상황은 점점 복잡해진다. 15세 관람가. ■인터뷰-역전의 명수 정준호 “공공의 善 돌아섰죠” ‘공공의 적2’에서의 악랄한 ‘공공의 적’으로 최근 황금촬영상 연기대상을 수상한 배우 정준호가 이번에는 ‘공공의 선’으로 돌아섰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역전의 명수’에서다. 3개월만의 180도 변신이다. 정준호는 “‘공공의 적’에서 ‘공공의 선’으로 돌아섰다? 좋다. 좋아. 그 표현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정준호에 따르면 ‘역전의 명수’는 모두가 제작을 반대한 영화다. 그와 강우석감독, 그리고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만 빼고. 그 정도로 시나리오의 느낌은 상당히 독특하다. 어쩌면 그 독특한 느낌은 주인공이 오락 영화의 대명사 정준호이기에 보다 증폭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우석 감독이 편집에 관여하면서 영화의 코믹한 색깔이 더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정준호는 영화에서 음담패설과 적나라한 베드신을 서슴없이 소화했다. “시나리오가 무척 독특하다. 특별한 반전도 없고 트릭도 없다. 그냥 편안하게 흘러가는데 재미있다.” 명수는 목포역 앞에서 명물로 통하는 건달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희생정신으로 똘똘 뭉쳤다. 특히 엄마를 위해서는. 그는 엄마의 부탁에 현수를 위해 끊임없이 희생한다. 정준호는 명수와 현수, 1인 2역을 펼쳤다. ▲주인공 명수는 일생을 차별받으며 자란다. 엄마는 오로지 현수뿐이다. 실제 정준호는? “이 영화 보면서 한 풀이하는 사람들 많을 것 같다”며 웃은 정준호는 “그러나 실제의 난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내 동생들이 차별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명수처럼 효자였을까. “스물다섯살까지는 안 그랬다. 군대 갔다오기 전까지는 엄마 말을 참 안 들었다. 우리 엄마는 매학기 수업료를 두번씩 주셔야했다. 속으면서도 주신거지. 책값도 두배씩 줬다.(웃음) 그러나 제대 후 철들어서 지금까지는 엄마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한번도 없다.” 다만 한가지. 이제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만큼 장가 문제만큼은 불효하고 있다. ■영화배우 이성재가 7일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 도쿄 등지에서 열리는 ‘제1회 한류영화제’의 한국 대표 배우로 참석하기 위해서다. ‘제1회 한류영화제’는 9일부터 한달 동안 일본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 열린다. 일본의 영화 수입사인 SPO가 기획한 행사로 모두 22편의 한국 영화가 한꺼번에 소개된다.
■달콤한 인생 사랑은 달지만… 인생은 ‘쓰다’ 영화는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라고 말한다. 그래놓고 제목은 ‘달콤한 인생’이란다. 1일 개봉한 ‘달콤한 인생’(감독 김지운·제작 영화사봄)은 그러한 아이러니를 딛고 근사하게 폼을 잡았다. 사나이들의 어두운 세계를 그린다는 느와르를 표방하며. 선우(이병헌 분)는 문과 무를 겸비한 냉철한 인물이다. 그의 직업은 호텔 지배인. 정확히 말하면 ‘조폭’으로, 보스의 오른팔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주먹질일지언정 깔끔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스스로의 매무새도 늘 단정하다. 힘든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야경이 관통하는 스카이라운지 통유리창을 마주보고 나르시즘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에게 인생은 달콤한 것일까. 여기까지는 아니다. 보스에게 인정받고, 스카이라운지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에스프레소를 마신다고 달콤할까. 선우는 한 순간의 실수로 나락에 떨어진다. 보스(김영철 분)의 어린 애인 희수(신민아 분)를 감시, 보고하라는 지시를 어기고 바람난 희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 “모든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며. 그러나 이 사실을 안 보스는 선우를 용서하지 않는다. “백번 잘해도 한번 실수하면 끝이야.” 김지운 감독은 선우와 보스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한가지 퀴즈를 던진다. 과연 선우가 희수를 봐준 것은 보편적인 인류애, 혹은 측은지심의 발로였을까. 이 점은 보스 역시 의문을 품은 대목이다. 그는 선우에게 묻는다. “왜 그랬니? 진짜 이유를 말해봐.” 결국은 사랑이 사단이었다. 사실 선우가 잠깐 만난 희수에게 느낀 감정이 사랑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희수로 인해 잠시나마 달콤함을 느낀 것은 분명하다. 희수의 미소와 천진난만한 눈동자, 귀 뒤로 넘어가는 긴 생머리가 선우를 설레게하고 환하게 미소 짓게 한 것은 사실이다. “너 사랑 안해봤지?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는 거야”라는 보스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생을 달콤하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랑인 것이다. 그리고 달콤한 선택은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피범벅 러브 스토리’라는 김 감독의 설명 때문일까. 느와르라고 하기에는 발화점이 너무 시시하다. 물러설 수 없는 사나이들의 비장한 대결을 그려야할 느와르에서 전쟁을 시작하는 동기가 허무하다. 또한 영화 곳곳에서 욕심들이 불협화음을 이룬다. 김 감독은 처절하고 극악무도한 싸움을 그리면서 능청스러운 웃음을 넣으려했고, ‘때깔’에도 무척 신경을 썼다. 동남아 괴한들을 등장시켜 이국적인 분위기도 연출했고 주인공들에게 근사한 ‘총질’도 시켰다. 그러나 욕심들은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흩어졌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등 전작에서 빛났던 김 감독 특유의 감각이 아쉽다. 이병헌은 죽을 고생을 했겠다. 이 잘난 젊은이는 스크린에서 온갖 수난을 겪는다. ■미스 에이전트2 섹시발랄 여형사 ‘떴다’ 산드라 블록은 할리우드에서 건강과 밝음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전형적인 미인의 기준에서는 한참이나 곁길로 새지만 그는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다. ‘미스 에이전트2’가 기획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 전편의 성공을 발판삼아 5년만에 선보이는 속편은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편이 미스 USA 선발대회를 무대로 했던 만큼 그보다 더 화려한 곳을 수배하자니 라스베이거스가 적당했으리라. 미스 USA 선발대회에 위장 출전하면서 얼굴이 알려진 FBI요원 하트(산드라 블록 분)는 더이상 비밀작전을 수행하지 못한다. 결국 그는 180도 이미지 변신, ‘미스 FBI’가 된다. FBI의 마스코트가 돼 전국을 돌며 홍보 활동을 하는 것. 지저분한 몰골에 웃을 때면 ‘돼지 우는 소리’를 내던 터프한 하트는 이때부터 미스 USA 뺨치게 ‘환골탈태’한다. 범인 색출 대신 립스틱 색깔에 신경쓰는 ‘여자’가 된 것. 이때 사건이 터진다. 그와 절친하게 지내던 미스 USA가 납치당한 것. 하트는 만사를 제쳐놓고 사건 해결에 뛰어든다. 산드라 블록은 ‘잠복근무’의 김선아처럼 위장잠입이 주 특기다. 그는 이번에도 전공을 살려 아기 엄마, 휠체어 탄 노인, 게이 댄서 등으로 옷을 갈아입고 현장에 뛰어든다. 영화는 코믹 영화로서의 위치에 충실했다. 미국에서는 별반 평판이 좋지 않지만이 정도면 치고 빠지는 할리우드 오락 영화의 평균치는 된다. FBI, 위장, 납치, 여성 보디가드, 라스베이거스 등의 소재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못 만들기도 어려웠으리라. 아카데미 수상작 ‘레이’에서 제이미 폭스의 상대역을 맡았던 레지나 킹이 성질사나운 보디가드로 출연해 산드라 블록과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새로운 볼거리. 또 돌리 파튼과 티나 터너를 안다면 영화의 재미는 배가된다. 1일 개봉, 12세 관람가. ■더티댄싱2 “춤은 내 인생의 모든 것” 1987년의 ‘더티댄싱’을 기억하는가. 일탈을 꿈꾸지만 온실밖에 나서길 주저하는 부잣집 큰 딸과 리조트 아르바이트생이 춤을 통해 만나 사랑을 키워가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풋풋한 사랑과 열정적인 춤에 많은 이들이 박수치고 환호했다. 이제 2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멋지게 경쾌한 리듬을 탔던 패트릭 스웨이지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주름살이 생겼다. 터져버릴 것 같았던 춤사위는 우아하고 깊이있는 파드되가 인상적인 발레로 바뀌었다. ‘더티댄싱2’는 가족잔치다. 제작까지 한 그와 공동 작업을 한 이는 실제 부인인 리사 나이미다. 패트릭 스웨이지의 어머니인 안무가 패치 스웨이지는 안무를 담당했다. 리사 나이미는 주연과 각본, 감독까지 하는 등 무용수 출신 영화인으로서 하고싶은 것을 모두 풀어낸 듯하다. 영화는 지극히 예측가능하다. 드라마틱한 장면이라고는 세 주인공이 돌아가며 큰 소리 한번씩 치는 것이 전부다. 천재 안무가 알렉스가 사망한다. 그를 추도하기 위해, 내심으로는 무용단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7년전 올리지 못했던 알렉스의 작품 ‘침묵의 몸짓’을 올리기로 한다. 이 작품의 주역 무용수였으나 막이 올리기 직전 갈등이 폭발하며 뿔뿔이 흩어진 트래비스(패트릭 스웨이지), 크리스(리사 나이미), 맥스(조지 드라 페나)가 다시 모인다. 상영시간 93분. 15세 이상 관람가. 1일 개봉. ■독도 소재 영화 나온다 최근 독도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을 소재로 한 영화의 제작이 추진 중이다. 제작사 퍼즐필름은 최근 독도를 소재로 한 영화를 지난 2003년부터 추진 중에 있으며 현재는 프리프로덕션 중이라고 밝혔다. 영화는 독도 인근에 매장돼 있는 청정연료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우익 단체간의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올해 6월 크랭크인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연말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 제작사는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될 것”이라며 “전국민에게 독도수호의 중요성을 재인식 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영화를 제작하기로 했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친절한 금자씨 日·홍콩 ‘러브콜’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며 이영애의 스크린 복귀작인 영화 ‘친절한 금자씨’(제작 모호필름)의 촬영장에 일본과 홍콩 기자 110여 명이 방문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영화의 촬영세트가 마련된 파주시의 아트서비스 종합촬영소에는 지난 31일 오후 촬영장 첫 공개를 맞아 아사히, 요미우리, 닛케이, 마이니치 등 유력 종합지와 니칸 스포츠, 산케이 스포츠 등 스포츠 신문, 후지TV와 NHK 등 공중파 방송을 포함해 모두 23개 매체 70명의 일본 언론인이 방문했다. 또 홍콩에서도 TVB TV와 홍콩데일리 등 15개 매체가 취재에 나섰다. ‘친절한 금자씨’는 이미 홍콩의 파노라마사와 일본의 도시바 엔터테인먼트에 각각 고가로 판매된 바 있다. 두 국가의 취재진들이 대거 촬영장을 방문한 것은 ‘친절한 금자씨’와 박찬욱 감독, 이영애에 대한 해외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 이들의 취재는 현지 영화 수입사와의 동행취재로 이뤄지기는 했지만 1시간 가량의 짧은 촬영장 공개에도 영향력 있는 매체들이 대거 참석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는 10여년간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한 여자가 자신을 가둔 남자에게 펼치는 복수를 다룬 영화. 이날 촬영분은 교도소에서 출감한 금자(이영애)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죄를 뉘우치며 기도를 하는 장면이다. 성모마리아를 연상시켰던 영화의 티저 포스터와 비슷한 이미지를 담은 이 기도장면은 이영애가 입은 흰 드레스와 붉은색 초, 무릎 아래 깔은 푸른색 수건, 검정바탕에 붉은색 무늬가 있는 벽지가 시각적인 대조를 이뤘다. 박 감독은 촬영 중간중간 기자들에게 “오늘 진도가 너무 안나가네”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으며 이영애와 연기에 대해 논의하면서 “처녀보살 같다”며 밝게 웃기도 했다. 현재 촬영이 70% 정도 진행된 ‘친절한 금자씨’는 다음달 중에 촬영을 마치고 7월께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고두심 주연 ‘엄마’는 어떤 영화? 7일 개봉하는 영화 ‘엄마’ (제작 필름뱅크ㆍ청어람, 감독 구성주)는 어지럼증으로 차를 탈 수 없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평생 별 탈 없이 살았던 이 할머니에게 새로 부여된 과제는 막내딸 결혼식 참석이다. 문제는 결혼식장까지 거리가 너무 멀다는 사실인데….
■주먹이 운다 인생 막장의 순간에서 다시 일어선 40대의 아버지 강태식과 방황을 끝내고 다시 일어선 20대의 아들 유상환. 이들은 각자의 인생을 위해 링 위에 선다. 링은 그들에게 자신만의 전쟁터. 승리는 단 한 사람만의 것이며, 이들은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다. 올해 충무로 기대작 중 하나인 ‘주먹이 운다’가 4월1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시네마키드에서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거쳐 흥행 감독으로도 자리를 잡은 류승완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최민식, 그리고 가장 영리한 20대 배우 류승범이 한 자리에 모인만큼 이 영화는 올 상반기 개봉작 중 많은 기대를 받아왔다. 애초에 감독이 “연출을 하지 않는 연출”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영화는 상당 부분배우의 연기와 이들의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스타일로 캐릭터를 만들었고 관객의 입장에서 이들의 ‘대결’을 한 영화에서 보는 것은 행복에 가까운 재미다. 사각의 링 위에서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이 서로 뒤엉킨 장면은 한동안 다시 못볼 아름다운 ‘투 샷’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신인왕전에서 맞붙는 후반 15분 이전에는 마치 전혀 다른 두 영화인 것처럼 각 인물별 에피소드로 따로따로 진행이 된다. 카메라는 인생의 ‘막장’에 서 있다는 공통점 외에 전혀 다른 삶을 산 40대와 20대, 전직복서와 신인복서의 삶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 주며 링 위에 선 두 사람과 마주 선다. 막상막하의 실력을 갖춘 두 사람.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관객들은 이미 두 사람의 간절한 사연을 알고 있는 만큼 고민에 빠진다. 태식은 한때 복싱 스타였지만 지금은 매맞는 일로 돈을 버는 남자다. 운영하던 공장의 화재로 답답한 신세가 된 그에게는 재산이란 것은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뿐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진 그에게 아내는 이혼을 요구해 오고, 이제 그는 아들과 함께 살 수도 없는 처지에 처하게 된다.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잃을 것도 없는 인생 막장의 이 늙은 복서는 이제 신인왕전 타이틀을 마지막 희망으로 품게 된다. 상환은 특별히 하고 싶은 일 없이 소일하는 인생이었다. 패싸움과 ‘삥 뜯기’가 하루 일과. 어느날 큰 싸움에 휘말려 합의금이 필요하자 그는 동네 유지의 돈을 빼앗다 소년원에 수감된다. 소년원에 들어와서도 그는 여전한 문제아다. 다른 재소자와 싸움을 벌이던 그는 교도 주임의 눈에 띄고 권투부에 가입하게 된다. 권투는 아무 의지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에게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된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할머니마저 쓰러졌다는 소식이 그의 귀에 전해져 오자 이제 그는 가족을 위해 하게되는 첫번째 일로 신인왕전 출전을 결심한다. 차근차근, 두 인물의 삶에 빠져들던 관객들에게 영화의 막바지 권투 경기 장면은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들이 벌이는 결승전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처절한 전투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그래서 누구의 편도 쉽게 들 수 없는, 그런 싸움이다. 시합 장면은 실제로 두 배우가 진짜 펀치를 날리며 진짜 6라운드 경기를 펼치며 촬영됐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몸만들기에 들어갔던 두 사람은 여러 대의 카메라 앞에서 실시간으로 직접 경기를 펼쳤다. 상영시간 134분. 15세 관람가. ■유쾌한 퓨젼 서부극 ‘800 블렛’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스턴트상을 제정하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스턴트맨의 랩소디’를 그린 영화가 개봉했다. ‘커먼웰스’로 2000년 스페인 최다 관객을 동원한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40) 감독의 2002년작인 ‘800 블렛(800 bullets)’은 스턴트에 대한 자부심과 향수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인의 이야기다. 무대는 스페인 알메리아 사막의 어느 마을. 이곳에는 ‘텍사스 할리우드’라는 다스러져가는 영화 세트장이 있다. 과거에는 실제로 할리우드 서부극의 촬영지로 사용됐으나 이제는 하루 10명 안팎의 관광객만이 찾을 뿐인 처량한 세트장은 관광객보다 많은 액션 배우들의 삶의 터전이다. 이들 액션 배우들은 저마다 보안관, 인디언 추장, 총잡이 등을 맡아 관광객들 앞에서 한바탕 쇼를 펼친다. 그러나 첨단 컴퓨터 그래픽이 관객의 눈을 현혹시키는 21세기에 이들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봐도 시대착오적이다. 한때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기는 훌리안(산쵸 그라시아 분)은 몇해전 역시 스턴트맨이었던 아들을 자신의 눈 앞에서 잃는 사고를 겪는다. 그러나 이러한 충격적인 사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스턴트에 집착하며 “몸으로 때우는 것이지만 정직한 직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러한 훌리안의 모습은 결코 장인 정신의 표출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시대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한 낙오자이고 그가 꾸린 배우 집단은 오합지졸 공연단일 따름이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엔 한심하고 하찮은 가치관일지라도 한사람의 평생을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이라면 그것은 위대하다. 누가 누구의 인생을, 어떤 잣대로 평가할 것인가. 이글레시아 감독은 이러한 주장을 펼치며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쓸쓸한 노인에게 찬란하고 화려한 마지막을 선사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수십년 전에 냅킨에 써준 전화번호를 가보처럼 간직한 훌리안은 그 자부심을 안고 오직 800발의 총알로 탱크에 맞선다.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아내에게서 아들 향기가…‘잔다라2’ 2001년 개봉했던 ‘잔다라’의 속편. ‘잔다라’는 태국말로 ‘저주받은’이라는 뜻의 ‘잔라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부유한 집안 출신의 태프(와차라 탕카파서트)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폭행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폭행의 이유는 어머니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 이를 용납하지 못한 태프는 집을 나간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경찰이었던 아버지 차웅(소라풍 찻리)은 에머랄드 섬에서 어부로 생활하며 젊은 여자 리암(헤렌 니마)과 함께 살고 있다. 리암에게 차웅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 하지만 리암은 성관계에 어쩔수 없이 응할 뿐 차웅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 갈등은 사진작가가 된 태프가 섬을 찾으면서 다시 시작된다. 차웅과 원치않은 관계를 갖는 리암에게 연민을 느끼는 태프. 서로에게 끌리던 두 사람은 머지않아 애정행각을 시작하게 된다. 2편은 1편과는 다른 인물과 줄거리가 등장하며 인간관계의 얽힘은 덜 복잡하지만 스토리의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는 전편과 비슷한 편이다. 1편과 2편을 아우르는 핵심적인 단어는 ‘불륜’, 갈등의 핵 역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반목이다. 31일개봉. 상영시간 100분. 18세 이상 관람가. ■김정은 주연의 영화 ‘사랑니’(제작·투자·배급 시네마서비스)가 최근 촬영을 시작했다. 지난 16일 서울 정릉에서 진행 된 첫날 촬영 신은 인영이 점을 보기 위해 점집을 찾는 장면. 상담을 받으러 간 인영이 오히려 역술인에게 상담을 해주는 장면이다. 영화는 6월까지 촬영된 뒤 가을 극장가에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윔블던 ‘사랑의 힘’ 기적을 만들다 ‘윔블던’은 영국 중산층의 사랑에 대한 팬터지를 참으로 적절하게 그리는 워킹타이틀의 향기를 그대로 뿜어내고 있다. 이보다 더 영국적일 수 없는 윔블던 테니스 경기를 소재로 남녀 테니스 스타의 사랑과 승부를 상큼하게 그린 것. 젊은 후배들한테는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32세의 노장 테니스 선수 피터(폴베타니 분)는 현재 세계랭킹 119위다. 최선을 다해도 이제는 실력이 더 이상 늘지않으니 은퇴나 해야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지나온 세월이 서글프다. 운동한답시고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봤고 그렇다고 우승 트로피 한번 안아본 적 없다. 그런 그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사실은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또다시 윔블던대회에 출전한다. 그런데 이게 왠일. 세계 1위를 다투는 여자 테니스 스타 리지(커스틴 던스트)가 쿨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것도 “시합 전 섹스가 경기에 어떤 결과를 미칠 지 아니? 가볍게 즐기자”면서. ‘와이 낫(Why Not?)’ 영화는 워킹 타이틀이 지금껏 주장해왔듯 사랑의 힘을 설파한다. 어디서나 실력차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때때로 사랑은 기적을 발휘하는 법. 물론 진짜 사랑일때 말이다. 카메라는 단정하고 우아한 윔블던 코트를 매력적으로 잡는 한편 소박한 영국의 전원 생활과 어촌에도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와 여물어 가는 핑크빛 사랑을 교차하며 관객을 너그럽게 만들고, 동시에 혹독하게 딸을 조련하는 리지의 아빠와 낱알처럼 흩어졌던 피터 가족의 변화도 밉지 않게 담아냈다. ‘윔블던’의 이야기는 2001년 10월 맺어진 앤드리 애거시와 슈테피 그라프 커플덕에 아주 허무맹랑하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애거시는 결혼으로 세계 랭킹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부진의 늪에서 탈출, 주요 대회 우승을 휩쓸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너무 자신만만했던 것일까. 감탄고토하는 얄미운 에이전트를 통해 특유의 위트를 과시하고, TV를 통해 사랑을 고백하는 등의 ‘전기감전요법’으로 관객의 입맛을 돋우긴 하지만 영화는 왠지 모르게 정형화된 느낌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너무 쉽게 답습한 듯한 인상. 알싸한 봄바람처럼 영화는 보는 이의 기분을 업 시킨다. 살갗이 찌릿찌릿 흥분되기도 하고, 주책맞게 코 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워킹 타이틀만의 톡 쏘는 맛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요소요소 작위적인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래도 두손 들어주고 싶은 부분은 할리우드 스타 커스틴 던스트를 캐스팅했음에도 그녀에게 기대지 않았다는 것. ‘기사 윌리엄’의 주정뱅이 폴 베타니의 스타 탄생이다.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잠복근무 웃음·액션·감동 3박자 골고루 부담없이 즐기기에 ‘안성맞춤’ 6:3:1쯤 될까? 17일 개봉한 ‘잠복근무’는 코미디와 액션, 로맨스가 6:3:1 정도로 적절하게 섞여있는 영화다. 적어도 팝콘이나 오징어를 사다 들고 객석에 등을 파묻은 채 부담없이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가장 ‘믿음’이 가는 여배우인 김선아가 등장하는데다, 코믹과 액션이 적절히 뒤섞여 있고, 풍부하고 알찬 에피소드들에, 제 몫을 충분히 해내는 조연들의 연기까지, 상차림이 풍성하니 7천원의 관람료가 아깝다는 식의 실망감이 관객의 입에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학창시절 문제아였고 경찰이 되서도 사고뭉치이며 결국은 학교로 다시 돌아가 그 문제아적 ‘성깔’로 학교를 평정하는 여형사 캐릭터는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설정. 여기에 실은 경찰이 꿈이었던 담임 선생님을 연기하는 박상면과 조카가 항상 불안하기만 한 삼촌 천반장역의 노주현, 매력적인 악역을 만들어 낸 오광록 등 조연들의 매력도 풍성하다. 다혈질이지만 사고뭉치인 ‘문제적’ 여형사 천재인(김선아)은 자신의 직속상관이자 삼촌인 천반장(노주현)으로부터 여자 고등학교에 학생으로 잠입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임무는 이 학교의 우등생 차승희(남상미)와 친해져 그녀 아버지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 아버지 차영재(김갑수)는 폭력조직의 소탕을 위해 법원에 증언을 할 중요참고인이다. ‘지옥 같았던’ 고등학교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데, 한 술 더 떠 재인은 잘못된 설정으로 이제 우등생 행세까지 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이 학교에 있던 ‘기존의’ 문제아들은 재인의 학교 생활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담임선생님의 배려도 일을 더 꼬이게 만든다. 친구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승희와 친해지는 것도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이렇게 ‘뻑뻑한’ 학교 생활을 하던 중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청량음료 같은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몸짱에 매너도 좋고 싸움까지 잘하는 강노영(공유)이다. 승희와 재인의 주위를 맴도는 노영. 하지만 그 역시 학생 같지 않은 수상함을 지니고 있다. 뻔한 재료에 흔한 공식의 상업영화이지만 영화는 상당량의 웃음과 어느 정도의 액션, 그리고 약간의 감동이라는 의도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만한 매끄러움을 갖췄다. 곳곳에 억지스럽게 짜 맞춰진 설정과 인물, 과장된 에피소드들이 숨어있지만 재미를 반감시킬 정도까지는 아니다. ‘퇴마록’을 만들었던 박광춘 감독이 2002년 ‘마들렌’ 이후 3년만에 내 놓은 신작이다. 111분. 15세 관람가. ■호스티지 ‘휴먼영웅’ 10년만에 컴백 브루스 윌리스가 ‘다이하드’ 시리즈를 끝낸지도 어언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부지런히 액션 블록버스터에 출연해왔지만 진정한 영웅이 되지는 못했다. 영웅에 대한 갈증. 윌리스는 ‘호스티지’를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호스티지’는 제목이 노출하듯 인질과 그 인질을 구출하는 경찰의 이야기다.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최상의 조건. 윌리스가 동명의 소설을 보자마자 영화화 욕심을 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따지자면 이 영화는 스케일과 스릴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제프 탤리(브루스 윌리스 분)는 LA 경찰국 소속 최고의 인질범 협상가. 그러나 지독한 자만감에 인질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 이후 그는 시골마을 경찰서장이 돼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이 조용한 마을에 생각지도 않은 인질 사건이 발생한다. 대저택에 갇힌 세명의 인질과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명의 범인. 이제는 더 이상 네고시에이터가 아닌 탤리는 연방경찰이 맡은 사건을 측면에서 지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그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괴한들이 돌연 탤리의 아내와 딸을 납치해간다. 괴한들의 요구사항은 인질범들이 장악한 대저택에 침투, 자신들이 찾는 물건을 빼내오라는 것. 탤리는 인질범은 물론 동료 수사관들마저 따돌려야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진다. 윌리스는 ‘다이하드’의 영광에 ‘식스 센스’의 울림을 양손에 쥐고 싶어했다. 곳곳에서 돈 냄새가 묻어나는 난공불락 요새 같은 호화로운 대저택을 통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네고시에이터와 가장으로서의 인간적인 고뇌를 진하게 표현하려 했다. 영화 속 인질 사건의 이중구조는 그런 점에서 대단히 효과적인 장치. 실제로 치밀하게 설계된 부잣집은 인질 중 한명인 8살 꼬마가 악당을 상대로 펼치는 컴퓨터 게임 같은 무대가 되준다. 또 인질범과 심리전을 펼쳐야하는 와중에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되면서 극도의 혼란을 경험하는 탤리의 모습은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범인과 협상을 하고 물건을 빼내와야 하는 탤리의 상황이 국가와 세계를 구해야하는 여타 할리우드 영웅들보다 인간적인 것은 사실. 여기에 원없이 터져주고 쏴주는 액션 장면이 기본으로 깔려있으니 영화는 모든 조건을 고루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제 50대에 접어든 윌리스는 말이(혹은 생각이) 많아졌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잉’의 혐의가 짙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느낌이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오늘 ‘아이엔지 영화제’ 일상속 진한 감동…‘단편영화의 즐거움’ 독립 영화, 혹은 단편 영화의 즐거움은 그 메시지에 있다. 깨끗한 영상이나 화려한 움직임, 섬세한 감정 표현 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기 때문에, 투박한 일상과 우리가 흔히 지나쳐 버릴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한 번 푹 빠지면 더욱 진한 감동을 얻는다. 대학교 영상 관련 단체들이 만든 작품을 상영하는 ‘아이엔지 영화제’가 19일 오후 2시 안성에 위치한 한경대학교 공동실험실습관에서 마련된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동국대학교 영화학과 대학원, 상명대학교 영화학과 인디스토리 등이 참여한 이번 영화제에는 총 15여 개의 작품이 선보여진다. 제3회 서울 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 경쟁부문 우수상을 차지했던 ‘사이코 드라마’부터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분 초청작 ‘으랏차차 라스트 매직’, 제56회 칸느 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올랐던 ‘원더풀 데이’ 등 수준 높은 단편영화 들이 참여할 예정. 각기 다른 소재로 삶의 다양한 의미를 짚어내는 이들 작품은 영화의 또 다른 참맛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의 670-5114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연극배우 출신으로 ‘학생부군 신위’, ‘301·302’ 등의 영화에 출연했던 방은진<사진> 감독의 데뷔작 ‘오로라공주’가 지난 14일 촬영을 시작했다. ‘오로라공주’(제작 이스트필름)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물. 잇딴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현장에는 ‘오로라공주’ 스티커가 유일한 단서로 발견된다. 이를 발견한 오형사(문성근)은 1년 전의 악몽 같은 사건을 떠올리고, 범인이 정순정(엄정화)임을 직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6월말까지 촬영된 뒤 10월 개봉할 예정이다.
Japanese Movie 전통적인 비수기인 초봄 극장가에 일본 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이어진다. 2월 말부터 잇따라 선보이기 시작한 일본 영화는 ‘피와 뼈’, ‘69’, ‘바이브레이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무도 모른다’ 등 다섯 편 이상.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는 영화에서부터 순애보를 담은 최루성 멜로물,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에 대한 ‘쿨(cool)’한 묘사를 담은 청춘물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 대기 중이다. 전통적인 비수기인 초봄 극장가에 일본 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이어진다. 2월 말부터 잇따라 선보이기 시작한 일본 영화는 ‘피와 뼈’, ‘69’, ‘바이브레이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무도 모른다’ 등 다섯 편 이상.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는 영화에서부터 순애보를 담은 최루성 멜로물,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에 대한 ‘쿨(cool)’한 묘사를 담은 청춘물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 대기 중이다. 한류 열풍이 일본 내에서 뜨거웠던 지난해, 일본 영화의 국내 성적은 평균 1편당 3만2천명(서울 관객 기준)이었으며 점유율은 2.1%에 그쳤을 정도로 그다지 좋지못했다. 국내에서 일본 영화는 흥행이 안된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속설. 하지만 이들 영화는 ‘역한류’ 혹은 ‘조용한 대박’을 노리며 국내 관객을 사로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피와 뼈(血と骨, 2월 25일 개봉)= 양석일씨의 베스트 셀러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10대 중반 ‘재패니스 드림’을 안고 제주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온 남자 김준평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폭력적이며 탐욕적으로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은 기타노 다케시가 연기했으며 스즈키 교카는 폭력적인 남편이 없어지기만을 바라며 평생을 살아가는 부인 이영희 역을 맡았다. 최근 내한한 최양일 감독은 “이 영화에는 ‘인간의 피와 뼈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라는 철학적인 물음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바이브레이터(Vibrator, 3월 4일)= 메마른 도시에서 만난 고독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쿨’하게 그린 로드 무비. 기댈 곳을 찾으며 부유하는 젊은 캐릭터들의 매력, 주인공 여성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 감각적인 편집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눈 내리던 밤. 술을 사러 편의점에 들른 르포라이터 레이(테라지마 시노부)의 머리 속에는 오늘도 무수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누군가에게 언젠가 들었던 말들, 잡지 속의 문장, 내면 어디에선가 흘러오는 속삭임 등은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들. 술을 먹고 토하는 ‘취미’는 이런 ‘목소리들’을 잊기 위해 생긴 그녀만의 톡특한 습관이다. ▲69(3월 25일)= 재일교포 감독 이상일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무라카미 류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안도 마사노부나 쓰마부키 사토시 등 ‘꽃미남’ 스타들이 출연한다. 청춘과 록 음악, ‘뻥’을 키워드로 하는 빠르고 감각적인 영상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배경은 1969년 규슈 지방의 한 고등학교. 지역에서 최고로 꼽히는 일류고등학교지만 문제아 겐(쓰마부키 사토시)은 사사건건 선생님들의 지도에 반항을 한다. ‘인생을 즐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그의 신조. 이 학교 최고의 미녀 마쓰이 가즈코(오타 리나)를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그는 ‘데모나 바리케이드를 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쑥대밭으로 만들 ‘거사’를 도모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3월 25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함께 지난해 일본에서 순애보의 열풍을 이끌며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6주간의 아름다운 재회가 기둥 줄거리로, 100만부가 넘게 팔린 동명의 베스트 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주인공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나카무라 시도)과 엄마를 잃은 아들(다케이 아카시). 1년 후 비의 계절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죽은 엄마(아내·다케우치 유코)는 약속대로 장마철에 이들 가족에게 돌아온다. ▲아무도 모른다(4월 1일)=‘원더풀 라이프’로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으로 당시 12살이었던 주연배우 야기라 유야는 이 영화로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부모 없이 남겨진 네 명의 아이들을 차분하고 과장되지 않은 카메라로 담고 있다. 각각 다른 아버지(혹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기도 한다)와 같은 어머니를 가진 네 아이들은 어머니마저 떠나버리자 스스로 생활해 나가야 하는 곤란에 빠지게 된다. 가장 노릇을 하게 된 큰아이라고 해봐야 12살 어린이.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생활은 점점 엉망이 되어 간다. 지난해 부산영화제를 방문했던 감독은 “관객이 영화를 본 뒤 세상에 나와 이런 아이들을 봤을 때, 한동안 그들에게 시선이 머무르게 된다면 성공하는 셈”이라며 연출 의도를 설명한 바 있다. ■여자 정혜 아픈 상처 지우는 ‘사랑의 묘약’ 우편 취급소와 TV 홈쇼핑, 고양이… 이 여자, 정혜(김지수)의 일상은 까닭없이 평화롭다. 직장인 우편물 취급소에서의 단조로운 일과와 TV 홈쇼핑으로 사들인 물건들로 채워진 작은 집, 아파트 화단에서 주워 온 어린 고양이. 이것들은 그녀만의 작은 세상을 구성하는 몇 안되는 것들이다. 각박하고 폭력적인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조용한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사실 지금의 세상과의 소통을 막는 과거의 아픈 상처가 있다. 영화는 여성의 내면에 대한 세심한 묘사와 여주인공 김지수의 열연, 사랑과 상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등으로 이들 영화제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배우 김지수의 발견’ 혹은 ‘2004년 한국 영화의 발견’이라는 호평을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흔히들 하는 얘기지만, 사실 의심스러운 말이다. 아픔을 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듯한 소란스러운 세상, 이 속에서 사랑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오히려 또 다른 부담일 수 있다. 과연, 영화가 해답을 줄 수 있을까? 무표정 속에서 속시원한 결론을 보여주고는 있지 않지만 영화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묘한 매력을 담고 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여자와 그녀의 가슴 속에 묻혀 있는 상처를 담담하게 그려내던 이 영화는 희망의 희미한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정혜에게도 사랑이란 보이지 않을 듯 희미해 보이는 가능성 같은 것이다.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들과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녀. 사람들은 그녀가 불행할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사실 과거는 고통이라기보다는 그저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 혹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가능성을 막고 서 있는 어떤 것들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황정민)가 그녀의 일상에 끼어든다. 작가 지망생인 그는 자신의 원고를 부치기 위해 정혜의 우체국을 찾는다. 정혜는 그에게 묘한 설렘을 느끼고 용기를 내서 말한다. “저희 집에 오실래요?” 언뜻 보기에 단조롭고 평범해 보이지만 영화는 우리 일상 속에 공존하는 불안과 폭력, 그리고 행복과 희망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자극적인 영화보다도 더 진한 울림을 준다.특히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과거의 슬픔과 고통이 분출되는 후반부는 극장 문을 나서고 나서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강한 인상을 주는 부분이다. 공감 속에 강한 울림을 주는 것은 주인공 정혜를 연기하는 여배우 김지수의 힘과 100% ‘들고 찍기’로 촬영해 순간 순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카메라의 덕이 크다. 특히 그동안 TV 드라마에서 개성을 드러내지 못했던 김지수라는 배우를 이번 영화를 통해 새로 보게 되는 것은 관객으로서도 큰 기쁨이다. 단편 ‘우리 시대의 사랑’을 만들었으며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던 이윤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피와뼈 괴물이 된 조선사내 ‘김준평’ 피와 뼈가 붙어 있다고 인간인가. 피와 뼈를 물려줬다고 부모인가. 최양일 감독은 “피와 뼈는 인간과 가족 관계를 말한다. 뼈 안에는 무엇이 있고 피 안에는 무엇이 흐르고 있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폭력이다. 시대가 폭력이고 생존이 폭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자체가 폭력적이다. 진저리날만큼.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 그것이 재일한국인의 삶이고 작가와 감독이 모두 재일한국인이라는 점은 분명 한국 관객에게 묵직한 무게로 다가온다. 눈을 크게 뜨고 영화를 직시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 냄새가 역하다. 1923년 오사카. 일련의 한국인들이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다. 이들은 불결한 빈민가에 촘촘히 어깨를 맞대고 뿌리를 내린다. 모두가 살아남아야 했다. 한복입고 제사지내고, 결혼식날 신랑의 발바닥을 북어로 때리는 풍습은 꾸역꾸역 지켜가지만 한국어는 ‘장인어른’과 ‘형님’을 구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영화는 주변인에게 결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오로지 한 사람, 김준평(기타노 다케시 분)에게 초첨을 맞춘다. 청운의 꿈을 안고 도일했을 그의 모습은 그러나 극 초반부터 광폭하고 탐욕스러운 중년으로 그려진다. 마누라는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자식들은 하찮은 벌레 취급하는 이 남자는 자신이 인간임을 잊은 듯 하다. 여자를 섹스 도구로 생각하며 오로지 돈에만 관심있는 그는 발정난 돼지 같은 모습으로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한다. 그중 가장 기가 찬 풍경은 자신의 아들들과 처절한 육박전을 벌일 때. 이들 부자 앞에 인륜은 공허할 뿐이다. 그런 그가 딱 한번 의외의 모습을 보인다. 섹스 노리개로 삼던 기요코가 뇌종양수술을 받고 거동도 못하는 바보가 됐음에도 버리지 않고 정성들여 간호하는 것. 피와 뼈를 나눈 가족들에게는 한번도 보이지 않던 행동. 그러나 이마저도 사실은 또다른 정부를 들이며 자식을 넷이나 까발리는 짓과 병행한 것이다. 욕정만큼 그의 자식에 대한 욕심도 거대하다. 역시 피와 뼈에 대한 집착이다. 영화는 김준평의 무소불위 광기와 폭력을 가감없이 따라가며 50~70년대 재일한국인들의 지난한 삶을 중간중간 훑었다. 젊은층의 북에 대한 동경과 한국인끼리의 결혼을 고집하려는 노력이 살짝 그려진다. 마을 잔치 때 잡힌 커다란 돼지가 난도질되는 장면은 어쩌면 당시 재일한국인의 삶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시뻘건 피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고, 대야 가득 쏟아지는 구불구불한 내장은 보상받을 길 없는 고단한 삶이다. 그러나 혼란스럽다. 김준평의 모습을 뒷받침하는 설명이 싹둑 잘라져나갔다. 거두절미하고 김준평의 아들 마사오의 눈으로 괴물 같은 아버지의 비상식적인 짓거리들이 나열되는 것이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나,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가 그를 그렇게 내몰았다는 식의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이 때문에 각종 묘사가 사실적이고 기타노 다케시의 연기가 두려움을 자아낼 정도로 질퍽함에도 영화는 당위성을 줌으로써 끌어낼 수 있는 감동을 놓치고 간다. 25일 개봉, 18세 관람가. ■나인하드 2 코믹 킬러… ‘해도, 너무해’ ‘완벽한 행운’, ‘왕대박’을 뜻하는 ‘나인야드(The Whole Nine Yards)’가 조금 더 커진 행운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2000년에 개봉했던 ‘나인야드’보다 1야드 넓어진 속편 ‘나인야드2(The Whole Ten Yards)’가 24일 국내 관객을 만난다. 2편에서도 1편의 주인공인 냉혈한 전문킬러 지미 튤립(브루스 윌리스)과 어딘가 헐렁해보이는 소심한 치과의사 오즈(매튜 페리), 대범한 금발미녀 신시아(나타샤 헨스트리지), 막무가내 킬러 지망생 질(아만다 피트)이 호흡을 맞췄다. 1편에서는 지미가 오즈의 옆집으로 이사오면서 황당한 사건에 연루되고 결국 이둘과 신시아, 질까지 부자연스럽게 뭉치면서 1천만 달러를 차지했다. 또 지미의 부인이었던 신시아는 오즈와, 킬러를 꿈꾸던 간호사 질은 지미와 사랑에 빠지면서 끝났다. 이번 ‘나인야드2’는 졸지에 부자가 된 오즈에게 갱단의 보스 고골락(케빈 폴락)이 전편에서 죽은 아들 야니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타나면서 시작한다. 고골락은 오즈의 부인 신시아를 납치한 뒤 오즈에게 야니를 죽인 지미가 어디 있는지 말하라며 협박한다. 신시아를 구하려고 지미를 찾아간 오즈는 킬러에서 손끝이 섬세한 가정주부로 변신해 닭에게 이름까지 붙여 애틋하게 부르고 있는 지미를 만난다. 지미와 오즈, 질은 추격해오는 고골락 일당을 따돌리지만 끝없는 내분으로 신시아를 되찾을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진다. 1편이 코미디와 액션, 인물과 줄거리가 적절히 섞여 적당한 웃음을 만들어 냈다면, 2편은 각 요소가 조금씩 더 과장돼 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춰 웃어야 하는지 모르겠는, 애매한 영화가 돼버렸다. 줄거리는 반전에 반전을 노리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허탈해진다. 어느새 냉소적인 미소의 액션 배우보다 실없는 코미디 배우가 더 잘 어울리게 돼버린 브루스 윌리스는 어색한 앞치마에 토끼 슬리퍼까지 신고 고군분투한다. 질과 서로 머리에 총을 겨누며 티격태격 사랑싸움을 하는 모습은 킬러부부답지만 왼쪽 팔뚝에 해놓은 문신 속 튤립은 이미 시들어버린 듯 하다. 영원한 ‘프렌즈’로 남아있는 매튜 페리는 챈들러 캐릭터로 끝까지 밀고 나간다. ‘프렌즈’에서도 그랬듯 영미권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말장난과 매번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웃음의 원천은 오히려 브루스 윌리스 쪽보다 아직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괴팍한 발음과 무지막지한 손놀림,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고골락과 그의 노브레인 아들이 이끄는 갱단이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영화 초반에 걸 스카우트로 잠깐 등장하는 여자아이. 금발의 이쁘장한 여자아이는 바로 브루스 윌리스와 데미 무어 사이의 세 딸 중 막내인 타룰라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98분. 영화 ‘사랑니’ 김정은 연하男 누가될까? 김정은이 차기작으로 정지우 감독의 신작 ‘사랑니’를 선택했다. 정 감독이 ‘해피엔드’ 이후 5년 만에 메가폰을 잡는 ‘사랑니‘는 열일곱 살 남자와 사랑에 빠진 서른 살 여자의 이야기. 김정은의 상대역은 미정이다. ‘사랑니’는 3월 크랭크 인하며, 올 가을 개봉 예정이다.
KBS는 15일 방송된 9시 뉴스 말미에 정세진 앵커가 “지난 9일 9시 뉴스가 경남 산청군 신기마을에서 22년 만에 아기가 태어나 마을 전체가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보도했는데 행정기관에 확인한 결과 1년여 전인 2003년 11월에 태어난 아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이를 바로잡는다”며 이 보도가 오보였음을 시인했다. 그는 이어 “(주민들의 말만 믿고)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점을 거듭 사과하며 앞으로 정확한 보도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KBS는 설날 9시 뉴스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신기마을로 시집온 A(35)씨의 아내B(23)씨가 작년 12월 아들을 낳았다며 이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난 것이 22년만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