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일찌감치 선보인 일련의 일본과 할리우드산 공포영화들이 애피타이저였다면 7-8월에는 한국 공포영화들이 메인 디시로 잇따라 등장한다. 2005년 여름을 서늘하게 할 ‘국산 공포영화 四色’을 소개한다. 국내 대표적인 투자·배급사 네 곳이 각각 한 작품씩을 꿰차고 여름 라인업에 올려놓아, 작품 이면의 대결도 흥미를 끈다. 또 하나. 네 작품 모두 ‘여인천하’라는 점도 특징이다. 구두 가발 첼로...목소리...악! ‘분홍신의 저주’ 신으면 죽는다 ▲분홍신(감독 김용균, 제작 청년필름)=지난 1일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영화는 무엇보다 다소 부담스러운 김혜수의 이미지를 깔끔하게 희석시켜 그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포스터 속 그의 커다란 눈이 공포와 매치가 잘된다. 안데르센의 동명의 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 영화는 분홍신을 손에 넣은 후부터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달리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우연히 주운 분홍신 때문에 점차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던 선재(김혜수 분)는 후배 미희가 분홍신을 신고 나간후 발목이 잘린 시신으로 발견되자 분홍신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날 부르는 죽은 친구의 속삭임 ▲여고괴담4:목소리(감독 최익환, 제작 씨네2000)=‘여고괴담’은 한국의 성공한 공포 시리즈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권에서 유명세를 타고있다. 벌써 네번째 작품이 나왔으니 이만하면 확실한 브랜드 파워. ‘여고괴담’ 시리즈는 1편(1998년)이 전국 250만명을 모으며 대박을 기록했고, 2편(1999년)은 60만명, 3편(2003년)은 180만명을 각각 모았다. 여학교를 무대로 한 콘셉트가 주타깃인 학생관객들의 심리를 제대로 공략한 것. 제작사 씨네2000을 늘 위기에서 구하는 효자 상품이다. 제4편은 어느날 죽은 친구의 목소리를 듣게 된 한 여고생이 죽음의 비밀에 다가서다 맞닥뜨리는 끔찍한 공포를 다룬다. 부제가 ‘목소리’인 만큼 소리에서 오는 공포에 주안점을 뒀다. 이번에도 신인들로 승부수를 띄웠다. 15일 개봉. 기억을 머금은 머리카락 공포 ▲가발(감독 원신연, 제작 코리아엔터테인먼트)=누군가의 기억이 담긴 가발이 탐스러운 머리를 원하는 수현(채민서 분)의 손에 들어온 후부터 수현-지현(유선분) 두 자매에게 일어나는 공포를 그린다. 8월 12일 개봉. ‘마파도’로 상반기 극장가에 파란을 일으킨 코리아엔터테인먼트가 대단히 자신있어 하는 작품이다. 앞서 개봉한 ‘분홍신’과 언뜻 봐서는 콘셉트가 비슷해 보여 후발주자로서 불리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코리아엔터테인먼트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작품성으로 승부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모발과 전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 스크린 속 가발과 실제 머리카락을 비교해보며 관람해도 흥미로울 듯. 섬뜩한 첼로 선율… 너가 죽였니? ▲첼로(감독 이우철, 제작 영화사태감)=여름방학의 끝자락에 개봉하는 마지막 주자로 8월 18일에 개봉한다. 지난 5월 17일 크랭크 인 한 까닭에 현재 초스피드로 촬영이 진행 중이다. 웬만해서는 개봉일을 맞추기 힘든 스케줄이지만 몸집이 가벼운 기획영화의 장점을 극대화해 쓸데없는 욕심은 부리지 않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주홍글씨’로 차근차근 필모그라피를 다져나가고 있는 성현아가 단독 주인공을 맡아 독을 품었다. 극중 그는 두 딸을 둔 첼리스트로 젊고 예쁜 엄마이자 조용하고 지적인 음대 강사다. 영화는 단란하고 평온한 생활을 하던 그가 어느날부터 겪게 되는 공포를 그린다. >>인 디스 월드 희망찾아 삼만리 파키스탄 북서부의 샴샤투 지역에는 5만여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 난민들이 배급 받는 식량은 밀가루 480g, 식용류 25g, 콩 60g 뿐. 지급 받은 텐트 속에서 담요 세 장과 난로 한개를 가지고 추위를 피할 수 있다. 영화 ‘인 디스 월드’(In This World)의 주인공인 고아 소년 자말(자말 우딘 토라비)도 이들 중 한 명이다. 벽돌 공장에서 일하는 그가 하루에 받는 돈은 1달러(약 1천원) 미만. 어쩌면 평생 이 곳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그는 이제 막 그 운명을 벗어나려하는 찰나에 있다. 바로 사촌 형 에나야트(에나야툴라 자무딘)와 함께 런던행 여정을 떠나는 것. 영어 통역이 그가 동행하는 명분이다. 2003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환호를 받았던 ‘인 디스 월드’가 8일 한국 관객들을 만났다. 당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막바지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영화를 화제의 중심에 서게 했지만 영화가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인물들 틈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감독의 카메라 덕분이다. 비행기 한 번이면 쉽게 갈 수도 있을 법 하지만 난민 신세의 두 사람에게 가능한 방법은 육로를 통한 밀입국이다. 위험천만한 여행이 될 것은 눈에 보일 듯 뻔한 일. 하지만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지라 이들은 먼 길을 떠나게 된다. 흥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낯선 땅. 조력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순박해 보이는 이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다.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로 한 브로커는 돈만 챙겨 달아나고 부패한 관리는 뇌물을 요구하며 곳곳에는 검문소가 지키고 있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 자말과 에나야트는 버스에 숨어서, 혹은 걷거나 트럭의 바닥에 붙어서 힘겹게 계속 나아간다. 이란을 걸쳐서 간신히 터키에 도착해 일자리를 구하며 잠시 시름을 잊은 두 사람. 하지만 이들 앞에는 다시 컨테이너 박스에 갇혀 수십시간을 지내야 하는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런던까지의 로드 무비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영화는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는 관객들에게는 가슴을 헤집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로드 무비 특유의 이국의 풍광을 즐기는 철없음에서 시작한 영화 보기는 흐뭇한 웃음과 비정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거쳐 결국 비통함으로 절규하는 데 이른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의 어디엔가에 위치하고 있다. 카메라는 인물들 사이에 들어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고, 스토리에 따라 연기하고 있지만 배우들은 실제로 평생 동안 파키스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진짜 난민들이다. 15세 관람가.
방학이 그리 멀지 않았다. 매년 여름과 겨울방학 극장가에는 어김없이 애니메이션이 걸린다. 이번 여름에는 ‘메이드 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2편과 ‘메이드 인 코리아’ 애니메이션 2편이 나란히 관객을 찾아온다. 외국 애니메이션 2편은 제작면에서나 기술면에서나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동물과 로봇이라는 소재로 각각 개성있는 이야기를 풀어내 많은 관객들의 발길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애니메이션 2편은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전과 베스트셀러 등 친숙한 이야기를 능숙하게 전개하는 솜씨가 관람 포인트. ▲마다가스카=수박만큼 시원한 웃음을 원한다면 ‘마다가스카’가 어떨까. 뉴욕 센트럴파크동물원에서 호의호식하던 동물 4인방이 졸지에 야생 정글 마다가스카에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제작진의 면면과 주연배우로 동물들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웃음을 기대하게 한다. 목소리 연기도 벤 스틸러, 크리스 록, 데이비드 쉬머 등 개성이 뚜렷한 배우들이 맡았다. 이들이 모여 실사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을 찍는다고 생각하면 그림이 그려질 듯. 아는 사람은 한번 더 웃을 수 있는 패러디 코드도 곳곳에 숨어있다. ‘슈렉2’ ‘캐스트 어웨이’ ‘아메리칸 뷰티’ ‘혹성탈출’ 등의 명장면이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다. 최근 애니메이션마다 등장하는 뮤지컬 분위기의 군무도 볼 수 있다. 14일 개봉. ▲로봇=상상을 뛰어넘는 기계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그린 애니메이션 ‘로봇’도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스 에이지’의 크리스 웨지 감독이 제작한 이 작품은 지금까지 많이 봐왔던 인공지능 최첨단 로봇이 아닌 우리 주변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적인 로봇의 세계를 그렸다. 발명가를 꿈꾸는 로봇 로드니는 꿈을 이루기 위해 대도시를 찾는다. 그곳에서 수다스러운 고물 로봇 팬더를 만나 모험을 겪는다. 이완 맥그리거와 로빈 윌리엄스, 할리 베리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영화 내내 끊임없이 움직이며 펼쳐내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이다. 놀라운 디자인으로 설계된 거대한 로봇 도시의 구석구석과 각종 로봇을 구경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29일 개봉. ▲왕후 심청=남북한이 손을 잡고 제작한 첫번째 작품인 ‘왕후 심청’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고전 ‘심청전’에서 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지난해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ACF)에서 장편부문 그랑프리를 거머쥐기도 했다. 심학구 대감의 외동딸 청이는 듬직한 삽살개 단추와 말썽꾸러기 거위 가희, 졸린 눈을 껌뻑이는 거북이 터벙이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간다. 내용은 ‘심청전’을 따라갔지만 인물은 현대적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이 작품은 현재 남북한 동시개봉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심슨가족’의 애니메이터 넬슨 신 감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남북한 동시개봉성사 여부는 7월중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8월 초 개봉. ▲그리스 로마 신화-올림포스 가디언=‘올림포스 가디언’은 1천만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쉽게 설명해줘 재미도 있고 교육효과도 얻는, ‘일거양득’의 효과로 어린이들에게 다가가는 작품.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바다의 정령 암피트리테의 아들인 트리톤. 장난꾸러기 트리톤은 훌륭한 신이 되기 위한 훈련에는 관심도 없다. 그러던 중 트리톤에게 올림포스를 지키라는 임무가 주어지고 놀라운 활약을 펼친다.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등 12신과 아기 해룡 시드와 수다쟁이 헤르마 등 귀여운 캐릭터도 등장한다. 28일 개봉. -어썰트13 이들의 나른한 평화를 깨는 일이 발생한다. 근처를 지나던 범죄 호송 차량이 폭설로 목적지까지 가지 못한 채 이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 것. 죄수 중에는 경찰을 죽인 악명 높은 킬러 비숍(로렌스 피쉬번)도 끼어 있는데, 이들이 들어오면서 갑자기 일련의 무리들이 나타나 경찰서를 습격한다. 놀랍게도 그들은 경찰이다. 영화는 존 카펜터 감독의 1976년작 ‘분노의 13번가’를 리메이크했다. 전화, 전기마저 끊긴 고립무원의 경찰서가 공격받는다는 콘셉트에 매력을 느낀 장 프랑수아 리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어떻게 경찰서를 공격할 수 있나”라며 경악하는 심리학자의 대사 자체가 이 영화의 존재 이유인 것. 경찰서를 공격하는 것도 발칙한데 공격하는 자들이 경찰이다. 비숍과 손잡았다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부패한 경찰 조직이 비숍을 죽이기 위해 경찰서를 공격하는 것.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친절하게도 초반에 모두 알려주며 스릴러에는 관심 없음을 명확히 한다. 대신 아날로그 액션으로 승부했다. CG나 스턴트에 기대는 대신 몸으로 부딪히는 리얼 액션으로 특수효과에 익숙한 관객에게 신선한 맛을 주고자 했다. 영화의 또다른 재미는 경찰과의 대결을 위해 죄수들에게도 무기를 안겨준다는 것. 고립무원의 경찰서를 동트는 아침까지 사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다. 유치장에서 풀려나 무기를 손에 넣은 죄수들이 날고 뛰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일단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하지만 이들이 언제 변심할지는 모르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상황을 일찌감치 보여주고도 영화가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붙드는 것은 ‘배수의 진’을 친 상황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데서 나오는 얄팍한 신뢰가 나름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긴장감이 소재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7일 개봉, 18세 관람가. -분홍신 분홍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소녀적인 감수성과 동화적 느낌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할머니가 좋아했을 법한 분홍 고무신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분홍신은 그러나 전형적인 현대적인 구두다. 5~7㎝가량의 뒷굽이 있는 보편적인 스타일의 여성 구두. 색깔만 다른 색이었다면 특색이 전혀없을 수도 있는 그런 모양인데, 정말 특이하게도 요즘은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분홍색의 표피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영화 속 여자들은 모두 이 분홍신에 집착한다. 일단 한번 보기만 하면 독점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 물불 안 가린다. 또 이 신을 신고 있으면 마냥 행복해지는 느낌이 든다. 주인공 선재(김혜수)와 그의 딸 태수(박연아), 그리고 선재의 후배 미희(고수희)가 모두 그러하다. 여기에 다섯 명의 여자가 더 등장한다. 과거 속 세명의 여성과 두명의 여고생.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힘을 줬다. 하나는 어두운 색감이고, 또 하나는 금속성 음향효과다. 분홍신을 강조하기 위해 나머지 부분은 모두 어둡게 처리했다. 대부분의 신이 밤 신이고 선재의 집도 어두컴컴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김혜수의 빨간 입술과 분홍신만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 두 붉은 색은 여성 욕망의 상징이다. 아름다워지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 남편이 바람 핀 사실을 알게 된 선재로서는 반대급부로 더욱 화려한 것에 집착하게된다. 그녀가 안과 의사라는 사실 또한 종종 클로즈 업되는 눈과 함께 영화의 ‘차가운 시선’을 강조한다. 그러나 색감이 눈을 사로잡는다면 금속성의 날카로운 음향은 귀를 자극한다. 분홍신을 신고 또각또각 걷는 소리도 부분적으로 공포를 주지만 연신 이어지는 거울이 깨지는 듯한 ‘쇳소리’는 대단히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이런 쇳소리가 유치하면서도 고민 없는 선택 같기도 하지만 나름의 효과는 기본적으로 발휘한다. 버려진 분홍신을 신은 여자들이 이상 기운에 휩싸이고, 그 분홍신을 친구 혹은 엄마로부터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여자들은 목숨을 잃는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발목이 잘린 채로. 발목이 잘릴 때는 어김없이 쇳소리가 들려온다. ‘토막살인’의 끔찍한 효과. 분홍신을 탐낸 무용수가 결국은 멈추지 않는 분홍신 때문에 파멸하는 이야기. 그때의 원죄가 60여년이 흐른 현대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설정으로 관객의 시선을 따돌린 영화는 후반부 반전을 몰아친다. 15세 관람가, 30일 개봉. -설경구가 차기작으로 멜로 영화 ‘사랑을 놓치다’에 출연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송윤아와 함께 멜로 연기를 펼치는데 대학시절부터 10년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온 두 남녀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11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7월 한국영화·외화 기대작 겨루기 극장가가 여름 성수기를 향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있는 가운데 7월 한 달간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의 기대작들이 대거 개봉한다. 전통적으로 7월 극장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강세를 띠는 시기다. 올해 7월 극장가도 ‘우주전쟁’과 ‘아일랜드’ 등 할리우드 영화와 ‘천군’, ‘친절한 금자씨’ 등 한국 영화 사이의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이들 영화 외에도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나 토종 공포물 ‘여고괴담4:목소리’ 같은 복병들 역시 ‘깜짝’ 흥행을 노리고 여름 극장가의 관객들을 만나며, 8월의 첫주말에는 또 다른 기대작 ‘웰컴투 동막골’도 ‘제왕’의 바통을 이어받으려고 대기 중이다. ●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 7일 개봉)=국내 극장에서 스티븐스필버그와 톰 크루즈 만한 흥행 보증 수표가 또 있을까? 이들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후 다시 뭉쳐 만든 ‘우주전쟁’은 한국을 포함해 올해 극장가에서 두말할 것 없는 최고의 기대작이다. 영화의 원작은 1898년 처음 출판된 동명의 원작 소설. 특히 30년대에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라디오 드라마가 방송돼 이를 현실과 혼동한 시민들에 의해 일대 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영화는 외계인들의 침략과 이에 맞서는 지구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날 다리가 셋 달린 정체 불명의 괴물이 나타나며 외계인들의 지구침공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주말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보내게 된 이혼남 레이(톰 크루즈). 그는 외계인들의 침략을 피해 아이들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다. ● 아일랜드(The Island, 22일 개봉)=할리우드의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불릴 만큼 흥행 감각을 인정받고 있는 마이클 베이 감독이 4년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나쁜 녀석들’ 시리즈와 ‘더 락’, ‘아마겟돈’, ‘진주만’ 등을 만든 감독 특유의 거침없는 폭파장면과 웅장한 화면에 SF물 특유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세계 묘사가 더해졌다.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자신이 살고 있던 곳과 지구에서 오염되지 않은 유일한 희망의 땅 아일랜드가 모두 허상이었음을 깨달은 복제인간 링컨(이완 맥그리거)과 조단(스칼렛 요한슨)이 자신들을 만든 창조자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 천군(15일 개봉)=싸이더스가 85억원을 투입한 대작 프로젝트로 남북한 군인들과 핵물리학자가 우연히 과거로 돌아가 젊은 시절의 이순신 장군을 만난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남북한 공동으로 극비리에 개발한 핵무기가 미국에 양도되기로 결정된다. 이에 불만을 품은 북한 장교 민길은 핵물리학자 수연을 납치하고 이 핵무기를 빼돌린다. 그를 쫓는 남한 장교 정우 일행과 민길은 대치 중에 갑자기 400여 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이들이 가게 된 곳은 압록강 지역 국경 마을. 그 곳에는 막 과거시험에 떨어져 낙담한 채 한량처럼 생활하는 청년 이순신이 있다. 박중훈, 김승우, 황정민, 공효진 등이 출연하며 신인 민준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 친절한 금자씨(29일 개봉)=박찬욱 감독의 신작으로 ‘봄날은 간다’ 이후 이영애가 4년만에 출연하는 영화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기대작. 박찬욱 감독에게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에 이은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이다. 영화는 13년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여자 금자씨(이영애)가 자신을 가둔 한 남자에 대해 벌이는 복수극을 다룬다. 그동안 자세한 스토리나 세부적인 설정이 일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영화는 ‘올드보이’에 못지않은 스타일리시한 화면과 잔인하지 않으면서도 임팩트가 강한 복수극이 담겨있다는 것 정도만 소문으로 알려져 있다. ● 여고괴담4:목소리(15일 개봉)=공포영화 제작붐을 이끈 ‘여고괴담’ 시리즈의 네번째 작품. 그동안 전편들이 주목했던 것은 ‘왕따’와 입시경쟁, 억압된 교육 현실, 소녀들 사이의 관계 등. 4편은 죽은 친구의 목소리를 듣게 된 한 여고생에게 다가서는 공포를 담고 있다. 어느날 여고생 영언이 갑자기 살해되고 단짝 친구 선민은 이후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오직 혼자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에 두려운 선민. 그러던 중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은 채로 발견된다. 신인 최익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김옥빈, 서지혜, 차예련, 김서형 등이 출연한다. ● 마다가스카(Madagascar, 14일 개봉)=2005년 애니메이션 중 최단기간 북미 흥행 1억 달러(약 1천억원)를 돌파한 영화사 드림웍스의 야심작. 정글보다 도시가 더 좋은 뉴욕 토박이 동물들의 모험담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센트럴파크 동물원에서 태어나 살며 정글 구경은 한 번도 못해본 뉴욕 토박이 사자 알렉스와 그의 친구인 얼룩말 마티, 기린 멜먼, 하마 글로리아 등이 주요 캐릭터다. ‘캐스트 어웨이’나 ‘아메리칸 뷰티’, ‘혹성탈출’, ‘플래툰’에서부터 다른 애니메이션인 ‘슈렉2’까지 다양한 영화의 패러디가 볼거리. 벤 스틸러와 크리스 룩 등 더빙을 맡은 스타급 연기자들도 화려하다. 국내에서는 송강호가 한국어 더빙을 맡아 화제가 됐다. ● 웰컴투 동막골(8월4일 개봉)=총 제작비 80억원 규모의 대작으로 대학로의 인기 연극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는 이 마을에 흘러들어온 국군 현철과 인민군 수화, 미군 스미스 대위가 마을 주민들과 생활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마을 사람들은 총의 용도를 겨우 알까 모를까 할 정도로 순박하고 이 마을에 들어온 적들은 서로 다른 이념을 가졌지만 마을사람들에 동화돼 어느새 한 편이 되어버린다. CF 감독 출신인 박광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흥미로운 소재와 줄거리에 감각적인 화면이 가미됐다. 신하균, 정재영, 강혜정을 비롯해 미국 배우 스티브 태슐러, 임하룡 등이 호흡을 맞췄다. △마더 ‘딸의 남자’와 위험한 사랑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규정하는 엄마는 모성애가 극대화되는 대신 여성성은 거세된 느낌을 준다.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은 모든 아들이 알고는 있지만 인정하기 싫어하는 그런 사실일 듯하다. 24일 개봉한 영화 ‘마더’(The Mother)는 ‘엄마도 여자다’라는 당연하면서도 도발적인 소재에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슬픔을 담담하게 묻어나게 하고 있다. 대도시의 외곽지역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온 메이(앤 레이드). 어느새 60대 후반의 나이가 된 그의 삶은 말수 적은 남편처럼 평온해 보인다. 런던에 들러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 그리고 딸을 만나는 메이와 남편. 하지만 갑자기 나이 든 남편이 사망하면서 메이는 전에 없던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에게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혼자 지내며 묵묵히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메이는 런던으로 돌아와 아들과 딸의 집에 머문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그만큼 돈에 대한 집착이 심한 아들 내외, 그리고 작가를 꿈꾸지만 자신의 적성에 불안을 느끼는 딸, 의례적인 인사만을 던지고 숨어버리는 손자, 손녀들. 삶을 더 무료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메이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의 친구이며 딸의 연인인 유부남 대런(대니얼 크레이그)과 이야기를 나누던 메이는 갑작스럽게 그와 키스를 나눈다. 대학 중퇴 학력에 곤란한 경제 상황, 마약까지 흡입하며 히피적인 삶은 사는 그는 메이의 무료함에 생기를 가져다주고 둘은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놀랍게도 영화의 감독은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의 로맨틱 코미디 ‘노팅힐’을 만들었던 로저 미셀. 감독은 전작의 발랄함은 제처놓았지만 인물의 감정선에 충실한 장점을 그대로 유지한 채 줄거리를 이끌어간다. 상영시간 112분. 18세 이상 관람가.
△녹색의자 일단 영화에는 녹색의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녹색의자에 대한 언급도 없다. 그런데 왜 제목은 녹색의자일까. 이에 대해 박철수 감독은 “녹색은 내 판타지다. 또 개인적으로 의자를 굉장히 좋아한다. 의자는 내 콤플렉스이기도 하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 두 가지 이미지가 영화 속에서 조화를 이루기 바랬다. 물론 영화 속에서 녹색의자를 찾으려면 없다. 그것은 내 의식 속에 있다”고 말했다. 말 장난 같지만 박 감독의 이러한 태도는 어떤 식으로든 관객들에게 녹색의자에 대한 관념적 해석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이 섹스어필이든, 휴식이든, 안정이든 말이다. 이 영화는 확실히 독특하다. 32세 유부녀와 19세 고등학생이 눈 맞은, 질펀하고도 위험한 사랑 이야기인 줄로만 알고 극장에 들어갔다가는 별천지를 경험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진한 멜로인 동시에 심리 치료극이고 황당한 만담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스토리의 굴레를 벗어나 형식미와 실험주의를 파고든 박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거침없다. 이야기는 분명 두 남녀의 금기된 사랑을 그리지만 영화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공처럼 튀어오른다. 질펀한 정사가 숨돌릴 틈 없이 대담하게 펼쳐지다가 “내가 한때 ‘화산고’라는 영화에 출연할 뻔 했어요”라며 남자 주인공이 난데없이 텀블링을 한다. 둘을 추적하는 주간지 기자의 모습이 희화화되고, 둘의 ‘비정상적인 관계’에 대한 심리치료극이 파티의 형식으로 펼쳐진다. 이러한 ‘난데없음’은 필름이 툭툭 끊기는 듯한 효과(?)를 준다. 박철수 감독은 “굉장히 의도적으로 유치함을 강조했다. 영화 만드는 이와 보는이의 시선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지 않나”면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파티 장면 하나를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영화는 2000년 12월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30대 유부녀가 남자 고등학생과 성관계를 가진 후 구속된 사건이었다. 박 감독은 신문 사회면의 기사에서 출발, 유부녀가 감옥에서 나온 이후의 상황을 풀어냈다. 사회봉사 100시간의 명령을 받고 출소한 문희(서정 분)의 앞에 현(심지호 분)이 나타난다. 현은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연령이 되려면 앞으로도 28일이 남은, ‘여전히’ 미성년자다. 둘의 행동이 사랑인지 아닌지는 영화 막판 펼쳐지는 와인 파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양측 가족과 문희의 전 남편 등이 등장하는 이 시퀀스는 흡사 100분 토론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황당하면서도 독특한 재미를 준다. 무척 진지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도 가볍다. 박 감독은 “적당히 나이든 감독이 성을 통한 조크를 했다고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그말이 정답이다. 10일 개봉, 18세 관람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거두절미하고 스타 캐스팅의 묘미와 파워를 깔끔하게 증명해 보이는 영화다. 브래드 피트(42)와 안젤리나 졸리(30). 세상을 사로잡은 두 선남선녀의 화끈하고 섹시한 로맨틱 코미디에 구구절절 설명은 여름날 외투처럼 거추장스럽다. 게다가 ‘본 아이덴티티’의 덕 리만 감독은 두 스타의 우성인자를 극대화해 모양새뿐 아니라 맛도 좋은 오락영화를 만들었다. 도입부부터 매력적이다. 결혼 6년차, 부부 클리닉 상담을 받고 있는 스미스 부부의 모습이 산뜻하게 카메라에 잡힌다. 마치 쇼윈도에 진열된 명품 같은 모습. 그러나 둘의 얼굴에서는 참을 수 없는 권태가 묻어난다. 천하의 섹시 스타 피트와 졸리가 이렇듯 부부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진공청소기처럼 관객을 순식간에 흡입한다. 각각 60명과 312명을 저 세상으로 보낸 킬러들이지만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것이다. 존 스미스와 제인 스미스는 베테랑 킬러다. 그러나 둘은 서로의 신분을 모른다. 첫눈에 반해 결혼에 골인한 둘은 각자 상대방에게 건축업자와 컴퓨터 전문가라는 직업으로 위장한다. 그런 둘이 동일한 표적 사냥 현장에서 맞닥뜨린다. 결혼 6년만에야 신분이 탄로난 것. 기막히고 코막힌 상황도 잠시. 둘에게는 각각 48시간 내에 상대 킬러를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권태기의 부부는 서로에게 무지막지한 총질을 해댄다. 리만 감독은 ‘본 아이덴티티’에서 갈고 닦은 액션 연출 기술을 이번에도 효과적으로 살렸다. 존과 제인이 사용하는 무기는 여느 액션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최첨단. 그중 엉성한 시장가방 같은 졸리 핸드백의 변신은 압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로맨틱 코미디인 것. 이렇듯 박진감 넘치는 전개 속에서도 화면에서는 시종 패션쇼가 펼쳐진다. 흰색티 하나를 걸치고 있어도 눈이 부시는 두 주인공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멋을 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볼거리를 능가하는 흥행요소가 있으니 바로 아내에게는 언제나 한수 아래인 어리숙한 피트의 모습이다. ‘트로이’의 아킬레스가 아내 앞에서 쩔쩔 매는 설정은 극적 재미를 극대화한다. 베스트 킬러지만 언제나 아내 보다는 한발씩 늦는 피트의 모습은 지금까지 그가 맡아온 캐릭터 중 가장 살갑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내를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지고 들어가는 것. 결정적인 순간마다 졸리에게 양보를 하거나 그녀를 배려하는 피트의 모습이 스크린 곳곳에 배치돼 있다. 킬러끼리의 허황한 총질에 그칠 수도 있는 영화가 땅에 발을 붙이는 것은 이렇듯 피트의 눈에 사랑을 채운 덕분. 여심(女心) 공략에 이보다 좋은 무기는 없다. ‘킬빌’에서 잔혹함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로맨스를 가득 채워넣었다고나 할까. 마사 스튜어트가 꿈꾸는 예쁜 가정에 대한 판타지를 비꼬는 각종 장치와 “여자는 우리 엄마밖에 못 믿어”라는 동료 킬러의 대사도 감칠맛난다. 부부의 성이 ‘스미스(Smith)’인 까닭도 귀엽다. 17일 개봉, 15세 관람가. △‘천군’ ‘청연’ ‘태풍’ 어깨가 무겁다 하반기 블록버스터들의 어깨가 무겁다. 이들의 성패가 영화계 돈 가뭄 현상에 무시못할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개봉 대기 중인 블록버스터는 ‘천군’(감독 민준기, 제작 싸이더스), ‘태풍’(감독 곽경택, 제작 진인사필름), ‘청연’(감독 윤종찬, 제작 코리아픽쳐스). 이중 ‘천군’의 개봉일이 7월 15일로 최근 확정됐다. ‘태풍’과 ‘청연’은 연말에 격돌할 전망이다. 이들의 어깨는 지금 상당히 무겁다. 가뜩이나 ‘시장’이 예년 같지 못한데다가 앞서 개봉한 대작들의 성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 제작비 85억원이 든 ‘남극일기’는 지난 5일까지 100만명이 들었다. 극장에서 모아야하는 손님의 1/3 밖에 모으지 못했는데 벌써 퇴장 준비를 하고 있다. 그에 앞서 지난해 12월 선보인 100억원 대작 ‘역도산’도 극장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이렇다보니 올해 남은 세 작품에 대한 시선도 낙관적이지 않다. -천군 제작비는 85억원이다. 박중훈, 김승우 등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이순신을 소재로 한 사극 판타지극이라는 설명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방황하던 청년 시절의 이순신을 새롭게 조명한 이 영화의 시도는 재기발랄함과 위험천만함 사이를 걷고 있다. 광화문에 서 있는 늠름한 이순신이 아니라 봉두난발 좌충우돌 이순신이라는 발랄한 소재를 얼마만큼 힘있고 진실하게 끌고 갔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듯. -청연에도 기대가 쏠린다. 일련의 블록버스터들 중 유일하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다. 장진영과 김주혁이 주인공을 맡아 미국 일본 중국을 누비며 촬영했다. 경비행기가 주요 소재인만큼 CG 등 후반작업에 돈이 많이 들어가 이미 제작비가 100억원을 넘어섰다. -태풍 무려 150억원이 투입된다. 지금까지 제작된 한국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 장동건, 이정재라는 걸출한 스타에 곽경택 감독의 조합이 기대감을 드높이지만 이 영화라고 걱정을 비켜갈 수는 없다. 한반도에 테러를 감행하려는 해적과 이를 저지하는 해군 장교의 대결을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 그나마 대규모 액션 신이 많아 블록버스터로서의 모양새는 가장 갖췄으나 드라마가 살지 못하면 액션도 빛을 발하지 못하니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현재 75% 촬영이 진행됐다. 이들 블록버스터가 하늘에서 제대로 터져 돈벼락을 내릴 것인지 아니면 불발탄으로 그칠 지, 지금 영화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KBS1TV ‘환경스페셜’(매주 수요일 오후 10시)이 8일 밤 ‘2차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 과정을 공개한다. 환경부는 2001년 ‘장군이’ ‘반돌이’ 등으로 대표되는 ‘1차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곰들이 지리산 자연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로 끝났다. KBS를 통해 공개되는 2차 프로젝트는 지난해 9월 지리산에 방사된 러시아산 반달가슴곰 6마리의 자연적응 과정이다. ‘환경스페셜’은 반달가슴곰들의 방사에서 동면, 동면이 끝난 직후 먹이를 구하는 활동 등을 방송한다. 방사에서 동면에 들어가는 과정은 국립공원 관리공단 반달가슴곰 관리팀의 촬영분을 방송하고 동면과정과 겨울잠에서 깨어난 이후의 적응활동은 KBS가 직접 촬영했다. 제작진은 지난 3월 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 ‘천왕이’ ‘칠선이’ ‘만복이’의 생태를 촬영했다. 프로그램의 초점은 ‘천왕이’에게 맞춰졌다. 안성진PD는 “‘천왕이’가 잠자리를 만드는 모습, 나무에 올라가 나무 열매나 꽃잎 등을 따먹는 모습, 개미 잡는 모습, 물 마시는 모습 등을 생생하게 담았다”면서 “겨울잠에서 깨어난 이후 낙엽 등으로 만드는 곰의 잠자리인 ‘곰탱이’ 만드는 과정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다”고 말했다. ‘환경스페셜’은 지난달 중순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시레토코 국립공원을 방문, 곰과 인간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 등을 취재했다. 안 PD는 “인간과 곰이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일본의 예가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의 성공에 도움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
■연애의 목적 뻔뻔男과 앙큼女 발칙한 사랑 고등학교 교사 유림(박해일 분)에게는 6년 사귄 교사 애인이 있다. 그는 적당히 사회적이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그의 앞에 교생 홍(강혜정 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자식 같고 부모 같은’ 애인과 결혼해서 크게 모난 것 없는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홍의 출현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홍으로 인해, 그러니까 여자 때문에 멀쩡한 남자의 인생이 망가진 것이 아닌가 싶다. 불륜 혹은 치정 스토리에서 어김없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시선이다. 폭력적이고 남성 우위적인 시선. 이런 사건에서 여자는 대부분 ‘스토커’로 둔갑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조금 더 들여다보자. 홍에게는 번듯한 의사 애인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유림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럴 때 진실과 사실은 평행선을 달린다. 제목이 흥미롭다. 순진함을 가장한 발칙함이다. ‘연애의 목적’이라니. 사랑의 순수성을 처음부터 무시하는 뉘앙스다. 과연 연애의 목적은 무엇일까. 결혼? 섹스? 위안? 하긴 그렇다. 목적도 없이 연애하란 말인가. ‘사랑’ 그 자체도 ‘목적’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설득력 있게 드라마를 끌고 나간다. 누구에게나 빈틈은 있다. 정신나간 것 같은 유림의 저돌적인 애정공세가 홍에게 먹히는 까닭은 홍에게 치유하기 힘든 사랑의 상처가 있기 때문. 홍의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실수로 모두 삭제해 버리는 유림의 기막힌 행동도 어쩌면 홍에게는 아픈 기억을 모두 지워주는 ‘운명적’ 사랑일 수 있다. “같이 자자”, “키스 하자”는 유림의 유아적인 추근덕거림 역시 현재의 애인이 채워주지 못하는 빈자리를 치고 들어온다. 홍의 의사 애인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친구들 앞에서 거짓으로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홍이 유림의 행동에 ‘학을 떼면서도’ 밀고 들어오는 그의 입술과 응석을 때로는 받아주는 것은 그러한심리. 영화가 그저 그런 청춘 연애극에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홍의 가슴에 뚫린 구멍과 그것을 꿰차는 유림의 행동은 명백히 ‘18세 관람가’다. 소녀적 환상에 호소한 한가한 연애담이 아니라 진한 성인 버전인 것이다. 그 고민도, 그 감성도, 그 섹스도 말이다. 이 지점에서 두 배우의 연기는 분명 눈길을 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영화에 올인한 노력이 스크린에 그대로 묻어난다. 기존의 해맑은 이미지에 보기 좋게 ‘배반을 때린’ 박해일의 변신도 그러하고, 강혜정의 아낌없는 연기도 또래 연기자들과 차별을 이룬다. 특히 칭얼대는 유림의 행동은 사랑의 욕망이 요의를 느끼는데도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자의 절박하고 미칠 것 같은 심정과 다를 바 없음을 전한다. 10일 개봉. ■간큰가족 통일이여 내게오라! 단도직입적으로 김수로가 웃기고 신구가 울린다. 웃고 울리는 극단적인 감정이 일련의 슬랩스틱 코미디 속에 버무려져 있다. 그런 영화가 범작들에 비해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소재 덕분이다. 지구상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이기에 가능한 ‘통일 자작극’을 휴먼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한 것이다. 죽기 전에 북한에 있는 아내와 딸을 만나는 것이 소원인 실향민 김노인(신구 분)이 어느날 몸져눕는다. 설상가상으로 간암 말기 판정을 받는데, 그와 동시에 그에게 50억원의 재산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사채업자에게 기는 큰 아들(감우성 분)로서는 희소식. 그러나 문제가 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통일이 되야만 그 재산이 자식들에게 상속된다는 점이다. ‘간큰가족’의 자작극은 여기서 출발한다. 50억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전에 통일이 된 것처럼 꾸며야하는 것. 큰 아들은 3류 에로비디오감독인 동생(김수로 분)에게 가짜 통일 뉴스를 만들게 하고 자작극을 시작한다. 그러나 다분히 한시적일 것이라 예상했던 이 자작극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병상에서 오늘내일 하던 아버지가 가짜 통일 뉴스를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조명남 감독의 1997년 당시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 ‘우리의 소원은’에서 출발한다. 항간에 떠도는 독일영화 ‘굿바이 레닌’(2003년)과의 표절시비를 일거에 잠재우는 증거. 그러나 둘 사이의 표절 시비는 애초부터 무의미하다. 통일된 독일을 무대로 여전히 분단 상황을 꾸미는 ‘굿바이 레닌’이나 그 반대를 그린 ‘간큰가족’의 이야기는 한민족, 분단국가라는 특수상황이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 특수 상황 속 보편적 상상인 것이다. 통일뉴스, 남북 탁구대회, 평양교예단 공연 등 통일된 조국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김 노인의 바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족들은 몸을 던져가며 진땀을 뺀다. 다행히 이들의 가감없는 코미디는 식상함 보다는 정겨움을 안겨준다. 변장한 가족들끼리의 가짜 탁구시합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자 공도 없이 탁구 대회를 벌이는 광경은 그중 빛나는 아이디어. 김 노인의 시력이 나쁜 것에 착안, “공이 너무 빨라 안 보이는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사는 소재의 신선함을 뒷받침해 나간다. 9일 개봉, 12세 관람가.
■안녕, 형아 “형, 내가 지켜줄게”라는 카피의 생명보험 CF에서 설경구는 병상에 있는 아픈 형에게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버리고. 제주도 푸른밤 그 별 아래~”라는 노래를 불러준다. 빡빡머리 형아 내가 구할테야! 영화 ‘안녕, 형아’는 바로 그 CF처럼 아픈 형을 둔 동생의 이야기다. 다만 영화속 형제의 나이가 CF 주인공들보다 스무살 가량 어릴 뿐. 영화 속 9살 꼬마는 12살형에게 ‘제주도’ 대신 ‘유희왕 카드’를 선물한다. 큰 마음을 먹고서. 아픈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만큼 찢어지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픈 아이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부모의 시선은 새로울 것이 없다. 보편적이지만 새삼스럽지 않은 것. 이에 반해 ‘안녕, 형아’가 선택한 철부지 동생의 시선은 독특하다. 아픈 형으로 인해 침울해지는 영화의 분위기를 상쇄하는 동시에 제약없는 동심의 세계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뇌종양에 걸린 장한별(서대한 분). 그의 모습은 예상 가능한 수순대로 진행된다. 심하게 아픈 증세를 보이다 결국 삭발을 하고, 소아암병동에서 위험한 고비를 넘나든다. 맞벌이 부모는 아들의 병간호에 허리가 휘고 눈물샘이 마를 날이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 영화는 최고의 골목대장인 9살 한이(박지빈 분)가 아픈 형 한별과 그로인한 가족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렌즈를 맞췄다. 말썽부리다 그만 바지에 똥을 싸버린 한이를 씻겨주고 그의 온갖 장난을 받아주던 한별. 한이는 그렇게 한없이 착한 형이 아파서 입원하자 심심해 한다. 질투와 심술도 부린다. 부모의 관심이 온통 형에게 쏠리는데다, 형은 병원에서 사귄 시골아이 욱이에게 잘해주기 때문. 한이는 자기 분에 못 이겨 한별을 때리기도 하고 밀치기도 한다. 이러한 한이의 행동은 영화가 단순한 최루성 드라마로 흐르는 것을 막는다. 영화는 변화한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아홉살 꼬마의 움직임을 어드밴처 무비로 표현하는 영리함을 보여줬다. 자신만을 알던 꼬마가 누군가를 배려하고 돕겠다는 마음을 먹는 과정이 꽤 역동적으로 표현된 것. 특히 울창한 숲속을 뛰어다니고 ‘타잔 아저씨’를 만나 ‘날아다니는’ 모습은 우울해지려는 관객의 기분을 밝게 만든다. 마치 ‘E.T.’를 보는 느낌. 이기적인 한이에게 형의 병치레는 ‘외계’를 만나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다행히 그 ‘외계’는 한이에게 성장의 자양분이 된다. 그러나 영화는 지나치게 영리하려 했다. 아무리 그래도 9살 꼬마의 한계는 분명한데 스크린 속 한이의 모습은 자로 잰 듯 빈틈이 없다. 울고 싶은데, 힘든데 계속 ‘씩씩하자’고 파이팅을 외치는 것 같다. 27일 개봉, 전체관람가./연합 ■링2 저주의 원혼 깃든 사마라와 ‘맞장’ 지금까지 미국에서 개봉한 공포영화 리메이크작 흥행순위를 살펴보면 베스트 5 내에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 무려 3편이나 들어있다. ‘링’(2002), ‘링2’(2005)와 ‘그루지’2004)가 그것. 각각 1위, 5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공포영화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할리우드판 ‘링2’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나오미 왓츠와 데이비드 도프만이 모자지간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감독은 바뀌었다. 전편은 미국의 고어 버빈스키가 연출했지만 이번 속편은 원작의 감독 나카타 히데오가 맡았다. ‘그루지’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과 마찬가지로 나카타 히데오 역시 할리우드 시스템에 일본 공포영화의 감각을 접목한 것.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할리우드판 ‘링2’에서도 특유의 기분 나쁜 스산함을 유지했다. 일본판과 마찬가지로 링의 원혼인 사마라의 정체가 밝혀진다. 영화는 들어가는 문에서부터 긴장시킨다. 어두운 밤 바다의 검고 푸른 물의 출렁거림을 반복적으로 비추며 중간중간 검은 화면을 내보내는 것. 그 검은 화면에서 관객은 순간 숨을 멎었다가 다시 일렁이는 바닷물이 화면을 채우면 숨을 내뱉게 된다. 효과적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인상적인 도입부다. 레이첼은 사마라의 저주를 피해 에이단을 데리고 소도시로 이사한다. 그러나 사마라는 그곳까지 이들 모자를 쫓아온다. 에이단의 체온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익사직전의 사람처럼 34.1℃로 떨어지고 사마라는 이제 공공연히 이들 앞에 나타난다. 결국 레이첼은 피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사마라 퇴치에 나서고, 사마라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친다. 6월 3일 개봉, 15세 관람가. ■PM 11:14 이 영화의 키워드는 우연과 소동이다. 모든 일은 우발적으로 발생하고 결과는 엄청난 소동으로 이어진다. 한가지 필연이 있다면 성급함이다. 이 영화의 교훈이라면 ‘성급함은 화를 자초한다’는 것. 또 하나. ‘밤길운전 조심하자’. 한날 한시라도 그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수억가지다. 영화를 관통하는 ‘밤 11시 14분’ 역시 등장인물의 머리 수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쪼개진다. 이 영화의 오락성은 그 모든 사건을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하면서 빛을 발한다. 덕분에 러닝타임 85분의 이 짧은 스릴러는 경쾌한 몸집을 유지한다. 영화는 ‘일단 뛰어’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처럼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과 유사한 모양새다. 등장인물 모두가 돈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시작은 돈이고, 주인공들이 겪는 소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만취한 채 운전하던 잭은 그만 젊은 남성을 치고, 여자친구의 임신중절 수술비를 구해야하는 더피는 편의점에서 권총 강도를 모의한다. 집 근처에서 처참한 시체를 발견한 프랭크는 시체가 딸의 남자친구임을 알고는 범죄를 은폐하려 하고, 폭주족 ‘양아치’ 셋은 도로 위에서 온갖 ‘미친 짓’을 벌이다가 그만 한 여자를 치어버린다. 이 모든 사건이 한 마을에서 벌어지고 그 시각은 밤 11시 14분이다. 영화는 이들 사건을 긴박하게 보여주며 초반 40분을 확 끌어당기는 데 성공한다. 6월 2일 개봉, 15세 관람가.
■‘스타워즈:에피소드Ⅲ’ ‘별들의 전쟁’ 28년 대장정 끝내다 ‘스타워즈:에피소드Ⅲ’는 경쟁의 긍정적인 효과를 여실히 증명하는 작품이다. 만일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없었더라도 조지 루카스 감독이 이처럼 완벽한 작품을 선보였을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상상력과 CG의 왕이지만 경쟁 상대가 없었다면 스스로의 목표치는 지금보다 다소 낮았을지도 모른다. 위용을 드러낸 ‘스타워즈’ 시리즈의 완결판 ‘에피소드Ⅲ’는 예상대로 대단했다. ‘에피소드Ⅳ·Ⅴ·Ⅵ’이 먼저 나온, 결말을 미리 아는 상태에서 보는 영화는 태생부터 벌점을 먹고 들어가는 경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우주 공간을 중심으로 상상력과 CG의 향연을 펼치는 스타워즈만의 매력 역시 그간 숱한 ‘아류작’들을 통해 희석된 상태. 그러나 돈과 집념은 많은 부분을 해결했다. 1977년에 선보인 ‘에피소드Ⅵ’ 이후 무려 28년만에 등장하는 ‘에피소드Ⅲ’는 28년의 세월이 주는 진보와 성장의 긍정적인 자양분만을 듬뿍 빨아들인 모습이었다. 마치 고관대작 가계의 우성인자만을 물려받은 모습. 2002년 ‘에피소드Ⅱ’에 이어 선보인 100% 디지털 화면은 넋을 쏙 빼놓을만큼 매끈하고 매력적이다. 조지 루카스는 조(兆) 단위의 재산을 굴리는 ‘그릇’ 답게 CG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여기에는 2천300개에 달하는 특수효과가 등장한다. 28년간 변함없는 인기를 누린 ‘스타워즈’의 드라마는 이번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결말이 나와 있음에도 ‘에피소드Ⅲ’가 흥미진진할 수 있는 것은 ‘스타워즈’ 시리즈 중 가장 궁금한 대목에 대한 비밀을 다루기 때문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아이콘은 역시 분노와 욕망이다. 덧붙여 사랑까지. 파드메가 임신을 알리자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아나킨이 시스에 굴복하는 것도 사랑 때문이고, 자신의 스승인 오비완을 죽이려 덤비는 것 역시눈 먼 욕망 때문이다. 아직은 미성숙한 아나킨이 수많은 감정 중 가장 먼저 분노를 키우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불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현란한 화면 중에서도 현기증을 일으키는 전투기 조종신과 화산 용암이 분출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오비완과 아나킨의 결투신은 압권이다. 또한 화면 곳곳에 숨어있는 각종 캐릭터 디자인의 향연도 쏠쏠한 눈요기. 사랑을 잃는 두려움은 악마와도 손을 잡게하고, 1인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혈육의 정을 나눈 동료도 몰라보게 한다. ‘에피소드Ⅲ’가 ‘스타워즈’ 시리즈 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정점에 이른 특수효과와 함께 단순 명료하면서도 보편적인 메시지가 감성을 효과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26일 개봉, 전체관람가. ■극장전 뒤섞인 ‘영화와 현실’ 선배의 영화를 보고 나온 극장 앞, 영화 속 여주인공과 우연히 마주친 한 남자의 하루 이야기를 담은 영화. 홍상수 특유의 현실과 밀착된 대사는 영화 ‘극장전’에서도 여전한 특징이다. 영화는 ‘영화 속 영화’와 그 영화의 영향 속에서 현실의 하루를 지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두 단락으로 나뉘어 있다. 올해 칸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된 ‘극장전’이 27일 개봉된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96년) 이후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화란(그것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영화다. 영화 속 영화는 감독 자신의 영화처럼 현실에 ‘처절하게’ 가까운, 그래서 ‘귀여운’(영화 속의 표현대로)영화고, 이 영화를 본 영화 속의 남자는 자신의 현실과 영화 속 이야기를 착각한다. 이쯤 되니 주인공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냥 실제였고 어떤 부분이 영화를 의식한 행동일까.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은 수능시험을 막 마친 상원(이기우)이다. 형에게 용돈을 받아 주머니가 두둑한 그날, 우연히 안경점에 일하고 있는 첫사랑 영실(엄지원)을 만난다. ‘담임이 미친놈이라’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영실. 어색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술자리에 이어 여관에까지 동행하지만 이날따라 상원의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안되는데 왜 자꾸 하려고 그래”. 영실의 이 말에 상원의 입에서는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뚱맞은’ 말이 튀어나온다. 이 영화를 본 동수(김상경). 영화는 암투병 중인 선배 형이 감독했던 단편이다. 마침 극장에서는 그 선배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선 극장 앞, 뜻밖에 영화 속 여주인공인 영실이 있다.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가는 그녀를 뒤로하고 커피숍을 들른 그는 저녁에 그 선배의 후원모임이 열린다는 연락을 받지만 선뜻 내키지 않는다. 다시 무작정 걷게 된 거리에서 동수는 영화 속의 안경점에서 다시 영실과 마주친다.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영실에게 동수는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네고, 영실은 그런대로 성의있게 그의 말상대를 해준다. 영화는 감독의 작품들 중 가장 말끔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는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을 듯하다. 영화와 현실 속의 두 주인공은 누가 모방자며 누가 피모방자인지, 어떤 쪽이 영화고 어떤 쪽이 현실인지를 오가다가 결국 ‘둘 다’로 수렴된다. ‘외계인의 지구인 구경하기’ 같은 감독의 시선은 한결 유쾌해진 반면 덜 냉소적이 됐다. 이 부분에서는 ‘생활의 발견’ 이후 다시 홍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는 김상경의 덕이 크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역시 그의 영화에는 김상경이 제일 좋았다는 기억을 새삼 떠올릴 수밖에 없다.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89분.
■남극일기 이게 남극이다. 6개월은 밤, 6개월은 낮이 이어지는 곳. 눈 앞에는 온통 하얀색 뿐, 하얀 산과 하얀 바람, 하얀 눈과 눈부신 햇빛 만이 대륙을 덮고 있다. 아마 땅 속을 파보면 수십년 혹은 수백년 이상 묵은 눈을 볼 수도 있을 듯, 무슨 일이 일어나도 혹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그저 그대로 거대한 모습을 유지한 채 거기 있는 그런 곳이다. 남극에 여섯 명의 남자들이 줄을 지어 걷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무보급으로 도달불능점을 정복하는 것. 남위 82도8분 동경 54도58분에 위치한 이 지점은 남극 대륙 해안에서 가장 먼 곳으로, 지금까지 1950년대 옛 소련 탐험대만이 단 한차례 가본 적이 있다. 기대작 ‘남극일기’가 19일 드디어 영화팬들을 만난다. 뉴질랜드 로케이션이나 송강호·유지태 등의 화려한 캐스팅, ‘반지의 제왕’의 스태프와 ‘공각기동대’의 거장 가와이 겐지 음악감독의 참여, 그리고 제작비 90억 원의 초대형 예산 등 화려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영화가 상반기 기대작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남극이라는 장소와 스릴러라는 장르의 조합이라는 새로움에 있다. 일부의 우려와 달리 남극과 미스터리를 함께 빚어놓은 언발란스는 감독의 손을 거치며 매력적인 결과물로 탄생했다. 감독은 단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과 남극이라는 땅덩어리 하나로 힘있고 밀도 높은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어 놓고 있다. 풍경이 주는 광활함의 공포는 그 어떤 스릴러의 눈에 보이는 악몽 못지 않게 지독하며 그 와중에 드러나는 인간들은 쉽게 부서질 듯 위태로워 슬프다. 이들이 수십일 동안 걷고 먹고 자는 이곳은 언뜻 봤을 때의 마냥 경치 좋은 곳만은 아니다. 고요함은 써늘함의 다른 표현이며 광활함은 막막함의 유사어다. 말이 좋아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지 일행들과 비슷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느 곳에선가 숨진 채 묻혀 있다. 탐험대를 이끄는 대장은 노련하면서도 냉철한 카리스마가 있는 도형(송강호)이다. 최대장의 오랜 파트너이자 지적인 부대장 영민(박희순)과 식사 담당인 근찬(김경익), 통신 담당 성훈(윤제문), 전자장비 담당 재경(최덕문)은 부대원이며 이들의 뒤를 막내 민재(유지태)가 따르고 있다. 순조로웠던 탐험대에 묘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은 영국 탐험대의 남극일기가 발견되고 부터다. 얼마 뒤 재경이 바이러스가 없는 남극에서는 도저히 발병할 수 없는 감기 증세를 보이다가 낙오하고 대원들은 빨리 그를 구해야 한다는 쪽과 탐험을 계속하자는 쪽으로 나뉘어 갈등한다. 피해는 불가피하다고 대원들을 다그치는 대장과 논리적 분석으로 그를 따르는 부대장, 여기에 근찬과 성훈은 재경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철수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에 상황은 예기치 않은 사고까지 일어나며 점점 극으로 치닫고 대원들은 원인모를 광기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어느새 논리적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순했던 막내의 눈은 발갛게 충열되며, 대장은 목표 달성을 위해 앞뒤 안가리는 사이코가 되어 간다. 남극의 묘한 기운은 얼음 사이의 갈라진 틈에서, 텐트밖에서, 그리고 언덕 너머 어디에서 이들을 지켜본다. 초반에 인물들을 설명하며 워밍업을 하던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속도를 올리다가 결국 광기로 치달으며 폭발을 한다. 스릴러의 스토리는 감독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듯, 여기에 송강호, 유지태를 비롯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 두 시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은 지루함 없이 힘있게 흘러간다. 15세 이상 관람가. ■프락치 장마철쯤 돼보이는 무더운 여름. 러닝셔츠 차림의 두 남자가 변두리 여관방에 누워 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고 이 땀은 텁수룩한 수염을 타고 눅눅하게 흐른다. 방 안에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여관의 사람들은 이 두 남자를 ‘아마 동성애자 커플일 것’이라고 오해한다. 지난해 독립영화계의 화제작 ‘프락치’가 20일 개봉한다. 밴쿠버와 로테르담(국제비평가상),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유수의 영화제를 통해 호평을 받았던 이 영화는 ‘옥천전투’와 ‘팔등신으로 고치라굽쇼?’로 알려진 황철민 감독의 7년 묶은 야심작이다. 두 남자 중 나이 들어보이는 쪽은 정보기관의 기관원(양영조)이다. 젊은 쪽은 이미 정체가 드러나 은둔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인 프락치(추헌엽). 영화 감독 지망생이던 이 프락치는 이제 사랑하던 사람 앞에 다시 서지 못할 상황에 놓였고 기관원의 감시에 묶여 여관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다. 벽장 하나, 거울 한개밖에 없는 이 여관 방에서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밥 먹는 것 말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소지품이라는 것은 프락치의 비디오 카메라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 정도. 무료해하던 두 사람은 ‘죄와 벌’을 대본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극을 한다. 얼핏 호형호제하는 가까운 사이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래도 갇힌 자와 가둔 자다. 이는 이들의 ‘영화 찍기’ 놀이에 옆방의 배우 지망생이 합류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세 사람은 함께 술도 마시고 잠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억압과 피억압의 관계는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감독은 독일 유학시절 실제로 만났던 학원 프락치에게서 영화의 모티브를 따왔다. 상영시간 100분. 15세 관람가. ■코치 카터 고등학교 농구팀 선수들에게 학교 수업은 어떤 의미일까? 흔히들 별의미가 없다고 말하겠지만, 이 팀이 지난 4년 동안 지역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으며 반 학생들의 극소수만이 대학 진학의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수업에 참석하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이 아이들에게 삶 자체에 성의를 보인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1999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코치 카터’(Coach Carter)가 13일 개봉했다. 흔하지도, 뻔하지도 않은 스토리는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장점. 사무엘 L. 잭슨의 카리스마와 이에 반하는 아이들의 개성이 잘 드러난 데다, 줄거리가 단지 운동이외의 꿈 얘기로 진전을 보는 것은 이 영화를 범작 이상으로 만들어 놨다. 왕년의 고교 농구 스타 플레이어 출신으로 지금은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는 켄카터(사무엘 L. 잭슨)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꿈이라면 고등학생 농구 선수인 아들 데미언(로버트 리처드)이 좋은 선수로 자라나는 것 정도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모교 리치먼드 고등학교의 농구팀 코치 제의가 들어온다. 안정된 생활과 새로운 도전 사이에서 갈등을 하던 카터는 결국 팀을 맡기로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학교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팀은 지구 내 꼴찌를 도맡아 할 정도인데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반항적이고 제멋대로에 실력도 ‘꽝’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아이들의 패배의식. 유색인종 거주지역에 위치한 이 학교에서 농구팀의 존재 이유는 그저 아이들에게 ‘맘 잡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게하는 수단 이상이 못된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 가난의 고통으로 아이들은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어 가고, 꿈이라는 흔한 단어는 이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헛된 망상일 뿐이다. 아이들과 마주 선 카터는 두 가지 목표를 세운다. 하나는 팀에게 옛날의 영광을 되찾아주는 것, 나머지는 아이들을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다. 혹독한 훈련 끝에 결국 농구 팀은 승승장구. 하지만, 문제는 이보다는 학업쪽에서 발생한다. 아이들이 여전히 학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자 결국 그는 약속대로 체육관을 폐쇄하고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진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6분.
■킨제이보고서 니들이 性을 알아? “배변을 원활히 하고 성경을 읽을 것. 고환을 찬 물에 담그고 앉을 것. 그리고 모성애를 되새길 것.” ‘멀고 먼 옛날’, 몽정을 막는 요령으로 이런 것들이 권장되던 시절이 있었다. 막아야 되는 이유는? 정액 1g을 잃는 게 혈액의 40g을 흘리는 것과 같은 치명적인 피해를 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지는 오해를 낳고 오해가 만든 관습은 사람들을 억압한다. 지금은 터무니 없는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잘못된 지식은 한때 상식이었다. 적어도 이 ‘섹스 보고서’가 나오기 이전에는 성(性)에 관해서는 말이다. 킨제이 보고서로 ‘성(性) 혁명’을 일으킨 알프레드 킨제이 박사 이야기를 다룬 영화 ‘킨제이 보고서’(원제 Kinsey)가 13일 개봉한다. 영화는 그가 장애물을 뛰어넘고 결국 보고서를 내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지만, 결국 얘기하고 싶은 것은 ‘청교도적’이라는 시대의 장애물에 있다. 영화 속 킨제이 박사의 말처럼 만약 미국에 온 사람들이 청교도인들이 아니라 건달과 난봉꾼이었으면 어땠을까? 순결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과학자들을 겁주고 겁먹은 과학자들은 ‘정액은 피와 같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영화가 킨제이 박사(리암 니슨)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 있다. 그의 아버지는 선생님이며 목사님이었던 보수주의자. 엄격한 신앙심을 가졌던 아버지는 그가 공학자가 되기를 바랬지만 박사의 관심은 기계보다는 말벌 같은 생물에 있었다. 결국 생물학과에 진학해 생물학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제자이며 지혜로운 여자 맥밀란(로라 리니)을 만나 결혼한다. 이미 스스로의 성적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한 바 있던 그가 본격적인 섹스 연구가가 되기 시작한 것은 교내에서 결혼강좌를 맡으면서부터다. 성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은 생물학자인 그에게는 너무나도 터무니 없는 미신이었고 이에 대한 학술적인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섹스 리서치를 ‘감행’하기 시작한다. 주위의 우려 속에 연구는 진행되고, 결국 ‘킨제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미국 사회는 충격과 혼란 속에 빠져든다. ‘플레이 보이’를 앞지르는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결국 오해를 깨는 데 성공하지만 박사는 원치 않은 논쟁에 휩싸인다. 결국 연구비지원도 끊기자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괴롭히기 시작한다. 킨제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가 사실을 왜곡했으며 이혼율 및 성병의 증가와 포르노물 범람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비판론자들과 성적인 자유에 이바지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옹호론자들 사이에서 엇갈린다. 이 영화가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했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킨제이 박사처럼 ‘성’(性)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대해 당찬 태도를 견지한다. 인물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성에 대한 지식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충분히 솔직한 편. 여기에 리암 니슨이나 로라 리니 같은 ‘좋은’ 연기자들의 열연은 상황을 더욱 그럴싸하게 만든다. 아쉬운 점은 인물의 도전과 역경, 극복이라는 전기영화의 흔한 줄거리가 그렇게 흡인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데 있다. 흥미로운 출발에 비해 갈수록 줄거리의 힘이 떨어져가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갓 앤 몬스터’와 ‘시카고’의 각본을 썼던 빌 콘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118분. ■우리 사랑일까요? 사랑이 별건가 지금을 즐겨라! 애쉬튼 커처(27)는 이래저래 연상의 여인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모양이다. 현실에서는 16살 연상의 데미 무어와 결혼설을 낳고 있는 그가 영화에서는 6살 연상의 아만다 피트와 닭살 돋는 연애를 펼쳤다. ‘우리, 사랑일까요?(원제:A Lot Like Love)’는 애쉬튼 커처를 내세운 맞춤 상품이다. 20대 후반으로 접어든, 한창 물이 오른 잘 생긴 스타의 매력을 한껏 부각시킨 로맨틱 드라마인 것. 상대적으로 아만다 피트의 얼굴에서 ‘나이’가 느껴져 균형이 좀 깨지긴 하지만 영화는 확실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맞춤 상품으로서 그다지 손색이 없다. 더도 덜도 아닌 ‘선남선녀의 예쁘고 화사한 연애’를 그린 이 영화의 목적은 그것을 보며 유쾌해지고 싶은 관객을 모으는 것이다. ‘우리, 사랑일까요?’는 7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한 남녀의 이야기다. 대학을 갓 졸업한 패기 넘치는 젊은이 올리버는 치밀하게 사업구상을 하며 6년 후를 기약한다. 그때는 반드시 성공한 사람이 돼 있겠다는 것. 반면 실연했다는 이유로 처음 본 남자와 비행기 화장실에서 관계를 맺을만큼 대담하고 자유분방한 아가씨 에밀리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 두 사람은 비행기 화장실에서의 관계 이후 하루 동안 짧은 데이트를 한다. 그리고 아듀. 3년 후 다시 만난 이들은 또다시 불같은 감정에 휩싸이지만 역시 하루뿐, 다시 2년간 소식도 모르고 지낸다. 그 사이 둘은 각기 다른 상대와 사랑을 했고, 헤어진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매번 짧지만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이들의 모습은 ‘세렌디피티’ ‘해리가 샐리가 만났을 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새로울 것은 전혀 없다. 뻔하고, 공식 그대로다. 그러나 주인공이 다르다. 이 점은 주인공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로맨틱 드라마에서는 큰 차별점이 된다. 또 배경과 에피소드가 다르지 않은가. 영화는 커처와 피트의 사랑스러운 애정행각을 그리며 귀에 익은 음악을 적절하게 들려준다. 절로 따라하거나 장단을 맞추고 싶을만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반면 인연은 돌고 돌아도 결국 만나게 된다. 절망에 빠진 커처에게 그의 농아 형이 “그게 인생이야. 지금 이대로를 즐겨”라고 수화로 애정어리게 충고하는 대목은 이 뻔한 영화에서 그래도 콧등을 찡하게 만든다. 또 국립공원에서의 ‘달밤 퍼포먼스’는 꽤 신선하다. 20일 개봉, 15세 관람가. ■에쥬케이터 세상불만 가득한 청춘들의 대반란 일단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 보다는 한결 산뜻하고 현실적이다. 똑같이 거침 없는 젊음, 피 끓는 혈기를 그렸지만 ‘에쥬케이터’와 ‘몽상가들’의 요리법은 대단히 다르다. 취향 나름이겠지만 ‘에쥬케이터’ 쪽이 좀 더 먹기 편하다. 제목 ‘에쥬케이터(edukator)’는 에듀케이터(educator)의 독일식 발음. ‘무소불위의 젊음’ 피터(스티페 에르켁 분)와 얀(다니엘 브륄 분)은 스스로를 부르주아의 ‘교육자’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밤마다 부자들의 집에 무단침입, 마치 설치 미술을 하듯 가구와 물건들을 재배치 해놓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도둑질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러한 해괴망측한 행동을 통해 부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것이다. 부자들에게 ‘돈이 너무 많다’는 죄명을 씌우는 이들은 침입한 집에 ‘풍요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 에쥬케이터’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40대에도 마르크스주의자이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 영화는 이 메시지를 비교적 충실하게, 또 현실적으로 다뤘다. 피터와 얀, 그리고 피터의 여자친구 율(율리야 옌치)은 자유주의와 청년정신으로 똘똘 뭉쳤다. 부의 편중에 따른 사회 부조리를 깨기 위해 청년들은 뭐라도 해야한다는 것. 그게 미약할지라도 말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하이덴베르그(버그하르트 클로즈너)의 존재다. 30여년 전에는68세대의 선봉에 서 있었지만 지금은 대저택에서 명차를 몇대씩 굴리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은 하이덴베르그를 내세워 이상과 현실, 세월에 따른 변화를 부담없이 그렸다. 일이 꼬이는 바람에 하이덴베르그를 납치하게 된 주인공들은 뚜렷한 대책도 없이 하이덴베르그와 기이한 동거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하이덴베르그와 청년 셋은 조금씩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시간이 지날수록 양쪽 사이에 놓인 벽은 유명무실해진다. 하이덴베르그는 청년들의 모습에 자신의 순수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고, 청년들은 순수한 이상을 위협하는 뜨거운 사랑의 감정에 흔들린다. 과거에는 혁명의 핵이었으나 지금은 두말없이 보수당에게 한표를 던지는 하이덴베르그의 모습은 어쩌면 이들 청년의 미래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는 모른다. 설사 안다 해도 지금의 청년은 청년이어야 한다.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 9월 개봉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두번째 인권영화인 ‘다섯개의 시선’과 첫번째 인권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별별이야기’가 9월께 극장에서 개봉한다. 같은날 선보일지 1주 간격으로 개봉할지는 미정이지만 이들 두 영화는 소재가 인권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각 감독의 다양한 개성을 담은 단편영화들이 모인 옴니버스 영화다. ‘다섯개의 시선’에는 ‘미소’의 박경희, ‘주먹이 운다’의 류승범, ‘해피엔드’의 정지우, ‘아는 여자’의 장진, ‘송환’의 김동원 등 다섯명이 참여했으며 ‘별별이야기’에는 이성강, 박재동, 이애림, 유진희, 권오성과 5인 프로젝트팀(김준 외) 등 여섯팀이 연출했다. ■‘가문의 영광2’ 주연에 김원희-신현준 김원희와 신현준이 영화 ‘가문의 영광2’의 남녀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가문의 영광’ 1편에 이어 속편도 제작하는 태원엔터테인먼트는 “김원희, 신현준, 김수미의 캐스팅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2002년 9월 개봉, 전국 500만 관객을 모은 ‘가문의 영광’은 엘리트 사위를 들이려는 조폭 집안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 김정은과 정준호가 주연을 맡았다. ‘가문의 영광2’는 전편의 구조를 살짝 비틀어 엘리트 며느리를 들이려는 여수조폭 집안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원희가 검사로 출연하며, 신현준이 조폭 집안의 맏형 역이다. 김수미는 신현준의 어머니를 연기한다. ■프랑스 ‘자크 드미’ 감독 특별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서울아트시네마(구 허리우드 극장)는 11~19일 프랑스의 자크 드미(Jacques Demy·1931~1990) 감독의 특별전을 마련한다. ‘쉘부르의 우산’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드미 감독은 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 중 가장 로맨틱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초기작 ‘롤라’와 ‘천사들의 해안’에서부터 ‘추억의 마르세이유’, ‘쉘브르의 우산’ 등 대표작 일곱편이 상영되며 ‘자크 드미의 세계’를 비롯해 동료 아네스 바르다 감독이 드미 감독에 대해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세 편이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