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도심의 한 편의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보경(한효주 분)에게 낯선 청년 둘이 다가간다. 그들은 다짜고짜 "명은이가 아니냐"라며 접근한다. 보경이 부인을 해도 의혹의 눈초리를 쉽게 거두지 않던 둘은 급기야 자신들의 고향 마을로 가 명은 행세를 해달라는 어이없는 부탁을 한다. 명은의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있는데 보경이 몇 해 전 소식이 끊긴 명은과 많이 닮았다는 이유. 망설이던 보경은 "좋은 일 하는 셈 치라"는 설득에 이들과 동행한다. 일본 소설가 다이라 아즈코의 '애드리브 나이트'(국내에서는 '멋진 하루'라는 단편 소설집으로 발간)를 원작으로 한 '아주 특별한 손님'은 예기치 못한 하룻밤 여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생면부지 남자의 임종을 지키러 길을 떠나는 보경의 심리와 사연에 대한 궁금증이 영화의 한 축을 차지한다면 다른 한 축에는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다양한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관계가 놓여있다. '여자, 정혜' '러브토크'의 이윤기 감독은 이번에도 참을성 있게 보경을 지켜본다. 꽁꽁 닫혀 있는 보경의 마음을 알기 위해 감독이 하는 일은 그저 카메라를 조용히 가동하는 것뿐. 그 과정에서 보경은 말을 하는 대신 새 양말을 신어보고 다시 개놓는 동작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만큼 영화는 여백이 많고 호흡이 길며, 손끝 하나의 떨림까지 주시한다. 그래서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하지만 반면 지나친 섬세함에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임권택 감독의 '축제'나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의 단면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에는 죽음 앞에서 까발려지는 인간의 속내와 관계, 욕심들이 펼쳐진다. 과장된 반응과 거짓된 말들, 놀랍도록 무감한 대처와 은근히 축제를 즐기려는 자들의 면면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마을 청년들은 보경에게 가짜 명은 행세를 하라고 주문하지만 그들과 마을 사람들이 보경을 대하는 태도에는 무례와 뻔뻔함이 녹아 있다. 이 역시 아이러니의 공존. 영화는 그것이 사람 사는 모습 아니냐고 묻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다 졸지에 약속 장소를 이탈해버린 보경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의 휴대전화 문자가 잇따라 들어온다. "네가 안 나타난다고 내가 널 못 찾을 줄 알아"라는 협박성 내용과 함께. 그러한 상황은 보경의 침묵과 함께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영화는 보경의 사연이 만들 파장을 극대화하지 않고 마지막에 짧고 간결하게 들려주며 마무리한다. 그럼으로써 그때껏 숨죽이며 보경을 관찰하던 관객에게 긴 여운을 안기려 한다. 그러나 여백이 많다고 꼭 여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입맛만 다시게 하다 아무 맛도 못 느끼게 할 위험이 있다. KBS 계열의 케이블TVㆍ위성방송 MPP(복수채널사용사업자) KBS N이 제작한 HD영화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30일 개봉, 전체관람가.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괴물'(제작 청어람)이 제5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6개 부문 트로피를 차지했다. 19일 오후 6시부터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 아트센터(구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MBC TV 생중계로 열린 시상식에서 '괴물'은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조명상, 시각효과상, 음향상 등 6관왕에 올랐다. '괴물'을 유작으로 남기고 9월 별세한 고 이강산 감독이 조명상을 수상했다. 남녀 주연상은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과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장진영이 차지했으며, 조연상은 '짝패'의 이범수와 '사생결단'의 추자현에게 돌아갔다. 추자현은 '사생결단'으로 신인여우상까지 동시에 거머쥐었으며 신인남우상은 '왕의 남자'의 이준기가 수상했다. 다음은 수상자 목록(괄호 안은 작품명). ▲최우수작품상 = '괴물' ▲감독상 = 봉준호(괴물) ▲남우주연상 = 조인성(비열한 거리) ▲여우주연상 = 장진영(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남우조연상 = 이범수(짝패) ▲여우조연상 = 추자현(사생결단) ▲신인감독상 = 이해영ㆍ이해준(천하장사 마돈나) ▲신인여우상 = 추자현(사생결단) ▲신인남우상 = 이준기(왕의 남자) ▲각본상 = 손재곤(달콤, 살벌한 연인) ▲촬영상 = 김형구(괴물) ▲조명상 = 이강산ㆍ정영민(괴물) ▲편집상 = 박곡지ㆍ정진희(비열한 거리) ▲음악상 = 이병우(호로비츠를 위하여) ▲음향상 = 최태영(괴물) ▲미술상 = 조도현(음란서생) ▲시각효과상 = The Orphanage, EON(괴물) ▲공로상 = 최은희 ▲네티즌 관객상 = 강동원ㆍ이나영(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연합뉴스
'홍콩 느와르 영화의 부활'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던 '무간도'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더욱이 명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맷 데이먼, 잭 니콜슨 외에 마틴 쉰, 마크 월버그, 알렉 볼드윈 등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으니 그 기대감은 더욱 증폭될 수 밖에 없다. 홍콩의 세계적인 스타인 량차오웨이(梁朝偉)와 류더화(劉德華)가 주연을 맡았던 '무간도'는 3편 까지 시리즈를 만들어낼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2편은 두 배우가 아니었지만) 탁월한 소재 선택과 함께 영화 전편에 흐르는 깊은 비애감과 영상 미학은 홍콩 느와르 영화의 전성시대를 회상케했다.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를 152분에 이르는 대작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야기의 무게 중심은 갱단에 잠입한 경찰 빌리 코스티건 역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그의 거짓 인생을 지배하는 프랭크 코스텔로 역의 잭 니콜슨으로 다소 쏠려있다. 량차오웨이가 맡았던 '무간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빌리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혈맥이다. 고인, 죽은 자라는 뜻의 'THE DEPARETD'라는 원제가 말해 주듯 죽어서야만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던 인물에 대한 고찰이 묵직한 화면으로 흘러간다. 또 하나 굳이 비교하자면 등장 인물의 캐릭터 선명도도 '무간도'보다 훨씬 뚜렷한 편. 아무리 리메이크작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해도 이미 알려진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할 때 어떤 선입견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 간파한 듯이 스코세이지 감독은 선명한 캐릭터로 보이는 각각의 인물을 통해 거짓 인생마저도 인생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역설한다. 느와르 영화 '비열한 거리' '좋은친구들'에 이어 2003년 '갱스 오브 뉴욕'을 내놓았던 감독은 가슴에 뚜렷이 새겨질 미장센을 툭툭 던져 놓는다. 한마디로 '무간도'와 전혀 다른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로 만들어 내놓는데 성공한 것. 지난 10월 초 개봉한 이 영화는 그가 만든 영화 중 개봉 첫 주 최고의 흥행 수익을 거두며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눈을 돌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찬찬히 쳐다보자.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의 꽃미남은 이제 완전히 추억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다. 사랑을 담아냈던 눈동자는 모호한 정체성으로 혼돈에 버거워하는, 존재의 가치에 고민하는 남자의 눈빛이 돼있다. 얼굴의 틀도 변한 듯 그는 부드러운 남자에서 거친 남자로 변해있다.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의 만남이 그에겐 큰 영향을 미쳤던 듯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연기 영역의 확장을 꾀한다. 잭 니콜슨의 연기야 말해 무엇하랴. 이마의 깊은 주름은 이미 연기 뿐 아니라 인생을 통달한 듯한 배우에게 어울리는 세월의 선물이다. 무대는 보스턴. 암흑가의 보스인 코스텔로(잭 니콜슨 분)을 잡기 위해 주 경찰청의 특수 임무가 수행된다. 코스텔로 조직에 위장 잠입할 경찰로 빌리 코스티건(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이 선택된다. 빌리는 어머니를 비롯한 외가는 교양있고, 기품있는 가문이었으나 삼촌을 비롯한 친가는 마약 거래, 폭력 등 뒷골목 인생이다. 비록 아버지는 애써 암흑가를 외면했지만 코스티건이란 성은 암흑가에 친숙하다. 태생부터 자아에 대한 혼돈이 시작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랐다. 콜린 설리반(맷 데이먼)은 그 반대의 인물. 가난하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 코스텔로에게 거둬진 콜린은 경찰학교에 입학해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후 특별수사반에 배치된다. 그의 진짜 임무는 경찰청 내의 정보를 코스텔로에게 전해주는 것. 코스텔로 부하가 된 빌리와 경찰 간부가 된 콜린은 서로 첩자가 있다는 걸 눈치챈다. 서로의 목숨을 건 정보전이 시작된다. 경찰내에서 미래를 보장받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콜린에게 정신과 의사 마돌린(베라 파미가: 하정우와 함께 한미 합작영화 '네버 포에버'에 출연한 연기파 배우다)은 더할 나위없는 약혼녀다. 그러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빌리가 마돌린에게 결코 털어놓지 못할 자신의 현재에 대해 정신적인 상처를 상담하면서 마돌린 역시 두 남자 사이에서 헷갈려 한다. 엇갈린 운명이면서 동시에 코스텔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하는 두 남자의 안타까운 삶이다. 영화 제작사 PLAN B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브래드 피트가 공동제작자다.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장우혁(28)의 노래가 할리우드 영화 한국 개봉 판에 엔딩곡으로 삽입된다. 장우혁의 2집 수록곡 '라스트 게임(Last Game)'이 숀 레비(Shawn Levy) 감독의 액션 판타지 어드벤처 '박물관이 살아있다!(Night at the Museum)'의 엔딩곡으로 선정됐다. 배급사인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측이 장우혁 등 국내 가수의 음악을 들고 미국 본사를 찾아가 숀 레비 감독과 함께 듣고, 댄스 힙합곡인 '라스트 댄스'를 한국 개봉 판 엔딩곡으로 결정한 것. 벤 스틸러ㆍ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박물관의 모든 것이 밤마다 살아난다'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영화. 1억5천만 달러를 투입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모형물 및 전시물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장우혁의 소속사인 스펀지엔터테인먼트는 "할리우드 영화의 엔딩송으로 국내 가수의 노래를 삽입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고 기뻐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12월28일 개봉한다. /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제임스 본드 캐스팅 과정에서 말이 많았던 007 시리즈 21탄 '카지노 로열'의 세계 첫 시사회에 참석, 본드 역의 대니얼 크레이그(38)를 격려했다고 영국 석간 '이브닝 스탠더드' 인터넷판이 15일 전했다. 허리가 좋지 않다는 등 건강 이상설이 나돌았던 여왕은 14일(현지시간) 부군 필립 공과 함께 런던 레스터 광장 오데온 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장을 찾아 이전 5명의 멋진 신사풍 본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현실적인 '21세기형' 본드 크레이그와 제작진에게 지지를 보냈다. 시사회장엔 과거 본드걸 역을 받았던 마리암 디보와 '양자경'으로 알려진 중화권의 액션스타 양쯔충(楊紫瓊), 팝스타 엘튼 존과 모험을 즐기는 재벌로 유명한 리처드 브랜슨 등도 자리를 잡았다. 브랜슨은 "대니얼은 훌륭하다. 본드를 살아있게 만들었다"고 호평했고, 일부 여성 참관객은 아예 "크레이그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캐스팅 과정에서 '반대 팬'들로부터 '키가 작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괴물 골룸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등 온갖 험담까지 들어야 했던 크레이그. 하지만 오디션을 훌륭히 마쳐 단박에 마틴 캠벨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자금을 댄 소니측으로부터 만장일치로 본드 역에 뽑혔다. 그래서인지 크레이그는 시사회장을 당당하게 돌면서 영화 프로듀서이자 여자친구인 사츠키 미첼과 영화 속 본드걸 에바 그린 등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1953년 출간된 이언 플레밍의 첫번째 제임스 본드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카지노 로열'은 007이 영국 해외정보국(MI6)에 발탁돼 요원으로 거듭나는 과정과 첫사랑을 갈망하는 로맨스를 실감나게 그렸다는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연합뉴스
류훈 감독의 단편영화 ‘임성옥 자살기’가 제12회 리옹아시안영화제에서 단편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고 영화사 필름메신저가 14일 밝혔다. ‘임성옥 자살기‘는 병과 고단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은 여자와 여자의 자살을 계속 방해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는 17분 분량이다. ‘살인의 추억’ ‘연애의 목적’ 단편영화 ‘흡연모녀’ 등에 출연한 서영화 씨가 여주인공을 맡아 열연했다. 필름 메신저는 영화에 대해 “세련된 화법과 영상미를 가진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 영화는 지난 9월 열렸던 제5회 제주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딱 '몽정기'와 '색즉시공'의 중간 형태다. 중학생들이 교생을 두고 성(性)에 대한 사고의 성장을 코믹하게 풀었던 '몽정기'와 대학생들의 거침없는 성생활로 성장통을 다룬 '색즉시공'의 가운데 지점이다. 섹스 코미디를 표방한 '누가 그녀와 잤을까'(감독 김유성, 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에서는 고교생들이 교생을 두고 벌이는 성적 판타지가 걸쭉하게 묘사된다. 그나마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기 위해 농도를 약간 희석시켰다. 한창 성에 민감하며, 관심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그래서 틈만 나면 섹스를 향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는 고교생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고 한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오락영화로 인정하고 보면 된다. 김사랑이 엄청난 노력 끝에 만들었을 S라인 몸매와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직설적인 화법이 영화 전편을 감싸기 때문.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몽정기'에 천진난만한 순정이 담겨 있고, '색즉시공'이 낯 뜨거울 정도의 과감한 볼거리 속에 나름대로 청춘의 고민을 담아냈던 것에 비해 '누가 그녀와 잤을까'의 지향점은 웃음과 '남자들은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절반의 공감대에 그친다. 이런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보고 즐기면 된다. 제작사는 이 영화가 '수능용 기획상품'이라는 걸 결코 숨기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은 대주교도 특별히 관심을 갖는다는 엄격한 규율의 천주교 미션스쿨. 막강한 파워를 휘두르는 학생주임(이혁재 분)의 지도로 한창 커가는 아이들은 적어도 외부적으로는 모범적인 생활을 한다. 그런데 이곳에 섹시한 여자 교생 엄지영(김사랑)이 등장하면서 들썩이기 시작한다. 학교 페스티벌이 끝나고 난 후 학생주임이 몰래 어딘가로 뛰어가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목격하고, 그들은 사라진 채 엄지영이 뮤지컬 공연 때 신었던 빨간 구두 한 짝이 현장에 남아있는 걸 발견한 후 누가 그녀와 잤는지 추적하며 범인 체포에 나선다. 유력한 용의자는 세 명. 5분 만에 여자들을 녹여버리는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며, 적당히 건방진 반장 김태요(하석진). 어린 시절 한약을 잘못 먹어 얼굴이 40대가 된 데다 엄청난 위력(?)을 가진 '그것'을 가진 배재성(박준규). 입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며 여자를 공략하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하는 안명섭(하동훈). 이들은 충분히 혐의를 받을 만한 동기를 갖고 있다. 왜 혐의를 받을지에 대한 세 편의 에피소드로 영화가 채워지며, 라스트신에서 '극적인' 반전이 이뤄진다. 김사랑의 마무리 설교와 함께. 1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서로가 서로를 탓할까.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개봉하게 된 두 편의 영화가 비슷한 주제를 갖고 있다. 이미 개봉한 설경구 주연의 '열혈남아'와 23일 개봉할 김래원 주연의 '해바라기'(감독 강석범, 제작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가 그렇다. 큰 얼개는 주먹과 가족애의 만남. 사람까지 죽일 정도인 깡패가 어머니라는 존재를 깨달으며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열혈남아'에서는 죽여야 하는 자의 어머니 나문희가, '해바라기'는 죽인 자의 어머니 김해숙이 등장한다. 아무리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고 항변하겠지만 김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두 영화 모두 바라지 않았을 일이 벌어졌다. '열혈남아'가 배우들의 징글맞을 정도의 연기력으로 충만하긴 했으나 뻔한 결말을 향해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끝내 지우지 못했듯 '해바라기'도 여백의 미와 고른 숨을 쉬는 호흡 조절이 보이긴 했으나 이야기 구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김래원와 김해숙의 연기 호흡은 신인 배우 허이재의 오버 액션으로 방해받기 일쑤다. 허이재는 발랄했지만 아직 강약 조절이 미흡하다. 김래원과 김해숙이 더 많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잠깐 해본다. 또한 해바라기 식당의 존재 가치가 너무 뒤늦게 드러나 관객이 '왜'라는 의문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 역시 대중 접근방식에선 약점이 될 듯. 그러나 성긴 듯 뚜렷하게 한 지점을 향해가는 일관성과 함께 김래원이 한꺼번에 모든 것을 분출하는 듯한 마지막 장면의 인상은 깊게 각인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의 단 하나의 희망이 꺾였을 때 느낄 분노가 그 희망만큼 크다는 것을 전한다. 살인을 저질렀던 오태식(김래원 분)은 10년 만에 출소한다. 기차 안에서 오래된 수첩을 꺼내든 태식은 교도소 안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가며 지워나간다. 그가 인생의 목표로 삼은 것은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다시는 싸우지 않는다' '다시는 울지 않는다', 이 세 가지. 그가 도착한 곳은 덕자(김해숙)가 운영하는 해바라기 식당이다. 덕자는 그를 아들로 삼아 반갑게 받아들이고, 딸 희주(허이재)는 그런 어머니가 못마땅하지만 단 하나의 소원이란 말에 허락한다. 10년 전 태식은 주먹 하나로 그 지역을 평정해버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의원 조판수(김병옥)의 계략으로 덕자의 아들을 죽이게 됐던 것. 태식의 출소로 그 지역 조직폭력배들이 경계하는 데다 조판수는 거대한 쇼핑몰을 세우기 위해 해바라기 식당을 없애려 한다. 태식은 덕자, 희주의 정겨운 생활에 생전 처음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덕자는 늘 넉넉한 웃음으로, 희주는 매몰찬 듯 하지만 누구보다도 살가운 웃음으로 태식을 감싼다. 태식의 '희망 수첩'에 적힌 항목들은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뿌듯하게도 차근차근 지워져간다. 위태로운 행복은 금세 끝난다. 해바라기 식당과 태식을 지키기 위해 덕자는 죽은 아들의 일기장을 조판수에게 내밀지만 이게 오히려 화근이 된다. 조판수는 일기장을 없애기 위해 태식을 두려워하는 조직폭력배를 동원한다. 이루마가 연주한 애잔한 피아노곡은 영화를 감상적으로 이끌지만, 마지막 부분에선 너무 오래 끌었다. 클라이맥스가 시작되기 전부터 가라앉은 음악은 정작 정점에서 타오르지 못한다. '미스터 소크라테스'에 이어 남성적인 매력을 드러내고자 하는 김래원의 의지가 충만한 작품이다.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커피, 마약, 게릴라…. 남미 콜롬비아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베네수엘라와 함께 미인 대회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다는 것. 2005년 콜롬비아에서 150만 명을 동원하며 자국 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로사리오'에는 이중 마약과 미인이 들어있다. 강간과 범죄조직, 치명적 사랑과 함께. 여주인공 로사리오는 남미 여성 특유의 아름다움과 섹시미를 간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어떤 남자든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로사리오는 그것을 무기로, 범죄조직 일원인 친오빠 조니페와 함께 생활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비해버린다. 심지어 필요하다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어느 날 로사리오 앞에 두 남자 에밀리오와 안토니오가 나타난다. 로사리오는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멋진 남자 에밀리오를 선택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묵묵히 자신을 바라만 보는 안토니오에게 끌린다. 그러던 중 조니페가 살해당하고 로사리오는 에밀리오 대신 안토니오에게 도움을 청한다. 호르게 프랑코 라모스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다국적 합작영화로 콜롬비아뿐 아니라 남미 전역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강력범죄가 판치는 콜롬비아의 메데인을 무대로 피 끓는 범죄와 사랑을 그렸을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로사리오에게 어린 시절 양아버지에게 강간당한, 그리고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어두운 경험이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 한마디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얘기. 하다못해 이국적 풍광도 별로 없다. 거의 모든 신이 한밤중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 그럼에도 남미 관객은 자신들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열광을 한 것 같다. 24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
서울 신문로의 씨네큐브(www.cinecube.net)가 15일부터 21일까지 '2006년 올해의 한국 영화 특별전'을 개최한다. 올해 관객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던 한국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이번 특별전에서는 '가족의 탄생'(감독 김태용, 제작 블루스톰), '내 청춘에게 고함'(감독 김영남, 제작 이모션픽쳐스), '라디오 스타'(감독 이준익, 제작 영화사아침),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제작 이글픽쳐스), '천하장사 마돈나'(감독 이해영ㆍ이해준, 제작 싸이더스FNH) 등 다섯 작품을 만날 수 있다. ☎02-2002-7770~1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