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형아
“형, 내가 지켜줄게”라는 카피의 생명보험 CF에서 설경구는 병상에 있는 아픈 형에게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버리고. 제주도 푸른밤 그 별 아래~”라는 노래를 불러준다.
빡빡머리 형아 내가 구할테야!
영화 ‘안녕, 형아’는 바로 그 CF처럼 아픈 형을 둔 동생의 이야기다. 다만 영화속 형제의 나이가 CF 주인공들보다 스무살 가량 어릴 뿐. 영화 속 9살 꼬마는 12살형에게 ‘제주도’ 대신 ‘유희왕 카드’를 선물한다. 큰 마음을 먹고서.
아픈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만큼 찢어지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픈 아이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부모의 시선은 새로울 것이 없다. 보편적이지만 새삼스럽지 않은 것.
이에 반해 ‘안녕, 형아’가 선택한 철부지 동생의 시선은 독특하다. 아픈 형으로 인해 침울해지는 영화의 분위기를 상쇄하는 동시에 제약없는 동심의 세계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뇌종양에 걸린 장한별(서대한 분). 그의 모습은 예상 가능한 수순대로 진행된다. 심하게 아픈 증세를 보이다 결국 삭발을 하고, 소아암병동에서 위험한 고비를 넘나든다. 맞벌이 부모는 아들의 병간호에 허리가 휘고 눈물샘이 마를 날이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
영화는 최고의 골목대장인 9살 한이(박지빈 분)가 아픈 형 한별과 그로인한 가족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렌즈를 맞췄다. 말썽부리다 그만 바지에 똥을 싸버린 한이를 씻겨주고 그의 온갖 장난을 받아주던 한별. 한이는 그렇게 한없이 착한 형이 아파서 입원하자 심심해 한다.
질투와 심술도 부린다. 부모의 관심이 온통 형에게 쏠리는데다, 형은 병원에서 사귄 시골아이 욱이에게 잘해주기 때문. 한이는 자기 분에 못 이겨 한별을 때리기도 하고 밀치기도 한다.
이러한 한이의 행동은 영화가 단순한 최루성 드라마로 흐르는 것을 막는다. 영화는 변화한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아홉살 꼬마의 움직임을 어드밴처 무비로 표현하는 영리함을 보여줬다.
자신만을 알던 꼬마가 누군가를 배려하고 돕겠다는 마음을 먹는 과정이 꽤 역동적으로 표현된 것. 특히 울창한 숲속을 뛰어다니고 ‘타잔 아저씨’를 만나 ‘날아다니는’ 모습은 우울해지려는 관객의 기분을 밝게 만든다.
마치 ‘E.T.’를 보는 느낌. 이기적인 한이에게 형의 병치레는 ‘외계’를 만나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다행히 그 ‘외계’는 한이에게 성장의 자양분이 된다.
그러나 영화는 지나치게 영리하려 했다. 아무리 그래도 9살 꼬마의 한계는 분명한데 스크린 속 한이의 모습은 자로 잰 듯 빈틈이 없다. 울고 싶은데, 힘든데 계속 ‘씩씩하자’고 파이팅을 외치는 것 같다. 27일 개봉, 전체관람가./연합
■링2
저주의 원혼 깃든 사마라와 ‘맞장’
지금까지 미국에서 개봉한 공포영화 리메이크작 흥행순위를 살펴보면 베스트 5 내에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 무려 3편이나 들어있다. ‘링’(2002), ‘링2’(2005)와 ‘그루지’2004)가 그것. 각각 1위, 5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공포영화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할리우드판 ‘링2’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나오미 왓츠와 데이비드 도프만이 모자지간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감독은 바뀌었다. 전편은 미국의 고어 버빈스키가 연출했지만 이번 속편은 원작의 감독 나카타 히데오가 맡았다. ‘그루지’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과 마찬가지로 나카타 히데오 역시 할리우드 시스템에 일본 공포영화의 감각을 접목한 것.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할리우드판 ‘링2’에서도 특유의 기분 나쁜 스산함을 유지했다. 일본판과 마찬가지로 링의 원혼인 사마라의 정체가 밝혀진다.
영화는 들어가는 문에서부터 긴장시킨다.
어두운 밤 바다의 검고 푸른 물의 출렁거림을 반복적으로 비추며 중간중간 검은 화면을 내보내는 것. 그 검은 화면에서 관객은 순간 숨을 멎었다가 다시 일렁이는 바닷물이 화면을 채우면 숨을 내뱉게 된다.
효과적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인상적인 도입부다. 레이첼은 사마라의 저주를 피해 에이단을 데리고 소도시로 이사한다. 그러나 사마라는 그곳까지 이들 모자를 쫓아온다.
에이단의 체온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익사직전의 사람처럼 34.1℃로 떨어지고 사마라는 이제 공공연히 이들 앞에 나타난다.
결국 레이첼은 피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사마라 퇴치에 나서고, 사마라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친다.
6월 3일 개봉, 15세 관람가.
■PM 11:14
이 영화의 키워드는 우연과 소동이다. 모든 일은 우발적으로 발생하고 결과는 엄청난 소동으로 이어진다. 한가지 필연이 있다면 성급함이다.
이 영화의 교훈이라면 ‘성급함은 화를 자초한다’는 것. 또 하나. ‘밤길운전 조심하자’.
한날 한시라도 그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수억가지다. 영화를 관통하는 ‘밤 11시 14분’ 역시 등장인물의 머리 수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쪼개진다.
이 영화의 오락성은 그 모든 사건을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하면서 빛을 발한다. 덕분에 러닝타임 85분의 이 짧은 스릴러는 경쾌한 몸집을 유지한다. 영화는 ‘일단 뛰어’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처럼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과 유사한 모양새다.
등장인물 모두가 돈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시작은 돈이고, 주인공들이 겪는 소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만취한 채 운전하던 잭은 그만 젊은 남성을 치고, 여자친구의 임신중절 수술비를 구해야하는 더피는 편의점에서 권총 강도를 모의한다.
집 근처에서 처참한 시체를 발견한 프랭크는 시체가 딸의 남자친구임을 알고는 범죄를 은폐하려 하고, 폭주족 ‘양아치’ 셋은 도로 위에서 온갖 ‘미친 짓’을 벌이다가 그만 한 여자를 치어버린다. 이 모든 사건이 한 마을에서 벌어지고 그 시각은 밤 11시 14분이다.
영화는 이들 사건을 긴박하게 보여주며 초반 40분을 확 끌어당기는 데 성공한다. 6월 2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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