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파워를 키우자> 세계인 식탁공략… 친환경 ‘대표 브랜드’

당신의 식탁을 책임지겠습니다! 생산에서 가공유통까지 전 과정에 걸쳐 품질과 위생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경기도지사가 인증하는 농산물 명품 브랜드 G마크가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 충족과 지역을 대표하는 명품 농특산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현대인의 웰빙형 소비생활이 확산돼 고품질 안전 농산물을 선호하고, 환경오염 우려와 농약의 과다 사용, 유전자 변형식품의 유해성 논란으로 소비자의 불신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G마크는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현재 이 브랜드는 주요 대형 유통센터와 경기사이버장터(www.KGFarm.co.kr), G마크연합사업단, 농협하나로클럽, 옥션 및 G마켓의 온라인 오픈마켓, 신세계, 여인닷컴, 롯데홈쇼핑, H-mall, 농수산홈쇼핑, CJ mall 등의 홈쇼핑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이진찬 경기도 농정국장은 G마크는 생산단계에서부터 농약이나 항생제 등의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특히 출하 직전에 정밀검사를 거쳐 안전성이 입증된 농특산물에만 부여된다며 G마크는 인증 이후 농특산물의 특성에 따라 관계기관과 소비자단체(NGO)가 정기적인 평가와 심사를 실시해 인증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생산자들이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차별화된 고품질 농특산물임을 강조했다.지난 2000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G마크는 전문가에 의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까다롭게 선별, 인증함으로써 고품질 명품 농특산물로만 선정되고 있다.특히 소비자들이 더욱 안심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농산물 최초로 리콜제와 보험제 및 우선보상제를 도입하는 등 판매 이후까지 책임지는 사후관리 시스템은 소비자들로부터 명성이 자자하다. 이처럼 엄격하고 철저한 사후관리 시스템을 실시하고 있는 G마크는 최근까지 131개 경영체를 선정, 소비자들에게 믿을 수 있는 고품질 우리농산물을 100% 안전하고 신선하게 공급해 오고 있다. 이에 매출액도 급상승, 지난해 전체 매출액이 2천931억원이던 것이 올들어서는 4천억원을 훌쩍 넘어선 상태이다. 이런 성과 밑바탕에는 경기도만의 독창적인 브랜드 마케팅이 큰 몫을 해왔다는 평가이다.G마크 농특산물의 초기 고급시장 진입을 위해 고양, 양평 등 18개 시군에 40만매의 포장재를 지원해 농특산물의 부가가치를 10~30% 제고, 농가소득 증대를 도모했는가 하면 소비자를 보호하는 가짜 경기미 보상 및 포상금제도를 운영, 경기미의 명성유지와 생산농가,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하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경기사이버장터(KGFarm)는 SK㈜OK캐쉬백과 포인트 공유를 위한 제휴협약을 맺고 OK캐쉬백과 연계해 전국적 신규고객 유입경로를 확장시켰다. 또한 도는 경기농산물지킴이 운영을 통해 도내 농가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안전성을 감시조사하는 NGO단체를 결정하고 생산유통되는 농산물 2천건을 수거한 뒤 안전성 검사를 하는 한편 G마크 농가 145개소를 현지방문해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는 농특산물 직거래 장터 개설 및 대형마트 공략에 전격 나서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도내 37개소에 추석맞이 직거래장터를 개설, 쌀, 과일, 채소, 쇠고기 등 다양한 품목을 10~30% 저렴하게 판매토록 해 물가상승에 따른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고 농업의 수취가격을 제고했다. 또 안전성이 전국에서 최고인 경기도 -199Rice를 전국 120개의 E마트에 독점 공급해 2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으며, 지난해 8월에는 대한민국 건국 60년 G마크 농축산물 페스티벌을 열어 도민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특히 도는 지난 11월 G Food Show 2008을 개최해 26만명이 넘는 인원이 찾았는가 하면 해외바이어를 초청해 2천31만달러 상당의 수출 계약을 맺는 등 성공적인 행사로 치렀다.이와 같이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밥맛인 고품질 경기미, 녹색의 싱싱함이 그대로인 G마크 채소 및 과수,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사양관리로 탄생한 축산물, 환경 친화적으로 생산한 농산물과 첨단기술로 생산한 위생적인 고품질 우리 농특산물을 공급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넘어 무한감동을 선사하고 있다.이렇듯 고품질 농산물에 안전과 품격 등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소비자들이 100% 믿고 찾을 수 있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은 G마크는 농산물 품질과 선택의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되며 친환경 우수 명품 농특산물로 벤치마킹 되고 있다.G마크 연합사업단 윤승용 본부장은 G마크는 인증업체들의 권익을 도모하며 소비자에게 고품질의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농업의 희망이라고 밝혔다./이용성기자 leeys@kgib.co.kr

“분필가루 교실은 잊어주세요”

“기업의 목적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운영을 그만둘 생각이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기존 칠판 대신 사용하는 친환경 그린보드와 물펜을 생산하는 ㈜에코로직 서이석대표(64)는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존속시키는 것으로, 기업을 끝까지 지켜나가다 보면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친환경 전문기업 지난 1999년 설립한 에코로직은 친환경 칠판인 에코그린보드와 물펜을 생산하는 친환경 전문기업이다. 그린보드는 분필이나 보드마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나 오염 원인을 완전히 제거한 제품으로 기존 칠판처럼 오래쓰면 검게 변해 인체에 유해한 미세물질이 발생하는 것을 완전히 차단했다. 서 대표는 “밀폐된 공간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경우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환경오염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며 “분필가루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간혹 보드마카 등으로 분필가루를 줄이려는 학교나 학원이 있지만 이것 역시 심각한 오염을 일으킨다는 것을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스크린 대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장점도 있다. 또 그린보드에는 물로 쉽게 지울 수 있는 ‘물펜’을 사용하기 때문에 분필가루 등이 미세먼지가 발생하지 않고, 보드마카처럼 잔상이 남지도 않는다. 모든 제품이 친환경적인 것은 학생들을 생각하는 서 대표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환경에 관심을 갖다 유명 대기업에서 계열사의 대표이사까지 맡았던 서 대표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뭔가를 구상하다가 학교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집중한 결과 결국 분필을 없애는 대체품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주의에서는 전혀 다른 업종으로 전환이라며 많은 걱정을 하기도 했다. 서 대표는 “예전 학교에는 분필가루 터는 기계가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친환경적인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10명 정도로 시작했다. 너무나 새로운 제품이다 보니까 주위에서도 인정을 안해 줬다. 수십년간 이어온 기존 칠판에 대한 인식 또한 바꾸기 힘들었다. 그렇게 10년을 고전을 해 오면서 언젠가 전국의 학교가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고, 정부 정책도 바뀔 것이라고 믿었다. ▲근본부터 해결하자 지난 10년간 견본까지 포함하면 500여개 에코그린 칠판을 각 학교에 지급했다. 순전히 투자에만 집중한 것이다. 견본까지 제공하면서 투자를 우선적으로 한 것은 기존 학교들의 틀에 박힌 생각이 좀처럼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고, 친환경적인 제품도 새롭다는 점때문에 변화하지 않으려는 것이 학교 관계자들의 생각이었다. “어떤 학교는 교실에 진공청소기를 갖다 놓고 떨어진 분필 가루를 청소하기도 한다”며 “청소기를 구입하는 비용보다 친환경 칠판을 사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데도 인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서 대표는 말했다. 또 에어컨 설치된 학교는 분필 가루로 인해 필터가 막히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런걸 보면서 서 대표는 “이 사업이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숨쉬는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정말 보람된다”고 설명했다. 서 대표는 분필가루 하나 때문에 미세먼지를 해결하지 못해 진공청소기나 지우개털이 등 이중적인 낭비가 이뤄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똑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지 않다보니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그것은 발생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원인을 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코로직은 바로 그런 부분에서 근본을 생각하는 기업이다. ▲좋은 상품, 좋은 환경 상품이 좋고, 생각이 좋아도 돈이 없으면 어렵기 마련이다. 10년간 집까지 줄여가며 투자했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그러던 중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 운영하는 소상공인 지원제도를 찾아갔다. 당시 관계자는 아이템이 좋은데 어렵게 가고 있다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현재는 안산시를 중심으로 좋은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벌써 올해만 20여개 학교가 에코로직의 에코그린칠판과 물펜을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전국에서 구입문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조금씩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서 대표는 물건을 구입한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을 위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도 직접 영업에 나서며 주말과 휴일에는 어김없이 에코로직의 제품을 사용하는 학교에 찾아간다. 간혹 ‘잘보이기 위해서’라는 오해도 받지만 그보다는 서 대표 자신이 만들고 싶어하는 환경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서 대표는 기업인은 “의식을 갖고 살아야 내가 살아있는 존재가치를 느끼고 남보다 앞서가고 있는 생각이 든다”며 “수익을 많이 내려는 기업인 아닌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기업인이고 싶다” 말했다. /장충식기자 jcs@kgib.co.kr

“편견의 벽을 깨고… 건설현장 접수하다”

◇위기에서 시작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외환위기가 국내 경제를 흔들어 놓을 당시 장 대표는 일반건설회사에 경리일을 하고 있었다. 친오빠와 동업 형식으로 운영되던 회사는 외환위기로 자연스레 분리가 되고 그 한 부분을 장 대표가 떠 맡았다. 아직까지도 여성에게 힘든 업종으로 인식되는 건설업이지만 장 대표는 “그래도 할 줄 아는 일은 건설업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하청업체이니 만큼 일은 많아도 남는 것이 없다는게 건설업의 특징이라지만 “별을 보고 출근해서 별을보며 퇴근하는 날이 비일비재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오기로 일어서다= 경영을 직접 맞고 나서도 힘겨움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영업이 가장 힘들었다. 수주를 받기위해 찾아간 거래처에서 ‘여자’라고 대 놓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미 10여년의 경험으로 건설업 전반을 알고 있는 그녀에게 도면을 펼쳐놓고 “알아볼 수 있겠냐”고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장 대표는 “그때는 여자가 뭘 알겠냐는 식으로 물어봐서 참 당황하기도 했었다”며 “당시 생긴 오기가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일 이후 장 대표는 도면 읽는법 등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시작했고, 거래처를 하나씩 확보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일에 대해서 더 철저해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성장기= 효진건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계기는 창업이후 4년이 흐른 뒤였다. 재하청만을 맡아서 하는 일에 한계를 느꼈던 장 대표는 작은 일이라도 직접 나서야 겠다는 생각에 건설업 단종 면허를 취득하게 됐다. 물론 면허을 취득할 때까지 힘겨움은 두배에 달했지만 이후 앙골라 해외공사도 하게 됐다. 지하철공사와 동탄현장 등 유명한 공사현장에 효진건설의 제품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번듯한 국내 건설업체로 등록이 돼 수주 받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 비하면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5년 정도만 있으면 남들도 인정할 만한 회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 대표는 자신했다. ◇특허출원= 금속구조물을 이용한 도어 생산업체인 효진건설은 그 가운데서도 방화용유리창, 방화 발코니, 자동 방화문 등이 주력생산품이다. 이 모든 것이 장 대표와 직원들이 노력해 얻은 특허 상품이다. 지난 2006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제품 한개당 5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가며 특허준비를 했다. 기존 차별성 없는 제품만으로는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두개의 제품이 특허를 획득했고, 올초에도 추가로 한개 제품이 특허를 얻었다. 특허 획득은 정부에서 인정하는 시험에 합격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시합격이나 다름 없는 것이라고 장 대표는 설명했다. ◇세상의 편견을 딪고= 장 대표는 사회적으로 평범한 두 아이의 어머니이다. 그냥 어머니라고만 하는 것은 그녀가 이혼녀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흔하디흔한 일이 됐지만 장 대표가 홀로서기를 할 때에는 그 자체가 편견으로 작용했다. 회사가 부도를 맞은 이후 회복기에 있던 시절, 신용보증재단에서 대출받은 융자금을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갚아야 했다. 장 대표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회사사정이 나아지는 것과 별개로 사회적 편견이 사업하는데 가장 힘들었다”고 씁쓸해 했다. 이후 장 대표는 “거래처는 물론 사회적으로 약점 잡히지 않으려고 작은 일 하나도 소홀할 수가 없다”며 “아마도 여성 경영자들 가운데 많은 수가 겪어본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는 모두 성인이 된 두 아들들을 데리고 일을 나가는 경우도 많았었다. 지금은 아이들 스스로가 아르바이트를 자청하며 어머니의 일손을 돕고 있다. ◇여성CEO로 산다는 것= 편견을 딪고 일어서긴 했지만 여전히 “여자로서 기업을 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점이 많다”고 장 대표는 이야기한다. 여성이 기업의 대표라면 옆에 누가 있고, 뒤에 누가 있다는 등 일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있는 그 자체를 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똑같은 표현을 해도 속편하게 터놓을수 있는 부분도 상대적으로 적다. 속에 있는 얘기를 못하다 보니 가끔은 약점잡힐까 두렵기도 하고, 또 가끔은 무능력하다는 얘기를 들을까 신경이 쓰인다. 건설업계에서는 남성만큼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도 약점이 돼 버린다. 이런 이유로 장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여성CEO로 산다는 것이 “참 외로운 일”이라며 “언제까지 이런 이들을 반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 놓지만 오늘도 대한민국의 당당한 건설기업과 여성경영인이라는 자리를 굳건히 하기위해 하루에 25시간을 뛴다. /장충식기자 jcs@kgib.co.kr

토종기술로 국제 금융업계 공략 ‘출사표’

“꿈은 기술 수준에 맞춰 갖는 것 같습니다. 우리 기술을 가지고 해외시장에서 부딪쳐 싸워보겠다 는 생각입니다. 가능성이 보이는데 안할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리누딕스㈜는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자금력이 없어 고민해야 했던 기업이다. 그러나 현재 보다는 꿈을 위해 투자하는 기업이다. 무선 신용카드 조회기와 네트워크 카메라 생산업체인 리누딕스 김광수 대표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보다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출기업으로의 출발 지난 2000년 9명의 동료가 모여 창립한 리누딕스는 처음부터 수출을 목적으로하는 회사로 시작했다. 국내 시장도 중요하지만 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였다. ‘무선시장이 상당히 괜찮을 줄 알았다’는 김 대표는 “해외 시장에서 우리 기술이 인정받을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고 창립 당시를 회고했다. 신용카드 조회기를 만들면서 2억원이 넘는 비용을 투자하는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를 얻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기존 국내시장이나 해외시장 모두 쟁쟁한 외국 회사들이 이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해외시장에서 인정받기위해서는 각종 인증을 받아야 했지만 국내 중소기업으로서는 이같은 인증을 받기위한 상당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큰 부담으로 엄두를 내기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기술이 우선이다 그러나 리누딕스에게는 기술이란 무기가 있었다. 생산하는 신용카드 조회기의 경우, 국내용 단말기와 해외용 단말기는 큰 기술차이가 있다. 국내 시장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모두 갖춘 완제품을 제공해야 하지만 해외시장은 바이어들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시장용이 기성품이라면 해외시장용은 컴퓨터 같은 자체 프로그램이다. 물론 국내용보다 해외용에 들어가는 기술이 보다 첨단적이다. 시장별 차이도 있다. 무선 신용카드 조회기는 기본적으로 금융권이 큰 시장이다. 비금융권인 콜롬비아, 남아공, 러시아 중국 인도네시아 등 5개 국으로 이미 수출하고 있지만 휴대용 로또 판매기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더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 유명 금융권에서 리누딕스의 제품을 사용해야 된다. 그것이 바로 리누딕스 김 대표가 원하는 기술력이다. 김 대표는 “제3국가의 경우, 인증이 중요하지 않아 비교적 쉽게 진출했지만 그보다는 선진국에서 인정받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며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좋은 기술이 있는데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련 후의 결과 지난해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회생특례자금을 지원받은 리누딕스는 안을 들여다 보면 튼튼한 기업이다. 좋은 기술력에 대기업 납품까지 여러가지로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리누딕스가 회생특례 자금까지 지원받은 이유는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과 인력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년간에 걸쳐 전국 SK주유소에 리누딕스 제품을 보급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지만 이전까지는 월급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열악한 재정상태속에 모든 것을 해외시장 개척에 집중했었다. 그러던 중 휴대폰 시스템인 CDMA방식을 이용해 개발한 무선 단말기가 국내 기업들로 부터 호응을 얻기 시작했고, 몇달만에 동일 분야에서 최고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꿈과 현실 김 대표는 대기업에 납품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망설였다고 한다. 국내 시장을 신경쓰다가는 해외인증작업이 늦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당시 넉넉한 환경이 아니였던 김 대표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김 대표는 “SK주유소를 수주하는 바람에 현금이냐 미래냐 가운데 고민하다가 현실을 선택했다”며 “생산 자금이 없어 중진공으로부터 알토란 같은 3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은 것이 회생의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결국 주유소 프로젝트를 다 끝낸 뒤 들어오는 돈으로 미래를 위해 준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현실을 선택하게 한 것이다. 그는 “해외 빅3사가 차지하고 있는 해외시장에서 ‘맞장(?)’한번 뛰어보고 싶다”며 “리누딕스에 있어 국내시장은 그저 먹고살기위한 하나의 방법이고, 꿈을 이루기 위한 기반이지, 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험 같은 꿈 해외인증은 기술보다는 시간과 돈이고, 인력이다. 인증비용과 컨설팅비용, 현장 체제비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감당할 수가 없다. 또 신용카드 단말기는 개인 정보와 직결되기 때문에 데이타가 보호받을 수 있느냐가 가장 큰 핵심이고, 비밀을 보장할 수 있느냐가 없느냐가 기술이다. 리누딕스 단말기는 외부에서 조금이라도 무리한 힘을 가해지면 데이터가 자동 삭제된다. 이런 기술까지 개발했는데 해외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인증 작업 자체가 상당한 모험이자 꿈”이라며 “현재 금형까지 다 나왔고, 제품 테스팅 중에 있어 그것 완료되면 인증기관에 의뢰할 수 있어 바라던 꿈에 거의 다가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없던 것에 도전하는 것도 아닌데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꿈은 기술 수준에 맞춰서 꾸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고, 현실 보다는 미래를 보면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장충식기자 jcs@kgib.co.kr

“대기업 꿈 대신 이뤄주다가 10년만에 우리꿈도 이뤘죠”

“노력한 만큼 성과는 오기 마련이고, 시련은 참고 견디면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국내 최초 다목적 체험 학습시스템을 개발한 뮤렉스(대표 엄정현)는 공대 출신 연구원 5명이 시작해 만든 기업으로 ‘자신이 만든 기술이 상품으로 만들어진다’는 엔지니어들의 꿈을 실현한 기업이다. ◇공대생 기업= 엄정현 대표는 공대출신으로 할 줄 아는 것은 기술개발 밖에 없었다고 한다. 공대에 다니던 시절 국산 기술이 외국기술에 뒤처져 있는 현실에 대해 심각해 고민했던 엄 대표는 어떤 기술이든 자기 손으로 국산화 할 수 있다는 꿈을 갖고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처음 직장에 취직한 엄 대표에게 떨어진 특명은 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개발하던 노면 측정장치와 측량장치였다. 당시만 해도 국내 기술은 전무한 상태로 비싼 돈을 들여 외국기술을 이용해도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효율성이 떨어졌다. 이로인해 한국도로공사 측에서 먼저 제의한 노면 측정장치는 엄 대표에게 있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첫번째 사업이기도 했다. 그러나 엄 대표의 꿈은 외환위기라는 벽에 막혀 빛을 보지 못했고, 결국 다니던 직장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부도를 맞게 됐다. 엄 대표도 회사를 떠나야 했다. 처음 좌절을 맛본 엄 대표는 신중한 고민 끝에 창업을 결정하고 함께 대학에서 공부했던 동기와 후배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이것이 뮤렉스의 시작이다. ◇첫번째 꿈을 실현하다= 5명의 대학 동문으로 구성된 뮤렉스는 창립 당시 맞춤형 설계 및 생산전문 업체로 다른 회사들의 제품 설계와 생산을 대신해 주는 기업이었다. 창업그룹이 모두 공대 출신 엔지니어들이라 기술 개발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다른 기업의 제품과 기술을 대신 만들어 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연구개발에만 매달렸던 엄 대표와 연구진들은 연속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도로공사, 삼성코닝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기업들의 기술 개발에 성공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아이디어만 가져 오십시오! 뮤렉스에서 실현시켜 드립니다’라는 뮤렉스의 모토가 다른 기업들의 눈에띄게 됐다. 전 직장에서 외환위기 때문에 실패했던 노면 측량기술이 뮤렉스 사업의 첫번째 과제로 주어졌고, 엄 대표는 이를 완벽히 수행해 내며 과거에 이루지 못해던 꿈을 실현해 냈다. 지금도 노면측정 기술은 뮤렉스가 국내 최초개발이라는 명성을 유지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10년만에 얻은 브랜드= 창립이후 매년 주어진 과제에 충실히 임했던 엄 대표는 정보통신부의 CCTV용 4분할 감시 시스템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무선 원격 계측용 장비 개발에 연속으로 성공하며 설계 및 생산분야 용역업체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을 보낸 후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다른 기업들의 기술만 개발해 주다보니 엔지니어로서의 명성은 얻었지만 정작 자체 브랜드가 없다는 것이었다. 엄 대표는 “지난 10년간 각종 분야에 기술개발로 어느 정도 국산화도 이루고 엔지니어로서의 꿈도 이뤘지만 결국 다른 기업 좋은 일만 시킨꼴이 됐다”며 “이제부터라도 뮤렉스의 이름으로 생산되는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개발하게 된 것이 다목적 체험학습 시스템인 ‘엔스쿨’이다. 용역업체 경력 10년만에 뮤렉스의 이름을 내건 제품이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이다. ◇새로운 어학시스템의 필요성= 엄 대표가 다목적 체험학습 시스템인 엔스쿨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영어교육 위주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서 엄청나게 소요되는 사교육비를 조금이나마 줄여보기 위해서다. 이미 기존 업체의 어학시스템을 개발, 생산해 봤던 경험을 통해 해당 분야의 개발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한 몫을 차지했고, 국내 고유기술이 없다는 점도 엄 대표를 자극했다. 엄 대표는 “일선 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보급하겠다던 정부의 정책은 이미 한계에 다달았고, 전국적으로 붐이 일었던 영어마을도 만만치 않은 참가비로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며 “똑같은 학부모 입장에서 가계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생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존 개발된 학습 시스템은 사용이 복잡해 활용이 어렵고, 단순한 듣고, 말하고 보는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에 비해 활동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뮤렉스의 어학시스템은 기존의 단순한 기능과 구조를 탈피해 외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설계된 국내 최초의 인체 공학적 어학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련은 지나간다=자체브랜드 상품을 생산하기까지 뮤렉스는 4차례의 부도위기를 맞았다. 한번 망할 때마다 몇년간 고생한 직원들의 노력이 허사가 돼 버렸다. 더구나 뮤렉스가 겪은 어려움은 회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납품 기업들의 부도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엄 대표는 “자비를 들어 제품을 납품했는데 결국 납품 회사가 부도가 났다”며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럴때마다 엄 대표와 직원들의 고생은 몇년씩 늘어났고, 내년이면 좋아질 것이란 희망도 조금씩 멀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참 막막했다. 국가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직원들 월급도 못주고, 그저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엄 대표는 전했다. 다행이 직원들 역시 엄 대표와 같은 생각으로 참고 기다려줬고, 그 결과 ‘노력한만큼 대가를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듯 힘든 어려움 끝에 개발한 엔스쿨이 개발 3개월만에 큰 호응을 얻으며 전국 각지로 팔려나가고 있다. 엄 대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가능한 부분이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며 “자체상품을 개발한 지금이 엔지니어와 경영자로서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다. /장충식기자 jcs@kgib.co.kr

늘어가는 음식물쓰레기 ‘고민 해결사’

연간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은 15조원,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일부만 줄이더라도 예산절감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음식물쓰레기가 유발시키는 사회적 문제는 악취와 오염 등 환경적인 부분에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수거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 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따라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 도입이 절실한 실정이며 이미 전국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엔클립(대표 김형태·38)은 새로운 수거방식을 제시하며 음식물 쓰레기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다. ◇음식물쓰레기 대란 온다 정착 단계에 있는 생활 쓰레기와 달리 음식물쓰레기 문제는 종량제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이다. 각 지방자체단체에서도 매년 많은 부분의 예산을 늘려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위해 사용하고 있고, 국가적으로도 연간 15조원이나 되는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엔클립 김형태 대표는 “기존까지 매립과 해양투기를 통해 처리돼 오던 음식물쓰레기가 오는 2010년부터 해양투기가 금지 되면서 처리 방법을 두고 고심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결국 음식물 쓰레기 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며 엔클립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봉투를 이용한 종량제를 대신해 용기를 이용한 종량제 방식인 ‘음식물쓰레기수거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설립된 엔클립은 2007년 4월 음식물쓰레기 감량종량제 전산화 솔루션 개발단을 구성, 새로운 총량제 시스템 개발에 착수, 8월 종량제 전문용기까지 개발해냈다. 이밖에도 공기청정기와 손 소독기, 세계최초의 중성수 살균방식의 세정제균수생성기 등 환경관련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김 대표의 남다른 생각이 음식물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게 했다. ◇환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엔클립 김 대표는 지난 10여년간 환경관련 사업중 시스템화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다가 음식물쓰레기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문제를 보고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 대표는 “지자체 등에서 감량을 유도하지만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공공 처리업체들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사설업체들을 이용하고, 그러다 보니까 지자체가 자기 지역을 벗어나서 타 지역의 업체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입장이 되는 등 지속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거과정에 대한 투명행정을 유도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김 대표는 오랜 기간 전산관련 사업을 해 오던 것을 바탕으로 음식물쓰레기 처리 부분의 선진기술을 도입해서 전산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엔클립의 기원이다. “어마어마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전자태그 시스템만으로 가능할 것 같아 무조건 도전해 봤다”는 김 대표는 “주민들이 무의식적으로 음식물을 버리고 있는데 버린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일반인들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식물쓰레기수거 솔루션 음식물쓰레기수거 솔루션은 전자표시수단(바코드, RFID-전자태그)과 이를 인식할 수 있는 단말기(데이타터미너, 스캐너)와 같은 자동인식기술을 활용해 음식물쓰레기의 배출에서부터 수거 과정과 수수료 징수관리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산화 시스템이다. 이 경우 지자체는 각 가정마다 음식물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용기를 지급하고, 가정에서는 음식물쓰레기에 포함돼 있는 수분을 우선적으로 제거하고 배출함으로써 감량효과를 볼 수 있다. 또 이 시스템은 집앞에서 계산하는 방식으로 바코드를 이용한 납부필증은 쓰레기봉투와 동일한 방식으로 구입하고, 수거업체는 바코드를 인식하며 수거와 함께 일괄계산하는 방식이 된다. 바코드를 이용해 수거시간과 양 등 수거 데이터가 정확히 계산돼 배출에서부터 수거까지 전산화 관리가 가능하고, 전산업무를 통한 행정업무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새로운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배출량 감소는 물론 기존 수거업체들이 수거량을 부풀려 폭리를 취하던 폐단을 방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시작된 시스템 엔클립의 음식물쓰레기수거 솔루션은 이미 지난해 인천시가 도입하며 가능성을 열었다. 당시 참여업체에 지나지 않았던 엔클립은 인천 부평구가 시범운영한 결과 전체 음식물쓰레기의 30% 절감 효과를 내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시흥시에서도 지난달부터 시범운영 중에 있으며 오는 3월 본격적인 시행에 나설 방침이다. 김 대표는 “경기도의 경우 시흥시를 제외하고 최근까지는 용기총량제를 시행한 적이 없었다”며 “지형적으로 음식물쓰레기 수거에 어려움이 큰 성남시와 안양시 등 남부지역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사기업들 사이에서 엔클립은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전자시스템과 납부필증이 1년여의 시간만에 특허를 획득하면서 기술력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기존 대형 수거용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좁은 소방도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수거용차량을 소형화 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고, 거점차량을 위한 소형식, 충전식 차량 시스템도 함께 개발하고, 공동주택용 시스템도 개발할 방침이어서 관련분야에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를 성장의 원년으로 삼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장충식기자 jcs@kgib.co.kr

“직접 날아봐야 글라이더의 마음 알죠”

“하늘을 나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사업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공부하고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마도 성공의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해 동경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창공은 인류에게 있어 신비로운 공간이다.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패러글라이딩 제조업체 ㈜진글라이더는 비행에 대한 인류의 소망을 실현시켜주는 기업이다. “하늘을 나는 것이 그냥 좋았다”는 송진석 대표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비행에 대한 열정이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들어 냈다. ◇취미가 직업으로= 대학교에 다니던 송 대표는 어느날 신문 한구석에 난 행글라이더 비행 기사를 보고 마음이 이끌렸다. 당시 이름도 모르는 형제가 한강에서 행글라이더를 탔다는 것만 보고 무조건 찾아가 비행법을 배우기를 청했다. 이렇게 송 대표는 비행과 인연을 맺었다. 중간중간 얼굴 뼈가 으스러지는 사고도 당했다. 그러나 끝까지 해보고 싶은 마음만은 변하지 않아 10여년 후 결국 송 대표는 잘 다니던 현대그룹을 그만두고 무작정 유럽으로 떠났다. 패러글라이딩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것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일 세계선수권대회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나니까 사표도 미련없이 낼 수 있었다. 우선은 사업보다 자신과 같은 사람을 위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국내에 보급해 보자는 취지가 앞섰다. 말그대로 취미로 시작해 전문 기업인이 된 송 대표는 “그때는 어떤 목적의식 보다는 비행하는 것이 단지 좋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국내유일의 기업= 패러글라이딩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워낙 군소업체들이 많다보니 전문적인 기업은 드물다. 용인에 본사를 둔 진글라이더 역시 국내에서 유일하다. 송 대표가 어떤 방향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국내 시장 자체의 방향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간 5천여개의 패러글라이딩을 생산해 내며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진글라이더는 국내소비시장은 20억원 안팎으로 그리 크지 않지만 동호회 회원이 3만여명에 이를 만큼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기도 하다. 전세계 70개국에서 판매되는 진글라이더는 마케팅 부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마케팅을 전담하고 있는 직원은 프랑스인으로 주시장인 유럽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고유성만을 고집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여기에 송 대표가 직접 패러글라이딩 선수로 활약하고, 전문 팀도 보유하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직접 팀을 구성해 세계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전세계를 다니면서 선수들을 붙잡고 홍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라= 진글라이더 송 대표는 패러글라이딩 분야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장본인이다. 송 대표가 비행을 배울때만 해도 비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때가 1987년도의 일이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정책적으로 팀을 구성해서 대회에도 참가시켰다. 패러글라이딩은 생각보다 접근성이 어려워 관심이 있어도 쉽게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전국의 비행 동호회 활공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아직까지도 직접 비행에 나서며 제품의 안전성과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고 있다. 협회 행사를 진글라이더에서 지원하며 주기적으로 선수를 길러내고, 교육전문가도 배출한다. 현장에서 선수들이나 회원들과 함께 호흡해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디자인이 생명이다= 외제차의 디자인이 돋보이는 것처럼 패러글라이딩 분야도 디자인이 생명이다. 디자이너가 누구냐에 따라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계대회를 돌아다니던 송 대표를 두고 동료 선수들은 이름의 가운데 글자인 ‘진’으로 불렀다. 이것이 진글라이더의 상호이자 디자이너 송 대표의 이름이기도 하다. 회사 설립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해외 바이어들은 송 대표의 이름만 믿고 찾아왔다. 설립 이전부터 투자가 몰려왔다. 송 대표는 “기업인이라는 생각보다는 비행하는 사람, 실제로 경기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다”며 “지금도 스스로가 달리는 광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지의 공간을 향해= 지금이야 세계 패러글라이딩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송 대표에게도 첫번째 동업 실패와 그로인한 생활고도 있었다. 어떤 때는 쌀이 떨어져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때도 있었다. 남들 다 힘들던 외환위기때 그 역시 참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자존심이 있었다. 다른 업종처럼 예제가 있는 업종이 아니라는 생각이 개척정신이라는 또 하나의 사명감을 던져준 것이다. “무엇보다 제품 자체를 사용자 입장에서 만들었던 것이 성공한 사례라고 생각한다”는 송 대표는 “처음부터 메이드인 코리아를 벗어나려고 글로벌 마케팅 기법을 활용한 것이 상당히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장충식기자 jcs@kgib.co.kr

“난방비 부담 적은 저온성 품종으로 승부수 ”

“궂은 날이 있으면 갠 날이 있듯이 힘든 때가 있으면 즐거운 때도 있는 것이 인생사가 아니겠습니까. 화훼산업이 여러 대내외적 악재로 침체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연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기름 값, 여기에다 소비까지 침체돼 국내 화훼산업이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생산비 절감을 위한 품종 선택과 재배기술 개발로 난국을 헤쳐 가고 있는 선진 화훼인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경기도 시클라멘연구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홍완식씨(52·이천 하일꽃 농장 대표). ◇갈수록 어려운 화훼산업 “하고 싶은 말은 아니지만 꽃 농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한번 경영비를 따져 볼까요. 수년째 꽃 값은 떨어지고 있는데 반해 인건비에다 특히 난방비용이 총 경영비중 점유하는 비율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가고 있습니다.” 홍씨는 현재, 이천 신둔과 백사지역에서 총 1만2천㎡ 온실 면적으로 꽃 농사를 짓고 있다. 소형분화가 주종인 온실에는 베고니아와 시클라멘, 카네이션 그리고 초 저온성인 천양금 등 20여종의 화종이 즐비하게 재배되고 있다. 이만하면 수도권내 손꼽을 만한 대농이다. 생산비를 줄일 수 있는 체계적 화종 선택에다 기술개발로 해마다 경영비를 줄이고 있지만 연간 3억원 정도나 되는 경영비가 항상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난방비가 문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총 경영비중 난방비가 20~30% 정도 였지만 올해에는 50%까지 점유할 것이란 자체 판단이다. 기름 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탓이다. 올해 같으면 3천300㎡ 기준, 난방비가 1천만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또한 지난해 유지했던 평균 온실 온도(20℃)를 3℃ 정도 떨어뜨렸을 때 계산되는 액수다. 지난해의 경우, 온실 온도를 20℃로 맞췄어도 월 평균 난방비는 부담되는 수준의 평균 600만~700만원 정도였다. 하물며 온도를 3℃나 떨어 뜨렸음에도 불구, 경영비는 오히려 30% 가량 오를 것이란 생각에 올 농사는 도저히 계산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꽃 값을 살펴보자. 베고니아의 경우 지난해 1분 기준, 3천500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날 현재, 500원이 떨어진 3천원선에 머물고 있다. 시클라멘 또한 15cm 1분이 지난해 같으면 3천원에 거래됐으나 올초 시세는 2천~2천500원 수준이다. 떨어지는 꽃 값에 반해 난방비는 겁이 날 정도로 뛰어 오르는 역조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현상을 타개해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민고민 끝에 홍씨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초 저온성 화종 선택이다. ◇농원의 돋보인 경쟁력 하일꽃 농장은 지난해부터 ‘천양금’이란 초 저온성 분화를 시장에 출하하고 있다. 이 분화는 원래 토종이지만 일본에서 유명세를 탄 화종중 하나로 난방을 하지 않고도 꽃 피움이 가능한 초 저온성 품종이다. 겨울철이면 대개 온실마다 낮게는 17℃에서 20℃까지 온도를 유지해야만 제대로 된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삽목후 1년후 출하가 가능한 천양금은 5℃ 이하에서도 성장이 가능하다. 게다가 분당 판매가 또한 현재 800원으로 경쟁력이 괜찮은 편이다. 작년에는 1천200원까지 받았다. 또 오는 4~5월 가정의 달을 겨냥, 시장에 출하할 목적으로 이태리에서 들여온 초 저온성 카네이션을 다량 재배중에 있다. 기존 품종은 10~15℃ 정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이 품종은 7~8℃에도 생육이 가능하다.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생산비를 줄여가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천양금의 경우, 분당 500원까지만 받아도 괜찮다고 판단돼 앞으로 농원 주종으로 재배해 볼 생각”이라고 홍씨는 말한다. 농장의 기술력도 돋보인다. 우선, 지난 84년중 ‘보일러시스템’을 도입한 선도적 화훼농가로 손 꼽힌다. 당시 왕성한 소비시장에 편승해 발화, 즉 꽃 피우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바닥에 엑셀파이프를 설치한 후 실내 온도를 골고루 또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농가들은 연탄으로 온도를 유지하고 있을 때였다. 둘째는 ‘C형관 이용 심지재배법’ 개발이다. 양쪽 끝을 막은 C형관에 물을 채우고 그 위에 화분을 놓은 뒤 화분 아래쪽에 심지를 꽂아 뿌리가 필요한 만큼 물을 흡수케 하는 방법이다. 식물의 재배조건을 최적화하기 위해서다. 홍씨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최근에는 경기도농업기술원과 함께 산소공급라인(구멍)이 추가된 ‘기능성 화분’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화분 윗부분에 산소 공급라인을 만들어 줌으로써 산소 공급이 원활해져 작물 생육을 왕성하게 할 수 있었다. “대개 화분을 물에 담가 놓을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물과 용토가 부패돼 뿌리가 상하기 마련으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이같은 화분을 고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기능성 화분은 조만간 특허 출원을 마친 뒤 경기도 시클라멘연구회원들에 보급, 생산성을 극대화 할 생각이다. 셋째는 ‘식물뿌리 난방기술’ 개발이다. 큰통의 연탄보일러를 통해 데워진 물이 식물재배 베드에 깔려진 8mm의 고무관을 통해 흐르게 함으로써 난방 효율을 극대화 하고 있다. 이경우 온실 전체 난방을 통해 소비되는 에너지를 차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뿌리의 적정 온도를 상시 유지해 재배조건을 최적화 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화려한 인생역전 화훼인으로의 홍완식씨가 걸어온 길은 한편의 드라마다. 논 밭 몇 마지기로 생계를 근근이 연명했던 그는 원래 화순 출신이다. 생활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무작정 상경했다. 그때가 21살의 혈기 왕성한 때였다. 가까운 친척 도움으로 지금의 뚝섬에 있는 시계 공장에 취직, 한달 봉급 8천500원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식비로 고스란히 지출되는 비용만 해도 4천원 정도나 돼 월급쟁이로 안주할 수 만은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숙식을 해결하고도 손에 쥔 수익이 월급보다 많은 주변의 화훼 농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인생역전이 시작된다. 1978년 하남에서 1만㎡ 규모로 농장을 처음 마련한 그는 서울 하일동까지 재배면적을 넓혀가면서 우여곡절 속에서도 일취월장해 갔다. 그러다 90년부터 이천과 인연을 맺으며 2000년 전후 수십억 가치의 넓은 면적의 유리온실을 확보하면서 지금은 이천, 나아가 경기도와 국내 화훼전문경영인으로 그 명성을 높이고 있다. 현재 그는 경기도 시클라멘 연구회 회장에다 또 화훼자조금 분과위원장으로 농장 일만큼이나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특히 정회원이 스물다섯 농가로 구성된 시클라멘 연구회는 도내 품목별 연구단체중 왕성한 활동에다 탄탄한 동지애가 돋보여 항상 모범을 보이고 있다. “항상 가족처럼 생각되는 시클라멘연구 회원들과 함께 더불어 잘 살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개발하는데 발품을 팔겠다”는 홍완식씨, 자신만만함과 왕성한 혈기가 이천은 물론 경기지역 농업발전에 초석이 될 것을 기대해 본다./김동수기자 dskim@kgib.co.kr

中企 뭉쳐, 세계시장 활로 찾는다

최근의 경제환경은 급격한 기술변화와 짧아진 제품수명주기로 기업의 신속한 대응력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FTA라는 시대적 조류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글로벌경쟁에서 승리해야 생존할수 있다는 절박감을 더하고 있다. 또 소비자의 욕구는 대량생산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전환을 강요하고 있으며 제조업의 성장률과 고용률이 한계에 직면함에 따라 중소기업에게도 고도화된 전문경영기법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경제환경에서 중소기업 2~7개가 각각 기업의 핵심역량, 즉 R&D기업은 기술, 제조업체는 시설, 마케팅기업은 판로 등만으로 뭉쳐 대기업과 같은 효과를 내는 협업경영기법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04년 기업 CEO, 산업연구원 박사, 언론계 인사 등 다양한 전문인력의 참여로 출범한 한국ICMS협회가 시행하고 있는 ICMS사업(Integrated Contract Manufacturing & Service: ‘통합계약 생산 및 서비스’를 의미)은 협업경영의 메카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미 이탈리아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개별중소기업이 아닌 기업간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방식이 진행되고 있으며 일본 역시 2005년 신사업활동촉진법 제정으로 중소기업간 협업을 지원하고 있다. 협업은 R&D, 제조, 마케팅 등 특화된 전문기업이 핵심분야만 직접 수행하고 나머지는 상호간 협력을 통해 조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협업 참여기업들이 자금과 위험을 분담하면서 신속하고 유연하게 제품생산과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업의 의미가 아니며, 협업기업간 동등한 지위를 갖고 다만 판매나 제조 등 해당 기업의 역할만 담당하는 것이다. 핵심기술을 보유한 R&D전문업체가 생산, 마케팅업체와 협업체를 구성하거나 국내·외 주문을 수주한 마케팅 전문업체가 생산업체와 협업체를 구성하는 형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같은 협업 지원법안이 지난 2006년 중소기업특례법 개정을 통해 이미 시행되고 있다. 한국ICMS협회는 협업사업 승인제도를 통해 다수의 기업이 제품개발, 생산, 판매 등에서 각각의 전문적인 역할을 분담, 상호 보완적으로 제품을 개발·생산·판매하는 협업사업계획의 승인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정부는 협업기업에게는 협업자금 융자지원과 협업체 운영 컨설팅을 지원하고, 신용보증이나 기술보증, 중소기업청 R&D, 판로 등 우선 지원에 나서게 된다. 위성수신 R&D 및 마케팅 전문 기업인 M사는 위성수신기술에 있어 장영실상을 수상할 만큼 국내뿐 아니라 프랑스등 해외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는 업체다. 그러나 지난 2006년 해외에서 밀려드는 주문량과 바이어의 제품 업그레이드 요구에 따라 빠른 기간 내 금형부품 개발의 절실함을 느꼈다. 제품의 질과 속도라는 2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M사는 한국ICMS협회(한국협업기업협회)를 통해 금형부품 안테나 제조회사인 S기업과 수신기 제조업체 K정밀과 협업(CF: Consortium Family)을 맺었다. 월등한 기술에 비해 생산시설과 전문인력 등이 부족하기도 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시설을 늘리면 기술개발에 필요한 자금 확보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M사는 결국 협업을 통해 조립금속 제품생산은 별도의 전문업체가 담당하게 하고 기술개발에만 집중, 프랑스 방송국에 납품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인해 M사의 기술개발력과 마케팅력이 더욱 고도화 됐음은 물론 S기업과 K정밀은 안정적인 마케팅을 기반으로 제조능력을 한단계 높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이들 기업은 기존 프랑스 바이어는 물론 두바이와 탄자니아 등 신규시장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이밖에도 M크코리아는 제품 포장 및 디자인과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는 기업으로 사업 다각화와 제품 다양화를 위해 협업경영을 전개키로 했다. 마케팅 업체가 중심이 됐지만 소비자의 욕구에 맞는 업그레이드를 위해 마케팅분야를 확대한 것이다. R&D, 마케팅 전문업체 I와이드와 부품공급업체 M테크 등이 협업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현재는 멀티미디어 관련 기재(CD/DVD, 테잎 등)에 대한 양질의 수급으로 핵심 기술인 저장 매체의 질적 향상을 이뤘으며 미디어 기재의 저가 공급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 이들 협업기업들은 국내 교육 미디어 관련 업체에 납품 공급 계약을 준비중에 있으며, 하반기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장충식기자 jcs@kgib.co.kr <인터뷰> “글로벌시대 中企 생존모델” “올해는 한국ICMS협회의 본격적인 성장기로 기대하는 만큼 협업사업 환경을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중소기업의 생존 모델인 협업사업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ICMS협회(한국협업기업협회) 권재형 회장은 2008년을 한국ICMS협회 성장기로 규정, 활발한 활동을 다짐했다. 권 회장은 “지난 2006년 12월22일 중소기업간 협업을 지원하는 법률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나서 기업간 협업사업이 햇빛을 쬐였지만 짧은 홍보기간으로 인해 기대만큼의 호응은 없었다”며 “선진국에 비해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협회가 시행하고 있는 ICMS사업은 통합계약 생산 및 서비스 방식으로 흔히 말하는 동업과는 차이가 있다. “아웃소싱의 한 방법이긴 하지만 1개의 기업이 개발에서 판매까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기업이 가장 경쟁력 있는 부분, 즉 그 기업이 가장 잘하는 부분을 각각 맡아 수행함으로써 대기업과 같은 시너지 효과를 낼뿐 아니라 참여기업의 평등한 관계로 인해 갑작스런 가격인하 등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권 회장은 말한다. 지난 2004년 설립된 협회는 그동안 지원법안이 없는 상태에서 성공사례를 만들어냈고 협업사업에 대한 홍보에 주력해 왔다. 협회가 이 기간동안 수행한 협업사업을 중심으로 내놓은 ‘협업사업의 성공및 실패사례’는 정부기관은 물론 중소기업을 연구하는 각종 기관과 연구기관등에서 뜨거운 인기를 끌 정도로 협업분야사업의 기초자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원법안 통과 후 예산사업 첫해인 올해, 협회는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 등 중앙정부는 물론 경기도 등 지자체와 함께 글로벌시대 중소기업의 생존모델인 협업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최대 밀집지역인 경기도와 파트너십을 맺고 각종 세미나와 간담회, 설명회 등을 추진하면서 홍보 및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만 하다. 권 회장은 “최근들어 협업의 필요성은 중소기업들뿐 아니라 대기업에서 공감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FTA체제로 대변되는 글로벌시대를 맞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협업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와 같이 무한경쟁체제 속에서는 중소기업은 특히 단 한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 수 있지만 협업을 하게 되면 사업에 참여한 2~6개 기업이 리스크를 분담,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도 낼 수 있다. 그는 “중소기업이라도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핵심역량들로 뭉친다면 사업성공률은 대단히 높아질 것”이라며 “협업을 통한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회는 회원사뿐 아니라 모든 중소기업에 문을 개방하고 노하우를 나누겠다”고 말했다. 권회장은 특히 “기업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스스로 움직이고 변화하지 않으면 힘들어 진다”며 “협업에 대해 생소해 하지 말고 이를 기업발전의 기회로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장충식기자 jcs@kgib.co.kr

“암진단 센서 개발, 뜁니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에 위치한 ㈜인포피아(대표 배병우·46)는 1996년 설립된 혈액진단 바이오센서를 개발해 온 진단 바이오분야 최고의 기업이다. 지난 2006년에는 코스닥에 상장되는 10년만의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성장이 있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이를 두고 인포피아 배병우 대표는 “회사가 문닫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확신이 있고, 가능성이 있는 한 언젠가는 성공하게 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철저한 원칙주의자 배 대표는 여느 기업들의 대표들처럼 판공비가 없다. 그 흔한 회사차도 없다. 핸드폰 요금에서 차량유지비까지 개인 돈으로 사용한다. 물론 회사에서 받은 월급이다. 배 대표는 “회사의 대표 역시 사원들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다”며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있는데 별도의 판공비가 뭐가 필요하겠냐”고 말했다. 이러한 원칙은 배 대표가 지난 10년을 지켜온 규칙이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렇게 배 대표는 주위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원칙주의자’다. 그래서 때로는 “원칙 아닌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기가 힘들다”고 토로 하기도 한다. 사업을 시작한 계기도 그랬다. 젊은 시절 대기업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회사 총수가 선거에 출마하는 일이 있었다. 당연히 회사직원들이 선거운동의 맨 앞에 섰다. 그때는 그런 일들이 당연한 것 같은 시기였다. 하지만 배 대표는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일을 계기로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1996년 지금 인포피아를 설립했다. ▲힘든 시작 인포피아는 설립초기 인터넷 정보를 판매하는 업체로 시작해 곧이어 전자동 생화학분석기를 개발, 판매 했었다. 선진국과 버금갈 정도의 고기술이었고, 충분한 판매 시장도 있었지만 신생 벤처기업이 하기에는 힘든 사업이었다. 지나치게 기술 중심으로 접근했던 것이 오히려 실패의 원이이 됐다. 그렇게 인포피아는 첫번째 실패를 맞봤다. 이듬해인 1996년 배 대표는 사업전환을 시도했다. 당뇨나 고지혈증 등의 분야에서 세계최고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기술이 없는 상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국적 기업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배 대표는 관련 분야를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박사를 만나 새로운 기술 개발에 돌입했다. 무려 2억7천만원이라는 거대 자금을 투자했다. 배 대표는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20여억원만큼 가치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처음 기업이 선점할 수 있는 포지션을 잘못 선택했던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몇년간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시간이 결코 낭비였거나 도움이 안되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이후 인포피아는 혈액진단 센서 개발에만 10년을 투자했다. ▲누구나 힘들었다 사업전환을 했지만 그로인해 어려움이 해결된 것은 아니였다. 이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인포피아를 비롯한 모든 기업들이 어렵고 힘든 시기가 이어졌다. “그때는 누구나 힘들었다”고 말하는 배 대표는 “무엇보다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고 했다. 배 대표는 또 “그때는 보유하고 있는 자금이 없어서 어음발생을 해야 했는데, 발행하면 부도가 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외환위기 이후로는 현금거래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은 인포피아의 생존전략이 됐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나니 2000년 벤처파동이 닥쳤다. 직원들 급여도 30%나 줄이고 구조조정도 했다. 6개월에서 1년까지 직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못했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직원들이 남았고, 그들이 있어 인포피아는 현재까지 이어오게 됐다. 배 대표는 “지금은 회사가 성장해 남아있는 직원들이 많은 혜택을 봤다”며 “아마도 어려울 때 참고 견뎌준데 대한 보답이 아닌가 한다”고 말을 이었다. ▲홈케어시대 인포피아는 의료진단 기기의 가전화를 꿈꾸며 일반 가정에서도 당뇨병이나 고혈압, 심장병, 고지혈증, 간질환 등 각종 질병을 판단할 수 있는 바이오센서 의료기기를 생산하고 있다. 바이오센서란 특정한 물질에 대한 인식기능을 갖는 생물학적 수용체가 전기 또는 광학적 변환기와 결합되어 생물학적 상호작용 및 인식반응을 전기적 또는 광학적 신호로 변환함으로써 분석하고자 하는 물질을 선택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소자를 의미한다. 인포피아는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혈당측정 바이오센서를 주력 상품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향후 암진단 바이오센서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일반가정에서도 각종 질병을 판단할 수 있는 홈케어 시대는 이미 외국에서 상당한 관심이 있는 분야다. 바이오센서의 세계시장은 2002년 65.7억 달러 규모에서 2004년에는 약 82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였으며, 향후 연평균 10.4%씩 성장하여 2010년에는 145.5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04년 기준으로 의료용 바이오센서가 전체 시장의 84.2%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그 중 혈당측정 바이오센서가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가정에서 가족의 질병을 미리미리 예방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장기적인 계획이다.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라 “때론 물건이 안 좋아도 잘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기업들은 자기 상품을 팔지 못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 대표는 기업의 모든 문제를 판매로 귀결시킨다. 팔리지 않는 상품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업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영업조직도 많다, 전체 직원 100명가운데 20명이 영업조직이었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영업조직인 해외팀도 5개 팀이나 된다.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소만큼이나 영업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배 대표 자신도 직접 해외영업 본부장을 맡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기업의 목표는 꿈을 보고, 기술을 봐야 합니다” 시장에 맞는 제품,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야 하고, 그때부터가 기업의 이익이 발생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꿈을 위해 전진하는 인포피아와 배병우 대표는 그렇게 오늘도 홈케어 시스템을 팔기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장충식기자 jcs@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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