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恨과 슬픔의 공포물 '카핀'

(연합뉴스) 태국 공포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자주 개봉되는 것은 우리 관객의 정서에 호소할 만한 요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태국 공포물에는 한을 품은 영혼과 세상의 순리를 거스른 자에 대한 단죄가 나온다. 24일 개봉하는 에카차이 우에크롱탐 감독의 '카핀' 역시 이런 요소를 빼놓지 않았다. 결혼을 며칠 앞두고 자신이 폐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된 홍콩의 수(모원웨이ㆍ莫文蔚)는 TV 뉴스를 통해 태국의 카핀 의식을 알게 된다. 살아있는 사람이 관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의식이다. 수는 절박한 심정에 태국 행을 택한다. 한편 태국인 크리스(아난다 에버링엄)는 의식불명 상태인 여자친구를 위해 카핀 의식에 참여한다. 의식 후 수의 종양은 깨끗이 사라지고 크리스의 여자친구도 깨어난다. 그러나 그때부터 크리스와 수의 눈에 알 수 없는 존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카핀'은 영어 대사가 주를 이룬다. 홍콩 스타 모원웨이가 여주인공을 연기했고 미국과 싱가포르, 홍콩의 스태프들이 참여한 다국적 프로젝트이기 때문. 그러나 대사만 영어일 뿐, '카핀'은 태국적 소재와 풍경을 십분 활용한 오갈 데 없는 태국 영화다. 밑바탕에는 할리우드 공포물의 '분노'가 아니라 아시아 공포물 특유의 정서 '슬픔'이 깔려 있다. 감각적인 영상과 구슬픈 배경 음악이 잘 어우러졌다. 특히 커다란 불상을 둘러싸고 수 만 개의 관에 수 만 명의 엑스트라들이 들어가 집단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은 오싹한 장관이다. 다만 관객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할 만한 심리적 공포보다는 시청각적 공포에 의존한다는 점이 아쉽다. 예상 가능한 시점에 끔찍한 모습의 귀신이 등장하면 여주인공이 비명을 지르는 식이다. 충격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반전없는 차분히 마무리가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불황 영화계 한국영화 심의 편수는 오히려 늘어>

(연합뉴스) 최근 영화 투자 시장이 불황이지만 올해 상반기에 개봉을 위해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심의를 받은 영화 수는 작년보다 오히려 조금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15일 영등위의 등급분류 통계에 따르면 1~6월 심의를 받은 한국 영화의 편수는 모두 62편으로 작년 상반기의 55편보다 7편 늘었다. 상반기 한국영화의 심의 편수는 2004년 47편, 2005년 33편, 2006년 54편, 2007년 55편으로 한국영화가 한창 전성기던 시기에도 60편을 넘지는 않았다. 심의 편수가 늘어난 것은 작년 제작된 뒤 개봉을 늦춘 이른바 '창고 영화'의 지각 개봉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상반기 심의를 받은 영화 중 '날나리 종부전', '도레미파솔라시도', '무림여대생', '허밍', '바보', '방울토마토', '잘못된 만남' 등 10여 편은 1~2년 전에 후반작업까지 마쳤지만 개봉시기를 잡지 못한 '지각 개봉' 영화였다. 여기에 예술영화ㆍ독립영화 등을 아우르는 '다양성 영화'가 예년에 비해 대폭 늘어난 것도 심의 편수가 증가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작년 11월 개관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올해 상반기에만 '아스라이', '나비두더지', '쇼킹패밀리', '필승ver2.0 연영석' 등 7편이 심의를 거쳐 상영됐다. 여기에 '별별이야기2', '나의 스캔들', '스페어', '어느날 그길에서', '작별', '아름답다' 등 다양성 영화로 분류될 만한 작품 10여편도 심의를 받아 개봉하거나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국내진흥팀 관계자는 "영화 투자 시장의 위축이 상업영화에 큰 타격을 줬지만 꾸준히 제작과 상영 방식에서 활로를 모색해온 독립 영화계는 상대적으로 타격을 입은 정도가 적다"고 풀이했다.

'사랑ㆍ환상ㆍ모험' 부천영화제 18일 개막

(서울=연합뉴스) 사랑ㆍ환상ㆍ모험을 테마로 하는 제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가 18일 열흘간의 축제를 시작한다. 상영작은 세계 39개국에서 초청된 202편(단편 80편 포함)으로 부천시민회관, 부천시청 대강당, 복사골문화센터, CGV 부천점, 프리머스 시네마 소풍 등 5곳에서 상영된다. 올해 영화제는 지난 6월 칸영화제의 경쟁부문 상영작으로 호평을 받았던 '바시르와 왈츠를'로 대장정의 문을 연다. 이스라엘과 프랑스, 독일이 공동으로 제작한 '바시르와 왈츠를'은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가 합쳐진 독특한 형식의 영화다. 한 영화 감독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여정을 그린 영화로 전쟁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한 반전 영화다. 폐막작은 곽재용 감독이 일본에서 일본 배우와 스태프들과 함께 만든 한일합작영화 '사이보그, 그녀'다. 1년 만에 사이보그가 돼 돌아온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담은 SF 코미디영화로 '엽기적인 그녀'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 이어 곽 감독의 이른바 '여친 3부작'을 완성하는 작품이다. 경쟁부문인 '부천초이스 장편', '부천초이스 단편' 섹션에는 각각 12편씩의 영화가 경쟁한다. 장편 심사위원에는 이두용 감독 등 5명이, 단편 심사위원에는 일본 영화감독 이누도 잇신 등 3명이 위촉됐다. 이밖에 상영작들은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스트레인지 오마쥬', '오프 더 판타스틱', '금지구역', '패밀리 판타', '애니 판타',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등의 섹션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특별전으로는 미국 인디영화의 기수 그렉 애러키 감독의 영화가 선보이는 '판타스틱 감독 백서', B급 영화들이 선보이는 '그라인드하우스 리비지티드', '열혈남아:아시아 액션영화' 등이 마련된다. 회고전으로는 60년대~80년대 초반 액션영화를 볼 수 있는 '코드네임 도란스'와 일본 메이저 영화사인 니카츠(日活)의 영화가 소개되는 '창조와 헌신의 역사:니카츠 100년전'이 관객들을 기다린다. 다채로운 상영작들 만큼이나 올해 부천영화제에는 일본과 태국, 미국,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적의 영화인들이 모여 영화제를 빛낼 계획이다. 각각 '전차남'과 '오디션'으로 유명한 에이타와 에이히 시나는 각각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도쿄잔혹경찰'로 부천을 방문하며 영화 '시암의 사랑'에 출연한 윗위싯 히란야웡쿨과 마리오 마우러 등 태국 꽃미남 스타들도 영화제를 찾는다. 니시무라 요시히로(도쿄잔혹경찰), 덴간 다이스케(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 사카구치 다쿠(사무라이 좀비) 등 일본 감독들과 태국 추키아트 사크위라쿨 감독(시암의 사랑), 미국 대니얼 마이릭 감독(오 포인트), 칠레의 에르네스토 디아즈 에스피노자 감독(미라지맨)도 게스트 명단에 포함됐다. 올해 영화제는 영화 제작과 후반작업 비용을 지원하는 '잇(It) 프로젝트'를 처음 마련한다. 프로젝트 마켓인 '아시아판타스틱영화 네트워크'(NAFF) 주관으로 열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선정된 6편의 영화는 제작비와 후반작업 비용을 지원받는다. 이밖에 영화제 기간 장르별 음악 공연과 영화인들과 시민들이 만나는 '메가토크', 역대 영화제 사진전시회, 액션영화 체험하기 등이 마련된다. 관람료는 5천원(개막작ㆍ폐막작ㆍ심야상영작 1만원, 조조상영ㆍ단체상영작 4천원)이며 예매는 영화제 사무국(www.pifan.com)과 예매사이트 티켓 링크(www.ticketlink.co.kr)에서 진행된다.

영화 '크로싱' 상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서울=연합뉴스) 탈북자를 소재로 한 영화 '크로싱'에 대해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준비 중이던 다른 영화 제작진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다. 법률사무소 재유는 14일 "탈북자 유모씨의 이야기가 소재인 '크로싱'의 제작사 등은 이미 유씨와 영화제작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이광훈 감독에게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고 영화를 완성해 상영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유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영화를 준비 중인 이광훈 감독이 저작권을 침해당했다"고 밝혔다. 재유는 "이광훈 감독을 신청인으로 해 '크로싱'의 상영을 금지하고 추후 '크로싱'을 담은 DVD, 비디오 테이프, 인터넷 영상물의 사용을 못하게 하는 한편 이 영화의 필름 등을 수거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오늘 중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유에 따르면 이광훈 감독은 지난 2004년 10월 유모씨와 영화제작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뒤 영화 '인간의 조건'을 준비해 왔다. 이 감독은 '닥터봉', '자귀모', '천년호'를 만든 중견 감독으로 '인간의 조건'은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사전 제작 단계에 있다. '크로싱'(제작 캠프비ㆍ배급 벤티지 홀딩스ㆍ감독 김태균)은 아내의 병 치료를 위해 탈북했다가 남한까지 오게 된 북한 주민 용수(차인표)와 아버지를 찾아 중국과 몽골 국경을 넘는 아들 준이(신명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새영화> 외딴섬 홀로 남은 소녀…'님스 아일랜드'

(서울=연합뉴스) 남태평양 한가운데의 외딴 섬에서 생물학자인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님'(아비게일 브레스린)은 미생물 채집차 바다에 나간 아빠 잭(제라드 버틀러)이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빠 생각에 조마조마하던 터에 섬에 폭풍우까지 몰려오자 좋아하는 모험 소설의 작가 알렉스 로버(조디 포스터)에게 이메일로 도움을 청한다. 어떤 역경도 헤쳐나가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알렉스 로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가는 님이 생각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 보다. 모험을 즐기는 남성일 것이라는 독자들의 추측과 달리 사실 알렉스 로버는 광장공포증 때문에 집밖에 나가기조차 꺼리는 소심한 여성이다. 영화 '님스 아일랜드'는 외딴 섬에서 '나홀로 집에' 상황에 처한 님과 조난당한 아빠 잭, 그리고 님을 도우려 긴 여행을 떠나는 소설가를 둘러싼 모험담이다. 각 캐릭터들이 벌이는 모험담이 영화의 축이지만 줄거리를 아우르는 것은 가족애나 자연 사랑 같은 교훈적인 내용이다. 그래서 다른 블록버스터들의 틈에서 '님스 아일랜드'가 보여주는 모험담의 강도는 약해보인다. 각각 다른 장소에서 곤경에 처한 세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모험담의 스릴 보다는 각각의 인물을 연기하는 세 배우들의 매력에 있다. 섬에 혼자 남겨진 여자 아이 님을 연기한 아비게일 브레스린은 제2의 다코다 패닝으로 불리며 최근 영화 제작사들로부터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 12살 아역배우다.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미인대회에 집착하는 올리브 역을 맡았고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에서는 아버지의 연애담에 귀를 쫑긋 세우는 어린 딸로 출연하며 인기를 모았던 그는 '님스 아일랜드'에서도 당차면서도 깜찍한 모습으로 줄거리를 이끌어 간다. 소심한 소설가 로버 역을 맡은 조디 포스터는 '님스 아일랜드'에서 기존의 진지한 이미지와 전혀 다른 코믹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예일대 출신의 학구파 배우로 '택시 드라이버'나 '피고인' 같은 출세작에서부터 최신작 '브레이브 원', '인사이드 맨'까지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조디 포스터는 '님스 아일랜드'에서 비로소 망가지는 모습을 보인다. 거미 한 마리에 치를 떨고 비행기 속에서는 겁에 질려 벌벌 떨며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운 코믹 연기를 보여준다. 님의 아빠 잭 역할과 로버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탐험가의 1인2역으로 출연하는 제라드 버틀러는 영화 '300'에서 주인공 스파르타 전사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다. 국내에서는 '300'의 포스터 패러디로 또 다른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그는 '님스 아일랜드'에서는 딸을 다시 보기 위해 파도와 싸우는 아버지와 로버에게 남태평양행 비행기를 타는 용기를 불어넣는 인물을 연기하며 한층 부드러워졌다. 17일 개봉. 전체 관람가.

<동서고금 영화 감독들의 '페르소나'는?>

(연합뉴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특정 분위기의 연주를 요구할 수는 있지만 직접 악기를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 현장에서 전권을 쥔 영화 감독 역시 마찬가지. 간혹 주연을 겸하는 감독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원하는 연기를 배우들로부터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작품 세계를 구축한 감독들은 자신의 속뜻을 가장 잘 파악하고 표현해내는 단짝 배우 한 명 쯤은 있다. 이런 배우를 연극배우의 가면에서 비롯된 말 '페르소나(Persona)'라고 부른다. ◇"배우이기 이전에 동지" = 감독들은 "그저 기용하는 배우를 넘어서 인생의 동지"라고 치켜세우고 배우들은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고 말한다.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는 정진영이다. 정진영은 이 감독이 제작한 영화 '달마야 놀자'로 만난 이후 이 감독 연출작 '황산벌', '왕의 남자', '즐거운 인생'에서 주연을 도맡았다. 신작 '님은 먼곳에'는 수애가 단독 주연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정진영은 조연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주요 배역이다. 순이(수애)가 이상화ㆍ신격화한 구원의 여성이라면 정만(정진영)은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살아있는 인물이다. 이준익 감독은 최근 제작보고회에서 정진영을 "배우이기 이전에 뜻을 같이 하는 동지"라고 불렀으며 정진영은 "나를 어떤 여정에 데려갈까 늘 궁금해지는 감독"이라고 설명했다. 장진 감독 하면 배우 정재영이 떠오른다. 장 감독의 여러 작품에는 외롭고 평범한 인물 동치성이 등장하는데 '아는 여자', '거룩한 계보'에서 동치성 역을 맡은 것이 바로 정재영. 연극판에서 동치성이라는 이름이었던 '웰컴 투 동막골'의 리수화 역시 정재영이 연기했다. 장 감독이 제작을 맡은 라희찬 감독의 '바르게 살자'와 각본을 맡은 강우석 감독의 '강철중:공공의 적1-1'에서도 정재영은 주연을 맡았다. 정재영은 '바르게 살자' 당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무조건 하는 건 아니고, 90%는 다른 작품과 똑같이 판단하고 10%는 서로 좋아하고 익숙하니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심정으로 하는 것"이라며 "처음 '바르게 살자' 시나리오를 받아 봤을 때는 출연을 고사했다"고 말했다. '충무로의 맏형' 강우석 감독에게는 설경구가 있다. '공공의 적' 1~3편, '실미도' 등 강 감독의 주요 작품에서는 빠짐없이 주연을 맡았다. 설경구 역시 인터뷰에서 '공공의 적' 4편이 만들어진다면 또 하겠느냐고 묻자 "더 보여줄 게 있을지,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면서도 "강우석 감독님한테 달린 일"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도 있었고, 외국에도 많다 = 예전 한국영화에도 명감독의 페르소나는 있었다. 1960~1970년대 '하녀', '충녀' 등 다른 영화에서 보기 드문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낸 김기영 감독에게는 이화시와 윤여정이라는 두 페르소나가 있었다. 윤여정은 '화녀', '충녀', '죽어도 좋은 경험'에 출연했고 이화시는 '흙', '혈육애', '이어도', '반금련' 등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화시는 최근 열린 김기영 감독 10주기 기념전에서 "김 감독님은 마음에 이미 그려둔 여성 캐릭터가 있는데 우리 여배우들을 잠깐 빌려 표현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배창호 감독의 작품에는 이제는 '국민 배우'가 된 안성기가 단골이었다. '고래사냥',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깊고 푸른 밤',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할리우드에서는 팀 버튼 감독과 조니 뎁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가위손'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이들은 공포영화 '슬리피 할로우', 가족 판타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호흡을 맞췄다. 지난해 뮤지컬 영화 '스위니 토드-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에서의 광기어린 연기로 조니 뎁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안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는 2명의 페르소나가 있다. 로버트 드 니로는 '비열한 거리', '코미디의 왕', '택시 드라이버', '뉴욕 뉴욕', '분노의 주먹', '좋은 친구들' 등 1970~1990년대 스코세이지 영화에 줄줄이 출연했다. 2000년대 들어 스코세이지 감독은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배우로 재발견했다. 시대극 '갱스 오브 뉴욕'과 '에비에이터', 누아르 '디파티드'에서 디캐프리오의 묵직한 연기는 호평을 얻었다. 프랑스 레오 카락스 감독의 드니 라방도 빼놓을 수 없다. 라방은 1980년대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주인공 알렉스를 맡았고 17년 만인 올해 옴니버스물 '도쿄!'로 카락스 감독과 재회했다. 그는 올 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의외로 "카락스 감독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을 만들고 나는 그 인물을 연기할 뿐이었다"며 "우정은 이제야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송강호 "배 밭에서는 사과를 찾지 말아주세요"

(연합뉴스) '살인의 추억'의 박형사, '괴물'의 철없는 아빠 강두, '밀양'의 카센터 사장 종찬… 길거리 어디에서 한번쯤 마주쳤을 법하지만 송강호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았을 인물들이다. 김지운 감독의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서 송강호가 '이상한 놈'을 맡은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상한 놈'의 탈을 송강호가 쓴 순간 '이상한 놈' 태구는 캐릭터가 아닌 인간이 된다. 말을 타고 장총을 돌리는 '좋은 놈'과 눈에 광기를 머금은 '나쁜 놈'보다 이상한 말투에 이상한 액션을 선보이며 모든 위기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태구가 오히려 진짜 '사람' 같다. 11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태구를 "일관성이 없어서 이상한 놈"이라고 분석했다. "임기응변에 강한 인물이죠. 잡초 같은 인물이고요. '좋은 놈'과 '나쁜 놈'에게 일관된 느낌이 있다면 '이상한 놈'에게는 일관성이 없어요. 액션도 마찬가지죠. '이상한 놈'의 액션은 캐릭터 자체에서 나옵니다. 지프를 갈아타는 장면처럼 액션이지만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많은 작품에서 넉살로 스크린을 장악했던 그의 인상은 아무래도 친근함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인상은 착각이다. 눈가와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면 보는 사람은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러나 그가 마음먹고 너스레를 떨면 또 다시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코믹한 이미지가 과소비된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배우마다 각 영화에서 분담하는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중이 즐겁다고 느끼면 제대로 연기했다는 증거죠. '우아한 세계'에 맞는 연기, '밀양'에 맞는 연기가 있고 '놈놈놈'에 맞는 연기가 있는 겁니다. 또 '좋은 놈'의 역할, '나쁜 놈'의 역할이 있듯 '이상한 놈'의 역할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상한 놈'이 성취해야 하는 역할이 바로 유머입니다. 오락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으니 나 답게 하면 된다, 힘있고 재미있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놈놈놈'이 공개된 뒤 액션과 스펙터클은 볼 만하지만 이야기가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데 대해서도 그는 목소리를 높여 김 감독의 선택을 옹호했다. "모든 영화에는 각각 성취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겁니다.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다소 약하다는 게 큰 문제는 아니죠. 배 밭에서 사과를 찾지 말고 맛있는 배를 찾으시면 됩니다. '아, 배가 달구나, 맛있구나' 생각하고 먹으면 되지요. 그럼 우리 배 맛이 어떻냐고요? 너무 달아서 터져버릴 것 같습니다(웃음)." '조용한 가족', '반칙왕'에 이어 김지운 감독과 3번째로 만난 그는 김 감독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서로의 팬"이라고 표현했다. "나도 감독님의 팬이고 감독님도 나의 팬입니다. 감독님에게는 독특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가 있어요. 공포, 누아르, 코미디, 어떤 것을 하든 특유의 장르 변주 능력이 있죠. 늘 새로운 영화를 기대하게 하는 감독이라 다시 함께 작업하고 싶은 열망이 늘 있었는데 반칙왕 이후 8년 가까이 기회가 안 닿아 이번에 함께 하게 됐습니다." 2006년 '괴물'부터 올해 '놈놈놈'까지 4편을 잇따라 내놓은 그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촬영 중이다. 역할에 맞춰 몸무게도 10㎏이나 줄였다. "그 전에는 1년에 한 편 꼴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나게 됐습니다. '박쥐' 이후에는 정해진 작품이 없어요. '박쥐'만 끝나면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좋은 작품이 나오면요? 글쎄요, 그땐 또…(웃음)."

<주말영화> '적벽대전' 한국 스크린 평정할까

(연합뉴스) 성수기 여름 극장가에 중국과 미국 영웅들의 싸움이 격렬하다. 이번 주말 극장가에는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던 '핸콕'에 중국 톱스타들이 뭉친 '적벽대전'(10일 개봉)이 도전장을 내민다. 예매율만 보면 '적벽대전'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형세다. 9일 오후 5시를 기준으로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의 예매율집계에서 '적벽대전'은 35.3%의 예매율로 각각 19.3%의 '핸콕'과 12.2%의 '원티드'를 압도했다. '적벽대전'은 같은 시각 예매사이트 맥스무비의 집계에서도 41.5%의 점유율로 18.7%의 '핸콕'과 11.7%의 '강철중:공공의 적1-1'에 큰 차이로 앞섰다. '적벽대전'이 이번 주 박스오피스를 석권한다면 새 개봉작이 번갈아가며 1주일씩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최근의 경향을 이어가는 셈이다. 6월 3째주 이후 각각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한 '강철중', '원티드', '핸콕'은 개봉 주에 전주 1위 영화를 1계단씩 끌어내리며 정상에 올랐다. '적벽대전'과 함께 이번 주말에는 성지루ㆍ정웅인 주연의 한국 영화 '잘못된 만남'과 스페인 공포영화 'REC'가 첫선을 보인다. '잘못된 만남'은 사랑의 경쟁자로, 군대 선후배로 악연이 쌓인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며 'REC'는 TV 카메라를 관객의 시선으로 대입시킨 설정이 신선한 좀비 공포영화다. 이외에도 미국 학원 코미디 '찰리 바틀렛', 독일 코미디 영화 '요절복통 프레드의 사랑찾기', 파파라치를 소재로 한 스티브 부세미 주연의 영화 '내가 찍은 그녀는 최고의 슈퍼스타'도 개봉한다. 기존 상영작과 개봉작을 아울러 보면 극장가는 무더위, 방학, 성수기를 특징으로 하는 여름 시즌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적벽대전'ㆍ'핸콕'ㆍ'원티드'ㆍ'강철중' 등 블록버스터 영화가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크로싱'ㆍ'쿵푸팬더'ㆍ'갓파쿠와 여름방학을' 등의 가족영화와 '노크:낯선 자들의 방문'ㆍ'REC' 같이 더위를 식혀줄 공포영화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새영화> 스토리와 열연의 힘 '님은 먼곳에'

(연합뉴스) 경상도 농촌의 종갓집 며느리인 순이(수애)는 베트남전에 나간 남편(엄태웅)을 만나겠다며 위문공연단에 지원한다. 숫기없는 시골 새댁 순이에게 무대에 설만 한 끼는 없다. 도시 젊은이들처럼 고고 클럽에 가봤을 리도 없고 팝송에 익숙하지도 않다. 부를 줄 아는 것은 김추자의 노래들 뿐이다. 고향 마을 밖으로는 좀처럼 나와보지 않았을 것 같은 이 순박한 시골 새댁이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까지 가서 만나려고 하는 남편은 사실 대학시절에 만나던 여자친구가 있다. 결혼 직후 입대한 남편이 베트남에 가게 된 것은 여자친구가 보낸 이별 편지 때문이었다. 외박 나와도 순이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은 남편이다. 국내외 대작들이 늘어선 여름 극장가에서 24일 개봉하는 '님은 먼곳에'가 다른 영화를 앞서는 장점은 스토리와 캐릭터의 힘이다. 줄거리의 큰 틀은 순이가 베트남으로 건너가 남편을 만나러 가는 과정이지만 그 안에는 순박한 시골 아가씨가 낯선 땅에서 무대를 휘어잡는 스타가 되는 성공담이 있고 험난한 베트남 생활에서 살아남는 모험담이 있다. 몰라보게 예뻐진 수애의 아우라에 순이의 여정에 함께하는 위문공연단 '와이 낫(Why Not)'멤버들의 탄탄한 캐릭터가 매끄럽게 결합한 덕에 스토리는 삐걱거리지 않고 흘러간다. '순이'라는 이름의 시골뜨기에서 '써니'라는 가명을 갖고 군인들을 열광시키는 스타로 거듭나는 모습은 수애가 아니라면 다른 배우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몸에 잘 맞는 옷이다. 청순가련형의 순이에서 강인한 여성 써니로 변해가는 순간 순간의 섬세한 변화는 수애 특유의 눈물연기와 함께 후반부 묵직한 감동을 준다. 순이 혼자 극을 이끌어갔다면 자칫 심심하게 흘러갈 수 있었던 영화에 풍부한 에피소드를 추가하는 것은 순이 주변의 인물들. 그 중심에는 밴드의 리더인 정만이 있다. 돈밖에 모르지만 가슴 속에 정(情)을 감춘 정만(정진영), 순이를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용득(정경호) 등은 때로는 사고를 치고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순이가 고난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든든한 조력자이며 전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전우다. 1970년대 여인 순이가 겪는 베트남전을 통해 감독이 결국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차츰 강해지는 순이의 모습에 있는 듯하다. 밴드의 다른 멤버들에게 의지하고 구박받던 순이는 무기력한 남자들 틈에서 가장 강한 모습으로 차츰 변해간다. 당시의 시대상이나 여주인공의 심리를 드러내는데 사용된 것은 음악이다. '님은 먼곳에'나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대니보이', '수지Q' 등 수애가 부르는 노래들은 감정을 확장시키는 도구이며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왕의 남자'로 이미 1천만 관객을 흥분시켰고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으로 꾸준히 호평을 받아온 이준익 감독은 '님은 먼곳에'에서 비로소 자신의 대표작을 내 놓는 느낌이다. 탄탄한 줄거리에 꼭 맞는 캐스팅과 좋은 연기, 군더더기 없는 연출, 전쟁 장면의 풍부한 볼 거리까지 감독은 그동안 쌓아 온 연출력의 내공을 이 영화에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다. 차근차근 쌓이던 감정이 감동으로 폭발하는 엔딩을 보면 '이 감독 사람과 인생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구나'하는 감탄이 흘러나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