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추석시장 각축 잔혹사

추석(10월6일)이 되려면 아직 한달 반가량 남았다. 그러나 추석을 준비하는 한국 영화계는 하루하루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른다. 전통적으로 추석 연휴는 극장가 최대 대목인데, 그중에서도 올 추석 연휴는 개천절이 끼는 징검다리 연휴까지 합쳐 최대 9일(9월30일부터 10월8일)까지 이어지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기간 출사표를 던진 영화들의 면면이 하나같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 그러나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물론 덕분에 관객은 즐겁게 됐다. 메이저 배급사들이 추석 시장에 내놓을 최정예 용사들을 최근 하나둘씩 확정하고 나섰다. '2006 추석 잔혹사'를 펼칠 '빅6'를 소개한다. ◇'가문의 부활'(감독 정용기, 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 배급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추석을 겨냥하면서도 한 주 빠른 9월21일에 개봉하기로 했다. 제작사와 배급사의 자신감이 한껏 묻어난 결정. 1편 '가문의 영광'에 이어 2편 '가문의 위기'가 연속으로 빅 히트하면서 일사천리로 기획된 말 그대로 추석용 영화. '명절에는 역시 코미디'라는 모토 하에 기획했고, 오로지 그 목표를 향해 '올인'했다. 그 때문에 제작 역시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5월30일 크랭크 인, 아직 촬영조차 끝나지 않았음에도 개봉일을 잡았다. 추석 대목을 겨냥한 영화라고 하기엔 말도 안되는 제작기간이지만 2편 출연진과 제작진이 그대로 바통을 이은 덕분에 밀어붙이고 있다. 신현준, 김원희, 김수미, 탁재훈, 공형진, 신이, 임형준, 정준하가 다시 뭉쳤다. 2편에서 검사 며느리를 맞이하며 '조폭 사업'을 청산한 백호파 가문이 김치사업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잘살아보세'(감독 안진우, 제작 굿플레이어,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코미디는 '가문의 부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고심 끝에 추석 개봉작으로 최근 결정한 이 영화 역시 웃음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영화. 9월28일 개봉한다. 코믹 연기의 보증수표인 김정은과 이범수가 뭉친 '잘살아보세'는 '가문의 부활'과는 전혀 다른 행보 끝에 추석 시장에 나왔다. 작년에 크랭크 인했으나 제작비 문제 등으로 산전수전을 겪으며 완성됐다. 그러나 제작 초기부터 입소문이 났던, 재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시나리오를 무기로 '고진감래'를 꾀하고 있다. 1970년대 초 국가적 사업인 '산아제한'을 위해 충청도 한 시골에 파견된 보건사회부 소속 가족계획 요원과 급조된 마을 이장 요원이 출산율 0% 달성을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 이들의 임무는 부부들의 잠자리를 감시하는 것이다. ◇'라디오 스타'(감독 이준익, 제작 영화사아침, 배급 시네마서비스) '왕의 남자'로 국민적 스타 반열에 오른 이준익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이 안성기와 박중훈이라는 두 걸출한 주연배우의 이름보다 먼저 들어오는 작품. 9월28일 개봉한다. 한물간 왕년의 가수 왕과 그의 오랜 파트너인 매니저가 그리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이야기. 영화적 기교나 허풍은 일체 걷어내고 오로지 잘 익은 드라마로 어필한다. 규모나 콘셉트에서는 결코 화려하지않지만 뚝배기의 뭉근한 맛을 기대하게 하는 영화. 그래서 추석 시장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감독과 '황산벌'에서 손잡고 사극에 도전했던 박중훈은 이번에도 연기 인생에 방점을 찍을 캐릭터를 맡아 변신을 기대하게 한다. 또 실제로 절친한 형, 동생 사이인 안성기-박중훈이 '투캅스' 이후 십수년 만에 다시 뭉쳐 그간의 세월과 관록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냈다. 흘러흘러 강원도 영월의 라디오방송 DJ로 '전락'한 왕년의 스타와 그의 매니저의 인생유전이 펼쳐진다. ◇'타짜'(감독 최동훈, 제작 싸이더스FNH, 배급 CJ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는 '타짜'와 '거룩한 계보'의 개봉 순서를 놓고 아직까지 저울 중이다. 두 작품 모두 추석을 목표로 현재 후반 작업 중인데, CJ엔터테인먼트는 15일 현재 이 중 한 작품을 9월21일에, 다른 한 작품은 28일에 개봉할 것으로 알려졌다. 둘 다 대단히 매력적인 구성이라 배급사로서는 행복한, 그러나 무척 괴로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타짜'는 허영만의 동명 인기 만화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까닭에 출발부터 영화계 안팎의 관심을 받았다. 게다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으로 단번에 인정받은 최동훈 감독이 연출을 맡아 원작을 능가하는 영화적 재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도박판에 전부를 건 전문도박꾼들, 일명 타짜들의 화려한 기술과 끝없는 욕망에 관한 드라마. 조승우와 백윤식, 김혜수가 각기 개성 뚜렷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맡아 한판 연기 대결을 펼쳤다. 특히 조승우의 변신이 관심을 모은다. 그간 순수한 모습만을 보여줬던 조승우가 전설의 도박꾼을 어떻게 연기했을지 기대된다. ◇'거룩한 계보'(감독 장진, 제작 K&Jㆍ필름있수다, 개봉 CJ엔터테인먼트) 지난해 '웰컴 투 동막골'을 제작하고, '박수칠 때 떠나라'를 연출하며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였던 장진 감독이 작심하고 만든 조폭영화. 그러나 기존의 조폭영화와는 확실한 차별화를 꾀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조직에 배신당한 전설의 칼잡이 동치성이 감옥에서 '거룩한 계보'라는 이름의 사조직을 만든 뒤 탈옥해 복수한다는 내용. 사실 설정만으로는 기존 조폭영화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제작보고회에서 장 감독이 "'조직폭력배 가지고 저런 이야기도 만드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던 만큼 장 감독 특유의 재치와 비틀기가 어떤 식으로 작용했을지 기대된다. 정준호와 정재영이 호흡을 맞춘 것도 관심을 끈다. '공공의 적'에 이은 정준호의 묵직한 연기와 정재영의 신뢰를 주는 연기가 대결을 펼친다. ◇'구미호 가족'(감독 이형곤, 제작 MK픽쳐스, 배급 MK픽쳐스) 아직 개봉일이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9월21일과 28일을 놓고 고심 중이다. 한국 영화에서는 대단히 독특하고 위험한 장르인 뮤지컬을 과감히 선택해 눈길을 끈다. '제작 명가(名家)' MK픽쳐스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완성도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제목 그대로 구미호 가족의 '살신성인(殺身成人)' 인간되기 프로젝트를 그렸다. 인간의 간을 통해 진짜 인간이 되길 원하는 구미호들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겪게 되는 산전수전이 펼쳐진다. 제작사는 "공포, 엽기, 뮤지컬, 코미디가 혼합된 엽기뮤지컬 코미디 영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문의 부활', '잘 살아보세'와는 또다른 맛의 코미디. 주현, 박준규, 하정우 등 연기파 배우들의 하모니가 기대된다. /연합뉴스

泰, 한국 노래방 기기업체 저작권 협약 체결

한국의 노래방 기기업체가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태국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그룹과 저작권 협약을 체결했다. 한국의 휴대용 반주기 제조업체인 컨앤컴㈜사와 태국 엔터테인먼트 그룹인 'GMM 그래미'사는 16일 방콕 르콩코드 호텔에서 양사 대표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저작권 협약식과 제품 시연회를 가졌다. 컨앤컴사는 '마이크형 가라오케'라 불리는 휴대용 반주기 제조 업체로 미국, 일본, 중국, 태국 등지에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벤처회사다. 'GMM 그래미'사는 소속 가수만 600명이 넘고 1년이면 100장 이상의 음반을 새로 내는 태국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태국내 음반 저작권의 6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특히 한류가수들이 동남아로 진출하는데 통로 역할을 해왔다. 이번 저작권 협약으로 컨앤컴사는 GMM 그래미사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각종 가요 등을 자사 제품에 담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마이크형 가라오케는 4만2천곡의 가요를 내장할 수 있으며, MP3 기능이 있어 최신 가요 등을 인터넷을 통해 내려받을 수 있다. 컨앤컴사는 이제품을 이곳 현지 법인을 통해 첫해에는 2만~3만대, 이후에는 연간 5만대 이상을 판매할 계획이다. 이 회사 김봉배 사장은 "단순한 반주기 기능에서 탈피, 멀티 사운드를 구사할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며 "태국시장을 동남아와 인도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해외 시장 적극 공략하는 한국영화

한국 배우 한 명 출연하지 않는다. 촬영지도 한국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영화란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 영화의 피가 흐른다. 최근 들어 한국 영화의 경계선을 확장하는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수출과는 다른 형태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는 움직임이 한국 영화계에서 활발히 진행 중인 것이다. 2006년 상반기 한국 영화의 수출 실적이 급감했다는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가 시사하듯, 수출에만 의존해서는 해외 시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올해 제작편수가 사상 처음으로 100편을 웃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등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현재, 새로운 수요 창출은 영화계의 미룰 수 없는 현안이 됐다. 다양한 형태의 합작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 영화계의 움직임을 소개한다. ◇저예산 공포ㆍ액션 시장을 뚫어라 9월9일 일본 전역 70개 스크린에서 개봉하는 공포영화 '로프트'는 '강령', '도플갱어' 등으로 유명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연출했고, '역도산'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나카타니 미키 등이 주연을 맡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한국 영화사 미로비젼이 기획과 투자를 맡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미로비젼이 제작비를 모두 댔으나 이후 니혼TV 등이 관심을 보이면서 현재 투자비율은 한국과 일본이 4 대 6으로 역전됐다. 미국에서 미국인들이 제작한 공포영화 '샘스 레이크(Sam's Lake)' 역시 미로비젼의 작품이다. 미로비젼의 주도하에 동명의 단편영화가 장편으로 옮겨졌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될 이 영화는 내년 초 미국에 개봉될 예정이다. IHQ는 재미동포 감독 그레이스 리와 함께 '아메리칸 좀비'라는 영화의 촬영을 5월 초에 마쳤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본뜬 이 영화는 현재 편집 중이며 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한 뒤 내년 초 미국 극장가에 선을 보인다. 또 LJ필름은 정두홍 무술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겨 미국에서 '컴백'이라는 액션 영화를 하반기에 찍을 예정이다. 현지 배우와 인력을 캐스팅, B급 액션 영화 시장을 겨냥한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저예산이고 모두 현지 인력으로 제작돼 철저하게 현지 영화로 어필하고 있다는 점. 기본적으로 공포와 액션은 언어나 국가의 장벽을 넘는 데 수월하다는 이점이 있는데, 이들 프로젝트는 아예 현지화 방식을 택했다. 미로비젼의 채희승 대표는 "해외 큰 시장을 공략하려면 애매하게 다리를 걸치기보다는 확실하게 현지 시장에 침투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합작으로 규정되느냐 아니냐는 사실 크게 상관없다. 어떤 형태로든 해외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시도들이 계속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채 대표는 이어 "미국과 일본은 꼭 극장 개봉이 아니어도 비디오ㆍDVD 시장이 커 이를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이, 저예산 영화의 제작을 촉진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마켓을 노린다 더욱 적극적으로 전세계 시장을 노리는 프로젝트들도 있다. LJ필름은 조선 마지막 황세손 이구와 그의 미국인 부인 줄리아의 사랑과 삶을 다룬 '줄리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제작한 미국의 준메이저 영화사 포커스필름과 올 초 합작 계약을 맺고, 순제작비 2천500만 달러를 비롯해 모든 비용과 수익을 한국과 미국이 5 대 5로 나누기로 했다. 현재 미국인 감독까지 확정된 상태이며 줄리아 역에 스타급 할리우드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계획이다. LJ필름이 소속된 프라임엔터테인먼트 해외 기획팀의 김소희 이사는 "굉장히 탄탄한 회사를 미국 쪽 파트너로 잡았다"며 "이는 미국에서의 제작과 투자는 물론, 전세계 배급망을 확보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LJ필름은 이밖에도 독일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윤이상 프로젝트'와 미국과 합작하는 '리심' 영화화 계획 등을 가동 중이다. 나우필름에서 진행하는 '네버 포에버(Never Forever)'는 7월24일 뉴욕에서 크랭크 인했다. '그 집앞',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 등을 만들며 국내외에서 주목 받은 김진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미국의 박스3(VOX3)와 공동 제작한다. 내년 상반기 전세계 개봉이 목표. 하정우와 베라 파미가가 주연을 맡은 멜로로 100% 영어 대사이며 프라임엔터테인먼트가 투자를 맡았다. 또 14일 뉴욕에서 크랭크 인한 '웨스트 32번가'는 CJ엔터테인먼트가 미주 프로젝트 1호라 명명한 작품. 뉴욕 한인타운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한 느와르로 미국 내 아시아계 관객을 겨냥한 프로젝트다. 한국계 배우 존 조와 김준성, 정준호 등이 출연한다. 9월 하순까지 촬영을 마칠 예정이며, 내년 상반기 한미 양국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서상원 해외사업본부장은 "미국 사회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 관객의 감성을 파악함으로써 앞으로 미국 시장에서 통하는 한국 영화 제작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작 통해 한국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그러나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결코 하루 아침에,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사들은 각기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하나하나씩 합작의 토대를 마련해나가고 있다. 프라임엔터테인먼트의 김소희 이사는 "해외 합작 프로젝트는 전인미답의 지역이다. 참고할 매뉴얼도 없고 사소한 것, 하다못해 송금하는 방식에서부터 배우고 있다. 특히 계약서는 한국과 달리 굉장히 복잡하다. 모든 단계가 학습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LJ필름은 지난해 세 편의 해외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기획했다가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중 '버터 냄새'는 아예 제작이 이뤄지지 못했고, '러브 하우스'는 제작이 거의 완료됐으나 완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현재 중단돼 있다. 나머지 '러브 토크'만이 올해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함으로써 세계 시장에 선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LA에서 촬영됐을 뿐 한국어 대사인 까닭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해외 시장을 겨냥한 프로젝트라 보기는 어렵다. 다만 미국 시스템 하에서 제작을 실험해 본 의미가 있다. 김 이사는 "지난해는 미국에서의 제작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두들겨 본 것이라면 올해는 현지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본격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해외 프로젝트의 의미는 무엇일까. LJ필름의 이승재 대표는 "한국 영화 산업이 단기간 급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시장 규모가 작고, 부가가치가 재생산이 안된다. 내부 발전도 중요하지만 외부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특히 미국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모든 면에서 세계 시장을 커버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 이 시장에서 성공할 경우 한국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합뉴스

안방에선 힘 못쓰는 영화배우들… 회당 2000만원 받는 고현정은 명예회복 할까

영화배우들의 안방극장 복귀가 계속되고 있지만 시청률에서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5일로 6회까지 방송된 SBS 드라마 ‘천국보다 낯선’은 배우 이성재가 8년만에 드라마로 컴백한 작품이다. 1998년 노희경 작가의 KBS ‘거짓말’에서 인기를 모은 이후 ‘홀리데이’ ‘데이지’ 등 영화에서만 주로 활동해 왔던 이성재는 이 드라마에서 입양아 출신 변호사 역을 맡았다. 동생 역의 엄태웅과 한 여자(김민정)를 사이에 놓고 갈등을 빚는 중이다. 그러나 경쟁작 ‘주몽’(MBC)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며 시청률은 3%대(이하 AGB닐슨 조사)라는 낮은 수치를 기록중이다. 같은 시간대에 방송됐던 이문식 주연의 ‘101번째 프러포즈’,손예진 감우성 주연의 ‘연애시대’ 등 SBS 월화드라마들은 모두 스크린 위주 배우의 출연작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12일 첫방송된 MBC의 새 주말드라마 ‘누나’도 송윤아의 드라마 복귀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경쟁작인 KBS의 ‘소문난 칠공주’에 밀려 4.6%라는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천국보다 낯선’과 ‘누나’의 경우 30%대 이상을 기록중인 경쟁작의 시청자를 뺏어와야 한다는 출발점이 불리하기는 했지만 시청률은 분명 기대 이하다. 이처럼 스타 출연작들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배우들의 호연을 끌어낼 여유가 없이 돌아가는 빡빡한 드라마 제작 일정 탓이 크다. 이성재는 지난달 제작보고회 때 “현장에서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는 게 제일 힘들다”면서 “가끔은 화가 날 때도 있으며 이렇게 (급하게) 찍으면 반응이 좋아도 미안한 것 아닌가”라는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또 이 드라마들은 스타 캐스팅을 전면에 내세울 뿐 내용상의 화제는 별반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그럼에도 고현정 천정명 주연의 MBC 수목극 ‘여우야 뭐하니’가 다음달 20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고현정이 방송사 자체 제작 작품으로는 획기적인 회당 2000만원의 출연료를 기록한 이 드라마가 스타배우 출연작의 명예를 회복할지 관심이다.

“지현우 하나만으론 벅차네”… 새영화 ‘사랑하니까, 괜찮아’ 17일 개봉

교복입은 남녀가 번화가에서 “뭐 어때,사랑하는데”라며 키스하는 장면. 환자복을 입은 여자가 길거리로 뛰쳐나와 사랑한다고 외치고 남자에게 안기는 장면. 영화 ‘사랑하니까,괜찮아’(감독 곽지균·제작 유비다임씨앤필름)의 티저 예고편인 이 두 장면은 새로울 것은 없어도 나름대로의 상큼함이 있었다. 영화의 다른 부분들이 세련되게 받쳐준다면 이런 신파도 꽤 먹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 예고편들은 영화에는 나오지도 않는다. 막무가내로 고백해오는 남자(지현우)와 튕기기만 하는 청순녀(임정은)라는 뻔한 설정은 그렇다 쳐도 시한부 인생은 심했다. 또 여자 주인공은 어디가 아픈건지 예쁜 차림새로 예쁜 말만 하다가 원하는 순간 바로 죽는다. 신파를 표방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성찰이나 눈물 나는 클라이막스 한 번 그려내지 못한 영화는 러닝타임 111분을 힘겹게 끌고 간다. 이 영화가 나온 배경은 뻔하다. 힙합 댄스를 멋지게 추고 아카펠라로 서정적인 노래도 부를 줄 아는 키 크고 잘 생긴 킹카 남학생이 나에게 반한다면? 그래서 내 사물함에 장미꽃을 가득 넣어놓고,집앞에 깜빡이는 가로등을 고쳐놓고,눈내린 날 아침 대문 앞에 길을 내놓고,나를 태워주기 위해 자전거를 사고,패러글라이딩을 배우고…. 여자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뭉게뭉게 피워봤을 이런 상상을 영상으로 보여주자는 것일테다. 비슷한 발상으로 성공한 ‘늑대의 유혹’같은 영화도 있는 만큼 못할 것도 없다. 실제로 영화 속 이 장면들은 요즘 인기 상승중인 지현우의 환한 미소와 춤솜씨,그리고 터프한 이미지 덕에 꽤 눈길을 끈다. 문제는 나머지 내용은 이 신들을 얼기설기 이어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 아무리 지현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라지만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다. ‘겨울 나그네’(1986) ‘젊은날의 초상’(1990) 등의 곽지균 감독과 20대 후반 이후 여성들의 지지로 성공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의 김은숙 작가가 함께 고교생 이야기를 그렸으니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17일 개봉. 12세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日배우’ 오다기리 조 주연 영화 두 편

여기,한 두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이 관객들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증거가 하나 있다. 지난 주 ‘괴물’과 ‘각설탕’에 이어 예매율 3위에 오른 영화는 일본 작품 ‘유레루’였다. 이 영화의 개봉관은 현재 전국 6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10일 개봉 후 5일간 1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거의 전회 매진을 기록한 결과다. 최근 티켓링크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배우’를 물은 조사에서 60% 이상 네티즌의 지지를 받으며 1위에 오른 오다기리 조가 주연했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국내에 마니아층을 가진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에 출연한 이후 그는 한국 관객에게 특히 사랑받고 있다. 17일에는 오다기리 조가 주연한 또다른 영화 ‘빅 리버’가 개봉한다. 이 역시 관심을 받고 있지만 종로 스폰지하우스에서 단관 개봉한다. 비록 상영관을 찾아가기는 어렵지만 주연 배우의 매력 외에도 장점이 많은 두 영화를 소개한다. ◇유레루=‘흔들리다’는 제목의 이 영화는 어느 형제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주유소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고향을 지키는 형 미노루(카가와 테루유키),도쿄로 나가 사진작가 일을 하며 자유분방하게 사는 동생 타케루(오다기리 조). 둘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있으리라는 점은 예상하기 쉽다. 여기에 형이 관심을 가져온 여자 치에코를 두고 형제의 감정이 얽히는 것도 어찌보면 뻔한 듯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인물들의 감정,그리고 그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배우들의 얼굴 표정이다. 사건은 타케루가 충동적으로 치에코와 관계를 가진 다음 날 셋이서 계곡으로 놀러가면서 벌어진다. 흔들리는 다리 위에 형과 있던 치에코가 아래로 떨어져 죽는 광경을 목격한 타케루는 형의 무죄를 밝히려 백방으로 뛴다. 그러나 언제나 믿음직하던 형이 차츰 불만과 적개심을 드러내자 타케루는 자신의 기억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 단정한 옷차림과 소년같은 헤어스타일로 어딘지 중성적 매력을 보였던 오다기리 조는 이 영화에서 거친 듯 세련된 외모와 함께 한층 깊어진 연기를 선보인다. 담담하게 진행되면서도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하는 연출도 뛰어나다. ◇빅 리버=미국 애리조나 주의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오다기리 조는 펑키 스타일의 여행자 테페이로 등장한다. 영어로 대사를 하는 탓에 일본어 연기보다 감정의 진폭은 덜 명확하지만 타인에게 열린 듯 하면서도 책임지기를 싫어하는 젊은 초상을 잘 그려낸다. 집나간 아내를 찾으러 가는 파키스탄인 알리(카비 라즈),답답한 삶에 염증을 느낀 서부의 금발 미녀 사라(클로에 스나이더),그리고 테페이 이렇게 셋은 한 차를 타고 사막을 달린다.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이지만 셋은 길지 않은 여정 동안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된다. LA,뉴욕 등 미국을 대표하는 대도시들을 한 번도 비추지 않고 먼지가 희뿌연 사막만 보여주면서도 9·11 테러 이후 훨씬 배타적인 미국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독특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