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굵직한 지역현안 척척 해결 초선이지만 의정활동은 중진급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이천여주). 그는 어린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밭에서 뛰어놀고 남한강에서 멱을 감던 여주 토박이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대학 재학중 63사태(한일협정반대) 주도로 수배자가 돼 구속된 적도 있지만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양과에 합격한 수재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청와대 민정비서관, 서울지검장, 광주고검장을 역임한 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법률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것을 계기로 18대 총선에 출마, 여주이천주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대한민국 심장인 국회에 입성했다. 이 의원은 초선답지 않게 마장면 군부대 이전 수용토지에 대한 주민들의 양도소득세 감면혜택인 조세감면 특별법 대표 발의, 성남~이천~여주 전철사업 예산확보, 이천 하이닉스 구리공정 허용, 여주토지거래허가구역지정철회 등 굵직한 지역현안을 해결했다. 여기에 인천~성남~이천~여주~원주 노선의 고속철도를 추진하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중앙정치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깨끗한 인물이 의원에게 이천여주는 삶 그 자체이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도 여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집안일을 돕기 위해 농사를 짓고 밭일을 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남한강에서 멱을 감던 시절이 제일 그립다며 멋모르고 자란 어린시절이지만 밭일을 통해 자연을 배우고 땅의 정직함을 배웠다고 회상한다. 여주 토박이인 그가 고향을 뒤로하고 서울사대부속중고등학교를 졸업,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한 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알게 되고 그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대학 재학중 63사태(한일협정반대) 주도로 수배돼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양과에 합격해 고향 주민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공직에 입문한 이 의원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었다. 음주운전 단속, 법무부 대변인, 국회 법사위 수석전문위원, 1997년 IMF 경제위기 때에는 금모으기 제안, 법무부 보호관찰제 도입 등 모두 그가 공직에 재직하면서 일궈낸 성과이다. 특히 법과 원칙을 중시했던 그는 서울지검장 재직시 현직 대통령 아들을 구속, 법 앞에서는 모든 국민이 공평하다는 것을 보여줬으며 국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광주고검장 재직시 정권 초기 현직 대통령을 강력 비판하고 그 책임을 지고 사직하게 된다. 이 의원의 정치 입문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청와대 민정비서관, 서울지검장, 광주고검장을 지낸 그는 지난 2007년 박근혜 전 대표가 당내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법률자문 부위원장으로 법률자문 등 왕성한 활동으로 박근혜 후보를 도왔던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이 의원은 현재 박근혜 전 대표와 독대하는 숨겨진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의원은 지역주민들의 바램과 성원에 힘입어 18대 총선에 출마, 국회에 입성하게 된다. 그리고 2008년 마장면 군부대이전 수용토지에 대한 주민들의 양도소득세 감면혜택인 조세감면 특별법을 대표 발의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또 2009년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피해 구 소련지역으로 이주한 고려인 동포가 국적이 없어 신분상 경제상 어려움을 겪고 있음은 감안, 고려인 동포들이 거주국으로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합법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동포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무국적 고려인 동포지원특별법을 대표발의해 국회 본회를 통과시킨 것이다. ■지역구 사랑에 빠지다여주이천의 큰 지역구 현안으로는 성남~이천~여주 전철사업이다. 주민들의 민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이 의원은 정부부처와 청와대를 찾아다니며 지난 2009년 1천200억원, 2010년 1천450억원, 2011년 1천500억원의 예산을 확보,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은 이 의원은 이천~여주~원주~평창~강릉으로 이어지는 복선전철 사업에도 오는 2015년 이전 착수사업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지역사랑을 표현했다.또 이천의 하이닉스 구리공정이 허용되도록 해 공장 증설의 신호탄을 마련하고 마장면 특전사 이전사업 및 주택 4천133가주(임대주택 1천646가구 포함) 건설 등 마장면의 신도시 기반구축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여주~가남 4차선 확포장 공사를 위해 지난 2009년 80억원, 2010년 100억원, 2011년 20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이밖에 남여주 IC 설치 확정, 백석리 사격장 안전구역 확대 철회 및 대체부지 확보시 이전검토 등 정부로 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 의원이 4대강사업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여주에만 1조1천억원 예산투자되는 사업으로 여주발전의 호기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천~성남~이천~여주~원주 노선 고속철도는 현재 김문수 경기지사와 경기도 출신 의원들과 함께 추진 노력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강직하면서도 약자에게 따뜻한 큰 인물지인들은 한결같이 이 의원은 권위를 내세우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국회의원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법조인으로 30여년간 공직생활하면서 피부로 느끼고 갖추고 있는 경륜과 비전을 지역과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길이라고 평가한다. 이같은 이 의원의 소탈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을 대변한 일화가 있다. 1970년대 평검사 재직시 일이다. 당시 국가적 어려움으로 생계형 범죄가 만연해 산에서 땔감을 구하기 위한 간벌로 산림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노부부가 신발을 벗어 들고 검사실로 들어왔다. 이 의원이 왜 신발을 벗어 들고 오느냐고 물었더니 노 부부가 사무실이 너무 깨끗하여 신발을 신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이 의원은 노 부부가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임을 알고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고 생각해 법에도 관용이 있음을 보여줬다. 법적 처벌만 기다리던 노 부부는 용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주름질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았다. 또 광주고검장 재직시 고검장실 옆 민원상담실을 운영해 직접 서민들의 억울함을 듣고 해결해 줘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하였다. 한번은 60대 할머니가 어렵게 모은 3천만원을 사기당한 민원이 들어왔다. 50대 민원인의 법무사에 맡긴 공탁금과 관련 피해를 입었다는 사건이었지만 그의 법률조언으로 할머니는 문제를 원할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의원은 지금도 그 분들의 고맙다는 눈물 흘리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며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이라고 자신을 낮춘다. ■통 큰 정치와 민주적 포용력지난 8월 한진중공업 사태로 대한민국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다. 당시 이 의원이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제시, 사태를 해결한 주역으로 손꼽힌다. 조남호 한진 중공업 회장과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청문회 출석을 둘러싼 여 야의 복잡한 정치적 속사정이 핵심이었다. 이에 이 의원은 여야 협상을 통해 김진숙 지도위원을 증인신분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양보하는 것으로 민주당도 이를 수용, 극적으로 타결시켰다. 결국 협상의 해법은 이 의원의 통 큰 정치력으로 해결한 셈이다.검사장 출신의 정치인인 그는 동료의원들로 부터 초심을 잃지않은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법조인 출신답지 않게 민주적이고 포용력을 갖춘 데다 자신을 낮추며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항상 따뜻하고 관대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어떻게 하면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의정활동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며 항상 겸손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의정활동으로 청년노인여성 일자리 창출 등 크고 작은 사업에 열정을 바치고 부정과 부패를 추방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정활동에 온몸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국가의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재 실업자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헌신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아울러 이천과 여주는 수도권 정비법과 팔당상수원 보호법 등 이중 삼중의 규제를 받으며 국토균형발전 정책에 의해 역차별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수도권 규제 완화대책이 나올 때 까지 혼신을 다한 의정활동을 펼치겠단다.이천과 여주는 수도권에서 복받은 도시로 서울과 가까운 살기 좋은 도농복합도시입니다. 이천여주의 대표 브랜드인 쌀과 도자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여기에 많은 친환경 기업체를 유치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주민들의 복지 향상으로 행복하고 살기 좋은 명품 전철도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글_김창학기자 chkim@ekgib.com ▲ 출생지=여주▲ 학력=여주초등학교, 서울사대부속 중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법학과▲대표경력=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통령 민정비서관,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경기도 고문변호사▲주요경력=행정고시 합격, 사법시험 합격, 서울부산수원인천대구춘천제주통영 검찰청 검사. 부장검사, 지청장 차장검사, 법무부 공보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대통령 민정비서관,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경기도 고문변호사(현), 2006 한나라당 박근혜 대통령후보 법률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제 18대 국회의원(한, 이천여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현), 국회 정보우위원회 위원(현), 한나라당 정책 조정위원장(현)▲상훈=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부츠의 계절 가을이 왔다

부츠의 계절이 돌아왔다. 멋장이들이라면 계절과 상관없이 즐기는 아이템이지만 그래도 부츠는 찬바람이 나야 제격. 이번 시즌에는 밀리터리와 복고풍의 영향을 받아 워커 부츠가 트렌드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여성적인 느낌을 가미한 워커힐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심잡기에 나선다. 높은 굽이지만 편안한 착용감을 주고 킬힐을 신은 것처럼 다리가 날씬해 보이는 효과가 있어 여성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최근 한가인, 공효진 등 연예인들의 다양한 연출로도 주목 받고 있는 워커힐을 더욱 멋스럽게 신는 팁을 공개한다. ■편안하고 길어보이는 다리 효과군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워커힐은 말 그대로 투박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지난 몇 년간 유행했던 킬 힐과 다르게 활동성과 스타일을 모두 갖춰 여성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적당한 길이로 발목을 감싸줘 발목을 더 얇게 보이게 하는 것은 물론 높은 굽으로 전체적으로 슬림한 효과를 주는 것도 워커힐 부츠만의 매력이다. 화려한 의상부터 평범한 의상까지 다양한 코디가 가능해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올 가을의 잇아이템으로 자리잡고 있다.최근 제품들은 군화 특유의 투박함과 무거움을 버리고 한결 날렵해지고 가벼워진 것이 특징. 길이감과 굽 높이, 끈장식이나 벨트 장식도 다양해졌다. ■코디하는 방법만 알아도 이미 패셔니스타 특히 워커힐 부츠가 사랑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믹스매치에 아주 적절하게 활용되기 때문. 보이시하고 캐주얼한 옷에도 어울리지만 여성스러운 옷에 코디하면 귀엽고 독특한 믹스매치가 가능해 포인트 코디로도 손색이 없다. 어떤 스타일에도 잘 어울리는 만큼 하늘거리는 시폰 원피스를 입을 때도, 지퍼와 스터드 장식의 라이딩 룩에도, 밀리터리 룩에도, 심지어 클래식 슈트 룩에까지도 자연스럽게 믹스매치돼 스타일을 업그레이드해준다.또 워커힐 자체가 남성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원피스나 헐렁한 체크무늬 남방, 레깅스 등으로 여성스러운 코디와 함께 입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게다가 스키니 진과 치마 어디에도 잘 어울린다.검정과 갈색이 대부분이지만 포인트를 주고 싶다면 다소 어두운 초록이나 보라와 같은 빈티지 색상을 선택해도 좋다. 이번 시즌 워커힐은 밀리터리와 락 시크 트렌드에 따라 굽이나 장식, 컬러 등 요소별로 매우 다양한 스타일이 출시돼 선택의 폭이 넓다. 정통 워커는 끈으로 묶는 스타일로 신고 벗는데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최근 출시된 신제품에는 안쪽이나 뒤쪽에 지퍼를 삽입해 편하게 신을 수 있다.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워커와 여성의 전유물인 섹시한 하이힐이 만나 빚어낸 사랑스런 아이템. 어떤 의상도 마법처럼 업그레이드해주니 이번 가을 워커힐 하나면 든든하다.글_강현숙기자 mom1209@ekgib.com사진_구두 전문 쇼핑몰 풍유(www.pungyou.co.kr)

근대화 겪으며 깊게 패인 굵은 주름

만석동은 한 세기 전 인천의 신도시였다. 일제는 갯벌을 메우고 산업단지와 위락시설을 유치하면서 신천지의 꿈을 키웠다. 이로 인해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던 괭이부리(묘도)는 깡그리 파헤쳐져 지도 속에서 사라졌다. 대신 그곳에는 아카사키라는 일제의 쇠말뚝이 박힌다. 바다로는 피란민을 받아들이고 육지로는 농촌의 노동자들을 받아들인 만석동은 이제 쇠락한 포구 하나 가슴에 부여안고 그렇게 늙어가고 있다. 매립지 살리기 위해 창녀촌 유치 시계바늘을 100년 전으로 돌려보자. 경성을 떠난 지 두 시간을 힘차게 달려 온 철마는 철길 옆으로 해변이 길게 뻗은 종착지 인천역에 다다른다. 마중 나온 갈매기 한 마리가 열차 위를 선회하며 길을 안내한다. 열차는 질주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시원한 해풍으로 씻어낸다. 오른쪽 차창으로 흰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그 너머 바다 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한가롭게 떠있다. 멀리 솟아 있는 영종도와 강화도는 마치 병풍을 두른 듯해 바다는 마치 호수 같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모습은 100년 전 만석동 풍경이다. 만석동의 본래 태생은 바다. 현재의 만석동 대부분은 갯벌을 메워 만든 땅이다. 바다와 접한 만석동은 1900년 초 만해도 조선인 20~30가구만 사는 아주 한적한 마을이었다. 이곳을 일본인 사업가 이나다(稻田)가 1906년 9월 만석동 앞의 갯벌을 메웠다. 이 매립으로 약 50만㎡(15만평)의 새로운 땅이 생겼다. 그는 조선인 집들을 몰아내고 이곳에 정미소와 간장공장을 유치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 매립으로 한몫 단단히 챙기려 했던 이나다는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보게 된다. 고심 끝에 그가 내놓은 방안은 유흥업소 유치였다. 당시 선화동에 있던 창녀촌 부도유곽을 본떠 묘도유곽을 설치했다. 묘도는 만석동 앞바다에 떠있는 조그만 섬이었다. 매립지에서 묘도 가는 길에 2층짜리 객실 6,7채를 만들고 구릉지에 해수탕과 고급 음식점을 갖춘 팔경원이란 위락시설을 세우는 등 주위를 홍등가로 만들었다. 구릉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현재의 만석교회 뒷마당에 서 보았다. 주위에 비해 살짝 높지만 시야가 트여 전망이 좋은 편이다. 조선총독 이토히로부미는 인천에 오면 이곳 팔경원에 가끔 들렀다고 한다. 술과 여자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돈이 풀리고 사람들이 꼬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이곳은 너무 외져서 이토의 발길도 지역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결국 그 땅은 중국인들의 채소밭으로 전락하거나 대부분 오랫동안 잡초 무성한 황무지로 방치되었다. 만석동 매립지에 본격적으로 공장이 들어선 것은 동양방적(현 동일방직)이 문을 열면서부터다. 일본인들이 동양 최대라고 자랑한 이 공장은 1934년 10월 1일 종업원 3천명에 직조기 1천292대로 조업을 시작했다. 하루 품삯이 쌀 2되 정도로 비교적 높은 편이어서 조선인들은 동양방적에 들어가길 원했다. 유니폼 입은 종업원들은 스스로 동대(東大)에 다닌다고 할 정도로 큰 자부심을 지녔다. 이 공장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한 획을 긋는 현장이 된다. 유신말기인 1978년 여성노조원들은 이른바 똥물테러를 당한다. 이 똥물은 부메랑이 되어 유신정권이 뒤집어쓰게 된다. 동양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이 공장은 이후 섬유업 퇴조에 따른 생산시설 이전 등으로 만석동 시대를 서서히 접고 있다. 잠수함 만들던 동네 조선기계제작소(현 두산인프라코어)를 빼놓고는 만석동을 얘기할 순 없다. 이 회사는 1937년 6월 광산용 기계 생산업체로 설립되었다. 공장 터를 조성하면서 괭이부리섬으로 불린 묘도(猫島)를 깡그리 뭉갠 것으로 보인다. 그 위치는 현재의 삼미사 혹은 옛 한국유리공장 앞 도로 부근으로 추측된다. 당시에는 육지의 끝 지점이다. 바다의 길목 묘도에는 조선의 포대가 있었다. 포대는 강화와 한강으로 향하는 이양선(異樣船)을 향했다. 분도, 사도, 원도(낙섬), 아암도, 청라도, 율도, 소월미도. 묘도와 함께 지도에서 사라진 섬들이다. 이 섬들이 살아있다면 인천은 아름다운 다도해(多島海)였을 것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인천을 대륙병참기지로 삼는다. 1943년 4월 말 조선기계제작소는 일본육군조병창으로부터 잠수함을 건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잠수함을 진수시키기 위해 도크를 신축하고 1천300여 명의 인력을 확충하고 그들을 위한 숙사(宿舍) 112동을 새로 건축한다. 이때에 세워진 집들이 현재의 아카사키촌의 근간이 된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화장실도 없는 쪽방으로 집을 지었다. 골목은 딱 어른 어깨 넓이다. 60년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근로자들이 묵었던 왜색풍의 집들이 힘겨운 채 곳곳에 남아 있다.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여전히 공동변소를 사용한다. 잠수함 1호기는 명령받은 지 1년 만에 제작돼 진수되었다. 해방될 때까지 총 4척의 잠수함이 만석도크를 통해 태평양으로 나갔다. 광복을 맞아 진수되지 못한 두어 척의 잠수함들은 60년대 초반까지 도크에서 녹슨 고철이 돼 나뒹굴었다. 그래서 한동안 사람들은 만석동을 잠수함 만들던 동네라고도 불렀다. 현재 아카사키촌에는 294동 판잣집에 548명이 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군수공장 기술자들이 모여 살던 이 동네는 해방 후 625 전쟁 중에 주로 배를 타고 황해도에서 건너 온 피란민들이 정착했다. 이어 6,7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호남과 충청지역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의 터전이 되었다. 우리 부부가 이곳에서 가장 오래 살았을 거요. 옛날 판유리공장 뒤편에 나가면 바지락이 지천이었는데 그거 잡으며 살았지. 그거 팔아도 충분히 먹고 살았으니까. 나중에 인천시 도움을 받아 5톤짜리 조그만 뗏마(배) 40척을 만들어서 주민들과 같이 낚시배 부리면서 살았어요. 이용준(84) 양순옥(81) 노부부는 아카사키촌의 터줏대감이다. 난리통에 황해도 옹진군에서 피난 나와 고향으로의 귀환을 꿈꾸며 이곳에 지금까지 살고 있다. 만석동이 품은 부두와 섬 만석동이 바다를 완전히 잃은 게 아니다. 여전히 부두와 섬을 품고 있다. 질펀한 부두의 옛 정취는 다 사라졌지만 이곳을 통해 사람들은 바다로 나간다. 강화 동검도와 마주하고 있는 세어도를 가려면 이곳에서 하루에 한 번 왕복하는 행정선을 타야 한다. 이제 이곳은 낚시배들의 출항지로 변모했다. 만석부두에 서면 마치 봉분처럼 봉긋 솟은 섬이 하나 보인다. 멀리뛰기라도 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작약도다. 작약도의 행정구역은 만석동이다. 이 섬은 이번에 만석동 작약로라는 새주소를 얻었다. 일제가 매립하지 않고 섬으로 그대로 둔 게 고마울 따름이다. 공장지대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갯벌 위에 레일이 깔려 있는 등 다소 낯선 바다가 나온다. 후미진 그 바닷가에는 우리가 도시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선박을 만드는 중소 규모의 조선소가 있고 그 옆으로는 고장난 배들을 수리하는 일종의 선박병원이 있다. 모퉁이를 돌면 선박을 해체하는 도크도 있다. 수만리 바다를 항해한 여객선, 화물선 등이 그 생명을 다하고 장기가 적출되는 현장이다. 이렇듯 만석동 뒷바다에는 요람부터 무덤까지 선박의 일생이 있다.글 _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 사진 _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독서의 계절 주말에 이곳에 가볼까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인 가을이다.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지만 까딱하단 그저 먹고, 자고, 찌고마는 잊혀진 가을이 되어버릴 가능성도 높다. 식탁 앞 시간을 10분 줄이고 맛있는 책과 책나들이로 포만감을 채워 보자. 가을 포만감을 채우기에 딱 어울리는 곳이 있다. 바로 파주시 탄현면 예술마을 헤이리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북하우스(BOOK HOUSE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136 )다. 서점과 카페, 갤러리가 한데 모여 있는 새로운 개념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그곳을 찾는 것만으로도 가을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헤이리가 구상되고 기획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4월쯤. 그리고 2004년, 10년만에 헤이리는 본격적으로 관광객맞이에 나섰다. 출판, 회화, 조각, 도예, 건축, 음악, 사진, 영화, 서점, 아트숍, 미술관, 박물관, 연구실 등 모든 문화예술 장르를 종합하는 문화예술마을 헤이리는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파주 통일동산, 북한이 건너다 보이는 이 긴장의 땅은 3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에 의해 평화의 땅, 문화예술 창출의 한 근거지로 건설됐다. 책의 집, 책으로 만든 집, 책을 위해 존재하는 집인 북하우스도 그 때 생겼다. 파주 출판단지에서 차로 10분 걸리는 헤이리에 위치한 북하우스는 출판사 한길사(대표 김언호)가 운영하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아름다운 건물에 서점은 물론 레스토랑(포레스타), 갤러리, 공연장, 북 카페(윌리엄 모리스) 등을 갖추고 있다.북하우스는 내부 공간이 통합돼 있다. 책방이면서 갤러리이고, 연주공연장이면서 레스토랑이며 카페다. 문화예술의 각 장르들이 상호 통합소통되는 그야말로 통합아트공간이다. 북하우스에 가면 우선 우리 시대에 창출된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오래 머물면서 책과 대면하면서 색다른 공간감을 만끽할 수 있는 책방이다. 책방은 흔히 도심의 번화가에 자리잡는다. 그러나 출판인 김언호는 멀리 북한땅이 보이는 변방의 산속에 책방 공간을 설치했다. 그 책방은 기존의 발상을 바꾸는 또 하나의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북하우스의 명물로 사랑받고 있는 북카페 포레스타는 거대한 책장이 압권이다. 높이 6m, 너비 20m의 책장에 꽂아둔 책만 1만2천여 권에 달한다. 특별히 제작한 대형 책꽂이에는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길사에서 출판한 책들이 전시돼 있다. 많이 이들이 꿈꾸는 서재의 모습이다. 북카페 이름 포레스타는 이탈리어로 숲이라는 뜻이다. 처음 숲에 온 사람들은 거대한 책더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카메라를 꺼내 멀리서 셔터만 누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금세 책의 숲에서 편안히 휴식한다.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단호박 등으로 식사도 할 수 있다. 모처럼 책에 푹 빠져 보리라 생각하는 이들에겐 이 보다 더 좋은 공간을 없어보인다.북카페와 책을 구입할 수 있는 북하우스가 연결되어 있어 신간을 감상하고 구입할 수도 있다. 문의(031)949-9305글_강현숙기자 mom1209@ekb.com사진_북하우스

난 맞아도 아프지 않다 하지만 마음은 너무 아프다

남순(권상우)은 어릴 적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고 그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갖고 살아왔다. 특히 그때의 후유증으로 심한 상처에도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된 남순은 각목으로, 쇠파이프로 맞아 피가 철철 흘러 넘쳐도 눈만 끔뻑거릴 뿐이다. 반면 피가 나면 멈추기 않아 작은 통증에도 치명적인 여자 동현(정려원)이 있다. 길거리에서 머리핀 등을 팔며 근근이 살아가는 동현은 혈우병 환자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해 긍정적으로 밝게 살려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남순은 범노(마동석)와 2인조를 이뤄 빚 독촉에 나섰다가 무턱대고 대드는 채무자 동현(정려원)의 대담한 행동에 호기심을 느낀다. 동현에 대한 생각을 키워 가던 어느 날, 남순은 집이 없어 이리저리 헤매는 동현에게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제안한다. 의지할 곳 없이 오로지 자신만을 믿으며 살아온 두 남녀는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마음의 빗장을 열어간다. 그리고 통증에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두 사람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영화 통증의 스토리다. 채무자와 채권자가 사랑에 빠지는 독특한 멜로가정동 재개발단지서 클라이맥스 부분 촬영대략의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통증의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다. 채무자와 채권자가 사랑에 빠진다는 독특한 설정의 멜로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주목하게 만드는 힘은 권상우와 정려원이라는 매력적인 배우의 조합과 곽경택 감독의 연출력이 제대로 어우러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통증은 강풀 작가의 원안을 바탕으로 만든 곽 감독의 10번째 영화다. 강풀 작가는 이미 충무로에서 보물처럼 여겨지는 존재. 그가 그린 웹툰 바보, 그대를사랑합니다, 순정만화, 아파트 등 무려 4편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친구 등 남자들의 이야기를 줄곧 해왔던 곽 감독은 이번에 통증을 통해 정통 멜로 영화에 도전했다. 곽 감독은 주로 부산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는다고 해 부산감독이라는 별칭이 있지만, 이번에는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촬영을 진행했다. 인천에서 촬영된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으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4월~5월 서구 가정동 재개발단지(루원시티 예정지)와 영종도 공항북로 일원에서 촬영됐다. 주요 인물과 스탭 등 80여명이 동원된 촬영현장에는 카메라 2대와 발전차, 조명탑차, 그립(장비)탑차 등 다량의 촬영장비들이 동원됐다. 특히 사랑보다 깊은 상처, 고해 등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수 임재범이 OST에 참여해 눈길을 끈다. 임재범이 영화 주제곡에 참여한 것은 2000년 개봉한 영화 동감 OST 너를 위해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임재범 특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애절한 멜로디가 영화의 감동을 더한다. 사랑의 통증에 무감각해진 작금의 이기적 인스턴트식 사랑을 꼬집으며, 과연 이 시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 통증은 올 가을 사랑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슬픈 사랑을 나누주기에 충분한 영화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ekgib.com사진_인천영상위원회

삶의 언어 녹여내는 연금술사

부끄러움이 많은 소년은 화가가 꿈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도 잘 그렸다. 그런데 어른이 된 소년의 손에는 붓 대신 분필이 쥐어져 있었다. 선생님이 된 청년은 군 제대 후 친구의 소개로 동갑내기 아내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아내는 결혼반지를 빼서 남편의 학비를 마련해주고, 남편의 반 아이 등록금으로 첫 아이 돌잔치 비용을 선뜻 내주던 착하디 착한 동반자였다. 그런 아내가 위암으로 죽었다. 핏덩이 같이 아들, 딸을 놓고 말이다. 아내는 자신의 눈을 다른 이에게 기증해달라는 말을 남기로 하늘로 간 서른두살의 꽃다운 아내였다. 아내를 보내고 남자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자의 슬픔 마음은 1986년 접시꽃 당신(실천문학사) 시집으로 다시 태어났다. 도종환 시인(57)은 아내가 하늘로 간 서른두살에 스타시인이 됐다. 그 후 25년 동안 100만부가 팔렸고 아직도 매년 5천부~1만부씩 판매되며 국민시집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 사이 시인도 50대 후반의 중년 아저씨가 됐고 얼마 전엔 며느리도 봤다.시 한편으로 전국민의 눈물샘을 훔쳤던 도종환 시인이 5년만에 열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刊)을 냈다. 9년 째 충북 보은군 속리산의 오두막집 구구산방(龜龜山房거북이처럼 느리게 살자)에서 꽃, 바람, 다람쥐, 잡초와 같이 살며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는 시인을 만나는 일은 예상했던 것 보다 덜 어려웠다.9월 7일 찾은 시인의 청주시 개신동 자택은 가을 냄새가 짙게 났다. ■12시에서 1시 사이 이 가을, 시인 특유의 달달한 시 세계를 기대했다면 조금 아쉬움이 있을 신작이다.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시인은 인생을 시간으로 정리해보면 과연 나는 지금 몇시쯤 와 있을까?하는 질문에서 작품이 시작됐다고 말한다.치열했던 12~1시를 지난 지금은 서쪽 하늘에 찬란한 노을이 펼쳐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오후 3시쯤 내가 머물고 있다. 비록 캄캄한 어둠이 찾아 온다고 지난 12시부터 1시 사이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이 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내 편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살자는 마음이 이 시집을 통해 하고 싶은 메시지다.시인 배창환은 발문에서 대구 학생운동의 메카로 불렸던 곡주 할매집 뒷방과 청주 영운동 이층집에서 문학과 시대현실을 밤새워 토론하면서 곧 의기투합해 분단시대 문학동인을 전격 결성해 민족민중문학운동의 대열에 합류했던 때는 낮 열두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달콤한 시들의 뒤편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치열한 삶의 파편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맞고 벽지로 좌천되고 해직, 구속으로 이어진 고통과 절망의 극점에 섰던 때가 오후 한시쯤이리라. 그리고 과로와 심신쇠약으로 쓰러져 학교를 그만두고 입산해 새로운 도(道)를 만나던 때가 오후 두시. 다시금 몸을 일으켜 진보적 문학운동단체의 든든한 중심으로 매주 하산과 입산을 번갈아가면서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마련하기 시작한 때가 오후 세시 무렵. 그 어떤 이들보다 치열했던 80년대, 상처많은 30대를 보내 시인.시대와 함께 문학을 끌어안고 살아왔다는 것에 후회는 없다. 단 사회적 실천을 위해서 가족들에게 무책임했던 것이 미안하다. 책임 속에 무책임함. 직업을 빼앗기고 감옥에 가고 가족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가족들의 희생을 소홀하게 생각했다. 사회운동가로 전교조 교사로 사회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시를 통해 더 단단해지고 거침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갔다.두려움은 다 있다. 한 번 발언하고, 행동할 때마다 거대한 권력의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한 차별 등이 바로바로 오니깐 두렵지 않은 것 아니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 때문에 주눅들거나 위축들지 않은다. 어떤 것이 공정한건가, 바른건가 발언하는 건 작가의 역할이다. 작가의 당연한 역할이다. 불공정함에 대해서, 자연파괴, 생명경시 등에 대해 때마다 발언하는 것이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그러면서 시인은 조선시대 책문(策問) 정신을 강조했다. 조선시대 책문이라는 시험 과정이 있었다. 과거시험의 최종단계로 왕이 국가 현안에 대한 계책을 묻고 이에 답하게 하는 시험이 바로 책문이다. 그런데 왕에 대해 직언을 하게 되면 과거급제는 커녕 목숨마저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마니 선비들의 고민이 컸을 것이다. 그래도 진실을 말하는 조선 선비의 불요불굴의 기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문학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불이익을 감수하고 시대에 저항했던 그의 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어떤 이는 그를 당대 최고 로맨티스트이자 서정시인이라고 부르고, 어떤 이는 슬픔을 파는 시인이라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다.어쩌면 그는 어두운 시대를 담담하게 대항하며 담쟁이처럼 살아왔고 그래서 그의 시는 치열하고 비장하다. 서정시인의 얼굴은 일부일 수도 있다. ■3시 이후 이번 시집에서도 그의 단짝 꽃은 빠지지 않았다. 송악초등학교 담 옆 채송화 연로날 꽃잎 속으로 작은 벌 한 마리가 붕붕거리며 날아들어갑니다 탱탱한 날갯짓 소리가 몸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채송화는 얼마나 가슴이 콩당거렸을까요?(채송화 중에서)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꿈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은다(라일락꽃 중에서)내가 처음 눈을 열어 세상을 보았을 때/거기 꽃밭이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지금도 내 옷소매에 소박한 향기가 묻어 있는 것이(꽃밭 중에서)이처럼 꽃은 시인과 함께 한다. 어머와 같이 꽃밭에 있었고 아장아장 걸음을 떼기 시작할 때 발걸음마다 채송화가 기우뚱거리며 따라왔다고 시인은 작품에서 이야기한다. 아내에 대한 절절한 마음 담은 접시꽃 당신초판 정도 생각결과는 100만부 대박이번 신작에는 시인의 사유대상이 자연, 생명, 환경에 다양해짐을 알 수 있다. 카이스트생 자살사건에 대해 젖은 꽃잎 비에 다시 젖으며 수직으로 떨어져내렸다라고 표현했고 중국 쓰촨성 지진은 돌더미 밑에서 갓난아이 하나를 구해냈지요/그녀는 젖을 꺼내 아이에게 물렸지요/살아 있는 모든 아이의 어머니라고 정리했다.또 시련을 담금질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은 더불어 살아가는 청안한 삶을 꿈꾼다. 오랜 시간 산속에서 생활한 시인은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에도 의미를 두고 흔들리며 피는 꽃 한송이에도 애정을 담는다. ■5시 이후굽이 많은 생을 지나온 시인은 어느덧 오후에 접어들었다. 인생의 오후에 접어든 그에게 접시꽃 당신은 어떤 의미일까.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시인의 이름을 얻고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요즘도 문학강연이나, 학교강연을 가보면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초판본 시집을 들고와 사인해달라는 학생들을 보면 세월을 느낀다. 어느새 부모가 자식한테 물려주는 시집이 됐다. 시인은 집필 당시 접시꽃 당신이 히트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이걸 시집으로 내도 될까? 욕이나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자고 요청이 와도 어떻게 이걸 시집으로 내냐며 거절했었다. 1985년 말, 실천문학사 편집자인 김사인 시인(현 동덕여대 교수)이 부인을 보낸 마음을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차원에서 권유했다. 그냥 초판 정도 생각했다. 그동안 한해도 쉬지 않고 해마다 5천~1만권씩 판매돼 100만부를 넘었다니, 예상하지 못환 일이다. 고마울따름이다.시인은 시를 쓰면서 인생의 길을 묻으면 답을 알려준다고 했다. 간혹 그 길이 힘들어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 그가 시를 쓰는 이유라고 한다. 다섯시 이후 그의 시가, 그의 얼굴이 어떤 그림일지 알 수 없다. 단, 분명한 건 시인은 역사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뒹굴며 치열하게 숨쉴 것이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ekgib.com사진_전형민기자 hmjeon@ekgib.com 도종환 시인은?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앞에는 아름다운 서정을 두고 뒤에는 굽힐 줄 모르는 의지를 두고 끝내 그것을 일치시키는 시인으로 불리는 도종환 시인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시 어떤 마을이, 고등학교 문학 국어교과서에 흔들리며 피는 꽃, 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 담쟁이 등 여러 편의 시와 산문이 실려 있어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현재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신동엽 창작상, 2006년 올해의 예술상(문학부문),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 부문 대상, 아름다운 작가상 등을 수상했고, 2006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그동안 펴낸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해인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산문집으로는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마음의 쉼표 등이 있다.

창업 3년만에 연매출 100억 ‘강소 토종기업’ 아시아 넘어 세계로

자동차 엔진 시장에서 세계 일류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최고의 기술력으로 세계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기업이 되겠다.경기도 수원시 차세대융합기술원 자동차연구동에 위치한 ㈜테너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자동차 엔진 개발 전문 용역 업체다.㈜테너지의 최재권 대표(55)는 우리나라 자동차 기업들 가운데 현대가 독보적인 이유는 독자적인 엔진을 개발해 내기 때문이라며 자동차 엔진은 아무나 만들 수 없다. 현대를 제외하고는 엔진을 개발해 낼 수 있는 기업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에서 테너지 뿐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최 대표는 엔진을 만든다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엔진을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만든 엔진이 세계적인 기업들이 만들어낸 엔진과 경쟁할 수 있느냐를 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이는 ㈜테너지에서 탄생되는 자동차 엔진은 세계 어느 엔진과 비교해도 성능이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말이다.자동차 심장 엔진 만드는 기술 장인들의 야심찬 도전 ■ 자동차 엔진은 기계공학의 꽃!충북 옥천 출신인 최 대표는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소위 말하는 수재였다. 최 대표는 졸업과 함께 진로를 고민하던 중 현대자동차가 마북리 자동차 연구소를 설립해 독자적인 엔진 개발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저 없이 현대자동차에 지원하게 된다.최 대표는 당시 기계공학 전공 학생들이 가장 동경했던 부분이 자동차 엔진 개발이었다며 자동차 산업은 국가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러한 자동차의 심장이 바로 엔진이다. 엔진은 어느 한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계공학 분야의 모든 기술을 총 망라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자동차 엔진은 기계공학도들에게는 매력적인 분야이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최 대표는 현대자동차 마북리 연구소 설립 맴버로 합류해 17년 동안 엔진 개발에 몰두했다. 그 기간 동안 최 대표는 현대자동차 최초의 독자 엔진인 1991년 스쿠프에 장착된 알파엔진 개발에 중추적 역할을 맡았으며 엔진개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독자 엔진개발에 많은 기여를 했다.최 대표는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2001년 독일계 엔진개발 용역업체인 FEV의 한국지사장을 맡게 됐으며 2008년 3월 회사로 부터 독립해 ㈜테너지를 설립, 본격적인 엔진개발 연구에 들어갔다. 테너지는 테크놀로지 오브 에너지의 약자이다.최 대표는 외국계 기업에서는 시장선도국가들만이 개발능력이 뛰어나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지사 차원에서는 최고의 연구 인력을 동원할 수 없었다며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독자 엔진 개발에 대한 비전과 도전의식은 더욱 강해졌고 한국의 고급 연구인력들과 함께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자신감도 생겨 테너지를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 기술력으로 쌓은 신뢰지난해 ㈜테너지의 연간 매출액은 100억원을 넘어섰다.설립 3년만에 중소기업이 매출 100억원을 넘어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특히 기술력과 누적된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엔지니어링 업계에서의 ㈜테너지의 이처럼 빠른 성장세는 놀라울 정도이다.㈜테너지의 가파른 성장에는 뛰어난 기술력이 뒷받침 됐다. 테너지는 아시아권에서 비 자동차메이커 중 엔진 개발 능력을 보유한 유일한 업체다. 국내 A 자동차 기업이 출시하는 SUV에도 테너지가 개발한 엔진이 장착되며 현대, GM대우 등 국산차 메이커는 물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볼보, 도요타, 혼다 등 수입차 메이커의 차량 연비 해석 프로젝트도 수행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매출 역시 지난 2009년 4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00억원으로 뛰어올랐으며 올해에는 연간 매출액이 2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오는 8월에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연구소를 설립, 하이브리드 관련 엔진 개발에도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최 대표는 제조업체와 비교해 볼 때 엔지니어링업체의 매출 100억원은 제조업체 매출 1천억원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세계시장에서 볼 때 아직 한국 업체는 엔진설계역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설계프로젝트를 수주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기술력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자동차 엔진 기술은 세계 초 일류 수준이 되지 않으면 경쟁이 되지 않는다. 독일 등 자동차 역사가 오래된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어느 한 부분이라도 부족한 것이 없는 완벽한 엔진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신뢰를 줄 수 있다고 ㈜테너지의 성공비결을 밝혔다. ■ 친환경 엔진 시대, 엔진의 끝 없는 발전최근 자동차 시장은 친환경이라는 큰 테마 속에서 발전하고 있는 모양새다.그러나 최 대표는 이러한 자동차 시장의 변화에 대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최 대표는 자동차 엔진의 개발 역사는 예전부터 친환경이라는 개념 속에서 발전해 왔다며 지금까지는 유해가스 배출을 줄이는데 집중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연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특히 최 대표는 친환경 자동차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전기자동차를 생각하는데 과연 전기자동차가 친환경적인가는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전기를 만드는 것 역시 화석 연료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며 화석연료를 전기 발전소에서 태우느냐 자동차 안에서 태우느냐의 문제인데 자동차에서 태우는 측면이 더 친환경적일 수 있다. 때문에 전기자동차 개발만큼 연비를 개선하는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어 화석연료의 대안이 원자력인데, 원자력 에너지는 너무 많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테너지는 향후 하이브리드 자동차 엔진 개발 및 연비개선 방안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할 계획이다고 밝혔다.최 대표는 국내에서 현대 및 삼성 등 초 일류 기업들이 있듯이 ㈜테너지 역시 세계 초 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자동차 역사가 짧은 것, 아시아에 대한 선입견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이 있지만 이러한 고정 관념들은 차츰 바뀔 것이고 뛰어난 기술을 통해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글_이호준기자 hojun@ekgib.com 사진_전형민기자 hmjeon@ekgib.com

그라운드 나가면 계급장 떼고 모두가 똑같은 선수로 질주…

행안부 장관배 전국 시도 친선축구대회 3연패 무서운 아마추어운동장에서는 직급이 필요 없죠, 회원 모두가 축구를 통해 끈끈한 우애를 나누는 형제입니다.지난 1967년 경기도청 수원 이전과 함께 탄생,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경기도청 축구동호회(회장 김한섭 총무과장).65명의 회원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도청 운동장이나 수원월드컵경기장 등에서 자신만의 갈고 닦은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31살 막내 회원부터 55세 최고령 회원까지 나이와 직급을 불문하고 이들의 축구사랑은 유별나다.명절 때도 수원에 사는 회원들은 차례만 지내면 바로 공을 차러 나오고, 장맛비가 쏟아질 때도 포기하지 않고, 운동장과 제일 가까운 제3별관 지붕 밑에서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만을 기다릴 정도다. 참석자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미니게임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이들은 축구사랑을 통해 외부와도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각 지역 조기축구회와의 경기는 물론이고 행정안전부, 경찰청, 도의원들을 비롯, 타 시도 및 도내 시군 각종 기관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것.신청이 들어오지 않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상대를 찾아나서 지난해에는 국제교류 부서에 근무하는 회원들의 소개로 나이지리아 유학생들과 친선경기를 벌이기도 했다.이처럼 외부기관 직원들과 교류하며 얼굴을 익혀온 덕분에 업무공조도 훨씬 수월해졌다.경기도청 축구동호회는 이같은 열정과 팀워크로 행정안전부 장관배 전국 16개 시도 친선 체육대회에서 3연패를 달성하고 지난해에는 경기도의 프리미엄 리그라는 경기사랑리그에서 4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이 동호회 활동을 통해 얻은 자산은 사람이다. 회원 간의 정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서로를 챙겨주고 도와주는 그야말로 이웃사촌 같은 깊은 사이가 됐다.일례로 이들은 수년 전 전남 폭설 피해복구 자원봉사에 나섰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순직한 회원을 그리워하며 지금까지 국립현충원을 찾아 헌화를 해오고 있다.96년부터 꾸준히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는 조추동 경기도의회 언론담당은 몸을 부딪치며 함께 호흡하다 보니 이제는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정도라며 회원들의 대소사도 친형제같이 챙기는 끈끈함이 있다고 말했다.한명희 감독(자원순환과)은 회원 대부분이 꾸준히 활동을 하면서 고령의 회원들이 많아져 새로운 선수를 영입해야 하는데 요즘 젊은층들이 축구를 잘 안 하려고 해 고민이라며 적극적인 홍보로 젊은 피를 수혈해 실력으로나 팀워크로나 명실상부 도내 최고 축구동호회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_구예리기자 yell@ekgib.com

국제규격 퍼블릭 골프장 ‘황제의 라운딩’

경기도내 대표적인 산악 도시인 포천시 중에서도 원시림이 펼쳐진 화현면 운악산 자락에 자리한 포레스트힐 컨트리클럽(대표 홍택선 회장)은 국제 규격의 퍼블릭 골프장으로 천년의 숲에서 황제의 라운딩을 즐길 수 있다. 지난 3월 개장한 포레스트힐CC는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물론 기존의 정형화된 골프장과 다른 웅장한 스케일, 그리고 자연의 지형지물을 그대로 살려 설계돼 신이 허락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231만여㎡(70만평) 부지에 27홀 규모(3홀은 미 개장)로 조성된 골프장은 짧은 연혁에도 불구하고 골퍼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빼어난 자연경관과 도전적인 코스, 쾌적한 공기, 주변의 탄산온천수 등과 어우러져 입소문이 자자하다. 정규 18홀 코스는 총 7천362야드로 각 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다양한 클럽을 사용해야 하는 난이도를 갖고 있다. 포레스트힐CC에 처음 들어서면 높은 고도(해발 350m) 탓에 업, 다운이 심한 골프장일 것이라는 선입감을 갖게된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고지대에 설계돼 있지만 정작 각 코스에 나서면 평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코스가 평탄하게 조성돼 있다.Rock course도전 욕구 자극하는 롱코스Hill course동양화 속에서 숏홀 묘미Forest course삼림욕 즐기며 다양한 매력다만 강원도 고지대의 밭처럼 산 기슭을 따라 지그재그 형태로 코스가 설계돼 있어 코스의 길이가 길고, 페어웨이가 좁은 것이 특징이다.포천 일동레이크, 천안 버드우드, 정선 강원랜드, 제주 오션파크 등을 설계한 재일교포 김학영씨가 암벽이 많은 자연지형을 남성적이고, 도전적으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골프장을 병풍처럼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전나무 원시림 속에서 라운딩을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각 코스마다 개성이 강하고 오밀조밀함이 돋보여 라운딩을 하는 동안 지루함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특히 80대 스코어를 기록하는 골퍼들이 공략하기에 좋은 코스다.포레스트힐CC의 ▲락 코스(Rock course)는 울창한 산림을 따라 길게 늘어선 코스로 계류를 가로지르는 롱코스 등 도전의 의지를 담고 있으며 ▲힐코스(Hill course)는 멀리 운악산을 감상하면서 한폭의 동양화 같은 코스에서 숏홀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고 ▲포레스트 코스(Forest course)는 페어웨이의 마운드 등을 시간에 따라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배치해 변화가 다양하고 산림욕을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서울과 일산 등지에서 불과 1시간 내에 다다를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뛰어난 것도 포스스트힐CC의 장점. 라운딩 후 클럽사우나에서 지하 600m 암반수에서 끌어올린 온천욕을 즐길 수 있고, 골프장이 직영하는 레스토랑은 맛은 물론 가격 경쟁력에서도 뛰어나다. 홍택선 포레스토힐CC 회장은 수익성을 위해서가 아닌 새로운 매너와 원칙을 중시한 골프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골프장을 건립하게 됐다며 명문골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회원이 중심이된 골프장 보다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퍼블릭골프장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국제규격 골프장을 만들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포레스트힐CC는 홍 회장의 골프철학과 골프장 운영 신념을 바탕으로 명문골프장이 되기 위한 조건을 하나씩 충족시켜 나가고 있다. 홈페이지:www.foresthill.kr 예약 프런트:031-530-8000.글_황선학기자 2hwangpo@ekgib.com사진_포천 포레스트힐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