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예인 "명예훼손 소송은 英법원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명 연예인들이 신문이나 잡지의 보도에 따른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을 미국 법원이 아닌 영국 법원에 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이 9일 보도했다. 미국 연예인의 `영국 법원행'은 미국과 달리 영국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한 관련법상 문제의 보도를 한 출판사나 신문사의 범의(犯意)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등 미국보다 원고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영국 헌법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제1조처럼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고 개인의 권리와 형평성에 비중을 두는 것도 이런 추세를 부추기는 또 다른 이유다. 최근 미국의 영화배우 케이트 허드슨은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골디(허드슨의 어머니) `뭐라도 먹어라, 케이트"라고 보도해 자신이 거식증에 걸린 것처럼 암시한 데 대해 영국법원에 소송을 내 승소했고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이 잡지가 자신의 결혼생활이 파경을 맞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며 제소했다. 연예계 화제를 보도하는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판매되기 때문에 이들 스타가 영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영화배우 캐머런 디아즈와 `위기의 주부들'에 출연하는 테리 해처도 영국의 신문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낸 적 있고 영화배우 니콜 키드먼도 `더 선', `데일리 메일'을 상대로 영국법원에 소장을 냈다. 법률 정보업체인 `스위트&맥스웰'에 따르면 지난해 이런 명예훼손 소송은 9건에 그쳤던 반면 올해는 5월까지만 해도 연예인 20명이 소송을 제기,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영국 소재 출판사 뿐 아니라 미국 출판사에서 발행된 출판물이나 미국에서 운영되는 웹사이트와의 명예훼손 분쟁까지 `승소 확률이 높은' 영국법원에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9.11 테러 다룬 올리버 스톤의 영화 개봉

9.11 테러를 소재로 삼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화제작 '세계무역센터'가 테러 5주년에 한 달 앞선 9일(현지시각) 미국 전역에서 개봉됐다. 니콜라스 케이지를 주연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사건 발생 직후 인명 구조를 위해 세계무역센터로 달려갔다가 붕괴한 건물 잔해에 12시간 갇힌 뒤 간신히 구조된 두 경찰관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개봉 첫날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에서는 일단 찬사가 나오고 있지만 미국인들이 가슴 아픈 사건을 다룬 영화를 볼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지에 대한 이견도 없지는 않다. 뉴욕시 미드타운 맨해튼의 한 영화관에서는 50명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지켜보았다. 이 영화관을 찾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로드니 라모스는 "감동적이다. 잘 만들었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사건 당시 뉴욕에 없었다는 시민 레슬리 프리드먼은 "사람들이 왜 이 영화를 볼 준비가 되지 않을지를 납득할 수 있다"면서도 "이 영화가 얼마나 강력하고 인간적인지를 알게 되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들은 여러 차례 도발적인 영화들을 선보였던 올리버 스톤 감독이 '세계무역센터'에서는 경의와 자제, 애국심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관객들이 이를 기꺼이 보려 할지, 아니면 영화의 주제를 너무 민감하다고 받아들일지가 관건이 흥행의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영화사들은 이 주제를 가급적 회피한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영화 '스파이더맨'에서는 주인공이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오르려고 계획하는 장면을 일부러 삭제하기도 했다. 중년의 관객 불룸은 다른 시각을 내비쳤다. 그는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5년이 지났다. 우리가 영원히 기다려야 하겠나. 이런 영화는 만들어져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건 당시 남편을 잃은 패티 카사즈는 비극에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본다면 비디오로나 보겠다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패티는 "나로서는 이 영화가 너무 이르다고 본다. 다만 언제가 적절한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 정치인, 맨해튼 주민들, 구조대 관계자들은 '세계무역센터'의 개봉을 계기로 사건 현장에서 유독 가스를 마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확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캐럴라인 멀로니 의원은 영화 개봉에 즈음해 발표한 성명에서 "영화 속의 영웅들은 건물 잔해에서 구조됐다. 하지만 수천 명의 9.11 영웅들은 아직도 질병과 도움 부족이라는 함정에 갇혀 있다"며 이들의 사정에 주목해줄 것을 호소했다. /연합뉴스

홍상수 감독, 첫 '15세 이상 관람가'

너무 적나라해 오히려 유머러스한 느낌을 주는 베드신.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없다. 아니, 없는 모양이다. 홍상수 감독이 일곱번째 작품 만에 처음으로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 판정을 받아 눈길을 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9일 고현정ㆍ김승우 주연의 '해변의 여인'에 15세 관람가 등급 판정을 내렸다. 1996년 4월 '돼지기 우물에 빠진 날'을 시작으로 '강원도의 힘'(1998), '오! 수정'(2000), '생활의 발견'(2002),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극장전'(2005)까지 매번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던 홍 감독이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성인 등급을 벗어나 청소년도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홍 감독의 영화는 배우들조차 시나리오 없이 촬영에 임하다보니 개봉하기 전까지는 그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는다. '해변의 여인'도 마찬가지로, '여행을 떠난 30대의 네 남녀가 경험하는 로맨스'라는 정도만이 영화에 대해 주어진 설명. 그런데 그 로맨스에 청소년이 보기에 문제가 있는 베드신 혹은 노출신은 없는 모양이다. '해변의 여인'은 고현정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았고, 그런 고현정이 홍 감독의 기존 작품 스타일에 어떻게 녹아들까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일단 등급판정에서 유추해볼 때 기존 홍 감독의 스타일에 어쨌든 꽤 큰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홍 감독에 앞서 에로비디오계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봉만대 감독 역시 공포영화 '신데렐라'로 생애 처음으로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해변의 여인'은 30일, '신데렐라'는 17일에 개봉한다. /연합뉴스

이켠 "사극 도전, 작지만 알찬 변신"

"해마다 사람이 변하듯이 사극에서의 제 모습도 또 하나의 저이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봐주셨으면 해요." 이켠이 SBS 사극 '연개소문'에 합류한다. 맡은 역할은 김유신의 동생 흠순. 형의 총애를 받는 연개소문을 시기해 사사건건 괴롭힌다. 9일 일산제작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켠은 "전부터 사극에 욕심이 있었고 언젠가는 경험해 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와서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MBC '안녕, 프란체스카'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히 활동해와서 그런지 이켠에게는 코믹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그래서 이켠이 사극을 한다고 하면 의아해할 사람이 적지 않다. 이켠에게는 사극 도전의 의미가 남다르다. '대변신'이라서가 아니라 또다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 "예능 프로그램을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사극도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이켠이 또다른 모습을 창조하려고 도전하는구나'하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겐 작지만 알찬 변신이 될 겁니다." 사극을 처음 해보는 다른 연기자들처럼 이켠도 어투가 고민이다. 게다가 첫 촬영부터 전쟁 장면. 대번에 목이 쉬었다. "틀이 잡힌 톤으로 말해야 하는데 많이 힘들더라고요. 또래 친구들이 한 걸 본 적도 없고 선배들 따라하면 겉늙어보일 테고… 촬영하고 나니까 목이 쉬었던데요(웃음)." 이켠은 젊은 시절의 연개소문과 김유신을 연기하는 이태곤, 이종수 등과 함께 이번 주말부터 극에 등장한다. 동그란 눈망울이 매몰차면서도 독한 김흠순을 어떤 방식으로 뿜어낼지 궁금하다. /연합뉴스

충무로의 새로운 탈출구 '가족영화'

최근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가족영화'란 타이틀로 묶을 수 있는 이들 영화는 대부분 '감동'을 콘셉트로 어린이ㆍ동물ㆍ장애인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2002년 4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집으로'를 시작으로 '말아톤'(500만 명) '웰컴 투 동막골'(800만 명) 등의 성공은 이들 영화의 가능성을 밝게 하고 있다. 싸이더스FNHㆍMK픽쳐스ㆍKM컬쳐 등 굴지의 영화사가 제작사로, CJ엔터테인먼트ㆍ쇼박스 등 대표적인 배급사들이 배급에 참여하는 등 가족영화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가족영화 속속 제작ㆍ개봉 현재 가족영화는 10일 선보인 '각설탕'과 함께 '아이스케키' '마음이…' '눈부신 날에'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작 중인 영화로는 11월과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인 '허브'와 '번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아이스케키'는 24일에, '마음이…'는 10월 중순께, '눈부신 날에'는 11월께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말과 여기수(女騎手)와의 사랑과 교감을 다룬 '각설탕'은 싸이더스FNH가 제작하고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영화. 영화 '장화, 홍련'과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스타 반열에 오른 임수정이 주인공 시은을 연기했다. MK픽쳐스는 '안녕 형아'에 이어 두 번째 가족영화로 박지빈 주연의 '아이스케키'를 내놓았다. '아이스케키'는 미혼모 엄마 밑에서 자란 꼬마 영래(박지빈)가 서울에 산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에 나선다는 내용. '집으로'의 유승호가 주연한 '마음이…'는 개와 인간의 우정을 다뤘다. "강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 영화로는 최초"라고 제작사 화인웍스 측은 밝혔다. 박신양 주연의 '눈부신 날에'는 딸에 대한 양아치 아버지의 부성애를, 정진영 주연의 '번트'는 저능아 아들을 정상인과 함께 살게 하려고 애쓰는 아버지와 그 아들의 이야기를, '허브'는 저능아 딸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각각 다뤘다. ◇가족영화 시장성에 주목 가족영화 제작에 가장 적극적인 영화사는 MK픽쳐스다. 이 영화사는 지난해 박지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안녕, 형아'를 통해 가족영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뒤 영화사의 주요 영화장르로 가족영화를 포함시켰다. MK픽쳐스는 현재 매년 한 편씩 가족영화를 제작한다는 계획. 심재명 대표는 "한국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가족영화라는 영역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가 공포영화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후 공포영화 시장이 형성된 것처럼, 가족영화도 흥행성이 검증되면 한국영화의 주요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번트'를 제작 중인 타이거픽쳐스 이정세 제작이사는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볼 때 가족영화의 관객층은 넓다고 본다"면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은 장르"라고 말했다. MK픽쳐스처럼 매년 한 편 이상의 가족영화를 제작하겠다는 계획은 아직 없지만 싸이더스FNH도 가족영화의 가능성은 높이 사고 있다. 조윤미 기획팀장은 "현재 우리가 제작한 '각설탕'이 '괴물'과 예매순위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면서 "아직 발표한 단계는 아니지만 기획 중인 작품 중에도 가족영화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충무로에서 동물ㆍ장애인ㆍ스포츠 소재의 영화는 통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것이 하나씩 깨지고 있는 것 같아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회사 측에서도 계속 가족영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음이…' '허브' '번트'의 배급을 맡은 쇼박스는 "액션이나 코미디 영화 이외에도 관객의 다양한 욕구가 존재하고, 그 중 하나가 가족영화라고 보고 있다"면서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성공사례를 통해 휴머니즘의 통한 감동이 주는 흥행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 제작ㆍ펀딩ㆍ홍보 등에 어려움 겪어 모든 연령층에 대상으로 한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족영화는 제작과 펀딩, 홍보 등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경우, 안정적인 연기를 얻어내기가 힘들고, 동물에게 연기를 시키는 것은 더더욱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 현재 주인공을 맡을 수 있는 아역 연기자도 '아이스케키'의 박지빈, '집으로'의 유승호, '웰컴 투 동막골'의 권오민, '번트'의 최우혁 정도. 심재명 MK픽쳐스 대표는 "성인 연기자와는 달리 아역들에게 원하는 연기를 뽑아내기가 힘들고 아역 연기자들은 정형화된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고, 이정세 타이거픽쳐스 제작이사는 "아역의 연기 지도가 쉽지 않아 일반영화보다 1.5배는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가족영화의 스타 연기자의 부재는 제작비 마련과 홍보에서도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충무로에서는 가족영화 히트 사례가 몇 편 더 쌓이면 투자가 좀더 수월해지고 아역배우 저변확대와 연기 지도 및 촬영 노하우 축적 등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가족영화 제작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中, 美 TV프로그램 불법 다운로드 성행

불법제작된 DVD 등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인터넷을 통한 미국 TV 프로그램의 불법 다운로드가 성행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무보수로 미국 TV 프로그램에 중국어 자막을 만들어내는 조직들이 생겨나면서 인터넷을 통한 불법 다운로드가 크게 늘고 있다면서 중국어 자막 제작자들이 이미 수십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중국어 자막 제작자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자막제작에 나서고 있으며 빠르고 정확한 자막제작을 위해 치열한 경쟁까지 벌이고 있어 미국에서 방송된 TV 프로그램이 거의 실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중국어 자막과 함께 인터넷을 타고 유포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TV 프로그램의 불법 다운로드가 크게 늘어난 데는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미국 문화에 대한 갈증과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중국방송의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 같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해석했다. 엄격한 검열을 통해 방송되는 중국방송의 프로그램들이 다양해지는 시청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데다 해외영화의 수입도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인터넷을 통한 미국 TV 프로그램의 불법 다운로드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외국영화는 미국 영화 16편을 포함해 모두 20편에 불과하며 중국 방송에서 미국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인터넷을 통한 불법 다운로드는 중국을 불법복제의 천국으로 불리게 만들었던 불법복제 DVD에 대한 수요까지 감소시킬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전언이다. 뉴욕타임스는 불법 다운로드로 저작권을 침해받고 있는 미국 방송들은 중국 당국의 단속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지만 중국어 자막 제공자들은 자신들이 노력에 대해 대가를 요구하거나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새영화> 웃기는 느와르 '예의 없는 것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예의 없는 것들'에 속할까? 영화 '예의 없는 것들'(감독 박철희, 제작 튜브픽쳐스)의 홍보책자는 친절하게도 일상에서 만나는 예의 없는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막말해 놓고 10분 뒤에 장난치며 아무렇지 않게 말 거는' '소개팅 주선자로 나와 상대와 눈맞는' '영화 보는데 소곤소곤 영화 내용 다 말해버리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만 강한 척하는' '입안에 혀처럼 굴다 뒤통수 치는' 그런 사람들이 '예의 없는 것들'이란다. 그러나 영화 속 '예의 없는 것들'은 이들보다는 한수 위의 고수들이다. 정계ㆍ재계ㆍ교육계ㆍ종교계 등의 지도층 인사 중 사회적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암적 존재들이 바로 그들. 전문킬러 '킬라'(신하균)는 이런 '예의 없는 것들' 만을 골라 등에 칼을 꽂는, 나름대로 규칙을 가진 '분별 있는' 킬러다. 킬라가 킬러가 된 경위는 이렇다. 짧은 혀 때문에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그는 '쪽 팔리게' 사느니 차라리 말 없이 살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1억 원만 있으면 혀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칼질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던 그는 수술비를 모으려고 전문 킬러가 된다. 킬라는 주문받은 대로 '작업'을 하면서 도살자와 다름없는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그때 선배이자 동료 킬러인 '발레'가 "너 나름의 룰(rule)을 정하라"고 충고한다. 그래서 이왕 죽이는 거 예의 없는 것들만, 불필요한 쓰레기들만 골라서 깔끔하게 '분리수거'하기로 마음 먹는다. 작업 이후 코밑 피냄새를 없애려고 독한 술을 즐기는 킬라. 그는 매번 들르는 바에서 끈적이며 거세게 구애하는 '그녀'(윤지혜)와 자주 마주친다. 킬라는 무례하게 굴면서도 가끔 속내를 보이는 그녀 때문에 헷갈리지만 말이 없는 자신이 좋다는 그녀를 떨쳐버릴 수는 없다. 어느 날 킬라와 발레는 재래시장 재개발 건으로 폭리를 취하는 조직폭력배 두목을 제거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만만치 않은 놈들이라는 사전 정보에 조심스럽게 작업을 하던 중, 다른 놈을 처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로 인해 그녀와 함께 스페인으로 가서 투우사가 되려는 킬라의 꿈은 조직폭력배 무리에 의해 방해받게 된다. '예의 없는 것들'은 코믹느와르 장르를 표방하는 영화. 외형은 느와르지만 영화를 이끌고가는 것은 코미디다. 영화 속 코미디의 핵심은 킬라의 내레이션. 짧은 혀 때문에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다는 설정 때문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킬라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킬라는 술에 취해 "너는 내게 고통이야"라고 울부짖는 그녀의 말에 "너는 내게 고민이야"라고 응수하는가 하면, 그녀와 관계를 갖기 전 그녀가 킬라에게 물을 먹이자 "소 잡기 전에는 물을 먹인다는데…"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 웃기는 나라는 투우경기가 없지 않은가. 한우를 쓸 수도 없고…"라는 식으로 유머를 구사한다. 영화의 가벼운 말장난으로 재미를 주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그렇지만 재미와 메시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예의 없는 것들'은 재미가 더 앞선 영화다. 신하균이 맡은 순진하면서도 엉뚱한 킬라 역은 '그에게 꼭 맞는 옷'이라는 느낌을 주고, 윤지혜의 불꽃 같은 열연은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24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