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서 불어 오는 높새바람은 역시 위대했다. 어쩌면 수세기 동안 동아시아 최강의 제국의 영토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일어나 백두산에서 거칠게 포효한 뒤 두만강과 압록강 등을 건너 한걸음에 달려왔을…. 파주의 덕진산(德津山)은 반세기 동안 철저하게 사람들의 발길이 통제되고 있는 민통선 안에 차분하게 앉아 있다.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산 13 덕진산성. 이 산성은 2천년의 세월을 밀어 버리고 이방인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고구려였다. 이곳은 천연적인 요새, 그 자체였다. 연천 쪽에서 내려오는 임진강은 걸쭉하게 앉아있는 초평도를 사이로 양 갈래로 흐르다 덕진산성 앞에서 만나 다시 서해로 흘러간다. 초평도 건너편은 장산뜰. 멀리 동쪽으로 파평산과 감악산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탁 트인 들녘 한켠에 자리를 잡은 덕진산성. 이곳에서 연기를 피우면 순식간에 달음박질해 달려나갈 그런 거리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용됐던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었던 봉화도 덕진산성에서 최고의 효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조명되진 않았지만, 고구려의 위대함은 이처럼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실용과학 측면에서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img5,C,000} 덕진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임진강은 차갑게 얼어 있었다. 원래 만조시 서해의 소금기가 섞인 바닷물이 역류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추위에는 얼지 않는다는 강물을 이처럼 꽁꽁 묶은 추위도 위대해 보였다. /글 김효희기자·사진 김시범기자
먹 그림은 풍요로운 동시에 멋스럽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붓이 우리 곁에 있음은 분명 이유가 있다. ‘서예 크로키’란 장르를 개발한 금곡 석창우씨(54)는 먹그림을 그린다. 서양식 크로키와 동양화의 먹을 결합시킨 ‘서예 크로키’는 짧은 순간 대상의 특징을 잡아내 먹으로 그려낸다. 지난달 1일부터 오는 2일까지 광명 스피돔 갤러리에서 열리는 ‘역동적인 에너지 분출과 속도의 미학’전에 금곡의 먹그림이 등장한다. 금곡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자전거 경주인 경륜을 수시로 관람했다. 눈대중으로 그린 그림이 아닌 오감이 동원됐다. 작품에 대한 단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관람석과 트랙을 거닐며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다. 주로 누드를 그렸던 그가 스포츠와 같이 역동적인 대상을 찾은 것은 지난 2002년 영국 초대전 당시 축구 선수들의 장면을 담은 것을 계기로 2003년 정동극장의 전통공연을 소재로 한 ‘한국의 몸짓’전이 대표적이다. 금곡은 “그동안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경기를 녹화하거나 TV장면을 보면서 작업했다”며 “박찬호의 투구 포즈 혹은 미셀 콴의 아이스 댄싱 등을 주로 그렸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모두 42점이 등장했다. 숨가쁜 경륜장의 환호를 뒤로 하고 경기에 몰입한 선수들과 속도감 있게 질주하는 경륜 자전거를 만날 수 있다. 작품의 배경은 과감히 생략했다. 질주 하는 순간 배경은 사라지고 주인공들만 존재하기 때문. 금곡은 전기사고로 양팔을 잃은 지체 1급 장애인이지만, 의수를 끼고 작업하는 서예 크로키를 개발했다. 현재 20회 국내외 개인전과 170여회의 단체전이 말해주듯 창작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글 이형복기자·자료제공 석창우화백
환경부와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공동으로 ‘제1회 대한민국 10만가지 보물이야기 사진공모전’에서 ‘한강의 흰꼬리수리’라는 제목으로 응모한 이재흥씨(경기, 48, 본보 1월호 게재)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번 공모전은 대한민국에 서식하는 생물종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19일부터 11월 19일까지 진행됐으며, 응모작 1천311점 중 대상 1점, 우수상 2점, 가작 3점, 입선 20점 등 총 26점의 작품을 선정됐다. 심사는 희귀성, 종별 접근성, 사진적인 요소의 충족, 비인위성을 기준으로 생물학자, 생태전문 사진작가, 생태전문기자 등의 심사위원과 자문위원이 모두 4차례의 심사과정을 통해 심사했다. 대상작은 한강하구에 찾아온 멸종위기 I급인 흰꼬리수리가 먹이를 사냥해 먹는 중 까치가 텃세를 부리며 먹고 싶어 하지만, 흰꼬리수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순간 포착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밖에도 우수상은 ‘와송(김호준)’, ‘제주도의 저어새(최창용)’, 가작에는 ‘연어(김남덕)’, ‘변산바람꽃(박성배)’, ‘왕파리매의 꿀벌사냥(박정민)’이 선정됐다. 한편 본보는 3회에 걸쳐 대상작은 물론 수상작들을 게재한다. /자료제공 환경부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기회가 주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산을 오른다.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 ‘노장 산악인‘ 한만수씨(65·경기도산악연맹 부회장)가 ‘백색의 7대륙’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해발 4천897m) 정상에 ‘경기 혼(魂)’을 심었다. 한만수씨는 산악인 유주면(45·인천대 산악부OB), 김동언씨(26·인천대 산악부)와 함께 경기일보 후원으로 지난 1월 7일 2008년 새해 세계 최초로 빈슨 매시프 등정에 성공했다. 지난 해 성탄절인 12월25일 인천공항을 출발, 10시간을 걸려 LA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고 칠레 산티아고를 경유, 세계 최남단의 도시인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한 한씨 일행은 12월 30일 오전 10시 군용 수송기와 엇비슷한 비행기를 타고 5시간 만에 남극 패트리어트힐(해발 800m)에 이르렀다. 새해 1월2일 경비행기를 타고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후 4일 로우캠프(Low Camp·2천650m), 5일 하이캠프(High Camp·3천715m)를 차례로 접수한 원정대는 7일 오전 9시 모든 대원이 안자일랜(10m 간격)으로 서로를 묶고 빈슨 매시프 정상을 행해 함차게 출발했다. 가파른 설산을 크램폰, 하네스, 스틱, 아이스바, 침낭, 간식 등 온갖 장비를 챙기고 오르기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등정을 시작한지 5시간이 지날 무렵 고도 4천200m 지점에서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고, 빈슨 매시프는 정상 등정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를 가다가 두 스틱에 의지해 오르던 것을 스틱과 아이스바를 동시에 사용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의 개념을 잊은 채 포기하려고 생가하던 순간, 눈보라 속에서 돌출 바위부분이 나타났다. 거센 눈보라로 저항하던 빈슨 매시프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후 가이드 크리스의 “정상이다!”라는 외침이 터졌지만 후려치는 눈보라 속에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img5,C,000} 하이캠프를 출발한지 9시간 만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대원 모두가 눈썹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고 손은 동상에 걸린 듯 했고, 카메라는 얼어붙어 하나도 작동이 되지않았다. 추위도 잊은 채 가슴이 뭉클하면서 두 눈에 눈물이 쏟아졌다. 감격을 느낄 새도 없이 가이드의 재촉으로 하산길에 올랐다. /최원재기자
1945년1월 항일비밀결사 단체인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 친일파와 총독부 주요 인사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운 뒤 지난 1945년 7월24일 서울 태평로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열린 ‘아세아 민족분격대회’ 현장에서 친일파의 거두 박춘금을 향해 폭탄을 던진 ‘부민관 폭파 의거’의 주역인 고(故) 조문기 선생은 80년 평생을 진정한 독립을 위해 싸워왔다. 그러나 고 조문기 선생은 평생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는 독립유공자’로 살아왔다. 해방 이후 생존한 몇 안되는 독립투사로 지내왔던 고 조문기 선생은 지난 1982년 건국포장을 받은 뒤 ‘광복회 독립정신 홍보위원회‘ 위원으로 전국 순회강연도 다니고 민족문제 연구소 2대 이사장으로 취임, 친일 청산을 위한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남은 생을 보냈지만 스스로를 창피하게 생각했다. 생전에 “해방되던 해, 나는 광화문 앞에서 민중들과 조국과 민족을 되찾는 감격을 함께 했다. 하지만 중앙청에서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게양되는 순간, ‘아!’ 이제는 어떻게 독립운동을 해야 하나’하며 온몸에서 소름이 끼쳤다”고 광복의 순간을 회고하기도 했다. 지인들은 “조문기 선생은 좀처럼 중절모를 벗지 않으셨다”며 “일제 때 친일파가 아직도 득세하고 권력을 잡고 있는 사실을 보고 ‘하늘로 간 동지들을 볼 면목이 없다’며 외출할 때 중절모를 벗지 않았다”고 말했다. {img5,C,000} 고 조문기 선생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독립운동사는 독립운동가의 역사가 아니라 미래와 후손을 위한 운동”이라며 “과거사 청산은 친일파 청산부터 첫발을 내딛어야 하고 친일파 청산이 안 된 대한민국은 여전히 독립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고 조문기 선생 장례은 지난달 11일 아침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겨레장으로 치뤄지고 오후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에 안장됐다. /김동식기자
600년을 버틴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어이없이 불타 버렸다.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은 채모씨(70)가 이같은 범행을 저질러 충격을 준것과 함께 허술한 문화재 보호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나 더욱 씁쓸하게 했다.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은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화재전 이 숭례문은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됐다. 지금까지 남아 있던 숭례문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으로,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건립이후 이 숭례문으로는 민초는 물론, 왕, 귀족 그리고 임진왜란때 일본군과 청나라 군대들도 이곳을 지났다. 또 최근 일제시대에는 일본군과 6.25 한국전쟁때 북한군과 UN군 등이 이곳을 지나다녔다. {img5,C,000} 이러한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한 시기에도 불에 타지 않고 서울을 굳건히 지켜, 우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래서 국보1호이기도 했다. 그러나 관리소홀과 무관심에 방치되던 차에 토지보상에 불만 품은 사람에 의해 한순간에 잿더미가 돼 우리곁을 떠났다. 그래서 1398년에 시작된인 숭례문 시간은 2008년 2월 10일에 멈췄다. /종합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회 의사당에서 국내외 귀빈과 일반 국민 등 5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을 갖고 임기 5년의 제17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0시를 기해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군 통수권 등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법적 권한을 인수 받은 뒤 군 통수권자로서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의 근무상황을 점검하고 남극 세종기지 근무자를 격려하는 것으로 업무를 개시했다. 이 대통령은 ‘선진화의 길, 다 함께 열어갑시다’는 제목의 취임사에서 5대 국정 방향으로 섬기는 정부, 경제발전 및 사회통합, 문화 창달과 과학발전, 튼튼한 안보와 평화통일 기반 조성,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인류공영 이바지를 제시했다. 취임식에는 전직 대통령과 3부 요인을 비롯,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남바린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무담당 국무위원, 빅토르 주프코프 러시아 총리 등 외국의 주요 경축사절이 참석했으며 취임식 이후 이 대통령은 이들 사절들과 양자 회담, 면담을 통해 외교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종합 {img5,C,000}
한국사진작가협회 인천광역시지회가 주관하고 본보가 후원한 2007 16th 전국 세미누드 사진 촬영대회가 지난해 5월 27일 청학풀장에서 열리고 최근 그 결과가 발표됐다. 또 인천지회는 이 작품들을 지난해 7월14일~18일간 인천예총문화회관 1,2전시실에서 공개했다. 올해 대회에는 2천여점이 출품돼 우수작 325점이 선정되고 그중 금상 1점, 은상 2점, 동상 3점, 가작 5점, 장려상 10점, 입선 177점이 선정됐다. 포토경기는 이달부터 1년여동안 이번대회 입상작 중심으로 게재하고 있다. /사진제공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 인천광역시지회
에버랜드는 지난달 14일 국내 최초로 ‘황금원숭이’ 4마리를 공개했다. 이 원숭이는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 원숭이로 친숙하게 알려졌다. 전 세계에서 중국, 한국, 일본에서만 관람이 가능한 이 희귀동물은 한중 수교 15주년 기념해 베이징동물원으로부터 도입돼 에버랜드 몽키벨리내 특별전시공간 국보급 대우를 받고 있다. 이 원숭이는 골든몽키 (Golden Monkey) 금사후(金絲候)로 불려지며 팬더와 함께 중국 1급 보호 동물로 지정돼 중국 당국으로부터 보호 받고 있다. 2천년간 숨겨진 비밀의 동물인 이 원숭이는 중국의 전설로만 내려오다 1870년에야 겨우 프랑스 학자들이 발견하여 알려지게 됐다. 이 원숭이 모습은 20cm의 긴 황금색 털이 아름답고 푸른 빛의 얼굴에 뽀족한 송곳니에 콧대가 없는 들창코를 하고 있다. 이 황금원숭이는 독특하고 특별한 능력도 갖고 있다. 입을 벌리지 않고 노래하기, 독소가 있는 이끼 먹고 소화하기, 영하 20도의 추운 겨울 이겨내기, 나뭇가지의 반발력을 이용하여 멀리 점프하기 등이다. 비밀의 동물이라고도 불리는 이 황금원숭이는 중국 진링산맥의 해발 2천m~3천m의 높은 산에서만 살아서 사람들에게 거의 발견되지 않았으며 원숭이 종류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원숭이로 분류된다. /용인=강한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