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좋다] 역사·풍년 들판·개펄의 유혹 가을날 강화도 여행

삼월에 덕진은 수양버들 늘어졌고, 흰머리 난 늙은 어부는 술잔을 권하네. 덕진 진관은 어떤 연유로 그리 많이 변했는가, 강 가득한 물빛은 예전과 똑같은데 화남 고재형(1846~1916) 역사의 근대화시기에 강화도에 이런 시를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그가 읊조린 시가 역사를 음미하던, 자연을 노래하던 강화는 거기 그렇게 있다. 석모도에 가자는 여인이 있었다. 석모도. 늦은 오후, 좀 있으면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떨어질 텐데 걱정을 하고 외포리 포구에서 배를 탄다. 바로 코앞에 있는 섬이지만, 요즘 그 흔한 연륙교도 없이 배에 승용차까지 태우고 건넌다. 서해안의 낙조란 늘 그렇듯이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석모도 해안가에 빈 벤치와 썰렁한 가로등이 저녁노을에 반사한다. 가을날 오후 사람 마음이란 늘 쉽게 요동한다. 오전에 출발한 강화도는 요즘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다. 초지대교를 건너면 의례 볼 수 있는 것이 초지진이다. 그래 여기서 우리 근대사가 엮어졌지, 프랑스함대가 정족산성에 불지르고 가져간 실록이 근 100년 만에 겨우 돌아오고. 어찌 초지진뿐이랴, 섬을 빙둘러 곳곳에 자리하는 돈대를 보며 이곳이 국토의 관문이었고 역사의 현관이었음을 모를까? 그러니 강화도에 들어오면 세 가지 경관이 있음을 깨닫는다. 하나는 역사경관이요, 또 하나는 가을 들녘 가득한 노란 벼 이삭들이다. 나머지 하나는 아무래도 빙 둘러 펼쳐진 개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람들은 해안 포구 여기저기에 많이들 모여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요즘 많아진 각종의 별미 음식점을 찾아가지만 역시 강화도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 세 가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곧 김장철에 필수품인 바로 새우젓냄새요. 또 하나는 투명하고 붉은색 순무의 사각사각한 냄새이다. 여기에 비릿한 갯내음이 천지에 깔려 있으니 이 세 가지를 강화냄새라 아니할 수 있을까? 강화도령에서나 삼별초, 그리고 강화도조약이라는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보아왔던 강화가 풍요한 가을 들녘과 석양에 빛나는 개펄 속에서 빛난다. 이 가을 달려가보자. 글 _ 김란기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이정환 (미아리 사진방 대표작가)

[경기초대석] 라수흥 수원 장안구청장

110만 인구의 수원시를 흥나게 하고, 30만 장안구를 흥겹게 하는 남자가 있다. 라수흥(羅秀興) 수원시 장안구청장은 이름 속에 흥(興)이 담겨 있다. 종종 라수홍인지, 라홍수인지 이름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왜냐? 라 구청장을 만나면 모두들 그의 흥에 취하기 때문이다. 라 구청장은 각종 지역 행사에서 인사말 대신 노래를 한다. 18번인 설운도의 사랑의 트위스트를 부르며 구민들의 흥을 돋운다. 반응은 역시 뜨겁다. 노래 하나만큼은 자신있다는 라 구청장은 개사까지 해서 부른다. 학창 시절에 함께 놀았던 / 잊지 못할 장안구의 트위스트 / 나팔바지에 빵집을 누비던 / 추억 속에 장안구의 트위스트 / 샹하이 샹하이 샹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 난생 처음 장안구를 알았고 / 샹하이 샹하이 샹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 온 동네를 주름 잡았던 /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음~ / 잊지 못할 장안구의 트위스트 주민들은 어르신들을 위해 멋드러지게 트로트 한곡 꺾어 부를 줄 아는 여유를 가진 라 구청장을 좋아한다. 올해 1월 취임한 이래 장안구는 흥겨운 도시, 건강한 도시, 깨끗한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10월 10일 오후 라 구청장을 만났다. 미소거울과 책사탕을 선물하는 남자 얼굴을 대면하자마자 부르튼 입술부터 눈에 띈다. 요 며칠 새 피곤했는지 입병이 났네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말하는 데는 문제없습니다. 원래는 더 잘생겼으니 감안해주세요.(하하) 청장의 유머스런 멘트로 시작된 인터뷰는 유쾌, 그 자체였다. 구청장이라고 점잔을 빼거나, 치적홍보에 열을 올리거나, 공무원 특유의 딱딱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잘 웃는 공직자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종일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책상 위에 놓인 자신만의 미소거울을 보여줬다. 전 직원들에게 본인 이름이 적힌 웃음거울(smile mirror)을 제작해 전화기 옆에 비치토록 했습니다. 직원 또는 민원인과 통화 시 미소거울을 보면서 친절하게 응대하자는 취지에서 말입니다. 찡그린 얼굴이나 무표정이 장안구의 전체 이미지가 되어선 안 되겠다 싶어서 저도 틈날 때마다 치즈~도 하고 하하 웃기도 합니다. 라 구청장은 원래 목회자가 되려고 했단다. 당시 언론사에 재직 중이었던 매형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에 응시, 합격하면서 지난 1979년 공직에 입문했다. 지역경제과장, 문화관광과장을 거쳐 복지여성국장, 경제정책국장을 지내면서 2007년 공무원이 선장한 아름다운 CEO상, 2009년 공무원노조가 주최한 베스트5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업무 추진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라 구청장의 직원들 간 소통스타일은 때론 친정아버지 같고, 때론 영화 여인의 향기의 리처드기어처럼 로맨틱하다. 임산부 여직원에겐 육아책을 선물하고 화이트데이(3월14일)엔 청사 1층 로비에서 출근하는 여직원들에게 사탕을 선물했다. 매월 초 직원들 생일 축하파티를 직접 마련하고 직원 칭찬하기 게시판을 운영하는 등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같은 공직자로서 웃으며 출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같이 근무했던 부하 직원들에게 생일축하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렇듯 라 구청장은 조직운영에 있어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다. 대신 미소와 칭찬으로 직원들을, 그리고 조직을 흥나게 만든다. 돌고 돌고, 동네 한 바퀴로드체킹의 달인 라 구청장은 매일 아침 출근길 외도(?)를 한다. 헬스장 가서 운동을 하는 것도, 새벽 종교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운동이 목적이 아니다. 동네 구석구석 불편사항이나 민원을 직접 체크하기 위해 동네를 돌고 또 도는 것. 이도 부족한지 매월 첫째셋째 수요일을 현미경 생활민원 발굴의 날과 현장행정 바로처리 메모보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도로, 교통, 환경, 건설 등 분야에서 주민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현장행정을 강화한 결과 8개 분야 30여 가지 주민불편사항 2천336건을 발굴해 2천96건이나 처리했다. 장안구는 수원의 관문입니다. 30만 장안구민이 만족할 수 있는 클린환경 조성을 위해 모든 공직자가 현장에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전 직원들에게 주문합니다. 출퇴근 시, 출장 시 주민 불편사항을 허투루 보지 말라고. 구청장실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주로 동사무소와 현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라 구청장은 회의도 구청장실이 아닌 각 실과나 현장에서 진행한다. 내부 고객인 직원들과의 소통만큼이나 구민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장안구는 지역 특색이 담긴 주민 참여형 축제나 마을만들기 사업이 유명하다. 새숱막거리 축제, 영화마을 나팔꽃축제, 율천동 밤밭축제, 정자마을 달빛축제, 송죽동 행복한 마을축제, 조원1동 대추골 한마당 축제, 연무동 퉁소바위축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관 주도의 형식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기획하고 참여하고 즐기는 각종 마을 축제에서 라 구청장은 역시 노래 한곡을 빼놓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노래 하나는 잘합니다. 행사장에선 지루하고 틀에 박힌 인사말보다 노래 부르는 구청장을 좋아합니다.(하하) 어르신들 사이에선 장안구의 설운도로 통합니다. 흥을 돋우는데 노래만한 게 없잖아요. 그래서인지 음악을 활용한 주민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평소 공연관람 기회가 적은 문화소외계층과 복지시설 등을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행복나눔 음악회를 지난 5월부터 진행 중이며, 매월 둘째넷째주 수요일 구청 로비에서 수원시립예술단 등을 초청해 런치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수원시립합창단, 정자3동 기타동아리, 수원유스필하모니오케스트라, 수원 하나호우 우쿨렐레 앙상블 등 다양한 출연진들이 공직자와 주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긍정남 가을철이라 지역 행사가 많아 몸이 두개라도 모자란 요즘, 라 구청장의 마음을 빼앗은 여인(?)이 있다. 아들만 둘을 키운 그는 7개월 된 손녀 사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지방에 있어 자주 만날 수 없어 서운하지만 휴대폰 영상통화로 하루하루 커 가는 손녀를 볼 때마다 신기할 따름이라고 한다. 손녀 이야기에 더 신난 라 구청장은 영락없는 할아버지다. 그러면서 우리 장안구만큼 살기 좋은 동네도 없습니다. 녹지와 주거, 상업공간 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친환경 녹색도시입니다. 아이 키우기 좋은 마을입니다라고 장안구 자랑을 이어갔다. 장안구는 수원의 허파이며 주말이면 5만 여명의 등산객이 즐겨 찾는 광교산과 정조가 현륭원 참배를 마치고 환궁하는 길에 화산을 바라보며 떠나기를 아쉬워했다는 지지대고개를 비롯해 세계화장실 문화를 선도하고 꽃피운 발상지인 해우재,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만석거 등이 장안구의 자랑입니다. 이러한 자연환경과 관광자원을 보존해야한다는 구청장으로서 사명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라 구청장은 활기찬 도시 장안구를 만들기 위해 긍정남으로 살고자 노력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의 차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이 평소 라 구청장의 신념. 그래서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실천코자 한다. 긍정적인 구청장이 되기 위해 미소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남자, 바로 라수흥이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기업탐방]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카지노는 도박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카지노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하지만 이 같은 편견을 뒤엎고 우리나라 관광레저산업의 핵으로 떠오르는 곳이 있다. 한국관광공사 자회사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세븐럭(Seven Luck)을 운영하고 있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다. 외국인전용 카지노는 관광객 유치에 크게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관광비용 지출을 확대시키는 훌륭한 관광아이템으로 꼽히고 있다. GKL 역시 2005년 설립 이후 외국 관광객 유치와 외화 획득 증대, 한국 카지노 산업의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142만8천명에 달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세븐럭을 찾았고, 5천221억원(약 4억7천127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업계 최초로 관광진흥탑 4억불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올해 역시 중국 관광객의 꾸준한 증가 등에 힘입어 매출 5억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어 한국 관광의 중요 인프라로서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카지노 산업을 관광서비스산업 발전의 선두주자로 이끄는 GKL의 성공 요인을 꼽는다면 사업장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 경영과 투명경영을 들 수 있다. 카지노+의료관광+쇼핑 맞춤서비스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 세븐럭은 현재 서울 강남점, 서울 밀레니엄힐튼점, 부산 롯데점 등 3곳에 사업장을 갖고 있다. 3개 사업장은 각각 지역별,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적합한 맞춤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다. 카지노 산업이 여행, 숙박, 쇼핑, 음식 등 관광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GKL은 단순 카지노뿐만 아니라 카지노에 다양한 비즈니스, 의료 마케팅 등을 접목시켰다. 피부 관리나 성형 등에 관심이 많은 일본, 중국 관광객과 동남아시아 부자들을 대상으로 카지노와 의료검진을 묶은 패키지 상품 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강남점의 경우 카지노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인근에 있는 삼성동 코엑스몰 면세점, 현대백화점을 소개하고 서울 압구정, 청담도 일대 성형외과 등과 연계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낮에는 서울 관광을 즐기고, 밤에는 자연스럽게 카지노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 이와 함께 매년 거대하게 몰려오는 중국 큰 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중국 거점지역 마케팅 시장을 개척하고, 기존의 일본시장도 새로운 수익모델 창출을 목표로 중소도시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세븐럭 운영업계 최초 관광진흥탑 4억불 수상 영예 콤프제도 변경으로 수익성 개선깨끗한 회사반듯한 회사 부정비리 척결을 위한 GKL만의 제도 개혁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8월 사장으로 취임한 류화선 전 파주시장은 깨끗한 회사, 반듯한 회사를 표방하며 고객의 게임 실적에 따라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이른바 콤프제도를 대폭 손질했다. GKL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등 전 세계 카지노업계와 같이 VIP 고객 등에게 전체 기대수익대비 35%(전체 매출액의 20% 내외) 수준의 콤프를 지급해왔다. 콤프(comp)는 고객의 항공료, 숙박비, 식음료비, 기타 접대 및 로스금액에 대한 보상비 등을 일컫는 것으로 카지노 회계에선 이를 원가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 제도 개혁 전 콤프의 40%(500억 원 내외)에 해당하는 비용을 현금카드(KT카드)로 지급함으로써 부정비리의 개연성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 카드깡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 같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류 사장은 팀별 한도로 운영되던 콤프를 고객 개인별 적립 포인트 제도로 전환했다. 또 고객이 발생시킨 콤프와 사용내용을 전면 공개하고, 고객에 대한 콤프 실제 지급을 마케팅팀에서 경리팀으로 바꿔 업무를 이원화시켰다. 이에 따라 고객은 발생 포인트를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개인별로 원하는 콤프(항공, 숙박, 칩 등)를 지급받아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고객에 대한 차별대우 등 콤프 관련 비리 및 각종 루머를 차단하는 효과를 얻게 됐다. 마케팅 비용 역시 연간 500억 원 내외로 사용되는 KT카드가 현재 연간 30억 원 선에서 억제될 정도로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또 전체 콤프비용 역시 외형신장에도 불구하고 약 10% 정도 절약되는 등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26%에서 올 상반기 29%로 개선됐다. 류화선 사장은 콤프제도 개혁으로 50년 적폐를 청산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해외카지노업계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놀라워하는 상황이라며 고객의 편의성과 콤프 집행의 투명성 모두 확보하며 영업이익률 개선 효과까지 얻었다고 밝혔다. 글 _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Movie&현장] “앗! 여기, 왠지 낯익다!” 인천아트플랫폼

분명 처음 오는 곳인데도 언제 와본 듯하고, 많이 본 듯한 곳이 있다. 짜장면의 발상지인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맛있는 짜장면을 먹고 근처를 둘러보면, 어젯밤 꿈속에선가 본 듯한 낯익은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인천아트플랫폼. 바로 KBS TV 드라마 드림하이의 촬영지다. 택연, 아이유, 배수지 등 아이돌 스타들이 슈퍼스타가 되는 꿈을 키우며 춤추고 노래하던 극 중 기린예고 건물이 바로 이곳, 인천 중구 해안동 인천아트플랫폼이다. 드림하이 뿐만이 아니다. 월드스타 비가 이곳에서 디지털카메라 CF를 찍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영화 두여자와 해결사 등 최근 들어 TV드라마, 영화 촬영이 늘면서 인천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TV드라마영화CF촬영지로 유명세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 신개념 문화인큐베이터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는 지난 1883년 개항 이후 건립된 건축문화재와 1930~4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다. 특히 당시의 근대건축기술과 역사적 기록을 지니고 있어 건축조형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 2008년부터 이곳에 도심 재생프로젝트를 진행, 2009년 9월에 마쳤다. 1888년에 지어진 옛 일본우선주식회사(등록문화재 제248호)는 미술자료관으로 바뀌었고, 1902년 건립된 삼우인쇄건물은 입주작가와 주민이 함께하는 미술교육의 산실로 거듭났다. 1943년 점포형 건물인 금마차다방과 장수영양탕 자리에는 아트숍과 커피숍이 들어섰다. 1933년 지어진 해안동 창고는 스튜디오, 대한통운 창고는 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100여 년 전과 근대시절 세워진 건축물들이 창작스튜디오, 공방, 자료관, 교육관, 전시장, 공연장 등을 갖춘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재탄생됐다. 총 부지만 8천450㎡에 2개 단지, 13개 건물이 각각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인 종합 미술 창작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이러한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최대한 살려 문화적으로 재활용하자는 시민들의 뜻과 인천시의 의지가 합쳐져 탄생한 장소. 이곳을 중심으로 개항장 일대는 거대한 스트리트 뮤지엄으로 확장된다. 이는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되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이다. 택연아이유배용준설경구인천에 다 있네 지난해 인천아트플랫폼은 드라마 드림하이 촬영지로 내내 북적였다. 유명 아이돌 스타뿐만 아니라 정상급 스타들의 조연과 까메오 출연, 여기에 100여명이 넘는 제작진, 스타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까지. 드림하이엔 김수현과 배수지, 옥택연, 함은정, 아이유(이지은), 장우영 등이 공동주연을 맡았고 한류스타 배용준과 엄기준, 박진영, 이윤지, 이윤미, 안선영 등이 조연을 맡는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했다. 특히 까메오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 맴버들이 상당수 출연, 10대 팬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촬영장도 매일 스타들을 보러 온 팬들로 북적였다. 드림하이 뿐만 아니라 CF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월드스타 비는 이 곳 구석구석을 돌며 디지털카메라 CF를 찍었고, 이후 인천아트플랫폼은 멋진 사진을 원하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됐다. 영화에서도 인천아트플랫폼은 종종 등장한다. 신은경정준호심이영 주연의 두여자에서 일과 사랑 모든 것이 완벽한 산부인과 의사 소영(신은경)이 남편 지적(정준호)가 만나던 수지(심이영)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등의 장면의 배경이 됐다. 설경구이정진오달수 등이 출연한 액션영화 해결사에서 주인공들의 도주 및 추격신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인천아트플랫폼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익었다. 세계를 향한 문화예술의 발신지 인천아트플랫폼을 들어가면 맨 먼저 보이는 유리벽 건물의 A동 크리스탈 큐브는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건물이다. 한 때 이 곳엔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인 윤석남의 나뭇조각 유기견 1025마리가 바닥을 채웠다. 크리스탈 큐브 천장은 유기견에 대한 생각을 적은 하얀 천들이 매달려 있는 등 구제역으로 매몰된 가축들의 죽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이처럼 A동엔 라운지와 전시실, 각종 문화강의가 열리는 교실 등이 있다. B동은 정기적으로 다양한 전시회가 열린다. 디지털비디오영상물을 비롯해 어디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만화나 그리스로마신화 관련 문화작품들이 선보이는 곳이다. C동은 공연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D동에는 인천은 물론 전국적인 각종 문화 관련 자료가 축적된 자료실이 있다. E1~E3동은 공동 작업실이다.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한 작가들과 인천작가들의 다양한 작업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고, 때로는 미술소품을 파는 플랫폼 창고세일도 열린다. F동은 게스트하우스, G동은 아트&디자인 스튜디오, 커뮤니티 공간인 H동엔 입주작가 지원실과 프로젝트 룸, 아트숍, 카페 등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운영을 맡고 있는 인천문화재단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시각예술을 비롯해, 공연과 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문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국내에 정착하지 못한 현실에서 동아시아 문화허브도시인 인천의 지역특성을 끌어들인 국제문화교류에 주력하고 있다. 문화재단 관계자는 인천아트플랫폼은 시간의 창고들을 창의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예술창작의 현장이라며 이곳은 레지던스 프로그램 외에 국내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는 장터가 되고, 국내외 예술가들이 소통하는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발신지로서 거듭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 _ 이민우 기자 lmw@kyeonggi.com

[Museum&Gallery] 피와 땀 110년, 한민족 발자취를 따라…

한국의 110년 이민(移民)사는 질곡(桎梏)의 역사인 동시에 희망의 역사였다. 민족 수난의 시기, 살고자 고향을 버리고 낯선 땅을 찾아야 했던 사람들. 멀고도 낯선 불모지를 피와 땀으로, 번영의 신천지로 일군 사람들. 이들은 모두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조국을 위한 헌신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후예들은 현재 세계 곳곳 정상의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며 희망을 주고 있다. 700만 동포들의 삶과 애환이 살아 숨 쉬고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 인천시 중구 월미로에 위치한 한국이민사박물관(관장 김경언)이다. 과거 선조의 향기를 따라 둘러보다보면 어느새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는 곳, 한국이민사박물관으로 역사여행을 떠나보자. 750만 해외동포들의 이민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사박물관동포들의 삶과 애환을 마주하다 19세기 말 조선은 밖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서구열강의 각축과 안으로는 조정 대신들의 불화가 끊이질 않는 등 나라의 운명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흉년에다 신흥강국으로 성장한 일제의 탄압에 국민의 생활은 날로 궁핍해져만 갔다. 이런 가운데 희망을 잃은 일부 국민이 새로운 삶을 찾아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이것이 한국 이민사의 첫 시작이었다. 지난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아 우리 선조의 해외 개척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인천광역시 시민들과 해외동포들이 함께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에 우리나라 최초로 이민사박물관을 건립함으로써 다시 한 번 한인 이민역사를 체계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 이들의 염원은 식질 않았고, 결국 5년 후인 지난 2008년 6월 13일 인천 중구 월미도 끝자락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연면적 4천127㎡에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로,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실, 기획전시홀, 영상실, 수장고, 한국이민사도서실 등을 갖춘 박물관은 당초 인천시 서부공원사업소에서 관리하다 지난 2월 말 인천시립박물관 분관으로 조직이 개편됨으로써 전문성을 확보하고 체계적인 이민 역사의 연구가 가능해졌다. 이민사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은 한국이민의 역사를 증명하는 유물뿐만 아니라 현대와 근대 우리나라의 역사 모두를 아우르는 자료를 선보이고 있다. 상설전시관은 △미지의 세계로(제1전시실) △극복과 정착(제2전시실) △또 다른 삶과 구국 염원(제3전시실) △세계속의 대한인(제4전시실)으로 구성돼 있다. 미지의 세계로또 다른 삶과 염원 제1전시실에서는 이민의 출발지였던 개항 당시의 인천을 소개하고, 우리나라 첫 공식이민이 이뤄지기까지 국내 정세 및 미국 하와이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또 당시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는 활동을 펼친 미국 공사이자 선교사인 알렌(H.N.Allen)의 삶도 엿볼 수 있다. 그는 1884년 조선에 도착한 이후 고종 황제의 주치의로 발탁돼 황실의 신망을 얻었고, 이후 조선과 미국 정부 간의 핵심적인 중재자로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 내 설탕 수요가 증가하면서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알렌은 조선인의 하와이 이민사업을 펼치게 된다. 1902년 12월 22일 하와이 첫 이민단 121명이 인천 제물포에서 출발해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것이 우리나라 이민의 첫 역사다. 전시실에는 당시 이민자들을 싣고 하와이로 떠난 첫 선박인 갤릭호(S.S Gaelic) 모형을 놓고 이민자들의 길고 험난했던 여정을 생생히 체험해 볼 기회도 제공한다. 박물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애국심 불끈 제2전시실은 하와이에 정착한 한인들의 애환과 개척자로서 미국 전역에 뿌리를 내린 발자취 등을 담은 사진자료와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사탕수수농장 한인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생활을 담은 영상을 비롯해 하와이 한인학교를 연출해 놓은 교실에서 그 당시 사용했던 교과서도 전시돼 있다. 제3전시실은 1905년 새로운 삶을 찾아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향한 1천33명 한인의 또 다른 삶을 볼 수 있다. 또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미주 한인들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을 바쳤던 활약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외교 및 선전활동과 함께 독립 자금을 모으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제4전시실은 전 세계 각국으로 진출해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700만 해외동포의 근황과 염원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우리나라 공식 이민의 첫 출발지인 인천에 하와이 이민자들의 조국에 대한 교육적 열망을 담아 설립한 인하대학교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인하대는 인천과 하와이의 첫 자를 따서 인하라는 교명으로 정해졌다. 이와 함께 한인이민사를 재조명하고 한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각종 해외이민 기념사업과 축제, 문화 활동에 대해서도 살펴 볼 수 있다. 관람안내------------------------------------------ 관람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일) 관 람 료 : 무료 문 의 : (032) 440-4710 / 4711 위 치 : 인천광역시 중구 월미로 329 (북성동 1가) 상설전시실 전시내용 설명기기 무료대여 (한영중일어) 상설전시실 문화관광해설사 해설: 오전 10시~오후 4시(단체 관람객은 1회 30명까지 해설예약 가능) 글 _ 신동민 기자 sdm84@kyeonggi.com 사진 _ 한국이민사박물관

[허용선의 세계속으로 ⑩] 폴란드 카토비체와 오폴레

쇼팽으로 대표되는 음악의 나라 폴란드. 폴란드는 퀴리 부인과 코페르니쿠스로 대표되는 과학의 나라이기도 하고 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자유노조의 지도자 바웬사의 조국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카토비체 카토비체 시가지는 옛날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다. 오래된 성당과 집들이 보이는가 하면 새로 지은 현대적인 건물들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폴란드 중남부에 있는 카토비체(Katowice)는 인구 3만 명 규모로 폴란드에선 10번째로 큰 도시에 속한다. 4만개 이상의 회사가 이 작은 도시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예로부터 탄광업이 발달한 실레지엔주의 주도(州都)라서 다양한 회사들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카토비체는 유럽 최대 규모의 석탄지대인 실레지엔의 중심도시로 탄광업이 발달한 도시다. 학생들도 유난히 많이 보여 물어보니 카토비체에 8만 명, 실레지엔주 전체로는 13만 명의 학생이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도 많고 주정부나 시의 경제적인 배려도 크다니 학생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하다. 고즈넉한 구시가지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뜸하지만 중앙역 근처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주변에는 전차역, 상가, 환전소, 은행 등이 자리하고 있다. 폴란드에서 인기가 높은 티흐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도 있고, 아연과 납 제련소들도 많은 산업도시다. 교통망도 좋아 바르샤바, 크라쿠프, 브로츠와프 같은 국내 도시는 물론 체코 프라하(450km), 오스트리아 비엔나(430km), 독일 베를린(620km)들도 가깝다. 시내로 나가보면 베를린이나 프라하처럼 번화하지는 않지만 고풍스런 건축물들이 눈에 띄고 맛깔스런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 대형 쇼핑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퀴리 부인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정부에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건설하는 스포테크(Spodek)는 체육관, 공연장, 도서 박람회장 등으로 활용되는 실내 체육관이다. 고즈넉한 중세의 거리 뒤편엔 콘크리트 빌딩 시간의 공존 마치 독일에 온 듯한 오폴레 폴란드 남서쪽 오폴레주의 주도(州都)로, 폴란드는 물론 외국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실레지엔 지역에 속해 있어 탄광업을 비롯한 담배, 시멘트, 철도산업 등이 발달돼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8세기 초에 오데르 강가에 사람들이 거주하며 마을을 이루었고, 990년 미에즈코 왕세자가 실레지엔 지방을 정복하고 폴란드 영토로 귀속시켰다. 1202년에는 독립해 오폴레 공국의 수도로 되었다가 16세기에는 강력한 세력을 가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에 병합되었다. 오랜 기간 게르만 민족이 살던 곳이라 오폴레 도시 자체는 독일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하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이곳은 독일 도시였으나 전후 독일계 주민을 딴 곳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시내로 폴란드 주민들이 들어와 살았다. 오폴레는 아담한 도시라서 반나절이면 중요한 곳을 다 돌아볼 수 있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건축물들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국제 건축물 콘테스트에서 오폴레가 큰 상을 받았다는 것이 이해될 정도다. 오폴레의 베니스는 오데르 강가의 건물들이 저녁에 물빛에 반사되어 뛰어난 정취를 자아내는 것이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시장광장에 자리한 시청사는 오폴레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시청사 전망대에 계단을 타고 올라가 시내를 바라보면 마치 중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알록달록 칠해진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아서다. 대성당은 시민들에겐 정신적인 안식처다. 13세기 중반에 지어졌으며 내부에는 이름난 성직자의 묘가 안치돼 있다. 글사진 _ 여행 칼럼니스트 허용선

[문학공장(15)] 오정희 소설가

성서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짧고 얕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모름이 앎에의 문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성서는 읽기보다는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부추기며 조금씩 써온 글로 책 한 권이 되었다. 소설가 오정희(65)가 신앙의 최고 법전, 성경을 주제로 한 오정희의 이야기 성서(여백 刊)를 펴냈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그녀. 무려 45년이라는 오랜 세월 변치 않는 필명을 떨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성경을 들고 독자들 곁으로 찾아왔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편안한 호흡을 자랑하는 간결한 문장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 작가에게 성경은 어떤 존재일까? 10월 19일 오후 서울에서 그를 만났다. 성서는 내가 반드시 거쳐야 할 세계 10여 년의 산고 끝에 펴낸 작품 첫 인사를 건네는 그녀. 오랜 시간 작가로서 여자로서 숱한 계절을 반복해서였을까. 얼굴에는 사계절이 숨어 있었다. 빠알간 립스틱을 바른 그녀의 입술은 봄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그녀의 미소는 시원한 여름을 닮았다. 눈, 코, 입 주변에 깊게 터를 잡은 주름은 쓸쓸한 가을을 닮은 듯 했고, 하얀 눈이 내려앉은 흰머리는 춥디추운 겨울산을 닮아 있었다. 환갑을 훌쩍 넘긴 작가에게도 오래된, 그리고 묵은 숙제가 있었다고 했다. 성당을 다닌 지 10여년 쯤 됐다. 성서를 한 구절, 한 구절 묵상하며 통독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오래전부터였으나 실행이 어렵지 않았다. 번번이 앞부분에서 맴돌다 멈춰지거나 부분 부분 뽑아 읽는 데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서 쓰기를 시도했으나 그 역시 용두사미가 되곤 했다.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로 작가는 성경과 좀 거리가 있어 보였다. 게으름을 부리면서도 내심 성경과 친해질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작가는 그 때를 기다리면서 생전 미당 서정주 선생이 문학을 하려면 반드시 성서를 읽어야 한다. 성서를 모르면 서양의 문학과 서양인들의 정신세계를 알 수 없다는 말씀을 기억했다. 그녀에게 성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세계로 각인돼 있었던 것. 가톨릭 신자로서 지난 2003년부터 6년여 동안 가톨릭 다이제스트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노아의 방주, 카인의 살인, 모세의 이집트 탈출기 등 구약성서와 예수의 탄생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하는 신약성서의 이야기를 63개 일화로 정리했다. 이 책은 오로지 성서를 성실히 읽고, 만나고 싶다는 내 마음의 소산이다. 성서와 작가 오정희의 만남이다 보니 독자 입장에선 독창성이나 새로움이 없어 다소 밋밋할 수도 있을 터. 이에 대해 나는 내게 소설을 쓰게 함이란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는, 살아가는 일의 슬픔과 쓸쓸함이라고 표방하기도 하는데 성서를 찾아 읽는 마음 또한 세상에 가득한 고통과 슬픔의 불가해함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글을 쓰면서 부담보단 오독을 하지 않을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거 아닌가 싶어 조심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작가는 성경의 가장 중심적인 이야기만 추려 거기에 친절한 해석과 주석을 달았다. 꼭 신자가 아니어도 읽기에 부담이 없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재구성함으로써 자칫 어려운 책이 될 수 있는 성경을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되살려냈다. 작가로서 나는 직무유기다 작가 오정희는 자신을 느리다, 게으르다고 말한다. 이번 책도 처음 원고 작업을 시작한 때로부터 벌써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굳이 책으로 묶겠다는 생각이 없었기에 자유로웠다고 한다. 책이 나오고 난 지금의 심정을 오 작가는 문제집 한 권을 끝낸 초등학생처럼 뿌듯하고 마음이 가볍다고 표현했다. 느리지만 오랫동안 장수하는 그녀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맏언니 격이다. 1947년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나 1970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작가는 1979년 저녁의 게임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2년 동경으로 제15회 동인문학상, 1996년 구부러진 길 저쪽으로 오영수문학상, 1996년 불꽃놀이로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맏언니지만 대중적인 활동은 다소 부족한 편이다. 다작(多作)과도 거리가 멀다. 대신 과작(寡作)으로 유명한 작가다. 많이 쓰고 싶은 사람이 있고, 많이 써야 할 사람이 있고, 또 식사 양이 많은 사람도 있고, 식사 양이 적은 사람도 있다. 작가로서 나는 직무유기다. 나에게 문학은 삶의 일부다. 나는 절대 대단한 작가가 아니다. 단 문학과 나의 마주보는 시간과 공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을 뿐이다. 게으르다는 핑계를 대는 작가는 절대 게으른 것이 아니었다. 단지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것일 뿐. 절대적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직업인만큼 누군가와 어울리거나, 웃고 떠들며 술 마시고 여행 가는 것을 지양한다고 한다. 누군가가 물었다고 한다. 작가님의 작품이 어떻게 읽혀지기 바라냐고. 작가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내 작품 안 읽어도 좋다. 내 작품에 대한 환상이 없다. 그리고 내 작품이 영원하리라 믿지 않는다. 단순히 내가 쓰고 싶은 글 쓰는 것으로 만족한다. 독자가 작가를 선택할 권리가 있듯이 작가도 독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모든 이가 내 작품을 읽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나도 내 옛 작품을 안 읽는다. 지나간 길을 자주 돌아보면 뭐하나. 내가 앞으로 써야 되는 작품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항상 힘들고 아픈 것이 청춘 작가로서의 오정희는 생각보다 쿨 했다. 엄마 오정희도 굉장히 쿨 했다고 한다. 1남1녀를 강원도 춘천에서 키우면서 유명작가라는 타이틀로 아이들을 그늘지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아들이 수능기출문제집에 나온 제 작품 저녁의 게임을 읽었는지 엄마가 쓴 글이 맞냐고 묻더라.(하하) 아이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엄마가 위치를 알게 된 것 같다. 고등학교 전까지 아들과 딸에게 나는 그저 알기도 한 작가였다. 내 작품을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한 적도 없다. 지금은 아들, 딸을 외국에 보내고 강원도 춘천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독자 또는 동료 작가, 후배들과 스킨십이 부족한 것 같아 보이지만 작가는 후배 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선배 작가다. 문청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오 작가의 단편소설 한번쯤은 필사해본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녀의 작품을 읽고, 쓰고 있다. 작가는 자기만족도는 높은 직업이다. 하지만 고달픈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춘문예 심사를 하면서 당선자들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이라고 말이다.(하하) 그러면서 오 작가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아픈 손바닥에 청사진을 놓고 사는 게 아니라 삶이라는 것이 오리무중이고, 딱 걸은 한 발짝만큼만 보이는 게 인생이니 본인 존재감을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가야 한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춘들은 사회적으로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만 청춘은 항상 힘들고 아프다. 인천 신흥초등학교 시절 글짓기로 명성을 날렸던 소녀 오정희는 한국 문학계 큰 뿌리로 성장해 2012 아픈 청춘들과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성서를 통해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을 존재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임을 추출해 내고 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포토에세이] 11월 한낮

[Art&Gallery]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그림 끝에 희망이 힘이 되길

김철윤의 작업엔 시든 꽃, 낙엽, 시계, 동물, 사람 등이 주로 등장한다. 시든 낙엽과 꽃은 현실의 상황을 의미한다. 메말라 버린 감성, 무거운 책임감에서 오는 외로움. 그는 시든 어떠한 것에 생명을 부여한다. 현재는 시들어 있고 힘들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하고 사는 우리의 내면의 거울이라 말하고자 한다. 물론 감상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약간 고집한다면 감상의 끝에는 희망이 있길 소망한다. 동물은 자유와 인간의 순수성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의인화 돼 있다. 본능에 충실한 동물들은 가끔 부러움의 대상으로 다가 온다. 그들에게서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다. 현실의 메마름에서 벗어나 한번쯤은 훌훌 털어버리고 본성에 의해 살고픈 마음, 자신의 자아를 찾고 언젠가 있을 자유를 갈망하며 살아가는 나(우리)는 결국 희망이 있기에 살아간다. 작가는 과정을 그리는 만큼 그 과정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존재할 것을 생각해 표현했으며 그림의 끝에 있는 희망이 잘 전해져 힘이 되길 바라고 있다. 김철윤 작가 계명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및 예술대학원 수료 Boot전 2011 대구유망작가 초대전 (메트로갤러리, 대구) 2011 현대작가 15인전 (서울미술관) 2008 골든아이 아트페어 (코엑스, 서울) 2008 부산국제 아트페어 특별전 (백스코, 부산) 2008 New Realist展 (우봉갤러리, 대구) 2인전 2010 김성진 김철윤 초대전 (DGB갤러리, 대구) 2008 대한민국 청년작가 100인전 (신상갤러리, 서울) 2008 이수갤러리 초대전 (이수갤러리, 대구)